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1)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그분을 만난 이후, 그리도 중요하게 여겨지던 모든 것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좀 더 성숙하고 균형 잡힌 것, 보다 진정성을 지니기 위해서 참으로 필요한 것은 진한 하느님 사랑의 체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사제나 수도자들의 진지한 자기 반성도 필요하겠습니다. 우리가 동반해드리는 교우들은 절절하고 뜨거운 하느님 사랑 체험에 저리도 행복해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저 냉랭하고 뜨뜨미지근할 뿐입니다.
존 포웰 신부님은 하느님 사랑 체험의 첫출발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분의 손길이 내게 와 닿았다.”
신부님은 그 특별한 체험 이후 삶이 180도 달라지게 되었답니다. 당시 받은 느낌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완전히 새롭게 아름다운 세계가 시야에 들어왔고, 이렇게 새로운 눈을 뜨고 보니 그 전에 중요하게 여겨지던 모든 것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강렬한 하느님 사랑의 손길을 체험한 그 이후는 더 이상 하느님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 사랑과의 접촉 이후 더 이상 이웃을 미워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감미로운 체험 이후 봉헌 생활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 두 가지를 소개하고 계십니다. 그 둘은 구약 모든 율법의 종합이요 요약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 두 가지입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평생 노력해야 할 과제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하느님 사랑을 온 몸으로 체험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 사랑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일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을 제대로 체험하게 될 때 우리는 놀라운 신비체험을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있는 경쟁의식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끝도 없는 성공을 위한 갈망, 나 자신에 대한 과도한 기대, 이웃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을 접하게 될 때 우리 마음 안에 길고도 혹독했던 겨울이 지나갈 것입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따뜻하고 화사한 봄날이 찾아들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 안에 살게 될 때 새 안경을 처음 쓰는 기분일 것입니다. 그간 보이지 않았던 하느님 자비의 흔적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간 전혀 감을 잡지 못했던 하느님 사랑의 얼굴을 바로 눈앞에서 뵙듯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의 손길이 우리 삶을 훑고 지나가는 순간, 우리는 새 사람이 될 것입니다. 어제의 나를 훌훌 털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순간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매 순간 흠뻑 받고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2)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성경 읽는 법: 사랑으로 읽어라!
오늘 복음에서 율법 학자는 예수님께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 긴 성경 가운데서 핵심 구절 두 개를 찾아내십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그러자 율법 학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뽑은 핵심 구절에 동의하는 율법학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성경의 말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두 문장을 찾아내실 수 있었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경 말씀을 하신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지 알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자신이 한 말의 핵심을 말해보라고 하면 됩니다. 분명 당신을 사랑한다면 말하려고 하는 의도를 파악해 핵심적인 한두 마디를 찾아낼 것입니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하는지 종잡지 못한다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부부싸움이 왜 끝나지 않는 것일까요? 상대가 말하려는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자기주장만 되풀이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부부 각자의 생각은 ‘나는 널 알아!’입니다. 그러니 굳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필요가 없다고 여깁니다. 성경을 대하는 자세도 그러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순종하려면 먼저 그 무언가를 말하는 대상을 사랑하게 할 누군가를 만나야 합니다.
영화 ‘아버지와 딸’(2020)에서 성인이 된 딸은 자기 파괴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버지와 딸’이라는 책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도 그녀의 삶은 아버지가 책을 쓰며 상상한 딸의 모습이 아닙니다. 돈을 받고 몸을 파는 것과 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여자 주인공의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도 사고 후유증에 시달립니다. 가난한 소설가이기에 돈도 없습니다. 그런데 친척 집에서 아이를 입양하려고 합니다. 이것을 막으려면 변호사비로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아버지는 자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는 딸을 위해 석 달 동안 모든 에너지를 짜 내 소설을 완성합니다. 그러나 몸이 허약해져 죽고 맙니다.
딸은 부모의 죽음이 자기 탓인 것 같기도 하고 자기를 두고 다 떠나버린 부모가 원망스럽기도 하며 그립기도 하고 또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이 자기를 떠날까 봐 가벼운 관계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때 ‘아버지와 딸’ 책을 읽고 삶이 바뀌었다는 한 남자를 만납니다. 그 남자는 그 딸이 그런 모습인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참아냅니다. 자기와 사귀면서 다른 남자를 만나고 와도 이해합니다. 그러한 피 흘림이 결국 여자 주인공이 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하게 했습니다. 아버지가 책을 쓸 때 상상했던 딸의 모습으로 살 것을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수녀님들에게 사제가 되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러기 싫었습니다. 결혼해야 행복하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이 되니 그 뜻의 의미를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하.사.시.라는 책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 성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님께서 나에게 해가 되는 것은 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되니 이웃의 영혼을 돌보는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사랑이 없으면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먼저 성경을 읽기 전에 하느님을 사랑하게 해 줄 무언가를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러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성경 말씀을 사랑 없이 해석하려 하였습니다.
결과는 처참하였습니다. 모든 성경의 계명들을 다 지킨다고 하면서 실제로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다 외우는 사람이지만, 이웃에게 화를 내고 싸움을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알면 보이는 게 맞지만, 알려면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보입니다. 그러기 위해 사랑을 알게 해 줄 누군가를 만나야 합니다.
3)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마르 12,28-34: 우리 하느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하라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28절) 예수님께서는 모든 율법서와 예언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두 계명에 달려있다고 하신다. 모든 계명이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있는데 율법 학자는 예수님께 이러한 질문을 한다. 예수님은 신명 6,4를 인용하면서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29절) 하신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이다. 하느님은 살아있는 자들의 하느님이시며 인간을 지배하는 분이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30절).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31절). 하느님 사랑은 이웃 사랑과 연결되어 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를 모른 체하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자비롭게 행한 것을 바로 당신께 해드린 것으로 여기심을 알고 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면, 완전하게 표현될 수 없다. 이웃을 떠나서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고, 하느님을 떠나서는 이웃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확증은 바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꾸준히 일하고 그들을 끊임없이 돌보아 주는 일이다. 한 분이신 하느님에 대한 친밀한 사랑을 알고 이웃 사랑이 자기 사랑처럼 진실해야 한다고 고백하며,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다고 말한 율법 학자의 대답은 주님의 뜻과 조화를 이룬다.
사순절의 모든 삶은 바로 이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34절). 이 말씀은 율법 학자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아직도 떨어져 있음을 암시하신다. 율법 학자는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말씀을, 자비를 구체적으로 실행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아직 멀리 있다. 인간은 사랑하면서 상대를 닮아간다고 한다. 부부의 모습이 닮은 것도 서로의 사랑이 그렇게 만드는 것일 것이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갈 것이다.
4)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싱크 어게인’의 저자 애덤 그랜트는 우리가 성공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다시 생각하기’ 기술을 터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것과 이제껏 배운 것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부정당하면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지요. 이것은 정체성의 위상을 지키려는 본능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정체성을 바꾸면 안 될까요? 우리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지요. 계속해서 완성되어 나갈 뿐입니다. 따라서 다시 생각하면서 ‘정체성’을 바꿀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해 봤자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이 들 때, 다시 생각할 수 없을까요? ‘전에 해봤는데 소용없었어.’라는 생각이 들 때, 또다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너무 어려워. 나는 절대 못 해.’라는 생각도 다시 생각해야 할 말이 아닐까요? 만약 당신과 가장 친한 사람이 예를 들어, 사랑하는 자녀나 친한 친구가 그런 말을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다시 생각하라고 정중하고 간곡하게 부탁할 것입니다. 다시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고, 의미도 생기게 됩니다.
며칠 전에 지방으로 강의를 다녀왔습니다. 집에 들어오니 너무 늦은 시간이고 너무 피곤했습니다. 씻는 것도 귀찮고 얼른 침대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녁기도와 끝기도를 바치지 않은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생각했습니다. 피곤해서 곧바로 침대에 눕고 싶지만 그래도 기도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후회를 줄이고 기쁘게 기도를 마치고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율법 학자 한 사람이 다가와서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계명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렇다면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이 사랑의 계명을 몰랐을까요? 아닙니다. 이미 신명기에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하셨던 사랑의 계명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사랑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다시 만든 세부 조항 613개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세부 조항 613개 모두 중요하다고 하니, 만약 두 개의 조항을 동시에 지켜야 할 상황이라면 어떤 조항을 지켜야 하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했습니다. 그 결과 정작 반드시 실천해야 할 사랑을 소홀히 하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던 이유는 다른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잊지 않고 잘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모습을 주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질서 있는 모습이 아름다움을 결정한다(펄 벅).
5)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호세14,10)
지혜롭고 분별 있는 이들은
모든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이들이라네.
그들은
세상에 한분뿐이신
주님을 위해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이들이라네.
6)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백만송이 장미를 꽃피우는 것이
지구에 온 내 존재의 이유라면
나는 지금 몇 송이를 피웠을까?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타인의 몰이해와 무관심에도
실망으로 가득 차고
좌절과 절망에 흽싸이고
힘들고 지친 나날의 연속이어도
당신을 피해 달아나고 싶을 때라도
아무 생각 없이 기도가 어려울 때라도
전 하루라도 빨리 그분을 만나기 위해
오늘도 내 마음을 다하고
내 목숨을 다하고
내 온 정신을 다하고
내 온 힘을 다해 살고 싶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장미꽃 한 송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바치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겠죠.
복음 말씀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28ㄱㄷ-34
그때에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28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 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