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內面 일기/ 맹난자
갈라진 구름의 틈새로 언뜻 내보이는 햇빛처럼 그렇게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길을 걷다가도 별안간 어떤 오감五感의 부딪침에서 촉발되는, 내면의 찰과상과도 같은 그런 감정들이 무료한 내 심상心像위로 떠오르면 그것들을 보듬고 천천히 발걸음을 떼게 된다. 인사동 길로 접어들었다. 특히 안국동에서 종로로 빠지는 인사동 길은 백두대간과도 같다. 절은 날 근무하던 곳이 이곳이었고, 6년 동안 다닌 여학교도 이 근처였다. 어느 곳 하나 추억되지 않는 곳이 없다.
인사동 입구의 크라운베이커리 건너편 2층엔 검여 유희강 선생의 서실이 있었고 통문관 3층엔 추전 김화수 선생의 화실이 있었다. 합죽선에 그려 준 오죽烏竹은 그린 이를 닮았었다. 고즈넉하던 이 골목이 반세기가 지나 외국인들로 붐비는 거리가 되었다.
앞만 보고 걷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 치는 손길이 느껴진다. 돌아보니 낯선 사람뿐이다. 손가락을 튀기면 팽팽한 현의 가락이 울릴 것 같은 하늘이다. 올려다본 가을 하늘의 고공高空 저쪽에 슈베르트 음악을 들으며 혼자 생을 마감한 p의 얼굴이 떠오른다.
좌판에 앉아 있는 서러운 햇과일처럼 겨우 제 빛깔을 갖춘 사과 한 알의 투명함, 그 개체個體와 마주하던 시간 속 얼굴이 떠오른다. 인사동 네거리에 서 있는 지금도, 햇과일은 여전히 내게 청빈한 아침이요, 서러운 충일이다.
인사동 네거리 왼편에는 MBC방송국이 있었고 우리 《실험극장》동인들은 이 근처에서 자주 모였다. 장맛비에 갇혀 종일 떠들던 2층 그 다방을 눈으로 좇는다. 긴 여름 방학, 가난과 열정 그리고 황홀과 불안이 교차하는 60년대였다. 워크숍 때 나와 메텔링크 조組였던 H씨는 성공한 연극인 이었다. 이중섭의 소 같은 뚝심에 침착한 연출가의 면모가 돋보였던 사람. "…추석을 우리 함께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소인이 찍히지 않은 그 엽서가 아직도 새로운 것은 내가 일찍 그 동네를 떠났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취해야만 한다. 술에, 시에, 그리고 사랑에." 불문학도인 C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외치자 누군가가 되받아 "ㄴ술에, 연극에 그리고 사랑에"로 고쳐 말했다. 끔찍한 시간의 무게를 느끼지 않기 위하여 끊임없이 취해야 한다던 보들레르의 시였다. 원문에 '술에, 시에 또는 덕성에'임을 알게 된 것은 나중 일이었다. 안주도 없이 배갈로 가슴에 불을 지피던 시절, 막연한 불안과 허기와 그 장대비 소리는 우리를 데카당스에 젖게 했다.
데카당스하지도 못한 게 데카당스한 척한다고 나를 한 방 먹이던 K도 캐나다 어느 마을에선가 지금쯤 늙어 가고 있을 테지.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들어 올리는 시지포스처럼 무엇인가를 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에는 반드시 목적이나 의미가 있어야 하는 걸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는 날이 많아진다. 목적의 불필요를 말한다면 뜻을 이루지 못한 자의 변辯이라고 할 테지만 사실 인생을 사는데 반드시 목표나 의의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생각된다. 계량計量에서 벗어나 자연 자체가 되어 버린 농부의 삶이 부럽다.
기실 무엇이 되고자, 그것에 가깝게 도달하고자 애썼으나 그 무엇이라는 것 역시 하나의 가설이거나 말뚝 같은 간이역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을까? "인생을 즐긴다는 것 외에 인생에 무슨 목적이 있겠는가"라고 임어당은 말했지만 즐긴다는 그것에도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끔찍한 시간의 무게를 느끼지 않기 위해서인가. 보들레르를 비롯한 프랑스의 작가들은 밤마다 생 루이 섬에 있는 로죙관에 모여 환각파티를 벌였다. 신비주의적인 의식의 확장과 행복을 맛보려고 그들은 해시시 반죽을 보였다. 인공人工낙원을 꿈꾸었으나 종내에는 정신병원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환각 상태에서도 그들은 되물었다고 한다.
"이것이 행복인가, 고통인가?" 그러고 보면 우리가 살아서 즐길 수 있는 환락의 종류도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생계를 위해 안경알을 갈던 스피노자는 심심하면 거미를 잡아 싸움을 시켜 놓고 구경했다고 한다. 재미있었을까? 그의 수척한 얼굴이 히죽이 웃을 것만 같다. 달리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까?
재미있지도 않은 세상, 살아서 좋은가를 되묻는 사람이 저 상점 유리창 안으로 지나간다. 힐끗 쳐다보니 무성 영화의 한 컷 같다. 쉴 겸 해서 나는 사람들의 통행이 잘 내다보이는 찻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차를 주문하고 사람들 틈에 할 일 없이 앉아 본다. 저승을 넘나드는 흑인 올훼의 거울 속에 내가 들어 있는 것 같다.
어김없이 오후만 되면 고급 레스토랑 창가에 와서 자리를 잡는 노인이 생각난다. 이 독거노인은 서너 시간씩 창밖을 내다보면서 사람들을 구경하며 무료한 시간을 죽였다. 인간의 삶은 다층적 고뇌이며 철저하게 불행한 상태라고 생각한 쇼펜하우어였다. 인간사를 그는 고난의 역사로 규정지었다. 나도 그와 의견을 달리하지 않는다. 인생은 고통을 체험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던가 싶다. 내던져진 하나의 불안한 존재. 그들이 바쁘게 오간다. 오고 가는 통인을 무연히 바라본다.
갈 때는 가는 것이 다인 것처럼 가는 일에만 몰두하지만, 반드시 떠난 곳으로 돌아와야 하는 법, 쓸데없는 노릇인 줄 알면서도 괜히 신발만 닳게 할 뿐인, 이것이 산다는 것이 아닐까. 달리 무엇을 더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나는 이따금씩 상반된 작가들의 자의식을 짚어 볼 때가 더러 있다. 자신의 폐병이 무거워졌을 때, "모든 것에서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는 카프카와 "슬프게도 병이 낫기를 바라지 않는/ 이상한 마음 나에게 있네./ 이 무슨 마음인가?"라고 되묻는 이시카와 다쿠보쿠. 상반된 이런 심리가 또한 내게도 있으니, 참으로 알 수 없는 다층적인 인간의 내면에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조계사 쪽으로 빠지는 인사동 사거리 우측에는 '아자亞字방'이 있었다. 자그마한 한옥에 초정艸丁김상옥 시인이 부인과 함께 가게를 지켰다. 신년이면 연하장에 글씨를 받겠다고 모인 문인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초정 선생은 재주가 많은 분이었다. 사거리에서 직진하면 내가 다니던 종로구청 청사가 있었고 건너편에 종로도서관이 있어서 점심시간이면 책을 반납하러 다녔다.
그 무렵, 김구용 선생이 가끔 사무실에 들러 주셨는데 차를 대접하러 올라갔던 그 이층 다방은 보이지 않는다. 그분들은 모두 고인이 되셨다.
나는 지금 기다란 시간의 축 위에 그림자를 늘이며 혼자 서 있다. "죄수들에게는 시간 그 자체가 진행하는 것이 아니고 회전할 뿐"이라는 어느 작가의 말이 요즘 절실하게 와닿는다. 산다는 것은 정말 인생이라는 하나의 축 위를 맴도는 것처럼 생각된다. 한껏 멀리 달려온 것 같은데 발밑은 기껏 제자리걸음. 그리하여 우리는 언 땅의 팽이처럼 고난이라는 하나의 축 위를 회전할 뿐인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 제풀에 멈추어 서고 말 테지.
멈춤으로 가는 동안 세탁기에서처럼 잦아드는 속도감의 여진이 몸으로 느껴진다. 눈도 전 같지 않다. 가난한 서생에게 간편簡便한 즐거움이란 책 보는 일이건만 세월은 그마저도 허락지 않는다.
만년에 시력을 잃은 주자朱子는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흩어진 마음을 수습할 수가 있고, 눈앞의 외계 사물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니 좀 더 빨리 장님이 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지만, 그런 경지에도 못 미치고 보니 엉거주춤 그 경계선에 걸쳐 있을 뿐이다. 책장을 덮고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할 일이 별반 없는 것 같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 되기를 꼽아본다.
그러나 나는 다만 창밖 보행자들의 멍하니 바라보며 쇼펜하우어처럼 앉아 있다. 전인前人의 답습, 이것도 인생인 것 같다. 다시 이 의자에 앉을 사람은 누구일까? 이렇게 지나가는 인사동 사람들 중에 '하나일 뿐인 나'라고 적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