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신작 영화 '물 안에서'를 어느 여인과 함께 보았다. 우리 두 사람을 비롯해 관객은 딱 네 사람이었다. 일요일인데도 그랬다. 다들 봄나들이를 갔겠지.
우리가 영화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영화가 지리멸렬한 우리 인생에 잠시나마 어떤 질서나 의미를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승전결의 줄거리나 플롯, 캐릭터가 하는 기능이 그것이다. 실제 인생에 기승전결의 줄거리나 플롯이 있을 리는 만무함에도 불구하고 잠시나마 그런 착각을 주는 것이다. 관객은 잠시나마 등장 인물에 자신을 동일시하고 영화에 몰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이 갖는 지리멸렬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역설적인 전략을 취하는 영화들도 있다. 나는 홍상수 영화는 후자에 속한다고 본다. 더우기 이번 영화 '물 안에서'는 극단적으로 그런 전략을 택한 영화라고 보인다. 아예 스크린에 비친 화면 자체가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안 가 촛점이 흐릿한 아웃 포커스로 거의 일관했기 때문이다. 감독은 마치 우리가 영화를 보는 것을 방해하려는 듯이 보였다. 캐릭터들도 모호하고 생뚱맞기는 마찬가지. 자신의 창조성(?)을 시험해 보려는 영화 학도가 저예산으로 단편 영화를 찍으려고 동창생 둘을 데리고 제주도에 민박을 한다. 사전 각본도 없고 영화를 찍으려는 목적도 불분명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모든 것이 '물 안에서'처럼 흐릿하다. 영화를 보면서는 나는 이런 생각을 분명하게 하지는 못했다. 제목과의 연관성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원래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 일체의 사전 정보나 자료를 찾아보지 않는 편인데 영화를 보고난 후 그런 것을 대충 찾아보고 비로소 깨달은 점이 많았다. 홍상수 영화는 소위 '입소문'으로 이해되는 측면이 많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ㅎㅎ 인터넷에 등재되어 있는 영화의 감상문 중에 내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글은 '물 안에서'가 어쩌면 죽은 사람의 꿈을그린 영화가 아닌가 하는 점을 지적한 글이었다. 그럴 듯하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영상 자체가 마치 물 속에서처럼 흐릿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갖는 의미 또한 섬뜩하다. 영화는 마지막에 주인공이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가 나오지 않는 장면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그것이 주인공이 찍는 영화의 한 장면인지 실제의 장면인지도 불분명하다. 영화는 어쩌면 비로소 끝장면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자신을 지우면서 시작하는, 아직 찍지 않은 영화인지도.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불교의 화두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ㅡ"부모도 없고 태어나기도 전의 본래 모습"ㅡ을 생각나게 한다. 무릇 모든 존재가 그렇듯이, 이 영화의 "본래면목'은 무엇일까? 영화는 등장 인물들이 나누는 대사에서 분명한 단서를 짓기도 어렵다. 영화는 극단적으로 관객에게 '해독'을 요구하는 것 같다. 물의 안과 밖에서.
첫댓글 ㅎ 감상하여야 할 영화가 한 편 늘었네요.
적우 님의 글을 비추어 보며
기회가 되는대로 꼭 접해 보겠습니다.
많이 당황하실 겁니다.
그러나 홍상수의 영화는 보는 영화라기보다는 읽는 영화이고 설치 미술 같은 현대 미술의 조류와 같은 선상에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적우(온라인) 적우 님이 글에 영화는 대부분 찾아 감상하곤 합니다.
넷플릭스 추천 영화를 포함해서요.
아 ~ 좀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 많은가 보네요.
ㅎ 적우 님 글 읽었으니
다소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동감입니다
홍상수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고
마치 누구의 인생을 다 보고 하는 이야기 같아서 참 동가믜되었구요
아가씨를 비롯 흥미가 있는 작품들이었는데요
물안에서는 새로운 시도 처럼보이네요~
기회되는대로 함 찾아볼수있으면 합니다
포스팅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