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정에 대한 예화
▣ 집으로
집으로...
참으로 따뜻한 말입니다. 팔십여 일 집 떠나 병원 병실에서 생사의 기로를 수없이 오고가며
수많은 고비를 용기 있게 이겨 내신 어머니께서 드디어 오늘 집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짜아잔~
대문이 열리니 오색 풍선과 함께 "할머님 퇴원 축하해요"
모처럼 식구들 많이 모여 왁자지껄 사람 사는 것 같습니다.
- 장상식의《청어를 먹던 날 아침》중에서 -
* 따뜻하고 다복한 집의 풍경이 그려집니다. 오랜 투병 끝에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할머니)의 건강한 얼굴, 맑고 환한 표정도 눈에 선합니다. 아무리 춥고 아파도 돌아갈 집이 있으면 견딜 수 있습니다. 살 수 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이 행복입니다. 집이 곧 작은 천국이며 사랑과 기쁨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살고 싶은 집
성경공부 모임에서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어떤 집인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한 500평쯤 되는 텃밭이 딸린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다. 침실과 화장실이 두 개씩에 커다란 거실이 있는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 건강에 좋은 황토 벽돌로 아담하게 지은 현대식 집에서 살고 싶다. 오두막이라도 좋으니 내 이름으로 등기된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 각자 자기가 꿈꾸는 집에 대해서 신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집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아빠가 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요. 요즘 들어 더욱 아빠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들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 집사님은 남편을 사별하고 혼자서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과 살고 있거든요.
잠언 15장에서 솔로몬은 '많은 돈을 들여 지은 멋진 집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더 복되다'고 했습니다.(16절) '채소를 먹으면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고기를 먹으며 미워하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17절) '아이들은 부모를 존경하고 부모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집이 천국'이라 했습니다.(20절)
자, 이제 다시 한 번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어떤 집인가?' 하는 질문에 대답해 보시렵니까?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고, 아이들이 있고, 가족들이 서로 사랑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싶어하는 집에서 이미 살고 있는 것 아닌가요?
ⓒ최용우
▣ 담이 없는 집
집을 지을 때 사람들은 높거나 낮거나 담을 쌓지만 더러는 담이 없는 집이 있다. 시골 산기슭 마을이나 달동네 같은 곳 울타리도 담장도 없이 밤이면 불빛과 함께 방안의 말소리가 오순도순 새어나오는 집이 더욱 행복해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까마득히 높은 담장에 가시철망을 쳐놓고도 그것도 못 미더워 이중 삼중의 장치까지 하고 사는 사람들은 담장을 높이 쌓는다는 것이 나를 가두는 일임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담장이 있다. 내 마음의 빗장을 열고 불빛과 말소리를 이웃에 들리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음을 깊이 감추고 빗장을 열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나의 담장을 먼저 허무는 일이 이웃의 담장을 허무는 일인 것을 왜 모르고 사는 것일까? 담장이 없는 집이 되자 누구든 내 집에 들어서게 하고 나도 밖으로 쉽게 나갈 수 있는 마음의 담장을 허물고 살자 마음의 빗장을 풀어 활짝 열어 제치자
- 김영진 <사랑과 희망의 노래> 중에서
▣ 황금집
한 가난한 소년이 일을 마치고 집에 올 때마다 멀리 강 건너편에 있는 집이 황금유리로 번쩍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소년은 생각했습니다. "야, 저 황금유리집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저 집에 가보고 싶구나." 그러면서 자신의 처지를 보면 "비참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소년이 큰 결심을 하고 그 "황금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집과 유리창은 황금이 아니었습니다. 창이 많은 그 집은 노을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날 뿐이었습니다. 소년이 '허무한 확인'을 하고 멀리 있는 자신의 집을 보았을 때 자신의 집도 노을을 받아 황금빛으로 번쩍이고 있었습니다. 남의 집 잔디가 더 파랗게 보이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행복은 돈, 권세, 명예 등의 조건에 의해서 좌우될 것이라 생각하고 그 뒤를 좇아가려 애쓰나 행복의 자리는 결코 그런 외적인 조건에 있지 않습니다. 행복은 바로 우리의 신앙과 마음속에서 창조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행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시127:1-2, 잠8:18)
▣ 집 이야기
어느 날 한 성도님의 가정을 심방하였습니다. 예배를 다 드린 후 성도님의 눈을 보니 눈물이 고였습니다. 무언가 모르지만 감정은 억제되지 못하고 눈물로 응어리져 흘러나왔습니다. 사정은 알고 보니 집을 이사해야만 할 형편이었습니다. 살고 있는 집이 그리 큰 집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집주인이 전세 값을 터무니없이 올려달라고 해 그 집을 비워 주어야 만 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어느 해인가 전세 파동으로 인하여 교회에 다니시는 집사님 일가족이 유서를 남겨놓고 연탄을 피워놓고 동반 자살한 기사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섬기고 있던 교회에서 우리 교회 성도만큼은 집값을 무리하게 올려 받지 말자고 설득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미세한 식물도 제 뿌리 뻗을 곳이 있고 하루 사는 곤충이나 아무리 추하게 사는 동물도 거할 집 걱정 없이 사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으로 해결되어야할 집 때문에 참으로 많은 걱정을 하고 그것을 얻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성도님의 눈물을 보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돈이 있으면 좀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목사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은 그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 새벽 기도 시간 내내 그 성도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새벽 설교가 끝나고 마침 기도를 하면서도 이사해야할 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 성도님 중에 또 한 분이 집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었을 때였으므로 그 기도제목이 한 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이면 차를 타고 운전을 하면서도 "하나님 그 성도님들에게 편안히 거할 수 있는 집을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곤 했습니다. 기도하기 시작한 지 거의 한 달이 지난 어느날 전도사님으로부터 그 성도님이 집을 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가 집을 산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기뻤습니다. 물론 그 성도님이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하였을 것이고 주변의 돕는 손길을 통하여 집을 살 수 있었을 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님을 위해 기도한 목사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새벽마다 때로는 달리는 차속에서 기도한 기도의 응답으로 느껴졌습니다. 얼마 후 또 한 분의 성도님도 집을 샀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쁨으로 방문하여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아마 그 감사와 감격은 기도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을 것입니다. 언젠가 회사 문제로 아주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님을 위해 기도원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IMF 경제 위기 속에서 회사는 날로 어려워 졌고 회사는 부도 위기에 처했습니다. 집사님은 틈만 있으면 금식하며 기도를 하였고 그 어려운 가운데서 희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바라보았습니다. 옆에서 그 부부 집사님의 고통을 지켜보며 도와주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해보았습니다. 도울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습니다. 별 수 없이 한 주간 그 가정을 위해 산에 올라가 금식하며 기도해야 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기도원에서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한 3일이 지난 후 지금은 유학을 간 전도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모든 것이 잘 될 것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몸은 피곤하고 지쳤지만 그 말 한마디를 들으니까 마음 속에서 감사와 기쁨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래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가 보다"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더욱 열심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왔는데 문제는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집사님의 가정은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심방하여 말씀을 통하여 위로하기도 하고 설교하며 어떤 경우일지라도 소망을 잃지 않도록 권면하였습니다. 새벽마다 일년이 넘도록 집사님의 가정을 위하여 거의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정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경매가 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거리에 내몰려야만 형편이 되었습니다.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께 떼를 쓰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고통스런 마음으로 기도하던 어느 날 집사님께서 집을 샀다고 했습니다. 돈이 있어서 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전 집보다 더 큰 평수였습니다. 집사님 부부는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모르지만 저는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이고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사하여 예배드리던 날 제 집은 아니지만 감격과 감사와 기쁨이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났습니다. 아마 그 감정은 그 가정을 위해 기도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행복이었을 것입니다. 최근 일입니다. 어느 집사님이 집 팔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걱정하시는 집사님에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머지않아 때가 되면 좋은 길을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말을 한지 얼마 후 새벽 설교를 마치고 마침기도를 하는데 그 집사님의 이름을 거명하여 기도하고 싶었습니다. 그 집사님의 자존감을 위해 그동안 기도하면서 한 번도 그 집사님의 집문제를 공개적으로 기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공개적으로 기도하고 싶었습니다. 며칠 후 집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해결된 날은 바로 그 날이었습니다. 기도 응답의 기쁨, 그 기쁨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기도하는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특권이며 감격일 것입니다.
집 이야기/ 김필곤 목사
▣ 시127편<집을 세우는 자>
인간이 가진 가장 진한 열망의 하나는 행복한 가정을 세워가는 일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직장에서의 땀 흘리는 수고의 가장 큰 이유도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가정은 우리의 행복이 출발하는 장소이고 우리의 행복을 결산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성경은 천국을 가르쳐 우리의 영원한 집이라고 말합니다. 가정은 이 땅에서의 우리의 집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정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흔들리는 가정들을 다시 세우기 위한 여러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어떤 방안은 사회학적인 것이고 어떤 방안은 심리학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신학적인 방안을 제시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다시 가정의 건축가로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지시하심을 따라 다시 가정생활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집을 지을 때 설계자와 건축가가 엄격하게 구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서구적인 건축문화의 출발점이었던 로마에서는 설계자가 곧 건축가이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이상적이 아니겠습니까? 훌륭한 건축가는 설계자의 의도를 잘 드러내어 실현하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설계자가 건축을 지휘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건축 방안이 될 것입니다.
현대 가정의 모든 비극의 출발점은 우리의 가정에서 하나님을 추방한 것입니다. 더 이상 그분은 가정의 설계자도 아니며 가정의 건축가는 더 더욱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우리는 다시 하나님이 우리 가정의 설계자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분이 가정을 설계하시고 만드셨습니다. 이제 그분의 뜻을 따라 부부생활을 하고 자녀양육 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 기도: 가정의 설계자이신 하나님, 당신의 뜻을 따라 우리들의 집을 세워가게 하옵소서. 아-멘
/이동원 목사
▣ 돌아 가야할 집
조선 초기 수양대군에 의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육신 중 한사람인 성삼문이 수레를 타고 형장으로 가면서 읊은 시이다.
擊鼓催人命(격고최인명)하니
回頭日欲斜(회두일욕사)라
黃泉無一店(황천무일점)하니
今夜宿誰家(금야숙수가)하리오
북소리는 사람 목숨을 재촉하는데
돌아보니 해도 지고 있구나
황천에는 주막 한 곳 없다하니
오늘밤은 뉘 집에서 잘거나
세상의 모든 인연을 뒤로하고 떠나는 사람들 그러나 가야할 집이 없다면 과연 얼마나 불안하고 절망일까? 미련한 듯 조물주에 자신을 맡겨보는 것도 크게 손해 보는 일은 아닐진대 늙어가는 길에 아쉬움을 덜어보는 것은 삶의 위로가 아닐는지요.
김인환 / 총신대학교 총장
▣ 사람은 집과 같습니다.
사람은 집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도 자신을 가리키는 여러 가지 이름을 지을 때
더러 한자(漢子) 집 '당(堂)' 자를 끝에 붙이기도 했나 봅니다. 옛 애굽의 임금을 가리키는 '바로'('파라오')라는 말도 '집'이란 뜻을 품고 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자라서 어른이 되면 생업을 택하고 스스로 가정을 이루어 자기 식구들이 사는 데 조금이라도 더 편하도록 될 수 있는 대로 넓고도 좋은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자기를 만나는 사람들이 안락함을 느끼도록 정작 자신을 끊임없이 넓히고 아름답게 가꾸고 다듬는 일은 소홀히 하기가 쉬습니다. 그리하여 때로 자신이 가족과 더불어 좋은 집에 살지만 자기 자신이라는 집은 전혀 그렇지 못한 수가 많습니다. 힘들여 마련한 집을 계속 아름답고 깨끗하게 관리해야 그 집에 사는 내 가족과 그 집을 드나드는 부모형제자매 친척 친구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내 자신이라는 집도 그렇게 관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이라는 집의 껍데기를 가꾸고 다듬기 위해서는 애씁니다만 그 속 알맹이를 아름답게 하는 데에는 그렇지 못한 수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 자신이라는 집의 겉과 속을 나날이 더 넓히고 잘 관리하고 유지하는 것은 내 힘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 집은 본디 내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이 손질해 주셔야 넓힐 수 있고 하나님이 잘 다듬어주셔야 아름답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마음 놓고 드나들며 이 집을 아름답게 가꾸시도록 늘 기다리고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고린도교회 신자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라고 말했나 봅니다.
<박동현 교수/장신대학교 구약학>
▣ 호텔과 집
세상 만물을 바라보는 두 개의 관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호텔이요 하나는 집입니다. 호텔은 임시 머물고 쓰고 버리는 공간입니다. 집은 항시 머물고 쉬고 닦고 유지하는 공간입니다. 현대인들은 이 세상 우주를 호텔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입니다. 그러다가는 인간 자신이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주연
▣ 지금 짓는 집이 곧 내 집입니다.
어느 늙은 목수가 기력이 쇠하여 일을 그만둘 결심을 하고 사장을 찾아갔다.
"집을 떠나 외지에서 너무 오랫동안 일했습니다. 이젠 늙어서 건축 일을 하기도 힘들고…….
집에 돌아가서 아내와 도란도란 여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사장은 솜씨 좋은 목수를 보내기가 아쉬워 몇 차례 더 설득해보았지만 목수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결국 사장은 어쩔 수 없이 목수의 뜻을 받아들이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 집 짓는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목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을 하는 동안 다른 일꾼들은 목수의 마음이 이미 고향 집에 가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목수는 목재를 고를 때도 예전처럼 엄격하게 따져보지 않았고, 목재를 다듬을 때도 예전의 솜씨를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장은 목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 후 집이 완공되었다. 사장이 목수를 불러 말했다. "이 집은 바로 당신 거예요.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목수는 사장의 말을 듣고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꿈을 꾸는 듯 멍한 기분이었다.
- 열린편지/허샨/인생을 움직이는 천년의 철학 중에서-
▣ 천국의 집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당도하자 한 천사가 그 사람이 살 집으로 안내했다. 크고 아름다운 저택들을 지나며 그 사람은 그 중 하나가 자기에게 천국에서 살 집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그 집들을 그냥 지나쳐 변두리에 있는 집앞에 이르르자 “저것이 네 집이다.” 안내하는 천사가 이렇게 말하자 그 사람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집은 오두막보다 나을 것이 없는 허름하고 곧 쓰러질 것 같은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화를 내며 소리쳤다. “뭐라고요? 저 집이라구요? 난 저기서는 살 수 없어요.”
그러자 천사는 “안됐구나, 하지만 네가 천국으로 올려보낸 자재들로는 저 집밖에 지을 수가 없었다."
▣ 하나님의 집 사탄의 집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체션트 칼리지 학장이었던 모건 박사의 이야기다. “제가 결혼하자마자 아버지께서 제 집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셨습니다. 저희 부부는 방이며 거실이며 주방을 다 보여드렸습니다. 이곳 저곳을 둘러보신 아버지께서 큰 소리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집이 크고 좋구나. 하지만 이곳 저곳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네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지, 사탄에게 속한 사람인지 종잡을 수가 없구나’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집안 이곳 저곳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 말씀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마음을 고쳐 먹고 방마다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그림을 걸고 장식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삶을 통해 드러나고 확인된다. 그리고 신앙과 삶은 환경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이라면 소장품이나 장식에서부터 차별화되어야 한다. 집안 분위기가 신앙생활과 동떨어진 것이라면 문제가 된다. 그리스도인은 실내장식과 공간분위기부터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둘 것은 두고 치울 것은 치워야 한다.
/박종순 목사(충신교회)
▣ 노인과 오두막집
한 사막에 조그만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노인이 있었다. 그곳에는 맑은 샘물과 우거진 야자수가 있었는데, 그 노인은 나그네들에게 시원한 샘물을 퍼 주며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그네들은 물을 얻어먹고 노인에게 몇 푼의 동전을 건네주었다. 처음에 노인은 이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금고에 동전이 쌓여가면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노인은 어느 사이엔가 돈을 모으는 것에 몰입했다. 그리고 샘물을 철저하게 관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나그네들에게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어느 날 노인은 샘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잎이 무성한 야자수가 샘물을 흡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야자수를 몽땅 잘라 버렸다. 결국 샘물은 말라 버렸다. 야자수가 만들어낸 그늘도 없어졌다. 그렇게 되자 아무도 노인의 오두막집을 찾지 않았다. 노인은 뜨거운 햇볕을 견디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과욕은 죽음을 낳는다. 인간은 남을 섬기는 데서 진정한 행복을 얻도록 창조되었다. 행복하고 싶거든 먼저 남을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한다.
- 행복의 문을 여는 193가지 이야기 / 임한창
▣ 오두막과 대저택
밴 다이크의 소설 `대저택'에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웅장한 집에서 살던 한 부자가 죽어서 하늘나라에 올라갔다. 그런데 자신의 집은 비가 새는 허름한 오두막이었다. 마침 그 옆에 으리으리한 대저택이 건축되고 있었다. 부자가 천사에게 물었다. 도대체 저 웅장한 집은 누구의 것입니까 당신의 옆집에 사는 가난한 의사가 살 집입니다
부자는 깜짝 놀랐다. 그 의사는 동네에서 조그마한 병원을 운영하는 보잘것 없는 사람이었다. 의사는 마을 사람들의 질병을 무료로 치료하느라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천사는 놀란 표정을 짓는 부자를 향해 말했다. 땅에서 쌓은 선행들은 모두 하늘나라로 배달됩니다. 당신의 선행은 오두막의 지붕을 씌우기에도 부족할 정도예요. 당신은 자신을 위해서만 살았어요. 그러나 저 의사는 평생동안 남에게 사랑을 베풀었어요. 그가 베푼 사랑은 대저택을 짓고도 남을 분량입니다.
사랑은 실천이다. 사랑은 희생이다. 우리가 베푼 사랑은 반드시 하늘에 배달된다.
/임한창
▣ 집을 잘 짓는 지혜
우리 모두는 집을 짓고 삽니다. 육신을 위해 집을 짓고 살면서 동시에 영혼을 위한 집도 짓습니다. ‘영혼을 위한 집을 짓는다’라는 것은 ‘인격’이 집을 짓는 것이며 ‘성품’이 집을 짓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어떤 인격을 가지고 있느냐, 어떤 성품을 가지고 있느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인격과 성품이 바로 그 사람 전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재료를 똑같이 주셨습니다. 집을 짓는 데 필요한 철근, 목재, 시멘트, 타일, 유리 등 모든 것을 동일하게 주셨습니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두 사람이 집을 짓기 시작했는데, 1년 후에 큰 차이가 났습니다. 한 사람은 그 재료를 잘 이용해서 쓸모 있고 아름답게 집을 지었으나, 다른 한 사람은 집을 짓지 못하고 재료를 그대로 방치한 것입니다. 세월이 지났지만 그 사람은 지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는 나이를 먹어도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예전과 똑같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또한 건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설계도입니다. 집을 지을 때 절대로 설계비를 깎으면 안됩니다. 또한 설계도를 무시하고 시공하면 안됩니다. 설계도대로 해야 제대로 된 집을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복된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 행복의 시작 예수 그리스도 / 하용조
▣ 사람을 만드는 집
어느 날 소크라테스는 골목을 지나다가 한 청년을 만나 길을 물었다고 합니다. 신발을 만드는 가게를 물어도 잘 가르쳐주고. 옷장을 만드는 집 등 이것저것 여러 가지 것을 다 물어보아도 아주 상세히 길을 가르쳐 주더랍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사람을 만드는 집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는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더랍니다. 이는 물건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상세하게 알고 있으나.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등한시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하나의 풍자입니다. 그렇듯이 양말 한 켤레나 돈 천원. 만원을 잃어버리면 크게 신경을 쓰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에 둔감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소중함이 절실히 요망됩니다. 우리는 근대화와 경제건설의 경쟁적 추세에서 사람낚는 일보다 고기잡는 일에 너무나 많은 것을 유보하고 망각하고 있습니다. 생활비를 얻기 위하여 사람짓기를 포기한 것처럼 분주하게만 살아갈 따름입니다. 예쁜 옷을 마련하기 위하여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자신의 얼굴을 잃어 버렸다는 슬픈 이야기처럼 우리는 삶의 중심이 흐트러진 세상에서 갈팡질팡 생활하고 있습니다. 고기잡이도. 장사도. 과학기술도 엄밀히 말해서 생활의 수단이지 목적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러자 그들은 가족과 생활터전을 버리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 나섰습니다. 어부에게 있어서 물고기는 곧 돈이며 생활인에게 있어서 돈은 마치 전부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생활방식을 바꾸었습니다. 우리도 생활 전체에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고 사람낚는 일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어머니의 뱃속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게 누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하자. "너는 지금 네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죽을 것이다. 그것을 우리 인생에서는 태어난다고 한단다." 이 태아는 이렇게 항의할는지 모른다. "싫어요. 난 여기가 좋아요. 먹을 것도 있지요. 따뜻하지요. 사랑받지요. 보호받지요. 너무 편하고 좋아요. 여기서 나가는 건 싫어요."
그러나 태아는 자궁 속에서 예정된 시간을 끝내고 출산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에 나오게 된다. 그러면 아기는 아름다운 엄마의 사랑스런 두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사랑스런 엄마의 품에 안기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 참 좋구나. 세상이라고 부르는 이곳이 내가 태어나기 전의 그 곳보다 더 좋아. 이곳 생활이 옛날보다 훨씬 좋아." 이렇게 해서 행복한 유년시절이 흘러가고 아이는 청년이 되어 보람차고 의욕적인 젊은 시절을 보내며 성인이 된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고 노화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의 위협을 받는다. 그때 "나는 죽고 싶지 않아. 난 여기가 좋아"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의 앞에는 어머니보다 더 아름다운 얼굴이 그를 내려다보고 계신다. 그는 영원하신 주님의 품에 안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은 복이 있다.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재국)
▣ 마음을 영원의 집으로
구약의 성막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 주시던 곳이며, 동시에 그들의 죄를 씻기 위해 제사를 드리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막은 궁극적으로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성막은 곧 천년만년 살고 싶다던 우리의 초가집과 같습니다. 영생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그 성막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화려하게 지어진 단단한 건물이 아니라 어디든 진실로 믿는 자들이 있는 곳이 교회가 됩니다. 진짜 교회는 우리 몸 안에 있습니다. 집이 크고 좋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시간을 늘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아흔아홉 칸짜리 좋은 집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세 칸밖에 안 되어도 영원히 살 수 있는 집을, 마음의 집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낡은 집의 표면을 리모델링하는 데만 관심을 갖습니다. 하지만 영원의 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허망하지요. 어마어마한 집을 지어 놓으면 사람들이 '와!' 하지만 100년 후나 1,000년 후를 생각해 보십시오. 초가집과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집입니다. 우리의 몸집이 집으로, 그 집이 점점 더 넓어져서 영원의 집이 되고, 그것이 성전(성막)이 되어 가려면 우리의 몸집 하나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먼저 채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어령
▣ 가장 소중한 가정
세계적인 자동차 제작회사 포드의 창설자이자 자동차 왕으로 불리는 헨리 포드는 사업에 성공한 뒤, 처음으로 자신의 집을 지었습니다. 그 집은 자신이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때 뛰어 놀던 밭 가운데 지은 작은 집이었습니다.
어느 날 주택이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한 그의 집에 방문한 한 부하직원은 물었습니다.
“사장님의 저택답게 다시 건축하시면 어떻습니까?”
그러자 헨리 포드는 “건물을 세우는 것은 문제가 아닐세. 그 속에 가정을 세우는 것이 문제지”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또한 그가 80세 생일 만찬에서 “당신이 이룬 일들 가운데 가장 크고 중요하게 여기는 일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바로 나의 ‘가정’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쁜 삶속에서 가정을 소홀히 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가정을 소홀히 하다보면 직장뿐만 아니라 나라까지도 안정을 찾을 수 없게 됩니다. 그만큼 가정은 너무나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아름다운 가정, 그리스도가 주인 되시는 믿음의 가정을 세우십시오.
* 기도: 주님!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
* 묵상: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까?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모래위에 쌓은 집
본문 : 마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미국에 프랭크라는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무일푼으로 시작해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는 기부가로 지역 신문에는 여러 차례 훌륭한 기업가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지역의 학생들을 위한 장학재단도 설립했고 주민들을 위한 행사에는 언제나 앞장서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업가는 자신이 번 돈으로 사회에 좋은 일을 하고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랭크에겐 모자란 것이 딱 한 가지 있었는데 바로 신앙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성공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했고 자신의 노력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사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은 결과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지만 결국엔 모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갑작스레 가정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들은 마약 중독자가 되어 감옥에 갔고 딸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아내마저 급작스럽게 터진 사고들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프랭크를 떠났습니다. 프랭크는 결국 자신의 지금껏 노력이 모래위에 집을 지으려고 했던 것임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인생에선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빠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지반입니다. 지반이 약하면 아무리 호화로운 집이라도 금방 무너지고 맙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굳건한 반석이십니다. 굳건한 반석위에 집을 지으십시오.
* 기도: 주님! 무너지지 않는 반석위에 집을 세우는 지혜로운 자가 되게 하소서!
* 묵상: 나의 노력보다 말씀의 실천을 먼저 생각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 찬송가 438장(통495장)
1.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3.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후렴: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 가정의 햇살
짐과 도나 부부는 딸들을 데리고 바캉스를 갔다가 돌아왔다. 두 살짜리 딸이 보채고 짜증을 부리면서 엄마를 얼마나 피곤하게 했는지 모처럼의 바캉스가 도나에게는 즐거움이 되지 못했다. 이를 알아챈 남편은 아내를 위로해 주기 위해 함께 시골 마을로 갔다. 점심을 먹기 전에 곁에 있는 공동묘지 구역에서 산책을 했는데, 도나의 눈길이 무심코 한 묘비에 멈췄다. 묘비에는 '그녀는 우리 가정의 햇살이었다 '(SHE WAS THE SUNSHINE OF OUR HOME)라고 쓰여 있었다. 도나는 식사를 하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내 인생을 여기서 끝내면 딸들이 내 비석에 무엇을 쓸까?' 그때부터 도나는 가정에서 최선을 다해 가정의 햇살이 되기로 각오했다. 도나가 이런 마음을 먹은 다음부터 남은 바캉스는 100퍼센트 즐거운 휴가가 되었다. 도나는 가족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바꾼 것이다.
아내로서 일상의 일에 대한 태도는 어떤가? 남편의 귀가 시간을 고대하는 아내인가? 자식들에 대한 어머니로서의 태도는 어떤가? 당신의 '실내 장식'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가?
아내의 온유하고 안정된 태도는 가정의 아름다운 '실내 장식'이다. 매력은 인위적이고 외부적은 것이나, 참된 아름다움은 실제적이고 내면적인 것이다. 외적 매력은 갈수록 줄지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참된 아름다움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놀라워진다. 속사람의 아름다움을 개발하는 여인은 싸구려 외형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값(prices)이 아니라 가치(values)에 관심을 두신다.
「시련을 너끈히 이긴다」/ 권성수
* 금언: 하나님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사랑으로 행한 일을 기뻐하신다.- D, L, 무디 -
▣ 가정의 가치
본문 : 딛 1:11
‘그들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도다’
주식회사 대교의 대표이사였던 강학중 씨는 나이 마흔에 이미 건실한 기업의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성공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주위에선 그를 ‘경영의 귀재’라고 부르며 앞으로의 활약에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추켜세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흔이 되던 해에 홀연히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말리며 물었습니다.
“아니, 도대체 이렇게 잘나가던 사업을 왜 포기하십니까?”
“지금까지 제 인생의 최우선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가정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정은 그만한 투자를 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곳입니다.”
성공 가도의 끝에서 가정의 소중함을 배운 강 씨는 일을 그만둔 후 가족들과 함께 도보여행을 떠난 뒤 돌아와 가정연구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이 세상을 떠나기 전, 가정과 아이들에게 충실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 했습니다. 가정은 밭과 같습니다. 가족들이 어떤 씨앗을 심느냐에 따라 모두 다른 결과가 나타납니다. 가정은 물질이 없어서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없어서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사랑의 씨앗을 심음으로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투자하십시오.
* 기도: 주님! 행복한 가정은 천국과도 같은 행복임을 알게 하소서!
* 묵상: 다른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가정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가장 소중한 보물
존 하워드 페인은 1852년, 알제리에서 사망했습니다. 31년 만에 그의 시신이 군함으로 뉴욕에 돌아오게 되던 날 항구에는 미국 대통령, 국무위원, 상원위원들과 수많은 국민들이 나와 모자를 벗고 조의를 표했다고 합니다. 과연 그는 어떤 업적으로 추앙받았던 것일까요? 그것은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노래를 작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 뿐이리 이 노래는 전 세계적으로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 곳인가를 일깨워주었습니다. 가정은 행복의 창고입니다. 우리가 애써 가꾸고 소중하게 지켜야 할 보물. 그것은 바로 가정입니다.
/글_류중현 | 지하철사랑의편지 운영자
▣ 이것 하나만으로도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을 언제라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하나가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과 언제라도 전화를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가 나에게 얼마나 큰 즐거움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내가 우리 가족 중 한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면 곧 답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하나가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에게 언제라도 선물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 하나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가족과 언제라도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에게 나의 아픔을 낱낱이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출처 : 정용철 《마음이 쉬는 의자》중에서
▣ 천국과 지옥
이 세상에서 천국과 가장 흡사한 것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부모와 자녀가 주님과 서로를 위해서 평화와 사랑 가운데 함께 살고 있는 가정입니다. 이 세상에서 지옥과 가장 흡사한 것은 부모들이 싸우고 말다툼하며 자녀들을 악과 악한 세력에 내버려 두는,그리고 죄와 부정으로 손상된 경건치 못한 가정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작고 완전한 사회구성 단위를 가정으로 만든 것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가정이 있기에 나라와 문명 그리고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가정들,즉 먼저 우리나라의 모든 부모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는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퇴보해 갈 것입니다.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믿어야 합니다.매일 성화되는 삶을 보여주는 그런 믿음이이어야 합니다.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 생동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천국입니까,아니면 지옥입니까.한번 점검해보십시오.
/김상복목사(할렐루야교회)
▣ 행복한 가정
세상에 완전한 가정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먼지 하나 없는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환경을 가지고 있어도,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그 좋은 환경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차라리 불완전한 환경 속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낫습니다.
- 김홍식의《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중에서 -
* 그래요. 완전한 가정은 없습니다. 완전한 가정을 만들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대신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는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비록 가진 것은 많지 않아도 사랑이 있고, 꿈이 있고, 내일의 희망이 있으면 그곳이 행복한 가정이고, 행복한 가정이 곧 작은 천국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행복한 가정의 비결
어느 동네에 두 집이 이웃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집은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대가족이었고, 한 집은 젊은 부부만 사는 단란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대가족을 이룬 가정은 항상 화목하여 웃음꽃이 피었는데, 부부만 사는 가정은 항상 부부싸움이 잦았습니다. 그래서 부부는 이웃집의 화목한 모습을 보고 크나큰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우리는 둘만 사는데도 매일 싸워야 하고, 이웃집은 여럿이 함께 모여 사는데도 저토록 화목한 것일까? 그래서 어느 날 젊은 부부는 과일 한 상자를 사 들고 이웃집을 찾아갔다. 다과를 나누며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댁의 가정은 대가족인데도 웃음이 떠날 줄 모르고 우리는 둘이 사는데도 매일 싸움만 하는데, 선생님 댁이 그렇게 화목하게 지내시는 비결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이웃집 주인은 대답했습니다. "아. 네! 그것은 당신네 두 분은 모두 훌륭하시고, 우리 가족은 모두 바보들이기 때문이죠!" 그 말을 들은 젊은 부부는 되물었습니다. "아니 그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그러자 그 집 주인은 말하기를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입니다. 내가 출근하다가 물을 엎질렀습니다. 그때 나는 내 아내에게 내 부주의로 물을 엎질러 미안하다고 하며 용서를 청했지요. 그랬더니 내 아내는 '아니오' 하면서 생각이 모자라 물그릇을 그곳에 놓아두었으니 자신의 잘못이라고 하며, 오히려 나에게 용서를 청했습니다. 그런데 옆에 계시던 저의 어머니께서는 '아니다, 나잇살이나 먹은 내가 그것을 보고도 그대로 두었으니 내가 잘못이다.' 하셨습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위해 바보가 되려고 하니 싸움을 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젊은부부는 이웃집의 그런 이야기를 듣고 크게 깨달아 화목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 경건한 가정
가정이야말로 축복의 근원이 될 수도 있고 타락과 불의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 로마제국의 멸망사가 남긴 교훈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도덕 불감증과 가정의 파괴였다.
로마가정들의 붕괴와 함께 역사가 무너져가는 그 마지막 황혼을 지켜보면서 한 철학자는 "애국자여 가정을 지키시오"라고 호소했으며 "신이여, 기도하는 가정을 로마에 다시 일으켜 세워주십시오"라는 기도문을 남겼다고 한다.
'하나님의 모든 진노가…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롬 1:18)
▣ 가정 행복의 비결
행복한 가정을 위한 H.L 멘켄 박사의「열 가지 비결」
- 결혼생활의 목표를 가지라
- 결혼 전에는 두 눈을 뜨고 후에는 한 눈을 감으라
- 비교당하면 비참해지고 비밀은 비극을 잉태한다
- 화를 품은 채 잠들지 말라
- 마주 보지말고 같은 방향을 보라
- 돈을 사용하는데 하나가 되라
- 입술의 30초가 가슴의 30년 (말이 그만큼 중요)
- 침실의 기쁨을 유지하라
- 서로 격려하고 신바람나게 하라. 그것은 놀라운 사랑의 묘약이다
- 기도로 하루를 열고 기도로 하루를 닫으라
▣ 홈 스위트홈
남북전쟁이 치열하던 1863년 봄 스파트실바니아에 남군과 북군이 살벌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양 진영은 전사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힘차게 군가를 불렀다. 북군 군악대가 '성조기의 노래'를 연주하자 남군은 '딕시'를 부르며 맞섰다. 잠시 후 벌어질 격전을 앞두고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그런데 갑자기 북군의 군악대가 '홈 스위트홈'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남군과 북군이 부르는 장엄한 대합창이 전장에 울려퍼졌다. 병사들은 전의를 잃고 가정을 생각했다. 양군은 24시간 휴전을 선언했다. 그리고 고향의 가족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들의 마음은 합창을 타고 벌써 고향에 가 있었던 것이다. 행복한 가정만큼 인간에게 평화와 안식을 주는 곳은 없다. 가정은 건물이 문제가 아니다. 가정을 구성하는 최상의 재료는 가족간의 사랑이다. 사랑 없는 대저택은 나무와 돌과 콘크리트의 조합일 뿐이다
▣ 가정은 어떤 곳일까
가정은 어떤 곳일까? '집'만 있고 '가정'이 없다고 하는 세태…
영국의 시인 C.스와인 (1801∼1874)의 글을 소개합니다.
"가정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어떤 것이든 애정을 느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은 마음을 기쁘게 하는 속삭임이 있는 곳입니다. 아무도 반갑게 맞이할 사람이 없는 곳을 어찌 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가정은 우리를 만나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 불행한 미국 가정
하나님께서 최초로 만든 제도가 가정이다. 가정이야말로 인간 생존의 보금자리요 행복의 안식처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가정을 갖지 못하고 있음을 본다.
세계에서 가장 문명국인 미국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면 하루에 9,077명이 태어나는데 그 중 1,282명은 사생아이고, 하루에 5,962쌍이 결혼하는데 그 중 1,986쌍이 이혼을 한다. 또 하루에 2,740명의 아이들이 가출하고, 하루 69,493명의 십대들이 성병에 감염된다. 강간은 매 8분마다, 살인은 매 27분마다, 강도는 매 78초마다 일어나며, 자동차는 매33초마다 분실된다. 그리고 2,740명의 10대 소녀들이 임신이 된다고 한다.
미국의 어느 대학 교수가 가정문제를 연구한 결과 가정의 최대 불행은 75퍼센트가 십계명중의 제 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긴 것 때문에 생긴다고 한다.
하바드 대학의 피티릿 소로킨 박사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결혼 25건중 1건이 이혼으로 끝나고 있는데 부부가 모두 그리스도인으로 매일 가정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경우, 1,015건의 결혼 중 단 1건의 이혼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이것을 보아도 행복한 가정은 주님을 그 가정의 주인으로 모셔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를 그 가정에 모시지 않고 행복을 바란다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
▣ 가정의 붕괴원인
역사학자이고 사회학자인 칼 짐머만은 1947년에 낸 ‘가족과 문명’이라는 그의 책에 현대사회에서 가정, 가족의 삶이 붕괴가 되는 원인 8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1) 결혼의 성스러움이 상실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종종 이혼으로 나타나고 있지요.
2) 결혼예식의 전통적인 의미가 상실되었다.
3) 현대사회의 여성운동의 왕성한 활동,증가를 꼽고 있습니다.
4) 일반적으로 현대사회에서 공공연하게 부모와 일반적인 권위에 대해서 경멸이 증가한다.
5) 청소년들의 탈선과 반항
6) 현대인들이 전통적인 결혼과 함께 가족 구성원들이 각각 자기의 책임을 거부한다.
7) 간통
8) 성에 대한 왜곡과 함께 성적범죄의 증가
▣ 아름다운 가정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대기업을 일으킨 뒤 고향에 조그마한 집을 한 채 지었습니다. 그 집은 대기업 총수가 살기에는 매우 작고 평범한 집이었습니다.
“이건 너무 초라하지 않나요. 호화롭지는 않더라도 생활에 불편하지는 않아야지요.” 주위 사람들은 걱정스럽게 포드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대답했습니다.
“가정은 건물이 아닙니다. 비록 작고 초라하더라도 예수님의 사랑이 넘친다면 그곳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집이지요.”
지금도 디트로이트에 있는 헨리 포드의 기념관에 가면 우리는 이런 글을 볼 수 있습니다.
“헨리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고 그의 아내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헨리 포드의 성공의 이면에는 꿈꾸는 사람과 기도하는 사람이 함께 이룬 아름다운 가정이 있었습니다.
▣ 기도의 힘으로 사는 가정
8남매를 둔 부모가 있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들은 매일 새벽 자녀들을 깨워서 가정예배를 드린 후 또 교회에 나가서 새벽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자녀들이 장로와 권사로 교회를 섬기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새벽기도를 드리기 위해 집을 나섰던 부모는 물에 흠뻑 젖어 되돌아왔다. 빙판길에 미끄러져 강물에 빠진 것이다. 옷에 고드름이 맺힐 정도로 추운 날씨였지만 이들은 몸도 녹이지 않은 채 옷만 갈아입고 다시 교회로 갔다. 자녀들의 가슴에 이런 부모의 모습이 깊이 각인됐다. 자녀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확고한 신앙적 가치관을 갖고 성장해 각 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됐으며 부모의 기도제목대로 모두 장로와 권사가 됐다. 특히 이중 한 명은 법무부 장관이 됐고 또 한 명은 제14, 15대 국회의원이 됐다. 또 한 명은 미션스쿨의 교장선생님이 됐고 또 두 명은 탄탄한 기업의 회장이 됐다. 이 가족이야기는 현 법무부 장관인 김승규 장로와 14, 15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국가조찬기도회 부회장을 역임한 김명규 장로의 가족이야기이다. 이들 8남매는 가족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신앙교육이라고 말했다.
“항상 큰 비전을 갖고 겸손한 마음으로 봉사하는 신앙인이 되라. 남에게 유익을 주고 선을 베푸는 꿀벌 같은 인간이 되고 이웃 교회와 사회에 덕을 끼쳐라.”
이것이 이 가족의 전통적 가르침이다. 이들은 이 기도의 힘으로 살고 있다. 그리고 자손들도 그렇게 살기를 원한다.
한가위 보름달만큼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은 이 가족의 신앙이야기는 이 땅의 부모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결혼과 가정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잠 5:18∼19)
결혼 생활이 파국으로 치닫던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남편은 좀더 상냥하고 부드러운 여성을 만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습니다. 한편 아내는 좀더 책임감이 강하고 활동적인 남자를 만나지 못한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두 사람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피어올랐습니다. 이웃 주민이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금실이 좋아진 특별한 비결이 있습니까?” 그러자 이들 부부가 말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서로를 향해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그래서 당신을 사랑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고백을 한 후부터 서로에게 완벽한 기대나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게 됐어요. 오히려 서로를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한답니다”
결혼은 사랑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곧 희생입니다. 배우자를 위해 나를 희생하면 두 배의 사랑이 되돌아옵니다. 결혼 생활의 비극은 대부분 이기심에서 비롯됩니다. 가정은 남편이나 아내 어느 한 사람의 일방적인 노력과 희생만으로는 지탱되지 않습니다. 가정은 남편과 아내가 함께 일구어 나가는 삶의 터전입니다. 인생의 가치와 즐거움은 가정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이유로든지 가정을 돌보지 않고 아내나 남편을 소홀히 대하는 것은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 화목한 가정
아주 큰 다이아몬드를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궁궐에서 한 신하가 찾아와 궁궐 장식용으로 그가 가진 다이아몬드를 쓰기로 했다며 비싼 값으로 팔라고 했습니다. 그는 좋은 조건에 흔쾌히 결정하고 기쁜 마음으로 열쇠를 가지러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다이아몬드가 보관된 금고 열쇠를 베개 밑에 넣고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밖으로 나온 그는 신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리 임금님의 명이라도 지금은 아버지를 깨울 수 없습니다. 나중에 다시 오신다면 모를까 지금 당장은 다이아몬드를 팔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신하는 큰 돈벌이가 되는데도 아버지를 깨우지 않는 그의 지극한 효성에 감복했습니다. 그리고 궁궐로 돌아가 임금에게 이를 보고했습니다. 역시 크게 감탄한 임금은 그에게 많은 상을 내렸다고 합니다. 물질적 봉양만이 효의 전부가 아닙니다. 가정의 질서를 인정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는 가정이 화목하고 만사가 잘되는 복을 누립니다.
/최병남 목사(대전중앙교회)
▣ 둘이 연합하여
본문: 창2: 23- 25
평소의 삶 가운데 성령 충만의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건강한 가정생활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간절한 심정을 적용한 명령인 "주 예수를 믿으라!"와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에는 모두 가정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주 예수를 믿음으로 그 가정이 구원을 받을 것이고, 성령 충만함을 받게 될 때에 예수님 안에서 교회가 순종하듯 부부사이와 부모자식 사이에 관계가 잘 다스려진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가정에서 아름다운 부부관계와 부모 자녀관계를 영적 성공으로 이끄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를 돕는 조력자시요, 위로자시요, 상담자, 중보자, 변호자이신 성령님의 역할에서 알 수 있습니다. 고통하는 부부와 상처 입은 가정이 가장 필요로 하는 요소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위로받지 못하는 자신의 영혼과 무력감 때문에 괴로워하고, 자신의 입장을 대변해 줄 사람이 없어서 홀로 쓰러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령님은 남편과 아내를 위로하고 상담하시고 도우시고 의지할 자가 되심으로 가정을 튼튼하게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건강한 가정 공동체는 건강한 교회를 세우고, 건강한 공동체가 나라와 민족을 새롭게 합니다. 따라서 현재 우리 사회의 어려움은 교회의 어려움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가정이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한 공동체, 건강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 됨의 신비를 깨달아야 합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은 육신적인 하나 됨 이상을 말합니다. 이것은 '너와 나'라는 객체가 아니라 '우리'라는 하나의 공동체의 신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상의 육체적인 하나 됨의 수준에서는 시간이 흐르면 시들해져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아담의 고백에는 신랑 되신 예수님이 신부인 교회를 진실로 사랑하신 사랑의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몸을 주시기까지 희생하신 그 신비와 비밀이 이 하나 됨의 결혼 안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을 받아 결혼하는 건강한 가정 공동체에는 사랑과 신뢰, 순결과 순종, 희생의 신비가 담겨져 있습니다.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부부가 서로 상처주고 갈등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해치는 행위이기 때문에 먼저 화해를 청하는 것입니다.
젊은 신혼부부들은 예수님께서 "남자가 부모를 떠나(아자브)"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부모로부터 독립은 선언해야 합니다. 부부사이를 최우선에 두도록 관계가 변화되어야 하고, 부모 또한 영적·정신적·육신적·경제적으로 젊은 부부가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화살을 멀리 쏘아 보내듯이 떠나보냄으로 고난을 이겨낼 힘을 길러주고 부부관계에서 하나 됨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열린 관계의 신비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숨길 것 없이 서로에게 편안한 관계가 되었다는 묘사입니다. 아내와 남편 사이에 비밀이 존재하지 않고, 친밀한 관계가운데 신뢰감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은혜를 주셔야만 가능합니다. 건강한 결혼을 통한 축복으로 허락된 열린 관계에는 사랑이 변치 않고 하나님 안에서 동역하는 신비가 있습니다.
결혼의 이상은 하나 되고 열린 관계의 신비함을 가지고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연합한 삶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난 이후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벌거벗은 것을 부끄러워했던 것처럼 변질된 관계로 인한 갈등과 긴장, 고통입니다. 결혼생활이 이혼까지 생각하는 고통이라도, 성령의 능력이 죄와 사망의 능력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셨듯이 하나 됨과 열린 관계의 신비를 통해 회복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가정마다 성령님을 통해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정현 목사
▣ 가정이 교회를 세운다
가정은 교회와 함께 부름받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위한 사역공동체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임은 물론 가정이야말로 삶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날 수밖에 없는 삶의 현장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가정에서는 성령께 순종하면서 변화받아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고 아버지가 자녀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하는 삶의 열매가 맺혀질 수 있어야겠지요.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가정들이 온갖 갈등과 고통을 떠안은 채 붕괴되는 이유는 가정이 사역공동체로서의 사명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가정과 교회를 분리시키면서 변화의 현장인 가정을 무력화 시키려는 사단의 고도의 전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지지해온 “교회가 가정을 세운다”는 원칙이 힘을 잃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교회가 든든히 자라게 되면 그 교회에 속한 가정들도 교회의 지도아래 건강해 지리라는 믿음이 현실로 나타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교회가 가정을 세운다”는 전통적 관념이 바뀌어 “가정이 교회를 세운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울때가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리스도인 가정이 작은 교회가 되어 아버지들이 자신의 가정을 목회하는 가정회복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가정에서 가정예배가 드려지고 아버지가 자녀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하면서 이웃가정을 하나님의 가정으로 낳는 가정회복운동 말입니다. 이처럼 가정이 회복될 때 그들이 소속된 교회 역시 능력을 회복하면서 가정과 교회의 연합에서 오는 새로운 소명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가정에 관한 성경 말씀
0 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삼하7: 29)
▣ 집, 장막, 가정에 관한 성경 말씀
0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0 그가 지은 집은 좀의 집 같고 파수꾼의 초막 같을 것이며(욥27:18)
0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 (셀라)(시61:4)
0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시118:22)
0 자기 집 문에 앉으며 성읍 높은 곳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잠9:14)
0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눅6:49)
0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눅12:39)
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갈6:10)
0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딤전3:4,5)
0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며, 자녀와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라야 합니다.(딤전3:12)
▣ 집, 가정에 관한 금언
0 행복은 우리 집 화롯가에서 자라는 것이지 남의 집 정원에서 따오는 것이 아니다.0 가정이 없는 사람은 둥지가 없는 새와 같다.(A man without a home is a bird without a nest)0 비록 아무리 초라(보잘 것 없어도)해도, 내 집과 같은 곳도 없다.(Be it ever so humble, there's no place like home)0 집에서 마른 빵(거친 음식)이 밖(남의 집)에서 불고기보다 낫다.(Dry bread at home is better than roast meat abroad)0 동(東)쪽이든 서(西)쪽이든, 내 집이 최고다.(East or west, home is best)0 그가 임금이든 농부이든, 자기 집에서 평온(平和)를 찾는 자가 행복하다.(He is happy, be king or peasant, who finds peace in his home)0 항상 집에서 사는 사람은 가정 이외는 아무 것도 모른다.(He that lives always at home, sees nothing but home)0 가정이란 애정(愛情)이 있는 곳에 있다.(Home is where the heart is)0 가정은 가정적이어야 한다.(Home is homely)0 가정을 다스리는 자, 로마를 지배하리라.(Home rule, Rome rule.)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0 가정은 위대한 사람이 종종 작아 보이며, 소인(小人)이 종종 위대하게 보인다.(Home is where the great are often small, and the small are often great)0 내 집에서, 내가 임금(王)이다.(In my own house I am king.)0 집을 만드는 것은 나무나 돌이 아니라 마음(애정)이다.(It's not wood or stone, but hearts, that make a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