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과 주방이 하나로 펼쳐지는 40평대 구조의 장점인 확 트인 공간감을 살리기 위해 주방 상부장을 과감히 없앴다. 수납은 다용도실과 아일랜드 하부장으로 해결. 액자를 벽에 거는 대신 선반 위에 올려놓아 변화를 주고 싶을 때 수시로 바꿀 수 있게 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식탁은 세덱 제품, 주방 가구와 조명등은 마르멜로 제작, 포스터는 루밍에서 구입.
1백 호짜리 회화 작품을 걸어놓는다고 해서 갤러리처럼 미니멀한 공간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미니멀 인테리어의 완성도는 밑바탕에 달려 있다. 가구와 조명등, 작품의 선택보다 결점 없이 순수한 바탕을 완성해주는 ‘베이스 메이크업’. 벽재·바닥재 등 마감재의 컬러와 소재, 군더더기 없는 디테일의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르멜로 이경희 실장이 디자인한 이 새하얀 아파트는 베란다를 확장한 것 외에는 구조를 바꾼 곳이 없다. 가구 역시 새로 장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 대신 마루나 벽지를 신중하게 골랐고 몰딩과 문손잡이, 패브릭 등을 교체하는 홈 드레싱 과정을 거쳐 북유럽 감성을 담은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사실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원하는 디자인을 위해 과감하게 구조를 변경하고 트렌디한 디자인 가구를 마음껏 세팅할수록 만족도가 높을 터. 그러나 이경희 실장은 집주인의 입장에서, 같은 주부 마음으로 생각했다.
“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꿨을 때 오히려 동선이 불편해지는 경우가 있어요. 세 식구가 살기엔 집이 제법 넓기 때문에 굳이 큰 공사를 진행할 필요가 없었죠. 대신 난방과 수도 배관 정비 등 내실을 기하는 데 투자했어요.” 디자이너는 기존의 가구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집의 콘셉트를 확실히 잡아줄 밑바탕 공사에 집중했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 동안 무엇이든 펼칠 수 있는 도화지 같은 공간을 주제로 정하고, 하얀 무지 벽지를 바르고 웜 베이지, 버건디 컬러 벽지를 포인트로 사용해 온화하면서도 중성적 분위기를 완성했다. 여기에 바이어스로 마감한 세컨호텔의 소파, 모던 스칸디나비안 빈티지 가구, 세덱의 원목 테이블, 비슬리의 캐주얼한 캐비닛, 이케아의 콘솔 등 다양한 스타일의 가구는 최선의 컨디션으로 이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왼쪽) 집주인 하정 씨와 딸 지오. 개방감이 느껴지면서도 너무 가벼워 보이지 않으려면 공간마다 묵직하게 힘을 잡아주는 컬러가 필요하다. 거실의 회색 소파, 쿠션, 커튼이 그 역할을 한다.
1 벽장 문을 없애고 안쪽에 선반을 달아 미니 작업대로 연출. 2 헤드보드를 제작하는 대신 핸드 페인팅 느낌의 벽지와 마리메꼬의 컬러풀한 커튼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3 직사각 타일과 클래식한 도기, 심플한 사각 프레임 거울로 완성한 욕실. 4 침실 한쪽에는 선반을 달아 피겨 컬렉션 공간으로 활용한다. 주방과 거실 바닥은 과감하게 폴리싱 타일을 깔아 저녁이면 통창 너머 야경이 은은하게 반사된다. 걸레받이는 두껍게 디자인했는데, 자칫 밋밋할 수 있는 하얀 벽을 이국적인 분위기로 완성해주는 디테일이다.
주방과 거실 바닥은 과감하게 폴리싱 타일을 깔아 저녁이면 통창 너머 야경이 은은하게 반사된다. 걸레받이는 두껍게 디자인했는데, 자칫 밋밋할 수 있는 하얀 벽을 이국적인 분위기로 완성해주는 디테일이다.
하얀 캔버스에 색을 채우듯 처음부터 원하는 바가 분명했던 집주인 하정 씨. 현우디자인에서 텍스타일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얼마 전 동생과 함께 커튼, 쿠션 등 패브릭 소품과 아동복을 판매하는 숍을 오픈한 그는 평소 키치한 소품과 패브릭을 자유자재로 매치하는 것을 좋아한다. “인테리어에서 ‘정답’을 기대하기는 무척 어렵지요. 레노베이션을 하면서 가구까지 완벽하게 세팅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예산이 충분치 않으니 살면서 하나 둘 채워나가자 했어요. 그래서 디자이너에게 갤러리처럼 여백 있는 공간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죠.”
단, 갤러리 같은 집이라고 해서 마냥 딱딱하고 차가운 공간은 아니다. 디자이너는 자칫 밋밋할 수 있는 공간에 메탈, 원목 등 다양한 물성을 접목해 변화를 시도했다. 대표적 공간이 부엌이다. 부엌은 스틸 소재 상판과 파우더 도장으로 마감한 하부장, 원목 테이블 등 차가운 소재와 부드러운 소재가 만나 이국적이면서도 아늑한 분위기다. 반무광 파우더 도장은 스크래치에 강해 주방 가구에 많이 쓰는 마감 기법으로, 입자가 곱고 미세한 펄이 함유되어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할 수 있다. 주로 상업 공간, 전문 주방에서 사용하는 스틸 상판 역시 싱크대 상판을 종이로 주물을 떠 원판으로 끼워 맞춘 것. 보통 인조 대리석 상판과 하이글로시 주방 가구를 사용했을 때보다 비용이 2.5배가량 더 들었지만 그 값어치는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집은 전체적으로 붉은빛이 도는 기존의 체리목 마감재는 모두 화이트로 도장하고 공간에 따라 다양한 바닥재를 적용했다. 안방을 제외한 모든 방은 밝은 수종의 강화 마루를, 안방은 묵직한 월넛 컬러의 원목 마루를 선택하고 거실과 주방은 화이트 폴리싱 타일을 시공했다. 또 천장은 깔끔하게 등 박스를 없애고 LED 매립등을 설치했다. 밤에 조명을 켜면 바닥에 전등의 불빛이 반사되고 창밖으로는 드라마틱한 한강의 야경이 펼쳐진다. 그렇게 완성한 거실은 널찍한 소파에 이케아의 블랙 콘솔과 소형 냉장고를 매치해 반전의 재미를 더했고, 차분한 베이지 컬러 벽지를 사용한 침실은 헤드보드 없이 매트리스만 두고 마리메꼬의 컬러풀한 원단으로 커튼을 제작해 생기발랄한 포인트를 주었다.
이처럼 형식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실용적인 믹스매치가 이 집 데커레이션의 숨은 매력이다. 이는 아이 방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네 살 난 딸 지오의 방에서 뽀로로 인형이나 만화 캐릭터는 찾아볼 수 없다. 놀이 매트가 되는 널찍한 침대, 매력적인 버건디 컬러 벽지가 어우러진 시크한 방. 이런 곳에서 우드 블록과 일러스트레이터 도나 윌슨의 캐릭터 인형을 가지고 노는 지오를 보니 ‘아이가 있으면 인테리어 망가지기 십상’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갤러리를 표방했다는 디자인 콘셉트를 유념해서일까. 이 집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다양한 선반이다. 액자는 벽에 거는 대신 선반에 올리면 수시로 바꿀 수 있어 좋다는 사실을 곳곳에 설치한 선반을 통해 확인할 수 있 었다. 레노베이션하지 않고 평소에도 쉽게 소품을 활용해서 바꿀 수 있는 집, 생각만으로도 즐겁지 않은가. 한 번에 욕심내지 않고 하나씩 채워나가려는 집주인의 현명한 안목, 주부의 입장에서 실용적인 레노베이션 노하우를 발휘한 디자이너의 따뜻한 손길이 빚어낸 환상의 하모니에 귀 기울여보시라.
칩&시크 스타일을 빛낸 데코 아이디어
1 페인팅한 것 같은 효과의 벽지 선택 미니멀하고 깔끔한 인상은 페인팅 처리한듯한 벽면이 큰 몫을 차지한다. 보통 아파트에 도장을 하려면 석고보드를 더하는 등의 밑작업과 해당 작업에 인건비가 발생해 벽지를 바르는 것보다 세 배 이상의 비용이 든다. 화이트 도장 대신 미세한 질감으로 도장 효과를 내는 무지 벽지를 고르는 것이 효과적인 대안이다. 의자, 캐비닛 등 컬러풀한 소가구나 핸드 페인팅 질감의 솔리드 컬러 벽지로 포인트를 줄 것. 무지 화이트 벽지는 DID, 포인트 월에 사용한 컬러 벽지는 다브 제품.
2, 3 상업 공간에서 힌트를 얻다 소형 냉장고를 소파 옆 콘솔처럼 매치. 워터 바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냉장고에 패키지가 예쁜 컬러 음료를 넣어두면 그 자체로 장식 효과가 있다. 넥타이와 안경, 시계 등 패션 소품이 많은 부부는 패션 매장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서랍형 드레서로 수납을 해결했다.
4 더하기보다 생략하라 이 집은 헤드보드가 없다. 마음에 쏙 드는 디자인이 없어 과감히 생략한 것. 대신 헤드보드 벽면에 차분한 컬러의 벽지를 발라 안정감을 주었다. 평소 북유럽 인테리어 서적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하정 씨는 포스터 · 인형 · 쿠션 등 아기자기한 소품은 루밍, 이노메싸 등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입한다.
5 디자인 도어 활용 현관 앞 중문은 폴딩 도어를 사용하면 카페 같은 아늑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각도 조절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문을 열 수 있어 원하는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이 집에서는 다양한 디자인 도어를 볼 수 있는데 주방 옆 다용도실로 나가는 격자 유리문은 바 타입의 손잡이가 포인트다. 손잡이는 작은 요소지만 집 안 전체의 스타일을 좌우하기 때문에 신경써서 고른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