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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7년만의 만남 이라는 글로 인사를 드렸던 '민우'라고 합니다.
그때 정성스러우신 카페분들 댓글 덕분에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댓글에 대한 답글을 단 한 번 달지 못했었지요.
이유는 실화가 아닌 픽션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저의 실제 이야기인줄 아시고 응원해주시는 통에
감히 이것은 꾸며낸 이야기라는 말씀을 못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간 또 다른 이야기가 이제 얼추 완성되어 다시 올려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올리는 모든 글들은 저의 앨범에 수록된 곡들의 배경 스토리를 담고 있는 것이구요.
그 첫번째 트랙에 있는 Second Life라는 곡의 배경스토리를 이번에 올려 봅니다.
곡과 함께 글을 올려 드립니다. 삽화도 곧 그려질 예정이구요.
우선 카페님들에게 글을 먼저 읽어 봐주십사 하여 글부터 우선 올립니다.
이 이야기의 곡은 FlatOut의 1번 트랙인 Second Life라는 곡입니다.
01. Second Life
제 2의 인생 (Second Life)
힘없이 가늘게 늘어진 머리칼을 곱게 말아 묵고서, 핏기 없이 누워있는 그녀의 안색은 백옥같이 맑았다. 뼈 모양새가 그대로 드러나 뵈는 앙상하고 주름진 손등과 까칠하고 희끗하게 말라 버린 푸르스름한 입술, 모든 걸 체념한 듯 무심히 감고 있는 그녀의 두 눈은 오열하는 저 두 딸내미들과는 반대로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난 서너 걸음 더 걸어가 그녀의 앞으로 가깝게 다가섰다. 눈이 부실 만큼 새하얀 수의에 손을 가만히 얹고, 뭣에 홀린 듯이 그녀의 온몸을 구석구석 어루만져 나갔다. 조금이라도 남은 그녀의 미열을 느끼고 싶어서였을까. 이윽고 다시금 삐져나오는 눈물이 내 목 줄기를 수차례 간질이고 있었다.
지금 나에겐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평생 모은 재산 죄다 꼴아 박은 사업은 공들인 밥상 엎지른 것 마냥 보기 좋게 말아먹었고, 이제 사랑하는 아내마저 저리 떠나 버린 마당에 이 세상 무슨 미련이 더 남아 있겠는가. 주위 사람들에겐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죽어있다 한들 전혀 납득 못 될 것이 없었다. 그런 내게 남은 것이라고는 그저 저 두 딸내미가 전부였던 것이다. 벼랑 끝에 내몰린 늙은 몸뚱이에 가느다란 동아줄정도 하나 걸려 있는 셈이었다. 한때는 천하를 호령할 듯 잘 나갔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런 내 인생이 이처럼 어느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97년 한해도 거의 끝나갈 무렵, 차가운 도시의 아침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 매워져 있었다. 높게 솟은 빌딩 사이를 가르며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은, 어찌나 매서운지 잔뜩 동여맸던 코트까지 뚫고 들어올 지경이었다. 난 재차 옷깃을 부여잡고 회사 건물로 냉큼 뛰어 올랐다. 곧 승강기를 타고서 사무실에 겨우 도착해서야 몸이 스르르 녹아내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갓 달궈진 뜨끈한 난로와 두꺼운 쿠션이 재봉된 검은색 고급의자, 그리고 세련된 넥타이에 카디건 차림을 하고 있는 부하 직원들이었다. 몸에 붙어있던 차가운 기운들을 마저 털어내고, 그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으구… 거 날씨 한번 고약하구만 그래.”
“오셨어요? 부장님...”
그런데 오늘따라 이 친구들 표정이 심상찮았다. 곗돈이라도 떼인 사람마냥 낯빛들이 죄다 심각했고, 또 저잣거리 마냥 어수선 했다.
“거 다들 왜 그렇게 분답은가? 뭔일났나?”
“아이고, 부장님… 오늘자 신문 아직 못 보셨는지요.”
그들이 건네든 신문을 받아 들었다.
“아, 이거! 결국 터진 겐가?! 위에서는 아직 암말 없고?”
“네에. 아직 이른 시간이라 아무 얘기 없으십니다만, 곧 무슨 조치가 있으시겠죠.”
“자자! 그럼 일단 다른 건 내비두고, 다들 회의 준비부터 하세나! 약 한 시간쯤 뒤에 다시 소집하겠네.”
이들이 이렇게 심각한 것은 당연했다. 신문에 노란글씨로 대문짝하게 박혀 있던 문구는 ‘대한민국 부도위기’, ‘IMF 구제금융 요청’ 등등이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몸담고 있던 곳은 주식을 사고파는 증권 회사였는데, 이 얘기가 사실이라면 우리 같은 금융업계가 직격탄을 맞을 것은 불을 보듯 뻔 한일이었다. 곧 이사진들과의 긴급회의가 시작되었다.
누군가가 볼펜을 연신 딸각 거린다. 마시고 있던 물병은 거의 바닥이 들어났고, 앞에서 브리핑 하는 녀석도 아까부터 계속 했던 소리만 반복할 뿐 별로 영양가가 없어 보인다. 그러다 다음 직원이 또 앞으로 밀려 나왔다. 이번엔 김 대리다. 이 친구 눈빛만 봐도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은근슬쩍 눈치를 보는가 하면, 넓은 이마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눈썹위에까지 흥건하게 젖어들어 있었다. 와이셔츠 소매로 그것들을 대충 닦아내더니 아까와 비슷한 그래프를 몇 가지 스크린에다가 띄운다. 순서만 조금 다를 뿐 역시나 같은 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하품이 쩍쩍 흘러나왔고, 앞쪽에 머리 희끗한 이사진 양반들도 영 신통치 않아 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들은 양 옆으로 기지개를 펴기도 했고, 안경을 벗어들고 눈곱을 몇 차례 뜯어내기도 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지만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 회의였다.
그로부터, 요 며칠 간 회의는 계속 되었지만, 역시나 결론은 없었다. 그사이 주식들은 모두 반 토막이 났고, 회사에는 심각한 제정 위기까지 찾아왔다. 결국 이사진 양반들이 선택한 것은 바로 회사 전체에 대한 구조조정 이었다. 정말 청천 병력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명단 속에는 내 이름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인사과에서 건넨 권고 사직서를 받아든 순간,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해지고, 손끝이 파르르 떨려오는 것이었다. 한참을 다시 고쳐 보면서도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다른 동료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에 분통해하고 있었다. 두 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 책상 맡에 앉아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는 친구도 있었고, 붉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서는 주위 동료들에게 열변을 토해대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다 다른 한 직원이 다짜고짜 인사담당 과장 놈에게 찾아가 격한 제스처를 보이며 따져 대기 시작했다.
“이거 선별기준이 대체 뭡니까! 막무가내로 이렇게 사람 잘라도 되는 거요?!”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뻔 한 것이었다.
“어허.. 자네! 이거 나한테 자꾸 머라 그러지 말게. 나도 다 위에서 지시 받은 것을 그대로 전달했을 뿐이지 않는가!”
“그… 그럼 다시 번복 될 일은 없는 겁니까?”
“미안하네. 이미 최종 결정 된 사안이라…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 상황이 좀 그렇잖은가.”
곧 여기저기서 원망 섞인 탄식들이 터져 나왔다. 나도 마찬가지 격해지는 감정을 추스를 겨를이 없었다. 인생의 거의 절반쯤을 쏟아 부은 곳이었는데, 그 배신감을 이루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던 것이었다.
같은 비보를 들은 직원들과 함께 동변상련의 술자리를 가졌다. 이가 시릴 정도로 차디찬 소주에, 짭짤한 기름장을 입힌 삼겹살 한 조각을 씹으며, 잠시나마 이 상황을 잊어보려 애를 썼다. 하지만 쉽사리 잊혀 질 녀석이 아니었다. 차가운 소주 기운은 되려 폐부를 깊숙하게 찔러 대는 것이었다. 게다가 나라가 이 모양이니, 이쪽 술판만 이리 침울했던 것도 아닌 듯 했다. 지글지글 고기 익는 소리에 차 지나다니는 소리, 그 사이를 뚫고 나오는 티브이 뉴스 소리만이 이 적막 같은 침묵을 채우고 있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이번 외환위기 사태에 관련해 IMF 구제 금융을 공식 요청했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지요. 그 규모가 자그마치 미국과 일본의 지원금을 포함하여 최소 200억 달러는 족히 넘을 것이라고 합니다. IMF는 이번 구제 금융을 제공하는 대신 한국 금융시장을 전면 개방토록 할 것이라는데요. 그로 인해 국제 투기세력이 국내에 들어옴으로써 야기될 문제점들에 대해 집중 취재해 보았습니다. 이휘석 기자가 보도합니다.”
뉴스에선 계속해서 현 시국에 관한 암울한 상황들만이 줄지어 보도되고 있었고, 대한민국 산업 전역 그 어떤 분야에서도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피해가진 못해 보였다. 누구하나 성한 놈 없이 팔 다리쯤은 뭉텅뭉텅 잘려 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덕분에 오늘 회사 근처의 번화가는 뜻밖의 호황기를 누렸다. 고작 술 몇 병으로 이 상황을 모면 하고자 했다면 그것만큼 미련한 짓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제정신 차리고 앉아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까 부장님, 이 윗대가리 놈들은 그저 자기네들 살길만 챙기면 된다, 이것 아니오! 내 그동안 야근수당 한 푼 못 받았어도 그리 회사에다가는 충성을 했건만, 돌아오는 대가가 고작 이것이오?”
“그러게 말일세… 쳇!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네!”
앞에 한 녀석이 계속 무어라 말은 해대지만, 사실 귀에 들어오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냥 심심치 말라고 몇 번 실없이 웃어넘겨 줄 뿐이었다. 그러다 그 웃음마저 이젠 바닥이 났는지, 그 뒤에 삼키고 있던 눈물들이 슬금슬금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처음 한 방울만 겨우 나오는가 싶더니, 그 다음 것부터는 기다렸다는 듯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손수건 한 장으로 그것들을 간신히 막아 세워 보았지만, 이미 속수무책이었다.
높이 보이는 거실창문에 아직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것으로 보아 집사람이 여태 안자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현관까지의 계단이 평소 때는 그리 높지 않았는데, 비틀거리는 통에 각도가 70도쯤 되는 언덕인양 가파르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계단 옆 난관이라도 내 몸을 부축해주지 않았다면, 십중팔구 난 계단을 배게 삼아 아침까지 잠들어 있었을 것이다. 거의 네발동물처럼 기어오르다 시피 하여 겨우 현관문 앞에 다다랐다. 위장 깊숙이 올라오는 술내 가득한 트림을 시원하게 한번 하고서는, 현관문 초인종을 질끈 눌렀다. 그러자 황급히 집사람 달려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애들 깰까 싶어 조용히 문을 열어주고는 내 코트를 뺏듯이 받아 들었다. 그러곤 문지방 넘어서기가 무섭게 대뜸 화장실로다가 밀어 넣었다. 빨리 씻고 자라는 것이었다.
“아유 술 냄세! 이 양반 왜 이렇게 또 술을 마셨데?!”
뒤통수에서 집사람의 따가운 눈총이 느껴졌다. 애써 모르는 척 외면하며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와이셔츠며 바지며, 날름 벗어서는 수건걸이에다 구기적대게 걸어 놓고, 수도꼭지 레버를 재꼈다. 얼음장 같이 차갑던 물이 서서히 뜨듯 미지근해 졌다. 비누거품을 대충 털 난 곳에만 바르고 물 한번 끼얹히고 나니 이제야 기분이 좀 개운했다. 샤워를 끝내고 나왔을 때, 집사람은 이미 거실 불을 끄고서 먼저 안방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있었다. 나도 가만히 들어가 이불속에 몸을 뉘였다.
“미안허이 여보, 내 오늘 그럴 일이 좀 있었어…”
“쳇! 허구한 날 마시는 술에 일은 무슨 일… 거 잠이나 얼른자요. 낼 또 일 나가야지.”
집사람의 퉁명스런 말투에 좀 서운한 감이 들었지만, 사실 그리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긴, 매일 마시는 술에 먼 핑계가 그리 많겠는가. 내일 술 깨면 그때 다시 이야기 함세.”
내 반응에 집사람은 조금은 놀란 눈치였다.
“왜요?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예요?”
“아니야. 그냥 잠이나 얼른 자자고. 내일 또 일 나가야제.”
막상 말을 하려고 보니, 집사람 볼 면목이 없어 차마 입을 때지 못하였다. 게다가 취기가 아직 남아 있음에도 잠이 쉬이 들지 못하였다. 샤워 하는 바람에 잠이 홀랑 달아나 버린 모양이었다. 동시에 온갖 괴로운 생각들만이 머릿속을 괴롭히고 있었다. 때문에 한참을 뒤척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자 등을 보이고 누워있던 집사람이 내 쪽으로 다시 몸을 돌려 누웠다. 그러곤 마치 내 속을 다 알기라도 하는 듯, 팔로 어깨를 가만히 감싸 안아 쥐는 것이었다.
‘그래, 당신이 있는데 내 못할 일이 뭐가 있겠나. 당장 무슨 일이라도 시작해 보아겠네.’
집사람의 따듯한 손길에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서 잠을 청해 보았다. 칠흑 같던 밤은 그렇게 서서히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집사람과의 상의 끝에 우리는 회사에서 받은 퇴직금으로 치킨 가맹점을 시작해 보기로 결정했다. 가맹점 본사에서 선정해 준 점포들 중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하나를 선택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도로가 좁은 편이었고 지나다니는 차들이 그리 많질 않아 비교적 한적하긴 했지만, 주택가 근처라 인근 시장에는 늘 북새통을 이루는 데다, 초저녁만 되면 그 주변 가게들에 손님들이 빼곡하게 들어서는 것을 보니 이 정도면 손해 볼 장사는 아니구나 싶었다. 가게는 서른두 평 남짓 되었는데, 전에 고기 집을 하던 자리라 벽면이 온통 기름때로 누렇게 찌들어 있었다. 그것들을 죄다 뜯어내고서 보수하는 동안 여러 가지 소일거리들을 거들었다. 톱질하는 소리, 못 박는 소리, 남들이 듣기엔 온통 부산스러움 그 자체였을 테지만, 내 귀에는 그저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수 소리보다도 더 청아하게만 들려지는 것이었다.
짙은 주황빛의 나뭇결무늬 타일장판을 바닥면 전체에다가 깔았다. 벽면은 벽돌담 느낌으로 둘러졌고, 연한 상아색 페인트칠을 한 천정에, 노란색 갓을 씌운 큼지막한 조명들을 달아 실내를 환희 비추게끔 하였다. 곧 새 가구냄새가 진하게 풍겨지는 테이블과 의자들, 그리고 온갖 집기들을 들이고 난 뒤, 또렷하게 빠진 간판을 입구위에다가 걸어 놓으니 이제 제법 가게다운 모양새가 갖추어진 것이다. 언뜻 보면 고급 레스토랑 못지않을 만큼 고풍스런 분위기였다. 해가 어느새 뉘엿뉘엿 넘어가는 가운데, 함께 고생한 시공 업자 양반, 가맹점 관계자들과 서로 축하인사들을 나누었다.
“아! 드디어 끝났구먼! 다들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하, 사장님도 정말 고생 많으셨네요! 다른 분들은 공사 중에 거의 잘 안 나오시는데, 이렇게 매일같이 나오셔서 신경 쓰시는 것 보니, 아마 대박이 나실 것 같습니다.”
“그럼요. 대박 나야지요! 하하하!”
간판불이 탁! 켜지는 것을 보고 집사람과 애들도 팔짝팔짝 뛰며 좋아해 댔다. 막내는 대뜸 음료기계 앞에 달려가서 컵을 들이대어 보기도 하고, 큰애는 냉동고 문을 열고 뭐라도 들어 있나 싶어 살펴보는 것이었다. 물론 아직 오픈전이라, 그 안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애들이 이것저것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살펴보고 있는 중에, 집사람은 상 위에 각종 음식들과 돼지머리를 주섬주섬 올려놓으며 고사 지낼 준비들을 하고 있었다. 돼지가 귀엽게 시익 쪼개는 것을 보니 필히 길조를 안고 들어 올 것이 분명해 보였다.
“고놈 참 복스럽게 웃는 것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구먼, 그래.”
“그러게요 여보. 이따 고사 끝나고 사람들한테 떡도 좀 돌리자고요.”
집사람은 뜨끈뜨끈한 팥 시루떡도 한 박스 주문해 놓았는데, 고사를 간단히 지내고, 주변 가게들 그리고 시장에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눠 드렸다. 떡을 받아든 그들은 그 자리에서 냉큼 뜯어 맛을 보는가 하면, 몇몇은 아예 가게로 들어와서 먹는 경우도 있었다. 머리카락이 절반쯤 벗겨져 이마가 환희 들어나 뵈는 양반 하나가 있었는데, 그는 자신을 이 동네 생선가게 주인이라고 소개했다. 콧잔등이 발간 것이 벌써 어디서 몇 사발은 잡수고 온 것이 분명했다. 집사람이 건네주는 막걸리 한 사발도 거뜬하게 비워내고는 쩍쩍 달라붙는 음성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따! 공사한번 기똥차게 해놓으셨구먼!”
“아이고 예, 예, 거 업자 분들께서 고생 많으셨지요. 모쪼록 잘 좀 부탁드립니다!”
“암요. 내가 이 동네서 한 20년째 장사하고 있는데, 여기 동네 몫이 참 좋더이다. 가끔 맥주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들르겄소.”
“아 예. 그럼 감사하지요. 여기 먹을거리도 많이 남아 있으니 마저 다 드시고 가십쇼.”
“예. 그라지요.”
한참을 앉아 있다 그는 술이 양껏 채서 만족된 것인지 잔에 남은 막걸리를 마저 다 비운 뒤, 떡 하나 더 입에 물고 돌아갔다. 그의 모습을 따라 바깥풍경을 바라보니, 하늘이 새카만 것이 벌써 많이 어두워 졌음에도 불구하고 가게들엔 역시나 사람들이 많은 것이었다. 분명 느낌이 좋았다.
가게를 오픈 한지 얼마 안 되어 2002년 한일월드컵이 시작되었다. 오늘 저녁엔 한국 경기가 있는 날이었는데, 정말이지 문을 열기가 무섭게 손님들이 들이 닥치는 것이었다. 저마다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서 가게 안을 빼곡히 채워가는 모습은 마치 빨갛게 달아오른 쇳물을 부어대는 것만큼이나 뜨거운 광경이었다. 그때부터 부엌의 주방장은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주문에 허덕이는 꼴이 가히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나와 집사람 역시 그 못지않게 눈밭의 강아지마냥 두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분주하게 움직여 대고 있었다. 응원하는 사람들 사이로 이리저리 접시들을 나르다 보니 어느새 등줄기에도 땀이 흠뻑 배어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온 동네가 들썩일 만큼의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 골이다 골!!”
전반 25분! 한국의 그림 같은 골이 터진 것이었다. 이을용의 패스를 받은 황선홍이 그 자리에서 대포알 같은 슛을 쏘아 올렸는데, 그것이 그대로 골문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가게의 모든 사람들은 뛸 듯이 기뻐하며 서로를 뜨겁게 부둥켜안았다. 그것은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오늘만큼은 예외인 것이었다. 난 소리를 어찌나 질러 댔는지 목까지 금세 걸걸하게 쉬어버렸다. 기분이다 싶어 맥주도 한 모금 벌컥 들이켰는데, 그야말로 꿀맛이 따로 없었다.
긴 밤이 지나고 해가 푸르스름하게 뜰 때서야 모든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한차례 전쟁이 치러 진 테이블과 바닥에는 온통 치킨 부스러기 들이 나 뒹굴었고, 의자 쿠션에 맥주 쏟은 자국들도 군데군데 보였다. 그것들을 모두 쓸고 닦고 하고 있는데, 입구 카운터에 있는 집사람은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아까 너무 정신이 없어 지폐들을 마구 구겨 넣기 바빠 제대로 확인을 못 했는데, 오늘 매상이 얼마나 좋으면은 저렇게 신이 났을 꼬 싶었다.
“여보, 돈이 그렇게 많이 벌렸는가?”
“예, 여기 와서 한번 보세요. 어마어마해요. 그냥.”
쓸고 있던 빗자루를 한쪽으로 세워놓고 냉큼 달려가서 확인 해 보았다. 와!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확실히 돈 뭉치가 두툼해 보이긴 했다. 신이 난 집사람의 입에선 트롯 노랫가락들이 절로 흘러나오고 있었고, 손으로는 구겨진 지폐를 귀퉁이 하나 남김없이 곱게 펴다 못해 이젠 그 방향까지 맞춰놓고 있었다. 그것을 종류별로 가지런히 포개 놓고서는 노란 고무줄로 탱탱하게 감았다. 마치 은행에서 갓 받아낸 신권뭉치처럼 말이다. 하지만 곧 통장에 들어가게 될 돈들이라 굳이 이렇게까지 챙길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엥? 이거 그냥 대충 간추리지 그래. 이따가 다 입금 할 것 아닌가?”
“후훗, 그렇긴 한데요. 우리 오늘 고생도 많이 했고, 잠깐 내 손에 있을 때만큼은 차곡차곡 정리되어진 걸 보고 싶어서 그래요. 여보, 우리 오늘 이만큼 벌었다우!”
집사람은 돈 뭉치를 들어 보이며 애교 섞인 표정을 짓는다.
“호오, 그래 많이 벌긴 벌었구만. 오늘도 고생 많았네. 당신.”
“예, 당신두요.”
천연덕스러운 집사람 모습에 나도 덩달아서 신이 났다. 우리는 그렇게 남은 정리들을 마저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비록 몸은 고되었지만, 돌아가는 발걸음만큼은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가게 문을 연지 얼마 안 되서부터 장사가 이리 잘되는 것을 보니 그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었다. 더도 덜도 말고, 앞으로도 딱 오늘만 같기를 바랐다.
언제 부턴가 가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비슷한 치킨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나와 비슷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대거 자영업자로 돌아선 탓이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놓은 상태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얘기는 조금씩 달라져갔다. 요즘 집사람은 그 때문에 늘 울상이다. 매상이 확실히 줄어들어든 감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보, 저 앞에 또 공사 하던데 봤어요? 동네 사람들이 말하기를 저것 또 치킨집이라네요.”
“아, 그래? 이런… 올해만 벌써 세 번째구먼. 이거 서로 제살 깎아 먹다가 같이 망하게 되는 거 아닌지 몰러.”
“휴우, 그러게 말예요.”
나를 비롯해 집사람 스트레스는 갈수록 늘어만 갔다. 아니 나보다는 집사람이 어지간히 신경을 쓰는 것이었다.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것 마냥 시종일관 그들을 아니꼬워했다. 늘 상 창문너머로 그들을 바라보며 손님들이 그 짝에 한번이라도 들락거릴라 치면 그렇게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뻑 하면 내쉬는 한숨소리에 그만 노이로제에 걸릴 판이었다. 하긴 내 눈에도 남의 떡이라 그런지 그쪽 인테리어가 훨 고급지어 뵈긴 했다. 벌써 외관에서부터 카페에서나 있을법한 널찍한 테라스에, 얼굴이 훤히 비칠 정도로 윤기 나게 잘 닦아놓은 철제 테이블이 어찌나 세련돼 보이던지, 저쪽가게에 관심을 놓지 못하는 집사람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우리가게는 다른 가게들과 달리 본사에 납입해야 되는 금액도 높은 편이라, 이렇게 매상이 시원찮게 나와 주는 달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주방직원 인건비도 만만치 않은데 말이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이리저리 뗄 것들 떼고 나면 입에다가 겨우 풀칠이나 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딸내미들 학비까지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게 한 2년 정도를 겨우겨우 버텨 나갔다. 최근 들어 집사람에게는 잘 뵈지 않던 흰머리까지 눈에 띄게 늘었다. 반대로 찾아오는 손님들은 눈에 띄게 줄었는데 말이다. 지금 한 창 바쁠 시간임에도 가게 안엔 서너 자리만 겨우 채워질 뿐이었고, 그나마 전화주문이 이따금씩 들어와 근근이 버텨낼 정도였다. 배달 알바도 얼마 전에 그만두게 했다. 당연히 월급 줄 돈 없는 것이 이유였다. 요즘엔 가게 안이 조용하니 사실 내가 배달을 나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집사람이 즐겨 부르던 트롯노래 소리도, 깔끔하게 돈 정리 하던 모습도 통 보기 어려워 졌다는 것이다.
“이봐 당신, 기운 좀 내! 요즘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 그런 걸게야.”
집사람 풀이 한참 죽어 있어 한마디 건네 보지만, 그녀는 말없이 고개만 짧게 두 번 끄덕일 뿐이었다. 심지어 그마저도 몹시 귀찮아 보였다. 그러다 애꿎은 전화기만 계속해서 만지작거렸다. 혹시라도 걸려올 주문전화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저기… 음료수라도 좀 드실래요?”
집사람은 일어나서 사이다를 두잔 떠왔다, 마침 목이 마르던 차라 나는 그것을 단 숨에 들이켰지만, 집사람은 저가 떠 와 놓고도 찔끔찔끔 마셔대는 것이었다. 마냥 시간을 죽이고 있으려니 퍽 따분했었나 보다. 때마침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주문 전화였다.
배달 가는 길에 다른 가게들 꼴도 좀 지켜보았다. 역시나 저 짝 집도 심심해 보이긴 영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똑같은 가게들이 왕창 들어서는데 어느 누가 배겨낼 재간이 있겠는가. 에잇! 이럴 바엔 차라리 가게를 정리하는 편이 훨씬 좋을 성 싶었다. 게다가 이놈의 길은 또 어찌나 복잡한지, 집들이 닭장 마냥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다 언덕까지 가파른 탓에 자칫 하다가는 그대로 고꾸라질 판이었다. 꾸역꾸역 서투른 운전솜씨로나마 집을 찾아내 문을 두들겼다.
“배달이요. 배달! 치킨 배달 왔어요!”
치킨을 건네주고서 다시 돌아 나오는데, 역시나 언덕길이 가파르다. 브레이크를 연신 잡아가며 모퉁이를 돌아 다시 평지 길로 겨우 빠져나왔다. 알바 놈이 확실히 오토바이 하나는 잘 몰았구나 싶었다. 하지만 월급 챙겨줄 돈이라도 아끼려면 별 수 없는 일이었다.
가게에 돌아왔을 땐, 집사람이 날 보자마자 카운터 쪽으로 손가락질을 몇 번 하더니, 화장실로 급하게 들어갔다. 벌써 창문에서부터 보고 달려가는 것이 급하긴 무척 급했었나보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어쩔 뻔 했을꼬, 그런데 들어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볼일을 끝내고 나오는 것이었다.
“허허, 그리 급했으면 진작 가지 않고.”
“아… 갑자기 배가 아파서 갔는데, 설사만 조금 나오고 마네요. 요즘 계속 그래요.”
집사람은 계속 아랫배 쪽을 쓰다듬었다. 심심치 않게 이따금씩 앓는 소리까지 냈다.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여 얼른 약국으로 달려가 약을 좀 지어왔다. 집사람이 약을 먹고는 아픈 것이 조금은 가라앉는 듯 보였다. 식중독이라도 걸린 것인지, 일단 내일 아침 날이 밝는 대로 병원부터 가보기로 했다.
다음날 찾아간 병원에선 한참동안 여러 가지 검사들을 받게 하였다. 요즘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아 하더니 결국엔 탈이 났구나 싶었다. 몇 일간 적당히 치료를 받게 하고, 큰애나 불러서 당분간 카운터 좀 보게 해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대뜸 나를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저기, 정윤희 환자 남편분 되시죠? 잠깐 진료실에 들어가 보시겠어요?”
간호사의 조심스런 말투나 웃음기 없는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꺼림칙했다. 무슨 큰 탈이 났기에 나까지 불러들이는가 싶었다. 진료실 문 앞으로 걸어가 문들 두들겼다.
“똑. 똑. 똑.”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젊어 뵈는 의사양반 하나가 모니터를 지긋이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손으로 의자 쪽을 가리키며 나를 앉게 했다.
“의사 선생님, 저희 집사람이 어디가 많이 안 좋은지요?”
“저 그게... 아내 분의 대장 쪽에 큼지막한 종양들이 발견 되었는데요. 흔히 암이라고 불리는 악성 종양입니다. ‘
난 두 눈이 휘둥그레져 다시 물었다.
“네에?! 아... 암이라니요??”
그는 내 반응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불이 들어오는 칠판에 필름들을 몇 장 꽂아 놓는다.
“지금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쪽 대장 부분의 암세포가 여기 간까지 전이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뭐 자세한 것은 앞으로의 경과나 더 정밀한 검사를 받아 봐야 알겠지만, 지금까지의 검사결과로만 봤을 땐 이것들은 이미 온몸에 퍼져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면 왜 여태까지 우리는 몰랐던 거요?”
“음, 원래 대장암 이란 것이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이미 늦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진 작에 건강검진들을 꼼꼼히 받아 보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유감입니다.”
의사는 당황해 하는 나를 의식한 탓인지 잠시 동안 말을 멈추었다. 그러다 내 눈을 숙연하게 한번 쳐다보더니 다소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다시금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고 아직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 낙담하지 마시구요. 일단 조금 더 큰 병원으로 옮기셔서 치료를 계속 받아 보십시오. 분명한 것은 보호자님과 환자분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 그럼 살 수는 있는 겁니까?”
“그것은... 말씀 드렸다 시피 두 분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시길 당부 드립니다.”
며칠 후, 집사람은 대학병원으로 옮겨졌고, 이제는 배변까지 어려워 병원에서는 거의 금식 하다시피 했다. 집사람의 기운은 갈수록 쇠약해져 갔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복통 때문에 굉장히 고통스러워했다. 치료비 마련을 위해 남은 퇴직금의 전부와 아이들 학비로 모아둔 적금까지 모조리 쏟아 부었고, 집사람을 간호하기 위해 가게 문 또한 아예 닫아 놓게 되었다. 계속되는 항암치료에 고통스러워하는 집사람을 끊임없이 격려하며, 마찬가지 아이들도 학교를 마치는 데로 곧장 달려와 집사람의 곁을 지켜주었다. 최소한의 가능성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맘이었다. 오늘도 항암치료에 허덕이는 집사람에게 무슨 얘기든 해 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여보. 많이 힘들쟈? 옆에서 그냥 보고만 있으려니 맘이 편치 않구먼.”
“아니에요. 당신이라고 뭐 별 수 있겠어요. 그나저나 가게는 계속 이렇게 비워놔도 괜찮아요?”
아니나 다를까 집사람은 대뜸 가게 타령부텀 하고 나선다.
“어허. 당신 몸부터 생각해. 그 놈의 가게만 아니었으면 당신 이렇게 될 일도 없지 않았을까 싶어. 괜히 몇 푼 되지도 않는 일에 그리 신경을 써댔으니 원...”
“에이. 그게 꼭 가게 때문에 그런가요. 걱정 마세요. 난 금방 다시 일어설 테니... 얼른 나아서 가게도 다시 열고, 돈도 다시 벌자고요.”
“그려. 꼭 그러자고...”
하지만 그런 우리의 바람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다. 그것은 흩날리다 부서지는 낙엽보다도 허망한 것이 되고 말았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이란 방법은 다 써봤지만, 병세는 호전되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저승사자는 애초에 집사람을 데려갈 작정을 하고 덤벼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심지어 집사람까지도 본인 운명을 일찌감치 직감한 듯이 보였다. 슬퍼하는 우리와는 달리 집사람은 오히려 덤덤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집사람의 배는 계속해서 부풀어 올랐고, 반대로 얼굴에는 가죽만이 겨우 남은채로 거의 반송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눈알은 눈에 간신히 붙어 있는 듯 눈 밖으로 툭 튀어 나와 있었고, 이따금씩 견디지 못할 고통이 찾아올 때면 제 머리통보다도 커져버린 배를 부여잡고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는 것이었다. 밥 떠먹을 힘조차 없어 보이는 그녀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저리 소리를 질러댈까 싶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가운데 내 양 볼기짝을 타고 흐르던 눈물은 단 한치도 나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아픔을 대신 감당해줄 길이 없었기에 나도 모를 눈물이 흐르는 것이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남은시간동안 고통만이라도 덜어 주기위해 진통제 투여량을 늘려주는 것이 다였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진통제의 마약성분 때문에 이상증상이 점점 심해져갔다. 시야는 초점을 잃은 채 멍해진 상태로 좀 전의 상황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가 하면, 주위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혼자서 뭐라고 대답하곤 하는 것이었다. 나로선 더 이상 곁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응? 뭐라고요 여보?”
“뭐가? 나 아무 말도 안했는데?”
“아… 그래요? 이상하네. 좀 전에 분명 누가 나 부르는 소릴 들었는데…”
“글쎄? 여기 당신하고 나 말고 또 누가 있어. 아마 당신이 잘못 들은 거겠지.”
결국 집사람은 그 다음해를 넘기지 못하고, 여름이 올 무렵쯤에 눈을 감게 되었다. 몸서리 칠만큼 치열했던 꼬박 2년여 간의 투병생활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나고 말았다. 막 여름장마가 시작 되었고, 장례식 기간 동안 조문객들의 곡소리나 쏟아지는 빗소리나 서로 분간이 안 될 만큼의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다. 차라리 보낼 때 보내더라도 따듯한 봄날쯤 이였으면 오죽 좋았을까 싶었다. 그저 산책하는 맘으로라도 편히 떠날 수 있게 말이다. 날씨까지 허락지 않는 하늘이 그저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땐, 참으로 착잡한 마음뿐이었다. 부엌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설거지 거리들하며, 집안 곳곳에 난장판처럼 흐트러져있는 옷가지들을 보고 있자니, 차마 그 어디에다 나의 고단함을 누여야 할지 몰랐다. 가게는 이미 돌볼 겨를이 없어 권리금은 고사하고 보증금 2000만원만 받은 채 급히 처분해 버린 상태였었고, 그 외에 내게 남은 것이라곤 그저 가게에서 챙겨온 여러 집기들뿐이었다. 그 집기들 중 문득문득 가게에서 쓰던 금고 통 하나가 보이곤 했었는데, 그때 마다 지폐를 간추리던 집사람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 한편이 또 다시 아려지곤 하는 것이었다.
이젠 돈도 얼마 남지 않아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지만, 당장 자식들 때문에서라도 뭐든 시작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나마 선택한 일이 바로 트럭을 몰고 다니며 전기구이 통닭을 파는 것이었다. 일전에 알아보던 일중 너무 고생스러워 보여 그냥 덮어두었던 것이었었는데, 현재로써는 그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닭 굽는 기술을 급히 배우던 중에 어느새 겨울이 또 찾아왔다. 저녁 한 7시쯤 되어 가로등 불이 막 켜질 때쯤이면 전철역 부근으로 퇴근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인산인해로 모여들기 시작하는데, 주로 그 근방에다가 자리를 잡고서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평생 책상머리에 앉아 펜대나 굴리던 양반이 이 무슨 봉변인가 싶겠지만, 딸아이들을 생각하면 이마저도 내겐 감사한 일이었다. 호호 손에 입김을 채워 넣으며 지나가던 행인들이 이따금씩 가격이라도 물어 올라 치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거의 그만하면 구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가격은 현수막에다가 큼지막하게 써 붙여 놓았었다. 두 마리에 고작 만원. 아마 이들은 정말 이 가격일까 싶어 물어보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정말 이 가격이 맞다. 대신 그만큼 남는 것이 적을 뿐이었다. 이번에 큰애가 전문대에 들어갔는데, 이렇게 벌어가지고는 책값은 고사하고 점심값이나 보태어 질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딸애는 제본 책을 보거나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것이었다. 심지어 저녁때는 아르바이트 까지 하고 있었다. 애비로써 참으로 면목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루는 큰애가 나 일하는 곳을 찾아왔다. 이유인 즉 오늘이 바로 나의 귀빠진 날이었던 것이다. 본인도 잊어먹는 날을 딸은 어째 매년 꼬박꼬박 기억해주는지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딸의 손에는 케이크상자도 하나 들려있었다.
“아이쿠 혜미야. 많이 춥지? 우선 차에 좀 앉아 있거라.”
큰애를 조수석에 앉히고 시동을 걸었다. 차가 서서히 달궈질 동안 뒷정리들을 대충 하고, 차에 올라탔다. 그러자 딸애가 내 손을 잠깐 보는가 싶더니 이내 인상을 찌푸리는 것이다.
“어머! 아빠 손 좀 봐. 추운데 장갑이라도 끼지 않고?”
손이 까칠하게 상해있는 것이 큰애 눈엔 무척 가여웠었나 보다.
“아니야. 일할 땐 그냥 맨손이 젤 편해.”
“에이 그래두...”
라고 하더니 큰애가 내손을 자기 쪽으로 가져다가 쥔다. 그리고 허물이라도 벗겨 낼 듯 마구 비벼대는 것이다. 한참을 냉기에 노출되어 있었던 터라 불을 갓 지핀 아랫목보다도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오른쪽 손에 취하는 큰애의 정성스러움을 왼쪽 손으로 저지하는 동시에 두 손을 꼭 잡으며 한마디 건네었다.
“혜미야. 아빠 많이 원망스럽지?”
그간 미안했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었다. 미안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아니, 왜? 아빠가 왜 원망스러워?”
큰애의 표정은 도무지 납득 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원망스럽지. 학교 공부도 똑바로 못 시켜주고 말이야. 너 아르바이트 하느라 공부 할 시간도 별로 없을 것 아니야.”
“아냐. 그렇지 않아. 나 학교를 바리스타 과에 들어갔잖아? 그곳에선 나처럼 수업 끝나고 일 배울 겸 커피숍에서 일하는 애들 많아. 나도 그냥 그런 애들 중에 한명일 뿐이고, 일도 일주일에 3일 뿐이 안하는데 뭘. 나 공부 할 시간은 충분하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아빠.”
큰애가 말은 저렇게 하지만 그래도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그래도 못난 애비 만나 너희들 용돈도 한번 제대로 못 챙겨 주는 것을… 한창 사고 싶은 것들도 많은 나이일 텐데…”
“아니야. 아빠가 왜 못났어? 이렇게 우리들 때문에 추운날씨에도 밖에 나와서 고생하고 있잖아! 난 충분히 내 꿈을 위해서 잘 살아가고 있고, 충분히 행복하니깐 다신 그런 생각하지 마. 아빠”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응, 난 요즘 하루하루가 정말 즐거워! 언젠간 나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 해주는 멋진 바리스타가 될 테니깐, 그때까지 잘 지켜봐 달라구!”
적당히 차가 대펴져서 슬슬 기어를 넣고 달리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는 중에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딸애가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니 무척 고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기도 했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했다. 어찌 보면 애비로써 자식들에게 가장 면목이 없었던 것은 넉넉한 생활을 안겨주지 못한 것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나에게 어떤 것도 기대 할 수가 없었기에 그랬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사실 돌이켜 보면 회사를 퇴직하게 되었을 때, 그때의 나는 너무나 안일했던 것이었다. 이 녀석처럼 무언가 기초부터 다시 공부해 볼 생각을 왜 못했던 것인지. 그 바람에 남이 다 이뤄놓은 분야, 당장에 별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성과에만 공을 들였던 것이다. 스스로 충분한 준비 없이, 그저 남이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다보니 위기 앞에서 제대로 대처할 능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날부로 나는 남은 인생만이라도 달리 살아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리 늦은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요즘엔 다들 백세시대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게 따지면 난 이제 겨우 절반쯤 왔을 뿐인 것이었다. 적어도 자식들 앞에서 더 이상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 당장에 큰 결과를 내진 못할지언정 적어도 나에게서 무언가를 기대 할 수 있게 끔은 하고 싶었다. 먼저 떠나간 아내에게도 말이다. 내 비록 노쇠한 몸이지만 아직 이십키로 쯤 되는 쌀 포대 하나 정도는 거뜬히 들 수 있었고, 비록 노안 이지만 책을 읽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이었다.
서점부터 들러 온갖 요리책들을 구입했다. 내 평소 취미가 딸내미들 아침밥 차려 주는 것인데, 요즘 들어서는 전날 팔다가 남은 닭들을 찢어다 주는 것이 다였다. 이것을 제대로 요리해보고 싶어진 것이다. 딸내미들 반응이 좋은 것은 밖에다가 한번 팔아볼 생각으로 말이다. 그래도 내가 손맛 하나는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것이라 자부했었다. 해군시절에도 당당하게 취사병으로 근무할 수 있었고, 집사람이 살아 있을 때 이따금씩 집사람 대신 밥상을 차려주면 딸내미들은 그렇게 칭찬 일색이었었다. 충분히 자신 있었다.
기본 베이스는 전기 구이로 익혀진 닭이다. 이것들을 찢어 넣든지 뭉텅뭉텅 썰어 넣든지 해서 여러 가지 요리들을 만들어 보았다. 요리책에 나오는 래시피의 종류가 어마어마하니 응용할 수 있는 요리의 폭도 정말 무궁무진 했던 것이다. 오늘 만들어 본 요리는 베트남 식 치킨 샐러드였다. 딸내미들 아침 밥상에다가 올렸다.
“어머! 오늘은 샐러드네? 예쁘게 잘 만들었다. 아빠!”
큰 애가 잔뜩 기대를 하며 한입 베어 문다. 하지만 몇 번 씹지도 않고서 표정이 굳어지는 것이었다. 이내 말없이 물을 한 모금 마신다. 그걸 보더니 작은애도 한입 베어 물었다.
“아, 맛없어 이거. 아빠 그냥 나 계란프라이 하나 해주면 안 될까?”
역시 큰애와 달리 작은애는 냉정했다. 저렇게 대 놓고 얘기할 것까진 없지 않겠는가? 이미 큰애의 행동으로 충분히 눈치를 챘었는데 말이다.
“응. 그지? 정말 무슨 맛인지 모르겠어. 아빠. 나도 그냥 계란프라이 하나 해줘.”
이런... 믿었던 큰애마저 계란프라이를 찾는다. 정성스런 이 애비의 요리가 아무리 탐탁지 않았어도 그렇지, 계란프라이 따위와 비교를 당하는 것은 너무나 굴욕적이지 않은가? 나는 아무런 대꾸 없이 계란 두 개를 부쳐다가 애들 앞으로 대령했다. 애들은 내 눈치를 보며 허겁지겁 입안으로 쓸어 담더니 책가방을 챙기고 얼른 밖으로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 날 이후로도 아침밥상의 전쟁은 계속 되었다. 처음에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먹었을 때는 맛이 없으면 죄다 남기는 것으로 의사를 표현했겠지만, 나중에 나의 의도를 알게 되었을 때부터는 자기네들이 무슨 요리 전문가라도 된 것 마냥 열띤 토론들을 벌여대는 것이었다. 그러곤 자기네들끼리 꺄르르 대며 웃기도 하고, 반대로 자기 말들이 서로 맞다고 우겨대기도 했다. 얼마 전에 작은애는 어디서 요리 강좌영상을 잔뜩 구해 와서는 나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확실히 책으로 보는 것 보다는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딸들의 평가가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의 요리 실력이 많이 향상 된 탓도 있을 테고, 재료를 조금 더 성의 있게 구해왔던 탓도 있을 것이다. 그간 재료를 씻고 다지고 하는데 손이 혹사되어 손꼴도 말이 아니게 되었다. 처음엔 습진이 생기는가 싶더니 이젠 거의 만성이 되어 쩍쩍 갈라지기 까지 한다. 심지어 그 사이로 피가 배어나올 때도 있었다. 고춧가루 물에 손을 담가도 쓰리고 짠 물에 담가도 쓰리다. 뜨거운 것도 그냥 만지기 어렵다. 그래서 비닐장갑은 어느 순간 나의 제2의 피부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손목 관절도 성치 못했다. 엄지 쪽 부근이 아프다가도 어쩔 때는 팔꿈치까지 그 통증이 올라오는 것이었다. 물론 나이 탓도 있겠지만, 그간 열심히 했다는 훈장 같은 것으로 나는 생각 하고 싶다. 요즘엔 딸내미들이 내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덕분에 그만한 고통쯤은 까마득하게 잊혀진지 오래다. 그들의 칭찬은 그 어떤 진통제보다도 강력한 것이었다.
“아빠, 이거 정말 괜찮은데? 그치 언니?”
“응, 야채가 아삭아삭 하게 씹히는 것이, 고기랑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양념도 매콤하니 내 입맛에 아주 딱 맞는 것 같고…”
“응, 맞아 맞아. 아빠 이거 너무 맛있어. 이거 팔면 아주 대박 나겠는 걸?”
“아, 그러니? 그래 이거 한번 메뉴에 넣어 봐야겠다!”
이렇게 딸내미들이 만장일치로 좋아해주는 요리가 몇 있었는데 그것들만 따로 추려내어 실제 판매를 한번 해보기로 했다. 재래시장에 있는 철물 코너에 들러 추가 된 메뉴에 맞는 적절한 조리 도구와 음식을 담아낼만한 플라스틱 용기들을 구입했다. 그리고 웬만한 재료들은 미리 준비해 철판에서 간단히 대치는 방식으로 조리 시간을 대폭 단축 시켰다. 차에 붙어있던 현수막도 메뉴가 적혀진 것으로 다시 바꾸어 걸었다. 물론 기존의 두 마리 만 원짜리 통닭도 같이 팔았다.
처음엔 새로운 메뉴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안 가지는가 싶더니, 누구 하나가 주문하는 것을 보고서 행인들이 신기해하기 시작했다. 그간 갈고 닦은 실력은 요리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마치 무협영화를 연상시킬 만큼의 약간의 퍼포먼스를 가미시켜 놓았기 때문에 그렇다. 작은애가 보여준 영상들 중에 그런 것들이 있어서 어느 정도 벤치마킹을 했던 것이었다. 맛에서도 물론 자신이 있었다. 우선 그 입맛 까다로운 딸내미들에게 허락을 받아낸 것을 내어 놓았기에 그랬고, 재료도 결코 허투루 고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다. 심지어 이 딸내미들은 나의 의상까지도 참견하고 나섰었다. 하얀색 가운에 모자, 빨간색 목 끈에 앞치마까지 인터넷 어딘가에서 주문해 나를 입혀놓은 것이었다. 무슨 호텔 쉐프라도 되는 것 마냥 입혀놓으니 처음엔 민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깔끔하게 차려 입는 것이 손님들 입장에선 음식도 깔끔해 뵈고 더 좋을 성 싶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나니 서서히 단골들도 조금씩 늘어가는 것이었다. 언제쯤 이 지역에 오는 것인지 요일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생겼고, 전화번호를 물어 보고서는 미리 주문해놓고 찾아 가는 경우도 생긴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 때문에 최근에 명함도 한 장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음식담은 비닐봉투 안에다가 같이 넣어 줬다. 후에 그 명함들을 열장씩 모아 오면 서비스로 메뉴 하나를 공짜로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역시나 반응이 좋았다. 요리를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지 꼬박 5년 만의 일이었다.
하루는 어느 비슷한 연배의 늙은 양반하나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한참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담배하나 꼴아 물고 나를 쳐다보더니, 일이 잠깐 잠잠해 진 틈을 타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눈가로 깊게 페인 주름살에 머리도 양껏 희끗한 것이 나보다도 더 노쇠해 보이는 양반이었다.
“저기, 말씀 좀 여쭙겠수다. 시간 좀 내어 줄 수 있겠능교?”
“아, 그럼요. 무슨 일이 십니까?”
“저, 다른 게 아이라. 내도 이 비슷한 장사를 함 해보고 싶은데, 조언 좀 부탁드릴까 하고예.”
몹시 어눌해 뵈는 말투에다, 눈썹 양끝을 아랫방향으로 떨어트리며 미간을 찡그리는 것이 측은해 뵈기까지 하는 것이다. 종이컵에 커피 봉지를 하나 뜯어 넣고서 뜨거운 물을 부어 건네주었다.
“아이고, 고맙심다. 맘씨도 참 고우시네예.”
“하하. 거 무슨 사연이 있으신지요? 늦은 나이에 이런 노점을 생각하시다니요.”
“사연이야 뭐 다 비슷한 거 아니겠능교? 다 돈 때문이지예. 얼마전가지만 해도 아파트에서 경비로 일하다가 최근에 한번 졸았다는 이유로 냉큼 잘려 버렸지 뭡니꺼. 당최 24시간을 못 자게 하는데 무슨 수로 버텨 내겠심니꺼?”
듣자하니 이 양반도 퇴직 이후에 변변한 일자리를 못 찾아 골머리를 썩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 그러시군요. 내가 뭐 딱히 얘기를 드린대도 별 다를 게 있겠습니까? 그저 늙은 것이 죄지요. 이따가 시간이 되시면 일 끝나고나 얘기 좀 더 나누시지요.”
“아이고. 그래 주시겠습니꺼? 아이고 고맙심다. 참말로 고맙심다.”
이 양반이 꾸벅꾸벅 인사하는 통에 차마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어찌되었건 일을 마치고서 동네 호프집에 앉아 장시간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한참을 듣고 있자니 나 못지않게 이양반도 참 딱한 사정이 많은 것이었다. 젊은 시절 외간남자랑 바람이 나 집을 나가버린 마누라 이야기며, 애비 건강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돈만 밝히는 자식 놈들 이야기며 가만히 듣고 있자니 분통이 터지는 얘기들 투성이였다. 도무지 술이라도 된통 들이붓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것이었다.
얼마 전 큰애가 자기가 대학 다닐 적부터 일했던 커피숍에서 매니저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새 의젓하게 자란 큰애의 모습이 이 애비보다도 더 어른스러워 보이는 것이었다. 최근 장사가 너무 잘돼주는 바람에 큰애 학자금 대출은 벌써 갚아 버린 상태였고, 돈도 이제 어느 정도 모였으니 슬슬 가게를 다시 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그것을 큰애한테 한번 진지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혜미야. 아빠가 이번에 가게를 다시 내볼까 생각중인데... 너 생각은 어떠니?”
“앗! 정말이야. 아빠?”
큰애가 화들짝 놀라면서 대답한다.
“그래. 이제 아빠도 제대로 자리 잡고서 장사해야 되지 않겠어?”
“응! 그래야지 아빠! 근데 말이야... 아빠, 이건 어때?”
큰애가 생각보다 호들갑을 떠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얘기 안 해줬으면 무척 서운해 할 뻔 했다.
“아빠, 그거 나랑 같이 하자!”
그런데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었다.
“엥? 그것이 무슨 말이냐. 너 지금 하는 일이 따로 있잖아?”
“응. 그렇긴 한데... 아빠. 나도 돈을 조금 보탤 테니까 나랑 같이하자. 아빤 치킨 팔구 난 커피 팔구.”
뭐, 돈 까지 보태 준다고 하니 고맙기는 하지만, 여전히 영 납득하기 어려운 소리였다.
“음... 치킨가게에서 커피를 팔다니... 그걸 누가 사먹겠나?”
“아니. 가게 안에서 파는 게 아니라 테이크아웃으로 팔 거야. 가게 입구 쪽에 자리 하나만 내줘.”
“테... 테이크아웃?”
“응. 책에서 봤는데... 서로 다른 업종끼리 협업할 때 매출이 서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구 그랬어. 예를 들면, 과일가게 앞에서 옷을 팔던 노점이 있었는데, 그 노점에서 옷을 사러 왔다가 과일 가게를 보고 과일도 같이 사게 되는 경우 말이지. 아마 우리도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빠 생각은 어때?”
“오호라... 그런 생각은 아빠가 미처 못 해봤구나. 나야 혜미만 좋다면 언제든 오케이지!”
큰애가 잘 배운 티를 내는 것인지, 우선 말싸움부터 상대가 안 되는 통에 두 손, 두 발 다 드는 수밖에 없던 것이다. 더군다나 내 딸이 같이 가게를 하자는데 거절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설사 말아 먹는다 손 치더라도 난 같이 하는 쪽을 택할 것이었다.
노점을 하던 트럭과 장비는 전의 그 노쇠한 양반에게 간단히 사용법만 알려주고 헐값에 팔아 넘겼다. 기존에 내가 있던 자리에서 계속 장사를 하게 되면 최소한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은 벌 것이었다. 그리고 큰애와 같이 가게를 하나 구하게 되었다. 새롭게 구하게 된 가게는 예전의 가게 평수보단 훨씬 좁은 것이었지만 더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입구 왼편 유리창에는 통닭 굽는 기계와 나의 주방이 자리 잡게 했고, 그 오른편 유리창에는 딸애의 커피 가게가 자리 잡게 하였다. 노점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내가 요리하는 모습은 창문을 통해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했고, 큰애는 뚫어진 창문을 통해 커피들을 판매할 수 있게 했다. 역시 딸애의 말처럼 서로의 매출이 연결되어 나가는 것이었다. 식사를 마친 손님이 추가로 커피를 사 먹는가 하면 커피를 드시러 왔다가 가게 안으로 들어와 식사도 같이 하는 식으로 말이다. 작은애도 이따금씩 가게에 와서 일손을 도와주었다. 일하는 직원이 부족해서는 아니고, 저 용돈 필요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었다. 이제 대학 새내기가 되었으니 잔뜩 멋을 부린답시고 돈이 왕창 필요한 모양이었다. 굳이 일 안한다고 해서 애비가 용돈 안주는 것은 아닐 텐데 그 정도 가지고는 도무지 성에 안차는 것이었다. 사실 가게에 와서 일하는 모습이라도 잠깐 보고 싶어 일부러 돈을 적게 준 것도 있었다. 그래봤자 고작 두어 시간에 불과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생전 코빼기 한번 안 비치는 녀석이니 별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내겐 고마운 일인 것이다. 그래서 짓게 된 가게 이름 또한 ‘아빠와 딸의 치킨커피’였다.
가게가 끝날 때쯤이면 큰애는 금고 통에 있는 그날 번 돈들을 꺼내어 꼭 지어미처럼 간추려 나가는 것이었다. 구겨진 지폐들의 귀퉁이를 곱게 펴다 못해 그 방향까지 맞춰 놓고 있는 것 말이다. 심지어 그것을 고무줄로 탱탱하게 감기까지 한다. 누가 그 어미에 그 딸 아니랄까봐 걱정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예전의 그 힘들었던 시기가 무색해질 만큼의 쓰나미 같은 행복감이 밀려왔다. 곧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맛보게 된 제 2의 인생인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에 안주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훗날 다시 만나게 될 그녀에게 더 많은 얘기를 들려주고 싶어서라도 계속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노력해 나갈 것이다. 그녀는 그런 나를 멀리서 나마 여전히 응원해 주고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 당신이 있는데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지금보다도 더 당당하게 살아 보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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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늦기전 무엇인가 해 봐야겠습니다...
네에~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필 같습니다 용기내시고 굳은 신념으로 성숙된 삶의향기를 토대위에 세우소서
감사합니다. 님의 말씀 덕분에 용기가 납니다.^^
저의생각임니다 實話든 만든이야기든 수신자가 즐거우면됨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ㅎ
카페댁글도誠意.回信도없음니다
個人에自由이지도의에버서난 行爲 전화오면밭어야함니다 이 메일도 갈은原理
禮意가필요함니다(답신자기편리한대로하면됨니다 )
제2에人生 삶에뚯 마음이
正當해야함니다自殺이린 하늘에뜻을어기은行爲
인명在天임니다
네에.. 댓글 감사합니다.^^ 좋으신 말씀 감사합니다.ㅎ
길지만 잘 읽였읍니다..향상 행복 기원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세요~
수고하셨읍니다 잘보고갑니다
잘보았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