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과거로 추억 여행을 따나 보겠다.
아들이 미국의 주립대학에 합격해서 공부하게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은 함께 미국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때 캐나다 국경의 나이아가라 폭포와 뉴욕의 센트럴파크며 자유의 여신상도 둘러보았다. 또 미국 동부에 있는 유명 대학들도 둘러보며 아이비리그 대학 패키지여행을 했다. 그런 일정을 소화한 후에 맨해튼의 호텔에서 자유롭게 지내게 되었기에 오붓하게 가족이 맨해튼의 저녁 산책을 나섰다.
그때 우연히 록펠러센터에 발길이 닿았고 마침 저녁 시간이 되어서 그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우리가 안내된 곳은 지하광장으로 황금빛 프로메테우스 동상이 있는 바로 앞자리였다. 프로메테우스 동상이 상징하는 특별한 의미도 모른 채 들뜨고 분위기에 젖어서 가족이 맛있게 식사를 했다.
록펠러센터의 황금빛 프로메테우스 동상은 자신을 향한 욕심과 탐욕에서 벗어나는 순간 새로운 세상의 문이 열리는데, 이웃과 나누고 함께하는 삶이 진정한 행복이고 축복이라는 것을 웅변으로 말하고 있지 않았을까.
서른세 살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마흔세 살에 미국 최대의 부자가 되었으며 쉰세 살에 세계 최대의 갑부가 된 록펠러. 하지만 그는 당시에 늘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이었고 행복하지 못했다.
그런 록펠러는 쉰다섯 살이 됐을 때 희귀 병에 걸렸고 일 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게 되었다. 그가 마지막 검진을 받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병원에 왔을 때였다. 마침 병원의 로비에 걸려있던 액자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주는 자가 받는 자 보다 복이 있다"
그런 액자를 읽는 순간 죽음을 눈앞에 둔 록펠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많은 부를 쌓는 동안 한 번도 남을 돕지 않았던 지나온 삶이 문득 돌아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 병원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허름한 옷차림의 여자가 병원 관계자들과 다투고 있었다. 병원 측은 병원비가 없으니 입원이 안 된다고 하고 환자의 어머니는 제발 딸을 살려달라며 사정하고 있었다.
록펠러는 비서를 시켜서 그 환자의 병원비를 지불하고 누가 지불했는지 모르게 했다. 록펠러가 은밀하게 도왔던 소녀는 기적적으로 회복이 되었는데 병원에서 조용히 소녀를 지켜보던 록펠러는 매우 기뻤다. 후에 그는 자서전에 이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저는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록펠러는 그 후로 가난한 이들을 도우며 나눔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와 동시에 신기하게도 그의 병은 사라졌고 98세까지 살면서 재단을 통해 좋은 일을 하는데 많은 힘을 기울였다.
그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회고했다.
"갑부로 살던 인생 전반기 55년 동안 나는 늘 쫓기며 살았지만, 나누며 살던 후반기 43년은 정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요즘 추위가 만만치 않다. 오늘도 수은주는 뚝 떨어졌고 매서운 한파 속에서도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찬란하다.
나는 최근에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좋은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비어있던 시골집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래서 불행하냐고 묻는다면 이런 대답을 들려주고 싶다.
삶이란 주어진 여건에서 최대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불평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최대한 열심히 살아서 그런 운명과 환경을 이겨내고 극복해 내는 것 말이다. 그런 과정에서 보람과 행복도 찾아오고 또 자신감과 의지도 굳건해지며 영적으로도 훌쩍 성장하는 것에 틀림없다. (2018년 12월)
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