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여러분! 이렇게 뵙게 되니, 겁나게 반갑습니다! ‘국민 여러분’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너무 신선하고 좋아서, 나도 한 번 꼭 써먹어야 쓰겠다 했는데, 오늘 그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덕분에 감사합니다. 누가 하신 말씀인 줄은 잘 아시죠? 지난 번 언제였죠? 예, 잘들 아시네요! 지난 여전도연합회 사경회 때, 백동조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죠. 이렇게 하나도 안 잊어버리신 거 보니까 여기 계신 분들은 치매 걱정은 안 해도 쓰겠습니다! 아멘!
오늘 본문 말씀은 교회에 발걸음 몇 발짝만 디뎠다 해도 다들 아시는 내용인지라 새로울 거라고는 한나도 없는 내용일 겁니다. 어쩌면 여러분들이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내용일지도 모릅니다. 비록 짧기는 하더라도,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다 알고 있고, 새로울 거 하나도 없는 것에서 뜻하지 않게 은혜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오늘 다 알고 있는 내용, 헛심 삼아 들으시다가 기대도 하지 않았던 은혜를 충만히 받으시는 그런 시간 되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오늘의 주인공, 요나는, 성경 사전을 찾아 보니까, 갈릴리 근처 가드헤벨 사람이고, 아밋대의 아들이며, 북이스라엘 요아스 왕과 여로보암 2세 왕 때(기원전 780-753경), 선지자로 활약했던 사람이랍니다. 요나서 말고 다른 성경에도 요나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찾아 보실까요? 열왕기하 14장 25절 말씀, 한번 띄워 주시겠습니까? 같이 읽어보시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아멘!
이러한 요나에게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하십니다.(욘1:1-2) 약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시의 시대 상황을 말씀드리자면, 기원전 780-750년 경은 앗수르 제국, 지금의 이라크 북부지방에 세워진 나라가 중동지역을 주름 잡던 시절입니다.
연도 얘기가 나오면 머리가 아픕니다. 그때가 언제쯤인지 감을 잡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그래서 비교를 해보면 그나마 조금 더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비슷한 시기 우리 나라와 비교 한번 해볼까요? 우리 나라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요? 답은 안타깝게도 ‘잘 모릅니다.’입니다. 그 당시 역사 기록이 없기 때문이죠. 고조선은 들어보셨죠? 그 고조선 시대인 것만 알 뿐입니다. 그럼 중국은 어떨까요? 공자는 다들 아시죠? 공자가 기원전 550년 경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요나는 공자보다 230년 먼저 활동했던 사람이고요, 공자 얘기 들으니 이 얘기가 얼마나 멀고 먼 옛날 얘기인 지 감이 좀 잡히시죠?
중국이 동아시아의 중심이었다면, 중동 지역에서는 앗수르가 중심 국가였습니다. 수도가 발음이 조금 어려운데요, ‘니느웨’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는 주변의 나라들을 끊임없이 침략하여, 성읍을 파괴하고, 재물을 약탈하고, 포로들을 사로잡아 노예로 부려먹기 위해 끌고 갔던 포악하기 그지없는 나라였습니다. 북이스라엘 왕국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앗수르를 미워했고, 원수처럼 여겼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그런 나라가 하나 옆에 있죠? 우리 나라를 몇 차례 쳐들어와서 전국토를 유린한 적도 있고, 심지어 식민지까지 삼았던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가 하나님께 범죄하여 망하게 생겼답니다. 요나서 1장 2절. 한 번 찾아 보겠습니다. 찾으셨죠? 같이 읽겠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사람 입장으로는 옳다꾸나! 하고 박수칠 일인데,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에 회개할 기회를 주시겠다는 겁니다. 여러분이라면 철천지 원수의 나라 망하게 생겼으니, 그 나라에 가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 말씀 전하라 하면, 어쩌시겠습니까?
여기서 제가 고백할 게 하나 있는데, 수많은 선지자 중에 요나가 제일 맘에 드는 부분이 여기에 있습니다. 능력이 뛰어난 선지자인 엘리야, 엘리사도 좋고, 후대의 일들을 정확하게 예언한 이사야, 다니엘 같은 선지자도 좋지만, 어찌보면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저같이 생긴 사람이 요나가 아닌가 해서, 물론, 요나에 비하면 저는 암것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요나는 가라고 하니까, 가긴 갑니다. 그런데 어디로 갑니까? 정반대로 갑니다. 하! 멋져부러! 원수들 구원받게 하느니 차라리 저 멀리 도망가는 게 낫겠다 생각한 거겠죠? 그뿐 아닙니다. 성질도 고약한데다가, 고집도 이런 똥고집이 없습니다. 이건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니까, 제가 읽어드릴게요. 화면에는 말씀을 좀 띄워 주세요! 요나서 3장 10절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시지 않은 거예요. 그랬더니, 요나서 4장 1절.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또 3절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요나는 아예 ‘배 째라!’ 이겁니다.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박넝쿨을 시들어 죽게 하자 요나가 보인 반응입니다. 9절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잘 했다는 겁니다.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하면서, 온갖 투정 다 부리고, 성질도 고약하고, 고집도 그야말로 똥고집인 요나를, 하나님은 어르고 달래면서 그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선지자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제가 감동을 먹는 겁니다. 그래! 나같이 미련하고, 어리석고, 성질 더럽고, 제 멋대로인 형편없는 사람도, 하나님께서는 쓰시겠다고, 들어 쓰시겠다고 하시는 거구나! 나도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저만 그런가요? 아님 같이 박수 한번 치십시다! 우리 누구나 다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멘? 아멘!
이제 서론이 끝났습니다! 하하하, 본론 시작해야죠? 오늘 말씀의 제목이 뭐였죠? ‘요나의 박넝쿨’이죠? 사실 제목부터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요나에게 주신 것이니 요나의 박넝쿨이기도 하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요나의 박넝쿨이 아닌 것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이렇게 제목부터 알쏭달쏭한 이 박넝쿨을 통해 몇 가지 은혜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첫 번째! ‘착각하지 말라!’입니다.
이미 읽었던 성경 구절이죠. 요나서 4장 6절 말씀.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요나는 그 더러운 성질머리를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는 심산으로 성밖으로 나갑니다. 니느웨 동쪽 저만치 떨어져서, -혹시라도 성읍이 멸망할 때, 같이 죽기는 싫었나 봅니다.- 니느웨가 망하는 모습을 보겠다는 겁니다. 사실 이미 3장 1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시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는데도, 요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 바깥은 사막입니다. 낮이면 뜨거운 태양 아래 그대로 노출되는 그런 곳입니다. 그래서 딴에 햇빛을 피해보겠다고 초막도 하나 지어 놓았습니다만,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던 거죠! 그 모습을 보신 하나님이 안타깝고 불쌍해서 ‘박넝쿨’을 준비하신 겁니다. 이로 인해 요나는 ‘크게 기뻐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상상을 한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뙤약볕에서 일하실 때 그늘이 얼마나 시원한지 다들 아시잖아요? 그런데 그것도 잠시. 이튿날 새벽에 벌레들로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십니다. 그리고 뜨거운 동풍까지 더해서 불게하니, 요나는 정신이 혼미해지고 죽게 해달라고 기도까지 합니다. 그리곤 성질을 내기 시작합니다. 9절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라고 말이죠.
왜 요나는 화를 냈을까요? 자기가 아끼던 박넝쿨이 하루 아침에 죽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내 박넝쿨’이 사라졌기 때문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 박넝쿨이 요나의 것이었습니까? 아니죠? 분명히 하나님이 예비하셨다고 말씀하셨거든요.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자기 것으로 착각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 요나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성경에 또 다른 예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6절부터 20절 말씀인데요. 부자가 곡식을 거두고는 ‘쌓아둘 곳이 없으니 더 크게 짓고, 이제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리라’ 했다가 어찌 되었습니까? 20절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재물뿐입니까? 사람의 목숨마저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우리는 종종, 내게 있는 것이 내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재산, 내 건강, 내 자녀, 내 생명. 그런데 그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내것으로 있을 수가 없는 것들 아닌가요? 저 같은 경우 우리 아이들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가장 많이 화가 납니다. 요나가 박넝쿨로 화낸 것처럼요. 하나님이 주신 자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자녀를 내 것인 냥 착각하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아멘!
두 번째! ‘하나님 뜻 안에서 구하라!’입니다.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라고 요나가 화를 낸 것이, 박넝쿨을 자기 것으로 착각한 것도 있겠지만, 더 크고 결정적인 이유는, 그 박넝쿨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요나는 원수 나라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망하기만 고대하고 있었는데, 그것 조차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까닭에 이미 화가 잔뜩 나 있는 상태였거든요. 니느웨 성도 자기 뜻대로 멸망 당하지 않게 된 데다, 아끼던 박넝쿨마저 자신의 뜻과는 달리 시들어 죽어 없어지니, 엎친데 덮친 격이었겠죠?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요나의 소원은 니느웨가 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박넝쿨이 뜨거운 햇빛을 가려 시원하게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어땠습니까? 하나님은 니느웨가 구원받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요나의 뜻은 달랐습니다. 요나는 자신의 요구를 하나님께 구했지만, 하나님은 들어 주시지 않은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라 하시지만, 한 가지 더, 하나님 뜻 안에서 구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생각대로, 우리 뜻대로 하나님을 사용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4월 마지막주에 당회가 있었습니다. 그날 목사님께서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5월 15일 수요예배 설교를 장로님 중에 한 분이 해 주셔야 된다고. 목사님께서 해외 출타를 하셔야 한다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다음 순번 따지니까 저더라구요. 어쩔 수없이 그 자리에선 ‘예!’ 하고 나왔지요. 그리고 나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목사님 해외 여행 못가게 해 주십시요. 날씨를 험하게 하시든지, 계획이 변경되든지 어떻게든 이날 제가 설교하는 일이 없도록 해 주십시요.” 라구요. 물론 잠깐 쬐끔 했습니다. 이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주셨을까요? 들어 주셨다면,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없어야겠지요? 아마도 이 기도는 하나님 뜻 안에서 이루어진 기도가 아닌 것 같습니다.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 뜻 안에서 나의 필요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박넝쿨을 통해서 요나가 하나님 뜻을 헤아리기를, 하나님 뜻을 깨닫게 되기를 원하셨던 겁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뜻은 헤아리지 못한 채, 백날 천날 자신의 요구를 구했다 할지라도, 그 기도는 응답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사람들 누구나 하나님께 죽도록 떼쓰는 기도만 할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헤아리고, 아버지께 구하여,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나산교회 성도님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생명을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4장 10절부터 11절 같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아멘!
하나님의 시각으로 다시 말하자면, “요나야, 너는 이 박넝쿨 하나도 소중하게 생각하는구나! 그런데 십이만 명이나 사는 니느웨는 왜 소중히 여기지 않느냐? 사람의 목숨이 저 박넝쿨만도 못하다는 말이냐? 나는 한 사람의 생명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러니 어찌 저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 둘 수 있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요나의 생각으로는 원수들이 구원받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일어나서도 안 될 일이었습니다. 박넝쿨은 자신에게 소중한 것일 수는 있어도, 저 큰 성읍 니느웨의 백성들의 목숨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요나의 투정과 불평을 징계하지도 않으시면서, 하찮은 박넝쿨을 통해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생명의 말씀이 전해져야 했습니다. 그 일을 위해 요나를 택하셨고, 불평쟁이, 고집쟁이, 고약한 성질머리를 가진, 골통 민족주의자를 당신의 일꾼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요나는 말씀을 받은 사람입니다. 저나 여러분도 말씀을 받은 사람입니다. 요나는 말씀을 받고 전하지 않으려 했다가 고초를 겪고 나서야 받은 말씀을 전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요? 나의 이기심, 나의 고집, 나의 편협한 생각과 판단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해도 괜찮을까요? 받은 말씀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자, 우리에게 부여한 사명이기도 합니다. 말씀을 전하게 하기 위해 부름받은 사람이 저와 여러분임을 믿으시면, 아멘? 아멘!
말씀을 전하는 데, 내편 네편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은 미우니까 싫어! 그 사람은 나에게 상처를 줬던 사람이까 안돼! 우리의 원수된 나라에는 복음을 전할 수 없어! 이렇게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깨닫기 이전의 요나와 같은 사람일 겁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을 똑같이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요나를 통해, 요나의 박넝쿨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라고 찬송은 열심히 부르면서도 정작 우리의 입술은 지퍼 쫙 닫고, 우리의 발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만든 넌센스 문제 하나 낼게요. 맞쳐 보십시요! 세상에는 바다해 자가 들어간 바다가 많습니다. 동해, 서해, 남해, 북극해, 남극해 등등.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작고 얕으면서도 가장 험하고 요동치는 바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든 바다가 있습니다. 이 바다는 무얼까요? 힌트 앞에서 제가 예로 든 바다의 숫자를 합하면 알 수 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오해입니다.
나만을 위해, 나의 원한 갚기를 위해, 나의 분풀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일해 주실 것을 간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오해한 처사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네 원수조차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요나에게 원수의 나라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하신, 오늘의 말씀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착각과 오해에 빠지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문제. 오해의 반대말은 무얼까요? 오해의 40프로밖엔 되지 않지만, 가장 큰 바다입니다. 이 바다에 빠지면, 시험이 와도 걱정이 없고, 이 바다에 빠지면 항상 즐겁고 감사가 넘칩니다. 무얼까요? 센스가 만점이십니다! 네. 이해입니다. 모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시는, 원수조차도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신 분이라면,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라고 자신 있게 외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니느웨는 망했을까요? 역사는 말해 줍니다. 요나의 말씀 전파 이후로 150년도 더 지나서, 기원전 609년에야 앗수르는 멸망합니다. 그럼 요나가 살았던 북이스라엘은 어땠을까요? 안타깝게도 북이스라엘은 요나의 말씀 전파 이후 채 30년이 되지 않은 기원전 722년에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고 맙니다. 역설적이죠? 망할 거라던 앗수르는 망하지 않고, 정작 경고하러 보냈던 선지자의 나라는 망하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그 이유이자 답은 회개에 있습니다. 앗수르는 복음을 듣고 회개했지만, 하나님께서 더 많은 선지자를 보냈던 이스라엘은 끝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곧 생명입니다. 말씀 받고 회개하면 구원이지만, 말씀을 거부하면 죽음이요, 멸망입니다. 오늘 이 말씀 받으신 나산교회 성도님들은 생명책 안에 계신 줄 믿습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그럼 요나는 정말 깨달았을까요? 요나서의 결말은 문학적 용어를 빌리자면 ‘열린 결말’입니다.
저는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전혀 성경과는 관련 없지만요. 제가 20대 때 항해사로 태국에 갔을 때입니다. 시내를 구경갔는데, 태국 사람이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아유 재패니스?” 하는 겁니다. 번역해야 하나요? “너 일본사람이니?” 그래서 기분은 좀 나빴지만, 점잖게 “노!, 아임 코리안!” 했죠. 나 한국사람이야. 그랬더니, “노, 노! 유 아 재패니스!” 아니,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데, 왜 지가 정색을 해가면서 나를 일본놈 만드는 거냐고요?
여러분들도 기도 많이 하시고 계시니까, 다들 하나님께 응답 받으신 경험들도 많으시겠죠? 저도 아주 많지는 않은 것 같지만, 상당히 많이 응답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일을 하나 들려 드리겠습니다. 제가 목포 해양대를 졸업하고, 처음 항해사로 나가게 된 때가 1990년 3월이었습니다. 그때는 한국과 동남아를 주로 왔다갔다 했는데, 첫 항해는 태국이었습니다. 태국에 가서 사탕수수를 싣고 여수로 들어온 것이 5월쯤 되었을 겁니다. 며칠 동안 화물 하역 작업을 해야 해서 2박 3일로 외박을 나오게 되었고, 저는 저의 신앙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목포로 향했습니다. 고아원도 찾아가고, 교회도 찾아가고, 학교도 들러서 후배들도 만나고, 우리를 지도해 주셨던 간사님도 만나고 하다보니, 수중에 있던 돈이 거의 바닥이 났습니다. 그래도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기에 크게 걱정은 하지 않고, 이튿날 오전 목포를 떠났습니다. 광주에 들러서 당시 전경으로 근무하고 있던 친형님을 만나 돈을 좀 빌릴 요량이었죠. 형님이 근무하는 곳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송수경(병장) 좀 바꿔달라 했더니, 출동 나가고 없다는 겁니다. 순간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믿는 구석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허둥지둥 주머니를 뒤져 보았습니다. 천원 짜리 몇 장이 나왔는데, 그걸로는 광주에서 순천까지 가는 기차표 밖에는 구할 수가 없는 돈이었습니다. 기차에 오른 뒤로는 온통 순천에서 여수까지 어떻게 가느냐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기도가 절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여수까지 갈 차비가 없습니다. 여수에 가지 못하면, 배로 돌아갈 수가 없고, 배로 돌아가지 못하면, 출항하는 배를 탈 수가 없습니다. 내일 아침에 출항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방법을 알려 주십시요. 하나님 제가 그래도 명색이 하나님 아들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 아들이 세상 사람들한테 구걸이나 하고 다녀서야 쓰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십시요.” 간절히 기도하다가 순천역에 내렸습니다. 한밤중이었고, 여수에 가려면 버스터미널로 가서 버스로 갈아 타야 했습니다. 이미 버스는 끊겼기 때문에 첫차가 운행할 시간이 되려면 몇 시간은 기다려야 했습니다. 순천역에서 버스터미널까지 갈 교통비도 없었기 때문에 걸어가야 했습니다. 걸어가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신다면, 가는 길에 증표를 보여 주십시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길 바닥에 반짝이는 게 보이는 겁니다. 백원 짜리 동전이었습니다. 몇 발짝 걸어가다 보면 또 동전이 보이고, 공중전화 박스가 나와서 들어가 보면 거기에도 동전이 보이고, 수화기를 들었다 내리면 동전이 후두둑 떨어지고, 심지어 오백원 짜리 동전까지 전화기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터미널까지 갔는지 몰라요. 그냥 동전 줍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요. 터미널에 도착해서 여수까지 가는 버스비를 보고, 수중에 들고 있는 동전을 세어 보니, 차비를 내고도 몇 백원이 더 남을 정도였습니다.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저의 아버지십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 말을 얼마나 많이 속으로 외쳤는지 모릅니다. 그날 이후로도 길거리를 다니면서 혹시나 하고 땅바닥이나 공중 전화 박스를 훑어 보고 다녀봤지만, 어쩌다 백원 짜리 한두 개 줍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날의 일을 저는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장 확실하게, 그리고 가장 신속하게 응답해 주신 기도라고 말이죠. 그때 여수로 가지 못했으면, 우리 배는 여수를 떠났을 테고, 저는 직장을 잃었겠지요?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은 제 기도가 아마도 하나님 뜻 안에 있었던 기도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자각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품격을 지키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 하나님 마음에 들지 않았나 하고 말이죠.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국민 여러분! 신선하고 좋아서 써보고 싶었음
여전도연합회 사경회, 백동조 목사님
안 잊어버리신 거 보니 치매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새로울 거 하나 없는 다들 아는 내용
헛심 삼아 들으시다가 은혜 충만히 받으시길 바랍니다.
요나 갈릴리 아밋대의 아들 여로보암 2세 왕때(전 780-750)
하나님, 니느웨로 가서 말씀 전하라 명하심
시대상황 보충 설명
우리나라 고조선, 중국 공자 550년 출생. 그보다 230년 전
중국-동아시아의 중심, 앗수르-중동의 중심, 수도-니느웨
앗수르, 주변국 침략, 약탈 파괴 포로, 악명 높은 나라
이스라엘, 앗수르의 침략받아 원수됨 / 우리, 비슷한 옆 나라
욘1:2 니느웨로 가라, 악독이 상달
니느웨가 범죄하여 망하게 생겼으니 회개할 기회를 주시겠다
옳다구나! 박수칠 일.
고백,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다니엘 좋지만
요나가 좋음-인간적, 나같음, 가라니까 정반대로 감. 멋짐, 성질고약, 똥고집 / 욘3:10, 욘4:1, 욘4:3, 욘4:9
재앙 안 내림, 싫어하고 성냄, 배째라, 죽어도 내가 잘함
하나님, 이런 요나 쓰심. 감동! 나도 쓰임 받을 수, 여러분도
서론 끝 본론 시작, 요나의 박넝쿨-맞기도 틀리기도
1. 착각하지 말라 욘4:6,
성밖, 재앙을 고대, 사막-뜨거운 태양, 박넝쿨로 기뻐함.
박넝쿨 없어짐-욘4:9, 성내어 죽을지라도 내가 옳다. 화냄. 왜?
내 박넝쿨로 착각,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
성경의 또 다른 예, 눅12:16-20,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재산, 건강, 자녀, 생명 어떤 것도 내것 아님, 하나님 주신 것.
2. 하나님 뜻 안에서 구하라
요나, 화낸 결정적 이유-자기 뜻대로 되지 않음(니느웨도)
요나의 소원-니느웨멸망, 박넝쿨 ㅇㅋ / 하나님 뜻-구원
하나님 뜻 안에서 구할 때 응답, 박넝쿨 통해 깨닫게 하심
하나님 뜻 먼저 헤아리고 구하여,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길
3. 하나님은 생명을 귀하게 여기신다. 욘4:10-11
하나님 시각, 요나 너는 박넝쿨 소중히 여기는구나, 그런데
12만 니느웨는 박넝쿨만도 못하게 여기는구나!
하나님, 생명을 귀하게 여기심. 그들을 살리기 위해
불평쟁이, 고집쟁이, 성질머리 고약한, 꼴통 요나를 택하심
말씀 받은 자, 전해야 함. 나의 이기심, 고집, 편협 버려야.
말씀 전하는 것, 순종이자 사명. 우리는 부름 받은 자임을…
말씀 전함에 내편네편 없음, 미우니까 싫어, 상처줬으니 안돼,
원수에게 못 전해! 하는 사람-깨닫기 전의 요나
하나님, 요나와 박넝쿨을 통해 생명을 귀하게 여기심, 알게
입술에 지퍼, 우리 발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반성
넌센스, 바다해, 가장 작고 얕음, but 가장 험하고, 헤어나오기
나, 원한, 분풀이 위해 하나님께서 일해 주실 것을 간구-오해
원수조차 사랑, 원수 나라에 말씀 전파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착각과 오해에 빠지지 말기를
오해의 반대말, 오해의 40%, 가장 큰 바다, 시험와도 걱정x
빠지면 감사, 이해, 모든 생명 소중히, 원수조차 사랑하라는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부름받아 나선 이몸 어디든지, 외침
니느웨 150년 후, 609년 멸망, 이스라엘 30년 안돼 722망함
역설적, 이유-회개여부 / 니느웨는 회개, 이스라엘은 거부
말씀은 생명, 받고 회개하면 구원, 거부하면 멸망
오늘 말씀 받으신 나산교회 성도들, 생명책 안에 계신 줄 믿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