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와 의사
한상진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은 “철학적 탐구(Philosopical Investigation)에서 ”인간의 몸은 인간 영혼의 최고의 그림이다“ 그는 또한 얼굴은 몸의 영혼이라고 하였다. 몸은 행동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의 핵심이며, 인간의 영혼으로 존재한다. 현실 세계에서 몸은 영혼과 언어, 사회 안에서 머물며 서로를 엮어나가는 모든 것의 중심이며 축이다. 가브리엘 마르셀(G. Marcel)이 지적한 것처럼 ”나는 곧 나의 몸이며(주체로서) 몸의 실재성이야말로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찾게 하는 중심이다. 프랭클(Victor Emil Frankl)은 인간 행동의 가장 근원적인 동기는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려는 욕구라고 했다.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자기 자신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는 삶의 의미에서 의지가 좌절되고 생활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상태를 “실존적 공허(existential vacuum)"라고 했다. 그는 현대인의 실존적 공허 현상은 삶에 대하여 환경과 본능적 충동에 자신을 몰아세우며 ,자신의 인격과 책임성을 회피하고 집단 속으로 자기의 정체성을 버리고, 자신의 인격과 의견만이 인정되기를 바라는 태도라고 한다. 그리하여 프랭클은 파멸된 인생에게 삶의 의미와 책임이란 질긴 틀을 엮어내려는 logotheraphy(의미치료)의 원리를 제시하였다. logos는 meaning+spirit의 뜻이다. 의미치료는 제 각기 부딪치는 운명적 문제로 인하여 절망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삶의 사명과 성격, 자유와 책임, 인생관의 변경 등을 일깨워 줌으로써 본래의 자기 자신을 찾게 해주는 것이다. 몸은 바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나 자신이다.
나는 요즈음 "Invictus"라는 시를 즐겨 음송한다. 그것은 이 시를 쓴 영국 시인 월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삶의 철학이 나에게 큰 감명을 주었기 때문이다. “ 온 세상이 지옥처럼 캄캄하게/ 나를 엄습하는 밤 속에서/ 나는 어떤 신들에게든/ 내 굴하지 않는 영혼을 주심에 감사한다(...)/ 천국문이 아무리 좁아도/ 저승명부가 형벌에 가득 차 있다 해도/ 나는 내 운명의 지배자요 / 내 영혼의 선장인 것을” 특히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이 두 문장은 나에게 너무나 감명을 주었다. 그는 12세 때 폐결핵에 걸려 뼛속을 파고든 몹쓸 균 탓에 훗날 왼 쪽 무릎 아래를 잘라내는 대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시인은 쾌활하고 열정적이었다. Invictus는 ‘굴하지 않는’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이 작품을 쓰기 몇 년 전 그의 오른 쪽 다리에로 감염되어 의사들이 절단 수술을 받아야 목숨을 건진다고 하였지만 시인은 동의하지 않았고, 3년에 걸쳐 끈질긴 수술을 받았고 이후 30년 가까이 더 살았다. 이 시에는 고통을 넘어선 환희가 담겨 있다.
나는 오른쪽 무릎 관절의 환자이다. 그리고 무릎관절의 의사이기도 하다. 그 원인은 내가 타고난 스포츠 홀릭(sports holic or mania)이기 때문이다. 1978년 8월 갑자기 서울시 연구원에서 문교부 기획관리실로 자리를 옮긴 해였다. 얼마 되잖아 실국대항 축구시합이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열렸다. 전해에 골치를 했다는 말을 듣고 축구선수로 출전하였다. 그런데 시설국과의 첫 시합에서 오른 쪽 무릎을 치여 쓸어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심판은 전 국가대표 골키퍼 함흥철 감독이었다. 그는 심줄이 다친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대순 기획관리실장은 자기도 다친 경험이 있다고 하면서 자기 차를 타고 한양대 병원에 가보라고 하였다. 응급실에 가서 x-ray를 찍어보니 5cm 정도 금이 갔다는 것이다. 곧 바로 입원하고 한 달 간 치료를 받고 기브스를 한 채 퇴원했다. 축구에 얽힌 에피소드를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전주초등학교 시절 전주 시내에 있는 풍남초등학교, 완산초등학교, 중앙초등학교의 같은 학년과 연필내기 축구시합을 하였다. 그 때 나는 오토바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명성을 떨쳤다. 조그마한 고무공으로 저학년 때의 축구로 오른쪽 발톱을 몇 번이나 다친 기억이 난다. 아마 3학년 때의 일이다. 마침 전주사범학교(현 전주교대)에서 전국 규모의 축구시합이 열렸다. 나는 수업 도중에 분단장을 모조리 데리고 축구시합을 구경한 일이 있었다. 그 것도 개구멍으로 잽싸게 들어갔다. 그 때 고려대 김용식 선수가 전반전이 끝나고 휴식 시간에 이쪽 골대에서 저쪽 골대까지 볼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무릎과 어깨 머리로 움직이면서 돌아오는 축구의 묘기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물론 그 다음날 여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받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로 생각이 난다. 나보다 열 살 아래인 막내 누이 동생을 등에 업고 축구를 하다가 어미님께 들켜 회초리를 맞은 기억이 난다. 이천북고에서 잠시 영어와 독일어를 가르치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바로 옆에 있는 이천농고와 축구시합을 하였다. 바로 전해에 6:0로 참패했던 우리가 6:1로 대승하였다. 내가 무려 세 골을 넣었다.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동북고의 영어교사로 자리를 옮긴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직원회의 시작 전 체육주임이이 영어과와 국어과 대 수학과와 사회과의 우래옥 불고기 파티 시합을 걸었다. 동북고는 당시 이회택 김기복 같은 선수가 있어서 전국을 재패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퇴계로 5가에 있었던 동북고 운동장은 매우 좁고 핸드볼 포스트 밖에 없었다. 직원회의 시간이 다되어 가고 있는데 득점이 나지 않아 심판이 시간을 좀 연장하고 있었을 때 내가 왼발로 찬 볼이 조그마한 골포스트 속에 번개같이 들어갔다. 그 때 ‘혜성과 같이 나타난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우래 옥에 가서 불고기를 실컷 먹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Rollo May는 실존치료자가 갖추어야할 과제와 책임은 환자를 한사람의 존재와 세계-내-존재(Sein-in-der-Welt)로서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기술적인 지식은 이러한 토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실존적 치료자는 환자의 개인사의 한 순간에서, 그리고 그 환자의 세계-내-존재에서 그의 실존을 잘 해명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 연세대 의대 지훈상 의료원장은 40년 동안 암 수술을 집도하다가 내가 수술대에 오르니 환자의 마음이 보였다고 술회하고 있다. 중환자실에서 마취에서 깨어나니 극심한 통증이 폭풍처럼 밀려오는데, 의사들은 치료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야 우리 진료문화가 질병치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환자들은 당장 고통에 괴로워하고 의사로부터 인간적이고 정신적인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데 말이다. 환자 입장에서 실력이 최고이겠지만, 희망을 주고, 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의사들을 절실히 원한다고 말한다.
이후 나는 산행과 테니스, 골프, 탁구를 하였다. 편간회(문교부 보직 장학관 모임) 에서 100대 명산을 향하여 등산을 하였고 경원중 테니스 코트에서 일요일이면 빠짐없이 테니스를 즐겼다. 그리고 문교부 시절엔 국장급 탁구 주장으로 중앙부처 탁구 시합에 10년 이상 출전하였다. 그리고 동작교육장 시절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하여 탁구를 한판하고 샤워를 하고 근무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지금부터 3년 전에 오른쪽 무릎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그러니까 오른쪽 무릎을 다친 지 30년 만에 다시 무릎관절에 병이 돋친 것이다. 그런데도 미련하게 절뚝거리면서 테니스를 계속해서 3년 이상이나 친 것이다. 물론 병원에 가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안했다. 그래서 무릎을 더욱 악화시키고 만 것이다. 곰처럼 미련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대학 후배가 심지어 죽을려고 작심을 했느냐고 하는 심한 말을 듣기까지 했다. 대학 동기 동창 다섯 사람이 10년 이상 하고 있는 매주 화요일 청계산 등산도 가까스로 하고 주말걷기도 겨우 참석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요즈음 계단을 시원스럽게 내려가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나는 세 개의 병원이 있고 그 원장은 바로 나다. 우리 동네에 있는 조그마한 병원은 은성사우나이고 청담동에 있는 병원은 중간 정도의 크기의 한양타운이다. 그리고 매우 큰 병원은 서울교대역 부근에 있는 하림 맥반석 사우나다. 하림은 냉탕의 크기가 20m정도 되어서 수영을 마음껏 할 수 있다. 한양은 10m 정도 되어서 사람이 없을 때 나름대로 수영을 할 수 있다. 나는 wkt(water knee theraphy)-project 를 스스로 개발하여 실천하고 있다. 인생은 어떻게 보면 한줄기 시내가 바다로 흘러가는 여정이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上善若水- 물은 만물에 온갖 이로움을 주면서도 공을 내세우지 않으며 남과 다투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水善利萬物而不爭- 나는 거의 일주일에 세 번꼴로 세 개 병원중 하나를 찾아 간다. 평형과 자유형을 20번 정도 왕복한다. 그리고 뒷걸음치기, 발을 올렸다 내려놓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천한다. 또한 우리 동네에 있는 청숫골 나그네의 길을 한강(아내)과 함께 걷고 각종 재활 운동 기구에서 무릎관절에 도움이 되는 운동을 매일 하고 있다. 심폐기능, 상체와 하체, 무릎관절, 발목의 유연성에 좋은 공중걷기운동, 허리 요추활동에 도움이 되는 파도타기운동, 좌골신경계통과 관절염에 효과가 있는 오금펴기운동, 팔다리 조정능력을 증가시키는 노젓기운동, 어깨유연성운동, 허리돌리기운동을 매일 한시간 가량 하고 있다. 나는 내 몸의 최고의 전문가이다. 그리고 아마조나 신을 아침저녁으로 복용하고 015 emu-cream을 하루에 3회 정도 바르고 있다. 이수찬 (힘찬병원장), 박형문(녹십초 병원장), 장현숙(은혜약국 약사) 세 사람은 내가 도움을 받은 전문가이다. 그리고 한강(아내)은 매일 밤 경직되고 시큰거리는 무릎 관절 부위에 고통이 엄습해 오고 있을 때에 한 시간 가량 발바닥, 장딴지, 발목, 무릎관절 부위를 자근자근, 힘 있게 주물러주어 피를 잘 통하게 하여 발끝에서부터 무릎까지 긴장을 풀어주는 명품 실존 치료자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킬케골의 “죽음에 이르는 병”은 살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 Das nicht Leben können, Das nicht sterben können- 절망 속에 빠져든다. 이 절망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하느님과의 관계를 복원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자칭 스포츠 광이라고 하는 내가 골프도, 테니스도 탁구도, 등산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분통이 터지는지 모르겠다. 마음은 무엇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몸이다. 몸은 무엇인가. 보이는 마음이다. 어느 도사의 이야기다. 그 사람의 몸 상태를 보면 그 사람의 마음 상태가 어떤가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몸 가는데 마음이 가고 마음 가는데 몸이 간다. 몸에 고장이 낫다는 것은 마음 어딘가에 고장이 나 있다는 것이다. 이 고장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 나는 실존적 공허의 환자가 되지 않고 logotheraphy의 실존 치료자로서 역동적인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섯 발의 총탄을 맞은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살려낸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는 의술과 인술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그렇다! 나는 살아있는 현재 속에서 행동하고 행동해야 한다. Act, act in the ‘living’ present! 나는 내 운명의 지배자요, 내 영혼의 선장이기 때문이다.
---------------
한상진
호 知淵 월간 문학세계 등단, 현재 한국교육과정 교과서 연구회 회장, 21세기 한국교육포럼 공동대표, 한국교육정책연구소 이사, 전 동작교육장, 서울교원문학회 지도위원, 한국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