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능선, 마을길 답사 뒤 가장 좋을 길 엮어
다리를 건너 얼마 가지 않아 도로를 벗어난 임도 숲그늘에서 앞서간 대원들이 점심상을 근사하게 차려놓고 앉아 있다. 봄에 뜯은 곰취 간장조림, 텃밭에서 키운 열무로 담근 시원한 물김치와 풋고추-. 산내음 물씬 풍기는 점심을 먹는 사이 탐사대원들은 지난 6개월간 가슴에 담아둔 얘기를 하나 하나 끄집어냈다.
10여 명의 탐사대원들은 3월 이후 매주 화요일은 대청호 둘레길 개척산행에 나섰다. 낫을 들고 다니며 잡목을 베어내고, 길이 없는 구간은 길을 냈다. 옷이 찢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팔과 다리가 긁혀 엉망이 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런데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길을 냈고, 길을 낸 다음에도 한 달에 한 번은 먼저 개척한 둘레길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주 산행을 위해서도 지난주 낫을 꺼내들었다. 문의대교로 내려서기 전 숲터널은 그렇게 해서 탄생한 산길이다.
올해 일흔다섯 고령인 신현섭 선생은 독도까지 도맡았다. 2만5000분의 1 지형도를 가슴에 걸고, 만보계를 옆구리에 차고 다니며 길을 지도에 표시하고 거리를 재는 역할을 해냈다. 여성 산악인들의 파워도 돋보였다. 유정희(59)씨와 김정자(52)씨 등 이날 참석한 여성 산악인 5명 모두 어지간한 남자 산꾼을 뺨칠 만큼 준족이었다. 신현섭 선생은 “계곡, 능선, 마을길로 나눠 답사한 뒤 가장 좋은 길을 선택해 둘레길을 이었다”며 “대간과 지맥 산행을 통해 익힌 독도 능력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김웅식 대장은 “전 구간 모두 좋지만 하이라이트는 5~7구간”이라며 “제6구간 옥천군 안남면 둔주봉에서는 대청호가 한반도처럼 보인다”고 알려준다.
점심식사를 마친 뒤 다시 산자락으로 올라붙는다. 능선은 한층 좁아지고 숲도 우거졌다. 더욱이 어찔어찔해질 만큼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데다 수풀이 팔을 긁어대고 다리를 감아대니 진이 빠질 수밖에. 그래도 도로에서 100m 쯤 올라 해발 200m를 넘어서면서 길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넓어진다. 양성산(養性山·301m)~상봉(上峰·378m) 주등산로였다. 이들 산줄기는 대청호 수몰지구의 문화재를 모아놓은 문의문화재단지를 동쪽에 감싸고 있어 접근이 쉬운 데다 조망이 좋고 원점회귀산행이 가능해 인기 있는 산이다.
“내가 막걸리 한 잔 낼 게 어서들 와요.”
더위는 결국 탈락자를 만들었다. 청주 여성 산악인 한 명은 점심 식사 후 얼마 걷지 않아 얼굴이 허예지고 또 다른 남자 산악인 2명은 속이 메스껍다 하더니 결국 산행을 포기하고 만다. 유정희씨는 그런 분위기를 바꿔볼 마음에 양성산 등산로 갈림목(팔각정 1km, 청소년수련원 0.4km, 문의문화재단지 주차장 0.4km)에서 잠시 쉬는 사이 “20분만 더 걸으면 올라서는 팔각정 간이매점에서 막걸리 한 잔씩 내겠다”며 대원들을 독려했다.
가파른 숲길을 빠져나가자 독수리 형상의 기암 뒤로 상봉이 우뚝 솟고 그 위에 올라앉은 팔각정이 빤히 바라보인다. 뒤로는 우리가 넘은 구룡산과 문의대교 그리고 그 왼쪽으로 길다랗게 뻗은 대청호가 보인다. 짙푸른 대청호는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 강렬하게 느껴지고 서대산은 오전보다 더욱 기운차게 솟구친 형상이다.
독수리바위를 지나자 이번에는 청주시 일원이 한눈에 든다. 청주를 대표하는 산과 산성인 우암산과 상당산성 사이에 자리잡은 용암지구 아파트단지는 숲과 잘 어우러져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조망의 즐거움을 누리자니 뜨거운 햇살이 가만 놔두지 않고, 팔각정에서는 여성 대원들이 “냉막걸리 맛이 죽여준다”며 어서 오라 재촉한다. 팔각정에 올라서자 시원한 바람이 온몸의 적신 땀을 씻어내 주고 유정희씨가 약속대로 간이매점에서 사온 냉막걸리 한 잔 마시는 순간 뜨겁게 달궈졌던 뱃속까지 차가워진다. 그제야 호수 너머 동쪽으로 한남금북정맥과 그 뒤로 천황봉에서 관음봉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속리산자락도 한눈에 들어온다.
간이매점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까투리사냥’ 노랫자락을 들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까치머리산’ 작두봉으로 향한다.
“이리와 앉으세요.”
“아내가 산에 가면 절대 앉지 말라고 했어요. 철철 넘치는 힘 다 빼고 오라고요.”
“저흰 반대예요. 힘이 남아도 좋으니 앉을 데 있으면 앉아 쉬면서 산행하라고 했어요.”
올해 일흔다섯인 신현섭 선생과 예순여섯인 오병수 선생은 노익장끼리 힘 겨루기라도 하는 듯하며 젊은 사람들의 기를 죽인다. 문의초교로 빠지는 갈림목을 지나 올라선 작두산은 오늘 걸은 능선에서 가장 높은 봉이다. 산불감시초소와 산불무인감시탑 등으로 북쪽 조망은 꽉 막혀 있지만 남쪽으로는 문의대교와 구룡산뿐 아니라 대청호 일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후 3시. 오가리에서 출발한 지 다섯 시간이 넘었으니 여름 산행치곤 제법 걸은 셈이지만 1구간 종착점인 문의영화마을까지 내려가려면 두 시간 가까이 걸어야 한다. 정상을 넘어선 다음에도 북릉을 따라 한 시간 가까이 걷고 이후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자 급경사 내리막으로 들어선다.
“절이라도 지으려나 보죠.”
능선 잘록이에서 오른쪽 사면으로 내려서자 기와를 비롯해 여러 건축자재가 쌓인 널찍한 분지가 나오고, 이어 저수지 가 농로로 접어든다.
“이젠 마을길이에요. 논두렁길도 따르고 마을도 가로질러요.”
산과 들에서 정기받고
마을에서 인심 듬뿍 받는 늘보 코스
김웅식씨 말대로 벼가 파랗게 자란 논 사이로 나 있는 콘크리트 농로를 따르노라니 흥겹고, 산골 마을이 눈앞에 나타나니 더욱 정겹다. 예닐곱 명의 촌로들이 그늘막 아래 평상에 모여 앉아 더위를 피하고 있는 덕은이 마을이다. 땀에 찌든 일행은 마을로 내려서자마자 한 명 한 명 수돗가로 다가가 찬물을 머리까지 뒤집어쓴다.
“어디서들 왔어요? 이거 하나 먹어봐요.”
검버섯이 잔뜩 낀 할머니 한 분은 낯선 우리를 힐끗 쳐다보더니 땀에 절은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단 거 먹으면 힘난다”며 헐렁한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알사탕을 꺼내 하나씩 나눠준다. 촌로 대부분 평균 70 중반은 훨씬 넘은 고령층이었으나 얼굴에는 활기가 넘친다. 대청호반 마을 또한 장수마을인가 보다.
촌로들에게 정을 듬뿍 받고 아쉬운 인사를 나눈 다음 농로를 따르노라니 길가에는 꽃들이 활짝 피어 있다. 토란대는 껑충 자란 채 커다란 잎을 펼치고 있고, 매꽃은 꽃잎을 활짝 펼친 채 강렬한 햇살을 즐기고 있다. 자연스런 농촌마을 풍광에 땡볕 아래 콘크리트길이 그다지 싫지 않은지 둘셋 짝 지어 걷는 일행의 얼굴은 밝고 활기 넘쳤다. 대청호 둘레길은 산뿐 아니라 들에서도 햇살과 정기를 받고 마을에서 인심을 듬뿍 담아오는 늘보 코스였다.
[ 산행 길잡이 ]
약 5시간30분 걸리는 늘보 코스
대청호 둘레길은 약 120km로 12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대략 10km 거리로 대여섯 시간이면 충분하지만 산정이나 조망대에서 대청호와 충북·대전시 일원을 찬찬히 조망하고 마을 주민을 만나면 두런두런 얘기도 나누고 논두렁이 나오면 메뚜기 잡아가며 느리게 걷는 늘보 산행이라는 점에서 여유 있게 계획을 짜고 나서는 게 바람직할 듯싶다.
대청호 둘레길을 산행하기 위해서는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한 1/25,000 지도가 필수다. 신탄진, 외천, 은행, 회북, 보은, 안남, 옥천, 대전 등 8장이다. 1구간 산행에는 신탄진과 외천 지도가 필요하다.
이번에 답사한 제1구간은 기점이 3개소다. 32번 지방도로 상의 현암사 주차장(논산-상주 간 고속도로 문의 나들목에서 약 18km)이나 남쪽으로 1km쯤 떨어진 장승 마을 입구 공터, 혹은 공터에서 콘크리트길 따라 2km쯤 오르면 나타나는 장승마을에서 구룡산 정상 삿갓봉으로 오를 수 있다.
대청호 최고의 조망대로 꼽히는 구룡산 정상에서 북릉을 타고 30분쯤 가면 산길은 오른쪽으로 꺾인다. 덩굴이 우거진 이 실계곡을 따르면 문의대교 서단의 칡즙 간이매점으로 내려선다. 산길 곳곳에 이정표가 잘 붙어 있어 헤맬 일은 거의 없다.
문의대교를 건넌 다음 문의면 쪽으로 향하노라면 왼쪽 임도 입구에 철탑이 서 있는 지점이 나타난 다음 ‘레저토피아 대청호 둘레길’ 리본이 보인다. 오른쪽 도로가에는 ‘청남대 15km’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도로에서 급사면을 올려치면 좁은 능선으로 올라서고 이후 20분쯤 능선길을 따르면 팔각정(1km)·청소년수련원(0.4km)·문의문화재단지 주차장(0.4km) 갈림목에 닿는다. 팔각정을 거쳐 작두산으로 가려면 왼쪽 능선으로 올라붙어야 한다. 곧 팔각정까지 조망이 터지는 독수리바위 앞에 다가서고 이후 15분쯤 걸으면 팔각정에 올라선다.
팔각정 이후 한결 좁아진 능선을 따라 40분쯤 가면 산길은 오른쪽으로 꺾여 안부로 내려선다. 여기서 곧장 가면 덕은이마을로 내려선다. 마을 들머리 그늘막에서 곧장 동쪽으로 뻗은 길을 따르면 문의면소재지로 가게 되고, 북쪽 길을 따르면 문의영화마을로 향한다. 문의영화마을을 현재 영화상영을 거의 하지 않고 교통이 불편하므로 곧장 문의면소재지로 가는 게 바람직할 듯하다.
대청호 둘레길 제1구간은 약 10.5km로 5시간 30분이면 완주가 가능하지만 늘보 여행이라는 점과 대청호 주변 관광을 고려해 시간을 넉넉하게 갖고 나서는 게 바람직하다. 대청호 주변에는 1980년 대청댐 완공으로 수몰된 여러 마을의 문화재를 모아놓은 문의문화재단지와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 등 볼거리가 많이 있다. 제1구간을 산행할 경우 산행 전 장승마을을 둘러본 뒤 둘레길 산행을 마치고 나서 문의문화재단지→괴곡리 늪지→청남대 순으로 탐승하도록 한다.
장승마을
구룡산 삿갓봉 서쪽에 청원군 현도면 진장골에 위치한 장승마을은 마을 뒤 언덕에서부터 삿갓봉 정상에 이르기까지 500m 길이의 등산로 양옆에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에서 황룡에 이르기까지 500여 개의 목장승이 도열해 있다. 웃는 얼굴, 찌푸린 얼굴 등 다양한 모습의 장승들 가운데 특히 남근형태의 장승이 많은 까닭은 구룡산 골짜기가 음기가 짙어 이를 누르기 위해서라 한다.
이곳이 장승마을로 변신한 것은 폭설 때문이었다. 2004년 3월 5일 기습적으로 내린 폭설은 현도면 일원의 비닐하우스가 무너지고 과수원이 주저앉는 등 엉망이 되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잠시 낙담했으나 곧 정신을 차리고 기관과 합심해 눈무게에 쓰러진 나무를 깎아내고 다듬어 구룡산 서쪽 일원을 정승 마을로 탈바꿈시켰다. 장승마을은 충북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2005년 6월 5일 첫 행사를 시작으로 매년 현도민속장승축제가 열리고 있다.
매운탕식당들이 모여 있는 오가리 위쪽 삼거리에서 북쪽 콘크리트길을 따라 2km쯤 오르면 산골마을을 지나 언덕배기에 세워놓은 장승들이 보인다. 이 능선을 따라 구룡산 정상까지 가는 사이 목장승이 도열해 있다.
문의문화재단지
우리 고유 전통문화를 재현해 조상들의 삶과 얼을 되살리고 배우기 위해 설립된 문화재단지다. 약 3만3,000 평 규모의 부지에 조선 현종 7년 세워진 문의현 객사인 문산관(文山館·지방유형문화재 제49호)을 비롯하여 1995년 이전 복원한 ‘ㄱ’자 형 목조 기와집인 부용면 부강리 고가, 청동기 때 것으로 추정되는 수몰된 가호리 아득이 마을 고인돌, 상주가 탈상할 때까지 거주하는 여막, 민속자료 전시관 등 10동의 고건물과 장승, 연자방아, 성황당 등 옛 생활터전이 재현되어 있다. 주말이면 주막, 대장간, 상포집 등이 옛 방식대로 운영되고 있어 옛사람들의 살림살이를 엿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문화휴식공간이다.
논산-상주 간 고속도로 문의 나들목에서 약 2km 거리에 위치한 문의면소재지 가까이 있다. 하절기인 9월 말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입장이 가능하다. 입장료 어른 1,000원, 800원, 600원. 주차료는 무료. 관리소 043-251-3288.
문의면 괴곡리 늪지
문의면소재지 쪽에서 바라보면 호수 건너편에 위치한 괴곡리 늪지는 원시적 생태가 그대로 보존된 곳이다. 고라니가 늪지를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으며 이밖에도 삵, 오소리, 너구리와 같은 동물들도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현재 길가 주차장에서 연잎이 가득한 연못을 중심으로 탐승용 데크가 조성돼 있다. 갈대숲과 버드나무숲으로 다가서는 숲길이 희미하게 있기는 하지만 한여름에는 들어서기 어려울 정도로 무성하다.
첫댓글 그렇지 않아도 번개로 함 해보려고 생각중이었습니다... 내년에 함 하죠 뭐... 좋은 정보 즐감입니다..^^
가까워서 번개로 하면 좋은데 한가지 흠이라면 원점이 안된다는게 흠이지요 ㅎㅎ
원점이 안되면 어떻게 하나요?
차 두대로 하면 됩니다 ㅎㅎ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이럴땐...헬기로 실어다 원점에 내려놓으면 됩니다...ㅎㅎㅎ
아이고~~~ 안할랍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