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남석 목사님 어머니 활천 원고.hwp
현대판 한나의 기도, 총회장 어머니
임종순 전도사
구약성서에서 기도로 승리한 대표적인 여인을 소개 하라면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를 지명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나처럼 기도생활에 모범이 된 현대 여인을 추천하라면 주남석 목사의 모친 임종순 전도사를 소개하고 싶다.
한나는 자식이 없어 하나님께 간구하여 득남한 사무엘을 서약한대로 하나님의 종으로 헌신시켜 이스라엘의 유명한 지도자로 출세시켰다.
현대판 한나인 임종순 전도사도 결혼 후 간절한 기도로 7년 만에 득남하였고 그 외아들이 3세에 폐렴으로 숨을 거두었으나 기도로 소생시키고 서약한대로 하나님의 종으로 헌신케 하고 후에 그 아들이 교단의 대표인 총회장으로 당선시킨 미담은 교단 안팎의 많은 성도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1. 출생과 결혼생활
임종순 전도사는 1923년 1월22일 익산시 낭산면에서 임경옥 씨와 오윤섭 씨의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일본의 국권침탈로 너나없이 가난했던 시절 한의원을 운영했던 아버지 덕택에 종순은 유복하게 자랐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영접한 부모님 덕택에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신앙심이 날로 깊어갔다. 임종순은 교회학교 교사로, 성가대원으로, 열심히 봉사했다. 또한 성경학교과정을 결혼 전에 마쳤기에 이미 복음전도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꽃다운 17세에 낭산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삼기면의 25세 청년 주종천(朱鍾天)과 결혼했다. 애초 믿지 않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으려 했지만, 일본군위안부로 가는 것 보다는 결혼해야 한다고 아버지는 서둘렀다. 신랑 집에 대해 “그 집은 가풍이 있는 양반 집안이다. 또한 신랑 될 청년이 지금은 믿지 않지만 결혼하면 믿겠다고 나와 약속했다. 네가 시집가서 전도하여 온 가정이 예수를 믿게 한다면 그런 축복이 어디 있겠느냐?” 하셨다.
시집가서 보니 시가 친척 중에 무당들이 있어 모두들 무당의 말이라면 신처럼 믿고 따랐다. 시댁은 전통적인 유교집안으로 오직 조상에게 제사를 잘 드려야 복을 받는다고 제사에 온 정성을 다했다.
시가집 식구들을 기독교로 변화시키는 것보다 오히려 이 가문에서 쫓겨나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알고 살아야 할 처지였다. 주님의 말씀처럼 ‘화평이 아니라 검’과도 같은 삶이었다.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서서 시댁집안과의 영적 싸움을 하여 승리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영적으로 죽어가는 부모형제들과 친척들까지 상대해야 하는 이 싸움은. 마치 갈멜 산에서 400명의 바알선지자들과 450명의 아세라 선지자들 곧 850명을 상대하여 대결하는 엘리야의 싸움과 같은 심정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 그보다 더 힘겨운 싸움인지도 모른다. 이런 힘든 영적싸움의 현장에서 새색시 임종순은 믿음으로 철저히 무장했다. 시부모님의 호령과 핍박이 무서워 제사를 드리고 조상신을 섬기게 되면, 시댁의 구원은 꿈도 못 꿀 일이다. 본인의 신앙마저 사단에게 빼앗기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참고 견디며, 눈물의 기도로 호소 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이불을 덮고 사는 남편마저 “나와 예수, 둘 중 하나를 택하라.” 핍박과 폭력이 난무했다. 그럴 때마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님의 아픔보다 더 하지는 않겠지.’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가족구원이라는 성령의 역사는 쉽게 나타나지 안했다. 오히려 설상가상으로 결혼 후 7년 동안 아이마저 생기지 않으니 애까지 못 낳는다고 시댁의 핍박은 더욱 심해져갔다.
2. 눈물의 기도는 기적적인 역사로
날마다 교회에 엎디어 눈물로 호소하는 한이 서린 한 여인의 기도를 하나님은 내려다보시고 더욱 능력의 여종으로 연단시키셨다. ‘반드시 예수를 믿지 않는 모든 식구를 구원하리라.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 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좋은날이 오겠지,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갔다.
어느 날 느닷없이 신 것을 좋아했다. 입덧이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 제게 아들만 주시면 사무엘처럼 바치겠습니다.” 간절히 기도한지 7년, 1948년 7월29일 그토록 기다렸던 아들, 장차 교단총회장이 될 주남석 목사가 온 집안을 진동하는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며 태어났다. 그 어린 아들이 자랄 때마다 ‘정말 내가 낳은 아들인가?’ 보면 볼수록 오묘하고 사랑스러웠다. 임 집사는 그로부터 아들을 보면 어떤 핍박을 받아도 즐거워했고 억지소리를 들어도 믿음으로 참고 살 수 있었다.
집사의 직분을 받고 난 후, 하나님은 각종 은사를 더 하셨다. 귀신들린 자에게 기도하면 귀신이 나가고, 병든 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면 간질병 등 각종 병이 낫기를 시작했다. 그 놀라운 신유의 역사로 말미암아 밀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집안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그렇게 이쁘고 재롱부리던 남석이가 세 살이 되던 어느 날 저녁 폐렴으로 숨을 거두려는데 김학섭 여전도사는 “하나님은 살아계시니 반드시 아이가 나을 것입니다.” 성도들을 데리고 철야 기도를 하면서 간절히 구했다. 7년을 기도하여 얻은 아들, 하나님이 주셨다고 간증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자랑했던 기쁨의 아들, 모든 핍박과 설움을 이기게 해 주었던 그 아들이 숨을 쉬지 않는 것이었다. 임 집사는 죽어가는 아이를 바라보며 절규했다.
“남석아! 남석아! 너만 가냐? 나랑 같이 가자! 널 보내고 이 어미는 어떻게 살라고 너만 가냐?“ 피를 토하듯 몸부림치며 절규했다.
“7년을 눈물 뿌려 얻은 아들입니다. 하나님 살려 주세요. 제발 제발…” 밤 내 신음하다 곧 산으로 보내려고 하얀 옷 갈아입히며 통곡했다. 그런데 교회 종소리가 뎅그렁 뎅그렁…새벽의 어둠을 가르고 울릴 때 아이가 꼼지락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얼른 젖을 물려보니 빨기 시작한다. 아이가 눈을 뜬 것이다. 아이가 숨을 쉬기 시작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남석이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남석이는 잘 자랐고 아들 낳은 후 8년 만에 딸 복섭이를 또 주셨다.
남편 주종천은 예수의 미친 아내를 야단치며 모질게 학대했는데 어느 날 큰 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워 보니 그렇게 핍박을 해도 도망가지 않고 같이 살아준 아내가 한 없이 고마웠다. “여보, 이 모두가 다 내 죄요. 다 내 잘못으로 이렇게 되었소. 이렇게 큰 사고를 당하고 보니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 당신에게 너무 했소. 날 용서해 주오. 이제 당신 따라 다니면서 당신이 믿는 예수를 믿겠소. 이 말을 듣는 순간 임 집사는 두 줄기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남편 주종천은 3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죽음에서 벗어나 아직도 성치 못한 몸이지만 주님을 향한 마음이 남달랐다.
3. 세한교회 창립과 총회장 당선
아들이 성장하여 군에 가자 무정성결교회 담임전도사로 부임 받아 “딸(강진 제일성결교회, 조규철목사 아내)”은 반주하고 남편 주종천 권사는 화정성결교회를 떠나 아내 임종순 전도사를 따라 가 교회 종을 치며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30평이 넘는 교회를 건축하고 봉헌하게 되었다.
어려웠던 무장성결교회가 성전을 건축하고 크게 부흥하니 원주제일성결교회에서 그를 심방전도사로 청빙했다. 임 전도사는 7년 동안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섬겼던 무장성결교회를 사임하고 원주제일성결교회로 부임하여 2년간 열심히 헌신하였다. 그러던 중에 또 수백성결교회가 성도들이 목회자가 없어서 흩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수백성결회 담임교역자로 부임했다. 수백교회에서 목숨을 건 충성과 헌신으로 교회는 놀랍게 부흥하였다. 그러나 세한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수원으로 내려간 아들 내외를 따라 수백교회를 사임하고 58세에 황무지에서 다시 아들내외의 개척을 돕기 시작했다.
세한교회(당시 화세제일교회)는 1979년 7월 27일 수원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인 화서동 245번지 일대에 천막교회를 시작했다.. 자부 오은경 사모는 시어머니의 능력을 이어받았기에 개척 초기부터 주남석 목사와 오은경 자부와 같이 신유, 방언, 통역, 예언 등의 사도행전적인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면서 치유 받은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더욱 환자가 몰려들어 아들이 개척한 교회를 도우니 단시간에 놀라운 부흥을 이루었다. 지금은 중부권 최대교회중 하나이자 교단의 대표적인 교회 중 하나로 5000여명의 성도로 성장했다.
임종순 전도사는 남편 주종천 권사와 교회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아들 내외와 같이 목숨을 건 금식과 철야기도를 하면서 교회를 위해 생명을 바쳤다. 그런 임종순 전도사를 보고 세한교회와 성도들은 오직 예수만 위해 사신 분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전 총회장 이재완 목사는 “그 옛날 화정성결교회 다니실 때부터 환자를 위해, 기도 할 때마다 기적이 나타나 귀신이 쫓겨 가고 중병 환자들이 치료되며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신 분”이라고 한다. 또한 “평생을 교회에 철야하며 사신 분으로 추운 겨울 자기는 추워도 입고 있던 쉐타까지 벗어 남루하게 입은 성도를 덮어주시고, 교회오실 때는 빈손으로 오시지 않고 언제나 주의 종 목사님을 대접 할 것을 들고 오셨으며 가난한 사람을 언제나 보살피며 사셨다.”고 회고 한다. 또한 무당이 많은 집안 우상만 섬기던 일가친척들이 거의 다 예수 앞으로 돌아와 구원 받았으며 후손들까지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한다. . 오은경 사모는 30여년을 시부모님을 한집에서 모신 며느리로서 오직 예수사랑, 성도사랑, 아들 사랑으로 사신 어머니로, 숨질 때에도 교회 서재에서 설교준비하고 있는 아들 “주목사가 보고 싶다”고 하면서 자부의 무릎에 안겨 순식간에 하나님 품으로 가셨다. 총회장 된 것을 못 보고 떠나셨지만 2011. 5. 24-26일까지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개최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제105차 총회에서 제104차 총회장 원팔연 목사 뒤를 이어 주남석 목사는 를 “제105년차 총회장에 만장일치로 당선되어 한 교단을 책임지고 일하는 큰 종이 되었고, 두 손자와 외손자가 모두 다 우리 교단 목사가 된 것은 고통과 시련 중에서 철야예배와 새벽기도 때에 “후손에게 축복하리라”는 음성을 2회나 들으며 기도한 어머니의 훌륭한 기도 열매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