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전에도 몇 번 이야기 했고 최근 개인사진 올리면서도 잠깐 언급 했으며 특히 가까이서 늘
보면서 자랐던 방하 친구들은 대충 알겠지만 키 문제에 있어서는 나는 정말 할 말 많다. 일전에
카페에 올린 중2때 찍은 사진에서나 초딩5학년 때 찍은 사진으로 보아서도 알겠지만 내가
생각해도 나는 좀 왜소하고 머리통이 작아서 키도 작아 보이기는 해도 중2 시작할 무렵 60여명
반에서 키 작은 순서대로 정한 번호순으로 35번(사진 속 명찰 확인 가능) 이었으니 결코 작은 키는
아니었다. 그런데 대부분 나를 아는 친구들은 내가 굉장히 작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는 그 이후
작았던 때를 기억하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물론 재완이나 창영이랑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중1
때가 37번이었고 2때가 35번이었을 때만 해도 나는 키에 대해 별로 스트레스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 때가 지금 애들과는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체격 조건이나 성장이 느렸다고는 하나 그 중 나이
좀 들어서 입학한 친구도 있고 성장이 빠른 친구들은 은밀한 부분에 털도 제법 나고 어른에게서나
볼 수 있는 성적 증상도 나타나기도 했기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한창 클 때였으나 나는 도대체
내가 크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1학년 때만 해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덩치가 제일 크고 동국중에서 짱이었던 창영이가
우리반이었는데 나는 악어와 악어새 관계를 유지하며 잘 버텼다. 창영이는 이 때 벌써 키는 다
컸고 얼굴이 여드름으로 멍게 껍질 같았는데 시간만 나면 여드름 짜 주는 것으로 나는 덩치 큰
놈들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으로 보상을 받았다. 더러울 것 같기도 하지만 그 때는 그렇게
얼굴에 여드름 나더라도 빨리 키도 팍팍 크고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게 참 재미 있었고
창영이도 무릎팍에 누워 볼펜 끝으로 잘 익은 여드름 한바퀴 짜고 나면 그렇게 흐뭇해 했기 때문에
우리는 1년 내내 기막한 공생관계를 유지 할 수 있었다. 중 2때만 해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문제는
드디어 중3이 되었을 때부터다. 내가 특별반으로 활동했던 미술샘(마주락)이 임시담임으로 와서
키순서로 번호를 정할 때 나는 그 샘 백 믿고 가능한 한 큰 쪽으로 서려고 일찌감치 중간쯤에
섰는데 키를 고르시던 샘도 눈치는 있었지만 도저히 안될 것 같아 웃으며 고개를 갸우뚱하며
당기고, 당기고 하다가 결국은 20번으로 낙찰 봤다. 하나 나도 인정하기를 겨우 잘 해봐야 10번
정도가 정상이었다. 번호는 문제가 아니었다. 우선 10번 전후로 고만고만한 땅꼬마들이 여럿
있었는데 도토리 키재기라고, 하 요것들이 나를 우습게 보고 막먹을려고 하네. 까부는 것들을
힘으로 제압하려고 해도 덩치로부터 나오는 물리적 힘은 이미 당할 수가 없었고 커버린
친구들에게는 나는 아주 귀여운 땅꼬마 노리개가 되어 있었다. 가장 큰 고역은 화장실 가는 것….
그 때 내 별명이 ‘납작불알’, ;미스리'이었다. 사진 속 모습처럼 얘쁘장한 모습이 이준기 서러월 할 정도였다 쳐도 내가 화장실 갈 때면 어김 없이 그 못된 키 큰 인간들이 따라 와서는 고추털이 났는지, 그리고 고래잡이는 했는지 확인하려고 몇 명의 친구에게서 팔다리 잡히고 바지 벗기고.. 앙탈을 해 봐도 장정 여럿에 땅꼬마 하나 힘으로는 강간을 한데도 벗어날 방법이 없이 그냥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는 그 짓궂은 장난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지만
키는 도무지가 클 생각을 하지 않고 맨날 고자리였다. 중학교 졸업 기념 사진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겠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원국이 키를 기억하고 있다면 그때 나는 원국이 보다도 훨씬
작았으니..(개인사진방 사진이 증명) 고등학교는 대구로 나가서 입학하자마자 번호를 정하기 위해
마루바닥 교실에서 맨발로 키를 고르자 내게 배정된 번호는 “6번”이었다. 3개 당번으로 해서 8
명이 맨 앞줄에 앉게 되니 6번은 대개 8개 줄에서 당연히 맨 앞줄에 앉을 수 밖에.. 그 때 촌놈
대구까지 데리고 와서 입학식 및 반배정 받고 교실까지 따라와 뒤에서 참관하고 계시던 울아부지
표정을 얼핏 돌아 보았는데 역시 나 이상으로 똥씹은(죄송) 표정이 역력했지만 누가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고딩 생활은 고1때는 대구 신천동 청구고등학교 인근에서 성호랑 같이 자취를
했는데 우리 학교인 대명동 대구고등학교까지는 매일을 시내버스로 통학을 했다. 거기까지 가는
버스가 경산에서 출발하는 “1번’ 버스와 “127번” 버스가 있었는데 당시는 대부분 시내버스가
그야말로 만원이었지만 특히 이 노선 버스는 시내 경대병원, 사대부고, 유신/일신학원, 반월당,
대명동으로 가는 노선이 시내 중심부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입시학원 및 주요 고등학교들이
차례대로 있어 특히 아침 학교 갈 때는 그야말로 지옥버스였다. 차장이 있었지만 문도 못 닫을
정도로 타고는 일단 출발하면 기사는 기가 막히게 지그재그 운전 몇 번하며 문쪽에서 안쪽으로
몰릴 때 차장은 솜씨 좋게 문들 닫고 하며 곡예운전이 매일 반복되는 가운데 가장 고역스런 일은
그 속에서 대명동까지 버티며 가야 하는 일을 매일 반복했던 것이었다.
가방에 책이랑 때로는 체육복, 교련복까지 그리고 도시락 두개나 잔뜩 넣고 지각하지 않으려고
겨우겨우 버스에 오르면 그리고부터 한창 시달리다 보면 내 가방은 어디에 있는지, 모자는 어디에
있는지 내 몸과 이산가족이 되었다가 명덕로터리 지나서 내릴 즈음 되면 그때야 주섬주섬 집나간
모자, 가방을 찾아 나서곤 했다. 그나마 가끔, 아주 가끔 운 좋으면 나보다 덩치 큰 여학생
옆자리에 자리 잡으면 이리저리 밀릴 때 가끔씩 신체의 일부분이 와 닿는 감촉이 괜찮았고 더더욱
운이 대박일 때는 바로 눈앞에 여학생 교복 앞가리개가 닿을 듯 말 듯 보일 때도 있었다.ㅋㅋ.
그렇게 1년을 통학하고 2학년부터는 나는 우리 학교 가까운 봉덕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헤어지기 전 옛 중앙상고 옆을 성호랑 함께 걸어 가고 있었는데 그 때 길옆 상가 쇼윈도에 비친
모습을 보고 성호 왈, “야, 정말 쪽팔려서 같이 못 다니겠다.”라는 엄청난(?) 실언을 하고 말았다.
그 때만 해도 거짓말 안하고 성호는 고1때 제법 커서 나보다 머리통 하나만큼은 커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래도 기죽기는 싫어서 “그래 더도 말고 2년 후에 다시 보자.”라고 말해
주었다. 이내 며칠간의 봄방학 중에 나는 이사를 갔고 중학교 입학할 때 의성장에서 사서 만 4년간
입었던 교복이 작아서가 아니라 너무 낡아 어차피 2년간 교복을 더 입어야 했기에 새로 한번 맞춰
입고 고2를 시작하게 되었다. 왜 그때는 교복이 외출복이고 잠옷이기도 했잖아.
아,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2학년 시작하자마자 키가 클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더니4월중순경
수학여행 갈때는 불과 두달반 전에 맞춰 입었던 교복이 작아지기 시작하고 결국 수학여행때는
바지단을 내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근 5~6년만에 키가 크기 시작하자 나도 신기해 매일 자고
일어나면 밤새 얼마나 컸나 문틀에 금 그어놓고 삼각자로 키 재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어떨 때는 바로 전날 쟀던 키보다 2~3CM가 더 커져 있을 때도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누워 자는 동안 뼈마디가 느슨해지며 따라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낮에 활동하고 난
다음보다 그만큼 늘어져 있는게 정상이라고 했지만 그 때 나는 그만큼 큰 줄 알았다. 낮에 다시
재어 보면 전날밤과 같은 것을 확인하고야 그러면 그렇지 했다. 하나 분명한 건 불과 2~3달 전에
재며 그어 주었던 선보다 4~5CM씩 위에 가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크기는 크고 있음을 확인하며
혼자 희열을 만끽하곤 했다. 그런데 또 하나 걱정 아닌 걱정이 있었는데 신체 주요 부분에 털이 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주변에 둘러 봐도 그 즈음 대부분의 친구들은 몇안되는 턱 수염이나마
시커매지고 특히 겨털, 꼬털을 다들 났는데 나만 맹숭맹숭 민둥산이었기에 이제는 목욕탕 갈 일을
걱정하게 되었다. 그나마 소위 아직 털도 않났으니 키는 계속 자랄 수 있을거라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렇게 고2때 1년간 자란 키가 자그마치 16CM였다. 말이 16센티이지 고딩 시절 한창 바쁠
때 잠깐 못보았던 친구가 또는 한창 전에 땅꼬마로 기억했던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이제는
자기보다 머리통 하나만큼 더 커서 나타나면 당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동안 땅꼬마의
설움을 한방에 날릴 수 있었던 나는 매일매일을 쾌재를 부르며 보낼 수 있었다. 드디어 원국이,
성호를 차례로 제끼고 제법 큰 축에 들었던 병락이, 대현이도 제끼고 급기야는 창영이마저 맞짱
뜨게 되었다. 어느날 친구들 다 모였을 때 누군가 자취방에서 창영이와 키를 재 보았는데 위기감을
느낀 창영이는 까치발까지 하고 섰지만 이미 훌쩍 커버린 내게는 역부족이었다. 유일한
다크호스로 용광이만 남았었다. 그런데 용광이는 실은 중학교 졸업하고는 작년 여름 방하모임 때
처음으로 보았으나 내가 기억하는 용광이도 작은 키에 머리통과 눈만 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병락이나 간간히 보았던 친구들 얘기로 거의 나하고 비슷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아마 용광이는 내
설움, 그리고 막판 역전의 희열 모두를 잘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크던 키는 고3때도 계속 크더니 졸업 전에는 드디어 우리 반에서도 내가 제일 크게 되었고
1학년 때부터 함께 학교를 다녔던 고등학교 동창들 사이에는 내가 전설의 인물이 되었다. 그 때
울엄니도 나를 ‘챗다리’라 불렀다. ‘챗다리’가 뭔가 물었더니 옛날 시골에서 콩나물 키울 때
다라이에 시루를 걸쳐 놓기 위해 얹어 넣는 “V”자 모양의 나무를 말하는데 특히 다리부터가
롱다리가 되며 몸 전체 균형이 잘 않잡혀 얼핏 보면 다리만 있는 것 같아서라나.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몸도 커졌지만 1년도 채 남겨 두지 않고 교복을 새로 한 벌 맞춰 입을 수는 없고
해서 별바지 하나 따로 맞춰 입었는데 옷도리는 작아서 조끼 같고 바지는 길대로 길어 졌으니 더욱
그렇게 보였을거다. ㅋㅋㅋ 그래도 하나도 듣기 싫지 않았다.
그리고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이런 저런 친구들, 한참을 못 보았던 옛 친구들을 만났을 때는
친구들이야 대부분 이런 저런 소문을 듣고 내가 많이 컸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아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다소 이외라는 둥 신기하기도 했을 텐데 입장을 바꾸어 그런 소식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옛날 마냥 컸던 것으로 기억하는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을 때 왜 그리 작고
왜소해 보였는지.. ㅋㅋㅋ(친구들 미안)
사실 나는 작을 때도 한가닥 희망은 있었다. 키에 비해 발은 작은 편이 아니었는데 그래서
언젠가는 크겠지… 초딩 때도 나는 일반 사각형 알루미늄 도시락이 아니라 ‘찬합’이라고 둥그런
밥통에 밥을 싸 다니며 먹을 정도로 밥을 많이 먹었고 불과 얼마전까지도 친구들은 내가 먹성이
좋은 것으로 기억할 만큼 많이 먹으면 언젠가는 큰다는 울아부지 말을 철석같이 믿고 아니 거기에
희망을 걸고 살았다.
근데 근데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키 이야기는 대를 이어 계속되는데 오늘은 지면상 여기까지…
|
첫댓글 오예에~~~~.장문의 글 간만에 읽어보이 읽을꺼 있고 좋구만.
잘익은 여드름은 완전 웃끼고..난 첨부터 키가 큰줄알았는데 ,저번 사진보고 놀랐는데...재밌네 .ㅋㅋ
난 중학교때 선희랑 정희보다 머리통 한개가 더있어 좌우로 거느리고 댕겼지...큰욕봤구먼...
이번에는 니 차례?
경우가 그렇게 키가 작았다는 기억은 별로 들지 않았는데 그런 스트레스가 있었네.. 나는 키에 대해서는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지않아서 잘모르겠는데 나도 중3때 160센치에서 고1때177센치였으니까 나도 1년사이에 17센치나 컸던기억이 난다.. 그래서 고등학교입학하자마자 졸업할때까지 계속 2번이었어(그때는 키큰순대로 번호를 정했슴) 나도 1번이 될수도 있었는데 1이란 숫자가 알게 모르게 부담을 주자나.. 그래서 2번을 했던것같다.. 사실을 1번하고 키가 똑같았거든... 땅꼬마 1탄 잘봤고 2탄이 더 기대할께~
나도 니가 언제 그렇게 컸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일찍컸으면 키작은 설음 다는 모르겠지?
난 중삼때 165였는데 고삼때까지 겨우 5센지 컸고 졸업후 1센지 정도 커서 중삼 이후에 겨우 6센지컸다. 중일때 우리반 65명중 세번째로 컸는데...
우리 아부지는 나보다도 컸는데 외가집(태희네) 닮아서 작아 진거 같다
병락아!너외가 식구들 키안작다..태희네 5남매 키작단 소린 안듣는다..
니가 어릴때 늦둥이라고 땡캉부리매 골고루 안먹어서 글타??ㅋㅋ
병락이 곱게 한방 먹었당 ㅋ
우리 집안에는 4촌 6촌 삼촌 당숙 거의가 옛날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80가까이 된다. 울 아부지도 옛날사람인데 거의 75정도 였으니까.우리 집안이 원래 엄청 큰 집안인데 울 엄마가 작아서 그렇다고 생각하거든. 외가 집도 작은 편은 아니지만 큰편이 아니다. 우리 형님은 둘다 작고 누나는 여섯명중 4명이 165정도 되니까 옛날 여자치고 엄청 크다
그런강?그라마...너무커도 빌로다..남자고 여자고 적당해야좋지..
병락이는 쪼매이짤다고 생각하는지 몰다만 그래도 인물은 훤하잖아..
못생기고 키만 삐죽한것 보단 백번낫다...옥이생각..
난 여태도 병락이가 작다는 생각은 않한다. 실제로 우리 세대에서는 그리 작은 편은 아닌데 일찍 커서 크다는 이미지가 남아 있어서일 것 같다. 기현이, 기일이 다 마찬가지...
그렇게 클줄 누가 알았겠노 그지 울동생하고 비슷하네 하도작아서 고민을하니 우리할머니 하시는말씀 종자가 작은집이아니라서 클기다 그랬는데 고등학교에 가니까 진짜하루가 다르게 크드라 지금은 180정도 작아도 스트레스 받지만 커도 스트레스빋는것은 똑같다.우리 아.딸은 항상 불만이다 키가너무커서 우리딸은 힐을마음대로 못싣고 울아들은 메이커에가도 신발은 주문 간혹재수좋으면 맞는것도있다.................
남자고 여자고 너무 커도 파이야??울딸은 키가 어마이키도 못따라오는데도..
불만이 없다네..이쁜 구두를 입맛데로 신을수 있어서..
발도 쪼매이하이 225신는다..우리는 느을 아이고 쪼매이마 더크지.우애 어마이키를 못따라오노카고..
보마 안타깝다.내가 장사한답시고 오키 못먹여가 그른동.......160될라??아쉬워~~
우리애들 둘다 어릴때부터 애기대접을 못받았다. 서너살때도 밖에 나가면 니유치원안간하고 유치원다닐때는 니는 학교에안가나하고 초딩6학년때부터는 어디가면 고딩이로보고했다.울딸은 172이고 울아들190둘다 징그럽다.울딸은 키가작은게 너무부럽다네 여자아이가 신은250 이쁜게있겠나 맨날 고무신같은 단화만즐겨싣고 울아들290이또한 한정판패 자고로표준이 제일좋아.돈도 적게들고...............
와아~~~~~대단하네!! 어애그클 만이크드노??딸아 신발 사이즈 250이마 대단하네..
금화님도 키가 많이 큰강??대단하다..참말로~~~.나눌수 있음 좀 나나달랠따만~~
그래도 작은 것 보다는 큰게 백번 낫다. 요새야 없겠지만 만원 버스에 낑기가 머리통도 못돌릴 때 심정 생각해 봐라.
170만 넘으마는 만원 전철타마는 웬만한 사람들은 밑에 있다. 내가 작년인가 서울에 어마어마한 눈이 왔을때 전철을 탔는데 사람에 밀려서 죽는줄 알았는데 여자들은 숨도 못쉬고 했는데 난 그래도 숨을 아주 쉽게 쉴수 있었다. 우리나이 평균이 168정도 밖에 안된다는걸 아는가??? 난 평균에서 훨씬 위다
지금 전철이 만원이라도 그 때 만원버스에 비할 수야 있겠는가만 만원 차에 타보지 않고는 키 작은 사람 비애를 이해하기 힘든다.
머리통이 가슴박에 쯤 있어봐야 그설음을 알랑강??
우리 학교 다닐때 만원버스는 그야말로 전쟁이였지?문이 안닫길 정도로 밀어넣고 차장이 그틈으로 차비 받으려 댕겼다니까?전에 내 이야기에도 얘기했지만 재릿재의 그 짜릿함과 가방끈이 다 찢어질 지경이였지??안놓칠라꼬 하도 땡겨가 손잡이 부분그 쇠로 된기 찍 찍어졌다니까?그라마 철사로 매가 댕기기도 했다.
하도 잘찢어져셔리...요즈음은 비할바가 아닐껄..허긴 서울의 만원 전철도 TV보니 만만찮트라..
머리박이 여학생 가슴박이면 로또다. ㅋㅋ 한 때 대림동 살 때 나는 매일 1, 2호선이 환승되는 신도림 역을 이용했는데 공익요원들이 전철 출발하기 전 미처 못탄 승객 비집어 태우고 문닫게 하기 위해 일명 '푸시맨"이라고 활동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은 몰따. 나는 인천에 살고 내가 주로 이용하는 공항철도는 그런거 모르고 거의 앉아서 다닌다.
우리가족 서울갈때 기차표구입 일반석은 울아거들 다리가길어서 앞의자에 받쳐서 안되고 동반석아니면 특실로해야하고 울아들 버스타면 맨뒷자리 아니면 서서갈때는 고개를 숙이고가야한다 천장에 머리가 받칠까바 그래서 크거나 작거나 애로사항은 같습니다.
어른들 말 하나도 안 틀리네 밥 마이무면 지데로 키 큰다고...경우가 증명하네...눈 빠지는줄 알았다 글이 길어서..
미안.*!* 요점만으로 줄이는 재주가 부족하야? 그래도 정성은 갸륵하지?
명덕로타리.대명동.그시절좋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