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에 가속도가 붙는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실제 물리적으로는 맞지 않는 말이지만 인간의 기억과 느낌으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나이가 입지 또는 이립인 30세가 되면 초속 30km로, 불혹인 40세가 되면 초속 40km로, 지천명인 50세가 되면 초속 50km로, 육순 또는 이순인 60세가 되면 초속 60km로, 칠순 또는 고희인 70세가 되면 초속 70km로, 팔순 또는 산수인 80세가 되면 초속 80km로, 구순 또는 졸수인 90세가 되면 초속 90km로, 상수인 100세가 되면 초속 100km로, 천수인 120세가 되면 초속 120km로 빨라진다는 것이 공감이 갑니다.
실제로 지구가 태양을 도는 공전 속도는 초속 29.8km입니다. 30세 미만까지는 초속 29.8km가 넘지 않기 때문에 그런대로 세월이 빠르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때가 시간이 가장 길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를 다녀오면 동네 친구들과 산과 냇가와 들판을 돌아다니며 놀고, 저녁 시간이 되면 집에 가서 밥을 먹고 나온 후 다시 동네 친구들과 숨박꼭질하며 놀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와서도 하루 종일 놀고 또 놀아도 지칠 줄 몰랐던 그 시절이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시골마을에다 그 당시에는 장난감도 놀이기구도 없었고, 교과서 외에 읽을 만한 책도 없었고 학원이나 조기 교육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집 마당이나 길이나 들판이나 냇가나 산 그 자체가 놀이터였고 놀잇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아이들은 유치원생도 되기 전에 경쟁에 돌입하도록 부모들이 조기 교육에 열성을 가집니다.
어떤 부모는 임신 중에도 태아에게 소리를 들려주며 이미 조기교육을 시작합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을 잠시 내려놓고 돌이켜 보면 뭔가 우리나라의 사회와 교육문화가 정상인가 의구심이 듭니다.
한국은 자살률 세계 1위에 가깝고 미국에 이민 간 한인들조차 똑같습니다.
우리나라의 과거 1970년대 이전이나 현재 북유럽의 잘 사는 국가 등을 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무한 경쟁에 돌입해야 하는 아이들은 결코 행복한 인생을 살아간다고 볼 수 없습니다.
부모들도 자녀들 학비와 양육비와 보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과대해져 재정적인 걱정이 끊이질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결혼해야 할 젊은이들은 아예 결혼도 포기하고 결혼한 젊은 부부는 자녀를 가급적 낳으려 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출산율 0.7명 이하로 멀지않은 시기에 국가 존립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과잉경쟁과 이룰 수 없는 재정적인 문제와 바쁜 일과와 여유없이 윤택하지 못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 시대입니다. 물가는 계속 오르고 모든 경비와 관리비와 지출이 과대해지며 수입이 아무리 증가해도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폐단이 선진국이라는 우리나라 현실입니다.
과연 이러한 사회구조가 좋은 것인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기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 사회에서 인정받는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보이어 지고 앞서가던 자들이 타락하고 교만해지고 방심하다 그 인생이 먼저 파탄이 나고 무너지는 것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 자주 보게 됩니다.
오히려 조기 교육은 받지 못하고 뒤쳐졌어도 천천히 지식을 쌓아가고 경험을 쌓아가고 계속해서 조금씩 지식을 습득해가며 자신이 성공자라고 자만하지 않고 인생 끝날 때까지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 결국은 사회에서 훌륭한 사람 성공한 인생이 되는 것을 우리는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구조라며 조기 교육 받지 못한 시골출신이나 지방출신이 결코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에 진학할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명문대 진학만을 놓고 보면 일면 타당해 보이지만 과연 명문대를 나오면 그 인생이 성공자가 되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명문대를 나왔어도 그 인생이 변변치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고 정주영 회장이 초등학교밖에 안 나왔지만 그가 대단한 인물이 된 것을 보면 결코 명문대 진학이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시대에 조기교육으로 남보다 성적을 올려 명문대에 진학하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아이의 인성을 성실하고 근면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인격체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교육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사회에서 인정하는 성공한 사람은 돈이나 지위나 명예에 대한 것입니다.
물론 성경적인 가르침에서는 이렇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을 성공자로 보지 않습니다.
궁극적인 기독교의 정신은 이 세상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영혼 구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고 성경적인 가르침대로 따르는 성도라면 그의 처음은 보잘 것 없을지라도 그의 나중 결과는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성공자가 되기 쉽습니다. 결과적으로 착하고 성실하게 무슨 일이든 주어지면 그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사회에서도 최종적으로 인정받는 성공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잘나고 공부 잘하고 명문대에 진학하고 사회적으로 좋은 직장이나 직업을 가진다 해도 그가 교만해지고 방심하고 불성실하면 곧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주 \영화 기생충으로 인해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된 이선균의 자살로 뉴스가 도배되었습니다.
저는 아내와 결혼 초에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봤기에 그의 죽음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는 외모와 명예와 돈과 인기 모두를 거머쥐었지만 40대 후반에 비참하게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그의 인생과정과 생애 마지막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영화배우 이선균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사회적으로 성공자로 인정받는 자들이 우리 성도님들보다 잘나고 잘살고 많은 것을 거머쥐었다지만 그들이 다음 세상에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불행한 자들입니다.
아무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의 부귀영화와 세상적인 성공은 곧 종말을 맞이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풍조를 따르지 말고 비록 사회적으로 비천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송구 말씀>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엡4:21~24)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21절 말씀에 진리가 예수님 안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하늘 아버지께로 나아갈 자가 없습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습니다. 영생으로 향하는 천국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못했던 옛 습관이나 세상적인 구습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세상적인 것은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이며 영원하지 않기에 반드시 썩어 없어질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심령을 주님 안에서 말씀 안에서 새롭게 변화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성경 말씀에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것이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입니다.
이방인처럼 세상사람들처럼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과거가 있다면 지나간 시간으로 충분합니다. 더 이상 이러한 구습과 악습에 매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여전히 부족한 존재임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신앙의 거장 바울 사도는 위대한 선교사역을 행하고도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빌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말세를 사는 우리가 주님 재림을 준비하며 사는 방법은 달리 있지 않습니다.
새 해를 맞이하는 우리에겐 그 만큼 살 날이 짧아졌고, 시간적인 개념으로 볼 때 건강도 일할 기회도 그 만큼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끝까지 믿음을 부여잡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주어진 환경과 일상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사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와 같이 신앙의 정신을 붙잡고 새 해를 향해 달려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의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의 가슴 깊이 묻어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버렸죠
그대의 힘든 얘기들 모두 그대여 그대의 탓으로 훌훌 털어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전인권이 작사 작곡 한 ‘걱정말아요 그대’라는 노래의 가사 내용입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순식간에 한 해가 지나가 버린 것 같지만 그래도 저마다 많은 사건과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괴롭고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경악하고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불안하고 때로는 걱정스럽고 때로는 답답하고 때로는 부끄럽고 때로는 실수하고 때로는 안타깝고 때로는 미안하고 때로는 후회스럽고 때로는 억울하고 때로는 설레고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기뻤고 때로는 보람찼던 일들이 저마다 다 있었을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아온 것이 성도님들 각자 대체로 죄송한 한 해였음이 분명합니다.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도 축복입니다. 나쁘고 불행한 과거는 빨리 잊어 버려야 합니다.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은 2023년도 한 해의 나쁜 기억을 다 날려버리고 좋은 일들만 기억하고 희망찬 새 해를 맞이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불행한 과거를 잊고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게 하소서
<영신 말씀> 새 영과 새 마음으로(겔36:25~27)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에스겔 선지자는 분열된 이스라엘 왕국 중 더 오래 남아있던 유다왕국조차 바벨론에 멸망당한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선지자입니다.
멸망당한 유다왕국이지만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서 다시금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땅으로 주시겠다고 겔11장17절 이하에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미리 예언해 주신 것을 다시 반복하여 강조하고 계십니다.
본문 24절에서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라고 말씀하신 후 25절에서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정결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맑은 물의 ‘맑은’의 단어는 원어 히브리어로 ‘타호르’인데 순수한 또는 깨끗한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깨끗한 물로 우상 숭배와 더러워진 죄악을 다 씻어버리고 정결하게 만드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선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땅으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받는 것은 더러운 것을 깨끗한 물로 씻어 버리고 정결하게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새 영을 우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굳은 마음은 겔11장19절을 보면 돌 같은 마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은 영혼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외적으로 보이는 몸과 내면에는 볼 수 없는 영혼이 있습니다.
영혼은 결합되어 분리할 수 없지만 이를 굳이 나눈다면 영과 혼으로 분리됩니다.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영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을 오염되지 않은 새 영으로 우리 속에 두어야 합니다.
<예화: 굳은 마음과 꼰대>
세월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 인간의 마음은 돌처럼 굳어집니다.
물론 자신의 가치관과 철학이 뚜렷하게 굳어져 세상풍파에 흔들리지 않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굳어진 마음은 이와 반대로 단점도 생기게 됩니다.
이건 안 돼 저건 괜찮아 등의 편견을 가질 수 있는 점입니다.
나이가 들면 새 일을 알아보거나 도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바로 무뎌진 마음 때문입니다.
꼰대라는 말은 은어로 노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된 말인데 대표적인 특징은 능력은 없으면서 대접받기를 바라고, 굳이 안 해도 될 조언이나 충고를 하고, 요즘 젊은 애들이라는 말을 자주하고, 옛날에는 어땠는데 라는 말을 종종 하는 경우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젊은 꼰대라는 말을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직 젊은데도 사고가 굳어져 도무지 대화가 안 될 정도로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답답한 젊은이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영국공영방송국인 BBC에서 수년 전에 한국말인 ‘꼰대’를 오늘의 단어로 선정한 바 있다고 합니다.
23년도에는 이민영 저자의 ‘젊은 꼰대가 온다’라는 제목의 책이 발간되기도 했습니다.
직장에서 젊은 꼰대의 특징으로 5가지가 있는데 ① 너 그 화장이 뭐니? ② 독불장군 ③ 나 잘났소 ④ 이 구역의 반장님 ⑤ 내가 몸소 경험했잖아 라고 합니다.
‘내 논리가 완벽해 내 말 들어’라며 똑똑한 척하고, 모든 스트레스를 한 곳에 토해내고,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며, 이기주의를 개인주의로 착각하고, 나 때는 이랬어 라며 선배가 시키면 해야지 말하면서 자신은 꼰대가 아니라는 젊은이를 진짜 꼰대로 보고 있습니다.
꼰대로 보는 기준은 상식적이거나 통상적인 지식의 범주를 벗어나 한 쪽 편에서만 보는 경향일 때 쓰는 말입니다.
꼰대는 어쩌면 돌처럼 굳어진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꼰대와 같이 굳은 마음을 가진 자는 비난을 받게 됩니다.
굳은 마음 즉 옛 사람의 마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이 되어 새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새 마음을 가진 자는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은 타인을 존중하고 새로운 지식에 열린 마음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우리 마음가운데 임재하시도록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을 모셔둔 사람만이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온전히 따르고 지켜 행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여호와의 영이신 성령님이 임하면 새 마음을 받고 새 사람이 됩니다.
삼상10:6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결론 및 적용>
새 영과 새 마음으로 지난 한 해의 묵은 마음 곧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갖길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가축 중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으러 사흘 동안 돌아다니던 사울에게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기름 부음을 받게 하시고 새 마음을 주어 최초의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엡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골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새 해에는 믿음이 없는 자에게 여호와의 영이신 성령님이 임하셔서 새 마음을 가진 새 사람이 되게 하시고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성도님들에겐 더욱 성령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4년 교회 기도제목>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게 해주세요.
교회에 새로운 일꾼들이 늘어나게 해주세요.
청년들에게 신실한 배우자를 만나게 해주세요.
교회의 예배 장소가 더욱 나은 장소로 나아가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