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는 전라북도의 도청 소재지로 북위 35°53' 동경 127°14'에 위치하고 전라북도의 중앙부를 북동으로부터 남서로 뻗어 있는 노령 산맥의 지류인 기린봉, 고덕산, 남고산, 모악산 그리고 완산칠봉 등이 시가지의 동.남.서방에 둘러싸여 분지를 이루고 있다. 전주 시가지 대부분은 전주천 충적토상에 건설되어 대체로 평탄하여 남동방 전주천변에서 북서방으로 향하여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전주천은 전주시역의 남동방 26㎞의 관촌 평야와 경계한 분수령에서 기원하여 시가지의 중심을 남동방에서 북서방으로 관통하고 삼천천은 노령 산맥 복부를 흐르고 있는 섬진강의 북평 분수령인 임실군 운암면과 완주군 구이면계에서 시작하여 전주시 서부 농경지를 남방에서 북방으로 흐르다가 주천에 서 전주천과 합류하여 만경강으로 흐른다. 또한 소양천은 곰치에서 기원하여 전주시역의 북동 경계를 흘러 전주천과 합류되며 3개의 하천이 전주시역의 남북으로 흐르고 있다. 면적은 206.24㎢, 연평균 기온 12.9℃, 연평균 강수량은 1296.2mm, 인구는 611,921명(182,919세대), 행정 구역은 2구 40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주 지명
전주(全州)의 옛 지명은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백제 시대에는 완산(完山)이라고 하였는데 마한국명으로는 원지국(圓池國)에 이른다. 전주라는 지명 사용은 서기 757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경덕왕(景德王) 16년부터이다.
전주 완산의 비명 원의(源意)를 볼 때 '완(完)' 과 '전(全)'은 모두 '온전하다'는 '온'이란 우리말 뜻을 지닌 글자이다. 따라서 '완'은 그 음도 '온'의 근사음으로서 '완'이란 글자는 ' 온'이란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보면 '전주', '완산'의 옛 지명은 '온.다라'였음을 알 수 있다. '온'이 안 뜻은 첫째 온전하고 흠이 없다. 둘째 뚜렷하고 갖추어져 있다. 셋째, 순수하고 티가 없다. 넷째 모든 것이 어우르다. 등의 뜻이 담겨 있다.
특히 온이란 말은 완, 전자 이외에도 원(圓), 온(溫), 백(百 - 옛말 온) 등의 한자 소리나 새김을 빌렸다. 삼국사기 백제기 온조왕(溫祚王) 조를 보면 백제가 마한 땅을 어우르자 줄기차게 항거했던 원산성(圓山城)도 바로 이 곳이며 온조왕의 온(溫)자도 실은 온임금이란 뜻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백제(百濟)의 백(百)자도 온을 빌어 쓴 글자로서 백제는 온.다라를 적은 것으로 실은 '완산'이나 '전주'와 같은 뜻이다.
이 말은 '온 겨레가 바다를 건너다'라는 뜻이다. 결국 '온.다라'는 온 겨레가 온 뜻을 어울려 온 힘을 합하여 거친 바다의 풍파를 헤쳐 온전하고 흠이 없으며 그리고 뚜렷하게 모든 것이 갖추어진 나라를 세우자는 이상이 담겨 있다.
따라서 완산(完山), 전주(全州), 원산(圓山) 등으로 적혀 내려온 옛 지명은 '온.고을'의 ' 온.백성'이 어울려 '온.마음'과 '온.힘'을 합해 완전무결하고 순수무결하며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이상향의 정신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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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혁》
∼ 3세기(삼한 시대) : 북방 20km 지점에 마한이 도읍함. ∼ 6세기 말(백제 시대) : 완산이라 부름. 660년 (의자왕 20년) : 나당군, 백제 왕도를 함락함. 685년 (신라 신문왕 5년) : 완산주를 둠.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 : 완산주를 전주라 개칭함. 892년 (신라 진성왕 6년) : 견훤이 도읍하여 [후백제]라 부름. 936년 (고려 태조 19년) : 왕건이 후백제를 멸하고 안남도호부를 둠. 940년 (고려 태조 23년) : 다시 전주로 개칭 983년 (고려 성종 2년) : 전주목을 둠. 993년 (고려 성종 12년) : 승화절도사를 둠. 995년 (고려 성종 14년) : 강남 해양의 2도로 나누고 전주는 순의군이라 하여 강남도에 속함. 1005년 (고려 목종 8년) : 전주 절도사를 둠. 1018년 (고려 현종 9년) : 강남, 해양 2도를 통합 전라도라 하고 전주는 안남대도호부라 부름. 1388년 (고종 신우왕) : 최유경 전주 부성을 쌓음. 1392년 (조선조 태조 원년) : 완산 유수부를 둠. 1403년 (조선조 태종 3년) : 전주부라 부름. 1410년 (조선조 태종 10년) : 이태조 어용 진전을 창건 (동왕 12년 진전이라 부름) 1439년 (조선조 세종 21년) : 전주 실록각을 설치 1442년 (조선조 세종 24년) : 진전을 경기전으로 개칭 1473년 (조선조 성종 1년) : 전주 사고 건립 1592년 (조선조 선조 25년) : 태조 영정, 사고 전적을 묘향산으로 옮김. 1597년 (조선조 선조 30년) : 8월 왜군이 입성, 경기전 등 파괴됨. 1614년 (조선조 광해군 6년) : 경기전 중건 1675년 (조선조 숙종 원년) : 위봉 산성 창축 1734년 (영조 10년) : 부성의 개축, 남문을 명견루라 부름. 1767년 (영조 43년) : 정해년 대화로 성문루 소실, 남문 서문 중건 풍남문 패서문으로 고침. 1771년 (영조 47년) : 조경묘 창건, 이씨 시조 위패를 봉안. 1775년 (영조 51년) : 완동문 공북문 준공. 1812년 (순조 12년) : 남고 산성 중건. 1894년 (고종 31년) : 동학 혁명군 전주 점령. 1906년 (광무 10년) : 부성을 철거함.
1914년 10월 1일 : 전주면을 설치. 1930년 6월 26일 : 완주군 상관면 중 9개리를 전주면으로 편입. 1931년 4월 1일 : 전주면이 전주읍으로 승격(부령 제103호 1930. 12. 29 공포). 1935년 10월 1일 : 전주읍이 전주부 승격되어 완주군에서 분리(부령 제112호 1935. 9. 28 공포).
1949년 8월 15일 : 지방자치법 시행에 따라 전주시로 개칭(법률 제32호). 1957년 11월 6일 : 완주군 초포면.우전면의 일원, 조촌.용진.상관면 일부 전주시로 편입(법률 제453호). 1973년 7월 1일 : 완주군 용진면 산정리 중 일부를 전주시에 편입(대통령령 제6542호). 1983년 2월 15일 : 완주군 상관면 대성리.색장리 일원과 용진면 산정리 중 815필지를 전주시에 편입(대통령령 제11027호). 1987년 1월 1일 : 완주군 조촌읍을 전주시에 편입(대통령령 제12007호). 1988년 7월 1일 : 전주시에 완산.덕진 출장소 설치(시 조례 제1541호). 1989년 1월 1일 : 완주군 용진면 산정리.금상리 및 구이면 중인리.용복리.석구리.원당리를 전주시에 편입(대통령령 제12557호). 1989년 5월 1일 : 완산.덕진 출장소를 완산구.덕진구로 승격 설치(시 조례 제1591호). 1990년 8월 1일 : 완주군 이서면 상림리.중리를 전주시 완산구 상림동.중동으로 편입(대통령령 제13046호). 1994년 12월 26일 : 김제군 용지면 남정리 일부, 김제군 백구면 도도리.강흥리.도덕리 일원을 전주시 덕진구 남정동.도도동.강흥동.도덕동으로 편입(대통령령 제14434호). 1996년 9월 1일 : 완산구 중앙동.다가동.고사동을 중앙동으로, 경원동.풍남동.전동을 풍남동으로 통합(시 조례 제20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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