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최대의 영화를 누린 크메르 왕국의 유적지다
600여 년간 20대에 걸쳐 100만의 인구가 1,500여개의 사원과 거대한 왕궁을 세워 번성하였다가
이유 모르게(외적의 침입,홍수등으로 추측하나...)갑자기 멸망하여 사라진 미스테리의 대제국이 있던 곳이다
매장을 하지 않는 화장 문화라서 유물이나 역사의 기록이 없는데 다행히 여러 건물의 벽에
빼곡히 새겨진 기록화가 남아 있어 그 당시의 사회상과 역사 신화를 자세히 나타내 주고 있다
앙코르와트는 앙코르 유적지에서 가장 웅대한 규모이고 가장 잘 보존된 건축물로
피라미드보다 신비롭고 타지마할보다 아름다운데 수리야왕이 자신의 무덤으로 쓸
장례사원으로 지었다는데 37년의 짧은 기간에 조성되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산이 없는 이 곳에서 이렇게 많은 돌을 어디서 구하고 어떻게 운반하였는지
절로 감탄이 나오는데 아직도 그 공사방법은 수수께끼란다
더구나 현대기술과 장비로도 높은 건물을 지울 수 없는 무른 지반에다가
엄청 무거운 석재로 지은 이 세계 최대의 석조 건축물인 거대한 사원은
그 구성, 균형, 설계, 조각과 부조의 완벽함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고 위대한 예술품이다
시엠렙 시가지에서 북쪽으로 약 5km 달리자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며
널찍한 강 같은 앙코르와트의 남쪽 해자(垓字:방어용 수로)가 펼쳐진다 거기서 7~8km 북방까지 동서로는 8km쯤 되는 정글지대 안에 앙코르의 핵심 유적들이 자리잡고 있다
신비스러움으로 .....
거대한 역사의 한장면속으로 걸어 들어 가는듯 한
숨죽이는 숙연함으로 한발자욱씩 걸음을 옮겨갔다
쓰여진 돌이 사암이라고는 하지만 어찌나 정교했는지
마치 부드러운 점토를 기분좋게 주물러서 곱게 문질러 놓은듯
셈세하고,그지없이 유연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느낌으로 한쪽 벽면에 몸을붙이고
아주 작은 동작으로 움직이면서 그 안에 세겨진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는듯한 생동감까지...
크메르족의 왕도가 이곳 앙코르로 옮겨온 것은 우리의 고려 초쯤인 890년경이다
야소바르만 1세 왕은 당시 해상을 통해 유입된 힌두 사상에 따라 신들의 거주처이며
5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메루(meru)산, 곧 수미산(須彌山)의 대신으로
5개의 첨탑을 가진 사원들을 건축했다
그 후대 왕들도 신성의 사원 산(山) 들을 다투어 세우며
앙코르는 크메르 왕국의 수도로 400여년 번영을 누렸다
사원은 왕들의 신앙에 따라 시바신을 모신 힌두사원으로
혹은 보살을 모신 불교사원으로 세워졌다 또한 불교사원 안에 시바신의 상징인 링가를 힌두사원 안에 불상들을 모시기도 했다 우리에게서 무속과 불교가 습합했듯 이곳 앙코르에서는 힌두교와 불교가 습합된 것이다
내전 시절 매설된 지뢰 때문에 아예 접근도 못하고 있는 밀림 속의 것들 이외 눈에 띄는 것만도 앙코르의 사원은 모두 1000여개를 헤아린다
앙코르(Angkor)는 고대 산스크리트어 나가라(nagara)에서 온 말로서 도시 와트(wat)는 사원이란 의미이니 앙코르와트는 사원의 도시다
톰(thom)은 크다는 뜻이고 앙코르톰은 큰 도시라는 뜻이다 우리 서울로 치면 4대문 안의 도성이 앙코르톰이며 그 안팎에 400년 세월에 걸쳐 세워진 크고 작은 사원들 중 가장 장대한
경주 불국사 같은 사원이 앙코르와트다 한편 바욤사원은 앙코르톰의 중심 사원이었기에 들인 정성이 각별했다
앙코르와트는 우리 역사로 치면 고려 중기쯤 되는 1113년 왕위에 오른 뒤 베트남의 참족을 굴복시킨 수리야 바르만2세가 세웠다 힌두교 3대 최고신에 드는 비슈누신의 영광을 위해서였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800m의 회랑에는 경전과 크메르의 역사를 섬세한 부조로 빽빽하게 조각하였으며
3층 위에는 연꽃을 상징한 옥수수 모양의 커다란 탑 5개가 서 있는데
앙코르와트의 내부는 왕과 승려들만 출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70도로 가파르게 경사진 72개의 계단을 오체투지의 자세로 기어서
무서움에 벌벌 떨며 오르내리면서도 믿기지 않는 장관이다
멀리서 보면 웅장하고 가까이서 보면 빈틈없이 정교한 앙코르와트는
바로 경이 그 자체로 관광객의 발길을 묶어놓기에 충분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사암이나 목재로 만들었다
사원을 짖누르고잇는 거대한나무들
타프롬을 방문하는 이들은 이 사원의 복구를 반대한다고 한다
그건 이 폐허가 너무 아름답고 나무를 베어 내기가 아깝기 때문이라고 한다
타프롬 사원
앙코르톰 도성 동쪽 바깥의 밀림지대… 거기에 자야바르만 7세가
바이욘사원보다 7년 먼저 어머니를 위해 지었다는 사원인 타프롬사원이 있다‘ "인디애나 존스", 툼레이더’ 등 원시적인 분위기의 연출이 필요한 영화들의 촬영장소로 애용되는 곳이다
고푸라(gopura:사원 입구에 부조로 장식된 구조물)를 지나
타프롬사원 회랑 안쪽 어두컴컴한 뜰로 들어선 순간 멈칫 걸음이 멈추어진다 그저 나무들뿐인 숲속이었다면 그곳의 정적감이 그렇게 농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뿌리로 사원의 석재 사이를 비집으며 내려가 종내는 유적지를
허물어뜨리고 남은 유적의 벽체 위로 심해의 거대한
문어발 같은 줄기로 뒤덮어버린 케이폭(Kapok)거목들… 이곳의 시공간은 천년 세월 저편의 것 그대인 것 같다
다른 사원들도 모두 마찬가지로 거목들로 허물어지고
휘감겨 있었으며 그 중 타프롬 사원만 일부러 그대로 남겨두었다고 한다
어떤 군주가 언제
어떤 이유로 이 왕도를 버렸는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래서 더더욱 앙코르는 불가사의다
이렇게 사원들이 거대한 거목들로 인해 허물어지고 있다
앙코르톰
앙코르와트에서 80년 세월이 흘러 1200년대로 가면 앙코르톰의 바이욘사원이 거기 있다 자야바르만7세가 세운 사원이다 대물린 원수인 베트남 지방 참족의 지배로부터 앙코르 왕국을 되찾은 뒤 그는 새 왕도로 앙코르톰을 건설했고 불멸의 요새이기를 기원하며 바이욘사원을 세웠다 참족에 이긴 것이 부처의 보살핌 덕이라고 믿었던 그는 부처의 발에 영광을 주기 위해’ 이 절을 지었다고 한다
건축당시 앙코르톰과 그 주변의 인구는 100만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동일한 시기의 유럽 어느 도시보다도 많은수다
성벽안에는 왕을 비롯한 왕족과 고위층 장군 승려들이 생활하고
일반인들은 성밖에서 살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앙코르 유적중에서 입구가 제일 장관인곳이 앙코르톰 입구일 것이다
남문의 해자를 건너기 위해 만들어 놓은긴 다리 양쪽 난간에 석상들이 줄지어 있는것이
인상적이다
비이욘의 가장 큰 특징은 54개의 탑으로 현재는 36개만 남아있다
탑마다 조각된 큰 얼굴은 200여개로 사방에 조각된
사면상은 사원을 위엄있게 보이게한다
사면상은 불교 사원인 것과 연관해 관세음보살 (아발로키테스바라)의 얼굴이다
그이 화신인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라고 여겨지고있다
스님들이 머물던 제2 회랑을 지나 사원의 제일 위쪽 회랑으로 올랐다 높이 4~5m 되는 사면(四面) 불상들이 중앙탑 주변을 빙 둘러 서 있다 걸음을 옮기자 불상의 옆 얼굴이 나타나고 그 불상 뒤에 가렸던 사면불이 푸른 숲을 배경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리 보고 저리 살펴보는 사이 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불상들이 살아 나서고 숨기를 거듭하는 것 같은 착각이 인다 이 기묘한 공간미에 홀려 결국 침묵 속으로 빠져든다
높이 60m의 다섯 개 탑으로 앙코르와트는 이미 장관이지만 그러나 웅장함은 앙코르와트의 주된 특징이 아니다.
앙코르와트의 뛰어남은 무엇보다 섬세함에 있다.
문 기둥, 벽체 어디건 한 뼘의 여백도 없이 빼곡히 정교한 부조물들로 채워져 있다.
춤추는 천상의 요정 압사라(apsara)가 무엇보다 눈에 띈다.
손바닥을 뒤로 꺾고 다리는 마름모꼴로 벌리며 춤추는 압사라, 압사라들….
이곳 앙코르와트에는 모두 2000개의 압사라상이 새겨져 있는데,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보이는 건물들은 사신들이 머물렀던 숙소인 셈이다
바푸온이다
자야 바르만 7세는 캄보디아에서 최초로 마하야나 불교 (대승불교)를 들여 온 왕으로
자신을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로 믿고 대승불교를 장려하기 위하여
갖가지 사원과 빈민구제 시설들을 많이 지었다고한다
피미아니카스
왕실의 제단이자 사원으로 왕실 내부에 있다
원나라의 사신이었던 주달관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꼭대기에 황금으로 된 뽀쪽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는 9개의 머리를 가진 뱀의 정령이 살아있다는 전설이 있다
이뱀의 정령은 밤마다 여자로 변장하여 왕이 왕후나 후궁들과 잠자리에 들기전
먼저 동침하여으며 만일 하루라도 동침을 안하면 왕이 죽는다는 전설이다
이런 이유로 크메르 왕가의 혈통에는 신성한 뱀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한다
꼭대기까지 기를 쓰고 올라갔는데 어찌나 계단이 가파른지...ㅠㅠ
캄보디아, 인구의 4분의1인 무려 200만명이 학살당한 "킬링필드"의 사람들 그들의 얼굴은 그러나 뜻밖으로 유순해보였다 20여년 전 가한 자들의 잔혹함과 당한 사람들의 공포가 유달랐던 대학살이었다. 그렇듯 무도한 학살극을 벌이긴 했지만 크메르족의 조상들이 세운 앙코르 왕국의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정도로 예술적·문화적 가치가 높은 것들이다
문둥이왕의 테라스
지금의 동상은 복제품이며 진품은 프놈펜 박물관에 있다
문둥이왕에 대한 추측은 여러가지가 있다
앙코르제국에 병원을 많이 건설한 자야바르만 7세라고 여겨지기도 하고
일부 학자들은 부의신인쿠베라 또는 야소바르만 1세라고 주장하기도한다
화장를 하였던 화장터
어쩌자고 그곳이 그리워 지는 것일까
왜 그곳에 가고싶어 지는 것일까
나도 모른다...
어쩌면 거기... 또 다른 만남이 길게 목을 늘이며
내 마음으로 끌어당기고 있는것인지...
나는 다시..
그 거부할수 없는 초대를 마음속의 마음으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