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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月先生文集(해월선생문집) 卷之七(권지칠)
< 中略(중략) >
記(기)
海月先生文集(해월선생문집) 卷之七(권지칠) 16~17장 1편
朴谷記(박곡기)
余於物(여어물) 無所好(무소호)
나는 물질(物)에 있어서 어디에도 좋아하는 것이 없다.
非直無好(비직무호) 以無能也(이무능야)
단지 무능하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惟愛溪澗(유애계간) 樂丘壑之性(락구학지성)
오직 산골짜기에 흐르는 시내를 아끼고, 언덕과 골짜기를 즐기는 성품은
至老而不小衰(지로이불소쇠)
나이가 들어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歲辛丑春(세신축춘) 有爲神農行者(유위신농행자)
신축(辛丑:1601, 선조34)년 봄에 신농행자(神農行者)가 나에게 와서
※신농행자(神農行者) : 신농의 도(道)를 행한다고 하는 사람, 즉 농부
來余曰(래여왈) 仙槎有一谷(선사유일곡) 名曰朴(명왈박)
선사(仙槎:울진의 옛 지명)에 한 골짜기(一谷)가 있어 이름을 박(朴)이라 하는데,
頗寬閒可耕(파관한가경)
좀 널찍하고 조용한 것이 가히 경작할 만한 곳이니,
子盍觀諸(자합관제)
그대는 한 번 둘러보지 않겠느냐?
余欣然從之遊(여흔연종지유)
말해서 나는 흔쾌히 따라가 노닐었다.
舊有朱姓者居之(구유주성자거지)
오래된 옛 집(舊:구)이 있어 주씨(朱氏) 성을 가진 사람이 그 집에 살고 있었다.
余問於客曰(여문어객왈)
객(客:神農行者)에게 물으니
谷名朴(곡명박)
골짜기 이름(谷名)이 박(朴)인데,
而居者朱何也(이거자주하야)
살기는 주씨(朱氏)가 사니 어떻게 된 것이냐고
客曰(객왈)
객(客)이
朱亦非主(주역비주)
주(朱)씨 역시 주인(主)이 아니고,
朱之王父(주지왕부) 爲江陵尹者(위강릉윤자)
주씨(朱氏) 할아버지(王父)가 강릉 부윤(江陵尹)으로 있을 때,
得於山氓之姓崔者(득어산맹지성최자)
최씨(崔氏) 성을 가진 이주민(山氓:산맹)에게서 얻은 것이다.
安知崔之前姓朴者始居(안지최지전성박자시거)
최씨(崔氏)가 살기 전에 박씨(朴氏) 성을 가진 사람이 처음 살았기에(始居),
而名之歟(이명지여)
이름 붙여진 것을 어찌 알겠는가?
桑海無窮(상해무궁)
상전벽해(桑海:상해)가 끝이 없고(無窮:무궁) ,
鐵爐相遞(철로상체) 又安知經幾(우안지경기)
철과 화로(鐵爐)가 번갈아 되는 것이,
如崔如朴(여최여박) 而今之朱(이금지주)
최(崔)씨와 박(朴)씨처럼 지금의 주씨(今之朱)
又不能有之(우불능유지)
또한 능히 이 곳을 소유할 수가 없는데,
莫有値其主者(막유치기주자)
어찌 그 주인(主)을 마주 대할 수가 있겠는가
意者(의자) 天其或相(천기혹상)
헤아려보니 기이하게도(或) 하늘(天)이
吾子之居之歟(오자지거지여)
이 곳을 그대(吾子:해월)가 차지하도록 점지해 놓은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했다.
余曰(여왈)
내가 이르기를
子言信矣(자언신의)
당신 말이 믿을 만 하군요'
以余觀之是谷(이여관지시곡) 雖以人爲朴(수이인위박)
제가 보건데 이 골짜기가 비록(雖:수) 사람으로 인해서 박(朴)이 되고,
而以谷(이이곡)
골짜기도 또한 박(朴)이니,
而名之朴亦宜(이명지박역의)
박(朴)이란 이름이 지어진 것 또한 마땅하다.
朴者天瓢之俗稱也(박자천표지속칭야)
박(朴)이란 속칭(俗稱)들에 심어져 있는 박(天瓢:천표)을 말한다.
羅人以始祖(라인이시조) 生於瓢(생어표) 故姓是朴(고성시박)
신라 사람(羅人) 중에, 시조(始祖)가 박(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성이 박(朴)이 되었고,
其後(기후) 又有以匏渡海來者(우유이포도해래자)
그 후 또 바가지(匏)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사람을
曰匏公(왈포공) 匏亦朴也(포역박야)
포공(匏公)이라 말하는데, 그 바가지(匏) 역시 박(朴)이다.
盖渾渾沌沌之稱(개혼혼돈돈지칭)
대개 천지(天地)가 열리지 않고, 음양이 나눠지기 이전의 상태를 일컬어 말하길
曰太朴(왈태박) 曰古朴(왈고박) 曰醇朴(왈순박) 曰儉朴(왈검박) 曰朴陋(왈박루) 曰朴野(왈박야)
태박(太朴), 고박(古朴), 순박(醇朴), 검박(儉朴), 박루(朴陋), 박야(朴野)라 하는데,
朴之爲義遠矣(박지위의원의)
이와 같이 이 박(朴)이란 의미가 얼마나 심오(義遠:의원)한 것인가!
遠(원) : 1. 멀다 2. 심오하다. 깊다
㢤想(재상)
비로소 상상해 보건대
其烟霞爲國(기연하위국)
아! ㅡ 연하(烟霞:고요한 깊은 골짜기)는 나라(首都)가 되고,
鹿豕爲窟(록시위굴)
록시(鹿豕:북두칠성, 사슴 가문의 아들)는 굴(窟) 속에 숨어 있으나,
隱然(은연) 有太朴未刻之氣像(유태박미각지기상)
은연중(隱然中)에 태박(太朴) 즉 하나님이 아직 벗기지 않는 기상(氣像)이 있구나!
崖澗邃而蒼(애간수이창)
언덕의 산골물이 깊숙하여 파랗고,
松櫪老而矮(송력노이왜)
소나무(松)와 상수리나무(櫪)는 오래되어 굽어져 있고,
依然(의연) 若見上古(약견상고) 眞朴之物色(진박지물색)
의연(依然)한 것이 또한 상고(上古)의 순수하고 소박(眞朴)한 물색(物色)을 보는 듯하다.
又近谷之民(우근곡지민) 愚而全眞(우이전진)
또한 가까운 골짜기 사람들은 어리석으면서도 진실 됨을 온전히(全眞)하고 있고,
嗇而務本(색이무본) 其性醇朴(기성순박)
검소하면서도 힘써 일하니, 근본적으로 그 성품(性)이 순박(醇朴)하다.
麻竹衣冠(마죽의관)
삼과 대나무(麻竹)로 의관(衣冠)을 하고,
橡栗盤飧(상율반손) 其事儉朴(기사검박) 皆谷之賜也(개곡지사야)
도토리와 밤(橡栗)으로 식사를 하는 그 일들이 검박(儉朴)하니, 모두 이 골짜기가 베풀어 주는 것이다.
泉無飮者(천무음자)
샘을 파서 물을 마시는 사람도 없고,
土無耕者(토무경자)
땅을 경작하지도 않으며,
溪幽而不滌(계유이불척)
시내가 깊어도(溪幽:계유) 씻지 않고,
逕塞而不剪(경색이부전)
지름길이 막혀도 수풀을 베어내지 않으니,
非朴而陋乎(비박이누호)
어찌 박(朴:소박)하고 누(陋:누추) 하지 않은가?
以山焉(이산언) 則去海十里(즉거해십리)
산(山)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바다와의 거리가 10리 나 되고,
以郊焉則環山萬重(이교언즉환산만중)
교외(郊外)로 말할 것 같으면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여 있으니(環山萬重:환산만중),
人不知禮人(인부지례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예의를 알지 못하며,
鳥不知避人(조불지피인)
새들은 사람들을 피할 줄 모르니,
非朴而野乎(비박이야호)
어찌 소박(朴)하고 촌스럽지(野) 않은가?
其爲朴不同(기위박부동)
그 박(朴)이란 (의미는) 같지 않으나(不同:부동),
而谷乃兼而有之(이곡내겸이유지)
골짜기(谷)는 그러한 성질을 겸하고 있으니
若是則名之曰朴(약시즉명지왈박) 不亦相稱乎(불역상칭호)
이와 같은 즉, 박(朴)이란 이름으로 서로 상칭(相稱)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客曰唯唯(객왈유유)
객(客)이 말하길 ‘그러하도다.
然則子將何樂㢤(연즉자장하락재)
그런즉 그대는 장차 어떻게 즐기겠는가?’ 하고 물었다.
余曰(여왈)
내가 대답하길
古之人(고지인) 有以己之愚(유이기지우)
‘옛 사람이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而愚其溪(이우기계) 愚其谷者(우기곡자)
그 시내(溪)를 어리석다(愚溪)하고, 그 골짜기(谷)를 어리석다(愚谷)고 하였지만,
今余則(금여즉) 欲以谷之朴(욕이곡지박)
이제 나는 골짜기(谷) 박(朴)으로써
而朴我之未盡朴者(이박아지미진박자)
내 임금의 미진한 박(我之未盡朴:아지미진박)을 박(朴)하게 하는 것을 낙(樂)으로 삼겠다.’ 고 했다.
盖余生於鄕曲(개여생어향곡) 處於海濱(처어해빈)
대체로 나는 외진 시골(鄕曲:향곡)에서 태어나 바닷가에서 살았고,
出無賢師友之警敎(출무현사우지경교)
밖으로 나가서는 타이르고 가르쳐 줄 현명한 스승과 벗도 없고(出無賢師友之警敎:출무현사우지경교)
入無羣從兄弟之薰澤(입무군종형제지훈택)
집안에 들어와서는 선도해 주고 도와 줄 집안의 형제도 없었다(入無羣從兄弟之薰澤:입무군종형제지훈택)
其朴陋無比(기박누무비)
그 박곡(朴)의 누추함(陋)은 비할 데가 없는데(其朴陋無比:기박누무비)
重以言不解漢(중이언불해한)
거듭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한문(漢文)을 알지 못하고(重以言不解漢:중이언불해한)
衣不體唐(의불체당)
입는 옷을 보면 화려한 옷은 입어보지도 못하고,
文不入鳳閣之樣(문불입봉각지양)
글재주로는 벼슬길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才不中溝斷之用(재부중구단지용)
재능을 보면 구단지용(溝斷之用) 즉 골짜기에 흐르는 물을 끌어 사용할 줄도 모르고,
腰脚頑而(요각완이) 無磬曲(무경곡)
허리와 다리가 뻣뻣(腰脚頑:요각완)하여 허리를 굽혀 절할 줄도 모르고
形容僻而小軟媚(형용벽이소연미)
얼굴 표정이 굳어(容僻:용벽)있어 상냥하고 아리따움도 없으며,
自分於世無一可者(자분어세무일가자)
스스로는 세상에 어느 하나도 드러낼 수도 없으니
其朴野(기박야) 又如何耶(우여하야)
그 박야(朴野:순박하고 촌스러움)함이 또한 이러한가?
以是人居是谷(이시인거시곡)
이러한 사람들이 이 산골짜기에 살고 있으니,
朴之道宜相得(박지도의상득) 今而後余乃亦(금이후여내역)
박(朴)의 도(道)는 참으로 의미가 잘 맞는다. 지금 이후 나 역시,
儉朴其身(검박기신)
그 몸을 검박(儉朴)하게 하고
醇朴其心(순박기심)
그 마음을 순박(醇朴)하게 하고,
古朴其貌(고박기모)
그 모습을 고박(古朴)하게 하고.
太朴其道(태박기도)
그 도(道)를 태박(太朴)하게 하여,
爲一聖世(위일성세)
단(一)번에 성세(聖世:덕 있는 임금이 다스리는 세상)를 이루게 하고,
抱朴子可矣(포박자가의)
그 박(朴)을 손에 넣은 것(抱朴子:포박자)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客笑而去(객소이거)
하니, 객(客)이 웃으면서 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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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암유록(格菴遺錄) 농궁가(弄弓歌) Ⓟ62를 보면,
『수도선출용천박(修道先出容天朴) 容天伯人(용천백인)
亦一理(역일리)』 라고 분명히 밝힌 것이다.
격암유록(格菴遺錄) 갑을가(甲乙歌) Ⓟ114를 보면,
『柿從者生(시종자생)
이 말은 감(枾)나무를 따르는 자(者)는 사는데,
次出朴天子(차출박천자)
뒤를 이어 두 번째 나타나는 박(次出朴:차출박)이 바로 천자(天子)로서,
乃嘉鷄龍朴(내가계룡박)
즐거운 계룡박(鷄龍朴)이라고 하였다.
世人不知(세인부지) 鄭變朴(정변박)
세상 사람들은 정(鄭)이 박(朴)으로 바뀌게 되는 이치(理致)를 아무도 모르는데,
鄭道令之(정도령지) 降島山(강도산) 』
그 두 번째 나타나는 박(朴)이 동반도(東半島)의 계룡산(鷄龍山)에 강림(降臨)한다는
정도령(鄭道令)인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鄭道令 : 결혼하지 않은 총각을 높여 도령이라 하고, 자식이 없는 사람을 말함
바로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은거(隱居)하여 지내다가,
천부(天父)이신 하나님이 화천(化天)하시고 난 다음에,
뒤를 이어 나타나는 박(朴)이 사람들이 그렇게도 기다리던 천자(天子),
즉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가 바로 계룡산(鷄龍山)에 강림(降臨)한다고 하는 계룡박(鷄龍朴)이라고 밝히는 말이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제39장 법불장(法佛章)을 보면,
『昔之得一者(석지득일자)
옛날에 일(一) 즉 도(道)를 얻었다는 것은,
天得一以淸(천득일이정)
하늘은 일(一)을 얻어서 맑고
地得一以寧(지득일이녕)
땅도 일(一)을 얻어서 편안하고
神得一以靈(신득일이령)
신(神)도 일(一)을 얻음으로써 영묘(靈妙)하고
谷得一以盈(곡득일이영)
골짜기(谷)도 일(一)을 얻어서 가득차고
萬物得一以生(만물득일이생)
만물(萬物)도 일(一)을 얻음으로써 생성(生成)되고
侯王得一以天下爲正(후왕득일이천하위정) 其致之(기치지)
후왕(侯王)도 일(一)을 얻음으로써 천하(天下)를 평정하고
이러한 것들을 그와 같이 되게 하는 것이 일(一)인 도(道)이다.
天無以淸(천무이청) 將恐裂(장공렬)
하늘이 일(一)인 도(道)를 얻어 맑지 않으면 장차 파열할까 두렵고,
地無以寧(지무이녕) 將恐發(장공발)
땅이 일(一)을 얻어 평안하지 않으면 장차 무너질까 두렵고,
神無以靈(신무이령) 將恐歇(장공헐)
신(神)이 일(一)을 얻어 영묘(靈妙)하지 않으면 장차 그칠까 두렵고,
谷無以盈(곡무이영) 將恐竭(장공갈)
골짜기(谷)가 일(一)을 얻어 차지않으면 장차 말라 버릴까 두렵고,
萬物無以生(만물무이생) 將恐滅(장공멸)
만물(萬物)이 일(一)을 얻어 생성(生成)함이 없다면 장차 멸망(滅亡)할까 두렵고,
侯王無以貴高(후왕무이귀고) 將恐蹶(장공궐)
후왕(侯王)이 일(一)을 얻어 고귀(高貴)함이 없으면 장차 넘어질까 두렵고,
故貴以賤爲本(고귀이천위본)
그러므로 귀(貴)한 것은 천(賤)한 것으로써 그 근본(根本)을 삼고,
高必以下爲基(고필이하위기)
높은 것은 낮은 것으로서 그 기초(基礎)를 삼는 것이다.
是以侯王(시이후왕) 自爲孤寡不穀(자위고과불곡)
이와같이 후왕(侯王)은 고과불곡(孤寡不穀)이라 부르니,
此非以賤爲本耶(차비이천위본야)
이는 천(賤)한 것으로써 그 근본(根本)을 삼는 것이 아닌가?
非乎(비호)
그렇지가 않은가?
故致數車無車(고치수차무차)
그러므로 수레(車)란 이름없는 부품들이 모여서 하나의 수레(車)를 이루는 것이니,
수레를 조각조각 분리해서 헤아리면, 수레(車)란 없는 것이다.
不欲琭琭如玉(불욕록록여옥) 珞珞如石(락락여석) 』
모름지기 구슬(玉)과 같이 아름답기를 바라지 말고,
그저 돌(石)같이 겸손해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 강조한 것은 일(一)인 도(道)를 여러 각도(角度)로 설명한 점이다.
즉 일(一)인 도(道)를 득(得)한 것이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하상공(河上公)이 이르기를
일(一)이란 무위(無爲)인 도(道)의 아들이라고 하였다(一無爲道之子:일무위도지자).
또한 도생일(道生一)이라 하였다. 즉 도(道)가 일(一)을 낳았기 때문에,
그 일(一)을 도(道)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며,
그 도(道)의 아들인 일(一)을 또한 도(道)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도(道)와 일(一)을 모두 도(道)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한 이 일(一)은 시수(始數) 즉 수(數)에 있어서 첫 번째 수(數)인 것이다.
첫 번째 수(數)인 일(一)을 태을(太乙)
또는 태일(太一)이라고 하며, 또한 물(水)을 의미한다.
즉
태을(太乙)이란 이 일(一)인 물(水)의 존호(尊號)인 것이다.
그래서 도(道)를 설명할 때 물(水) 또는 바다(海)로 설명하였다.
그래서 후왕(侯王)이 이 일(一)을 얻어 천하(天下)를 평정(平定)하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
또한
이 박(朴)이란 말의 어원(語源)도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말로,
심오(深奧)한 도(道) 자체, 즉 일(一)을 의미하는 말이다.
사람 성(姓)씨를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 박(朴)에 대하여 해월(海月) 선생은 자세히 밝힌 것이다.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속에 있는 박곡기(朴谷記)를 보면,
『盖渾渾沌沌之稱(개혼혼돈돈지칭)
曰太朴(왈태박) 曰古朴(왈고박)
曰醇朴(왈순박) 曰儉朴(왈검박)
曰朴陋(왈박루) 曰朴野(왈박야)
朴之爲義遠矣(박지위의원의)』
이 말은 천지(天地)가 아직 열리지 않고,
음양(陰陽)이 아직 나누어지기 이전의 상태(渾渾沌沌)를 칭하는 말로,
현현(玄玄)하고 현박지도(玄朴之道)라고 하여,
깊고 또한 심오(深奧)한 도(道)를 박(朴)이라고 하였다.
이 박(朴)에 대하여 해월(海月) 선생이 자세히 밝혔으니 뒤에 다시 자세히 설명하겠다.“
“사람으로서 도(道)와 하나가 된다는 말에 대하여 좀더 자세히 설명을 부탁합니다.”
라고 한 사람이 요청했다.
이에 명산 선생님은 이어 말씀하시기 시작하셨다.
“증산(甑山) 상제의 중화경(中和經) 제75장 도기(道器)편을 보면,
『在天之天(재천지천)은 不可得以見(불가득이견)이오.
하늘 위에 하늘의 모양은 눈으로 보아서는 볼 수가 없으며,
在器之天(재기지천)은 可得以見矣(가득이견의)니라.
그릇 안에 담긴 하늘은 눈으로 알아볼 수 있느니라.
形而上者(형이상자)를 謂之道(위지도)며
형체를 초월하는 것(形而上者:형이상자)을 도(道)라 하며,
形而下者(형이하자)를 謂之器(위지기)오.
형체가 드러나 있는 것(形而下者:형이하자)을 그릇(氣)이라 한다.
形而上者(형이상자)를 是理(시리)며
또한 형체(形體)를 초월하는 것(形而上者:형이상자)을 리(理)라 하고,
形而下者(형이하자)를 是物(시물)이니,
형체가 이루고 있는 것(形而下者:형이하자)을 물(物)이라
道非器(도비기)면 不形(불형)이오.
도(道)는 그릇(器)이 아니면 형상을 이루지 못하고(不形:불형),
器非道(기비도)면 不立(불립)이니라.
그릇(器)은 도(道)가 아니면 성립치 못하느니라(不立:불립).
道不離器(도불리기)하고
도(道)는 그릇을 떠나지 못하고(道不離器:도불리기),
器不離道(기불리도)하니
그릇(器)은 도(道)를 떠나지 못하리니(器不離道:기불리도),
盖陰陽(개음양)도 亦器也(역기야)라.
또한 음양(陰陽)도 또한 그릇(器)이라.
理與器(리여기)도 未嘗不離也(미상불리야)니라.
리(理)와 그릇(器)도 서로 떨어지지 못하나니라(未嘗不離也:미상불리야).
盖人身(개인신)도 亦器也(역기야)며,
또한 사람의 몸(人身)도 또한 그릇(器)요.
言語動靜(언어동정)도 便是人之理(편시인지리)니
언어(言語)와 동정(動靜)도 또한 사람의 리(理)니,
理在器上(리재기상)에 器亦道(기역도)하고
리(理)가 그릇에 담기면 그릇 또한 도(道)가 되고,
道亦器(도역기)하면 理在其中(리재기중)이니라.
도(道) 또한 그릇(器)이 되며, 리(理)는 그릇(器)안에 있게 되느니라.
世界有意此山出(세계유의차산출)하며
천지(天地)가 뜻이 있어 (有意) 이 산(山)을 나오게 하였는데(出),
紀運金天藏物華(기운금천장물화)니라.
금운(金運)을 만날 때 하늘이 감추어 둔(天藏) 그 물(物)이 빛이 나게 되느니라(華).
간단하게 이야기한다면
형태(形態)가 없는 형이상자(形而上者)를 도(道)와 리(理)라 하는데,
그 도(道)와 리(理)가 그릇에 담길 때에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이다.
형이하자(形而下者)란 즉 형태(形態)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그릇(器)
또는 물(物)이라고 하는 것이다.
음양(陰陽-萬物)도 그릇(器)이고, 사람의 육체(人身)도 그릇(器)이라고 했다.
또한 그릇(器) 즉 물(物)은 형이하자(形而下者)라고 하며,
사람의 육체(人身) 또한 물(物)이라고 한 것이다.
천지(天地)가 뜻이 있어 세상 사람이 알지 못하는 하나의 산(山)을 내보냈는데,
금운(金運)을 만나는 때에 이 하늘이 숨겨 둔 물(物)
즉
사람의 몸(人身)이 빛이 난다고(華) 하는 것이다.
바로
이 물(物 : 사람 정도령)을 일러, 하늘이 뜻이 있어서 내보낸 산(山)이라고 한 것이다.
결국 이 산(山)이라는 말은, 어떠한 사람(人身)을 의미하는 것인데,
숨겨진 한 사람을 돌려 돌려 알아보기 어렵게 전(傳)하는 것이다.
때가 이르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인봉(印封)해 둔 말인 것이니,
여러분들은 이 산(山)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겠는가?“ 하자
모두들 해월(海月) 선생께서 밝히신 그 경기고을에 사시는 금강(金剛)이 아니나며
다들 어렵지 않게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도 없고, 이름도 없는 도(道)
즉
리(理)가 인간(人間)의 몸인 그릇(氣)에 담기니, 그 그릇 역시도 도(道)라 하고,
도(道) 역시도 그릇이라고 한 것이다.
그 도(道) 가 담긴 그릇(氣),
즉
도(道) 가 담긴 사람을 그냥 도(道) 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 같지만 사람이 아닌 진인(眞人) 정도령(正道令 : 正道의 神)이라는 말이다.
형체를 가지고 있으니 누구나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도(道)의 화신(化身)이라는 것이다.
그 도(道)를 다른 말로 박(朴)이라고 하는 것이며,
그 도(道)인 박(朴)이 담겨 있는 사람을 용천박(容天朴)이라고 하는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하늘의 아들을 그토록 내버려 두고 돌보지도 않고 고생을 시키십니까?
그 무슨 연유(緣由)가 있기에 그렇습니까?”
대순전경(大巡典經)
제2장 상제(上帝)의 성도(成道)와 기행이적(奇行異蹟) 137절에,
『오랫동안 相逢(상봉) 못한 心懷(심회)를 풀으시고
亨烈(형렬)에게 가라사대
‘앞으로 末世(말세)가 當到(당도)함에 天地(천지)가 降大任於是人(강대임어시인)하였으니
正心修道(정심수도)하여 天地公庭(천지공정)에 參與(참여)하라 』
앞으로 말세(末世)가 당도(當到)하면,
천지(天地)가 큰 일(大任)를 맡길사람(是人)이 있다고 한 것이다.
인사(人事)는 기회(機會)가 있고,
천리(天理)는 도수(度數)가 있나니,
그 기회(機會)를 지으며 도수(度數)를 짜내는 것이 공사(公事)의 규범(規範)이라고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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