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존재의 구명(究明)과 ‘그리움’의 시학 -- 김혜정 시집 『먼, 그래서 더 먼』 김 송 배 (시인.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1. 자화상에서 탐색한 존재의 이유 현대시의 구조에서 시적 상황 설정과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대체로 한 시인의 소중한 체험이 재생되어 거기에서 추출한 불망(不忘)의 여운들이 시적 발상으로 현현되고 다시 그것이 이미지로 투영해서 주제로 승화하는 다양한 시법(詩法)을 많이 대하게 된다. 여기 김혜정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먼, 그래서 더 먼』의 원고를 일별하면서 이러한 보편적인 상념을 먼저 담론하게 되는 것은 김혜정 시인의 정서와 사유(思惟)의 저변(底邊)에는 그가 삶의 궤적(軌跡)에서 추적하고 상상하는 절실한 인생의 문제를 자신의 체험에서 창조적으로 재생하는 시적 영역이 광대하게 전개되는 점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일찍이 영국의 비평가 리처즈는 우리 일상생활의 정서생활과 시의 소재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으며 이러한 생활의 언어적 표현은 시의 기교를 사용하게 되는 근본적인 차이 밖에 없다고 했다. 이것은 김혜정 시인이 체험하면서 아주 평범한 내면의식이 정서생활과 접맥(接脈)하며서 획득한 가치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혜정 시인은 자신의 존재감을 자신이 그려보는 자화상에서 탐색하고 있다. 그가 구상하는 자신의 존재 인식은 작품 「어느 날 거울 앞에서」전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그의 외연(外延)에서 포괄하는 실재(實在)의 삶을 통한 자신의 심정적 정감을 표출하고 있다. 어느 날 움푹 스러진 두 눈 속에 힘든 삶의 여운이 안개처럼 드리워져 쓸쓸함을 가득 담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들여다보는 거울 속엔 또 하나로 이름 지어진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은 초췌한 모습이다 늘 반복되는 상투적인 삶의 투정은 이렇게 무거운 침묵으로 눌러앉아 또 하나의 나로 태어나는가 보다 눈가에 잘게 부서진 주름위에 지나온 삶이 회색 그림자를 만들고 수척해진 몸짓으로 감싸 안을 수밖에 없는 것은 나를 닮은 모습인 또 하나인 나인 것을. 김혜정 시인은 여기에서 강렬하게 분사(噴射)하려는 자아의 인식은 어느 날 ‘나를 닮은 모습인 또 하나인 나’를 발견하고 그 ‘조금은 초췌한 모습’에서 ‘힘든 삶의 여운이 안개처럼 / 드리워져 쓸쓸함을 가득 담고 있’는 ‘나’로부터 출발한다. 그가 확인하고 추회(追懷)하는 자아의 현재는 ‘늘 반복되는 상투적인 삶의 투정’이며 ‘무거운 침묵’이며 ‘지나온 삶이 회색 그림자를 만들고 / 수척해진 몸짓’ 뿐이다. 그는 이러한 의식의 흐름에서 시적으로 진실을 탐구하는 것은 ‘또 하나로 이름 지어진 / 내가 나를 바라보’면서 자아의 인식을 통한 다양한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철학적인 내면의 접근을 시도하는 지향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그의 심중(心中)에는 ‘어둠보다 더 짙게 파고드는 / 우울한 편린 속에 먹구름을 안은 / 내 마음에 슬픔이 비 되어 내린다.(「우울한 날에」중에서)’거나 ‘창밖에 비가 내려 / 내 맘처럼 슬픔으로 여울진 비(「지금 나는」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비’의 속성에서 ‘우울’하거나 ‘슬픔’이라는 관념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시적 정황(情況-situation)은 다시 ‘무엇하나 뚜렷하게 움켜쥐지 못한 / 삶의 구간에 내린 / 찬 서리 같은 쓸쓸함이 못내 / 나를 슬프게 하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무엇이 나를 슬프게 하는가」중에서)’이거나 ‘온 밤의 빛을 세워 밝히며 / 고즈넉이 피었다 / 햇살 내린 아침이 오면 / 쓸쓸히 시든 향기에 눈물짓는 너는 / 나의 슬픔이다.(「달맞이꽃」중에서)’라는 결론과 같이 그가 방황하거나 갈등하는 요소들이 슬픔의 진원지가 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먼 어둠 속에서 소란스런 눈으로 노려보는 눈빛의 번득거림이 서늘하다. 블랙홀에 빠진 듯 끝끝내 헤어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두려움 같은 것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어둠의 터널 속에 갇혀 서늘한 눈빛의 번득거림과 마주보고 있어도 결코 놓을 수 없는 한 가지 그것은 나를 향해 손짓하는 희망이다. --「나를 위한 연가」전문 그렇다. 김혜정 시인은 그러한 슬픔의 인식에서도 자신을 향해서 노래를 부른다. 그는 미확인의 세계(‘어둠의 터널 속에 갇혀 / 서늘한 눈빛의 번득거림’)와 미지(未知)의 상황(‘불랙홀에 빠진 듯 / 끝내 헤어날 수 없을지도 / 모르는 두려움’)이 어쩌면 그의 심저(心底)에서 분사하는 자신만의 연가인지도 모른다. 그는 이러한 현실적 상황들이 ‘서늘하’게 감지되지만 아직도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하는 ‘두려움’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향해 손짓하는 희망이다.’라는 어조(語調-tone)로 보아서 아찍까지 미온적(微溫的)이나마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아쉬움이 그의 시적 원류를 형성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그의 인식에는 불확실한 관념의 세계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자아를 확인하기 위한 해법 탐색에 골몰하고 있다. 그는 ‘가끔은 / 이렇게 이유 없는 이유로 / 나를 헤집어 놓고 깊은 그늘을 / 만들기도 하는 것이 삶인가 보다.(「낮은 한숨의 의미」중에서)’라는 수용과 긍정의 의미로 존재의 이유를 적시하고 있어서 그가 지향하는 인생관이나 가치관이 실재의 현실을 궁극적으로 자아와 화해하려는 시법을 구현하고 있다. 2. 삶의 추회(追悔)와 기원의식의 융합 김혜정 시인은 다시 삶의 현장에서 당면한 다원적인 심경(心境)의 요동을 그의 시법으로 해소하려는 형태의 변화를 목도(目睹)할 수 있게 한다. 그는 ‘세상 어디쯤에서 살다가 / 삶의 한 보퉁이 껴안고 / 함께 걸어가는 길에 / 기나긴 외로움이 먹먹한 가슴으로 / 쓸쓸하다 하여도 그대와 나누는 / 삶의 향기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삶의 향기」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후회하지 않는 ‘삶의 향기’를 위해서 그는 시적인 진실을 끈질지게 탐구하고 있다. 굽이굽이 흘러가는 강줄기 속에 내 삶의 한 모퉁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심연들을 강물에 모두 실어 보내고 싶다. 속절없이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세월의 인생 수레바퀴 속에 어제오늘의 고단했던 일상 실어두고 조용한 명상으로 쉬고 싶다. 내가 살아온 삶이 수많은 군중에 둘러싸여 잘 살았노라 가슴 벅찬 박수는 받지 못하더라도 내 몫에 주어진 길 결코 후회 없는 젊은 날의 건강한 인생이었노라는 자찬을 스스로 하며 내 인생의 중년의 쉼터에서 지금의 내 모습 잠시 잊고 지나온 삶의 여독을 풀고 싶다 --「되돌아보는 삶」전문 김정혜 시인은 이처럼 삶을 되돌아보고 있다. 그것이 삶에서 추출한 ‘고민하고 갈등하는 심연들’일지라도 그는 ‘세월의 인생 수레바퀴 속에 / 어제오늘의 고단했던 일상’들을 ‘강물에 모두 실어 보내고 싶’으며 이젠 ‘조용한 명상으로 쉬고 싶’은 것이 그의 솔직한 심성(心性)의 한 부분이다. 이것이 그의 진솔한 기원의식이다. 대체로 우리들이 체험의 상상력을 재생하여 자아를 인식하게 되면 창조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성찰의 여과(濾過)를 가진다. 이 여과의 과정에서 반성을 통한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이 바로 기원이라는 새로운 삶의 이정표를 설정하게 된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보내고 싶다’, ‘쉬고 싶다’ 그리고 ‘내 인생의 중년의 쉼터에서 / 지금의 내 모습 잠시 잊고 / 지나온 삶의 여독을 풀고 싶다’는 망각과 휴식과 더불어 여독을 풀고 싶은 기원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고달프고 아팠던 인생 새로운 변화로 오는 가지 위에 접목시켜 허무했던 상처 위에 새 희망이 돋을 때까지 무작정 흘러만 가는 세월 끝에 앉아 짧은 쉼으로 여유 부릴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흘러가는 세월아」중에서 여기에서 마지막 결론으로 제시한 ‘짧은 쉼으로 여유 부릴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에서의 여망은 바로 ‘세월’과 ‘인생’의 연계(連繫)이다. 그는 ‘고달프고 아팠던 인생’을 ‘무작정 흘러만 가는 세월 끝에 앉아’서 여유 있는 ‘나’를 기원하고 있어서 우리 인생이 시간성과 접목하면 다양한 행로(行路)에서 정한(情恨)을 장식하게 되는데 김정혜 시인도 ‘그저 앞만 보고 줄달음치는 세월 / 내 전부를 빼앗겨 버린 듯 야속하기만 하다’라는 어조로 아쉬움을 토로(吐露)하고 있다. 오늘을 힘들게 살아가는 이여 당신도 나도 마음에서 비롯된 부질없는 욕심과 아집, 그리고 독선 비움으로써 가벼워지는 편안한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도록 얽히고설킨 인연의 끈 무심의 마음으로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힘들게 살아가는 이에게」중에서 이 작품에서도 ‘부질없는 욕심과 아집, 그리고 독선 / 비움으로써 가벼워지는 편안한 삶을 / 영위해 나갈 수 있도록’ 염원하면서 ‘무심의 마음으로 서로 용서하고 / 용서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간절한 기원을 이해할 수 있어서 현실적인 고통과 고뇌에서 절망하는 인생들에게 비움과 용서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김혜정 시인이 작품에서 간구(懇求)의 어조로 공감을 유로(流路)하는 대목은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내가 되리라(「눈빛 사랑」중에서)’, ‘온화한 사랑이었으면 좋겠어(「내 하나의 바람」중에서)’, ‘혼자만의 사랑으로 간직하리라.(「가을 하늘」중에서)’ 그리고 ‘이유도 모르며 존재하는 / 그런 바람처럼 / 가끔은 / 느낌 없는 삶을 살고 싶다.(「때로는 바람처럼」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그가 삶과 인생의 대명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덕목(德目)을 간절이 소망하는 절규로 현현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그는 작품 「삶의 길」전문에서 ‘깊고 푸른 날 / 바람 끝에 걸린 햇살의 / 눈빛이 / 그대의 눈빛보다도 따사로웠을까 / 눈길 닿는 곳마다 / 화안한 미소로 유혹하는 / 꽃의 향기가 그대 마음보다도 / 향기로웠을까 / 세상 그 어디쯤에서 살다가 / 삶의 한 보퉁이 껴안고 / 함께 걸어가는 길 위에 / 가끔은 긴 외로움이 먹먹한 가슴으로 / 쓸쓸하다 하여도 그대와 나누는 삶의 향기는 /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라는 그의 철학이 분사된 시적 진실의 내면을 읽을 수 있어서 김혜정 시인에게 내재된 가치관을 이해하게 된다. 3. ‘미완성의 그리움’과 사랑학의 접근 김혜정 시인의 뇌리(腦裏)에는 ‘그리움’에 대한 지고(至高)한 사유가 그의 시혼(詩魂)을 강렬하게 흔들고 있다. 이러한 사유의 애절한 근간(根幹)에는 보편적인 인간의 정서에서 보다 더욱 강렬한 심리적인 작용이 내재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실재의 상황에서 당면하는 미미(微微)한 사유의 지향에서도 무엇인가 울컥울컥 용솟음치는 정감의 연유(緣由)가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길을 걷다가 불현듯 가슴 스치는 / 그리움 하나에 눈물 흘려 본적 있나요?(「불현듯 우리의 인생에서」중에서)’라는 의문형의 관념적 언어가 이를 흡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문형으로 전개하는 시법은 ‘그 어느 누구를 향한 / 그리움이 저토록 깊어 / 초연함으로 머무는 것일까(「외면」중에서)’라거나 ‘무엇을 그리워하고 / 또 무엇을 찾으려 하는지 / 뚜렷한 목적 없이 방황하며 / 헤메이는 발걸음에 소리 없이 / 다가서는 우울한 갈망이(「우울한 샹송」중에서)’ 등이 그에게 ‘이렇게 낮은 바람을 타고 비가 내리는 날에는 / 잊었던 기억이 은은한 향수와 함께 / 그때 그 시절의 그리움을 불러 모은다.(「비가 내리는 날에는」중에서)’고 ‘그리움’으로 생성하는 이미지를 추출하는 형태를 조응(調應)할 수 있다. 내가 살아온 날들을 높은 허울 속에 감추고 돌아보면 그곳엔 언제나 그리움이 버티고 서 있었다. 채우고 또 채워도 못 다 채울 내 영혼의 잔재 속에 그리움의 꽃을 피우며 위로받고 싶은 날들 때론 절망 같은 부르짖음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오르고 아직도 남아 있는 내 인생의 긴 여정 길에서도 영원히 완성지울 수 없는 미완성의 그리움 --「그리움(2)」전문 보라. 여기에서 김혜정 시인이 갈구(渴求)하는 ‘그리움’의 실체는 삶에서 동행하는 하나의 분신(分身)이다. 그것이 바로 ‘채우고 또 채워도 못 다 채울 / 내 영혼의 잔재 속에 / 그리움의 꽃을 피우며 / 위로받고 싶은 날들’이 그의 진실이 포괄된 시법이다. 그는 이처럼 ‘내가 살아온 날들’과 ‘아직도 남아 있는 내 인생’에 대한 ‘절망 같은’ 것들이 ‘긴 여정 길에서도 영원히 / 완성지울 수 없는 / 미완성의 그리움’으로 존치되어 있어서 ‘그리움’의 진원지나 실체는 미완성의 사랑을 예비하는 하나의 단계적인 의례(儀禮)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는 ‘잊어야 한다고 / 이제는 잊어야 한다고 / 하루에도 수십 번 가슴의 자물쇠를 / 당겨 채우지만 / 어둠 내린 밤이 오면 / 무기력하게 창을 여는 그리움이다.(「그리움의 인연」중에서)’라는 어떤 오매불망(寤寐不忘)의 인연적인 시적 원천(源泉)을 살필 수 있게 한다 셀 수도 없을 만큼 수없이 걸린 사랑의 언약 고요히 비친 내 눈가에 웃음 머물게 합니다. 함께 걸어 두었던 사랑의 카드는 세월의 흔적 따라 퇴색되어 빛이 바래 가겠지만 마음의 언약은 선명한 빛으로 살아 있을 것입니다. 햇살 같은 맑음으로 꽃의 미소 같은 화사함으로 내 인생에서 함께하는 당신을 나는 사랑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랑하고 있습니다」전문 여기에는 그리움이 사랑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적나라(赤裸裸)하게 현현되고 있다. 그것은 결론적인 주제에서 알 수 있듯이 ‘내 인생에서 함께하는 당신을 / 나는 사랑하고 있습니다’라는 단정적인 어조가 지금까지 의문에 쌓였던 그리움에 대한 고뇌가 그 해법을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시적 화자(話者-persona)인 ‘당신’이라는 사랑의 대상이 불확실하거나 부재(不在)이다. 이는 불특정이 아니라 다수의 다중(多衆)일 수도 있겠으나 김혜정 시인의 외연에는 미확인된 관계의 부재가 그의 정서적인 소외의식이나 별리(別離)라는 다른 상황이 설정될 수도 있다는 전제가 성립한다. 그는 결국 앞에서 살펴본 ‘그리움’ 정체는 바로 사랑학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 애틋한 그리움이다. // 촉각을 세우고 / 하늘바라기 하는 것이다.(「가다림(1)」전문)’는 어조와 같은 정제되고 명징(明澄)한 결론을 제시함으로써 사랑학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심연(深淵)에서 분사한 사랑과의 연결 어조는 다음과 같이 선별(選別)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 당신과 나의 깊은 포옹도 핏빛 서러움 속에 / 푸른빛 그리움을 토하며 스러져 가겠지만 (「그대라는 별」중에서) - 똑같은 그리움 앓고 있을 그에게 / 달맞이꽃 닮은 노란 사랑 안고(「바람아」중에서) - 기다림에 지친 가슴은 / 나즈막히 그리운 이름 하나(「먼 그리움」중에서) - 눈물 꽃으로 시든 그리움 / 착각 속에서나마 행복했다(「너는 알까」중에서) - 우리의 사랑이 숨 쉬고 있는 / 그리움의 강가를 찾아갑니다.(「오늘도 그리움의 강가에 는」중에서) - 내 마음에 애틋하게 머물러 / 그리움의 눈물 그렁그렁 담게 하는 남자(「그 남자」중에 서) - 그 깊은 그리움만큼이나 큰 / 당신이라는 보고픔의 이름 하나 (「당신은 부재중」중에서) 그는 그리움과 사랑을 동일시하는 정서의 불변을 심도(深度) 있게 발현하여 우리들의 공감의 영역을 확산하는 시법이 더욱 김혜정 사랑학의 감도(感度)를 상승하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어서 시적 활력소가 가증(加增)하는 소중한 메기지가 되고 있다. 4. 자연과 시간의 동화, 또는 서정적 자아 김혜정 시인은 자아와 동반하는 서정성을 배재하지 못한다. 천성적으로 잠재된 서정적인 인성에서부터 생활 반경에서 동행하는 오관(五官)의 응시(凝視)는 바로 하나의 이미지로 상관하는 서정적인 자아의 실현이다. 대체로 서정시의 맥(脈)은 인간 본연의 정감이 아늑하게 또는 오묘(奧妙)하게 발현되어 현실과의 상실감에서 다시 획득하려는 자아의 동일성과 관계한다. 우리 인간이 간직한 칠정(七情-喜怒哀樂 愛惡慾)에서 어느 부분과 상관(相關)해서 재생되는 이미지가 바로 정감의 메시지로 투영되는 서정적 자아를 탐색하게 된다. 바람이 햇살을 불러 도란도란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 속에는 꽃들의 향연이 춤을 춘다 가만히 귀 기울여 듣는 햇살 보랏빛 향기하나 내려놓고 수줍은 듯 어디론가 모습을 감춘다. --「봄」전문 이러한 서정에는 먼저 ‘봄’이라는 시간적인 요소가 우리의 생활(삶)과 밀접한 관련이 생성하여 외적(外的)인 형상들이 김혜정 시인과의 정조(情調)가 공통분모를 형성하는 진솔한 담론으로 병행하게 된다. ‘바람’과 ‘꽃들의 향연’ 그리고 ‘햇살’ 등이 자연적인 정경(情景)을 제공함으로써 안온한 심적인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꽃에서 당신의 얼굴을 본다. 화안한 빛의 생동을 하늘빛 속에 묻으면 당신은 별이 되어 내 가슴에 흐르고 당신 눈 속에 스민 온화한 빛은 내 어둠 속에서 꽃의 미소로 기지개를 켠다. --「별」전문 그는 ‘별’이라는 사물에서 ‘꽃=당신’이었다가 다시 ‘당신=별’로 변환되고 결국에는 ‘당신=내’라는 등식을 성립해서 탐색하는 시법으로 사물의 의인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시법을 낯설게 하기 혹은 생소화(生疎化)라는 어법(語法)으로 러시아의 평론가 쉬클로프스키가 주창한 바가 있다. 이는 익숙하고 선명한 것에 대해서 낯설게 만들면서 그 특징을 더욱 명민(明敏)하게 부각시키는 공통점을 설명하고 있다. 러시아 형식주의의 본질적 응용을 위한 언어학으로 문학연구에 접목시키면서 소리, 이미지, 리듬, 음보, 운, 서술기법 등을 모두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가지게 한다. 김혜정 시인도 ‘별’이 ‘꽃’이 되는 생소한 언어로 전환하는, 그러나 그 의미가 더욱 생소하면서도 명징한 전개를 통해서 우리들의 심성을 흡인하면서 서정성을 회복하고 있다. 세상 속에는 이미 가을이 성큼 다가와 알록달록 아름답게 익어 가는데 내 마음에는 서러움과 고독이 먼저 찾아들어 또아리를 틀고 노랗게 앉아 있다 --「가을이 아프다」중에서 서정시의 작법에는 다양한 양상을 대할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감상적 오류에 해당하는 자연을 인격화하는 동화(同化-assimilation)의 기법으로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김혜정 시인이 자연(가을)을 자신 속으로 끌어와서 이것을 내적으로 인격화하고 친자연적인 서정으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짧은 하루의 여정 속에 풍요로움이 익어 가는 소리 탐스럽게 영그는 정겨움으로 들려오고 맑고 파란 하늘만큼이나 넉넉하고 인심 좋은 내 어머니의 움직이는 손길 따라 사랑이 하나 둘 불어난다 --「고향에서」중에서 여기서는 어떠한가. 그는 자연(고향) 속에 자신을 상상적으로 투여하고 있다. 이것은 투사(投射-project)라는 시법으로 자연 사물에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로 채우는 인격을 말한다. 이러한 자연 서정은 인간의 정서나 사회적으로 좋은 혜택을 부여한다는 낙관적인 심성을 유발하는 특성이 있다. 김헤정 시인은 우리 인간의 연약한 존재 양상을 절묘하게 시사(示唆)하거나 고차원의 시법으로 칠정에 명시한 정감으로 유로하는 특성을 잘 살려내는 시법을 통해서 주제가 공감을 유도하는 정적(靜的)인 심법(心法)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현대시가 요구하는 메시지나 표현방법은 호라티우스가 그의 『시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도 안 된다. 우리들의 마음을 뒤흔들 필요가 있고 읽는 사람의 영혼을 뜻대로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논지가 우리 현대시의 위의(威儀)나 본령(本領)에서 정제(精製)된 정론이다. 일찍이 프랑스의 상징주의 비조(鼻祖) 보들레르는 기쁨이든 슬픔이든 시는 항상 그 자체 속에 이상(理想)을 좇는 신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김혜정 시인도 ‘노란 향기 머금고 피어나는 / 수선화 꽃송이는 어느새 / 별빛으로 깨어나고 / 향기 품은 청초함의 빛을 발하는데(「한낮의 꿈」중에서)’라거나 ‘하늬바람 따라 살며시 / 내 품안에 안겨드는 것 / 파란 하늘이 빛을 실어 / 흩뿌려 주는 청명함 속에 / 향긋한 미소로 오는 그대는 / 포근한 봄날의 사랑입니다.(「햇살 속에 웃고 있는 그대는」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희노애락의 어떠한 상황에서든 그가 간직한 ‘신’과 같은 중심 정서가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김혜정 시인은 이 시집 『먼, 그래서 더 먼』에서 우선 자화상을 통해서 존재의 이유를 구명(究明)하면서 삶과 직결하는 고뇌와의 화해를 위한 기원의식 그리고 미완의 그리움을 내세운 사랑학의 탐구, 마지막으로 자연과 시간이 동화하거나 투사하는 친자연적인 서정성의 회복은 그의 알찬 시적 수확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다음 제3시집의 기대는 더욱 커진다.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