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은구곡은 갈론마을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면서
계곡을 따라 펼쳐지는 9개의 비경으로서 장암석실(1곡), 갈천정(2곡), 강선대(제3곡),
옥류벽(4곡), 금병(5곡), 구암(6곡), 고송유수재(7곡), 칠학동천(8곡), 선국암(9곡)이 9곡을 형성하고 있으며
신선이 내려왔다는 강선대를 비롯하여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선국암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시인묵객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충북 괴산군 칠성면 갈론리 갈은구곡(葛隱九曲)은 명경지수와 함께
기암(奇岩)·고송(古松)이 어우러져 마지막 비경으로 꼽힌다.
갈은구곡은 1곡부터 9곡까지 곡마다 암벽에 시가 새겨져 있다.
전국에 있는 구곡 100여 곳 가운데서도 흔하지 않은 예다.
속세의 손때가 묻지 않은 갈은구곡이지만 예전에 많은 성리학자가 이곳을 찾았다.
먼저 갈은구곡 설정자로 통정(通政) 중군(中軍)의 벼슬을 지낸 전덕호(全德浩·1844~1922)는
1곡(또는 2곡) 갈천정(葛天亭) 바위와 7곡 고송유수재(古松流水齋)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새겼다.
갈은구곡을 찾은 인물들은 전덕호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고송유수재 너른 암벽 면에 이름을 새겨 넣었다.
홍문관 교리와 이조참의, 군국기무처 회의원 등을 지낸 이원긍(李源兢·1849~1919)도 이름을 남겼다.
이원긍은 정종의 넷째 아들 신성군(宣城君)의 후손으로
한말 역사학자이자 민속학자인 이능화(李能和·1869~1943)의 부친이다.
전생서(典牲暑) 판관(判官), 석성군수, 괴산군수를 지낸 안기용(安淇瑢·1831~1917),
서계(西溪) 이득윤(李得胤·1553~1630)의 후손으로
고종 때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에 제수된 이집한(李集翰·1827~?)도 갈은구곡에 다녀간 흔적을 전했다.
고송유수재 암벽에 새겨진 이름 중에 눈길을 끄는 인물은 바로 홍승목(洪承穆·1847~1925)이다.
그의 이름 석자는 가장 크고 깊이 새겨졌다.
홍승목은 사간원 대사간과 성균관 대사성, 형조참판과 병조참판에 오르고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친일 행각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포함된 홍승목은
경술국치에 자결 순국한 애국지사 홍범식(洪範植·1871~1910) 열사의 부친이자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1888~1968)의 조부다.
갈은구곡 암벽에는 이밖에 이덕래(李德來)·윤자익(尹滋益)·
이명재(李明載)·이병시(李秉始) 등 많은 유림의 이름이 새겨 있다.
괴산 읍내에 있는 군민 가마솥
갈은 구곡 칠성면에서 괴산수력발전소를 지나 12㎞정도 들어서면 갈론이란 마을에 닿게 된다.
갈론 마을을 지나 2-3㎞남짓 계곡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서 펼쳐지는 비경이다.
제 1곡인 갈은동문은 갈은구곡 입구로 우측 산 중턱에
집채만 한 바위가 있는데 바위에 "葛隱洞門"이라 음각해 놓았다.
제 2곡인 갈천정은 갈천씨의 백성이 은거한 장소로 갈론 마을의 지명유래가 된 곳이다.
제 3곡인 강선대는 말 그대로 신선이 내려왔음직한 바위가 있다.
제 4곡인 옥류벽은 시루떡처럼 생긴 암석이 층층이 쌓인 바위로 구슬 같은 물방울이 흐르는 절벽이다.
제 5곡인 금병은 암벽이 비단병풍처럼 주위를 감싸고 있고
제 6곡인 구암은 거북모양의 바위가 있어 유래되었으며
제 7곡인 고송유수재는 오래된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고,
우측에는 정자 터가 있으며, 부엌자리등 이 남아있어
옛 선비들이 오랫동안 머물면서 풍류를 즐겼던 곳이다.
제 8곡인 칠학동천은 일곱 마리 학이 살았다는 유래를 가진 골짜기이며
제 9곡인 선국암은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바위로
바위위에 음각해 놓은 바둑판이 남아있어 옛 선비들의 풍류를 엿 볼 수 있다.
괴산댐 인근의 칠성면 갈론리에 위치한 갈론 계곡은 주변의 빼어난 자연경관과
거침없이 흐르는 시원한 물줄기는 자연의 신비를 새삼 느끼게 하는 곳이다.
제1곡 : 갈천동문(葛隱洞門)
갈론 마을을 지나 개울가를 따라 조금 오르면 우측 바위위에
홉사 누가 올려 놓기라도 한 집채 만한 바위에 ‘갈천동문(葛隱洞門)’이라고
커다랗게 글씨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갈은구곡’을 진입하는 등용문 이라 할 수 있다.
‘갈은동문’이라 글씨가 새겨진 바위를 지나면 또 다른 바위에
’장암석실(場巖石室)‘이라 새겨진 글씨가 보이는데 이 때문인지
갈은구곡 입구에 있는 안내 표지판에는 ‘제1곡을 ’장암석실(場巖石室)‘로 표시되어 있다.
제2곡 : 갈천정(葛天亭)
‘갈천동문’ 바위 북쪽 계류 건너편 바위지대를 말하는데
'갈천'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은거했다는 장소로 갈론마을의 지명유래가 된 곳이다
개울물 건너 커다란 바위에 ‘갈천정’이라 새겨진 글씨가 또렷히 보인다.
제3곡 : 강선대(降仙臺)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바위로
4곡인 ‘옥류벽’을 올라 가는 갈림길 좌측에 있어 자칫 위치를 알지 못하면 지나치기 쉽다.
제4곡 : 옥류벽(玉溜壁)
마치 시루떡처럼 층층히 쌓아 놓은듯한 바위 절벽으로 구슬 같은 물 방울이 흘러 내린다는 곳이다.
바위 아래 거울처럼 맑은 담(潭)에 그림자를 드리운 층층바위 풍광이 환상적이다.
제5곡 : 금병(錦甁)
금병(錦甁)'은 '비단 같은 바위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곳‘ 병풍이라는 뜻인데
바위 한가운데 글씨마져 희미 해 자칫 모르고 지나치기가 쉽다.
황갈색 바위벽에 물빛에 반사된 햇볕이 닿으면 그야말로 비단처럼 보인다는 비경지대다.
제6곡 : 구암(龜巖)
뜻 그대로 ‘거북 바위’를 말한다.
제7곡 : 고송유수재(古松流水齋)바위벽에 ‘古松流水齋’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고
그 옆에 는 조선조 때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의 조부이자 이조참관을 지낸
‘홍승목’, 구한말 국어학자 이능화의 아버지이자 이조참의를 지낸 ‘이원극’ 등의 이름도 음각되어 있다.
이조참의를 지낸 ‘이원극’ 등의 이름도 음각되어 있다.
제8곡 : 칠학동천(七鶴동천) ❙
고송유수재’ 바로 위에 있는 곳으로 ‘일곱 마리의 학이 노닐던 곳’으로
바위 계곡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고 바위에는 뜻 모를 한시가 써 있다,
제9곡 : 선국암(仙局巖)
바위 위에는 바둑판이 그려져 있고 바둑통 대용으로 홈을 파인 곳에 누군가 바둑알을 가져다 놓았다.
네 귀퉁이에는 '사노동경'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마을의 동갑내기 네 늙은이가 바둑을 즐겼다'는 뜻이란다.
첫댓글 올여름 증평 가서 일 보고 괴산 길음 계곡 에약 해서요
기암 괴석이 즐비한 계곡으로
여름 피서 물놀이 최적격입니다
갈은구곡은 1곡부터 9곡까지 곡마다 암벽에 시가 새겨져 있죠 ~~~~~
네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