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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김남조
기도와 참회, 은빛 아름다운 허무
김강태
하얀 집 2층. 은은한 분위기가 낮게 감도는 이유는 성모 마리아상의 후광 때문만은 아니리라. 나는 김남조 시인 가까이에 앉는다. 가까이서 조용조용한 시적 읊조림을 내 안에 담고 싶었다. 잔잔한 음성, 단정한 매무새. 그리고 푸르른 듯한 흙빛이 감도는 보드라운 스카프가 시인의 목둘레를 감쌌다. 시인 내음과 사람 내음이 함께 풍기는 여인 김남조. 경이로운 것은 그녀가 실제로 고희의 얼굴 표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만큼 젊은 사유 방식에 여유 있는 모습이 좋다. 스카프의 보드라움이 이내 감촉의 부드러움으로 내게 다가온다. 사진 기자와 함께 나의 셔터로 일일이 그녀의 표정과 움직임을 담는다. 시간이 묻은 흔적이 없는 듯한 얼굴, 어쩌면 연륜이 저렇게 조용히 둘리워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녀의 나이테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녀의 시가 영혼의 세계를 틈입하려는 바램 때문일까. 기도와 참회의 시인 김남조를 만나면서 문득 괴테를 떠올린다. 그가 말했지, ‘우리의 모습과 사람됨은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또한 ‘사람은 그가 신을 믿고 있는 한, 그의 형상을 간직할 수 있다’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게도 무한히 공감하고 있다. 두 사람의 사고 핵심 사이에 인간 김남조가 존재하는 걸까.
오후. 노오란 귤이 노르스름한 빛으로 머무는 탁자의 풍경. 바구니에 귤이 스무 개쯤, 무척 달콤하고 달았다. 내가 선택한 진한 향의 커피와 오렌지 쥬스, 그리고 싸인한 시집 몇, 부군인 조각가 고 김세중 씨의 도록. 그리고 수필집 몇 권…. 스산한 겨울 기운을 더하는 낙엽이 이따금씩 바스락 소릴 멈칫거리며 창문을 두드린다. 이윽고 데워지는, 하얀 2층 집필실의 온기. 그녀의 눈빛이 이따금 허공과 나의 눈시울에, 그녀의 나직한 음성이 내면에 켜켜이 머문다. 울림, 공명·이명 등의 부유─, 2층 그 하얀 집필실. 이름이 있을까. 물어보고 싶다. 갑자기 연기 같은 안개가 서리는 듯. <오후는 자칫, 푸른 담배 연기를 뿜는다?>는 시제를 생각한다. 사람의 얼굴, 이것을 일단 오늘의 인터뷰 화두로 삼자.
얼굴은 자기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님을 알고서, 스스로를 궁극적으로 형상화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모형으로 삼을 얼굴을 앞에 내세운다. 중심 얼굴이다. 모든 사람의 얼굴 앞에서 그것은 보이지 않게 맴돈다. 형상, 표현, 그리고 움직임 같은 것은 단지 그 옆에서 완성되었을 뿐이다. 보이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중심 얼굴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1)
─ 막스 삐까르, <중심 얼굴> 부분
그녀를 보면 윗글처럼 ‘보이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중심 얼굴을 따라’가는 걸 느낄 수 있다. 막스 삐까르를 안 기쁨은 아직도 내 안에 용솟음치지만, 그의 《침묵의 세계》 뿐만이 아니라 이 책 역시 ‘얼굴’을 테마로 그의 풍부한 상상력을 엿보게 한다. 그는 ‘조화’를 위한 얼굴 움직임에 대한 고찰(관찰력)이 매우 뛰어나다. 솔직히 G. 바슐라르 이후, 하나의 사물을 이렇게 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학자(본디 정신의학자였다)는 없을 것이다. 인간의 본질과 내면 관찰에 주력하는 그의 특징은 끊임없이 진지한 인식론적 사고와 문학적 탐구 방식에 있다. ‘침묵’과 ‘얼굴’ 묘사에 대한 치밀한 프로페셔널. 그의 기법은 하나의 관조로 다가와 우리들 내부를 명료히 노크, 조용히 머문다.
同 行
나는 망설인다, 이석주의 그림 <김남조> 앞에서. 그녀의 성글한 머리칼과 기도하는 눈매의 빛과 옹다문 입술의 하모니를 바라본다.2) '27년 대구 출생. 첫 시집 《목숨》을 ’53년에 상재한 뒤 숙대 국문과 전임강사가 되어 '93년까지 근속한 그녀는 현재 명예교수이자 예술원 회원. 자유문학가협회상(’58), 오월문예상('63), 제7회 시인협회상(’74), 서울시문화상('85), 대한민국 문화예술상(’88), 3·1 문화상('92)에 이어 ’96년에 제41회 예술원상을 수상했고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내기도 한다. 아무래도 이번 취재는 선생과 오랜 시간동안 데이트해야 할 것 같다.
어린 남조는 불우한 시절을 보낸다. 집안에서 너무도 많은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글을 보면 이런 이력서 앞에서 적잖이 괴롭다고 토로한다. 이런 불행이 있었다는 것은 뜻밖이었다. 소녀 남조의 여학교 시절은 부모의 일본행으로 큐슈의 후쿠오카에서 비롯한다. 혼돈 끝에 '44년에 서울행, 경성여전(구 이화전문)에 입학, 기숙사 사감이 훗날 이대 총장이었던 김옥길 여사였다. 4남매가 장성하기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그런데 어머니에 대한 글은 많은데, 아버지에 관해서는 거의 입을 닫고 있다. ‘어머니와의 갈등을 야기하던 무심한 아버지’ 정도.) 6·25 전에 자식 둘을 잃고 남은 아들마저 전시에 사망하는 횡액을 겪는다. 수년 사이 조부모와 그 가족들이 사망하고 작은 할아버지도 재해로 외아들을 잃는 등, 이래저래 남조 혼자 남았으나 그녀 역시 혈담을 뱉던 와병중이었다. 어머니가 당신 가슴에 아들을 파묻고 맞이한 1·4후퇴는 상상키 어려운 아픔의 연속이었다.3) 남조는 그저 ‘예쁜 죄 하나, 예쁜 비밀 하나도 못 가진’ 여성으로 성장해나간다.4)말에게 물린 여자 김남조. (처음으로 듣는 놀라운 말이었다. ‘채였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어린 시절, 그녀의 하학길이었다. 어머니가 놀라 대청마루를 버선발로 뛰어내리던 모습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녀가 글을 쓸 때는 첫 애독자인 어머니도 깨어 있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 일부러 불을 끈 적도 많았다. 그녀가 결혼 후(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어머닌 밤중이라도 아기 울음 소리가 나면 딸의 잠을 깨지 않게 하려고 무섭게 조바심을 치셨다. …어머니 유언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김 시인의 고백. ‘어머니는 유언을 남기셨다. 한 젊은 신부에게 당부하여 그 신부가 죽는 날까지 날마다 기도 중에 당신의 딸을 위해 몇 가지의 축원을 보태어 줄 약속을 받으셨다. 장례식 얼마 후에 안 일이지만 어머니는 짧게 다듬은 기도 구절을 아예 만들어서 내주셨으며 수중에 있던 돈의 전액을 미사 예물로 바치셨다.’ ‘이토록 끈적거리는 점성의 어머니의 피를 나의 심신에 칠 범벅이로 입혀 칠하고 나는 살아간다.’ ‘예수 고상苦像(十字架像)을 언제나 손에 잡고 계셨는데 손이 허탈하여 떨어뜨리는 일이 생기므로 위독하던 몇 주간은 붕대로 손과 고상을 묶어 드렸다.’ '67년 6월 20일 정오, 그녀의 어머니는 췌장암으로 운명하고 만다.5) 어머니 사랑의 엄청난 상실을 한꺼번에 채우기라도 하듯 한쪽에 마음의 불, 혼불이 일어난다…. ‘전쟁과 이별, 모든 것의 잔혹한 분쇄. 그러나 보다 더한 비극은 감정의 배고픔에 있었다. 나의 <그>란 언제나 부재자였다. 그의 마음이 내 마음과 한 가닥 이어져 있었던 것밖에는 그의 머리카락 한 올도 나의 것일 수가 없었다. 그 운명적 공복감에 시달리고 지치다 못해 백 세의 고령자가 되는 듯한 심정’6)이란 고백이 들린다.
그녀는 전쟁의 혼탁한 때에 졸업을 앞두고 마산의 한 고교에서 교편을 잡는다. '51년 9월, 부산 남성여고에서의 서울대 졸업식에서 음대생들의 할렐루야 합창으로 온통 울음바다가 된 식장. 그곳에서 놀랍게도 작가 정한숙의 꽃다발 선물을 받는다. 그런데 리본은 ‘축 졸업 전광용 군’이라 쓰여 있었다. 생사도 모르던 김남조를 만나자 정 씨가 급히 용도(?)를 바꾼 것이다. 전광용 씨가 찍어준 사진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정한모 시인이 동기요, 홍윤숙 시인은 당시에 아주 좋은 벗이었다고.
첫 시집 《목숨》('53년)의 견본을 들었을 때는 정월 혹한의 날씨. 암담 속에서 자살 충동에 온몸을 떨었던 일이 있었다. ‘영도 다리를 지나는데 너무 춥고 바람이 거세어서 걸음을 옮겨 놓을 수조차 없었다. 옷은 얇고 몸도 병약하여 그랬던지 뭔가 종착지같이 절망적이고 암담한 심정이 치받았다. 다리 난간을 붙들고 검은 강물을 굽어보았을 때 순간 ‘저기 떨어져야지!’ 하는 야릇한 충동이 치받았다.’7) 거역하기 어려운 유인이었다. 순간적 광기였을까. 이 시집에만 유일하게 자의에 의한 ‘서문’이 실린다. 이헌구 선생의 글이었다. 그녀는 <서문> 청하기를 지금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김 시인은 고요의 내성을 지닌 여인이다. 첫 시집 《목숨》('53)을 출간하여 처음으로 출판기념회란 걸 열지만, 이후 40년간 김 시인은 그 행사를 연 적이 없다. 《나아드의 香油》('55). 특히 나는 이 시집에서 예수의 발에 사뭇 기름 붓고 주의 발을 씻어드린 막달라 마리아를 연상한다. 검은 머리와 한없는 참회의 눈물, 그리고 내안을 닦고 닦는 그녀의 모습에서 작은 은총을 느낀다. 그리고 《나무와 바람》('58), 《情念의 旗》('60), 《楓林의 音樂》('63), 《겨울 바다》('67),《雪日》('71), 《사랑 草書》('74), 《同行》('80), 《빛과 고요》('83), 《바람세례》('88), 그리고 성바오로출판사에서 나온 12시집 《김대건 신부》를 보면 김 시인의 작품들이 어떤 경향을 띠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을 한꺼번에 묶은 《김남조 시전집》('83년 초판)이 있다. (증보를 거듭하면서 무려 35판 정도를 찍었다.) 최근 '95년 12월, 열세번째 시집 《평안을 위하여》를 출간한다.
김남조 선생은 기도의 시인이다. 기도 외에는 불필요한 언어를 삼간다. 그녀의 양 입술에 이처럼 내용이 적혀 있다, 도저히 열릴 것 같지 않는 모습으로. 많은 인고忍苦의 시간을 통해 터득한 것 같다. 그런 만큼 도무지 허점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 그것이 온전한 완벽주의의 다른 모습은 아닐까.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 . 부드러움의 안에 묻힌, 신비의 빙설처럼 큰, 푸른 침묵이 여릿여릿 내비치는 시인의 방. <겨울 바다>(전문)의 상념에 젖으며 잠시 나는 고개를 여민다.
겨울 바다에 가보았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불/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언제나/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남은 날은/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忍苦의 물이
수심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나는 이 <겨울 바다>를 좋아한다. 시인 김남조를 구체적으로 이해한 작품이기에 더욱 뇌리에 남는다. 작품의 시적 화자는 인생의 관조자일 테지만, 어쩐지 ‘황폐와 여유’의 말년이 복합적으로 그려져서 더욱 끌리는 작품이다. 김 시인은 이 작품에서 ‘내적 체험의 겨울 바다’를 구성하고 싶었으며, 철학성을 지나치게 개입시켜 읽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한다.
‘바다’를 가만히 읊조리노라면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떠오른다. 당대의 작품이 나타내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탓이다. 특히 ‘안개 무’, ‘포구 진’의 우울한 블루. 뻘이 뵈는 서녘 바다쯤의 깊은 겨울 가, 한 여인이 미색 바바리 코트 자락에 손을 푹 끼고 푸른 머플러를 날리고 있다. 그녀는 더 나아갈 수 없는 바다 끝에서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미지의 새’를 확인해보지만, 이내 날개짓마저 없음을 발견한다. ‘미지’란 무엇인가. 때는 혹독한 겨울, 오로지 막바지까지 믿고 버텨오던 진실 한 가닥마저 이미 눈물져 얼어버린 지 오래. 그러므로 남은 건 오직 리얼한 허무뿐. 그런데 이 허무란 것이 지순한 아름다움으로 등장한다. 허무라는 타오르는 불이, 굽이치는 물결이랑마다 불붙어 있음에서다. 이때 시적 화자는 끄덕이며 깨닫는다. ‘나를 가르치는 건/언제나/시간’이라며.
바다는 우리들에게 동경을 가르친다. 끊이지 않는 물결이 이를 웅변한다. 미지를 향한, 깊이와 넓이(=‘부피’라는 시각적 질감)로 감지되는 무한대의 그리움. (김 시인은 ‘미지’를 무량함이라고 설명한다.) 신성성을 수반하는 이 그리움 앞에서 나는 전율한다. 얼핏, 김남조 그녀에게서 허무의 옆얼굴이 보인다. 설핏…, 고웁다. 저 굳게 닫힌 붉은 입술에서 새나올지도 모를 허무의 실비단 같은 실체. 문득 그녀는 한 마리 거미다. 당신은 말없이 허무를 캔다. 거미처럼 자꾸 ‘니힐nihil’이라는 이름의 은회색 실을 잣는다. 아름다운 은빛 허무, 이 어휘가 지금쯤 어울리는 시인. 그녀는 바다 그림을 그린다. 네모진 파스텔 화면에 시적 화자가 놓인다. 편안한 기다림의 여백도 있다. 일렁이는 바닷물과 포말을 보면서 정신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그녀. 바다를 향한 깨끗한 바램은 생명력이며 생생한 사고 부활의 암시다.
일러스트레이터 노희성盧熙成의 그림에 무수한 닭(=群鷄), 말(=群馬) 등이 노닌 적이 있다. 노 화백은 곧잘 세상을 희화화하여 웃는 소를 그리거나 때로는 가끔은 진돗개가 인간을 향해 짖게도 한다. 그런데 그림 한쪽 여백을 바라보면 솔깃 고독이 묻었다. 터치할 부분이 있는데 정작 비어 있는 것의 어울림. 막상 건드리면 이상할 듯 싶은 여백, 공간. 이곳에 시적 화자 김 시인의 내면이 소롯이 놓인다. 노 화백의 그림은 ‘비’가 소재였는데, 예기치 못한 빗방울이 정말 듬성듬성 내린다. 빗방울 사이마다 ‘사이’가 보인다. 이시영의 ‘사이’, 김지하의 ‘틈’ 같은 것이. 헌데 그녀가 해변에서 만난 낯선 ‘이방인’은 진정 누구인가. 알베르 까뮈의 바다는 태양이 있었지만, 그녀에게 지금은 그것마저 없다. 당시 그녀의 물과 빛의 이미지? <공간>이란 텍스트를 제시한 김화영의 ‘공간 노트’8)를 뛰어넘어 이시영·김지하의 ‘틈’이란 부끄럼 위에 김남조의 기도가 CD음처럼 살프시 얹힌다.
그러나 바다란 역시 ‘풍요’를 지향하지 않는가. 죽음과 풍요 사이, 겨울 바다와 뭍 사이는 ‘시간’이 운명적 요소로 ‘끄덕이며’ 존재한다. 이 끄덕임은 김 시인의 연륜에서 비롯할 것이다. 대지와 심연은 서로간 모성(모태)을 포함하는 점에서 상통한다. 대지의 끝간데 또한 물의 끝과 맞닿는 절묘한 일치감, 아득한 거리감을 갖게 한다. 이 절연의 선상에 김남조의 시가 아슬히 놓인다, 기도가 놓인다. 시 <하느님의 동화>에서 그녀는 이렇게 영탄한다. ‘절망이 이리도 아름다운가’.
한편 내적인 뜨거움을 호소하는 시도 눈에 뜨인다. ‘내 마음은 한 폭의 기/보는 이 없는 시공에/없는 것모양 걸려 왔더니라.//스스로의/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눈 오는 네거리에 나서면//눈길 위에/연기처럼 덮여오는 편안한 그늘이여./마음의 기는/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나에게 원이 있다면/뉘우침 없는 일몰이/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가는/그 일이란다’는 시 <정념의 기>(부분)를 보라. 저 뜨거운 가슴, 식어도 식지 않고 다시 끓을 정념을. <희망에게>(부분)에서 이렇게 ‘희망’을 읊기도 한다. ‘(희망이) 이승의 내 끝날에야/혹시 온다면/한 생애 닫히는 문 앞에서/나직한 하직인사/이르되/너무 늦은 건 아니라 하리//아무튼 자유로이 하렴’. 최근엔 시의 위기를 실감하지만 시문학에 대한 그녀의 시각은 매우 희망적이다. 끝 구절 ‘아무튼 자유로이 하렴’에서 그녀의 자유분방이 참 부럽지 아니한가. 영혼의 가벼움에 감전되는 듯. 은혜가 제 몸으로 파고드는 시 <성서>(전문)를 보자.
이 먼 나라/호텔의 서랍 속에/성서 한 권,이 분을 여기서 만나는구나//
가슴에 품어 안으니/두 몸의 치수가/숙연히 잘 맞아
이 분과 함께 편안하구나//
지금 조용하고/우리 둘뿐이어니/
어떤 고백도 울음도/서슴지 말라시는,희한하게 감미로운 분이시구나//
세계의 어느 여숙에도/이 분이 기다려 계심으로
모든 나그네/허행의 발걸음이 아니고
확고히 도착하는/그 사람 되는 것을
어느덧 시인에게는 사물이 친근한 이웃으로 다가온다. 사물에 ‘이분’‘이 사람’ 이란 호칭이 붙는 것이다. 그녀는 삶 자체를 ‘보관품’으로 생각하고 있다. 성서─ . ‘이분’의 생령(生靈) 일부가 이국에서 현존의 표지로, 믿음의 증빙서류로 존재하는구나. 그렇지. 시인은 하느님이 그렇게 엄격하신 분이 아님을 우리에게 편안히 알린다. ‘어떤 고백도 울음도/서슴지 말라시는,/희한하게 감미로운 분’인 성서를 여행객이 ‘먼 나라/호텔의 서랍 속에’서 만나는 장면은 감동의 극치요, 신과 사물의 자연스러운 혼융이다. <성서>는 사물과의 절대적 연애시인 것이다. 최근의 산문을 보면 ‘시는 예언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밤의 가장 깊은 시각에 제일 먼저 새벽을 예감하는 청명한 감수성의 요구가 따릅니다. 감수성이야말로 시인들만의 기능이며 시인의 존재 가치입니다’9)는 구절이 참으로 새롭다. 물론이다. ‘시는 예언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새로이 감득할 필요가 있다. 이를 감지키 위하여 김 시인은 ‘새벽을 (부단히) 예감하는 청명한 감수성’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모처럼만에 나는 임우기의 괜찮은 평론집 《그늘에 대하여》를 넘기작거린다. ‘모든 예술 작품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것이다. 비평은 그 흠, 그 불완전성이 지닌 생의 깊이와 가치를 캐는 작업이다. 깊이와 생의 가치를 지닌 흠, 불완전성에 살아 있는 그늘[陰]이 드리운다. 숨은 그늘은 작품의 드러난 표면과는 다른 방향으로, 逆으로, 움직인다. 그 그늘로 인해 작품은 생생한 삶의 몸을 얻는다.’10)는 글로 시작된 이 책은, 서양것에 물든 이론 배경에 반기를 들고 순전한 우리것으로 뚝심 좋게 작품을 재단(‘순 국산식 전개’)했다는 점에서 반갑다. 모든 예술 작품의 불완전성, 그곳에서 삶의 깊이와 가치를 캔다는 슬로건은 사뭇 음미할 만하다. 다만 임우기의 <그늘론>은 앞으로 명백히 전개돼야 하고 메타비평적 요소를 갖고 있는 만큼, 다른 견해를 가진 평자들의 검증을 거쳐야 하리라. 더 나은 ‘생생한 삶의 몸’과 몸짓을 하기 위해서라도.
사랑의 시인 김남조
20세기 독일 문학(연극·시·산문)에 큰 영향을 미치고 표현주의 논쟁의 선두 주자 루카치에게 반론을 제기한 브레히트의 《즐거운 비판》에는 ‘사랑이란 다른 사람의 소망을 빌려서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기술’11)이라는 흥미로운 견해가 등장한다. ‘다른 사람의 소망’이란 대상을 향한 한의 화염인가. 그리고 사랑 에너지 생산? 이때 김 시인의 사랑론을 이 마당에 끌어올리면 어떨까. 실로 그녀는 사랑만을 오래도록 사랑해온 시인이다. 신에 대한 경건한 헌신적 사랑이나, 고인인 부군에 대한 깊은 정은 내밀한 기도 속에서 늘상 새 생명으로 살아 있다. 사랑은 소망이자 존경심(=외경심)의 또 다른 표현. 그는 지금 신의 존재를 통해 무엇인가를 계속 생산하는 중이다. 시 <새벽 외출>(부분)을 보자.
이천 년 하루같이/새벽 외출/외톨이 과객으로 다니시며세상의 황량함/품어 뎁히시고/울음과 사랑으로/가슴 거듭 찢기시며깊은 밤/십자가 위에 돌아오시어/엷은 잠 청하시느니//아아 송구한 내 사랑은/어이 풀까나/이 새벽에도/빙설의 지평 위를청솔바람 소리로 넘어가시는/주의 발소리/뇌수에 울려 들리네
이 시는 신앙 체험의 노래다. 김 시인은 <잡풀 같은 나의 참회>에서 ‘견고하지 못한 나의 양심에 관하여/견고하지 못한 나의 사랑에 관하여/견고하지 못한 고독, 인내, 협동들에 관하여/견고하지 못한 철학, 철학 부재의 내 문학에 관하여/오월의 들녘같이 백화난만한 나의 위선들에 관하여/어쭙잖은 자만, 자긍, 과잉 자존심에 관하여’12) 진실로 참회한 적이 있다. 그녀의 산문이 밝히는 ‘회개’는 매우 진솔하고, 그래서 많은 가슴을 울리기까지 한다. 그렇다, 믿어야 한다. 시인의 모든 말과 양심을. 화제는 자연히 주님과의 만남 쪽으로 옮겨진다. 여학교 과정을 일본에서 보내던, 폐결핵 때문에 휴학한 때였다.
누워서 마주보는 벽에는 어머니가 걸어준 한 장의 성화聖畵가 있었다. (…중략…) 그림 속엔 출입문이 있고 그 안으로 무궁한 내부가 열리는 듯싶게 설명 못할 혼의 소요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 그러면서 예수의 눈길이 나를 보아주지 않고 하늘로만 향하신 점이 못내 슬펐었다. 저편 아득한 곳에 던져진 주의 시선은 나에게 불타듯 하는 목마름을 일깨워 주었으며 피로하여 눈을 감으면 눈 속에 아린 통증이 남아지곤 하던 것이다. 수개월만에 병을 수습하여 다시 학교에 나가게 되었을 때 나는 한 성물가게에서 정면을 보시는 예수의 그림을 구하게 되었다. 한없이 깊고 깊은 연민의 눈빛. 그분은 진정한 나의 신이요, 그리스도셨다.13)
이 글에서 우리는 절대자와의 해후를 뜨겁게 모색하는 시인을 접한다. 그 누구도 범접치 못하는 사물과의 분명한 만남이다. 김 시인과 나의 첫 만남도 그랬다(!). ‘고궁의 신록이 무척 아름답군요.’ 아직도 나는 ‘60년대 말, 경복궁에 서 부군 김세중 선생의 문하생 작품전 오프닝에 참석했던 김남조 시인을 기억한다. 어느 대학교 주최의 고교 백일장 대회에 참석했던 그때, 푸른 오월. 머얼리서 바라본 조각품 사이의 김 시인. 예쁜 시집 사진과 똑 닮은 그녀 모습에 내달려간 우리 일행은 얼마나 기뻐했는가. 시인의 분위기를 처음 느낀 은사 최승렬 님 다음으로, 그녀와 우연히 만난 것은 내게 여직 좋은 추억거리다.
두번째 일화로 이른바 ‘할머니론’. 나는 대학생 때 데뷔하여 상명여대 문학 축제에 초대된 적이 있다. 김남조 시인도 오셨는데, 나의 시 낭송 전에 ‘앞에 계신 김남조·배상명 두 할머니를 모시고 낭송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말하니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원로’란 의미의 농담조였는데, 곧 단상에 오른 김 시인이 ‘내 생애 처음으로 할머니란 말을 들었다’면서 ‘할머니 호칭’을 은근히 서운해 한 적이 있다. 그때가 언제인가, '70년대 말, 하기사 50세 중년 여인에게 그런 호칭을 붙였으니. 다과회장에서 배 학장이 ‘아니, 내가 할머니라구요?’ 하며 꼴밤 주는 흉내를 내서 함께 웃은 적이 있다. ‘오, 그 사람이었군요.’ 이 비화를 김 시인도 기억했다.
세번째 기억. 어느 겨울이던가, 원고 문제로 문협(인사동 쪽)에 들렀을 때 지금은 고인인 천상병 시인을 우연히 뵙게 되었다. 덜덜 떨며, 또 뭐라고 중얼거리길 반복하며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던 그에게 겨울 낙상 탓에 절뚝이며 드디어 나타난 김남조 시인. 천 시인이 반가워하며 특유의 콧소리로 소리친다. ‘야, 김 선생님, 김 선생님!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용돈 주러 오셨구나야. 나, 용돈 주러 오셨구나야!’ 나는 두 분의 역사적 만남도 좋았지만, 한 사람은 달달 떨고 또 한 사람은 절뚝이며 나가는 모습에 마음 졸이다가 얼마나 웃었는지. 여쭈니, 천 시인의 갑작스런 데이트 신청(?) 때문이었다고.
참회의 시인 김남조
그녀는 사랑에 대해 직설적이고 한때 뜨거운 정염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온통 사랑의 열병에 휩싸였다가 고요히 맞는 참회의 시간. 시 <참회>(부분)를 보자.
사랑한 일만 빼고/나머지 모든 일이 내 잘못이라고
진작에 고백했으니/이대로 판결해 다오//
그 사랑 떠났으니/사랑에게도
분명 잘못하였음이라고/준열히 판결해 다오//
겨우내 돌 위에서/울음 울 것./세번째 이와같이 판결해 다오
‘청명한 감수성이 시인의 필수 조건이며 존재 가치’라는 김 시인은 ‘오늘날에도 인간 본성 안에 문자 문화에의 유구한 향수가 남아 있다’14)면서 흔히들 부르짖는 일부 시문학 위기론을 배격한다. 그러면서 내 시집의 서시 <돌아오는 길>에 대해 문단의 대선배로서 가만히 말문을 연다. 시는 역시 함축을 생명으로 하면서 밀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서시>는 문자 그대로 시집의 중심이 돼야 하고, 또 ‘채소 파는 아줌마에게’ ‘희망 한 단에 얼마예요’라는 물음으로 마친 것이 조금 아쉽지 않느냐는 희망사항을 ‘아주’ 조심스럽게 들려준다. 조금 더 굵은 줄기를 노래했으면, 하는 누님 같은 자상함이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시정신, 에스프리의 진정한 가치 추구를 의미한다. 시인은 계속해서 말한다. ‘어머니가 저녁 때 돌아오지 않는 아이를 불러 와서 가슴에 뜨겁게 안는 것이 바로 영혼의 위안이 될 거예요. 그때 아이 가슴도 얼마나 뜨거워질까요’. 따스한 희망의 시를 써보자는 뜻이리라. ‘연애편지가 없고 삐삐가 상존하는 우울한 시대, 젊은이들에게 무언가 갈피를 접고 기다리는 그윽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 갈피란 편지에서 그윽한 안쪽을 더듬는 여유를 의미한다’고 말한 시인은, 좋은 시 한 편을 낭송해달라는 주문에 잠시 망설이다가 시집을 편다. 작품 <서녘>(전문)이다.
사람아/아무러면 어때//
땅 위에/그림자 눕듯이/그림자 위에 바람 엎디듯이
바람 위에 검은 강/밤이면 어때//
안 보이면 어때/바다 밑 더 파이고/물이 한참 불어난들하늘 위 그 하늘에/기러기떼 끼럭끼럭 날아가거나
혹여는 날아옴이/안 보이면 어때//
이별이면 어때/해와 달이 따로 가면 어때
못 만나면 어때//한가지/서녘으로/서녘으로/잠기는 걸
내가 ‘서녘으로 잠긴다’는 이미지를 불교와의 은근한 교합으로 풀이하니, 다소곳 생각에 잠기던 시인이 약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것. 초월심으로, 이 말이 성립 된다면 서녘은 서방정토인 셈이다. 시인은 계속 말을 잇는다. 비로소 엷은 홍조를 띤 얼굴. ‘일부 시인들의 사고에 다소 문제 있는 것 같아요. 엄마의 닫힌 문 앞에서 아이가 결코 사랑 가득한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처럼, 젊은 시인들도 좀더 마음을 열고 대상을 탐색했으면 해요. 따스함이 부족하니 존재의 황량함을 느낄 수밖에. 문학성, 철학적 사유나 감수성 결여라고나 할까요. 삶을 투시하는 인식론적 부피의 빈곤을 반성하는 자세도 아쉬워요. 시인들에게서 쇄말적인 것에 대한 집착과 모험성 부족을 발견하게 되는데, 김 선생에게도 독서·사색·잦은 여행을 권하고 싶군요. 긍정의 눈이 자기 내면에 몰라보게 형성되리라 믿어요. 요즘 시인들이 <절망>을 자주 제시하는 건 아닌가요. 아니면 남 앞에서 동료 문인들의 험담이나 하고…. 잘은 모르지만, 소설에서도 비뚤어진 사고 전개와 욕설도 심한 것 같아요. 작가들도 작품에 삶의 경건성을 부여하고, 부끄러운 부탁이지만 등장인물들을 죽이지 않았으면 해요.(웃음)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소설을 읽는 법인데 오히려 더 상처를 받아요. 또, 너무 허무가 많은 것도 문제지요. 지나친 부정주의나 도태주의 내지는 인생의 비탄·분노만 있고 감동·위안의 시가 드문 건 걱정거리죠. 물론 젊은 분들이 알아서 잘 쓰겠지만, 자기 시에서 값싼 절망과 가벼운 슬픔의 성급한 상품화는 없는지 살펴봐야겠지요. 다만 시대의 아픔에 대해 진실로 고민하면서도 그 나름의 희망 한 꼭지를 찾으려는 겸허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울지 말라는 건 아니죠. 울고 싶을 땐 울어야지, 그러나 울면서 시를 쓸 수는 없는 일이지요. 시인들의 가슴이 작아지는 것도 정말 문제 아닐까요. 한 마디로 삶의 치열성은 시인의 영원한 과제죠.’말을 전개하면서도 그녀는 말을 아끼려고 무척 노력한다. 자기의 말과 생각이 필요 이상으로 해석될까봐 염려하는 눈빛도 보였다. 38년 동안의 교수직에서 나름대로 자기 시(문학)의 방향으로, 무한한 위안과 감동을 추구하는 ‘치열한 지향성’이 일견 아름답다. 새 시집 《평안을 위하여》는 주로 휴식·안정·치유·평강을 그렸다면서 만년의 릴케 이야기도 전한다. 폴 발레리 시 번역에 몰두한 그는, 간질병을 고치기 위해 맹렬한 삶의 저변을 헤매었다고 한다. 형상시인(形象詩人) 릴케는 장미 가시에 찔려 치료 소홀로 백혈병을 얻고나서도 고통 체험 수단으로 진통제 맞기를 거부했다는 일화가 감동적이다. 릴케는 고독했지만 그의 고통 체험은 힘으로서의 실체(바탕)였던 것이다. 현재의 문청들이 치열한 문학혼을 향한 자의식 부족을 인식했으면 하는 젊은 노시인의 바램이 고마웠다.
‘자비’라는 말
‘나는 카톨릭 신자이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란 말을 좋아해요. 한자어 자비라는 용어를 보면 신기할 정도지요. 어미라는 개념(慈:사랑 어머니)과 연민(悲:슬픔)이 들어가 있지요? 사랑하는 자식을 생각하는 어미의 진솔한 마음…. 자애(慈愛)·자비 같은 언어의 소중함.’ 그러면서 그녀는 미국 여행 중의 일화를 소개한다. 국립 요세미테 공원 레드우드 숲에 갔을 때, 키 90m의 3천년생 나무가 눈사태에 무너져 6개월동안 몰랐던 사건에 대해. 그 나무는 차가 밑둥을 파서 지날 수 있게 만든, 이름하여 ‘터널 트리’였다. 장엄 그 자체, 신비와 환희 그 자태였다. ‘그리스도 2천년, 그보다 천년 앞에 하느님의 품 속에 안겨 있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은 그녀는 가장 편안한, 잎이 청순한 나무숲 <레드우드>를 생생히 반추한다. 좋아하는 계절인 겨울에 본 감동이라며, ‘봄은 좀 헤프지 않느냐’는 반문이 이채로웠다.
이때 나도 지상의 마지막 파라다이스 ‘코사무이 섬’을 생각했다. 언젠가 가보고픈, 비행장 통로가 가는 줄로 쳐져 있다는 곳. 티켓만 평화로이 주고받는, 풀과 나무와 꽃으로 수놓인 공항 대합실. 인위를 가하지 않은, 사면 온통 3S(태양·모래·바다)로 뒤덮인 곳을. 누군가와 동행을 꿈꾸게 되는 원시림. 엄청난 자연 현상 앞에서 나도 그런 깨달음을 할 수 있을까.
프랑스 사회과학원의 알랭 들리생 교수. 그는 건축가 김수근의 한국적 여유와 멋이 가미된 공간 조성을 아쉬워 하는 사람으로, 실제로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성향의 도시 개념을 넘어서 ‘저근대성(low modernity)’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학자다.15) 한국·파리를 막론하고 눈에 비치는 경치에서 아무런 ‘감수성’을 발견하지 못함을 굉장히 안타까워하는 그는 도시 경치에서 감수성을 맡아보려는 사람. 그런데 거주의 중심인 ‘사람’을 위한 곳이 없단다. 서울도 전통과 현대성의 공존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라고. 그의 사물 인식이 김 시인과 일체감·동질감으로 비쳐온다. 그렇다. 진정한 아름다움의 정체성은 도심 경치에서 한국적인 것에 있으리라. 문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녀에게 감수성과 이성의 교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자, 진정한 감수성이란 당연히 이성과 함께 공존하는 것이라고. 기쁨을 아는 이가 슬픔을 알듯이, 감성이 건강한 자는 이성도 건강하다고 밝힌다. 다만 감성은 직관이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고 힘이 있는 것이라고. ‘감성의 심안心眼’을 갖자는 뜻이 아닐까.
오래 전 어느 부모님과의 상담. 한 소녀가 A. 까뮈의 <시지프스의 신화>를 읽고 자살 미수를 한 일이 있었다. 김 시인은 또다른 의미에서 양서의 오독으로 인한 피해를 깨달았다. 하느님 안에서 내가 쉬고 내 안에서 하느님을 쉬게 하는 ‘지혜로운 기도’가 필요하다며 시인은 각별히 안식(휴식)과 평온, 진솔한 의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요한 건 첫째가 생명성, 두번째가 생명 존중의 종교심. ‘생명 자체가 사랑스럽고 귀엽고 애처럽지 않은가요?’ 중심 철학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김 시인은 감수성에 이어 생명성을 역설한다.
시를 처음 알았을 때
일본 여학교에서 폐결핵으로 퇴학을 강요받았을 때, 우연히 만난 타고르 시집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선(善)은 문을 두드리나, 사랑은 문이 열려 있음을 안다’는 등의 구절에서 생명의 양분을 받고 감격하여 세례를 받는다. 그 뒤로 산문(수상·수필)도 많이 썼는데, 내가 조사한 바로는 10여년 전 중앙일보사에서 나온 《바람에게 주는 말》이 무려 26만여부의 판매고를 올린 사실도 있다.
‘당신의 최고 작품’을 묻는 말에 르네상스 고전 양식을 확보한 화가 라파엘(1480∼1520)은 이렇게 답했다. ‘나의 다음 작품입니다’. 어쩌면 미래를 바라보는 그의 명언처럼 김 시인의 작품도 끝이 없을지 모른다. 그녀는 늘 긴절한 기도를 지녔으므로. 쉬임없이 간구하며 시라는 영혼의 샘물을 은밀히 길어내므로. 김 시인은 요즘 <시지프스> 연작을 쓰고 있다. 신화 속 일반적 테마인 남성성에서 벗어나 잘 보이지 않는 상처의 치유 방식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반복해서 밤에는 안식을, 낮에는 노동을 하는 데서 오는 권태를 비로소 인식한 까닭이다. (<시지프스 1, 2>는 이 책에 수록.)
안녕, 시지프스/지금은 능동의 옷을 벗고
그 오직 육체를 가진 사나이의/외로움에 잠겨 계신
당신의 둘레,/고요 무량합니다
─ <시지프스 1> 끝연
예수께/한 여자가 해드렸듯이
내 반백의 모발을/향유에 적셔
당신의 지친 몸을/눈물로 닦아 드린다면
혹여 죽으실 수 있을지//
내 사랑 시지프스,/강한 이의 측은함이란
이리도 가슴 아픈가
─ <시지프스 2> 부분
<시지프스 1>은 일반적인 테마에서 벗어난 시. 낮에는 노동을 하지만 밤에는 안식을 취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작품으로, 끝없는 인내와 끝없는 자아의 대결을 그리려 했다는 설명이다. <시지프스 2>는 화자에 대한 밀착성과 안식의 밤이 어떤가를 노래하고 있다. 있을진저!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평안 있으라.
평안 있으라/그 더욱 평안 있으라
죽은 이를 위한/진혼 미사곡에
산 이의 추위도 불쬐어 뎁히노니
진실로 진실로/살고 있는 이와/살다간 이
앞으로 살게 될 이들까지/모두가 영혼의 자매이러라
─ <평안을 위하여> 부분
‘죽은 이를 위한/진혼 미사곡에/산 이의 추위도 불쬐어 뎁히노니’는 김 시인만의 독특한 감수성을 그대로 드러낸 시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잠을 잘 자는 것이 성성聖性’이라고 해서 나는 비스듬히 웃는다. 지금은 그녀의 말대로 자신은 ‘삶에 정들고 주님께 정들었어라’. 스펙터클이 돋보이는 비디오 감상도 요즘 생긴 취미 중의 하나. 그녀는 시종일관 손을 맞잡은 채 목소릴 들려주었다. 한쪽의 깊은 보조개. 자잘한 나무잎새가 수놓인 부드러운 머플러. 그리고 검은 통치마의 조화, 모두가 차분한 잿빛이다. 요즘 읽은 좋은 시집으로 '59년 《사상계》로 등단한 홍완기 시인(’32년생)의 《시퍼런 생각》을 꼽는다. 정규적으로 시 공부를 한 적이 없는 홍 시인, 그의 작품에서 읽히는 고통이 너무 아프고 귀하고 아름다워 전화 연락을 했더란다. 그녀는 일부 평자나 중견 시인들 중심이 아닌, 많은 시인들이 좋은 시를 발견해서 아껴주는 풍토가 아쉽다면서, 수식어가 통제된 시들의 울림이 ‘참 울음’이 아니냐고 역설한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최근작시 <새해>(전문)는 볼수록 간결, 딴딴하다. (《현대시학》 '97. 1월호 게재) 절제된 이 작품의 이미지를 캐보라. 얼마나 깔끔하고 상큼한가!
송년의 바람이/냉수에 목욕/여름에 소독한 후
병원 회전의자에/몸을 맡긴다//
진맥하여 처방을 줄/의사는/그러나 출타하여
의사의 의사이신/어른을 뵈옵고 있다
어른께서/의사를 고쳐 주시면/의사가 바람을 치유하고
바람이 나를/의자에 앉히리라//그런 다음/부디 새해가 오기를─
시와 종교
종교 이야기에 이르자, 김 시인은 참으로 조심스러워 한다. 독자에게 시와 종교에 집착하는 인상을 준다는 염려와 본의 아닌 과장과 왜곡·미화로 인해 위선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은밀한 부분, 문학과 종교에 그저 봉헌하고픈 마음은 차라리 뜨거운 욕망임을 어쩔 수 없는 것을. 실제로 그녀는 신앙의 ‘그분’을 향한 절실한 사랑에 취했음을 어렵사리 고백한다. 날아라, 날아라. 속속 깊이 저 눈물의 진저리 위에. …아, 지나온 사랑이여.
‘부끄럽지만 저는 문학이 봉헌이 돼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이어서 김 시인은 제자들에 대해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현재 시의 길에 동행하는 동료 및 몇몇 제자들 이름을 하나씩 자랑스레 꼽으며, 그들 또한 당신의 영원한 동반자라고. 이전 어떤 강의 시간에는 학생들에게 흑판에 노래 제목을 쓰게 하고 합창하던 추억이 새롭단다. 어떤 날은 실연한 여대생 상담도 받았다. 기실 실연도 하나의 능력이며 칭찬할 일로 여겨, 피상담자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사랑 흔적이 묻은 이의 마음이 어찌 소중하지 않겠느냐…. 그러다가 제대로 된 사랑 하나 받지 못한 채 젊어 요절한 작가 김유정의 애틋한 이야기로 이어간다. 하모니카를 잘 불었다는 그의 연애 편지는 한 자 한 자를 무려 5분 걸려 썼다고. 한 통을 쓰는데 일주일이 걸렸다는, 실로 믿기 어려운 지독한 순정파 유경의 연인은 녹주라는 소리꾼이었다. 요즈음 우리들의 연애는 어떤 실상일까. 대체 연애편지가 존재하고는 있는가.
한참을 망설이다가 10년 전에 작고한 부군 김세중 선생을 화제로 삼았다. (그녀는 형식적인 행위를 참 싫어했다. 함구하다가 겨우 밝힌 남편 이야기.) 당시 1원짜리까지 받은 1억여원의 퇴직금으로 기념사업회가 결성되어 매년 유망한 청년 조각가들에게 시상해오고 있다. 마음에 사무치는 것은 그녀가 기념관 개관식 날 초대되어 식장으로 걸어갈 때, 불이 하나씩 켜지던 데서 오는 저민 아픔과 형언 못할 절실성이었다.
‘그의 운구가 마지막 마무리로 한창이던 미술관 건립 현장을 돌아 최후의 작별을 고할 때, 도열하는 공사장 일꾼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깊이 머리를 숙이고 있던 정경이 떠오른다. 모두들 하나의 제복처럼 오리깃털로 만든 점퍼를 약속이나 한 듯이 입고 있었다. 그것은 생전의 (김세중) 관장이, 일하는 데 춥다고 사비를 털어 나누어 준 선물이었다’16)는 표현이 가슴에 머문다.
남편이자 가장인 ‘그’가 가고 나서, 부재를 실감하며 비로소 존재의 공백을 깨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녀는 ‘왜 그분에게 내가 좀더 넉넉한 마음이 되지 못했을까’를 자책하면서 ‘그는 시인의 남편으로서 보다 나은 위로와 평안, 기쁨 등을 받지 못한 사람이었다’며 마음 저며 하고 있다. 그리고 ‘아내로서의 일부 기자·문인·교사들에게 문제는 없는지 모르겠다’며 살픗 웃는 김 시인.
나는 기증자의 서명이 없는 ‘金世中 도록圖錄’을 펼친다. 부인 김남조의 귀한 선물이다. 사진 속, 흙을 만지는 김 선생의 눈에서 무서운 집념이 빛을 세웠다. 얼굴 곳곳에 날카로운 고집이 서려 있다. 썩 괜찮은 <토루소>('57)를 비롯하여 제2한강교의 <UN탑>, <은혜의 성모상>('83), 이태리 밀라노 박물관의 <마돈나>('63) 등, 수많은 작품들. 발문을 쓴 평론가 유준상은 김세중의 조각을 ‘혼재 속에서 보편적인 의의를 갖는 패턴을 발견한다’고 진단한다. 젊은 날 로댕에 심취하기도 했던 김세중은 말한다. ‘예술은 하나의 거목에서 무한한 내면성을 찾’는다고.17) 내 가슴엔 푸른 한강을 낀 절두산 순교 성당의 청동 <십자가>상('66)이 예수 고난의 얼굴 그대로 새겨 있다.
김 시인은 잘 알려지지 않은 한 출판사를 고집하여 시집을 출간해오고 있다. 증보판 전작집도 냈다. 속사정이 거의 없는, 아마도 그녀의 따뜻한 마음 베풂일 것이다. 슬쩍, 내 가슴으로 홀연히 밀물쳐오는 단단한 내성耐性. 문득 ‘사람의 전원은 그 자신의 피땀으로 일구는 것이며 자기 안의 유산을 그 자신이 상속받음과 같다. 말하자면 자력의 충전이다. 때문에 어느 때 불이 꺼지면 또 다시 작은 부싯돌을 들고 광야에 나가 불을 일구어야 한다. 여러 천만 번이라도 돌을 맞아야 한다’18)는 시인의 글귀가 내 마음의 잔풀을 거듭 쓰다듬는다.
김남조 시인께
그 날, 많은 얘길 나누고 댁을 나오면서 한참동안 김 시인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불현듯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연상했지요. 젊은 시인 카푸스의 편지를 받고 쓰게 된 많은 편지는, 오늘날까지 깊이 읽혀지지요.
고전적 감각에 매여 있지만, 릴케의 훌륭함은 첫번째 편지가 주는 감동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인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시를 쓰는 진정한 내면의 동기를 모색해보라…. ‘만일 시를 쓰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지 철저히 되묻는 시인이 되라’는 릴케의 말이 아직은 영혼의 울림으로 다가듭니다. 그 날 김 시인의 말씀을 상기하는 동안 고요가 깔린 짙은 어둠 속에서 숱한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실상 ‘끊임없는 내면의 응시’란 우리들에게 얼마나 아픈 필연의 과정인가요.
시 한 편 발표에 몰두하고, 결과에 집착하고 활자화한 환상에 사로잡히던 추한 어리석음…. 게다가 좋은 시마저 쓸데없이 폄하하던 오만방자함, 타자에 대한 여러 자잘한 컴플렉스로 공연히 진실을 왜곡하던 일들을 반성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일부 몰개성한 ‘막가파 시인’들과 해외파 비평가들의 수입이론의 폐해를 진심으로 심각히 고려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우선 그들께는 송구하게도 우리 고전을 깊이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싶군요. 우리 고전(문학·철학)을 통해 자신의 창작 및 비평 작업을 꼭 돌이켜 보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김 시인님. 당신의 맑음·고요·겸손함과, 유무형물有無形物의 인성화·성물화聖物化 과정에 관심이 모아지던 중, 이미 언급한 릴케의 마음눈[心眼]과 통한다고 인식되더군요. 이러한 ‘자기 내면 세계의 조용한 응시’가 시의 바른 정신주의요, 궁극적인 지향점일 것입니다. 요즘은 수식어에 의존하지 않는 간결한 시어를 모색하고 계시다구요. 간결, 단아, 함축미를 추구하는 시를.
돌아오는 길은 참 따스했습니다. 5시간 여의에 오랜 만남, 지금 훈훈한 말씀의 향을 전하는 마음이 기쁩니다. 김 시인님, 정월입니다. 올해도 건강하세요.
'97년 정월에, 김 강 태.
(1997년 1월호 게재)
1) 막스 삐까르, 조두환 역, 《사람의 얼굴》, 책세상, 1994. 275쪽.
2) 이석주 그린 ‘김남조 시인의 초상’은 《문학사상》('96. 10월호) 표지화.
3) 김남조, <나의 이력서>, 《예술가의 삶》, 혜화당, 1993. 48∼54쪽.
4) __, <시로 읊은 내 세월>, 《바람에게 주는 말》, 主友, 1982, 165쪽.
5)·6)·7) 《예술가의 삶》 참조.
8) 김화영, 《공간에 관한 노트》, 나남, 1987. 213쪽. 그의 논문 제목인 <카뮈에 있어서의 물과 빛의 이미지> 인용. 그는 ‘내게 (있어서) 空間이란 喪失과 그리움의 대상’이라고 했다.
9) 김남조, <자연과 인간, 그 치유기를 불러오는 노래를>, 《문학사상》('96. 10월호) 202∼203쪽.
10) 임우기, 《그늘에 대하여》, 도서출판 강, 1996. 自序.
11) 베르톨트 브레히트, 서경하 편역, 《즐거운 비판》, 솔, 1966. 82쪽.
12)·13) 《예술가의 삶》 참조.
14) 《문학사상》 참조.
15) 역사 지리학자 들리생의 박사 학위 논문으로, 건축가 김수근 연구인 <서울, 김수근 그리고 그룹 공간─민족의 문화적 정체성과 풍경(1960∼1990)>이 있다. 《문화일보》 '96. 12. 14.자(토) 참조.
16) 기념사업회 편저, 《金世中》, 서문당, 1996. 27쪽.
17) 유준상, <김세중론>, 21쪽.
18) 김남조, 《예술가의 삶》, 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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