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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심도개요 경남거제시 일운면 지심도(只心島) 전체면적 : 약10만평 해안선길이 : 1.5㎞ 폭이 500m에 불과 지심도는 15가구에 30명 정도가 사는 작은 섬 ――― 푸른 바다가 품은 붉은 꽃의 섬 거제 '지심도'
지심도를 촬영하면서 선착장을 빼놓을 수는 없다. 지심도의 명물인 동백 터널이 있는 곳이고, 지그재그로 생긴 언덕길이 섬의 매력을 듬뿍 담고 있어 더욱 그렇다. 드라마에서는 관우와 채원이 바닷가에서 놀다가 배를 놓쳐 가파른 언덕길을 뛰어 내려오는 장면이 두 번 촬영되었다. 첫날 배를 놓치는 장면과 두번째 날 배를 타기 위해 달려가는 장면이다. 지심도 순환 산책로가 시작된다.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작은 길이지만 바다와 해송, 그리고 동백이 어우러진 사이사이로 대숲과 포진지와 전망대, 방향 표시석 등 일본군이 주둔했던 흔적들이 남아 있어 볼거리도 제공한다. 그러나 지심도에서 즐기기 가장 좋은 것은 낙엽이 쌓여 푹신한 동백숲 오솔길을 따라 걷는 섬 트레킹. 햇빛이 숨는 사이사이로 바다가 보이는 솔잎을 일렁이며 바람이 부어온다.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만들어 주는 동백 터널은 ‘다만 마음을 다할뿐’이라는 섬 ‘지심도(只心島)’가 숨겨놓은 보물이다. 반대편 해안은 기암괴석들로 이루어진 바위해안이다. 섬 양쪽 끝을 부르는 말은 막긑과 새끝. 포구 오른쪽이 막끝, 헬기장에서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는 곳이 새끝이다. 막끝과 새끝에서 보는 바다와 지심도의 풍경이 아름답다. 동백나무와 대나무, 각종 자생종 나무들이 이곳에서 자라며, 철따라 야생화가 피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다. 대숲 아래 있는 몽돌해수욕장이 그곳. 작지만 물이 맑고 시원해 좋다. 물이 많이 밀려들어 올때는 해안이 너무 작아 적당치 않지만 물이 빠지는 한낮에는 긴 몽돌 해변이 생겨 해수욕을 할만하다.
= 진분홍 동백꽃 뚝뚝 떨어지는 그 섬.... 지심도 =
▲동백숲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진주처럼 반짝이는 배경을 두고 진분홍 동백이 지심도를 밝히고 있다 거제 대금산에 올라 그 넘의 환장할 진달래와 질펀하게 노닥거렸건만 산행시간은 고작 2시간 안쪽이다.
▲장승포항을 뒤로 하고 배는 물살을 가른다. 지심도 가는 배를 타는 곳은 초행이면 찾아가기가 쉽지않다.
▲지심도 선착장 장승포항을 출발한 배는 불과 15분 만에 지심도에 도착했다. 선착장을 뒤로 하고 지심도 오름길 들머리로 민박집 위치도가 먼저 반긴다. 지심도는 조선시대 15가구가 이주하면서 유인도가 되었고, 한일 합방 때는 주민들이 강제이주 된 섬으로
▲지심도 산책로로 접어들자 이내 동백섬이란 타이틀에 걸맞게 동백을 만날수 있다. 동백꽃이 많이 핀 섬은 거제도 학동과 국도, 여수 오동도, 완도 청해진과 주도 등을 꼽을 수 있다.
▲산책로를 따라 올라서면 아름드리 고목의 동백숲길이 이어진다. 살랑거리는 봄바람타고 남해의 훈풍이 분다. 그 숲에 들면 이름모를 산새의 지저귐이 귀를 씻어준다.
▲못다피고 쓰러진 저 동백꽃길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지심도의 동백꽃은 12월초부터 피기 시작하여 봄기운이 무르익는 4월말까지 생명을 이어간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붉은 등을 달아 놓은듯 ▲푸른 동백숲길에 적단풍 한그루가 동백꽃 만큼이나 붉은 빛을 발산하고 있다.
▲옛 분교가 있었던 운동장 일반 주택보다 작은 허름한 창고같은 옛 분교장(장승포 초등교 지심도 분교) 운동장엔 자잘한 아이들의 웃음대신
▲울창한 동백숲길은 한 낮에도 어둑하다. 분교를 지나 해양수산연구소 앞에서 동박새가 안내하는 <포진지> 가는길로 접어든다.
▲일본군의 주둔 흔적이 남아있는 포진지
▲벌써 딸기꽃도 피어나고
▲지심도 활주로 동백터널 가는길로 넓은 초원처럼 펼쳐지는 활주로를 지나친다. 지심도에서는 가장 넓게 펼쳐지는 초원지대다.
▲여유... 술길을 빠져나와 바다가 보이자 이곳이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이었음을 세삼스럽게 알아차린다.
▲지심도 추억남기기
▲동백터널 어두운 숲그늘을 파고 든 햇살아래 갓 떨어진 동백& 여행객의 발길에 밟힌 동백
▲섬천남성 ▲해안선전망대 - 빈 그네에 앉아 한참을 노닥거린다. 지심도 해안도로를 한바퀴 도는 동안 이렇게 쉼터가 설치된 곳은 활주로와 이곳 해안선전망대 뿐이다.
▲전망대에서 본 지심도 해안선
▲지심도 산책로가 끝나는 망루 지심도 섬 양쪽 끝을 막끝과 새끝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포구 오른쪽이 막끝,
▲새끝에서 돌아본 해안선과 송림 사이의 전망대
▲그대 발길 돌리는 곳...새끝
▲길이 끝나는 곳
▲섬을 한바퀴 돌아 나오는 길가엔 굵은 대나무 군락지를 만난다. 지심도엔 동백나무만 자라는게 아니다. 동백꽃 터널을 뚫고 가다보면 후박나무와 해송, 대숲이 어우러져 있고,
▲다시 동백나무 숲길로 들어서자 채 활짝 피어보지도 못하고 성성한 주검을 맞은 꽃들이 발 아래 가득이다. 동백꽃은 매화나 벚꽃처럼 꽃잎 하나 하나씩 낙화하는 것이 아니라 송이 채로 떨어져 애처롭기도 하다.
▲피싱하우스란 이름을 걸고 있는 민박집에 들렀다. 지심도는 섬 전체가 야트막한 산이다. 온통 비탈진 땅이라 평지가 귀한 곳이다.
▲피싱하우스 쥔장님의 자작시
▲뭍을 향한 그리움인가.. 하늘도 바다도 온통 뿌옇건만 동백만 홀로이 붉은 등을 달고 푸르르다.
▲동백하우스 - 지심도의 유일한 현대식 팬션이다.
▲다시 바다가 보이는 선착장으로 내려선다....다시 섬에서 섬(거제)으로의 회귀를 준비한다. 지심도는 손바닥만큼이나 작은 진짜 섬이다. 천천히 볼 것 다 보면서 산책로 수준의 길을 따라 한바퀴 도는데는
걷기 시작한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선착장부근....
마끝해안 절벽....
지심도 전경.
현재 섬은 울창한 동백숲과 낚시꾼으로 번잡하며, 일상에서 탈출하여 한가로이 여행할 수 있는 곳으로 탈바꿈하였고, 영화나 방송 소재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다름없이 현재도 섬 소유자는 국방부로 되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70여년 전, 지심도는 '진해만요새사령부(鎭海灣要塞司令部)' 소유의 해군군사작전지역이자 일본의 태평양전쟁의 최후 방어진지로 활용되었다. 섬 전체에는 방어진지와 포대, 그에 따른 여러 부속건물들이 건설되었다. 이 과정에서 예전부터 살아오던 주민들은 강제 이주를 당해야 했다. 당시 지심도가 군사기지로 변천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숨겨진 포대설치 배경 등을 일본비밀문서를 통하여 재조명하고자 한다. 1904년 송진포방비대 설치 이후 거제 전역은 해군작전 지역으로 선포되었으며, 대륙침략의 교두보로 요새화되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거제도의 지리적 조건과 육지와 연결되는 중요한 수송로로서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또한 1912년 진해만요새사령부(鎭海灣要塞司令部) 설치에 따라 거제 전역이 '군용지'로 지정되면서 주요 섬 지역도 군사기지로 바뀌었다. 이때 지심도는 주요한 군사요새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때 지심도와 함께 중요한 군사요새는 일본 쓰시마(對馬島)였다. 두 섬은 위치상으로 가까운 곳이었다. 양 섬은 대륙침략의 군사요새로서 중요시되었다.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일본은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로 확장하는 제국주의적 침략 야욕을 본격화하였다. 1931년 9월 18일에 일어난 만주사변(滿洲事變)도 일본이 중국의 동북지방을 군사적으로 제패하고 이 지역을 '만주국'이라 하여 그들의 식민지로 만든 것이니, 당연히 '전쟁'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나, 일본은 이를 '사변'이라 하였고 당시 선전포고도 하지 않았다. 이 전쟁을 계기로 전시체제(戰時體制)로 전환되면서 일본은 조선 여러 곳에 군사요새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본격적인 전쟁에 나선 일본은 한반도 전역에 포대나 진지를 구축하면서 일전(一戰)에 대비하기 시작하였다. 1936년 중일전쟁 1년 전 일본 육군대신과 진해만요새사령부 등이 나서서 '지심도 포대설치'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이 요구는 거제 뿐만 아니라 쓰시마 등지에도 함께 적용되었다. 1936년 4월 23일 육군축성부 본부는 지심대 일대의 국방용 토지를 매입하고 주민 소개령을 내리게 된다. 목적은 지심도 국방시설 및 요새 확장 즉 실제 전쟁을 위한 군사시설 확충이었다. 지심도 주민 모두 일운면 지세포와 장승포 쪽으로 이주되었고 지심도에 주민 접근을 제한하였다. 그럼 주민들의 소개 이후 지심도에 어떤 군사시설들이 건설되었는지 살펴보자. 주요 시설물들은 포대, 군막사, 각종 방어물 등이었다.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에 소장된 자료들을 통해 지심도의 군사시설물들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일본 육군성 참모본부에서 발행한『육군사기밀대일기(陸軍事機密大日記)』(1936. 4. 20)에는 "지심도포대건설요영서 중 일부개정의 건(只心島砲臺設置要領書中一部改訂件)'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는 "진해만요새 지심도 각 포대 축설요령 중 관측소 항목에서 ‘89식 砲臺鏡’를 ‘96식 측원기’로 바꾼다(鎭海灣要塞只心島各砲臺ノ築設要領中觀測所ノ項 '八九式砲臺鏡' 九六式測遠機ニ改ム)" 고 하고 있다. 지심도에는 포대를 설치하기 전부터 관측소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936년 5월 7일 지심도에 있는 병기가 새롭게 교체되었다. 육군기밀 제37호에 따르면, 96식 측원기(測遠機), 지심도 포대용 38식 기관총. 45식15밀리 포대, 포탑45구경 30밀리 1기를 설치하였다. 또한 1936년 5월 18일 지심도에는 방어진지를 구축하기 위한 기지 건설 사업이 진행되었다. 요새기지 건설의 일환으로 지심도는 방어영조물건설(防禦營造物建設) 계획서를 제출하여 육군대신에게 재가를 받게 된다(陸軍事機密大日記, 1936. 6. 1책 2/2). 1936년 6월 4일『밀대일기(密大日記)』(방위성 방위연구소)에 보면 지심도 군사시설 및 헌병분주소 설치를 요구하는 내용을 볼 수 있다. '지심도 방어영조물 신설건 헌병분주소설치방법 건(只心島 防禦營造物新設件 憲兵分駐所設置方法件)'를 보면 일본 조선군참모장 및 육군차관이 지심도 군사시설을 직접 지시했던 내용이 파악된다. 자세한 내용을 보면, 설치 취지문에는 "조선헌병대사령관과 현 군사령관 등이 의견에 따라 직접 본 건을 장래 군에서 군기보호 및 설치 필요에 따라 승인해 주기를 바란다" 라고 적고 있다. 그 결정사항으로는 헌병분주소 설치 예정지로서 당시 통영군 이운면(二運面) 장승포 지심도, 일운면 선창리, 교항리(육지측량부 5만분1 지도 구조라 지역 표시됨) 등 총 3곳을 선정하였다. 최종으로는 지심도로 확정되었다. 별도 메모지에는 '의견서'라 적고 분주소 설치를 위한 필요한 경비를 분야별로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예산 규모는 경상비 6백원, 임시 2백원으로 책정하고 3개 과로 나누고 있다. 또한 주요 인원은 군조(軍曺) 1명, 상등병 2명, 헌병보조 1명 총 4명이고, 본 인원은 대구헌병대 현 편제 중에서 충당하기로 하고 병력의 부족으로 증원하기엔 어렵다고 적고 있다. 또 분주소 개설 희망시는 1936년 6월 중순 이후로 요청하고 있다. 당시 지심도에 헌병분주소가 설치된 이유는 지심도 공사 현장은 해상과 떨어져 있는 지점으로서 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에 요새지대 경비상 헌병의 순찰이 드물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지심도 주민 및 거제도 주민들이 일반적으로 요새지대에 대한 이해, 국방관념이 결핍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특히 외국인 기독교 교회의 기반이 공고했기 때문에 이들 외국인의 시찰, 외국첩보망에 이용될 우려가 있는 주민에 대한 경비가 매우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같은 해, 6월 13일 ‘진해만 요새기지 지심도 지구 방어영조물 신축 공사실행의 건’에서는 일본 육군축성부 본부장과 육군대신 데라우치 등이 사업을 실행할 수 있도록 허가함과 동시에, "진해만요새 지심도지구방어영조물신축공사설계획도서(鎭海灣要塞 只心島地區防禦營造物新築工事設計劃圖書)"를 제출하였다. 이 계획으로 군사 방어기지를 설치하는 공사를 진행하면서 각종 부속건물도 함께 건설하게 되었다. 주로 지심도의 군사시설 부속건물들은 군사 병사, 전등소(1936. 10. 27 신축 공사 착공), 방공호 등이다. 공사는 1936년 7월 10일 포대 신축 공사를 시작으로 각종 부속건물 공사도 함께 이루어졌다. 모든 건물과 무기 인수 작업은 1938년 7월 31일부로 완료되었다. 그때 주요 건물과 내역을 보면, 진해만 요새 지심도포대, 지심도 전등소(電燈所), 경계표찰(지심도 지구) 등이다. 현재 3곳이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표찰 즉 표지석은 지심도 옛 발전소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그 표지석에는 "진해만요새사령부기지(鎭海灣要塞司令部基地)" 라고 표시되어 있다. 1936년 12월 2일의 문서에는 1936년 11월 30일 지심도포대 설치를 완료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 시기에는 쓰시마 2곳, 후쿠오까(福岡) 2곳도 함께 설치되었다. 또한 1937년 9월 30일 지심도에는 45식 15밀리 캐논砲(改造固定式)를 설치하였다. 이 포는 육군병기본부와 육군축성본부로부터 직접 수령했다고 한다. 또한 지심도 포대에서 이용하는 전령선(傳令船)을 1,600원을 들여 건조하여 물건 운반 및 여객선으로 이용하였다. 지심도의 방어시설은 1938년 1월 27일 준공되었고 1,465,000원을 들여 포대, 전등소, 군 막사, 초소, 경계표찰 등을 건설하였다. 1938년 4월 13일 육군축성본부는 지심도 방어시설 준공 보고서를 작성하여 보고하였다. 이 보고서에는 공사명과 준공 일자, 실경비 금액을 상세히 적고 있다. 지심도에 있는 구 일본군 포대 |
일복이 많으면 더할나위 없죠!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ㅎㅎ 다음 기회에 봅시다!
지금 참석 댓글이 가능할지... Σ( ̄□ ̄;)
당근 됩니다.누님~~
입금완료요
참석합니다.
게스트1명 참석해요~
참석 못할것 같습니다ㅠㅠ 꼭 가고싶었는데 일이 생겨버렸어요. 조정이 안되네요. 담 기회에 참석토록 해야겠습니다 아쉽네요~~~
지아지아님이 직접 만든 머핀과 약밥 50개 찬조합니다. ^^
찬조 감사합니다~~^^
3월 작업 일정 관계로 참석 취소 합니다...
바다님 대신 산소리 참석합니다
참석명단에 없네요 취소합니다
실수로 빠진것같은데 입금하시면 참석가능하십니다~~^^
집안행사로 꼬리내립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신청가능할까요? 가능하다면 오늘중 입금할생각입니다
가능합니다...입금자 우선입니다
게스트1명 참석가능할까요?
게스트 1명꺼 일단 입금했어요~ 안되면 환불해주세요~ ㅋ
참석 하시면 됩니다 ㅎ
오케이~~~
게스트1명 참석할께요~
현지참석 × 2.
아 가고싶은데 8시에 도착할 방법이 없네 ㅎㅎ 첫차타도 7시40분에 부산역도착하니 ㅎ ㅎ 지역에 한계인가
출방시간이 07시 30분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참고하시기바랍니다
개인사정으로 취소합니다. 지송합니다 ㅠㅠ
참석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우와~ 감솨해용^^~~
미리 저질렸다.내일 내려간다
욕지도 밀감은 현지사정때문에 어렵게 되었네요.미안해요,..
거가대교입구는 어딜 말하는지요?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 맞은편에
기다리면 되나요?
가덕도입구 버스정류소앞에 기다리시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