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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비화] 국보 제294호, 청화백자양각진사철채난국초충문병
글 : 제이풍수사
글 게시일 : 2023. 2. 14.
청화백자양각철채난국초충문병
풀잎은 청화 안료, 들국화는 진사와 철채로 그린 매우 희귀한 백자 병이다. 일제 때 모리 고이치가 소장하던 것으로 1936년 경매장에서 전형필이 당시 기와집 7채 값인 14,580원에 낙찰 받았다. 민족문화재수호의 귀감으로 오랫동안 골동계에 이야기되고 있다.
청화백자양각철채난국초충문병(靑華白磁陽刻鐵彩蘭菊草蟲文甁, 국보 제294호), 높이 42.3센티미터의 큰 키에 균형 잡힌 아름다운 곡선이 동체를 휘감고, 희고 보드라운 살결에 마치 수를 놓듯, 들국화 몇 가지가 푸른 풀잎과 어우러진 백자 병이다. 위쪽에는 꽃을 찾아 나비들이 날아드는데 문양은 양각으로 처리했다. 또 풀잎은 청화 안료로 그리고, 들국화는 진사와 철채로 그렸다. 그것은 매우 드문 예로 특히 삼채(三彩)를 구사해 문양을 낸 백자는 더욱 드물었다.
1.전차와 소총의 싸움
모리 고이치(森悟 一), 그는 일제 시대 때 저축 은행(제일은행의 전신)의 은행장으로 재직하며, 손꼽히는 고미술품 수장가였다. 눈에 번쩍 뜨일 도자기를 비롯해 2백여 점의 고미술품을 소장했으나 한 번도 팔거나 남에게 보여주지 않아 그 양과 질은 늘 골동계의 관심거리였다. 특히 조선백자에 대한 감식안이 높아 모두 거물급이란 소문이 나돌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따로 유언 없이 죽자, 소장품 처리를 두고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하였다.
경성미술구락부 사장인 사사키(佐佐木)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대단한 경매 전시회를 꿈꾸며 유족을 찾아갔다.
“경성에 있는 골동상들과 함께 고인에 대한 추모 형식으로 경매 전시회를 열까 합니다. 참가자는 저 이외에도 온고당 주인 심보 기조(新保喜三), 명동의 아마이케(天池), 스즈키상점(鈴木商店) 등 실로 막강한 분들입니다. 그러나 소장하고 계신 백자만으로는 구색이 맞지 않으니, 다수의 청자와 금속 그리고 서화도 포함시킬 생각입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전시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모리의 유족들은 사사키의 의견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소장했던 모든 고미술품을 내놓았다. 모리의 소장품이 경매에 나온다는 소문이 일자, 골동계가 발칵 뒤집혔다. 전국에 산재한 기라성 같은 소장가들이 모두 군침을 삼키며 경매 날짜만을 기다렸다.
명동의 일식 집, 기쿠스이(菊水).
귀공자 타입에 아직 홍안인 전형필과 백발에 길쭉한 얼굴의 심보가 얼굴을 맞댄 채 뭔가를 의논하고 있었다. 연기가 자욱한 방, 전형필은 연실 줄담배를 피워 대며 계속해서 사진을 바꿔 가며 골랐다. 이윽고 석 장의 사진이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이고, 전형필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경매에 참가해 입수할 물건들이다. 심보 역시 전형필의 안목과 결정에 대단한 신뢰를 보냈다. 꼭 소장하길 바라는 물건들만 쏙 빼냈던 것이다.
“역시 안목이 높으시군요. 저도 그 물건을 백자로는 다시없는 명품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매에 참관할 사람이 누구라고 하나요?”
어렵게 열린 입인 만큼 경매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결심의 소리였다. 전형필은 가슴에는 불같은 정열을 품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는 큰그릇이다. 하지만 골동계에 투신한 연륜이 짧으니, 상대방을 알아야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다.
“전 선생님. 지금 조선백자 대수장가는 한국인이 아닙니다. 일본인입니다. 자본으로 따져도 상대가 되질 않습니다. 먼저 원산에 살고 있는 미요시(三由) 노인으로 어장을 경영하고 운단(雲丹)을 파는 거부입니다. 조선백자 최고의 수장가입니다. 또 있습니다. 성환농장(成歡農場) 주인 아카보시(赤星)입니다. 이외에 인천에서 정미소로 거부가 된 스즈시게(鈴茂), 아마이케(天池) 노인, 저축 은행의 전무 시라이시 강키치(白石寬吉) 등 모두 몇만 원은 즉시 조달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심보는 입이 마르는지 청주를 한모금 마셨다. 전형필의 눈가가 가늘게 떨렸다.
“오사카의 무라카미(村上)입니다. 경매에 참가하기 위해 일본에서 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큰 전시회 때마다 나타나 엉뚱한 값을 불러 제키는 사람입니다.”
“….”
할 말을 잊었다. 너무나 막강한 경쟁자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많았다. 전형필은 스스로 가진 재산을 가늠해 보았다. 마치 소총을 들고 대 전차 부대를 막아야 하는 참담함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러나 지쳐 쓰러질 때까지 싸울 것을 다짐하며 일어섰다.
“심보 상, 좀더 새로운 정보를 알아봐 주세요. 아시다시피 나도 이제는 자금이 만만치 않아요. 하지만 눈 딱 감고 해봅시다. 꼭 내가 살 수 있도록 해주시오.”
간곡했다. 심보 또한 비장한 각오로 가슴을 불태웠다.
2.일만사천오백팔십 원
전시회 날짜가 다가오자, 일반인의 관람에 앞서 출품작을 볼 수 있었다. 사진이 아닌 실물을 보자, 전형필은 숨이 막히는 전율에 휩싸여 더욱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 때, 청천벼락 같은 정보가 들어왔다.
“큰일 났습니다. 정말 어렵게 되었습니다.”
심보는 전형필을 만나자 마자, 창백한 얼굴로 낙담부터 해댔다. 전형필의 양미간이 덩달아 좁혀졌다.
“선생님, 닛다(新田)와 아키야마(秋山)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
“서울과 인천에서 증권미두업(證券米斗業)을 하는 거부로 백자를 미치도록 좋아합니다. 하루에 몇 만원 씩 땄다 잃었다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승부사들입니다. 실로 낭패입니다.”
“….”
“시멘트 사장 아사노(淺野)도 팔을 걷어붙이고 벼르고 있다 합니다.”
“….”
아무리 뜻이 크고, 정보력이 뛰어나다 해도 당대의 골동계를 주름잡던 일본인 거상과 대수집가들은 너무나 많았다. 이 병을 확보하려면 열 명이 넘는 대 수장가를 물리쳐야 한다는 정보였다. 값이 천정부지로 뛸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 외에 어떤 복병까지 있을지 모를 일이다.
1936년 11월, 남산이 뚜렷이 보이는 맑은 날이다.
한산하기만 하던 퇴계로에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거의가 나이 깨나 먹은 사람들로 서울은 물론 각 지방에서 올라온 골동품 수집가와 거상들이었다. 이 날은 경성미술구락부회관에서 골동품 경매가 있는 날이다. 한복 차림에 중절모를 쓴 신사, 양복 차림에 여행 가방을 든 사람, 하오리 하카마로 정장한 일본인들도 보였다.
구락부가 보이는 신도(新都)호텔에서 이른 점심을 먹은 전형필과 심보는 경매장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이미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뤄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그들은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창가로 나란히 앉았다. 심보를 쳐다보며 인사를 하는 일본인들도 있었다. 그때다. 심보의 입에서 절망 어린 탄성이 배어나오며, 하마터면 뒤로 나자빠질 뻔하였다.
“앗!”
구락부 사장, 사사키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오는 오십이 약간 넘은 양복 입은 신사. 그는 고미술품을 취급하는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던 교토(京都) 산중상회(山中商會) 주인, 야마나카(山中)였다. 본점은 교토에 둔 채 한국을 비롯해 뉴욕, 파리, 런던, 북경에 지점을 개설하고,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는 세계적인 골동 거상이다. 그의 출현은 내로라하는 골동상들을 완전히 기죽게 만들었다. 그는 바로 이 백자병을 입수하기 위해 머나먼 현해탄을 건너온 것이다. 명품 한 점은 세계적 골동상까지 이 나라로 불러들이는 실로 마력과도 같은 힘을 가진다. 드디어 경매가 시작되었다. 경매봉을 든 거간꾼은 고히라(小平)였다.
“잘 부탁합니다.”
손님이 만원을 이루자, 그도 대단히 흥분했다. 경매를 시작할 때는 으레 ‘시작하는 가격은 얼마’라는 뜻의 ‘혹구 얼마’라는 말을 하게 되지만 흥분한 그는 앞뒤도 가리지 못했다. 한국의 수장가와 기라성 같은 일본인 수장가가 모두 모여 경매장은 마치 한국 대 일본의 대결장과도 같았다. 처음에는 좀 격이 떨어지는 백자 항아리부터 시작했다.
당시 백자 값으로 2천 원 이상 되는 물건은 없었다. 지방 군수의 월급이 70원(圓)이고, 20칸 짜리 기와집이 2천 원 정도이다. 너무나 엄청난 거물들이 모여 누구나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책상에 올려지는 물건마다 급하게 낙찰되어 금세 주인이 결정되었다. 매 순간마다 점찍었던 물건이 올라오기만 기다렸다. 값이 헐한 것은 대부분 한국인에게 떨어졌고, 비싼 것은 일본인들이 독차지했다. 일본인끼리의 경쟁도 치열했다. 가장 독종은 무라카미였다. 제각기 값을 부르다가 최고가에 올라 더 이상 없다고 생각될 때면, 마치 매가 토끼를 잡아 채 듯 낙찰가를 불러 제켰다. 그러자 고히라도 마지막 경락봉을 칠 때는 어느 새 그의 눈치를 살폈다. 낌새가 없으면 안심하고 두드렸다.
경매가 중간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잠시 휴식이 취해지면서 간단한 안주와 정종이 나왔다. 이것은 경매의 클라이맥스를 예고하는 만찬이다. 술이 얼큰해진 수집가가 더욱 힘을 내 부르라는 뜻이다. 드디어 때깔이 눈덩이같이 고운데다 난, 국화, 풀, 벌레가 진사와 철채로 양각되어 그려진 병이 올라왔다. 그러자 경매장은 삽시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꽃을 찾아 나비가 나니 국화 향기가 진동한다. 서릿발 속에서도 절개를 굳히지 않는 오상고절(傲霜孤節)의 암향(暗香)이다. 조화(造花)에는 벌과 나비가 날아오지 않는다. 가냘픈 여인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기교를 초월한 생명의 공학이다. 실로 도자기 사상 유래가 없는 명품 중에 명품이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이 경매장을 휘감았다. 물건은 쳐다보지도 않고 거물들 중에서 누가 먼저 가격을 부르나 그게 관심거리였다.
“오백 원이요. 천 원이요. 이천 원이요.”
이쪽저쪽에서 외쳐 댔다. 눈 깜박할 사이에 삼천 원이 되었다. 순식간에 백자 최고의 값으로 매겨진 셈이다. 잠시 숨을 돌렸다. 이제 마음이 약하거나, 꼭 살 마음이 없는 사람은 지켜만 보았다.
“오천 원이요.”
모든 시선이 쏠렸다. 무라카미였다. 그다운 일갈이다. 목소리가 줄어드는 것을 놓치지 않고 일본도처럼 예리한 목소리로 불러 세운 것이다. 금세 기와집 한 채값이 올라갔다.
“육천 원이요. 칠천 원이요.”
한 단계 위의 거물들이 침을 삼켜 대며 불렀다. 모두가 골동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위인들이다. 사회자가 재창과 함께 경락봉을 치켜들었다.
“팔천 원이요.”
‘와’하는 소리가 경매장을 울려 퍼지며 모든 시선이 불화살처럼 날아와 박혔다. 심보였다. 옆에 있는 전형필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마치 밀랍 인형처럼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은 바위 위에서 깊은 명상에 든 노승의 그것이었다.
“팔천 원입니다. 더 없습니까? 그럼.”
경락봉이 두 번째 값을 소리쳐 부르는 순간, 잠잠하기만 했던 한 쪽 구석에서 크지 않은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 왔다. 고히라가 그 쪽을 바라보며 외쳤다.
“예. 얼마요?”
“구천 원이요.”
‘와’ 하는 탄성과 함께 모두 시선이 그 쪽으로 몰려갔다.
악!
야마나카였다. 경매장이 웅성거리며 새로운 맹장의 출현에 모두 손에 땀을 쥐고 숨을 죽였다. 이제 전형필 대 야마나카의 대결로 좁혀졌다. 오십이 넘은 세계 제일의 골동상과 이제 인생의 꽃봉우리를 맺는 신진 수집가의 창과 방패의 싸움이다. 심보의 이마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전형필의 손에도 땀이 고였다.
"일만 원이요."
장내가 떠나갈 듯 심보가 소리를 질렀다. 마지막 힘을 다해 내뱉는 절박한 아우성이었다. 그러나
“일만 오백 원이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야마나카가 나직하게 불렀다. 한쪽은 기진맥진하고, 한쪽은 이제 힘이 난 것처럼 보였다. 경매가는 오백 원 단위로 시소게임 하듯 숨 가쁘게 올라갔다. 칼과 창이 부딪혀 불꽃이 튀기고 바람을 가르는 파괴 음이 고막을 찢었다.
“일만 사천오백 원이요.”
심보가 젖 먹던 힘까지 모아 소리를 내 질렀다. 조용. 모두가 기가 질려 말을 잊었다. 사상 유래가 없는 거금이다. 야마나카도 기절을 한 듯 말이 없었다. 본인도 상상도 못한 금액까지 뛰어 오른 것이었다.
“일만 사천오백십 원”
지친 야마나카의 목소리가 입안으로 잦아들었다. 십 원 단위로 경매 값이 좁혀 들자, 심보는 상대방을 읽었다.
“일만 사천오백팔십 원.”
개미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 고히라가 몇 번 소리를 더 질러 댔다. 침묵. 드디어 경락봉이 ‘탕’하고 테이블을 힘껏 내리쳤다.
‘와! 와!’
이 사건은 오랫동안 민족문화재수호의 교훈으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러나 하마터면 북괴군에게 빼앗겨 북쪽으로 옮아갈 뻔했다. 6․25 난리 통에 서울을 점령한 북괴군이 간송미술관을 점령하고 모든 소장품을 포장하도록 총부리를 겨누었다. 위기일발의 순간이다. 그러나 그곳에 근무했던 손재형과 최순우(崔淳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가 꾀를 내였다. 몰래 양주를 준비해 두었다가 술로 북괴군을 녹였다. 취해 누우면 포장을 늦추고, 총부리를 겨누면 조심조심 힘들여 쌌다. 지옥 같은 나날이 계속되다가 드디어 9월 18일에 서울이 수복되자, 북괴군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이 천하의 백자 병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41호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간송미술관에 소장되다, 1996년 11월 국보 제294호로 등급이 조정되었다. 현재 추산가는 최소 1백억 원에서 12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참고: 「간송 문화」한국민족미술연구소 발행)
3.2023년 2월 14(화) 매일경제신문의 기사
국보 또는 보물로 지정된 주요 문화유산 13건의 조사 소회와 뒷이야기를 담은 책자가 발간됐다.
14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국립문화재연구원은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문병 등의 조사 내용을 담은 ‘유물과 마주하다 - 내가 만난 국보·보물’을 최근 발간했다. 책자에는 미술문화재연구실 연구자들이 조사한 내용이 담겼다. 책자에서 흥미로운 내용 중 하나는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이 발견된 사연이다. 사연인즉슨 이렇다. 지난 1920년대 경기도 팔당 인근에 살던 한 할머니가 나물을 캐다가 흰색 병 하나를 발견했다.
할머니는 병을 보고 목이 길어 참기름을 담기에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접 짠 참기름을 병에 담아 상인에게 1원을 받고 판매했다. 병의 가치를 알아본 건 당시 경성(서울)에 살던 한 일본인 골동품상이었다. 부인이 구매한 병이 조선백자임을 알아본 그는 다른 골동품상에게 60원을 받고 이를 팔았다. 이후 여러 수집가를 거친 뒤 이 병은 1936년 경매에서 1만4580원에 낙찰됐다. 기와집 15채를 살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었다. 조선백자 중에서도, 또 참기름병으로서도 역대 최고가다.
거금을 주고 병을 구매한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보화각(오늘날 간송미술관)을 세운 간송 전형필(1906∼1962)이다. 병은 훗날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으로 명명됐고, 지난 1997년 우리나라 국보(제294호)로 지정됐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이 발간한 ‘유물과 마주하다 - 내가 만난 국보·보물’에서는 이같은 일화나 조사 소회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국보나 보물 등을 정기 조사할 때 점검한 각 문화유산의 상태, 보관 상황 등도 담겼다.
또 6·25 전쟁 당시 목숨을 건 피난길에서 조상의 초상화를 챙기느라 고군분투한 후손의 노력, 딸이나 아들 혹은 처가나 외가를 구분하지 않은 재산 상속 이야기 등도 엿볼 수 있다. 각 유물의 세부적인 모습과 조사 장면을 담은 사진도 있어 현장의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책자는 문화유산 조사와 보존·관리에 도움을 준 개인 소장가, 문중, 사찰, 전국 국·공·사립 도서관과 박물관 등에 배포될 예정이다. 또 연구원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에도 공개된다. 연구원 관계자는 “앞으로도 미술·기록 문화유산이 안전하게 전승돼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현장 조사와 심층 연구를 병행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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