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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다해 12월17일 목요일 [(자) 대림 제3주간 목요일]
[수도회] 더불어 사랑으로 써내려가는 행복 족보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창세 49,1-2.8-10
† 복음 마태 1,1-17
◈ 오늘의 묵상
어렸을 때는 마태오 복음 1장에 실린 예수님의 족보를 들으면, 그저
‘예수님께서 가장 훌륭한 집안 출신이구나.’ 하고 생각하였는데, 아주
단순한 생각이었지요.
그러나 이 족보의 핵심은 고귀한 혈통이라는 데에 있지 않고 그 집안에
주어진 하느님의 약속에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의 첫 구절인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은, 이 복음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모든 내용을 요약합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예수님께서
그 약속들을 완성하심을 선언합니다. 마태오는 복음의 시작에서부터,
예수님께서 오랫동안 기다려 온 메시아 희망을 성취하시는 분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약속이 성취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이름이 그 안에
포함되었는지요. 아브라함과 이사악을 거쳐 야곱은, 오늘 제1독서
말씀처럼 유다에게서 왕홀이 떠나지 않으리라고 축복합니다. 그 뒤로도
여러 세대를 거쳐, 타마르와 룻 같은 여인들까지 개입하여 어렵게
이어진 이 족보에서 다윗이 태어나 임금이 됩니다. 여호야킨은 다윗
왕조의 임금이었으나 바빌론으로 유배를 가고, 왕조가 끊어지고도
수많은 세대가 흐릅니다. 다윗 왕조가 무너졌어도 흔들리지 않은
하느님의 약속이 드디어 예수님에게서 성취됩니다.
또한 이 족보에 등장하는 네 명의 여성(타마르,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은 이방인들이었고 이례적인 관계나 결합으로 자녀를 낳아
주었는데, 이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구원 사업을 이루시는 데 협조한
여인들이었습니다. 죄인들도 구세사 안에서 하나의 도구 역할을 한
셈이기에,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줍니다.
이 오랜 기간 동안 기다려 온 이들의 믿음을 생각해 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 믿음에도 다시 힘을 불어넣는 시간과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매일 미사 -
◈ [인천] 은총 속에 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2015년 다해 12월17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제1독서
<왕홀이 유다에게서 떠나지 않으리라.>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49,1-2.8-10
복음
<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7
지금의 어려움과 힘듦에 대해 열심히 기도를 했지만 응답을 받지
못했다면서 왜 주님께서 자신의 기도는 무시하시냐는 투정 섞인 말씀을
하시는 한 형제님을 만났습니다. 자기 주변에는 주님의 은총을 받으신
분들이 너무나 많은데, 자신만을 외면하신다는 것이었지요. 사실 우리의
기도 하나하나에 다 응답해주시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신다면
이야 정말로 좋겠지요. 하지만 은총에 대해 생각해보면 내가 원하는
것을 받았을 때가 은총이 아닙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1996에서는 은총에 대해 이렇게 정의합니다.
“하느님의 자녀, 입양 자녀, 신성과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 받는 사람이
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호의이며 거저 주시는 도움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호의이며 도움이지만 여기에 조건이
하나 붙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이라는 전제 조건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어떤
것입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삶을 살라는
부르심입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호의와 도움이라는
은총을 주신다는 것이지요.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받았을 때가 은총이 아닙니다. 내 자신이 사랑의
삶을 잘 살 수 있도록 주어지는 그 모든 것들이 은총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은총 속에 살고 있는 지를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역사 전체 안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은총이었습니다.
오늘부터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 시기의 두 번째 부분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복음은 그 시작에 맞춰서 마태오 복음의 첫 장인 예수님의
족보를 보여주지요. 솔직히 족보 하면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여기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하면서 그냥 건너뛰고 싶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안에는 역사 안에서 계속되었던 하느님의
은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사의 큰 굴곡들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그
역사는 끊어지지 않고 예수님까지 이어집니다.
국가라는 틀 없이 떠돌이 유목민의 생활을 할 때에도 그리고 왕이 생긴
후 끊임없이 하느님이 아닌 다른 신에 빠지는 일탈의 삶을 살고 있는
가운데에도 하느님의 은총은 계속 되었습니다. 또한 다른 나라의
침공으로 유배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에도 하느님의 은총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제 죄로 물들어 있는 이 세상 모두의 구원을 위해 직접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가장 큰 은총이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 큰 은총은 역사가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과 같이 계속해서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은총 속에 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원하는
것만을 은총이라는 이름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부르심에 잘
응답하도록 무상의 호의와 도움을 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안쪽에만 달려 있다(게오르크 헤겔).
어제 대림특강을 했던 풍무동 성당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할까?
한 10년 전 쯤 되었을 것입니다. 검찰총장 내정자에 대한 청문회에서 한
가지 의혹이 등장했었지요. 부부가 21년간 주민등록상 다른 주소지를
써온, '주민등록상 별거상태'였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부동산 투기
때문이 아닌가?’ 라는 의문을 한 국회의원이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에 대한 해명이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글쎄 이 부부가 결혼할
당시 유명한 무속인이 “외동딸이 출가해서 주소를 옮길 경우 처가에
화가 올 수 있다.”면서 주소 분리를 권고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법조인으로 검찰총장까지 되었던 이 분은 분명히 많이 배웠고 또한
힘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법(주민등록법)을 어기면서까지 무속인의 말을 들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겉으로는 많은 부와 화려한 명예를 가지고 있지만 마음은
약했던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무속인들처럼 ‘이거해라, 저거해라’ 하면서 일일이 간섭하지
않으십니다. 그보다는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해서 어떤 것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래야 다음에 또 다른 어려움이 와도
별 문제없이 이겨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는 않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굳은 마음을 주시는 은총이야말로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것이 아닐까요?
풍무동성당의 멋진 야외 대림환.
◈ [서울] 대림 제3주간 목요일
2015년 다해 12월17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 마태오 1,1-17
지난 토요일에, 제가 도움을 주고 있는 ‘복음화 학교’에서 하루 피정을
하였습니다. 총대리 주교님께서 ‘하느님’에 대한 강의를 해 주셨고,
미사도 함께 해 주셨습니다. 복음화 학교 사람들에게는 기쁨이고,
감사할 일이었습니다. 주교님으로부터 좋은 말씀을 들을 수 있었고,
주교님께서 자리를 함께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서울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게 된다면 그것은 제게는
기쁨이고, 영광이 될 것입니다. 아마 우리 가문의 족보에 그 사실이
기록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서울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게 되시면 그것은 서울대학교에
영광이 될 것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는 교황님의 방문을 기록으로 남겨
놓을 것입니다. 작년에 교황님께서 한국을 방문해 주셨고, 명동
성당에서 미사를 함께 해 주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방명록에 작은
글씨로 이름을 남겨 주셨습니다. 그것은 물론 한국교회와 명동 성당의
기쁨입니다. 그만큼 교황님의 인품과 교황님의 말씀이 크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것이 자신에게는 큰 기쁨이요, 영광이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제가
오히려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 하고, 나는 점점
작아져야 합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겸손했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 한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아드님이 직접 세례를 받으셨으니 세례자 요한의
세례는 품격이 더욱 높아진 것입니다. 회개의 표시로 받았던 세례는
이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세례가 되었습니다. 지난날의 모든 죄를
용서받는 표시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으로부터 계속되는 이스라엘 민족의 긴 족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이는 왕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이방의
여인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어떤 이는 유배를
당해서 죽었습니다. 어떤 이는 신앙심이 깊었습니다. 어떤 이는 커다란
잘못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족보가 품격이 높아진 것은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그 가문에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혈통과 가문으로 맺어지는 가족의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이는 모두 한 형제이고 자매입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의 품격을 높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본당에는 역대 신부님들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제가 있었던
적성 성당과 시흥 5동 성당에도 저의 사진이 걸려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사진들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하느님의 크신
계획을 위해서 주어진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감독이 있습니다. 감독은 배우들의
역할을 정해 줍니다. 어떤 배우는 드러나지는 않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자주 나오곤 합니다. 어떤 배우는 짧게 나오지만 그 역할이
강렬하여 기억에 남습니다. 어떤 배우는 모진 고생을 하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아서 관객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배우들은
악역을 맡아서 영화가 끝났어도 관객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배우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소화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감독의 뜻과 감독의 의지가 무엇인지를 잘 아는 것입니다.
자신의 뜻과 자신의 욕심이 들어간 연기가 아니라, 전체 영화를
빛내주는 그런 연기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한번이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때로 허망하기도 하고, 욕심을 부리고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이 하느님의 크신 계획에 따라서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나에게 주어지는 일상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닙니다. 인생은 ‘이어 달리기’입니다. 비록
지금 부족하다고 해도 다음 세대가 더욱 잘 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의 성공과 명예는 이전 세대의 땀과 노력의
결과라는 겸손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어 달리기의 끝은
하느님께서 결정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삶의
구간을 충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서 말씀에서 가족과 족보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족은
이해관계로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족보역시 그렇습니다. 믿음과
사랑 그리고 희망이 가족과 족보의 바탕입니다. 우리가 형제자매라고
부르는 것은 신앙 안에서 우리는 믿음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도회] 더불어 사랑으로 써내려가는 행복 족보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5년 다해 12월17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마태 1,1-17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마태 1,16)
더불어 사랑으로 써내려가는 행복 족보
인간은 역사적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역사를 통하여 구원을
행하십니다. 오늘 제 1독서는 야곱이 유다에게 내린 축복을 통해서
만백성의 왕이 되실 분이 유다 가문에서 태어날 것을 알려줍니다
(창세 49,10). 한편 복음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예수님의 족보를
열거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족보에서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1,1)라는 표현으로 예수님께서 선택된 민족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족보는 하느님께서 살을 취하시어
인간 역사에 사랑으로 개입하시는 구원계획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되새겨야겠습니다. 먼저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당신을 찾기도 전에 먹힐 살을 취하시고 사랑으로
다가오시어 구원해주신다는 점입니다. 구원의 시작도 사랑의 주도권도
하느님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이 족보는 간음 혐의를 받은 네 명의 이방인 여인들을
통해서도 구원의 역사가 이어짐을 보여줍니다. 이는 인간의 삶의
조건이나 죄의 유무에 상관없이 사랑으로 인생사에 개입하시어
구원해 주시는 하느님의 일방적 선택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이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에 이른 하느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1,16)라는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가 예수님에게서 그 의미를 얻고 정점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사는 사랑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시작되었고, 하느님 때문에
의미 있으며, 하느님을 향해가는 역사입니다. 내 인생은 내가 이룬
업적이나 외적인 조건 때문에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한 여정이기에 의미 있음을 깨달아야겠습니다.
고통스럽고 비참하며 어두운 상황일수록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분께서 주시는 의미를 읽어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구원
역사의 절정이신 예수님의 인간 구원을 향한 십자가의 길을 그분과
함께 기꺼이 걸어야겠지요.
내 인생사는 지나가버린 추억의 대상이 아니라 ‘지금’의 흔적입니다.
따라서 내 인생이 사랑의 역사, 하느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구원의
역사가 되려면 ‘지금’ 사랑으로 다가오시고, ‘지금’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차리며 '지금'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내 인생사가 하느님 사랑의 역사에
일치하도록 최선을 다해 응답할 필요가 있습니다.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동료
인간들의 삶의 중심을 차지하시고, 그분으로 인하여 모두가 인간답게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영(靈)의 손길로 생명과 기쁨이 가득한
‘행복 족보’를 써내려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5년 다해 12월17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마태 1,1)
여러분의 집안은 어떤 집안인가요?
양반 가문인가요? 뼈대 있는 가문인지요?
저는 해주 오가인데 중국 성씨인 것같아요.
중국 오나라 吳자거든요.
아마도 오나라의 왕족이었던 조상이 정치적 이유로 피신하여
황해도 해주로 흘러 들어오지 않았을까 나름대로 추측해 본답니다.
그러나 저는 하느님 집안과 종씨라고 우기곤 하지요.
오 하느님 오 예수님 오 마리아~~~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들이고 예수님의 형제들이니
우리보다 뼈대 있는 집안이 또 어디 있을까요?
오늘 예수님의 족보를 들으면서 그분이 곧 이스라엘이 고대하던
구세주 메시아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런 분의 형제가 되었기에 나는 얼마나 자랑스러운 가문에
속하게 되었는지 감사드립니다.
이 명문가의 가족이 되신 여러분께 축하드립니다.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5년 다해 12월17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우리의 역사안에 예수님이 참으로 계십니다.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의 갈망으로 드러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역사의 한순간으로 축소시키거나
가두어둘 수 있는 사건이 결코 아닙니다.
언제까지나 계속되어야 할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 어떤 것도 생략될 수 없는 소중한 여정들입니다.
자신의 역사를 긍정하는 사람은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긍정하는 사람입니다.
일시적인 위안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여정에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충만함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을 인식한다는 것은 우리자신을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놀라우신 구원 계획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참된 기다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단절시켜버린 하느님과의 관계를 하느님께서 당신의
탄생을 통해 다시 시작하려 하십니다.
다시 시작하려 하시는 하느님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전적인 신뢰입니다.
신앙생활에는 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인내만이 있을 뿐입니다.
인내야말로 우리의 역사안으로 오시는 예수님께 우리가 해드릴
가장 충실한 선물임을 믿습니다.
충실한 대림의 여정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충실한 관계란 인내라는 기다림의 탄생임을 믿습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청주] 살아야 할 몫|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다해 12월17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 마태오 1,1-17
살아야 할 몫
집안에 있는 족보를 보면서 나이에 상관없이 아저씨뻘이니 형님뻘이니
하며 ‘촌수’를 따져본 적이 있습니다. 누가 출세하면 그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며 호들갑을 떨고 먼 친척도 그때는 아주 가까운 것처럼
느끼며 자랑했습니다. 요즘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는 어떤 관계냐고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유엔 반씨'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윗동네 사시는
어른이었지만 저는 잘모릅니다. 그래도 훌륭한 분이 가문에 계시니
자랑거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아무리 훌륭한 삶을 사신다 하더라도 내가 잘 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나?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분의 인생과 나의
인생은 분명 다릅니다. 누가 나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가문을 자랑하기보다 내가 좋은 가문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훌륭한 가문이라는 우리 족보를 보면 여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출가외인’이라는 생각이 담겨있나 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미 그리스도의 족보에 여인이 등장했습니다. 그것도
훌륭한 사람이라고 여겨지지 않은 사람도 부끄럼 없이 올라 있습니다.
시아버지와 동침하여 자식을 낳은 다말, 창녀로써 적군과 내통한 라합,
그리고 젊은 과부로 보아즈를 유혹했던 이방인인 룻, 자기 남편을 죽인
다윗의 자식을 낳은 우리야의 아내 바쎄바 입니다. 감추고 싶은
죄인들이 등장함은 의미가 큽니다.
메시아의 가계가 끊어지지 않도록 기묘한 방법으로 대를 이어가셨다고
할 수 있고, 또한 의인과 죄인의 장벽이 무너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룻을 등장시킴으로써 유다인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이방인의 메시아도
된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계십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에게
구원을 주시려 인간역사 안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세 차례의 14대 안에서 상승과 하락, 그리고 침체를 넘어
아무 희망도 없는 것처럼 보였던 그 때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족보의 끝에 나의 이름도 기록될 것입니다.
기왕이면 내로라하는 인물이 아니더라도 죄인으로 기록되지 않기를
바라며 희망을 준 사람으로 기록되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역대 이스라엘 왕 가운데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 그분 마음에 드는 아들(마태3,17)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기 위해 기름부음 받은 자요, 주님의 영을
받은 이(루카4,18) 입니다. 이제 그분의 자녀가 그분의 일을 해야 할
때입니다. 그분의 족보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기에 앞서 그분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마태7,21). 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6).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를 등에 업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에 걸맞는 살아야할 몫이 무엇인가를
일깨우는 오늘이기를 기도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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