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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넷째 주 토라포션 "כִּי־תֵצֵא 키 테쩨" in 5783
신21:10-25:19(To), 사54:1-10(Haft), 마5:27-30,고전5:1-5(Brit), 행23:31-28:31(신약), 사49:1-54:17(Ne), 시120-134(Ke)
1부 예배 유니스 목사님
"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
우리 교회에 헵찌바라는 노래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데, 헵찌바라는 사람을 얻으시면 그 땅을 쁄라라 하신다고 하였다. 동일한 주님의 신부를 뜻하는 헵찌바와 쁄라를 보도록 하겠다
신21
10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울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손에 넘기시므로 네가 그들을 사로잡은 후에
11 네가 만일 그 포로 중의 아리따운 여자를 보고 그에게 연연하여 아내를 삼고자 하거든
키 테쩨는 전쟁하러 나가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키 테쩨는 쇼프팀과 굉장히 연관되어있다. 쇼프팀에서도 키 테쩨 라밀하마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다
신20:1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할 때에. 우리 민족은 자고로 쌈닭들이 모여서 전쟁을 잘 하는 민족인데, 요새 누구랑 싸우고 계시는가? 남편, 아내, 자식들이랑 싸우고 계시는가? 아니면 내면의 싸움을 하고 계시는가? 하나님과 싸우는 분도 계시는가? 이 싸우다라는 것은 다 알다시피 밀하마, 레헴에서 나온 단어이다.
우즈벡에 가니까, לחם 레헴, 이 빵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우즈벡 사람들은 상에 메인 음식부터 사탕, 디저트까지 다 차려놓는다. 상이 아주 꽉 차는데, 처음으로 동그란 빵을 조금씩 떼어서 손님, 가족들에게 나누어준다. 전쟁 잘 하자, 이런 뜻인 것 같다. 이 싸움이라는 것, 나가서 너희와 싸워야 하는 적을 잘 아는 것이 전쟁에서 가장 중요하다
איב 오예브 : 적
아브에 작은 요드를 통해서 틈이 벌어진 상태를 이야기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사탄의 자식들이라고 이야기하신다. 거짓 아비, 사탄의 자식이 된 우리가 아브 사이에 작은 틈을 갈라놓았다.
요새 아버지와 사이가 좋으신가? 작은 틈이 생기지 않으셨는가? 섭섭이라는 작은 틈들 말이다. 그런데 신20:1에서 네가 전쟁을 할 때에, 키 테쩨에서 오예브와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본다는 통찰이 나와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이렇게 작은 틈이 생기는 것을 여기서 잘 설명해주고 있다. 말, 병거,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본다. 섭섭이가 왜 들어오는가? 나보다 저 사람이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을 때, 내가 적게 가지고 있는 것 같을 때이다. 작은 틈이란, 많고 적음의 문제이다. 나는 많이 가졌다. 에서가 대표한다. 에쉬 리 라브. 나는 적게 가졌다. 이 소유적인 존재방식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를 갈라놓는 섭섭이의 주근원이며, 아말렉의 주원인이다. 나는 많이 가졌다. 하루종일 눈 뜨면, 나는 누구에게서 뭘 뺏을 수 있을까, 밤에는 지쳐 떨어져서 오늘도 나는 뺏겼고, 전쟁에서 졌다고 하는 것을 전쟁이라고 하지 않는다
민수기에서 전쟁을 할 때, 20세 이상으로 전쟁할 사람들 콜링하신다. 전쟁은 어른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20세 이상이라는 것, 이번 주가 키 테쩨였다. 20세 이상, 카프이다. 스트레스이다. 어린 아이들은 전쟁을 할 줄 모르는 이유가, 스트레스와 압박을 참기 싫어한다. 많이 가진 엄마가 나를 끝까지 도와줬으면 좋겠고, 많이 가진 너가 나를 좀 도우라고 하는 것이 어린 아이이다. 그러나 키, 적용한다는 것, 그리고 전쟁한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한다.
아기지수를 한번 측정해보자. 여러분들의 몸은 어른이 되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애를 낳았는데, 많은 분들이 그러셨다. 애가 애를 낳았다고 말이다. 제가 하늘이를 낳고선, 시누댁에 잠깐 살았는데, 하늘이 고모가 아이가 셋이었는데, 그때 막내가 5살이었는데, 제가 그 막내랑 맨날 싸우는 것이다. 신랑이 도대체 나이가 몇인데 걔랑 싸우냐고, 몸은 컸는데 마음은 다섯살이라, 나만 봤으면 좋겠고, 너가 더 많이 가졌다고 하는 것이다. 애기는 남의 사정을 보지 않는다
하나는 낳고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실신 직전이었는데, 하나가 끊임없이 기어와서 엄마 젖을 빠는 것이다. 우리 남편이 아기라는 존재에 대해서 너무 질렸다고 한다. 아기는 남의 사정, 엄마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아무리 파김치가 되어서 밤새 업어야 하는데, 등센서가 있는 것이 아기이다.
제가 아는 집사님이 참 잔혹한 스토리를 가지고 계셨는데, 아들이 하나 있는데 아들이 어렸을 때 남편이랑 부부싸움을 했다고 한다. 너무 화가 나서 집을 나가고 싶은데, 아이는 데리고 나가기 싫고, 아이를 보행기에 태워서 줄을 묶어서 문에 달아놓은 것이다. 서로 들어올 줄 생각하고 말이다. 그 다음날까지 말이다. 정말 끔찍하다. 그래서 제가 그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다 컸지만, 그 아이에게 사과하셨냐고, 사과할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그때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은 안 난다고 한다.
우리는 어른이 되고, 주님이 우리에게 핏덩이를 주셨어도 그 아이를 책임질, 스트레스, 압박을 견딜, 전쟁을 할만한 어른이 되지 못했다. 남의 아픔은 절대로 이해해줄 수 없는 자가 되었다. 어른의 행동, 전사의 행동, 전쟁할 수 있는 자의 행동을 배우는 것이, 주님이 계속 이야기하시는 너의 생명이 네페쉬, 루아흐, 네샤마에서 점점 아버지의 생명까지 자라나야 한다. 너는 전쟁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지난 쇼프팀에서 일곱 성에 쇼프팀과 쇼트림을 세우라고 하셨다. 그 성은 우리의 일곱 가지 감각을 상징한다. 두 눈, 코, 입, 귀에 쇼프팀과 쇼트림을 세우라고 되어있다. 그래서 그 쇼프팀과 쇼트림, 세워진 리더십으로 무언가를 보고 맛고 들어라. 내가 많이 가졌다, 적게 가졌다고 판단하는 것도 다 이 감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우리의 감각에 주님이 두신 쇼프팀과 쇼트림은 어떤 경우에도 감각에 따라 판단해선 안되고, 절대로 너가 나보다 많이, 적게 가졌다는 것으로 판단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런데, 커서 어렸을 때의 초등학교에 가보신적이 있으신가? 정문이 그렇게 커보였고, 운동장이 그렇게 넓었는데, 너무너무 작은 것이다. 상황은 그대로인데, 내 생명이 무슨 생명이냐에 따라서 우리는 무엇과 전쟁을 해야하는지, 원수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를 측정할 수 있다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것이 원죄에 해당하는 죄인 것이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다. 자기 눈에 주님이 놓아두신 쇼프팀과 쇼트림이 타락한 나머지,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것을 본다. 이것이 문제가 된다
이번에 제가 우즈벡에 다녀왔는데, 우즈벡 다녀온 간증들은 지체들이 훌륭하게 했는데, 지체들이 떠나고 우즈벡에 1/3을 차지하는 아주 소수 민족, 카르칼팍스탄을 다녀왔다. 오늘 그 이야기를 할 것이다. 옛날에는 이 단어가 너무 어려워서, 너는 도대체 어딜 가는 것이냐? 카르칼팍이 뭔지 발음도 잘 안되고, 카라팍스인지. 그런데 알고 사랑하게 되니까 이 발음이 되더라. 카라칼팍이다.
카라는 검다는 뜻이다. 그리고 칼팍은 모자라는 뜻이다. 검은 모자를 쓴 민족이다. 너무너무 뜨거운 날씨, 그 태양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쓴 검은 모자가 소수 민족의 유일한 상징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카라칼팍으로 불리게 되었다. 남한보다 1.7배가 크고, 우즈벡의 1/3의 영토에 해당하지만, 인구는 전체의 5% 정도밖에 되지 않는 소수 민족이다. 거의 대부분이 사막이고, 불모지이기에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땅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게 하셨다
이 카라칼팍 출신의 여자가 딜랴였다. 이 소수 민족이 우즈벡에 대항해서 독립하고자 작년에 애쓰다가 과잉진압으로 딜랴의 사촌도 죽는 피의 전쟁이 있었다. 우리는 갈 생각도 못했고, 정원/딜랴도 카라칼팍을 향하여 파송했지만, 우즈벡에 오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저희가 일정을 미루고 팀을 보낸 후에 카라칼팍에 들어갔다. 마지막 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주고 있는 땅이었다.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이 깜깜함, 검은 땅이 거기에 있었다. 히브리어로 검다, 어둡다는 것은 חשׁך 호쉐크였다. 후쉬를 적용하는 것이다. 후쉬에 압박이 있는 땅이다. 무슨 땅이냐면, 후쉬는 감각이란 뜻이다. 오직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느끼는, 마치 아기들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정원이의 우즈벡 이름이 누르볼인데, 빛의 아들이란 뜻이다. 빛의 사람을 이 어두운 땅에 보내셨다. 전쟁할 수 있는 자, 감각으로 살지 않는 자를 보내셨다. 그래서 저희가 갔는데, 가기 전에 하도 사람들이 거기는 척박하다, 마지막 때를 보여준다고해서, 사실 죽음을 각오하고 갔다. 고 목사님도 얼마나 겁을 주시고, 내심 고소해하시던지, 고생 좀 해보셔야한다고 하고, 가면 프로펠러가 달린 경비행기를 탈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셔서, 세 아이를 맡깁니다고, 각오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첫 느낌이 너무너무 좋은 것이다.
딱 내렸더니, 국기가 달려있고, 우즈벡과 카라칼팍 국기인데, 첫 느낌이 저에게는 미국 같았다. 미국의 한적한 시골, 평양 같기도 하고, 포근하고 익숙하고 케뎀에서 살았던 것 같고, 사랑스러운 느낌이었다. 우즈벡어로 사랑스럽다는 것을 트룰리라고 하는데, 계속 트룰리하고 다녔다. 딜랴가 정원이에게 어떠냐고 했더니, 정원이가 너무 아름답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야부리의 왕자가 너처럼 이라고 하더라. 딜랴의 반응이 어땠을까? 고맙다고 했을까? 딜랴의 답장은 거짓말.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딜랴와 같이 있었던 여동생이 하는 말이, 언니가 그때 굉장히 화를 냈다는 것이다. 사랑한다고 했을 때, 딜랴의 반응은 화를 내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사랑한다고 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시는가? 자기는 적게 가졌다, 많이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전쟁할 수 밖에 없다. 먹기에도, 보기에도, 보암직하지도, 지혜롭게 하기에 탐스럽지 않은 열매가 나이다
딜랴가 한샘 가구를 집착했는데, 우즈벡에 가면 그건 욕심이 아니었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이다. 여러분 스스로는 멋진가? 최고인가? 그런데 우리의 열등한 마음, 누군가는 우월한 이 마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시는가? 저희가 카라칼팍에 가서 하나님이 첫 번째로 보여주신 것이 하늘이었다. 우리가 하늘 보기를 좋아하고, 일몰, 일출 보기를 좋아하는 것은 자연은 열등감, 우월감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에게 어떠한 열등, 우월도 없는 편안한 샤밭을 준다
제가 제일 고치고 싶은 단어가 장애인이라는 단어같다. 인간이라는 인 앞에, 나는 부족하다는, 내가 보기에 너가 부족하다는, 소위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장애를 가졌다는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참 고치고 싶다. 운전하다보면 참 답답한 운전자들이 많다. 그러면 하는 말이, 분명히 여자일꺼야. 라는 말이 있다. 시골에서 자란 분들은 더 심하다. 너는 여자라서 그 모양이야. 많은 남편들, 아버지들이 딸들, 부인들에게 한다. 그런데 막상 그 딸, 부인이 그것을 당하면서, 그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가질까? 여자를 무시하면, 나도 여자인데, 운전하다가 옆에서 여자일꺼야 하면, 나도 여자인데, 어떤가? 나는 안 그래. 그렇게 여자를 수치 준 아버지, 그런 엄마를 보면서 딸이 하는 생각은 뭔가? 나는 엄마처럼 안 살거야. 같은 여자인데도 그 아픔을 느끼지 않고, 함께해주지 않는다. 그 딸의 마음에는 엄마를 열등하다고 수치주는 가해하는 아버지 마음과, 당하는 엄마의 마음이 같이 들어와있다. 그 아픔을 충분히 같이 느껴주지 않고, 버려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처럼 안 살거야라는 내적 맹세를 통해서, 30대, 40대에 이미 판명된다. 엄마처럼 안 살려고 했는데, 엄마랑 똑같아졌다는 고백을 한다. 아빠처럼 안 살려고 했는데 똑같아졌다. 버리면 끝날 줄 알았는데, 더 생생하게 내가 그 자체가 되어버린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다
열등감은 전쟁하는 마음이다. 우리의 열등한 에고는 열등해지지 않으려고 우월감이라는 것에 집착한다. 그래도 내가 좀 낫지. 이 영역에서는 내가 좀 나아. 누쿠스라는 것이 카라칼팍의 도시인데, 딜랴가 누쿠스 출신인데, 딜랴는 어디 가면 누쿠스 출신이라고 절대 이야기하지 않고 우즈벡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열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즈벡 사람이라는 것, 나는 도시 사람, 타슈켄트 사람이라는 것을 붙든다.
열등감은 전쟁하는 마음이며, 공격하는 마음이며, 나를 자해하고 가해하는 그런 마음이다. 이것이 최대 우리의 오예브이다. 열등감이 올라올 때, 내가 진짜 열등해서, 딜랴가 진짜 못생기고, 카라칼팍이 촌스러워서 열등한 것이 아니라, 열등하다고 그 땅을 버리고 수치주는 그 마음이 올라오는 것이다
실제로 누쿠스라는 도시에 소련이 이 땅을 버리고 어떤 도시에도, 마을에도 두기 꺼려하는 화학 공장들을 다 갖다두었다고 한다. 독가스가 나오고, 그 땅은 버려진 땅이 되어버렸다. 카라칼팍이 진짜 열등해서 버려진 것이 아니라, 가해자 마음이 그 땅을 버렸다. 어떻게 이것을 해결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아픔을 함께하라고 이야기하셨다. 충분히 그 아픔을 함께하라. 아빠가 엄마를 수치줄 때, 아빠의 마음과도, 엄마의 마음과도 함께하고, 그것을 버리지 말아라
우리가 그 땅에 가서 카라칼팍을 대표하는 바다, 아랄해,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호수, 캘리포니아 주만한 큰 호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커서 아랄해라고 불리는 바다에 갔다. 이 바다가 어찌어찌한 연유로 인해서 점점 아주 빠른 속도로 말라버렸다. 지금 저 사진이 2016년 사진인데, 2023년, 지금에는 거의 물이 남아있지 않다. 하나님이 저 아픔을 충분히 느끼라고 그 여정을 보내셨는데,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새벽 6시에 출발해서, 저 물을 찾아서 떠나는데, 저 땅이 어떻게 말라버렸는가? 많은 연구가들이 저곳을 방문한다. 우스갯소리로 이 땅을 밟은, 이것을 연구하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 물 한 바가지만 가져왔어도 찼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구경오고 연구를 온다. 얼마나 큰 사막이 되어버렸는지, 물이 마른 사막을 짚차를 타고 울퉁불퉁한 곳을 달리는 것이다. 최소 1박을 하고 오는 코스를 저희는 몰라서 당일치기로 다녀오느라 고생을 했는데, 하루종일 이 아픔을 충분히 느끼게 하신 것 같다. 끝도 없는 허무함과 바다인데 바다 속을 황망하게, 황량하게 걸어가야 하는 그 슬픔을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이 아픔이 같이 잠기지 않는다. 수치받고 피해받은 열등한 엄마와 다르다고, 나는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라고 그 아픔을 하나도 이해해주지 않는다. 이 아픔이 올라오지 않는데, 전쟁, 가해의 아픔이 올라오는데 그것을 다 버려버린다
아랄해를 출발하기 전에 무이낙이라는 마을에 들어갔다. 유 어머니가 거기 가시면 큰 여신상이 있다고 하더라. 그게 없어졌더라. 갔더니 죽은 마을이 되었다. 왜냐? 이 바다가 왜 말랐냐면, 하얀금이라고 불리는 목화 개발을 위해서 소련이 이 아랄해로 들어가는 큰 강 두개를 막은 것이다. 그 강물이 목화재배지로 유입되도록 말이다. 그렇게 추정을 한다. 그런데 아무리 강을 막더라도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호수, 캘리포니아주만한 깊이의 바다가 마를 수 있을까? 저는 그것을 보면서 이것은 홀로코스트와 같다. 분명히 사탄의 짓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재앙이 아니었다. 이 물이 다 말라버린 자리에는 소금이 남았는데, 이 소금, 염분, 목화 재배에 쓰인 비료가 바람에 날리면서, 카라칼팍 전역에 날리면서 각종 질병이 유발되었고, 1980년도에는 급격히 마른 아랄해에서 부는 바람으로 카라칼팍의 유아와 산모의 사망률이 가장 높았다. 우즈벡 교회의 많은 분들이 카라칼팍 출신인데, 친척들이 일찍 죽고 병에 걸렸다고 리더들이 이야기하더라. 더 이상 어느 곳에도 기댈 곳, 의지할 곳이 없는 버림받은 땅이 되었다
버림받은 존재, 나는 부족하다, 열등하다. 그래서 내가 잘하는 뭔가를 붙들어야만 살 수 있는 우리에게는 독가스가 나온다. 마치 그 비료의 독과 소금의 독이 바람처럼 불어와도 모두를 죽이듯이, 수치의 아우라와 가해자의 아우라가 얼마나 쎈지 모른다. 그래서 이 무이낙이라는 마을을 다 떠나고 몇몇만 살고 있더라. 키 테쩨에서는 수치주는 여자 이야기, 여자를 기뻐하지 않고 비방하는 이야기가 신22, 23장에 나와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어두운 땅에 대해서 한 사람을 일으키신다. 이 땅이라는 말, 카라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을 흘리는 한 존재를 일으키셨다. 누르볼, 정원이를 일으키신 것이다
카라칼팍에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가, 들어갈 수 있다고 이야기를 듣자마자 정원이가 눈물을 터뜨렸더라. 그 빛의 아들을 하나님이 일으키셨다. 여기를 하루종일 그 슬픔에 동참하면서 헵찌바 노래를 얼마나 듣고 불렀는지 모른다. 너의 땅은 버림받았지만 열등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신단다. 그 말, 그렇게 보아주는 눈을 하나님은 얻으시기 원하셨다
돌아와서 딜랴를 만났는데, 얼마나 예쁜지. 2월에 갔을 때는 딜랴가 통역을 잘 못했다. 바다 목사님이 이야기하시면 버벅대고, 고 아버지가 보다못해 통역하셨는데, 이번에는 아버지와 하나되어서 환상의 콤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딜랴, 주님의 여종이 그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하나님의 딸이 그곳에 있다
우리가 열등이를 버리고 우월감을 붙들면, 딜랴가 누쿠스 출신이 아니라 타슈켄트 출신이라고, 촌스러운 땅의 출신이 아니라고 우월감을 쓸 때, 우리는 여존남비가 되는 것이다. 끝도 없는 공허와 혼돈의 수레바퀴 속에서 뺏고 뺏기는 마음으로 산다. 진짜로 우리 안에 있는 이 열등이가 해결이 되면, 열등감도 우월감도 없는 상태, 마치 하늘처럼, 저녁 노을처럼 편안한 상태가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땅에 들어가서 하게 하신 첫 번째 일이 샤밭의 불을 밝히는 것이었다. 마트에서 초를 구해서 카라칼팍에서 샤밭의 불을 당겼다. 그리고 인도해주신 마을이 있었다. 바로 아담의 무덤이 있다고 하는 곳, 하나님이 상미상조회를 하라고 하시면서 아담의 무덤까지 보여주시더라. 여기에 가서 우리가 노을을 봤다. 제가 어떤 땅에서 봤던 노을보다 너무 아름다웠던 노을이었따.
노을이 이렇게 환상적인 그림을 표현하고나서 나 어때? 나 멋지지? 나 잘하지? 라고 하지 않는다. 벌써 우리는 이러면 더 이상 우월이가 아니다. 그것 자체가 약자라는 것이고, 열등하다는 것이다. 그냥 저녁 노을처럼, 샤밭의 초 처럼 자연스럽게 되어지는 그것이다
이번주에 목사님께서, 좌측의 세상은 우측의 세상을 통해서 그냥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냥 살아지는 것이다. 내가 뭔가 애써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족하니까, 못생겼으니까, 능력이 없으니까 뭔가를 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편안하게 나타나는 세상이다
카라칼팍이 검다는 뜻인데, 히브리어는 카라는 부르다는 뜻이다. 그 땅을 헵시바, 쁄라라 불러주는 그 한 사람의 하나님의 종이 출현해야 한다. 그리고 충분히 아파해주고, 그 아픔을 끌어안아주고, 불러주고, 들어주고, 나의 감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 너머의 아름다움을 봐주는 사람, 그래서 저는 이곳에서 진정한 예술을 발견했다. 참 놀라운 것이, 이곳에 관광산업이 발달한 딱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랄해, 인간의 해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연구하기 위해서 카라칼팍을 찾고, 또 한 가지는 우즈벡에서 가장 많은 예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이 이곳에 있었다. 예술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충분히 잠겨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거기에 가서 한국에서도 잘 가지 않는 미술관에 가서, 그것을 감상하게 하셨다. 그리고나서 우즈벡에 와서 마지막으로 리더들과 밥을 먹는데, 제가 정원이 결혼할 때 받은 선물인데, 촌스러워서 못 입겠는 것이다. 우즈벡 찻잔같은 것도 촌스러워서 못 썼는데, 제 눈이 바뀌니까 문양과 그릇, 딜랴와 리더들이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운지 모른다
내년에는 꼭 같이 가자. 저는 알고는 광야 투어는 못 가겠다. 가시면 사모님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했는데, 이게 뭐냐고 할 것이다. 감각으로 볼 때는 하등 예쁜 것이 없다. 그런데 예술가의 눈이 떠지자, 그 모든 것이 예술로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카톡 프사의 하늘 사진, 일출을 보여주시는데, 얼마나 웅장하고 아름다운지. 하나님은 그 땅의 하나님이시고 예술가셨다
요8:15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우즈벡은 그대로이고, 카라칼팍은 그대로인데, 내 눈이 바뀌니까 다른 나라를 다녀온 것 같다. 마지막에 딜랴랑 헤어지면서 너무 한국 가기 싫다고 했는데, 딜랴는 가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딜랴에게 너가 가서 사모하라고 하니 그건 싫다고 하더라. 그 땅과 너무 사랑에 빠지고 왔다
פגה 파가 : 만나다, encounter
히브리어로 육으로 만나고, 육으로 판단한다는 말이 있다. 그것을 파가라고 한다. encounter이다. 모든 여러분의 상처는 육체와 육체가 만나서 생긴 것이다. 카라칼팍에서 상처를 받았다면, 그 상처가 육이 되어서 여러분을 공격한 것이다. 아랄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육으로밖에 연구하지 못한다. 어제 가이드는 어제 일본 연구가들이 와서 일박을 하고, 지난주에서는 이탈리아에서 연구가들이 왔다고 하더라. 수많은 세계의 학자들이 그곳에 가지만, 육체를 따라 카라칼팍을 보기 때문에 왜 이렇게 말랐는지, 원인과 해결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아랄해가 몇백년에 걸쳐서 마른 것이 아니다. 몇만년 전에 바다였지만 사막인 곳도 많다. 68년도만 해도 풍성한 호수였는데, 2023년인데, 가이드가 말하길 작년보다 또 물이 줄어있다는 것이다. 불과 2-30년 만에 순식간에 빨리 죽어가고 있었다. 누구에게서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치유를 해야하고, 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고 하지만, 더 너머의 것을 사유할 수 있다면, 내가 육체로 떨어졌기 때문에 상처를 받은 것이고, 상처를 준 그 사람도 육신이었기 때문에 육신과 육신이 파가해서 만든 것을 상처라고 한다
잘 보시면 이것은 아랄해가 말라버린 황야인데, 거기에 배가 있었다. 배들의 무덤이라고 한다. 참 사람 무덤에 가서는 소망이 생기고, 희망이 생기고, 에너지가 밝아지는데, 배들의 무덤이라는 곳에 가니 그렇게 슬프더라. 도대체 왜 이 아랄해는 왜 말랐고, 어떻게 하면 부활할 수 있는지. 아랄해를 가해한 공격자는 누구일까? 카라칼팍이 키 테쩨해서 싸워야 할 원수들이 누구일까? 이것을 환경운동가들이 알 수 있을까?
우리가 파가, 상처를 다루지 못한다면, 육신과 육신이 만나서 생긴 상처, 정원이와 딜랴가 이것을 다루지 못한다면, 그곳에서 어떤 생명도 다루지 못할 것이다
상처는 미성숙에서 생긴다. 이것을 쿠웨이트에서 고 아버지께서, 그래서 상미네? 라고 하시더라. 제가 상처받았다. 제가 이름짓는 은사가 있는데, 좋은 의미만이 이름이 아니라, 그 안에 아픔이 들어가있어야 한다. 그럴 때 그 이름을 불러줄 때, 그 아픔에 충분히 잠겨주고, 그 아픔과 함께해주는 것이다. 그 사람을 아프게 불러줄 때, 그렇게 그 사람은 거기에서 해방되는 것이 가장 좋은 이름이다.
그래서 미성숙하다, 애기짓을 한다, 전쟁할 줄 모른다는 것은 육신으로밖에 보지 못하기에 충돌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셔야 한다. 상처라는 것은 원인일까, 결과일까? 우리는 상처를 원인으로 둔다. 키 테쩨 기간에 누가 어떤 에세이를 썼는지 살펴보다가, 경춘이가 키 테쩨 주간에 나아가다가 나는 왜 이렇게 아버지와의 관계에 틈이 생길까? 오예브, 섭섭이를 묵상하다가 이런 고백을 하더라. 자기의 키 테쩨의 원인자는, 자기는 그 원인자에 나를 도와주고 키워줘야하는 아버지가 돈도 주지 않고 미국으로 도망갔을 때, 나는 원수의 원인자에 아버지를 두었다. 내 인생의 적군은 아버지였다. 거짓 아비, 사탄에게 속아서 육신의 아버지를 이 원인자에 두고 말았다. 그제서야 나는 영의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여기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보다 믿고 싶고, 신뢰하고 싶지만, 마음과는 달라서 신뢰가 되었다고 안되는 것을 롤러코스트 타듯이 반복하는 것이 나의 수치였다
여러분은 어떤 원인자, 어떤 상처를 원인자에 두고 계신가? 상처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참새 한 마리도 그냥 떨어지는 법이 없는 이 세상의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아랄해라는 단어는 놀랍게도 천개의 섬의 바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일본이라는 섬을 하나님이 입양하게 하셨다. 섬은 단독자의 전형이다. 내가 신이 되어버린 것,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아버지도 적군으로 만들 수 있는 놀라운 나의 신의 능력, 이것이 바로 원인자라는 것이다.
저는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일본을 주셨는데, 왜 일본과 동일한 이런 사랑을 카라칼팍에 느끼게 하셨는가를 생각했다. 일본과 동일하게 아랄해는 천개의 섬, 천개의 단독자들의 바다였다. 그리고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섬들이 토라를, 나를 앙망하리라. 너는 마지막 때를 보고 있다는 확증을 해주셨다
일본 국기를 보면 그냥 태양 자체이다. 일본이 절대 사과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그들 입장에서는 사과할 이유가 없다. 대동아 전쟁을 통해서 우리나라, 열방을 해방시켜준 것인데, 그것을 방해를 한 미국이 사과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일본 중에 특히 섬을 대표하는, 제게 일본을 열어주실 때 가게 하신 곳이 오키나와라는 섬이었는데, 단독자들이 아랄해를 마르게 한 원인이 된다. 오키나와란 뜻이 많은 물고기들이 사는 바다, 우측의 세계에 나와, 가느다란 실을 대는 곳이란 뜻이었다. 정말 나 밖에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절대 이해해주기 싫은 고집덩어리, 열등이인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토탈비전밖에 없으며, 아랄해와 일본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랄쿰, 지금 현지인들은 더 이상 아랄해라고 부르지 않고 아랄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랄 모래라는 뜻이다. 더 이상 그곳은 바다가 아니라 모래바람이 부는 사막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아랄해가 마른 이유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제자의 눈을 가진 사람들이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다. 아랄 쿰, 아랄은 쿰, 부활할 수 있다
아랄, 단독자를 대표하는 섬이 가지고 있는 의식이 있다. 내가 많이 가져야 내가 사랑받는 느낌을 가질 수 있고, 살아있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어떤 친구가 어렸을 때 자기는 사탕을 너무 많이 먹어서 이가 다 썩었는데, 엄마가 맞벌이를 하셔서 집에 와도 엄마가 없으니까, 허한 마음을 달랠 줄 몰라서, 사탕을 먹으면 달달한 사랑받는 느낌 때문에 먹다가 썩었다고 했는데, 저는 그것에 100% 공감한다. 제가 공동체 생활을 할 때, 저는 아이와 육아를 하고, 남편과 자매 사역자들이 썰물처럼 나갈 때의 허함, 외로움, 헛헛함을 어떻게 할지 몰라서 제가 했던 방법이 있었다. 모르겠다 달달한 케이크나 먹자. 그래서 애들 데리고 가서 계속 케이크만 먹는 것이다
달달한 것, 사랑받는 느낌을 원하기 때문에, 어떤 분은 커피일 수도 있고, 정원이 같은 경우는 야부리 깔 때 느꼈을 것이고, 술 마실 때, 마음에 맞는 친구와 이야기를 할 때, 각자에 맞는 중독을 우리는 하나씩 가지고 있다. 사랑받는 느낌을 먹는다. 말랐다고 할 때 사랑받는 느낌을 얻어서 안 먹는 사람도 있고, 폭식증인 사람은 굶다가 퍼먹을 때 사랑받는 느낌을 가진다. 우리 안에는 나는 절대로 사랑받을 수 없어. 나는 버림받아야 마땅하다는 아이가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대체될 수 있다고 믿는 아이가 내 안에서 살고 있다. 아까 본 배들의 무덤처럼, 사랑을 원하지만, 사랑받을 수 없고 계속 죽어가는 이 원인자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 토탈 비전의 여러분들이다
신24:1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ערות דבר 아르바트 다바르 : 수치주는 일
키 테쩨에서는 하나님이 여자를 수치주는 일을 계속 이야기하신다. 수치주는 일이란 뜻이 아르바트 다바르인데, 에르는 벌거벗다는 뜻이다.
ער 에르
페이를 붙이면 오르바,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서 도망가버린, 무이낙 마을과 같이 자기 살기 위해서 시어머니로부터 도망친다. 파라오가 되는데, 자기가 왕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여기에 라메드를 붙이면 아랄이 된다. 놀라운 아랄해가 담은 영적 의미가 놀랍다. 이 피부를 훈련하지 않고, 피부가 단단해진 상태, 성경에서 피부가 가장 단단한 동물을 레비아탄, 용이라고 한다. 단단한 피부를 절대 뚫지 못하는 상태이다. 딜랴가 욕심부리는 것 같이 보였고, 감각으로 사는 것 같이 보였지만, 강력한 악어 가죽 같은 딜랴가 마지막으로 한 설교를 기억하시는가? 외국인이 한국어로 설교하면서 울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자기가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딜랴의 언어가 되었다는 것인데, 이 아이가 아버지의 마음을 이야기했다. 아버지의 마음과 같아지고 싶다고 했을 때, 강력한 악어 가죽에 하나님이 바브를 꽂으신 것이었다
עור 우르, 에르에 바브를 꽂으면 우르가 된다. 거꾸로 읽으면 루아가 된다. 나팔소리이다. 아브월이 끝나고 엘룰월이 되었다. 엘룰월은 첫 월삭부터 욤키푸르까지 40일 동안 테슈바, 회개의 기간이다. 이때 무엇을 하냐면, 매일매일 나팔을 분다. 내년에 카라칼팍에는 꼭 이 나팔을 가지고 갈 예정이다. 죽어가는 아랄해여 부활하라. 가능하시다면 홀로 있을 때라고 할지라도, 쇼파르를 많이 부르라고 유대인들은 많이 이야기한다. 이 40일 동안 우리는 우리의 내면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사실 엘룰월에는 한달 동안 절기가 없다. 그러나 엘룰월 30일과, 욤키푸르까지 40일 동안에 내면으로 각성하며 회개하는 시간을 가진다. 실제적으로 자신과 가족, 교회, 공동체, 우리 삶의 모든 개인들이 서로 용서하고 용서를 구하는데 집중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 동안에는 일기를 써보라고 랍비들은 추천하고 있고, 다가오는 로쉬 하샤나를 준비하라고 한다
나팔 소리를 들으면 우리의 영혼이 깨어난다. 단독자로, 이기적으로, 열등하다고, 너가 나한테 해달라고 하는 우리가 깨어나게 된다. 그런데 이 아랄 해에서 라아라는 단어가 나온다
아1
7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야 네가 양 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 내가 네 친구의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린 자 같이 되랴
8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
רע 라아 : 목자
엘룰월의 독특한 것이, 우리같은 천한 백성이 왕에게 가까이 갈 수 있겠는가? 수많은 법도와 절차를 거쳐야만 갈 수 있다. 그 문을 통과하고나서도 적절한 방식의 인사, 절하는 법, 말할 때와 말하지 말할 때를 배우고 들어가야만 왕을 알현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엘룰월에는 이 왕이 변장하고 백성 중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암행어사처럼, 양 떼를 돌보는 목자처럼 이 왕이 우리 사이를 거니신다고 한다. 너무 놀랍다. 왕이신 그분이, 감히 다가갈 수 없는 그분이, 이 엘룰월에는 여러분에게 가장 가까운 목자로, 여러분을 치는 목자로 나타나신다는 것이다. 이 목자는 양 떼를 푸른 초장으로 이끈다
목사님이 비가 내린다고 했는데, 저희가 갔을 때 비가 내렸는데, 가이드와 기사가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8월 건기에 비가 내리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 같이 비를 맞고 즐거워했다. 광야가 푸른 초장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늘의 비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광야, 아랄해가 아랄쿰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을 제시해주셨다
신11:14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우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겠다. 이 때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에트이다. 에트는 어디에서 나온 단어냐면, 아나, 대답하다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이 제자들에게 응답하신 것이다. 도대체 아랄해, 천개의 단독자들이 모인, 그래서 이렇게 물을 말려버릴 수 밖에 없는, 자연의 홀로코스트를 일으킬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이기심에 응답해달라고 하자, 하나님은 이른 비, 늦은 비를 내리시며, 지금이 결정적 기회의 시간이라고 하시면서 주님의 제자들을 그 땅에 보내셨다
아1
4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검은 땅, 어둠의 땅 카라칼팍의 고백이다. 카라칼팍이, 그 열등하다고 느꼈던 땅, 버림받은 땅이 고백한다. 나는 검으나 아름답다. 이 노래 좀 하고 싶은데, 검으나 아름답다는 노래가 있는데, 조금 가사가 잘못되었다. 너는 검다 하지만, 나에게 아름답다고 가사가 되어있는데, 그게 아니라, 지금 버림받은 여인이 고백하는 것이다. 내가 검지만 아름답습니다. 진정한 나를 찾은 것이다. 열등감, 우월감을 쓰지 않아도, 저녁 노을처럼 자연스러운 샤밭의 여인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찾았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엘룰월은 처녀자리이다. 처녀는 베툴라, 우리 내면에 그 어떤 것에도 영향받지 않는 참 나를 이야기한다. 내면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진정 누구인가로 돌아가는 것이 진정한 테슈바, 회개이다. 그때 우리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5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6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포도는 다 결합시키는 상태이다. 내가 나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결합할 이유도 보지 못했고, 나의 아흐들도 보지 못했고, 나 자신도 보지 못했던 여인이 이야기한다. 이제 아랄쿰, 나는 부활할 것이다. 하늘의 비를 구할 것이다. 네 배에서 생수가 흘러나올 것이다.
== 검으나 아름답다 ==
내 감각의 눈으로가 아니라, 그대로 볼 수 있는 영혼의 눈을, 제자 비전의 눈을 허락하여 주소서.
==
이 상처, 버림받았다, 대체될 수 있다고 하는 상처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냥 위로해주는 것이 아니다. 아랄해는 많은 자들이 와서 위로했고, 연구했고, 마음을 알아주었지만, 육신은 위로해봤자이다. 우리가 블랙이라는 어둠의 영화를 통해서 미쉘이라는 여인, 그 소녀를 보았다. 마치 카라칼팍같이 인간 앞에 장애가 붙은, 너는 열등하다고, 버림받았다고, 너 같은 것은 사라져도 된다고 하는 그런 자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었다. 그냥 테쩨해버리는 것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나와버리는 것이 유일한 답이었다. 사탄과의 전쟁은 그냥 나와버리는 것이다. 키 테쩨 라밀하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모든 사역은 다 키 테쩨 사역이었다. 육신에서 그 사람의 눈을 그냥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갇혀있던 어둠의 땅에서, 누르, 빛의 아들로 나아오게 하신 것이다. 흑암의 권세에서 아들의 나라로 말이다
주님이 음행 중에 수치스러운 여자,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끌고왔을 때 이렇게 이야기하신다. 사람들이 하쇼프팀이신 그분께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의로운 재판장이시라면, 이 여자를 재판하소서
요8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예수가 메시아라면 자기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바리새인들에게는 예수가 전혀 도움이 안되었다. 자기들이 예수로부터 받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많아지는데, 나의 라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메시아를 죽이고 고발하고자 이렇게 하는 것이다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우리 주님이 뭔가를 쓰셨다. 그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고, 하나씩 어른에서부터 어린 아이까지 나갔다고 한다. 모든 인간은 전 세대에 걸쳐서 모두 다 죄인이다. 우리 모두는 오예브, 거짓 아비를 원인자에 두어서 그렇게 섬겨왔다. 우리는 우상숭배했다. 내가 왕이라고 하는 단독자들의 섬, 아랄해의 모든 바다를 다 마르게 하였다. 여러분들의 이기심과 에고는 모든 바다를 마르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독가스를 품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수치의 아우라가 가득한다. 너의 모습 그대로 사랑한다고 고백하면 짜증내고 화낸다. 내 모습을 그대로 사랑할 수 없는 나를 자르고 고쳐서 그렇게 주님 앞에 드리고 싶어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탄 왕국의 최고 권력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주님이 정죄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위로도 안 해주신다. 그리고 그냥 테쩨하신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다시 죄를 범치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냥 나와버리는 것이다. 테쩨해서 주님이 주시는 땅, 그 우측의 땅, 하마콤의 땅으로 키 타보, 들어가는 것이다.
아랄해는 테쩨할 것이다. 전쟁할 줄 아는 제자들이 그 땅을 밟고, 그 땅을 헵찌바, 쁄라라고 불러줄 때, 너는 검지만 너는 아름답다. 트룰리, 너무 아름답다고 불러줄 때, 그곳에서 샤밭의 초를 켤 때, 주님의 비를 구할 때, 깊은 샘의 물을 터지게 할 때, 그리고 우리에게서 단 하나의 남자, 키 테쩨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수치스러운 그 여자는 그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쉬 아헤르이다. 마지막 남자에게 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마지막 남자이신 우리의 남편에게 붙을 때, 그리고 내 삶의 목적은 더 이상 내가 버림받느니, 무능력하니, 열등하니가 아니라, 한 사람을 위해서 살 때, 토라의 완성을 위해서 살 때, 우리는 검으나 아름답다고 고백할 수 있고, 내가 만나왔던 내가 아니라, 우즈벡이 아니라, 내가 만나왔던 상대가 아니라 진정 새로운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카라칼팍에서 은혜를 받고 우즈벡에서 리더들과 만나는데, 리더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옛날에 카라칼팍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을 때, 하나님이 카라칼팍 너는 트룰리, lovely한 여인이다. 헵찌바다, 내가 너에게 만족한다. 너는 나에게 대체될 수 없다고, 그 어떤 사람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고 고백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즈벡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야기하셨다고 한다. 우즈벡 너는 나의 긍휼을 입었다. 바로 우측의 헤세드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분의 긍휼, 그 태의 사랑, 이 우측의 사랑을 너는 입은 땅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우리가 헵찌바 노래를 많이 부르지만, 쁄라 노래도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 너를 헵찌바라 하겠다, 그리고 너의 땅을 쁄라라 하리니, 너는 결혼한 여자가 될 것이다. 우측, 마지막 남자에게 결혼하는 그런 여자가 될 것이다.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않고,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너의 땅이 결혼한 바가 될 것이다
아랄해의 유일한 방법은 하늘의 비이다. 그러나 노아의 때에 비가 내리는데, 그 비가 하늘에 있고 땅에 있었다. 하늘에서 비가 내렸고, 깊은 샘이 터져서 홍수가 일어났다. 아랄해의 유일한 비전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깊은 샘에서 생수가 터져나오는 것이다
요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을 기억하시는가? 이 여인 또한 카라칼팍, 일본과 같이 버림받은 여자였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만일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물을 달라고 했ㅇ르 것이라고 한다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때를 따라 아무리 비를 내려주셔도 그것이 농사랑 연결되지 않는다. 반드시 수고해야 한다. 주님이 토라를 부어주셔도, 여러분이 이 땅에서, 여러분의 배에서 참 나를 찾고, 찾게하는 여정, 그 제자도의 여정으로 제자를 섬겨야 살 수 있다.
왕상7
23 또 바다를 부어 만들었으니 그 직경이 십 규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높이는 다섯 규빗이요 주위는 삼십 규빗 줄을 두를 만하며
25 그 바다를 소 열두 마리가 받쳤으니 셋은 북쪽을 향하였고 셋은 서쪽을 향하였고 셋은 남쪽을 향하였고 셋은 동쪽을 향하였으며 바다를 그 위에 놓았고 소의 뒤는 다 안으로 두었으며
하나님이 바다를 부어 만들고 계신다. 바다를 소 위에 놓았다. 말라버린 이 바다의 해결방법이다. 바다를 부어만드시는데, 하늘의 비를 내려주시고, 여러분 안에 있는 나는 검지만 아름답다고 하는 참 나를 찾은 그 물이 여러분에게서 솟구쳐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소 열두 마리가 그 바다를 받쳤다. 동서남북에 진을 친 여러분, 우리 모두가 하나되어서 그 바다를 받쳐야 한다. 이것은 한 사람, 바로 교회를 이야기하고 여자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여자를 수치주고 기뻐할 줄 모른다면, 우리는 황무지와 같은 말라버린 아랄해의 독가스를 품는 음녀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연합하고 결합해서 우리 안에서 생수가 터져나와서 그 바다를 같이 받쳐야 할 것이다. 이렇게 여자가 되시는데 동참할 의향이 있으신가? 카라칼팍, 단독자 일본을 품고, 헵시바, 쁄라가 되어서 함께 바다를 받치므로 죽어가던 아랄해와 일본이 살아나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역에, 아버지들과 누르볼, 딜랴의 동역자가 되어서 말라버린 바다에 줄을 대는 우리가 되기 원한다
어떤 성도분이 어렸을 때 이모가 약간 모자란 분이었다고 한다. 그 이모를 할머니가 임신하셨을 때, 딸이라는 것을 알고 죽이려고 이상한 것도 먹고, 약도 먹고, 몸을 함부로 했다는 것이다. 태어났더니 아이가 모자란 아이가 되었다. 그런데 이 사람을 이모라고 불렀던 성도분은 잘 모르니까 그 이모가 항상 웃고 다니니까, 뭔가 모자란 것은 애기가 못 느끼니까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이모가 불렀던 사랑 노래가 있었는데, 그렇게 슬프고 구슬픈 노래였다고 한다. 이모의 엄마, 성도분의 할머니께서 그 애를 구박하고 때리고 죽으라고 하는데도, 이모는 항상 웃고 다녔다고 한다. 하루는 너무나 구슬프게 둘이 있는데 이모가 노래를 불렀는데, 그 아이가 이렇게 물어봤다고 한다. 누구에게 노래를 부르는거에요? 했더니, 이모가 하는 말이 있었다. 엄마라고 하더라. 그런데 왜 이모는 할머니에게 직접 사랑한다고 이야기를 안 해요? 나, 병신이잖아.
여러분 안에 이런 병신이 살고 있다. 여러분 안에 이런 카라가 살고 있다. 이런 어둠이 살고 있다. 슬픔을 느끼면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그것을 인정하면 너무 두려워서, 내가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면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애써 웃고 행복한척하고 계시진 않는가? 너무 서러워서, 배들의 무덤이 된, 죽은 마을이 된 카라칼팍처럼 병신처럼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오늘 우리가 제자 비전에 눈을 떠서, 더 많이 가지지 못했다고 전쟁하는 자가 아니라, 이제 그 아픔을 같이 느끼고, 내가 검다는 것을 인정함으로 내 안에 있는 헵찌바와 쁄라라 부활하게 되길 축복한다. 진정한 사랑은 여러분이 느끼는 그 아픔이 사랑이다. 여러분이 사랑받는 느낌을 얻기 위해서 중독되었던 많은 것들은 사랑이 아니라, 아픔이 사랑인 것을 기억함으로 헵찌바 찬양을 하고 마치도록 하겠다.
== 헵찌바 ==
* 기도
마지막 때 섬들이 주를 앙망하리라는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섬들을 보여주시는 주님. 우리에게 일본이라는 민족을 입양하게 하시고, 카라칼팍, 천개의 섬이 있는 곳, 그러나 그 이기심이 모든 물을 마르게 한 곳, 그래서 모든 사람이 떠나갈 수 밖에 없는 독가스, 수치 에너지만을 뿜어낼 수 밖에 없는 모래바람의 황량한 그곳. 이제 그곳에 아랄쿰, 부활을 선포하시는 주님, 오직 남편만을 앙망하는 헵찌바와 쁄라들을 얻기 원하시는 주님, 우리가 이제 남편있는 여자로 돌아갑니다. 내 안의 여자를 기뻐하겠습니다. 다 같이 연합하여 바다를 받치는 한 교회, 한 여자가 되겠습니다.
제가 원수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원수가 내 안의 병신인 줄 알았고, 열등이인 줄 알고, 부족한 그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많이 가지고 싶었고, 채우려고 했고, 전쟁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 마음에 샤밭의 불을 당겨주소서. 저녁 노을처럼, 아침의 그 일출의 하늘처럼 살고 싶습니다. 그런 샤밭으로 살고 싶습니다. 이제 더 이상 아기짓하지 않고, 전쟁할 줄 아는 그런 자가 되고 싶습니다. 나를 그렇게 버리고 수치주었던 진짜 원수에 대해서 전쟁할 줄 아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주를 앙망하고 싶습니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 키 테쩨를 우리에게 주심으로 하늘의 비를 구하고, 내 안의 깊은 샘에서 터져나오는 생수를 구하게 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아랄해가 아랄쿰이 되어서 부활하는 역사를 보고, 그렇게 검은 땅, 진정한 나의 내면, 우리에게 주신 그 민족들로, 열방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엘룰월을 보낼 수 있도록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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