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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 : 2023. 05. 07(일)
□ 곳 : 경기 하남시 창우동「한국 애니메이션고교」앞~감단산(657m-‘푯돌’)~고추봉[두리봉]~용마산~희망봉~은고개~남한산(522m-‘푯돌’)~북문 남쪽 정류소
□ 벚꽃산악회
□ 참여 : 모두 17명
□ 날씨 : 하루 내내 흐렸고, 아침 한때 이슬비가 아주 조금 내렸다.
□ 길 : 흙길
□ 걷는 데 걸린 시간 : 2023. 05. 07(일) 03:03~10:15(7시간 12분, 쉰 시간 포함)
□ 일러두기
1. 홀로이름씨[홀이름씨, 고유명사]는 되도록「」안에 넣었다.
2. ( ) 표시는 괄호 밖 말이나 괄호 안 말이 같음을 나타냄
가. 보기 1) 산등성(이)⇒‘산등성’이나 ‘산등성이’는 같은 말임을 나타냄.
3. [ ] 표시는 [ ] 앞에 있는 말은 쉬운 말, 또는 흔히 쓰는 말이 경우가 많다. [ ] 안에 있는 말은 같은 뜻을 가진 또 다른 토박이말이거나 드물게 쓰는 말, 한자말, 어려운 말. 또는 들온말[외래어]인 경우도 있다.
4. 나온 데[출처]
○ 「한국 400산행기 등산길 안내」 김형수 지음, 깊은솔 펴냄⇒‘김형수’ 로 적음
○ 「준 · 희」 깃⇒‘「준 · 희」’로 적음
○ 지도⇒‘지도’ 로 적음
○ 푯돌에 적힌 산 높이⇒‘푯돌’로 적음
□ 간추린 발자취(제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2023. 05. 06(토) 22:30 버스, 세연정 앞 떠남
○ 2023. 05. 07(일) 02:50 버스,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한국 애니메이션고교 앞 닿음.
○ 03:03 길 나섬.
○ 04:25 검단산(657m-'푯돌‘)
○ 05:25 고추봉(두리봉)
○ 06:10 용마산, 아침밥
○ 06:29 아침밥 먹고 나섬.
○ 08:10 마을에서 산으로 접어 듦.
○ 08:27 산등성(이) 올라섬.
○ 09:25 남한산(522m-‘푯돌’)
○ 10:20 남한산성 북문 남쪽 정류장, 산행 끝냄.
□ 줄거리(제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진잎 깔린 길, 자연의 위력을 느꼈다 -
버스는 2023. 5. 7(일) 02:50쯤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한국 애니메이션고교 앞에 닿았다.
별로 준비 없이 있는 사이 다른 대원들은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차에서 내려 03:03쯤 길을 나섰다.
길을 나서 1시간 22분쯤 뒤 검단산(657m-‘푯돌’)에 닿았다.(04:25)
검단산 조금 못 미친 지점에서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한기를 느꼈다.
어느 산악회장 말이 떠올라 등 가방[배낭] 안에 넣고 온 웃옷[재킷]을 꺼내 입었다. 한기를 떨칠 수 있었다.
등 가방에는 그 웃옷 말고도 다른 웃옷이 2개나 더 있었다.
캄캄한 새벽이라 검단산에서 둘레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검단산에는 지난밤을 이곳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데서 이렇게 텐트를 치고 밤을 나는 것도 낭만과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검단산에서 거의 1시간 쯤 뒤 고추봉-두리봉이라고도 한다-에 닿았다.(05:25)
검단산 일원 길에는 이제 막 피어났던 나뭇잎이 줄기째 부러져 길에 널브러져 있었다.
고추봉에서 거의 45분쯤 뒤 용마산에 닿았다.(06:10)
간단하게 아침밥을 먹었다.
아침밥을 먹고 용마산을 나서(06:29) 갈림길이 몇 번 나왔다. 어느 푯말에 오른쪽으로 가면 벌봉이 7km 남짓, 바로 나아가면 10km 남짓이라고 써놓았다.
언제나 버릇처럼 먼 곳을 택하여 바로 나아갔다. 그러기를 두세 번을 먼 곳으로 표시된 앞쪽으로 나아갔다.
「희망봉」까지 갔다가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갔다.
갈림길 세 번째였던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오른쪽 마을 쪽으로 내려섰다. 솔향기님이 몇 번 전화를 했다.
더 내려가자 길이 흐릿해지더니 거의 길이 없어지고 말았다.
제법 우랜 시간을 헤맨 끝에 마을로 내려서 고가다리 같은 곳 아래를 지나 무조건 오른쪽으로 걸었다.
남한산 산행 들머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무작정 걸으면서 몇 번을 그곳 사람들에게 물어 본 끝에 겨우 들머리를 찾아 들었다.
용마산을 나선지 거의 1시간 40분 만에 흐릿한 들머리로 들어섰다.(08:10)
이 들머리에서 7분쯤 뒤 제법 구분이 되는 산등성(이) 길을 찾아 계속 걸었다.
솔향기님의 계속된 전화와 앵강님이 연신 휴대전화로 길을 확인하면서 찾은 길이었다.
산등성(이)에 접어들고 나서 거의 1시간쯤 뒤 남한산(522m-‘푯돌’)에 닿았다.(09:25)
산성은 보수 공사를 하느라 쇠 가람막을 쳐놓았다. 우리가 하필 공사 기간에 남한산을 오른 것이었다. 나라 방비와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조선 조정, 인조의「삼전도의 굴욕」을 떠올렸다. 역사의 교훈을 오늘 우리는 잘 새기고 다시는 그런 비극이 없도록 잘 해나가고 있는 것인가?
솔향기님의 전화 지도로 성곽 길을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둘레 풍경과 나무 하나하나까지 살펴보면서 걸었다.
남한산 푯돌이 있는 곳에서 거의 55분 뒤에 주차장에 닿아(10:20) 산행을 마쳤다.
산행을 무사히 잘 이끈 솔향기님의 노고에 감사 인사를 전한다.
며칠 전 강풍이 훑고 간 처참한 흔적들
피어나자 마자 잘려나간 나뭇잎들
산행 내내 이런 것을 보아야 했다
물푸레나무
마치 태풍이 휩쓸고 간 듯한 현장
거센 바람에 나뭇잎이 뒤틀리고 오그라들고...
용마산
팥배나무
노린재나무
참나무. 상수리나무라고도 한다
바람에 수난을 당한 은방울꽃
희망봉
우리는 여기서도 더 앞으로 나갔다
초피나무
잎이 마주보고 나 있다
잎이 어긋나면 '산초나무'다
시닥나무(?)
개복숭아나무[복사나무]
쓴너삼
'고삼'이라고도 한다
손이 흔들려 흐릿하다
광대싸리
누리장나무
보리똥나무
민가에 심어놓은 분꽃나무
분꽃나무
층층나무
층층나무
노간주나무
손이 떨려 흐릿하다
함박꽃나무(?)
걷기 좋은 호젓한 길이다
□ 그밖에
◎ 흘러가는 생각을 잠깐 붙들고...
(1) 준비 부족
5/5(금) 황매산 일원 등산을 하면서 비에 젖은 옷가지며 사진기 가방 등을 말리면서 언제나 넣고 다니던 적바림용 종이를 모조리 빼놓고, 집을 나선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평소 같았으면 언제나 등 가방에 따로 적바림용 종이와 볼펜을 넣고 다니는데 이것도 비에 젖어 습기를 말리느라 빼놓고 그냥 집을 나섰던 것이다.
여러 모로 기록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
(2) 들꽃이 거의 없었다
웬일인지 이번 검단산~남한산 구간에 들꽃이 거의 없었다.
수도권 과밀화와 산업화로 공기 오염이 심해 들꽃이 자랄 수 없는 공기와 토양으로 변한 탓일까?
아니면 며칠 전 센 바람에 들꽃이 뿌리째 뽑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것일까?
어떤 까닭인지 걷는 내내 궁금했다. 그렇다고 어디에 물어볼 곳도 없었고...
이번 구간이나 전국 어디 산이나 자라는 나무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무 때문에 풀이 잘 자라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될 것 같았는데...
들꽃을 많이 찍어올 욕심은 이루지 못했다.
(3) 나뭇가지, 나뭇잎 대량 살상 사태
검단산 일원 호젓한 산길은 수를 셀 수도 없이 많은 나뭇가지와 이제 갓 피어난 나뭇잎이 땅에 떨어져 차마 그 애석한 녀석들을 밟고 가기가 여간 민망스럽지 않았다.
아마도 지난 2023. 5. 4(목)~5. 6(토) 이 나라 이곳저곳을 휘젓고 지나간 센 바람이 막 숨을 틔우고 세상에 나온 여린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몸통에서 분리시킨 것 같았다.
속절없이 재앙을 당한 나무들. 이것을 냉혹한 ‘자연의 질서’라고 해야 할지, 때 아닌 봄에 불쑥 나타나 최악의(?) 심술을 부린 ‘태풍급 강풍’ 탓이라고 해야 할지...
말없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이었지만 애석한 마음을 거두지 못했다.
얼마나 많은 나뭇잎과 나뭇가지, 순이 길과 온 사방에 널려 있었으면 불현듯 색다른 들꽃이나 풀이 돋아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그들 곁으로 다가가려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가가려 하면 '아 강풍에 희생된 나뭇잎과 나뭇가지‘였지...하고 깨달았다.
가지에서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었던 나뭇잎들은 바람에 뒤틀리고 쭈그러져 잎만 보아서는 도대체 무슨 나뭇잎인지 분간이 안 되는 나무가 많았다. 부풀려서 말한다면 ‘초토화’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존경하는 전우익 선생을 생각했다. 선생은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전우익, 현암사)에서 겨울에 진잎[낙엽]이 지거나 잔가지가 말라죽는 것은 겨울에 수분이나 영양 보충이 원활하지 않을 것을 대비해 미리 자신을 비우는 행위에 견주어 말했다.
이번에 목격한 ‘나뭇가지, 나뭇잎 대량 살상 사태’를 선생의 비유에 빗대어 생각했다.
그런 작은(?) 희생이 없었으면 몸통 자신이 희생될 수도 있었을 것이므로....
우리 인생살이는 어쩌면 식물의 그런 자기 관리 원칙[법칙]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아등바등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많이 가진 자는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약자의 작은 몫도 빼앗으려 들지는 않는지....
호젓한 숲길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4) 둘레 구경 기회 놓친 새벽 조기(早期) 등산
다른 곳은 몰라도 검단산에서는 둘레에 있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하나로 모이는 양수리, 명지산, 연인산, 용문산, 삼각산[북한산], 도봉산 따위가 잘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새벅에 검단산을 올랐고, 그 뒤로는 높은 산이 없어 둘레 경치를 구경할 수 없어 아쉬웠다, 더러 눈이 밝은 분들은 남한산 쪽에서 볼 수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지리에 익지 못한 나는 보지 못했다.
(5) 아들 격려 기회 잡지 못했다
작은 회사에 다니는 작은 아들이 평소에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내가 수도권으로 등산을 가는 길에 한 번 불러 얼굴도 보고 ‘힘내라’고 격려할 기회를 가져볼까 생각했으나 포기했다.
보지 않아도 일주일 피로를 푼답시고 어디 캠핑을 갔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요즘 캠핑에 푹 빠진 아들은 금요일 퇴근하여 2박 3일 캠핑을 다니는 모양이었다.
언젠가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아들에게 “운동이나 하거라...”했다.
내 얘기를 들은 아내는 “자기는 산에 빠져 사시사철 산에 가면서 아들도 취미생활을 하는데, 그게 피장파장이지 뭐....”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나도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미련할 정도로 장시간 근무에 지친 아들을 이제껏 한 번도 제대로 위로해 주지 못했다.
지난 세밑에 회사 고위 인사가 아들에게 격무를 보상이라도 해 주는 차원에서였는지 모르겠지만 현 직급보다 2~3단계 껑충 승진을 시켜 주요 보직을 주겠다고 하는
제안을 받고 혼자 며칠 고민을 했다고 한다.
며느리에게 그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아내는 “무조건 승진을 해야 한다...”고 했으나 뒤늦게 그런 말을 들은 나는 그 제안에 찬성하지 않았다.
그렇게 된다면 승진 기회를 놓친 다른 동료나 선배들이 얼마나 서운하고 가슴 아파할 것이냐는 것, 쉽게 높은 자리에 오르면 빨리 내려올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들이대며 내가 찬성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지금은 승진이나 급여에 있어 ‘연공서열’보다 성과나 실적, 업적을 중요시해 기수 파괴, 연공서열 타파 같은 말을 많이 쓰고, 실제 그렇게 운용하기도 한다. 급여 책정에 있어 ‘성과급’을 중요시 한다.
‘성과급’은 대학원 졸업 첫 주제였다.
성과급 제도를 시행하려면 합리적이고 공정한 평가 체계를 먼저 갖춰야 하는데, 그런 제도가 아직은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아들에게 ‘수용’을 강권했으나 나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내 말을 한 번도 거역해 본 적이 없었던 아들은 결국 회사 최고위직에게 ‘극구 사양’ 의사를 전달했고, 결국 아들 승진은 이뤄지지 않았다.
두 번 다시 오기 힘든 승진 기회를 걷어찬 아들을 두고, 아내는 나에게 불평을 쏟아냈다.
“아들이 어찌 그리 아버지를 빼닮았는지 모르겠다. 죽도록 일만 하고 승진이나 이른바 출세 기회는 남에게 양보만 하느냐...” 등등...
그 욕을 듣고도 나는 대꾸할 생각을 안 했다. 어쩌면 내 삶의 궤적을 그대로 걷고 있는 것 같은 아들에게 “힘내라. 다른 사람 눈에서 눈물을 나게 하는 것은 내가 권장할 일이 결코 아니다. 대신 건강을 잘 돌보기 바란다.....”, “성실함은 언젠가 보상을 받는 날이 있다...”는 말만 했다.
혹시 격무에 시달리면서 의기소침해 있을 아들 등이라도 두들겨 주고 내려왔으면 마음이 편했을 것을....
(6) 넋두리 혹은 어설픈 제안
아래에 늘어놓는 넋두리는 산악회를 비난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결코 아님을 밝혀 둔다. 오히려 발전적인 고민을 토로하는 말이라고 믿어주기 바란다.
산행 거리 16km 정도 길은 조금 무리하면-귀가 때 대중교통을 놓치고 택시를 타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인다면-당일로 갔다 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무박으로 떠나는 산행. 그것도 전날 23:00도 되기 전 인제대 역을 떠났다. 인제대 역을 기준으로 다음 날 00:30쯤 출발로 늦추면 어떨까 싶다. 직접 물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으나 들리는 말로는 출발 시간을 늦추면 대원들이 집에서 조금 눈을 붙인다는 것이 늦춘 시간에 나오지 못하는 일이 있어 늦추지 못한다는 요지의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새벽에 걸었던 거의 3시간 정도는 둘레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그냥 발만 놀린 형국이었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15시간 이상 걷는 구간이거나 백두대간 입산 금지 구역을 몰래 뛰어넘는 산행이 아닐 바에는 7시간 정도 산행은 무박 산행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조금 더 효율적이고 실효성 있는 산행을 위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 보고 중지를 모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이 구간에 있었던 나무(더 많은 종류가 있었을 것이나, 내가 아는 것만 기록함)
○ 고추나뭇과 갈래 : 고추나무(?)
○ 노린재나뭇과 갈래 : 노린재나무
○ 녹나뭇과 갈래 : 새앙나무[아구사리, 생강나무, 단향매(檀香梅)]
○ 단풍나뭇과 갈래 : 단풍나무, 신나무(?)
○ 때죽나뭇과 갈래 : 때죽나무(?)
○ 마편초과 갈래 : 누리장나무, 작살나무[자주(紫珠)](?)
○ 목련과 갈래 : 함박꽃나무(?)
○ 물푸레나뭇과 갈래 : 물푸레나무
○ 보리수나뭇과 갈래 : 보리똥나무[보리수나무]
○ 소나뭇과 갈래 : 소나무
○ 옻나뭇과 갈래 : 개옻나무, 붉나무
○ 운향과 갈래 : 광대싸리[호자03(楛子)ㆍ황형02(黃荊)], 초피나무[제피나무]]
○ 인동과 갈래 : 괴불나무, 덜꿩나무(?), 병꽃나무, 붉은병꽃나무[물병꽃나무]
※ 펜션같은 집 뜰에 키우는 ‘분꽃나무’를 보았다.
○ 자작나뭇과 갈래 : 사스래나무(?)
○ 장미과 갈래 : 개복숭아나무, 국수나무, 산벚나무, 이스라지[당옥매, 참옥매화](?), 팥배나무[감당 01(甘棠), 왕잎팥배, 왕팥배나무]
○ 진달랫과 갈래 : 진달래[진달래꽃, 진달래나무, 두견, 두견화, 산척촉], 철쭉[철쭉나무, 척촉(躑躅), 산객(山客)]
○ 참나뭇과 갈래 : 굴참나무, 상수리나무[참나무], 신갈나무
○ 측백나뭇과 갈래 : 노간주나무
○ 층층나뭇과 갈래 : 층층나무
◎ 이 구간에 있었던 풀
○ 백합과 갈래 : 둥굴레, 애기나리(?), 은방울꽃
○ 콩과 갈래 : 쓴너삼[고삼(苦蔘), 고식((苦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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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월 혼산으로 광주.남한산 하남.검단산 종주 계획은 했는데 여의치 않아 각각 인증 했습니다
검단산 정상에는 텐트 안에서 막걸리.라면.커피 등 팔고 상시로 설치되어 있답니다
정상에서 본 팔당호 주변 야경이 멋지다고 해요
무박산행 한길님 앵강님 수고하셨습니다 ^^
천천히 기다렸다가 같이 갔으면 좋았을 것을 혼자 외롭게 걸으셨군요.
그날 텐트가 여러 동 있었는데 그곳에서 밤을 세우는 사람들.
그것도 낭만이고 추억 거리가 될 것 같았습니다.
이른(?) 새벽이라 둘레는 보이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길님! 이번산행 고생하면서 꽂들의 향연에 대한 열정은 대단합니다. 종주산행 수고하셨습니다.
조금 더 걸을 욕심이 좀 늦게 만들었습니다.여전한 열정 보기 좋고, 분실물 잘 보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무박 2산 자세한 후기
감사합니다
나무에 이름표 붙혀 주시고
자연박사님 ㅎ
수고하셨습니다 ^^
아이고. 과분한 명칭까지..
우리가 가기 전 바람이 세게 불어 나뭇잎들이 이제 잎을 풍성하게 키우려 했을 어린 싹들을 무참히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모습이 여기저기 있었습니다.
그 나무들 일부에만 이름을 불러 보았을 뿐입니다.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이
강풍에 휘어지고 떨어진 것은
말씀하신 것처럼
예측 불가한 환경의 변화를
스스로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였지 않았을까요.
야생꽃과 나무들은
척박한 돌밭, 후미진 골짜기와 바위틈,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추운 겨울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놀라운 생명력이기에
강풍에 내어놓을 것은 내어놓고
스스로를 지켜낸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의 섭리겠지요...
다 큰 아드님이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지 않고 수용함은
한길님의 삶을 대하는 모습이 본이 되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대면 격려를 하지 못함은 아쉬우나
아버지의 그 맘을 충분히 알고 있지 않을까요~^^
글을 읽으며
잠깐 저의 집 아이들과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 보니
많은 부분에서 반성됩니다..ㅠ
사람들이 복잡한 자연계의 여러 현상을 쉽게 설명하려고 '자연의 섭리'라고는 해도 첫새벽부터 낮까지 아수라장(?)이 된 산길은 처참했습니다.
바람이라는 거대한 힘이 심술을 부려 이제 싹을 틔우고 다 피어나지도 못한 나뭇잎과 나뭇가지들을 할퀴고 간 현장을 사고가 일어난 몇 시간 뒤에 목도할 줄이야 꿈에도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강풍이 분다는 정도였지...
그 강풍을 이겨내고 목숨을 부지한 잎과 풀들이 몸이 강제로 뒤틀림을 당하면서도 살기 위해 몸부림을 쳤을 터이니 그 아픔이 얼마나 컸을까 ?
희생된 새싹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니 목숨을 부지한 나뭇잎은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 튼튼히 자라고 몸통에 영양분도 제대로 공급하는 공급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식에게는 늘 "바쁜 가운데도 짬을 내어 책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어야 자신은 물론 조직에도 보탬이 된다." "책을 읽지 않을 핑곗거리를 찾기보다 ,책 읽을 시간을 만들어 실천하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그 실천 여부는 저들 소관임도 알고 있습니다.
오늘 양보가 내일의 더 큰 성취를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격려하고픈 마음입니다.
고맙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귀한글 잘 새겼지요
저는 미용인생 38년 인데요
항상 저렴한 가격으로 맘편하게 성심껏 일 하고 있습니다
대신 머릿결이 저에게는 일의재료 이기에 결을 아끼면서 일년 6개월 3개월 후에 방문하시라고 하거나 또는 금방오신분을 거절하는 경우가 빈번하답니다
그런 고집으로 삶을 살고 있지요
무척 곧은성품이 지금 단아한 모습과 닮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어쩌다 보니 제 자랑 같이 되어 부끄럽습니다. 자식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과연 쓸모가 있을지 생각하기는 합니다. 그러면서도 '정도를 걷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바른 일"이라는 점은 늘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자신과 사회를 위해서 유익한 일이라는 믿음은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분야를 얇게 아는 것 보다는 어떤 일이건 한 우물을 깊게 파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굳은 믿음 성원합니다.
산에서 자주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