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적 성숙과 혀 길들이기 / 야고보서 3:1-8 / 이찬수 목사
혀를 반드시 통제하세요!
언어가 인간관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를 설명하려고 지어낸 얘기 같은데요,
저는 지난 한 주 동안에 본문 말씀을 가지고 말씀을 준비하면서
아, 이게 그저 웃기기만 한 게 아니라 현실 세계에도 아마 저런 일들이 많을 거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여러분, 이 언어라는 것이 이처럼 인간관계에 굉장히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런데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언어가 타인과의 관계에서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말하는 그 사람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제가 예전에 한 번 언급해 드렸던 그 '마틴 샐리그만' 박사라는 심리학자의 말을 인용한 적이 있는데요, 이렇습니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하고, 낙관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언어습관을 고쳐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내뱉는 말이 이게 다른 사람 귀에도 들어가지만, 내 귀에도 들어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 말의 습관이 참 나쁜 분들이 계세요. 뭐 말만 하면 죽겠다는 분이 계세요.
'미워 죽겠어', 이건 이해가 되는데... 또, '좋아서 죽겠다' 그래요..
'좋아 죽겠어' 모든 게 다 죽겠어 하는 그런 것들은 썩 좋은 언어 습관은 아니라는 겁니다.
'헤럴드 셔먼'이라는 사람도 비슷한 말을 했는데요.
"불행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사람들은 긍정적인 말로써 운명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사람들이다."
기왕에 내게 이런 가슴 아픈 일이 닥쳤는데, 이거를 가지고 우울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분들이 있습니다.
'뭐 어떡하겠냐고.. 기왕에 그렇게 되었는데...', '뭐 한 번 부딪쳐 봐야지 뭐...'
그 말이 자기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이 전문가들의 조언이 문학적으로 연구를 해도 그런데요,
성경도 똑같은 그런 말씀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인데요, 야고보서 3장 2절입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 "그 사람의 말이 그 사람의 행동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그래서 말에 실수가 없으면 그런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지금 야고보서가 하고 있는 겁니다.
1절에 보니까, '어지간하면 선생 되지 마라' 이런 말씀이 나오잖아요..
왜, '선생 되지 마라' 이렇게 조언하는 것을 보니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선생이 되면 말을 많이 하잖아요.
1절에서 '어지간하면 선생 되지 마라' 그 말씀 나오고, 바로 2절에서 말 많은 것에 대한 내용이 나오거든요..
말 할 수 밖에 없는 직업이 선생이고, 말을 많이 하면 실수하게 되니까
그래서 그게 남을 잘 가르치고 못 가르치고보다 자기 자신을 향하여 던져주는 성경의 말씀입니다.
어쨌든, 오늘 본문 2절에서 이 "말의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이런 큰 선포를 하고는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3절)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절)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 인간의 혀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잠언 18:21절에 보니까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 이렇게까지 성경이 이 언어 사용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자기가 내뱉는 말들을 살펴봐야 됩니다.
저는 주일에 설교를 하고 나면, 꼭 제가 그 다음날 제 설교를 들어요.
여러분,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 놓고 들으면 소리가 막 데게 이상하게 들리잖아요.
설교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제 설교를 듣는 건, 그거 데게 고통스러운 거예요.
'아니, 왜 이렇게 표현했지?'
'이거 군더더기가 왜 이렇게 많아?'
제 설교를 제가 듣고 있으면, 굉장히 마음이 복잡하고 힘듭니다. 그래서 듣는 거예요.
제가 내뱉는 말들을 점검하고, 체크하고, 또 말의 태도도 돌아보고,
이런 시간들을 가져야 제가 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기 때문이거든요..
여러분, 한 번 부부간에 대화할 때나,(요즘은 녹음 기능이 워낙 쉽게 돼 있잖아요.)
한 번 녹음해 놓고 그걸 한 번 들어 보시면, '아, 내가 남편에게 아내에게 생각보다 무례하네.. 왜 말을 이렇게 하지?'
그게 확 느껴지는 경우들이 많을 거예요. 말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언어 사용과 관련해서 우리 모두가 가슴 아픈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언어가 우리에게 이렇게 중요한데, 불행한 것은 인간이 타락할 때 언어도 함께 타락했다는 거예요.
이게 참 가슴 아픈 이야깁니다. 오늘 본문이 이걸 엄청 강조하고 있습니다.
(6절)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 혀가 타락했다는 말입니다.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 무서운 경고 아닙니까..
여러분, 더 심각한 건 그 다음 7절과 8절에 나옵니다.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 이거 심각한 것 아닙니까...
우주도 정복했다 그러고, 뭐 엄청나게 지금 인간이 여러가지가 발전이 됐다 그러는데,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여전히 인간이 갖고 있는 연약함은 자기 혀를 다스릴 수 없다는 겁니다.
가끔씩 엄청난 명사(유명한 분)가 입을 잘못 놀리다가 인생 그냥 망하는 경우들을 종종 우리가 언론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이 사실을 인식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어떤 사람 보면 이런 말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나는 말 실수가 없는 사람이야' - 그게 말 실수입니다.
자기에 대하여 너무 자신감을 갖고 있다가, 이런 분이 큰 거 한 번 말 실수 해 가지고 그렇게 패가망신 하는 겁니다.
항상 우리는 이 부분에 두려워해야 됩니다.
오늘, 원리 하나 우리 정확하게 인지하셔야 됩니다.
인간의 죄성이라는 것은 아담의 타락 이후로 인간이 타락할 때, 우리 언어도 같이 타락했다는 거예요.
우리 말, 그래서 아무리 내가 노력을 해도 이런 겁니다.
뉴스에 한 번씩 보면, 음주 단속에 걸리면 많은 사람들이 '나 술 안 마셨다' 그래요.
인지를 못 하는 거예요. 너무 많이 마시면 그렇습니다.
그러면 경찰관이 내려와 보라 그래요. 이리로 똑바로 걸어가 보라 그러면, 얼마나 긴장되겠냐고..
옆에서 지금 경찰관이 지켜보고 있는데, 자기는 지금 똑바로 걷는데, 어떻습니까?
삐뚤빼뚤 삐뚤빼뚤 걷는 거예요. 몇 걸음 안 가보고 그냥 그만 걸어도 된다 그래요..
우리가 쓰는 언어가 그런 거예요. 난 지금 예의 바르게 똑바로 말한다 그러는 거예요.
교회에 상처 받은 사람이 많아요. 교회는 상처 제조기예요.
그래서 지금 아마, 교회에서 상처 받아 본 경험 있는 사람 손 들어 보라 그러면, 다 드실 거예요. 다...
저도 들어요.. 다 상처를 받는 거예요.
여러분, 누가 교회에서 대놓고 '내가 저 사람을 모독을 줄 거야' 그렇게 해서 말하는 사람 없는데,
부지불식 간에 상처를 주는 거예요.
왜 그렇다고요? - 다시 말씀드립니다. 인간이 타락할 때, 요 혀도 같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음주 운전 아니야'라고 생각하는데, 너무 많이 마셔 가지고...
이 똑바로 걷는다 생각하는데, 삐뚤빼뚤 걷는 것, 이게 우리 혀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가급적이면 선생 되지 마라'
목사가 되고 나서 그 말씀이 눈에 들어오는데 어떡합니까.. 늦었지요.. 그래서 항상 조심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런 말 들어 보셨습니까? '혀 아래에 도끼 들어 있다'
참 옛 어른들의 지혜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요 혀 아래 도끼가 들어 있어 가지고 의도적으로 그런 것 아닌데,
아내를 좀 격려해 주고 싶어서 내뱉었는데 그게 도끼로 상처를 주는 일이 많은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저를 신뢰하지 않아요. 저는 지금 설교를 32년째 하고 있거든요. 햇수로 33년째 설교를 하는데요,
어느 정도 이제 설교 좀 익숙한 때가 됐는데도 오늘 아침을 포함해서 저는 모든 설교 내용을 토씨도 안 남기고 다 적어요.
점까지 다 찍어서 다 적습니다. 요대로 책 내면 돼요.. 이거 힘듭니다. 이거 막 문장 다듬는데 시간 엄청 걸리거든요..
그런데, 왜 제가 토씨 하나 안 남기고 빼곡히, 그래서 이게 한 열 두장, 열 석장 정도 그렇게 됩니다.
이제 넉 장 째니까, 대충 어느 정도 가겠거니 짐작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33년 설교하면서도 왜 토씨 하나 안 남기고 다 찍는지 아세요? 요 혀 밑에 제가 도끼가 있어요. 그래서 기도하면서
막 수없이 다듬고 다듬고 다듬고 해서 전하는 것만 전해야지, 쓸데없이 툭 튀어나오면 이게 다 상처 되는 설교가 돼요.
그래서 저는 이 원고 절대 안 벗어납니다.
웃기는 것도, 그냥 원고에도 없는데 즉석에서 웃겨 가지고 웃긴 게 별로 없습니다.
이런 예외가 가끔씩 있는데,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은 실수하지 않으려고 그래요. 요 혀 아래에 도끼가 있기 때문에,
이게 바로 인간의 원죄 이후로 이 혀가 타락했다는 그 얘기를 똑같이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성경에 이 부분을 경고하는 말씀이 엄청 많은데,
정말 저를 섬뜩하게 하는 한 구절을 이번에 제가 새로 발견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6-37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 공동번역은 너무너무 이 말씀을 리얼하게 번역을 했습니다.
"잘 들어라. 심판 날이 오면 자기가 지껄인 터무니없는 말을 낱낱이 해명해야 될 것이다.
네가 한 말에 따라서 너는 옳은 사람으로 인정받게도 되고 죄인으로 판결받게도 될 것이다."
- 왜 선생 되지 말라고 해요?
어지간하면 목사 안 하는 게 자기한테는 좋아요. 제가 심판날에 얼마나 많은 책임을 져야 되겠냐고요..
"너, 그때 그 2003년 3월 15일에 그 박집사 만났을 때 그 왜 그 쓸데없는 말을 해 가지고 상처를 왜 줬니? 해명해 봐" 하면,
기억도 안 나는 걸 가지고 아마 추궁을 당할 것 같으니까, 등골이 오싹한 것 아닙니까? 모두가 다 말 조심해야 돼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 성경 말씀 한 마디라도 허튼 게 없다고 믿는다면, 늘 우리는 말 하는 것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서 요즘에 교역자회의 좀 길게 하고 가면, 회의 끝나고 복도로 가면 저 혼자 독백을 합니다.(저한테 하는 이야기예요)
'그 참 말 디게 많네..' 저 보고 하는 얘기예요.. '말 디게 많네...'
요즘 저는 후배 목사님들을 보면서 요새 새삼스럽게 다짐하는 게 있습니다. "입은 다물고, 지갑을 열자"
요새 제가 예전에 비해서 부목사님들 밥을 자주 좀 사 주는 편이예요. 이것 때문입니다. - "입은 닫고 지갑을 열자"
제가 이것과 관련한 글을 우연히 읽었는데, 너무너무 제게 와 닿는 겁니다. 여러분 모두에게도 해당될 겁니다.
이 글을 쓰신 분의 주장이 뭐냐 하면, 이제 누구랑 대화하다가 자기 입에서 이 말이 나오면, 빨리 대화를 중단해야 된다는 거예요.
자기 입에서 이 말이 나오면...
그것을 몇 가지로 분류했는데, 너무 재밌는데도 또 너무 와 닿아요.
혹시 여러분 누구랑 대화하다가 여러분 이 말이 나오면 즉시 대화를 중단해야 되는데,
첫번째가,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 봐"
이 말이 떨어지자 마자 상대방이 기분 나쁠 준비가 돼 있는 거예요.
대화하다가 여러분의 입에서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 봐"라는 말이 탁 나오면, 빨리 대화를 중단해야 됩니다.
두번째로, "이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여러분 입에서 이 말이 나오면, 안 하려고 했으면 하지 마세요.
안 하려고 한 것은 뭔가 이유가 있기 때문인 거예요.
세번째로, 이 말이 나오는 순간 여러분 대화를 딱 중단해야 되는데, 이겁니다.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
그 말이 나오면서 지금 상대방은 섭섭할 준비가 돼 있는 거거든요..
그거 말고도요, "할 말은 해야겠어" - 절대 하지 마세요...
"너에게 충고 한 마디 하자면.."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인데.."
* 사랑하는 엄마 여러분, 오늘 아침부터 하셨지요?
제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좀 기다려주고 내버려두니까 자기들이 알아서 하는 것들이 많은데,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인데"라고 했던 것들이 꽤 많이 애들에게 상처가 되는 거예요.
아니, 부모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 왜 부작용이 생긴다고요?
-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계속... 인간이 타락할 때, 입술도 같이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는 분별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말은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그래서 죄성을 가진 우리는 너무너무 좋은 말을 너무너무 기분 나쁘게 전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예요.
아마, 모든 사람들이 다 그래요.
'아니, 저렇게 좋은 말을 어떻게 저렇게 기분 나쁘게 할 수가 있지?' 그게 인간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가슴 아픈 상처 되는 거의 대부분의 원인은 전부 다 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은요, "할 수 있는대로 말 좀 줄여라" 이 충고가 많습니다.
잠언 한 번 읽어 보세요.
"말 좀 줄여라" - 이게 굉장히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오는 성경의 충고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원리를 알기 때문에
분당우리교회 개척 초기에 그냥 막 온 사력을 다해서 캠페인처럼 한 게 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그게 아무리 꼭 필요한 조언이고 좋은 말이라 하더라도 무례하게 말하는 것은 접수를 시켜주지 말자",
그게 분당우리교회의 초기의 정신이었습니다.
어떤 집사님하고 대화를 하는데, 저한테 조언을 해 주시는데 데게 도움이 되는데요,
그런데 굉장히 무례하잖아요. 그러면 끝까지 안 듣습니다.
'집사님, 잠깐만요. 내용을 들어보니까 너무나 좋은 내용인데
왜 그 귀한 하나님의 뜻을 그렇게 그 난폭한 사탄의 그릇에 담아 가지고 하시느냐고, 이건 접수를 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좀 차분해지시고 정돈이 되시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시죠.'
설교 시간에도 이걸 엄청 강조했습니다.
교회를 딱 개척하려고 준비하니까, 21년 전이지요.. 성가대를 없애라는 거예요. 아니, 성가대를 하지 말래요..
"성가대를 만들지 말아요. 많은 선배님들이 그렇게 조언했습니다."
"왜 그런대요?" 그러니까, 노래는 잘 하는데, 모든 소문의 진원지가 성가대이고,
모든 불평 불만이 성가대에서 다 나온다는 거예요.
'성가대 만들지 마라'
그런데, 저는 첫 주일부터 성가대 없이 예배 어떻게 드립니까?
그리고 제가 자랑하고 자부하는 우리 성가대는 그렇게 우리 선배 목사님들이 우려하는 그 분위기가 아니예요.
그런 불평 이런 진원지가 상가대입니까? 난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나 없을 때만 하나? ㅎㅎ
저는 우리 성가대가요, 참 너무 감동입니다.
모든 일은 그 수군거리고 불평하는 말의 진원지가 찬양대가 아니고 우리 모든 입이 다 진원지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이만 명이면, 이만 개의 진원지가 있고, 모두가 다 잘못된 말이 나올 수 있는 진원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를 만드는 겁니다.
저는 최근에 너무너무 감사하게 들었던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우리가 몇 달 전에 일만 성도 파송 운동을 했잖아요..
이제 절반은 분당우리교회 출신 부목사님 중에서 청빙을 했고,
나머지 절반은 타 교회에서 사역하시는 분을 모집공고를 내서 청빙을 했는데,
타 교회에서 청빙된 목사님(일년 반을 같이 했으니까 다 이제 우리 식구지요.)
타 교회에서 청빙된 목사님이 저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분당우리교회 분립개척 하고 나서 보니까, 분당 우리교회 순장님들에게 특징이 있다는 거예요. 말을 조심하더라는 거예요.
'그렇게 조심하면서 조언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아,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분당우리교회 앞으로도 계속, 저는 이 교회 훈련 받았다 그러면,
초신자들에게까지 내가 그것 요구하지 않아요. 성숙해 갈 거예요.
그러나, 적어도 순장이라면, 적어도 모태신앙이고 중직자라면,
적어도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요?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야 됩니다"(시편 141:3)
성경이 그런 조언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여러분, 지금 이 흐름을 아셔야 됩니다.
왜 이 말씀이, 이 본문이 이 주제가 지금 다루어져야 되느냐 하면, 우리는 4주 전부터 [기초 다지기 6가지 항목]을 다룰 거예요.
가장 기본적으로, 영적인 기초 다지기 여섯 가지 항목 중에서 제일 첫번째가 뭐였습니까?
* 말씀 묵상입니다.
말씀을 묵상해야 돼요. 말씀을 필사, 그리고 말씀을 암송, 이것이 첫번째 항목입니다. [말씀 묵상]
여러분, 이제 하루에 한 구절 묵상 핸드북, 일지 쓰고 계시나요?
'작심삼일'이니까, 4일째 되는 날 분실했을 것 같은데요.. 괜찮아요.. 오늘 예배 마치고 또 하세요...
그래서 성경을 한 구절이든 두 구절이든 그 말씀을 머리에 집어 넣고 하루를 시작하자는 거예요.
그 다음에 두번째 항목이, [기도 훈련]
이 "말씀 훈련"과 "기도 훈련"이 지난 주에 다루었던 "공동체성 회복 훈련"으로 연결해야 되는데요,
공동체가 건강해지려면 그 구성원의 언어가 달라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 다락방이, 그 소그룹이, 그 성가대가, 그 찬양대가, 그 주일학교 교사모임이, 건강한 공동체가 되려면 그 구성원들이
※ [말씀을 묵상하고], ※ [하나님 앞에 기도로서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서]
언어가 건강한 사람이 모인 공동체가 그게 건강하다는 거예요.
제가 지금 이 기본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구구단도 못 외우면서 뭐 자꾸 미분 적분 풀겠다 그러는 것, 그게 한국교회라 생각을 해요.
구구단도 못 풀면서 무슨 방정식 풀겠다 그러시느냐고요...
가장 기본적인 것, 입술에 파수꾼 세우는 것, 이게 구구단 외우는 것과 똑같습니다.
말의 통제가 안된다면... 목사 안수 받으면 뭐합니까?
"끊임없이 입술에 재갈을 물려야 된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여러분, 기도가 훈련이라고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똑같습니다. 입술 사용도 훈련입니다. 훈련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 이 언어 훈련(입술 훈련)과 관련해서 두 가지 균형에 대하여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여러분, 우리가 언어 사용과 관련된 두 가지 훈련을 해야 되는데, 균형의 문제입니다.
첫번째 훈련이 뭐냐, '말씀 묵상과 언어 절제 훈련'입니다.
야고보서 3:2-3절입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 저는 여기,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이유"를 설명한 본문 3절을 보면서 시편 39:1절이 툭 떠오른 겁니다.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 말을 잘 재갈을 물려야 주인이 원하는 대로 따라 가듯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입에 재갈을 물려야 된대요.
그리고, 잠언 10장 19절,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 제가 "제어하다"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 보니까,
'감정, 충동, 생각 따위를 막거나 누르는 것' - 이걸 '제어하다'라 그러더라고요..
그러니까, 입술에 파수꾼을 세운다는 것은 나를 통제하는 거예요.
그냥 내키는 대로 막 다 그냥 그렇게 떠들어대는 게 아니라 나를 제어하는 겁니다.
그래서 시편 141편 3절,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 지난 주에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렸던 김하중 장로님이 (대통령 의전 비서관)으로 일하실 때,
그 장로님에게 '원칙이 있다, 철칙이 있다' 그랬잖아요..
'대통령께 보고하러 들어가기 전에 나는 반드시 기도하고 들어간다'
깜빡 하고 들어갔다가, 막 그 어려운 자리에서 '아, 내가 지금 뭘 깜빡 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나와서까지 기도하셨던 기도제목이 뭐였다고요? "하나님, 오늘도 정직함과 지혜를 주시기 원합니다."
왜, 그 장로님이 대통령 만나기 전에 기도해야 되느냐고요?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는 거예요. 실수하지 않도록......
예전에 그 『말 그릇』이라는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었는데,
왜 제목이 『말 그릇』인가 하면, 사람마다 각각 그 말을 담는 그릇이 다 있대요. 여러분도 있고, 저도 있어요.
그런데 이 저자가 주장하는 게 사람 따라서 그 말 그릇이 좁고 얕은 그릇이 있고, 깊고 큰 그릇이 있대요.
그래서 대화하다가 막 하고 싶은 대로 툭툭툭 말이 나오고 생각 없이 말이 나오는 건 왜 그러냐,
그 사람의 말 그릇이 작아서 그렇대요.
말 그릇이 크고 깊은 사람은 상대방이 좀 기분 나쁜 이야기를 해도
'야 이거 한 마디 해 줘야 되겠는데', 말 그릇이 깊어 가지고... 올라오는데 시간이 걸려요.
그 책이 이런 내용을 설명하면서 주장하는 것이 결국은 그 사람이 내뱉는 말이 그 사람의 인격이고 그 사람의 됨됨이라는 거예요.
왜? - 이 말 그릇의 깊이니까요.
요 0.1초 만에 하고 싶은 말 못 참고, 저 사람 기분 나쁘면 팍 들이받아 버리고.. 이건 사춘기 때 주로 많이 일어나잖아요.
사춘기 때는 말 그릇이 아직 만들어지기 전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한 50 넘었는데 사춘기 때 증상이 똑같이 나오시는 분은, 이거는 좀 고려해 보셔야 될 문제예요.
여러분, 한자로 품(品) 자를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성품(性品) 할 때 이 품(品)자를 국어사전으로 보니까 이런 뜻으로 해석하더라고요..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性品)', 이게 품(品)자예요. 그런데 여러분, 이걸 한자로 한 번 보세요.
성품(性品) 할 때 품(品)자를 보니까 입 세 개 모아 놓은 게 품(品)자예요.
성품(性品), 인품(人品), 품격(品格)
여러분의 품격이 뭘로 결정된다고요? - 입 세 개,
여러분이 사용하는 입술, 언어 이걸로 우리의 품격이 결정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분당우리교회 목회 하면서 정치적으로도 엄청 유명한 분들도 많이 만나 봤고요,
또 재벌 분들도 만나 봤고요, 많은 유명한 분들을 만나 봤는데,
역시 정치하는 분들은 개인적으로 만나면 대부분이 엄청 점잖으세요.
그리고, 재벌 분들도 제가 만나면서 굉장히 깊이가 있고 그런 분만 만났는지 모르지만, 데게 인상적이었는데요,
가끔 가다가 '이 사람 왜 이러지?' 이런 분이 있어요...
저는 그런 신문에 막 사진 나오고 뉴스에 맨날 나오는 사람을 만나면, 이제 긴장 될 거 아닙니까..
그래서 긴장 됐다가, 한 5분 대화해 보고 긴장이 풀어지는 사람이 있어요.
그게 뭘 설명하는지 고린도전서 13장 11절에 보니까,
"내가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성경은요, 무슨 높은 자리에 있다고 어른이라고 칭하지 않고,
성경은, 좋은 옷 비싼 옷 입었다고 어른으로 인정하지 않고, 성경은, 말하는 게 어른 같으면 어른이라 얘기합니다.
그래서 여기 보니까, "말하는 것이 어린 애 같고" - 그러면 그 사람은 어린 애예요.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가 있으면 뭐 합니까? 어린 애인데...
그러니까 내가 긴장이 안 돼요. 그런 사람 만나면 하나도 긴장이 안 돼요.
'아, 이 사람 완전 어린애구나' 어린애처럼 잘 다루어야지요. 어린애들은 주로 자기 과시가 좀 많고 이렇잖아요..
여러분, 여러분이 주변 사람에게 어린애로 혹시 그렇게 접근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상대방이 예의가 있어서 일절 내색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어, 이거 박집사님 어린애네, 이거 완전...' 이거 곤란한 것 아닙니까?
우리 다락방 이제 시작했는데요,
이번 주에 가 보면, 모든 다락방에 어린애 하나씩 다 배치했습니다.
신경 많이 썼습니다. 한 번에 몰아갈까 봐, 딱 하나씩만 배정했습니다.
누군지 궁금하다고요? - 5분만 대화해 보면 '아, 이 사람이다' 금방 알게 됩니다.
여러분이 어린애 취급 받고 싶지 않으면, 좋은 옷 입고 가는게 아니라
언어를 고치셔야 돼요. '말하는 게 어린애 같으면, 어린애다..'
예수님도 이것을 엄청 강하게 지적하셨거든요.
(마태 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 고린도전서 13장 11절을 다시 보십시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 든 게 어린애 같기 때문에 어린애 같은 말이 나오는 거예요.
말만 잘 하려고 애써 가지고 절대로 그것이 고쳐지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 모두가요,
예수님이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그러시고, 우리에게 조언하시는데, 35절입니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 쌓아가는 거래요..
다시 제가 여러분 강조합니다.
여러분, 하루 한 구절 묵상 핸드북 오늘부터 쌓아 가셔야 돼요..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여기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이거 딱 펴니까요, 시편 141편 3절이요,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이런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자는 거예요. 오늘부터 쌓아 가자는 겁니다.
정말 부탁합니다. 기초 다지기, 기초 다지기 중에 기초 다지기가 말씀 묵상입니다.
말씀 암송하는 거구요, 말씀 필사하는 겁니다.
이게 쌓여 가면, 여러분의 입술이 성숙한 어른의 입술로 성장해 갈 줄로 믿습니다.
사도행전 2장 1-4절,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 지금, 방언 하는 게 강조된 게 아닙니다.
배우지 않은 방언으로 기도하면 좋지요.. 방언으로 기도하면, 기도를 깊이 할 수 있고 기도를 오래 할 수 있어서 좋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한국말도 선물이예요.
내가 지금 어느 나라 말로 기도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여기에 보니까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기도하는 거예요..
영적인 문제입니다. 이게 첫번째고요,
두번째는 제가 타이틀만 말씀드리고 다음 주에 연이어서 말씀을 드릴 건데요,
두번째 언어 사용과 관련된 훈련이 뭐냐 하면, [공동체에서의 성숙한 언어 사용 훈련]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골로새서 3장 16-17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다음 주에 이것도 살펴 보겠지만,
저는 분당우리교회 공동체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골로새서 3장 16-17절과 같은 공동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첫번째가 뭐라고요? -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입니다.
왜, 이 두 균형으로 훈련해야 된다고 했는지 아시겠지요?
엿새 동안에 골방에서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여러분이 말씀이 풍성히 거해지도록 말씀을 묵상해야 된다니까요..
말씀을 묵상하고, 주일에 함께 모여서는 그 말씀으로 묵상한 성도들이 모여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고 서로 권면하고"
저는 두 가지 말씀을 드리고 이제 결론을 맺기 원하는데요, 나머지는 다음 주일에 계속 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 묵상과 언어 절제 훈련]이 먼저 일어나야 되고요,
이것이 이루어지면, 개인으로 개인으로 산으로 산으로 가시면 안되고요, 공동체로 가셔야 됩니다. 거기서 점검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다락방에서 이런 말을 듣는 걸 올 한 해 목표로 잡으시면 됩니다.
"아니, 집사님, 요새 언어가 너무 부드러워졌어요."
"아니, 웬 일이야~ 집사님 말투가 굉장히 상냥하고 예의 발라요."
이 두 가지가 올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우리 예배 시작을, 우리 입례송을 부를 때, 저는 이것이 강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예배 시작할 때 이렇게 찬양하잖아요..
♬ 지금 서 있는 이곳에서 높임을 받으소서. 내가 밟는 땅 주님의 땅이니 ~~~~
하늘이 주의 이름 높이 올리며 넓은 바다가 주를 노래해~♬
그리고, 맨 마지막에 우리의 고백이 이거 아닙니까..
[나를 통하여], [나의 입술을 인하여] 주의 이름 높임을 받으소서~♬
부끄러운 이야기 하나 하고요,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는 동안에 계속 마음에 가책이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신혼 때, 제가 이제 나름대로는 이제 경건한 목사 가정을 이루었으면 하는 선한 뜻이었지만,
아까 말했지요.. 언어가 타락을 했기 때문에... 제가 제 아내에게 신혼 때부터 계속 강요를 많이 했어요.
걸핏하면, '아니, 그거 목사 부인이 왜 이래?'
외출하려고 하면, '아니, 그거 목사 부인이 옷차림이 왜 이래? 옷이 이상하네..' 계속 지적을 했어요.
'목사 부인이', '목사 부인이...' 그게 얼마나 교만한 거예요~
저는 뭐 그리 잘 났다고... 그리고, 뭐 걸핏하면 목사 부인이...
한 번은 첫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인데요, 교회 마치고 저녁에 집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과일이 먹고 싶다는데, 이게 겨울에 구하기 쉽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뭐라고 얘기했는지 아십니까? '아, 참으라고.. 그 목사 부인이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사는 것 아니야..'
* ㅠ.. 이것, 30년 전 이야기니까
사랑하는 여 성도 여러분, 그 노여운 눈빛으로 저를 보지 마세요..
이번 주에 계속 그 일이 떠올려지는 거예요. 저의 교만했던 말들이,,,,,,
당연히 요즘은 안 그러지요~ 저부터 고쳐야지, 남 보고 뭐라 그래요...
자녀 교육 하면서 아까 말씀 드렸잖아요..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인데', 부작용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요. 모든 가정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내 입술도 변질돼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자신하지 말고, 말 내뱉기 전에 한 번 꿀꺽 삼키고......
다시 말합니다.
말씀으로 내 안을 채워서 나오는 것이 영적인 언어가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저는 여러분, 이 찬양이요,
♬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네~
리듬은 굉장히 간단하고, 가사도 굉장히 간단하지만
저에게 정말 십 수 년 동안 울림을 주는 찬양입니다. 주 중에 종종 흥얼거릴 때가 있습니다.
우리 한 번 이 찬양 함께 부릅니다.
여기 가사에 보니까요, 이렇습니다.
♬ 생명이 되신 주~, 반석이 되신 주~
그 다음에, 소망이 되신 주~ 능력이 되신 주~
우리 그 주님 앞에.. 우리 언어가 주님 앞에 상달(열납)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가사를 생각하시면서 함께 불러 보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