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칼라파타르, 생애의 고지(高地)에 서서 — ♣
……………………………………………………………………………………………
NEPAL HIMALAYA ; Sagramatha National Park
2017—[Khumbu Himal] EVEREST.B.C. TREKKING — (9)
<사진 위에 커서를 올려놓고 두 번 클릭하면 원본의 큰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 4월 5일 (수요일) * [EVEREST B.C. Trekking 제10일]
<딩보체>(4,410m)→<투클라>(4,620m)→ <로부체>(4,910m)
* [딩보체에서 로부체까지 올라가는 날] — 고도(高度) 500미터를 올리는 트레킹
딩보체(Dingboche)의 <아마다블람 롯지>에서 두 번째 아침을 맞이했다. 오늘은 히마라야 트레킹 10일째를 맞는 날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해발 4,910m의 로부체(Lobuche)의 롯지, 고도 500m를 올리는 날이다. 딩보체에서 로부체(Lobuche)로 가는 길은 ‘콩마라(Kongma Lha)’를 경유하는 ‘Three Passes Trail’ 코스가 있고, ‘두클라(Thukla)’를 경유하여 두클라패스[고개]를 넘어가는 코스가 있다. 오늘 우리는 콩마라 코스가 아닌 두클라(Thukla) 코스로 나아간다.
오전 8시 40분, 딩보체(Dingboche) 롯지에서 오늘의 트레킹에 돌입했다. 날씨는 눈부시게 화창하고 청명했다. 파란 하늘을 찌르는 다부체피크와 촐라체의 예봉을 등에 지고 있는 딩보체 마을의 뒷산을 넘어가는 길이다. 산의 중턱에는 삼각형의 금빛 지붕이 빛나는 하얀 스투파[塔]가 있다. 스투파 주위의 사방에는 오색의 룽다르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그 산의 꼭대기에도 오래 된 스투파가 있었다. 낭카르썅 곰파[寺院]이다. 두드코시(Dudh Koshi) 계곡을 중심으로 한 이곳 쿰부히말(Kumbu Himal) 지역은 티벳트에 히말라야를 넘어온 셀파족의 고향이므로 라마불교의 신앙심이 높은 곳이다.
해 뜨기 전, 로체와 로체샤르 연봉 - (구름에 가려지지 않은 진면목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우리가 이틀 동안 유숙했던 <아마드블람 롯지>와 뒷산 너머 타부체 피크(앞) 촐라체(뒤)
하얀 설봉과 하얀 스투파(Stupa)
언뜻 보기에는 비교적 완만한 오름길이 나 있는 토산(土山)이지만, 실제로 올라보니 매우 가팔랐다. 연일 쌓인 피로함으로 인해 아침의 발길은 무척 무거웠다. 여기 히말라야 고산의 고도(高度)를 벗어나지 않는 한 여전히 어질머리 고산증의 숨 가쁨은 숙명처럼 안고 갈 수밖에 없다. 하얀 스투파를 지나 산등성이에 올라가 돌아보니 우리가 이틀 밤을 유숙한 딩보체의 마을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가지런하게 구획된 돌담과 텃밭이 어우러진 마을 풍경이 평화스러웠다. 맞은 편 동쪽은 아마다블람, 북쪽으로 임자체 계곡의 분지 뒤쪽에 로체와 로체샤르 설봉이 눈발의 흰머리를 풀어헤쳐 허공에 날리고 있었다.
고갯마루에서 바라본 딩보체 아침풍경 / 멀리 로체 연봉 위에 하얀 구름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고개를 넘어야 인생의 길이 있다
<설산암봉의 장엄경> 왼쪽이 강테카(6,783m) 오른쪽이 탐세르쿠(6,618m)
* [해발 4,500의 두사고지의 평원] — 시선을 압도하는 타부체피크와 촐라체의 위용
힘겹게, 딩보체(Dingboche) 마을의 뒷산을 넘었다. 보기보다는 만만치 않았다. 산등성이를 넘어서니 산록의 대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이 산록은 시야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오른 쪽 낭카르창(5,616m)과 포칼데(5,693m)에서 쏟아져 내린 산줄기가 만든 아주 광활한 고원(高原)이었다. 도상에는 고도 4,503m의 ‘두사(Dusa)’로 표기된 평원으로 고도상 이미 수목한계선을 넘어선 곳이므로 나무 한 그루 없다. 이곳 사람들이 야크를 방목하는 카르카(Kharka)가 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이른 봄이라 풀싹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 팍팍한 맨 땅이다.
두사(Dusa)의 고원 ; 트레커의 행렬
선뜻 눈앞에 다가선 타부체 피크(6,495m, 앞)와 아라캄체(Arakam Tse, 6,423m, 뒤)
등 뒤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강테가와 탐세르쿠의 장관
거대한 아마드블람(6,814m)의 장관
서쪽 아래는 엄청나게 깊게 들어간 계곡의 분지(盆地)인데 그 계곡은 에베레스트 쿰부빙하에서 내려오는 폭이 넓은 광활한 계곡이다. 계곡 건너편에 하늘을 찌르고 솟은 타부체피크(Tabuche Peak, 6,495m)와 촐라체(Cholatse, 6,335m)의 위용이 머리 위에 압도해 온다. 아득하게 올려다 보이는 설산거봉의 기개가 장엄하고 신비롭다. 눈앞에 펼쳐진 고원(高原)과 서쪽의 하늘을 점유하고 있는 설산의 풍경이 가히 장관이다. 완만한 경사의 너른 평원을 걷는다. 햇살은 따갑지만 바람끝은 차가웠다. 그렇게 고원의 길을 걷고 걸었다.
타부체 피크(6,495m)와 아라캄체(Arakam Tse, 6,423m)
* [고원에서 내려다보는 계곡의 분지] — 페리체 마을과 에베레스트 트레킹 메인로드
화창하고 밝은 날, 고원(高原)을 가는 많은 트레커들이 점점이 이어져 가고 있었다. 모두 호흡을 조절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걷는다. 주문처럼 ‘비스타리! 비스타리!’(천천히 천천히) 읊조리며 걷고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야크카르카(Yak Kharka)의 돌담이 있는 외딴집이 보이는 언덕의 바위 위에 올라섰다. 사방이 확 트인 곳에서 주변을 조망했다. 우선 발아래 계곡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계곡 안 너른 분지의 가장자리에 페리체(Pheriche, 4,240m) 마을이 있고, 그 마을을 중심으로 아래위로 이어지는 길이 보였다. 그 길이 바로 팡보체에서 소마레를 거쳐 페리체-두클라-로부체-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로 이어지는 메인로드인 것이다. 우리가 유숙한 딩보체(Dingboche)는 소마레에서 북상하다가 페리체 패스[고개]를 넘기 전, 계곡을 건너 임자체 계곡의 딩보체에 유숙했으니, 딩보체는 메인로드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곳이다. 고소적응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제 저 계곡의 메인로드와 나란히 가는 이 고원의 길을 따라가면 두클라(Thukla)에서 합류하게 된다. 페리체(Pheriche 계곡의 길과 이 두사(Dusa)의 고원길이 만나는 것이다.
산 위에 사람이 있고 사람 위에 산이 있다 ; 아라캄체(6,423m)
쿰부빙하에서 내려온 계곡의 분지에 있는 페리체 마을 / 좌측의 낮은 산줄기 너머에 딩보체가 있다
아라캄체(Arakam Tse, 6,423m와 쿰부빙하 계곡의 장엄경
계곡의 동남쪽 저 멀리 담세르쿠-강데카 설봉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서쪽의 타부체피크 연봉, 동쪽의 아마다블람 등 어디를 보아도 설산 거봉이 고고한 백색(白色)의 언어로 그 존재를 드러내며 파란 하늘에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장엄한 설산 거봉을 병풍삼아, 가파른 산록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아마드블람 예봉 / 강테가, 탐세르쿠 연봉 // 계곡의 분지와 페리체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가는 산길이다. 그리고 한참을 오르다가 계곡으로 쏟아지는 산길이 나타났다. 계곡의 건너편 저쪽에 한 채의 집이 시야에 들어왔다. 바로 오늘 트레킹의 제1포인트인 두클라(Thukla) 롯지였다. 황막하게 파인 계곡은 아주 오래 전 빙하가 휩쓸고 간 자리이고, 그 후 수많은 몬순(열대우기) 때 폭우로 인해 크게 침식되어 험한 돌들이 노출되어 너덜지대를 이루고 있었다. 그 돌밭 한 가운데 도랑 같은 계곡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상류의 빙하가 녹은 물이라 물색이 아주 탁했다. 철다리를 건너고 작은 고개를 넘어가니 투클라 롯지가 잡힐 듯이 시야에 들어왔다.
계곡 건너편 투클라 롯지와 투클라 패스[고개]로 올라가는 길
투클라의 롯지와 그 뒤의 촐라체와 아라캄체) 설봉에 피어오르기 시작한 눈구름
험악하게 파여져나간 계곡 - 옛날에는 이 계곡이 빙하지대였다
아주 가까이 다가온 투클라 롯지 / 왼쪽부터 타부체피크, 촐라체, 아라캄체
* [밝고 따사로운 투클라 롯지의 햇살] — 점심식사 그리고 긴장을 푼 휴식
오전 11시, 해발 4,620미터의 투클라(Thukla)에 도착했다. 딩보체보다 180m의 고도를 올린 셈이다. 1974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이곳 <칼라파타르 롯지>에는 많은 세계에서 모인 트레커들이 붐비고 있었다.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 아래에서 올라가는 사람들이 교차하며 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고 가는 곳이다. 벽에 걸린 안내문을 보니, 이곳에서는 헬리콥터 운행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여기에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왕래하는 헬기 관광, 마운틴 플라이트, 응급 구호 활동 그리고 공항이 있는 루클라까지 하늘길로 이동할 수 있는 거점이다. 롯지의 집 뒤에 헬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넓은 고원이 있다. 그러나 오늘은 헬기가 보이지 않았다.
투클라(Thukla)의 <칼라파타르 롯지>에는 레스토랑도 있고 베이커리도 있었다. 우리도 여기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우리의 이상배 대장이 후미의 대원들을 수습하여 투클라에 도착했다. 나도 그렇지만 모두 지친 모습들이었다. 드디어 나의 마른 입술이 부릅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염도 무성하게 자라서 히말라야 야인(野人)이 되어버렸다. 이상배 대장을 비롯하여 김준섭 대원, 박미순 대원, 기원섭-이진애 대원, 신은영 대원, 김장재 대원 등 우리들은 롯지의 마당에 있는 탁자의 의자에 무거운 몸을 앉혔다. 한낮의 햇살은 밝고 따뜻했다. 바람결이 선선하여 롯지의 마당에 내리는 햇살이 무척 아늑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가이드 파샹을 통하여 점심식사를 주문하고 식당 대신 별채의 베이커리의 빈 방에 우리 대원들만 들어가 환담하며 휴식을 취했다. 피곤한 가운데에서도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이(李) 대장은 히말라야에 미쳐서 살아온 산악인이다. 그런데 그가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은 ‘각설이’로 주유천하를 하고 싶다고 했다. 스스로 신명(神明)을 풀며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구수한 입담을 과시하며 각설이 한 자락을 풀어놓는다. 망중한(忙中閑)의 시간,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감자와 옥수수 그리고 삶은 계란, 네팔식 비빔국수 등 각자의 입맛대로 시킨 음식이 나와서 식사를 했다. 속이 울렁거려 목에 넘어가지 않는 국수가락을 겨우 겨우 삼키는 식사였다.
* [아득한 투클라 패스의 너덜길] — 숨이 턱에 차는 고난의 오름길
오후 1시 5분, 오후의 트레킹에 돌입했다. 오늘의 가장 힘든 코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투클라에서 로부체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고개, 해발 4,830m의 투클라 패스(Thukla Pass)가 아득하게 올려다 보였다. 곧바로 200m 이상을 치고 올라가는 경사의 산길, 너덜지대의 험로를 치고 올라야 하는 것이다. 처음은 완만하게 올라가는 모래 흙길이었다. 그러나 점점 올라갈수록 경사가 가파르고 길은 완강한 돌밭이 너덜지대를 이루고 있었다. 오늘따라 이곳 산길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많은 등산객들이 오고 갔다. 우리 대원들은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걷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천천히 걷는다. 그렇게 걸을 수밖에 없다. 지치고 나른한 몸에, 고소증(高所症)까지 압박을 가해옴으로써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이 여간 무거운 게 아니다. 그야말로 처절한 고행(苦行)이었다. 대원들의 간격이 많이 벌어졌다. 김미순, 신은영 등 여성대원과 기원섭 대원이 셀파 카일라를 대동하고 앞서서 걷고 필자와 김준섭 대원 그리고 이진애 여사가 따르고 가이드 파샹이 그 뒤를 따랐다. 이상배 대장은 후미를 수습하여 늘 뒤에서 오르고 있었다.
아득한 투클라 패스 / 가파른 경사의 너덜지대
아득히 내려다 보이는 투클라 게스트하우스와 타부체피크의 빙하
너덜지대의 가파르고 험한 길에서는 반드시 히말라야 보법(步法)으로 걸어가야 한다. 스틱에 의지하여 몸의 균형을 잡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야 한다. 그리고 자주 멈추어서 스틱에 의지하여 숨을 고르고 쉬어야 한다. 서두르거나 조급하면 고소증에 휘말려 엄청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르는 등 뒤에는 타부체피크의 설상거봉과 빙하가 걸려 있다. 고도를 높여갈수록 그 설봉과 빙하가 완강하게 하늘에 치솟아 오르는 듯 압도해 왔다. 숨을 몰아쉬면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묵언(黙言)의 고행(苦行)을 해 나갔다. 투클라 패스, 참으로 힘겨운 고갯길이었다.
-
* [투클라패스(Thukla Pass), 그 고원의 추모탑] — 히말라야의 넋이 된 산악인들
오후 2시 정각, 4,830m 투클라 패스(Thukla Pass), 드디어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고갯마루의 길 양쪽에는 자연석으로 쌓은 돌탑이 있고 그 두 돌탑 사이를 이어놓은 오색의 룽다르가 세찬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돌탑의 주위에는 여러 겹의 룽다르가 칭칭 감겨 있기도 했다. 투클라 패스는 고지대의 평원(平原)이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수많은 작은 추모의 돌탑이 있고 야트막한 능선을 따라서도 그 돌탑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모두 에베레스트을 비롯한 쿰부히말 등반 중에 조난을 당해 ‘천상(天上)의 별이 된 산악인’을 추모하는 돌탑이었다. 이곳은 최초의 에베레스트를 올랐던 애드먼드 힐러리나, 8,000m 14좌를 최초로 완등한 라이홀트 매스너나 우리나라의 엄홍길, 박영석, 이상배 등 에베레스트 등정한 수많은 산악인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길목이다.
천신만고 끝에 투클라패스 고갯마루에 오르다
이곳의 평지와 언덕배기에 일대에는, 히말라야에 시퍼런 목숨을 바친, 수많은 조난자(遭難者)를 추모하는 돌탑들이 있다. 네팔 현지인인 셀파의 돌탑도 있었다. 지구상의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를 오르기 위해 세계 도처에 얼마나 많은 산악인들이 도전하였으며 그 중에 등정에 성공한 사람들도 있지만 또 얼마나 많은 산악인들이 자신의 목숨을 제물로 바쳤는가. 인간의 끝없는 도전(挑戰)은 늘 새로운 역사(歷史)를 창조한다. 그러나 그것은 목숨을 담보하는 모험(冒險)과 용기(勇氣)의 발현이다. 거기에는 언제나 죽음과 같은 희생(犧牲)이 따른다는 사실을 되새겨 보게 하는 자리였다. 하늘에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타부체피크와 촐라체가 구름에 휩싸였다. 히말라야는 오전에는 쾌청하고 오후가 되면 구름이 몰려오고 기온 급강하하여 악천후가 이어진다.
투클라 패스 언덕에 즐비한 추모탑 / 히말라야에서 숨진 수많은 영령들
평원의 한 가운데 한국인 조난자의 돌탑을 발견했다. 돌탑의 전면에 박아놓은 동판(銅版)에 적어놓은 내용을 읽었다. ‘송원빈 SONG-WONBIN 1967-2012 / 에베레스트의 별이 되다 / Go to sleep forever in the Everest / 충남고OB산악회’ … 내용으로 보아 2012년 에베레스트 등반 도중 조난을 당한 충남고OB산악회 소속의 산악인을 추모(追慕)하는 탑이었다. 머리를 숙여 조용히 명복을 빌었다.
한국의 산악인 고(故) 송원빈 대원의 추모탑
엎드려 추모하는 김미순 대원
돌탑을 돌아보다가 또 하나의 한국인 추모탑을 발견했다. 투박하게 쌓아놓은 돌탑의 한 가운데, 사다리꼴 자연석 돌판을 긁어서 새긴 글 ‘무산소로 EVEREST에 향하다 실종사한 故 함상헌 대원을 추모하며 이 碑를 바칩니다’ 그 돌탑 앞에는 ‘참이슬’ 소주팩과 뚜껑을 따낸 참치캔이 놓여져 있고 하얀 백지 위에 글을 적어 놓았다. ‘높은 곳에서 영면하소서 / 대한의 아들이여 / 2017. 4. 4 / 경기도 소방본부 박상복’이라고 써 놓았다. 4월 4일이면 바로 어제다. 우리도 조용히 머리 숙여 명복을 빌었다. 우리의 김미순 대원과 신은영 대원이 돌탑의 양쪽에 앉아 고인을 위한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한국의 산악인 고(故) 함상헌 대원의 추모탑 앞에서
* [로부체 가는 길] — 쿰부빙하가 만든 계곡의 분지
오후 2시 40분, 다시 트레킹을 이어나갔다. 카일러와 함께 발걸음을 옮겨 놓기 시작했다. 산기슭의 허리를 돌아가는 산길은 비교적 평탄했다. 그리고 크게 한 구비 돌아나가니 넓은 분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곳은 원래 쿰부빙하(Khumbu Glacier)의 계곡인데 지금은 빙하가 녹아 돌밭이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정면의 거대한 산 아래 계곡에 노란 천막이 여러 채 설치되어 있는데, 카일러에게 물었더니 인근의 고봉을 오르는 베이스캠프라고 했다. 그 옆에 계곡의 뒤에 솟은 설봉은 아위피크이다.
너덜지대의 카라반 / 야크와 들소의 교배종인 좁교의 행렬
투클라 패스에서 루보체 가는 길 (계곡의 분지)
팍팍한 돌밭 길을 지나고 나니 분지의 평원(平原)에 눈앞에 펼쳐졌다. 아주 평탄하고 걷기에 쾌적했다. 길은 산 밑의 계곡의 가장자리를 따라 나 있는 흙길이었다. 카고백을 실은 한 떼의 야크의 행렬이 지나가고 나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광활한 분지에는 다니는 사람도 뜸하여 적막하기 이를 데 없었다. 토막 영어로 카일러와 대화를 나누며 걸었다. 얼굴이 까무잡잡한 그의 미소가 참 순진하다. 그의 형 마일러가 로부체 캠프에 있다고 했다. 로부체는 우리들이 지향하여 나아가는 오늘 트레킹의 최종 포인트이다.
* [뜻밖의 만남, 마일러] — 착하고 의리있는 네팔 친구 마일러와 카일러
오후 3시 20분, 로부체(Lobuche)로 향하는 길목에서 '마일러'를 만났다. 저 앞에서 자그마한 체구의 사나이가 잰 걸음으로 내려오고 있었는데 그 사나이가 내가 보고 싶어 했던 마일러가 아닌가. 반갑게 만나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마일러는 나와 '2013년 안나푸르나 트레킹'과 '2014년 랑탕-고사인쿤도 트레킹'에 동행한 바 있어 정이 많이 든 네팔 친구이다. 그는 착하고 부지런하며 속이 깊은 사람으로, 우리들의 여정에 동행하며 매끼마다 요리를 담당하여 정성을 다한 사람이다. 이름이 ‘마일러 강가바두 따망’이다. 그는 지금 나와 동행하고 있는 ‘카일러 붇다가두 따망’의 둘째 형이다. 오래 동안 보고 싶었던 나도 반갑지만, 일을 하기 위해 여기저기 산중을 떠도는 형제가 만나니 서로 반갑기도 할 것이다. 마일러는 로부체의 외국인 캠프에 종사하고 있는 중인데 이상배 대장이 온다는 소식을 받고 짬을 내어 마중하러 나오는 길이었다. 잠시 머물며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그는 뒤에 오는 이상배 대장을 맞으러 아래로 내려가고 우리는 산행을 계속했다. 구름이 몰려오고 날씨 음산하게 추워지기 시작했다.
마일러
마일러와 카일러 형제
* [심한 고소증세를 느끼는 로부체 에코롯지] — 트레킹 트렉의 요지
오후 3시 50분, 로부체(Lobuche, 4,910m) <에코롯지>에 도착했다. 아침 8시 30분 딩보체를 출발한지 거의 6시간 동안 고도를 높이면서 트레킹을 한 것이다. 이곳 로부체(Lobuche)는 동쪽으로 콩마(Kongma)-딩보체로 가는 길이요 서쪽으로는 교쿄(Gokyo)로 가는 길이요 북쪽으로는 고락셉(Gorak Shep)을 경유하여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로 들어가는, 길목의 요지이다. 'EBC 트렉(Trek)'은 바로 우리의 여정이다. EBC와 칼라파트르 등정은 우리들의 쿰부히말 트레킹의 정점(頂點)이다. 그리고 교쿄 방향에는 로부체 피크(이스트, 6,119m)가 있고, 콩마라 방향에는 포칼데(5,800m)가 있어 로부체는 그곳을 향하는 산악인들의 거점 마을이다. 그러므로 각지로 이동하는 산악인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다.
로부체의 롯지 마을
로부체 <에코 롯지>의 문앞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디팍(Dipak)
우리가 유숙하는 <에코롯지(Eco Lodge)> 옆에 두 개의 대형 텐트가 있는데, 에베레스트 등정을 위한 호주원정대의 지원캠프라고 했다. 거기가 바로 ‘마일러’가 종사하는 곳이다. 에코롯지는 (주)아시아트레킹의 직영점으로 이곳에서 규모가 제일 크다. 우리들의 트레킹을 지원하는 아시아트레킹은 팍딩과 쿰중과 교쿄 그리고 이곳 로부체에 롯지를 운영하고 있다.
롯지에 먼저 도착해 있는 우리의 네필 친구들 / 시르 밧두르, 딕 밧두르. 아르준, 디팍
오후 4시 30분이 넘어서야 모든 대원들이 모두 롯지에 도착했다. 바깥의 날씨는 기온이 급강하하여 아주 추웠다. 홀에는 난로가 피워져 있어 아주 따뜻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넓은 레스토랑에는 수많은 외국인들이 자리를 채우고 환담을 나누고 식사를 하기도 했다.
* [이 대장의 네팔 친구, 밍마] — 고소증, 이 대장의 상태가 아주 좋지 않다
<에코 리조트>에서 우리는 특별한 네팔 친구를 만났다. 이름은 밍마 셀파(Mingma Sherpa), 건장한 장년(壯年)의 사내였다. 그는 우리 이상배 대장이 에베레스트에서 만나 특별한 우정을 맺고 있는 사이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서로 포옹하며 감격했다. 이 대장은 우리에게 밍마를 소개하며 그와의 인연을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도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지금 쿰중에서 <알파인롯지>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데, 오늘 일이 있어 로부체에 왔는데 이 대장을 만난 것이다.
이상배 대장과 밍마 셀파
오늘 우리들의 저녁식사는 치킨커리를 곁들이 ‘달밧’이었다. 밥이 목에 잘 넘어가지 않았지만 내일을 생각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먹었다. 배는 고픈데 밥은 목이 넘어가지 않으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사실 5,000고지 가까운 로부체에서는 그냥 앉아있기도 힘든 고소증이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억지라도 먹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모든 것이 고행(苦行)이다. 어디 먹는 것뿐인가. 히말라야에서 숨 쉬는 것, 찬바람이 술술 들어오는 롯지에서 선잠을 자는 것, 물이 귀하여 화장실 사용이 불편한 것, 무엇보다 매일 고도를 높여가며 길을 걷는 것, 어느 하나 어렵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 히말라야 트레킹은 고행(苦行)을 위하여, 고행(苦行)을 통해, 고행(苦行)을 일삼는 여정이다.
그런데 우리 이상배 대장의 몸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천하의 강골(强骨), 베테랑 히말리스트 이상배 대장에게 고소증이 발생한 것 같았다. 그 안색이 초췌하고 몸이 무겁게 가라앉는 듯했다. 네팔 친구 밍마(Mingma)가 산소측정기 가져와 이 대장의 몸 상태를 점검하고 마일러는 따뜻한 물을 끓여오고, 카일러와 가이드 빠샹 등 네팔 친구들이 이 대장 주변에 모여 걱정을 했다. 밍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상태가 아주 안 좋다’고 했다. 어떤 친구는 헬리콥터를 불러 하산하기를 권하기도 했다. 옥시겐(산소통)까지 동원했다. 우리 대원들도 모두 걱정을 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지니고 있으나 히말라야 고소증에 대한 처치(處置)는 이곳 사람들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으므로 그들의 간호와 정성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 레스토랑에서 한참 동안 안정을 취한 뒤, 이 대장을 먼저 방에 들어가 쉬도록 했다. 네팔 친구들이 가족처럼 정성을 들이는 모습이 참 따뜻하고 믿음직스러웠다.
우리 대원들도 내일은 새벽 일찍 출행해야 하므로 우리도 각자 배정된 방으로 일찍 들어왔다. 기온이 영하로 급강하하여 방의 틈새로 찬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무거운 육신이 벌레처럼 침낭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울렁거리는 속을 다스리며 잠을 청했지만 잠은 쉬 오지 않았다. 목과 콧구멍이 따끔거리고 딱딱하게 거칠어진 입술이 터져서 피가 나고 아팠다.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