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너무나 보고싶지만
이곳에서 돌아서자
가끔은 바람이 준
세월의
무던한 바람의 흔적이 빚어낸
흔들림과 서걱서걱 바람 스침까지
기분 좋은 산행길 보고
또 보아도 너무나 멋진 길과
풍경높은 산등성이에서 바라본
광활한 넓은 평야
신선도 쉬어갈듯한
아름다운 풍경에 흠뻑 젖어들어
감탄사 절로 나오고
아쉬움을 뒤로한채
잘있기를 인연따라 또 올게
가슴에 피는 꽃
누가 뭐라 하겠니 예쁜 마음 하나
생각만해도 네가 좋거든
가슴으로 피어난 꽃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다
천박한 땅에 심어도
벌떡 일어나 꽃잎푸르던
꽃지고 잎진다 한들 어찌잊을 수가 있겠느냐
세상의 울림은 사라졌어도
향기는 가슴에 피어난다
그리움이 아플때
눈으로 가슴으로 치밀어 오를때
그 그리움은 삭신이 녹아내리고
뼈마디가 부서져 나가는 그 그리움이 아픈 것이다
찰라의 시간에도
그 그리움은 불꽃인들 회오리치고
잠시 잠깐의 시간의 틀에도 그 그리움이 사람을 미쳐가게 하니
무서운 그리움이 아니던가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는 보고픔
더 이상은 참아 낼 수 없는 애증
혀가 타들어가는 갈증이 아닌가
그리움의 족쇄가 몸과 마음에 다 채워졌으니
그 얼마나 아픈 그리움인가
눈을 뜨고 감아도 그 그리움 하나로 숨조차 가쁘고
사시사철 흐름 안에서도 잠시도 잊혀지지 않는
그 그리움을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눈으로 가슴으로 치밀어 오를때
그리움은 삭신이 녹아내리고
뼈마디가 부서져 나가는
그리움이 아픈 것이다
아버지
날씨만 흐려지면
아파하시던 아버지
자식들에게 미안해 하시며 흘리시던 뜨거운 눈물
그 아버지 그 고통 헤아리지 못한 철없는 딸
아버지에 대한 원망만 한 지나간 세월
아버지 돌아가시고 이제야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미 지나버린 부질 없는 욕심이기에
섭섭한 마음 모두 세월속으로 흘려보낸다
내가 이 자리에 서있는 것도
아버지의 사랑이있었기에
지금 이순간에도 당신이 몹씨도 보고 싶네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 이름 어머님!
어머님의 사랑과 어머님의 희생과 어머님의 눈물이 있어 오늘의 제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머님! 비가 내립니다. 어느새 눈물이 되어 가슴으로 스며들고 있습니다
메마른 목을 타고 가슴에 설움을 채우고 있습니다
새파에 갖은 고생 다 하시며 한 평생 모진 바람 참아내신 우리 어머님!
당신의 고통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흔들리는 슬픔도 삶이 고단하고 괴로울때 눈물속에서 불러보는 가장 따뜻한 이름 어머니!
바쁘다는 핑계로 힘들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못난 딸 이제야 후회합니다
이제는 어제의 기억을 묻고. 사랑이 없는 영원한 그리움으로 불러 봅니다
사진 속에 환한 모습을 바라보며, 천사처럼 고왔던 우리 어머님! 고단한 살림에도 지친 내색 하나 없이 꽃처럼 환한 웃음 늘 머금으신 어머님!
그저 고맙고 감사하며, 죄송하고 미안해서 한 없는 눈물 주르르 흘리며 당신을 보내 드립니다.
바라보고 싶고 불러보고 싶은 어머니! 이미 가고 없는 늦어버린 당신의 죽음의 순간에도 10남매의 심정은 겉으론 태연하게 웃지만 더욱 애가 끊어지게 슬픔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님이 그리워 지겠지요, 이제는 모든것을 내려 놓으시고 아프지도 말고 고통없이 편히 영면 하십시오
해설 [解說] 및 평[評]
김광한
잊을 수 없는 망각의 초대
조미남 시인의 일련의 시들은 거의 모두가 인간이 갖는 기본적 양심과 불교적 사관인 인연과 정 그리고 미련과 후회로 점철된 것들이었다.자신을 인간으로 받아들여주고 인간으로서 모든 활동에 중심 역할을 해줬던 근본, 즉 부모님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된 많은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살아가면서 자신과는 뜻이 맞지 않아 불평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나가서 우리나라에서 생성한 자동차 세탁기 텔레비전의 광고를 보고서 얼마나 우리나라가 그들에 비해 발전된 나라인가를 알려줘 애국자가 된듯한 느낌을 받았듯이 가난과 실의 그리고 애증과 그에 따른 불평등을 하께 하면서 지루하고 피곤한 삶을 영위하다가 막상 그 원인을 제공했던 당사자가 세상을 떠나 스스로 홀로서기를 했을 때 다가오는 웬일인지 모를 섬뜩한 그리움 같은 것이 내재한 시들이 시인 조미남이 쓴 일련의 시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부모가 있다. 부모는 성장하면서 그 모습과 행동이 달라지게 보인다.그것은 생활에서 오는 경제적 차원이 문제가 되겠고 그 후부텀은 내 생각과 다른 부모의 모습이 달라지게 된다.부모로부터 받은 어떤 정신적 영향이 내게 미치는 영향이 당시는 모르겠지만 성장해서 그 부모와 같은 삶을 살게 될때 크게 느끼게 된다.정상적 삶을 ㄱ살고있는 사람들의 경우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 느끼는 삶의 참담함, 그리고 삶의 한계가 갖는 무력감에 스스로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부모님의 죽음 자체가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는 생각에 그저 가슴속에 박힌 응어리를 원망한다.
< 흔들리는 슬픔도 삶이 고단하고 괴로울때 눈물속에서 불러보는 가장 따뜻한 이름 어머니!
바쁘다는 핑계로 힘들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못난 딸 이제야 후회합니다
이제는 어제의 기억을 묻고. 사랑이 없는 영원한 그리움으로 불러 봅니다>
*본문(아버지) 가운데의 일절
여기서 시인의 갖는 슬픔을 느낄 수가 있다.그것은 슬픔이라기 보담 더 큰 마음의 황폐함이었다.아무리 뛰어난 시인도 이 마음의 황폐함 앞에서는 어떤 아름다운 시어도 찾아낼 수가 없다.내가 세상에서 갖는 시간이 줄어들 수록 부모의 시간 역시 줄어들고 어느땐가는 부모의 죽음으로 연결지울 수가 있다.죽음을 목격하는 인간의 마음 안에는 내 죽음도 들어갈 수가 있다.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식을 사랑하게 돼있다.그러나 그 사랑의 방법이 문제가 되어서 자식은 부모에게 갖는 오해가 생긴다.그것을 평생동안 느끼지 못하는 인간도 있고 어느때 슬그머니 내 곁으로 다가와서 일개워 주는 마음이 있다.조미남 시인의 나이가 칠순이 넘고 물론 그 전에도 부모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있었지만 막상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때 갖는 비통한 마음은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귀에 들어오질 않는다.
그것을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그저 고맙고 감사하며, 죄송하고 미안해서 한 없는 눈물 주르르 흘리며 당신을 보내 드립니다.>
잘쓴 시라기 보담 진실을 내 보이는 시, 바로 그것이 조미남 시인의 솔직한 마음의 표현이 아닐까.우리 사회의 질서와 교양이 붕괴되어서 부모 알기을 우습게 여기는 많은 이들에게 이 한편의 시 <어머니>는 읽을 가치를 부여해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에 대해서 역시 같은 마음으로 쓴 시,
<날씨만 흐려지면
아파하시던 아버지
자식들에게 미안해 하시며 흘리시던 뜨거운 눈물
그 아버지 그 고통 헤아리지 못한 철없는 딸>
마치 중국 근대의 유명 작가 주자청의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 것같아 애절할 뿐이다.아버지의 능력으로서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할 것을 알면서 오직 내 생각으로 아버지를 원망했던 지난날의 참회록을 대하는 느낌은 오직 평자 한 사람만의 생각일까?아버지가 갖는 마음이 눈물이 되어 자식에게 보여준 또 다른 행위는 그 당시로서는 알바 몰랐지만 그 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는 자식의 눈물, 이 장면이 와 닿는 것은 이 시를 읽는 모든 사람들의 참담한 마음이다.
무릇 시인이 시를 쓸 때 선량한 마음이 되어있어야하고 그 선량함이 평생동아 지속이 되지 않으면 시인은 붓을 놓아야한다.그런면에서 조미남 시인은 보통의 마음을 한껏 창출한 시인의 눈으로 사물을 관찰 할 능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한줄의 시, 한편의 시가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영향력은 지대한대 그의 부모님에 대한 애절한 두 편의 시는 이를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내가 이 자리에 서있는 것도
아버지의 사랑이있었기에
지금 이순간에도 당신이 몹씨도 보고 싶네요>
아버지에 대한 그의 시는 매우 단순하고 쉽고 어찌보면 단조로운 것같지만 잘 살펴보면 대단한 시적인 이미지가 들어있는 시이다.아무렇지도 않은 사물에 특수한 용어, 이를테면 묵시적이고 환상적인 이해 불가의 언어로 치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시가 되는 요즘의 흔한 시가 아닌 진솔하게 주고 받는 시의 한 종류라고 생각이 든다.시를 구성하는 문자의 구조에서 은둔과 평이함을 벗어난 나름대로의 용어가 있겠지만 조미남 시인은 문자의 오묘한 시선에서 벗어나 일탈한 자유의 시를 창조했다고 볼 수 있겠다.
<눈으로 가슴으로 치밀어 오를때
그 그리움은 삭신이 녹아내리고
뼈마디가 부서져 나가는 그 그리움이 아픈 것이다>
<그리움이 아플 때의 한 구절>
인간을 아프게 하는 원인으로 정신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이 있다. 이를 영육이라고 한다면 육신적으로 아픈 것은 현대의 의학의 손을 빌리면 되지만 정신적인 것은 스스로 치유해야만 한다.미런이나 정 그리고 사랑과 같은 추상명사에게 시달릴때는 이를 극복하는 정신적인 개체가 있어야 가능하다.그리움과 아픔이란 결코 연결이 되지 않는 언어이지만 조미남 시인은 이를 시적인 비유로 극복했다. 오죽했으면 그리움이 아플 것인가.여기에서 시적인 오묘한 해결책이 있는 것이다.
조미남 시인은 나이에 비해 늦게 등단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삶의 여기저기에서 겪은 어려운 일들을 시어로서 승화 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젊은이들이 겪지 못했던 일들을 먼저 살아온 사람으로서 능숙하게 헤쳐나가는 모습과 여기에 얽힌 말못하던 사연들을 참회하는 수단으로서 엮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첫댓글 잘 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