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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사쿠 긴지 감독은 60년대부터 야쿠자 영화를 주로 만들어왔지만,
이 땅의 관객에게는 말년의 십대 유혈 약육강식극인 "배틀 로얄"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부천영화제에서 소개된 작품들 중 화제작으로 기억될만한 일련의 일본 영화들 중에서도
"배틀 로얄(2000)"은 저열한 만화적 상상력과 극악스러운 난도질의 학생교복,
고립된 섬에서 군대와 학교를 동질화시키는 근 미래의 잔혹도를 현재의 일본으로 대입시켜 대중에게 회자되었다.
수업시간에 떠들면 바로 분필 대신 단검 날려서 이마에 꽂아주시는 포스를 갖추시는 교사가 되고싶은 분!! 꼭 보시라...
교관으로 출연한 기타노 다케시의 무표정 살인 학습은 관습적이면서도 일본 영화다운 맛이 꽤나 인상적이다.
당시 피칠갑의 고교생 역할을 맡았던 젊은 배우들이 지금은 일본 영화 안에서 차세대 주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긴 10년전 영화니까 당연하지만...여튼 혈류성 영화를 좋아라하시는 분은 찾아보셔도 무방할 듯 싶다.
줄거리나 상황설정 면에서는 너무 기대를 하지 말고 보셔야 잘리는 참맛을 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 참고하시길...
말년의 유작이라 할 위 작품에서도 확연히 드러나듯이
후카사쿠 긴지의 작품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정서는 단적으로 말하면 '비열함'으로 모아진다.
그는 인간 윤리의 확보를 위한 질문을 영화 속에 무의식적으로 던지기를 거부하고
철저히 잘려나간 소통의 언어들을 되찾으려는 영웅적 노력은 폐기하고
버려진 고아들의 정서를 통해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할 남자들의 이야기를 폭력 장르의 법칙으로 녹여낸다.
아래에 소개될 70년대 야쿠자 영화의 정전 중 하나인 "의리없는 전쟁"은
위 주제를 맨살로 드러내는 작품으로서 흥행한 이후 급속으로 2년안에 5편이 개봉했고
이후 신新 의리없는 전쟁까지도 연작으로 만들어졌다.
할리우드의 서부극이나 사무라이극과는 또다른 정서를 지닌 야쿠자 장르의 차별성은
전자들이 방랑자 영웅 무사의 마을 수호하기의 낭만성과 휴머니즘, 가부장제를 수호하는 유사 로맨스에 머물러
일종의 건국 신화와 역사 설화의 녹화물로서 관객들에게 다가간다면
후자인 야쿠자물 역시 일련의 협객물을 통해서 동일한 맥을 이어간 측면도 있지만
후카사쿠 긴지의 작품들에서 철저히 조폭 사실주의 아래로 완전히 고개를 숙였다는 점에 있다.
물론, 서부극, 사무라이물 중에서도 리얼리즘 정서를 표방한 작품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일종의 최종판이라 할 클린트 할배의 "용서받지 못한 자", "그랜 토리노"에서도
설사 총알이 표적을 맞추지 못하거나 스스로 희생양으로 사라진다 하더라도
여전히 휴머니즘 영웅, 자경단으로서의 영토 방어적인 말랑 드라마적 요소는 유지된다.
무법 질서를 해결하지 못하고 떠나가는 비참한 총잡이의 퇴로는 장르극에서 불가능한 이탈일 것이다.
가깝게 돌아보자면, "영웅 본색"으로 시작된 홍콩 느와르는 한동안 일본 협객물에서
주윤발과 유덕화 등의 멋진 사나이들은 이쑤시개와 바바리 코트와 쌍권총에 얼마나 몰두했던가?
그들의 초상에서 오래전 서부극 보안관의 씹어되는 씨가와 오두막 하얀 증기오르는 주전자는 쉽게 발견된다.
의리와 사랑 그리고 정의감은 언제나 그들의 벨트에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황금총과도 같았다.
아예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80년대 이후 늘어난 폭발적인 조폭 장르로 돌아온다해도
정우성이라는 아이콘은 "구미호", "비트","본 투 킬"에서 사랑과 의리를 아는 꽃남이었고
최민수의 "태러리스트", 김승우의 "남자의 향기" 그리고 "장군의 아들"과 "모래 시계" 시리즈까지도
그들은 어두운 시대의 골목과 무너진 도덕의 구덩이를 지탱하는 윤리와 의무를 지닌 마초를 자임하고 나섰다.
물론, 할리우드와 마찬가지로 홍콩에서 두기봉이 "흑사회"를 들고나와 짱돌로 라이벌의 머리를 박살내고
이 땅에서도 "게임의 법칙", "초록 물고기", " 넘버 3", "킬리만자로"로 진정한 조폭스러움을 벗겨내기는 했다.
하지만, 최근 조폭 장르의 변화 발전은 코믹과 사회 이슈의 결합이라는 동선에서 멈춰지고 점차로 가라앉고 있다.
홍콩 느와르와 한국 조폭 장르의 선배격으로 일본 야쿠자물을 거론하는 것은 무지하고 과도한 발언일지 모르지만,
7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전후 서일본 야쿠자에 대한 실록에서 폭력을 필두로 한 비열함의 생존론을 듣는 것은
할리우드와는 달리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삼국의 상호 교환을 추적하는 별미가 있다.
1973년에서 1974년에 흥행을 바탕으로 급속으로 만들어진 "의리없는 전쟁" 시리즈 5편을 차례로 만나본다.
1. 의리없는 전쟁 仁義なき戰い(1973)
= 인의는 핵폭탄과 함께 사라졌다.
촌스럽지만, 어원을 따지자면 화투판의 8(야),9(쿠),3(자) 즉 합치면 끝자리가 0 이 되는 최악의 패로
아무 쓸모도 없이 살아가는 도박을 주로 하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에서 시간의 갈굼 속에서 폭력집단으로 변환된 것이다.
이들은 구미(組)나 가이(會)라는 조직명을 쓰고, 사까쓰끼 고토(盃事)라는 잔을 나누는 의식으로
오야붕(親分)과 꼬붕(子分)이라는 수직적 신분과 교다이붕(兄第分)이라는 수평적 관계를 유지해서
일종의 혈맹적 관계, 여성을 제외한 고대의 천황, 쇼군을 복사한 철저한 마초적인 가부장제를 갖춘다.
기타노 다케시의 죽음의 정신분석 그리고 초월의 미학으로 빚어진 야쿠자 론에 익숙한 분들에게는
야쿠자의 기원은 크게 의미가 없을 지 모르지만, 후카사쿠 긴지의 야쿠자들은 비린내의 뒷통수론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위와 같은 생소한 야쿠자 언어에 대한 기초적인 동반이 필요하다.
오프닝은 원폭 사진으로 시작하는데, 무대가 히로시마이고 시간이 전쟁 직후라는 측면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병기 실험소였던 도시에서 폭력 집단 야쿠자들의 20여년 역사를 올린
영화의 직선은 한국 전쟁과 경제 호황, 안보 투쟁 뒤에 은폐된 일본의 비루하게 나뒹구는 피 이미지에 있다.
원자 폭탄에 이어 원흉으로 이어지는 대상은 일본 여성을 백주 대낮에 강간하려는 무법자인 미군 주둔자인데
후에 야쿠자로 활동하게되는 주인공 남성은 패전 군인복을 입고 여성을 구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전후 일본 영화계가 가졌던 패배자의 자괴감, 승전국 미국에 대한 원한과 숭배가 야쿠자 장르에도 곧잘 등장하는데
시리즈의 초입에 전후 서일본 야쿠자 폭력의 근원을 무의식으로 미군에게 이어붙이는 은폐의식은 유치하고 초라하다.
5편의 시리즈마다 일본의 5-70년대의 사건들을 흑백 신문기사 자료를 첨부하면서까지 시대 정서를 안으려는 시도와는 달리
각 시리즈에서 변함없이 유지되는 암살의 낙인들은 동등한 비열함으로 미군의 원폭투하를 일관되게 연상시키면서
야쿠자 내부 상흔의 역사를 끊임없이 무책임한 전쟁 윤리로 나이브하게 연결시킨다.
실제로 영화의 각 편은 초반에 흥행에 성공한 1편의 줄거리를 요약할 때 원폭 투하를 매번 확인하듯 보여준다.
시장 바닥의 야쿠자로서 주인공이 하는 첫 살인은 암시장 바닥에서 소동을 일으키는 남자를 쳐단하는 것인데,
그는 여기서부터 시리즈의 주인공으로서의 캐릭터 과묵함과 결단력, 강인함을 발휘하면서도
전술한바와 같이 시리즈 내내 유지되는 작품의 주제를 드러내는 장면의 반복인 비열한 암살을 처음으로 명시한다.
카메라는 매 암살마다 당성 여부를 떠나서 화면을 옆으로 기울이는 장치를 거의 버리지 않고,
경찰에 의해서 쫓겨 죽음에 이르는 장면에서는 정상적인 각도로 다시 돌아온다.
이 첫 살인에서 극 전체를 주관하는 주인공조차도 감히 당당히 칼을 든 불량배와 결투를 하기보다
우월한 무기인 총으로 단 발에 처단하는 폭력의 계급성을 곧바로 드러낸다.
2편에서 5편까지 매 작품마다 등장하는 오야붕이나 배신한 동료, 상대편 조직원 등에 대한 암살은
글자 그대로 야쿠자 영화에서 정의, 의리, 인간애 따위를 완전히 폐기시키는 대표적인 시퀀스로 자리매김한다.
"아니키"라는 일본말에서 한국의 "형님", 홍콩의 "따꺼"와 동일한 어감을 형성한다.
감옥 안에서 처음으로 형제의 의를 치루는 장면에서 두 남자는 서로의 팔목 피를 마신다.
흡사 의리라는 마초 의식으로 완전히 극을 지배하려는 듯한 막연한 조짐과
이후 극 내에서 일정 정도 반영되는 두 야쿠자의 은밀한 협조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이 두 사람이 의리와 이익 그리고 혹시나 모를 배신의 깊은 수를 쓰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감독은 조종한다.
주인공이라는 관점에서 즉 이 작품의 실제 모델이었던 야쿠자의 수기라는 면에서
주인공 자신이 그 스스로를 의리와 정의, 인간애로 통용시키려는 의도가 편하지 않게 다가오거니와
감독 역시 그것을 쉽사리 눈치채고 몇몇의 분량에서 주인공 자신을 극도(極道)에서 이탈시켜
너구리같은 이기주의자로 변신시키는 것도 잊지 않는다.
'스가와라 분타'라는 배우의 카리스마는 동시대 야쿠자 협객영화의 대표적인 배우였던 다카쿠라 켄과 비견할만하다.
감독이 프란시스 포드 코플라의 "대부"와 요즘 미노스님이 애독하시는 70년대 이탈리아 범죄 영화에 받은 영향을
감추지 못하듯이, '스가와라 분타'의 연기 스타일은 알 파치노와 말론 브란도의 면면을 합한 듯한 인상을 준다.
일관되게 유지되는 짧은 머리와 굵게 패인 이마의 세 줄 주름살, 절도와 부드러움을 겸비한 연기선은
그가 일본 야쿠자 장르에서 만든 하나의 캐릭터로서 타 배우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권력에 눈이 먼 오야붕에게 고개를 숙이거나 꼬붕들 앞에서 체벌을 가할 때의 그의 벌어진 입의 제스처이다.
1편은 사실상 나머지 4편을 모두 담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며
나머지 시리즈들은 일종의 사족이나 인기에 편승한 연장 드라마같은 느낌마저도 든다는 측면에서
1편의 마지막에서 비열하게 암살된 친구 야쿠자의 장례식에서 권총을 제단에 난사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오래동안 회자되는 명대사인 "아직 권총에 총알이 남아있다"라는 '스가와라 분타'의 육성은
아마도 극 중에서 유일하게 어깨에 힘을 잔뜩 실은 정의 마초의 증언이라는 점에서 시리즈 전제와 동떨어진다.
영화의 원 재료인 야쿠자의 수기, 각색한 소설 그리고 감독의 영화라는 제작 구도에서 산출되었을
라스트 씬의 모순 형용과 이중 초상은 극 내부에서 관객의 감상과 기대를 자아내는 주인공 관찰자 수단으로 작용한다.
2. 의리없는 전쟁:히로시마사투 仁義なき戰い: 廣島死鬪編(1973)
= 떠돌이, 총을 입에 물다.
1편에서 거의 배제되었던 유일한 인간 요소인, 여자와의 로맨스가 2편에서 등장한다.
주인공인 스가와라 분타의 분량을 대거 줄이고 도박장의 불량배에서 야쿠자의 일원으로 가입했다가
결국에는 야쿠자 두목 친척 여인과의 사랑으로 폐기되는 남자라는 전형적인 로맨스가 2편의 주류이다.
그는 조직의 대명을 듣고 암살을 주도하지만, 결국 체포되고 다시 탈옥하여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에게로 갔다가 다시 오야붕의 농간에 빠져 스스로 권총을 입에 문다.
익숙한 그리스 비극에 가까운 2편은 "초록 물고기"와 "게임의 법칙"의 교다이붕(兄第)이다.
3. 의리없는 전쟁:대리전쟁 仁義なき戰い: 代理戰爭(1973)
= 똘마니들, 어른의 피를 흘리다.
히로시마의 두 조직-구미는 결국 타 도시의 거대 조직과의 연결 하에
하부 소규모 조직의 대리 전쟁으로 이어져 의미없는 항쟁과 살인을 이어간다.
시리즈 3편은 본격적으로 재편되는 조직 간의 암투와 이권 갈등 속에서
소모품으로 폐기되는 젊은 피들의 허망한 죽음을 뼈대로 가진다.
2편에서 부상했던 조직 간의 암투는 점점 더 큰 조직들의 외연 녋히기의 지역 분쟁으로
소모품 폐기된 한 남자의 죽음은 3편에서 더 많은 소모품으로 완성되는 야쿠자 조직의 실체로 확장된다.
1편의 장례식, 2편의 자살에 이어서 3편은 장례식에서까지 습격하는 예의없는 야쿠자의 평면을
박살나버린 유골상자와 뼈가루로 이미지화된다.
드라마의 줄거리상으로 이어지는 과정과 측면을 가짐에도 2편과 3편은 주제와 설정 면에서 차별성을 가지지 못한다.
4. 의리없는 전쟁:정상작전 仁義なき戰い: 頂上作戰(1974)
= 여론, 폭력의 탈을 바꾸다.
영화는 흑백 사진의 단면을 수차례 제시하여 영화의 현실화 효과를 꾀한다.
야쿠자 간의 의식과 신문 기사, 기념 사진 등의 강렬한 흑백 영상은 단발적인 집중도와 신선함을 거두어들인다.
중앙 히로시마 구미 현판 을 사이에 둔 두 남자는 이 극에서 2-3번 다른 배역으로 출연한다.
이 외에도 시리즈 5편 동안 주인공을 제외한 주요 배우들은 평균 2-3명의 각각 다른 야쿠자 역할을 맡는다.
6-70년대 야쿠자 영화에 출현했던 남성 배우들의 면면의 백화점과도 같다.
이 시리즈는 일본의 경제 호황 이후 시민의식의 성숙으로 인해서
야쿠자들의 백주 폭력에 대해서 여론 전쟁이 이루어져서
결국 공권력이 야쿠자 조직을 붕괴시키려는 정책적인 결과를 낳게된다.
주인공을 비롯한 조직의 오야붕들은 하나둘씩 체포되거나 은퇴를 결심하게된다.
한 때는 양강 대립구도를 이루던 이들이 모두 구치소 죄수복을 입고 복도에서 찬 겨울, 양말도 없이 만나게된다.
시리즈의 전환점이자 하강 곡선의 대비로서
4편은 야쿠자 대 야쿠자가 아니라 야쿠자 대 시민, 공권력의 시대를 증언한다.
5. 의리없는 전쟁 仁義なき戰い: 完結編(1974)
= 비열한 거리에서 은퇴할 수 있다.
시리즈 완결인 5편은 야쿠자 조직-구미의 간판을 내리고 천정회 天政會라는 정치 조직으로 간판을 바꿔단
60년대 중반의 야쿠자는 1편과 동일한 원폭 기념일에 가두 행진을 하면서 시작된다.
매년 8월 6일 원폭에 의해서 희생된 영혼을 달랜다는 기념일에 폭력을 숭상하는 야쿠자 집단이
그들의 외부적인 간판을 구미 組에서 가이 會로 바꾼다는 것은 일종의 U턴 표지판과도 같다.
하지만, 모든 U턴 포지판이 교통의 흐름을 명쾌하게 하지 못하듯이
야쿠자가 그들의 조직명을 교체한다고해도 그들간의 암투와 비열함은 단지 아래로 숨겨질 뿐 삭제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들은 조직 내 후계자 문제로 분열하고 오야붕을 암살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으며
그 자리를 지키려는 금권과의 결탁 또한 실행되고, 주인공을 비롯한 원로들은 이제 천천히 사라진다.
시리즈 내 마지막 오야붕의 자리를 차지하는 배우는
2편의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여인 때문에 수렁에 빠져 자살하는 야쿠자 대원이었는데,
5편에서도 부친이 야쿠자에게 살해된 여인과 관계를 유지하고 결혼하게 된다.
그는 이제 시리즈의 변모답게 그리고 야쿠자의 전체 수장답게
2편에서와는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여 5편에서는 복수를 재촉하는 여인을 달래는 노회함을 보인다.
프레임 안에서 배우의 훌륭한 복근보다 눈여겨볼 것은 두 병의 맥주와 남자의 두 팔의 일치하는 수직선이다.
5편에서 한번도 자기 스스로 권총을 잡지 않는 배우는 선거 유새와 같은 지역 보스 답사를 통해서
야쿠자 조직이 70년대를 거쳐 어떻게 기업화될 것인지를 두 손의 상징으로 그려낸다.
영화사적으로 한참 어린 후배인 곽경택의 "친구"가 실제 조폭의 이야기를 스크린 위로 올렸듯이
이 시리즈 역시도 실제 야쿠자의 감옥 수기를 바탕으로 소설화되고 다시 영화화되었다.
문제는 이 수기의 종점이 어디까지였는지 확연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인공 야쿠자가 수기를 그가 감옥에 수감되어있는 지점에서 작성했다고 예상한다면
이후 그의 출감 이후의 야쿠자 들간의 혈투는 소설가 혹은 감독의 상상극이 된다.
주인공과 더불어 시리즈 내내 단 한 명의 배우가 맡아 연기한 원로 야쿠자 오야붕의 암살 장면은
일종의 시리즈 정리 요약이자 절정의 하강곡선의 꼭지점이다.
1편에서의 첫 살해 장면의 대구로서 이 장면은 반대편의 사선 시점으로 촬영된다.
젊은 야쿠자 조직원의 장례식 이후 조의금을 올리고 걸어나오는 주인공 야쿠자 '스가와라 분타'가
관객에게만 들리는 음성으로 끊임없이 피를 요구하는 야쿠자 판을 은퇴한다는 메시지를 들려줄 때
영화는 비현실적이고 도덕적인 허무주의라는 뻔한 덫에 포획되고 만다.
비열함의 은퇴라는 공식에서 중요한 것은 비열함 자체가 아니라 은퇴가 가능하다라는 결과론인데,
야쿠자 계열이든 일상 시민의 삶이든 과연 어디서부터가 은퇴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문은 물론
주인공의 은퇴 이후 지속되는 야쿠자 세계의 존속으로부터의 무책임한 열외 의식은 식은 환타지로 전락한다.
히로시마의 중요한 유적으로 보이는 다 허물어져가는 건물은 시리즈 후반부에서 마지막 장면으로 활용되는데
원폭의 오프닝과 배치되는 상처의 흔적이라는 라스트로서 상투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의리없는 전쟁"은 까칠하고 상스러운 마틴 스콜세즈의 "비열한 거리"이자 "좋은 친구들"이기는 하지만,
히로시마라는 원폭 기념 공간에 올려진 최강 마초의 비루한 신세 한탄이기도 하다.
후카사쿠 긴지 감독은 5-60년대 야쿠자 연대기와 밀레니엄 첫해의 "배틀로얄"을 통해서
인간 군상에 대한 절대적인 불신과 항복 선언을 30 여년간 버리지 않고 주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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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배틀로얄>은 속에 담긴 함의가 있다고 해도... 저한테는 만화 원작의 어이 없는 살육극으로만 기억되고 있어용. 재미도 없고... 설득력도 모르겠고... 단지 교복 판타지를 슬래셔에 대입시킨 정도라고... 생각해요...
보늬님과 기타노 다케시의 이미지는 안 어울려요...그래도 혹시 모르니 단검 던지기 연습을 지금부터 해 보아요...
배틀로얄은 누군가가 뽑은 21세기 첫10년의 최고작품이었던것 같네요...(아마 타란티노인듯) 이정도 시리즈면 모래시계보다 훨씬 흥미롭겠네요...야쿠자에 대한 해박함이 날로 빛을 더해가시는게, 직업 덕택인지 영화 덕택인지 모르겠네요...ㅋ
직업 때문은 아니고, 야쿠자 영화 볼 때 저 정도는 알고 보시는 게 도움이 될 듯 해서 모자란 소개 덧붙였습니다. 특히 이 시리즈는 야쿠자 단어들이 필요한 작품들이니까요. 아마 타란티노가 이 영화를 자신의 영화 목록에 당연히 올려놓았을 겁니다. 그가 좋아하는 신파조의 음악 효과가 귀에 익습니다.
1년안에 줄줄이 찍어낸 씨리즈라 좀 흥미가 가긴 합니다..ㅎㅎ '1편'을 일단 보면 어느정도 윤곽이 나올라나요...?
1편만 보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