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성경에서 이중 국적 자는 바울 사도였다. 그는 유태인이였으나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 때부터 가지고 있어서 바울은 자동적으로 로마 시민이었다(행 22:29). 그런데 이 시민권은 복음 전파에 유용하게 쓰이게 되어 감사한 일이 되었다.
국무총리 서리로 선임됐던 장상 박사의 아들이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서 반대파와 지지파로 나뉘어져 한때 논란을 빚었다. 물론 정치적 입장에서 찬반이 엇갈리고 있어서 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정치인들의 주장에 문제가 있음을 본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인들 특히 교회 공직자의 이중국적 문제는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1. 부정적인 견해
1) 비애국자론 공직자가 이중 국적을 가지는 것은 애국적이지 못하다는 견해다. 단일 국적을 가져야 할 사람이 이중 국적을 가진 것 하나만 보아도 비애국적이다는 것이요. 본국에 대해 소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2) 기회주의자론 이중 국적자는 본국이 불리한 상황에 이르면 일신을 위해 도피하려는 자요, 언제나 개인을 위해 상황에 따라 처신할 기회주의 자라는 것이다.
2. 긍정적인 견해
1) 국익을 위하여 필요하다. 이중 국적은 대개 미국 국적을 말하는데 미국은 전 세계의 경찰국가이기 때문에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면 본국이 어려운 상황일 때 유익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어느 다른 나라 국적이든지 내 국가 경제를 위해서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요 긍정적 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개인 생활에 유익하다. 미국 시민권은 전 세계가 인정하므로 개인 생활에 매우 유익하다는 것이다. 개인 생활의 유익은 곧 국가 유익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3. 정치적으로 볼 것이냐? 문화적으로 볼 것이냐?
그러면 교회 공직자 즉 목사 교수를 비롯한 공직자들을 어떤 입장에서 볼 것이냐가 해답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속해있는 여야의 입장에 따라서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문화적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되고 쉽게 해결될 문제이다. 한국인이 이중 국적을 가졌다고 한국이 아닌 것은 아니다. 또한 이중 국적을 가졌다고 비애국자이고 기회주의자인 것도 아니다. 오늘의 문화를 이해하여야 한다.
지금은 지구촌 시대요 인터넷 시대이다. 모든 것이 총알처럼 움직이고 총알처럼 사고하여야 한다. 이중 국적은 현대인의 총알이다. 한국인으로서 세계 모든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한국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 이중 국적이 아니라 100중 국적 200중 국적이라도 필요하다.
이는 국가를 위해서요 교회를 위해서요 신학교를 위해서요 선교를 위해서이다. 폐쇄적인 사고는 시계 바늘이 뒤로 물러갈 수 밖에 없다. ‘대원이 파파’가 아니라면 개방하여야 한다.
지금의 찬반 이야기도 시간이 지나면 노파심의 기우(杞憂)에 불과할 것이다. 문을 열고 마음을 넓게 하자. 울타리 끈에 매이지 말고 세계를 바라보자. 여러분을 세계가 부르고 있다. 교회 공직자의 이중 국적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