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산,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산지를 탐방한 뒤 바삐 '조문국 사적지'로 차량이동을 한다.
‘조문국(召文國)’은 초기국가시대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었던 소국으로 ‘소문국’이라고도 읽지만 '조문국'이 맞다.
그러나「삼국사기」등 지리지에 “문소군(聞韶郡)은 본래 소문국(召文國)인데 경덕왕이 개명하였고 지금의 의성부(義城府)이니 소속 현은 네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고려사(高麗史)」,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도 의성에는 소문국이 있었던 것으로 서술되고 있다.
또한 「대동지지(大東地志)」와 「읍지(邑誌)」에는 소문국의 옛 터가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서 남쪽으로 25리 떨어진 금성면 일대라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신뢰할 만한 문헌 자료는 매우 소략하여 조문국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다만 조문국 공벌 기사와 관련해 사로국이 군주제를 확충하여 처음으로 정복한 나라가 조문국이라는 점과 경북 일대 지역에서 유일하게 조문국이 신라의 적석목관분과 비교될 만한 대형 고분이 축조되었던 점을 함께 감안해 볼 필요가 있다.
발굴 조사 결과 확인된 유물의 다수는 의성 양식 토기이지만 금동관, 금동장식, 은제관식 등이 출토되었다.
의성군 금성면 일대는 오랫동안 조문국의 도읍지였으며 이를 증명하는 대규모 고분의 축조, 수준 높은 위세품 등에서 확인되며 의성 조문국 박물관에서 전시 보관 중이다.
또한 대리리 2호 분 내부 모습을 재현한 고분전시관에는 출토유물, 순장 문화를 통해 당시 매장 풍습을 엿볼 수 있다.
◇ 의성 조문국 사적지: 의성 금성면 고분군, 조문국 고분전시관, 경덕왕릉, 조문정, 문익점 면작 기념비.
의성 금성면 고분군 안내도.
‘조문국 사적지(召文國 史蹟地)’ 입석.
입구엔 대형버스가 댈 수 있는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1시간의 탐방 시간.
아주 널따란 평지에 조성된 고분군들.
어디부터 먼저 답사해야 할 지 둘러보다...
입구의 돌비에 새겨진 시비(詩碑)부터 카메라에 담았다.
'次召文景德王陵竪碑韻(차조문경덕왕릉수비운)'
召文往跡杳千秋 (조문왕적묘천추)/ 조문국의 지난 자취 천추에 아득하고
曠感興懷涕欲流 (광감흥회체욕류)/ 공허한 감흥에 일어나는 회한에 눈물 흘리네
世遠嗟無徵國史 (세원차무징국사)/ 아 오랜세월 역사를 찾을 수 없으나
禋精應有格靈休 (인정응유격령휴)/ 정성드려 제사모시니 혼령은 알지로다
杉松增彩新趺座 (삼송증채신부좌)/ 삼나무 소나무 빛이 새로운데
葵麥堪憐舊殿樓 (규맥감련구전루)/ 가련히 옛날의 궁전들 빈터만 남았으나
敬肅餘芬猶未泯 (경숙여분유미민)/ 아직도 남은 향기에공경히숙배하니
行人咸式古城頭 (행인함식고성두)/ 길손들은 너나없이 옛 성터라 말하네
- 晩沙 金振鍾 詩(만사 김진종 1883~1951)-
선생은 의성(義城) 사촌(沙村)인으로 자는 성언(聲彦) 관향은 안동(安東)이다.
어려서부터 학업에 정진하여 경사자집(經史子集)과 백가서(百家書)에 섭렵했으며 시율(詩律)에 통달한 詩의 대가로 암울한 시기에 일본과 조선팔도를 유람하면서 가는 곳마다 남겨둔 글은 오늘날 한 세기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조문국의 기상을 알리는 활쏘는 기마병 동상.
문익점 면작 기념비는...
문익점 면작기념비.
문익점(1329~1398)은 고려후기 목화 종자를 도입하고 재배하여 전국에 보급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363년(공민왕 12) 서장관으로 원나라에 갔다가 귀국할 때 몰래 목화씨 종자를 붓대 속에 넣어 가지고 돌아왔다.
충선공 부민후(忠宣公 富民侯)/ 강성군 삼우당(江城君 三憂堂) '문익점 선생(文益漸 先生)'.
안내판. 산청군에 시배지가 있다.
'의성 금성면 고분군(사적 제 555호)' 안내판.
안내도.
사적지 안내도.
2층 팔각정자는 사방이 트인 전망대로...
조문정 현판이 걸려있다. 글쓴이는 '구천 김복규(1940~2022)'. 의성군수를 지낸 인물이다.
정자에 걸린 '조문의 모란'이란 시와...
'조문 옛도읍에서 우연히 읊다'라는 시.
초기국가 조문국의 성립.
서애 류성룡과 김종직의 시도 있고...
허목과 유호인의 시도 걸려있다.
조문정에서 내려다 보는 고분군.
가까이 솟은 산은 금성산과 비봉산.
돔형의 회색 인공물은 '조문국 고분전시관'이다.
그 우측에 전(傳)으로 내려오는 '경덕왕릉'.
'조문국 고분전시관(대리리 2호분)'은 마치 경주의 천마총을 닮았다.
의성 조문국 박물관의 안내.
'대리리 2호분'의 1)고대 의성의 비밀통로, 2)고분군 분포와 현황, 3)고분군 형성과정, 4)대리리 2호분, 5)대리리 2호분 유구,
6)대리리2호분 출토유물 전시, 7)대리리 2호분 출토유물, 8)의성지역의 순장사례, 9)2호분 순장 문화의 비밀, 10)경덕왕릉 설화,
11)봉토축조과정 디오라마.
고분군의 분포와 현황.
대리리 2호분.
대리리 2호분.
고분군 형성과정은...
4세기~7세기까지.
발굴 조사된 고분군이다.
출토된 유물들은 복제 전시되었고...
뭉덤 내부는 디테일하게 묘사되었다.
내부모습.
출토 유물은...
토기류와...
금속류.
토기류 출토유물.
의성지역의 순장사례.
순장(殉葬)은 왕이나 귀족이 죽었을 때 그의 아내나 신하 또는 종들을 함께 매장하던 고대 장례 풍속이다.
순장 배치 유형은 A,B,C 3형으로 배치되었다.
순장문화의 비밀. A-1호 부곽.
A-1호 주곽.
경덕왕분.
봉토과정.
전시관을 나와 경덕왕릉으로 전해 내려오는 고분은...
1호 고분(경덕왕릉)이다.
안내판.
1호 고분은...
새로 세운 듯한 문·무인석과 석등이 세워져 있다.
조문국 경덕왕릉 비석 뒷면에...
'단기 4324년 신미소춘절'이라 새겨져 있다. 1991년인 셈.
고분군의 이정표. 너른 고분군엔 제철이면 꽃화원이 펼쳐질 테지만 지금은 그저 황량한 대지.
주마간산 30여분 만에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잊혀진 조문국의 역사는 이제 다시금 깨어나고 있다.
- 조문국을 지나다가 감회가 들어 -
천년의 조문국
멸망한 빈터, 슬프고 처량하네.
다시는 변화함을 볼 수 없고
거친 초목, 들꽃만 향기롭네.
오래된 무덤이 연달아 있건만
백양나무 한 그루 없이 황량하네.
농부는 두둑에서 밭을 갈면서도
오히려 경덕왕을 이야기하네.
천지는 어찌도 유유하던가?
옛부터 얼마나 흥하고 망했던가?
물리는 본래 무상한 법인데
인정이 다만 절로 슬퍼할 뿐일세.
지나간 옛일이 한스러워서
홀로 서서 길이 탄식한다네.
<허 목 1595~1682, 記言別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