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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묵시록을 묵상하면서 13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지상에 와 있음을 성경은 증명하고 있으며 이것이 요한묵시록의 중심사상
교회와 천사들편 제3강해
('거짓됨'을 대전제'', 예언자들ㆍ교황ㆍ주교들ㆍ사제들ㆍ수도자들ㆍ교회학자들ㆍ교회지도자들ㆍ그리스도인들의 주요성-요한묵시록의 경고와 재앙과 환난과 멸망과 종말의 심판과 영원한 생명에로의 구원됨이 중심사상)
이 계시와 예언을 열면서
"이 예언을 낭독하는 이와 그 말씀을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때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묵시 1,3)
1. 주석과 해석에 들어가기 전에
1).,2)., 제12강해 참조
2. 현존하는 교회 시대의 본질과 교회(교회(koinonia-society. 에페1,1-23;로마15,1-13;1코린1,4-9;1,요한1,1-4), 지옥, 천국에 대하여
1). 지옥을 알려면 천국을 알아야 하고, 천국을 알려면 교회를 알아야 한다.
(1). 거짓 예언자들과 거짓 성직자들과 거짓 교회와 '그리스도의 적들'의 대명사 '짐승 육박육십육(666)'의 성경적 근원과 본질(묵시1,19-20)은 교회와 천사들의 죄와 악행들이 회피될 수 없어
(2). 현존하는 이방인의 교회 시대가 저지르고 있는 대착각은 가히 환상적이고 몽환적이며 광견몽적狂犬夢的, 그것은 '짐승(666)'이자, 교회와 천사들의 죄와 악행을 감추기 위한 불의
ㄱ. 신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어떤 사람의 숫자'인데, 짐승의 수는 육백육십육(666), 그러나 교회의 주석과 해석은 모순
성경은, "그리스 문자와 히브리 문자는 수치로 환산된다. 그러므로 사람의 이름도 그 글자의 수치를 합하여 숫자로 나타낼 수 있다. '666'이란 수는 '네로 황제'(13.3)나 '네르바 황제'(96-98)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요컨데 '둘째 짐승'은 '황제 숭배'를 상징한다."(한국천주교회창림 200주념 기념성경, 1991년 초판, 1998년 개정, 묵시13,15)라고 그 시대와 그 시대의 역사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상황을 성경 해석에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논리적 문장이 "..... , 가르킨다고 볼 수 있다."라고 단정적인 이론과 논리와 문장은 아니디.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요한묵시록은 그 자체가 계시와 예언의 영역을 묵시록 1장 19절과 20절로 확정하여 계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비성경적 해석은 교회 밖의 해석과 같은 것으로서 복음정신에 충실하지 못했다. 또한 일부는 불확실한 이론과 논리로 문장을 처리하였으며, 또 일부는 확신에 찬 이론과 논리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신학적이든 신앙적이든, 종교적이든 학문적이든, 철학적이든 또는 비학문적이고 비상식적이든, 이는 인간의 지적 순수이성적 고등한 정신세계와 영혼, 영적 세계를 다루고 있는 문제이고 생과 사의 문제만을 다루고 있는 존엄하고도 거룩한 영역으로서 지극히 모순된 해석이고 주석이라고 통찰했다. 왜냐하면 요한묵시록은 전술한 바와 같이 그 해석과 주석의 범위를 처음부터 묵시록 제1장 19절부터 20절로 확고하게 규정하여 계명으로 명시하고 있기 때믄이다. 결국, 요한 묵시록에 대한 모슨된 해석과 주석은 이단들에 의해서는 더욱 모순되기도 하지만, 그 근원적인 본질을 재 조명하고 명철하게 통찰해야 한다고 보았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마태15,14)라고 기록하고 있듯이, 로마가톨릭교회는 순수이성의 집단일 뿐만 아니라 만물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스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에페1,1-23)이다.
ㄴ. 교회는 영육적 지식주의 지성주의 이성주의 선과 악의 계시주의 예지주의 영적 육적 생명주의 (집회17,1-10)
'짐승(666)'에 대한 성경의 본질은, 그 짐승들에 대한 관찰학이나 현상학이나 표본해부학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프로테스탄트들, 유사종교집단들, 사이비집단들, 이단들, '그리스도의 적들'이 로마제국의 네로 황제(AD.54-68)와 도미티아누스 황제(AD.81-96)와 그 시대의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사건들를 통합하여 그것들을 짜맞추기 하듯이 요한묵시록의 주석이나 해석으로 인용하는 것은, 교회가 하느님을 거역하여 저지르고 있는 감당할 수 없는 죄와 악행으로서 속임수이다. 그것은 거짓됨과 삿됨과 헛됨을 감추거나 회피하려는 지극히 의도적이며 고의적인 행위라고 해석했다. 왜냐하면 땅에서나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들'이 '거짓 예언자들'을 상징하는 것이지, 성경은 결코 그 짐승 자체를 향해서 말하고 있지 않고 있는 것과 같다.
지적이고 순수이성의 문명의 시대를 살아 가고 있는 교회는 크게 세가지 형태의 비문명적이고 미개한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 하나는 로마 시대의 박해와 그 칙령의 장본인인 황제들과의 관계로부터의 회피와 은둔, 또 하나는 거짓 예언자들과 거짓 성직자들이 자기 자신들 장본인이라는 사실로부터의 회피와 은둔, 그리고 총독 재판관 빌라도의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에 대한 책임으로부터의 희피와 은둔이다.
요한묵시록은 교회와 천사들이 죄와 악행을 저지르고서도 이들의 등 뒤에 숨어있다는 것을 고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회와 천사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죄와 악행에 대해 회개하고 회두해야 할 장본인들인 교회와 천사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모두 속이고 교회 안은 물론, 교회 밖의 선량한 일반시민과 비그리스도인들을 죽음의 계곡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해석했다.
만물의 하느님. 예수그리스도가 세우신, 현존하는 이방인의 교회 시대를 새로 창조한 그리스도의 몸, 로마가톨릭교회가 이를 모를 리 없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로마가톨릭교회는 소경이 아니기 때문이다.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주님께서 사람을 흙에서 창조하시고 그를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정해진 날 수와 시간을 그들에게 주시고 땅 위에 있는 것들을 다스릴 권한을 그들에게 주셨다.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처럼 그들에게 힘을 입히시고 당신 모습으로 그들을 만드셨다. 그분께서는 모든 생물 안에 그들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 놓으시고 그들을 들짐승과 날짐승의 주인이 되게 하셨다. 그들은 주님의 다섯가지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덧붙여 그분께서는 여섯 번째로 그들에게 지성을 나누어 주시고 일곱 번째로 그분의 능력을 해석할 수 있는 이성을 주셨다. 그분께서는 분별력과 혀와 눈을 주시고 귀와 마음을 주시어 깨닫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지식과 이해력으로 그들을 충만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선과 악을 보여 주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마음에 당신에 대한 경외심을 심어 주시어 당신의 위대한 업적을 보게 하시고 그들이 당신의 놀라운 일들을 영원히 찬양하게 하셨다. 그분의 위대한 업적을 선포하기 위하여 그들은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미하리라."(집회17,1-10)라고 인간의 이성과 지성괴 지식과 분별력과 이해력의 모든 능력을 하느님 당신 자신처럼 힘을 입혀주셨다고 설파하고 있다. 또 성경은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마태15,14)라고 교회는 그 고등한 영적 육적 책임과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성경은, 거짓 예언자들과 거짓 성직자들과 거짓 교회학자들과 거짓 교회지도자들과 거짓 교회봉사자들과 '그리스도의 적들'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죄와 악행의 근원적인 본질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시대는 물론, 사도 시대부터 현존하는 이방인의 교회 시대, 교회와 교회를 이끌고 있는 짐승(666)은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지도자들이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러한 죄와 악행을 교회 밖에서 찾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이와 같은 죄와 악행들을 교회 밖의 종교와 신앙과 전혀 관련성도 없는 세상에로 모두 돌리고 있다. 이는 하느님의 이름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교회와 천사들이 일반 시민에게 저지르고 있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와 악행으로 해석했다. 그러므로 교회와 천사들의 이와 같은 죄와 악행은 회피될 수 없다.
ㄷ. 짐승의 수 육백육십육(666) 성경 본문(주요 주석은 본문에 '((.... ,))'로 표시하였음)
성경은 '두 짐승(666)'을 통해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나는 또 바다에서 짐승 하나가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짐승은 뿔이 열이고 머리가 일곱이었으며, 열 개의 뿔에는 모두 작은 관을 쓰고 있었고 머리마다 하느님을 모둑하는 이름들이 붙어 있었습니다.("그러자 서로 모양이 다른 거대한 짐승 네 마리가 바다에서 올라왔다. 첫 번째 것은 사자 같았는데 독수리의 날개를 달고 있었다.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그 것은 날개가 뽑히더니 땅에서 들어 올려져 사람처럼 두 발로 일으켜 세워진 다음, 그것에게 사람의 마음이 주어졌다. 그리고 다른 두 번째 짐승은 곰처럼 생겼다. 한쪽으로만 일으켜져 있던 이 짐승은 입속 이빨 사이에 갈비 세 개를 물고 있었는데, 그것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하였다. '일어나 고기를 많이 먹어라.' 그 뒤에 내가 다시 보니 표범처럼 생긴 또 다른 짐승이 나왔다. 그 짐승은 등에 새의 날개가 네 개 달려 있고 머리도 네 개였는데, 그것에게 통치권이 주어졌다. 그 뒤에 내가 계속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끔찍하고 무시무시하고 아주 튼튼한 네 번째 짐승이 나왔다. 커더란 쇠 이빨을 가진 그 짐승은 먹이를 먹고 으스러뜨리며 남은 것은 발로 짓밟았다. 그것은 또 앞의 모든 짐승과 다르게 생겼으며 뿔을 열 개나 달고 있었다. 내가 그 뿔들을 살펴보았는데, 그것들 사이에서 또 다른 자그마한 뿔이 올라왔다. 그리고 먼저 나온 뿔 가운데에서 세 개가 그것 앞에서 뽑혀 나갔다. 그 자그마한 뿔은 사람의 눈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고, 입도 있어서 거만하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다니7,3-8,다니엘의 네 마리 짐승의 환시, 이는 타락한 거짓 교회와 천사들이며 그리스도의 적들이며 이들을 묘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 근거로는 묵시록 1장 19-20절의 기록이다.)) 내가 보 그 짐승은 표범 같았는데, 발은 곰의 발 같았고 입은 사자의 입 같았습니다.((다니7,4-6,에 나오는 네 마리의 짐승을 한 짐승의 모습으로 합쳐놓았음)) 용이 그 짐승에게 자기 권능과 왕좌와 큰 권한을 주었습니다. 그의 머리 가운데 하나가 상처를 입어 죽은 것 같았지만 그 치명적인 상처가 나았습니다.(교회학자는, 이를, 되살아난 네로 황제(AD.54-68), 도미티아누스 황제(AD.81-96)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요환 묵시록은 교회와 천사들에 대한 계시와 예언으로서 이는 이미 그 당시부터 발생한 '그리스도의 적들'과 교회와 성직자들이라고 해석했다. 그 근거로는 묵시록 1장 19-20절의 명시된 계시와 예언의 기록이다.) 그러자 온 땅이 놀라워하며 그 짐승을 따랐습니다. 용이 그 짐승에게 권한을 주었으므로 사람들은 용에게 경배하였습니다. 또 짐승에게도 경배하며 "누가 이 짐승과 같으랴?" "누가 이 짐승과 싸울 수 있으랴?"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 짐승에게는 또 큰 소리를 치고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입이 주어졌습니다.("내가 그 뿔을 살펴보고 있는데, 그것들 사이에서 또 다른 자그마한 뿔이 올라왔다. 그리고 먼저 나온 뿔 가운데에서 세 개가 그것 앞에서 뽑혀 나갔다. 그 자그마한 뿔은 사람의 눈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고, 입도 있어서 거만하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다니7,8.), ("그는 나를 잡아 일으켜 세우고서 말하였다. "자, 진노의 심판 끝에 무엇이 일어날지 너에게 알려 주겠다. 이는 정해진 종말의 때에 관한 것이다. 뿔이 두 개 달린 숫양을 네가 보았는데, 그것들은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임금들이다. 숫염소는 그리스 임금이고, 두 눈 사이에 있던 큰 뿔은 그 첫 임금이다. 그 뿔이 부서지고 그 자리에 생긴 뿔은 한 왕국에서 생겨날 네 나라인데, 그것들이 그 왕국의 힘은 이어받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통치 끝에 죄악이 가득 차면 얼굴이 뻔뻔하고 술수에 능란한 임금이 일어나리라. 그는 힘이 점점 세어질 터인데 제힘으로 그리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끔직스러운 파괴를 자행하면서도 하는 일마다 성공을 거두리라. 또 힘센 이들과 거룩한 백성을 파괴시키리라. 그는 재간이 좋아 제 손으로 속임수도 성공을 거두게 하니 마음속으로 오만해져 불시에 많은 사람들을 파멸시키리라. 그러나 제후들의 제후에게까지 맞서다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도 부서지리라. 내가 설명한 저녁과 아침의 환상은 진실이다. 그러나 아직 멀었으니 너는 이 환시를 봉인해 두어라. 나 다니엘은 기운이 빠져서 여러날 동안 아팠다. 그런 다음에 일어나 임금의 일을 거들었지만, 그 환상 때문에 당황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뜻도 깨닫지 못하였다."(다니8,19-27)) 그리고 마흔두 달 동안 활동할 권한이 주어졌습니다.("그리고 나에게 지팡이 같은 잣대가 주어지면서 이런 말씀이 들여왔습니다. "일어나 하느님의 성전과 제단을 재고 성전 안에서 예배하는 이들을 세어라. 성전 바깥뜰은 재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 그것은 이민족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들이 거룩한 도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은 것이다."(묵시11,1-2)) 그래서 그 짐승은 입을 열어 하느님을 모독하였습니다. 그분의 이름과 그분의 거처와 하늘에 거처하는 이들을 모독하였습니다. 그 짐승에게는 또 성도들과 싸워 이기는 것이("내가 보니 그 뿔은 거룩한 백성과 전쟁을 벌여 그들을 압도하고 있었다."(다니7,21)) 허락되었고, 모든 종족과 백성과 언어와 민족을 다스리는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세상 창조 이래 땅의 주민들 가운데에서, 살해된 어린양이 생명의 책("그때에 내 백성의 보호자 미카엘 대제후 천사가 나서리라. 또한 나라가 생긴 이래 일찍이 없었던 재앙의 때가 오리라. 그때에 네 백성은, 책에 쓰인 이들은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 또 땅 먼지 속에 잠든 사람들 가운데에서 많은 이가 깨어나 어떤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어떤 이들은 수치를, 영원한 치욕을 받으리라. 그러나 현명한 이들은 창공의 광체처럼 많은 사람을 정의로 이끈 이들은 별처럼 영원 무궁히 빛나리라. 다니엘아, 너는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비밀에 부치고 이 책을 봉인해 두어라. 많은 이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더 많은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다니12,1-4, 마지막 때에 관한 다니엘의 환시설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은 모두 그에게 경배할 것입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으십시오. 사로잡혀 갈 사람은 사로 잡혀가고 칼로 죽을 사람은 칼로 죽을 것입니다.("그들이 너에게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합니까?' 하고 묻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여라.'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흑사병에 걸릴 자는 흑사병에 걸리고, 칼에 맞을 자는 칼에 맞고, 굶주릴 자는 굶주리고, 사로잡혀 갈 자는 사로잡혀 가리라. 내가 그들에게 네 가지 심판을 보내겠다. 주님의 말씀이다. 곧 죽이는 칼과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개들, 먹어치우는 공중의 새들과 땅의 짐승들이다. 나는 그들을 세상의 모든 왕국에 공포의 대상이 되게 하겠다. 이는 유다 임금 히즈키야의 아들 므나세가 예루살렘에서 저지른 짓 때문이다."(예레15,2-4))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필요한 까닭이 있습니다. 나는 또 땅에서 다른 짐승 하나가 올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그날에 주님께서는 날카롭고 크고 세찬 당신의 칼로 도망치는 뱀 레비아탄을, 구불거리는 뱀 레비아탄을 벌하시고 바다 속 용을 죽이시리라."(이사27,1, 이사야의 용을 쳐부수는 예언), ("레비아탄(머리가 일곱 달린 바다 괴물을 의미함)머리들을 깨뜨리시어 바다 상어들에게 먹이로 주셨습니다."(시편74,14), ("보아라, 내가 너를 만들 때 함께 만든 브헤못을!(하마, 코끼리, 악어, 또는 거대한 바다 짐승 등으로 상상으로 하는 짐승)그것은 소처럼 풀을 뜯고 있다. 보아라, 그 허리의 힘을, 그 배의 근육을. 꼬리는 삼나무처럼 쭉 뻗고 허벅지의 힘줄들은 얽혀 있으며 뼈는 구리 통 같고 갈비는 쇠 방망이 같다. 그것은 하느님의 첫 작품 동료들의 우두머리로 만들어졌다. 산들이 그에게 소출을 바치니 들의 모든 짐승이 곁에서 뛰논다. 그것은 연나무 밑 갈대와 늪으로 된 은신처에 엎드려 있다. 연나무는 그것을 그늘로 가려 주고 냇가의 버드나무는 그것을 애워싸 준다. 보아라, 강물이 소용돌이쳐도 그는 질겁하지 않고 요르단 강이 제 입까지 솟구쳐 와도 태연하다. 그것이 눈을 뜨고 있는데 잡을 수 있으며 올가미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너는 갈고리로 레비아탄을 낚을 수 있으며 줄로 그 혀를 내리누를 수 있느냐? 너는 골풀로 그 코를 꿸 수 있으며 고리로 턱을 꿰뚫을 수 있느냐? 너는 그것을 새처럼 노리개로 삼을 수 있으며 네 계집아이들을 위하여 끈으로 묶을 수 있느냐? 상인들이 그것을 놓고 흥정을 벌이고 장사꾼들이 그것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느냐? 너는 그 살가죽을 창으로, 그 머리를 온통 물고기 작살로 채울수 있느냐? 손을 그 위에 얹어라도 보아라. 그것과 싸울 생각을 하면 다시는 손도 대지 못한다. "(욥기40,15-32),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거짓 예언자는 참된 예언자와 참된 그리스도의 백성과 맞선다.))) 그 짐승은 어린양처럼 뿔이 둘이었는데 용처럼 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첫째 짐승이 보는 앞에서 행사하여, 치명상이 나은 그 첫째 징승에게 온 땅과 땅의 주민들이 경배하게 만들었습니다. 둘째 짐승은 또한 큰 표징들을 일으켰는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게도 하였습니다.("야합은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예언자들을 카르멜 산에 모이게 하였다. 엘리야가 온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나 백성은 엘리야에게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엘리야가 백성에게 다시 말하였다. "주님의 예언자라고는 나 혼자 남았습니다. 그러나 바알의 예언자는 사백오십 명이나 됩니다. 이제 우리에게 황소 두 마리를 끌어다 주십시오. 그들에게 황소 한 마리를 골라 토막을 내어 장작 위에 올려 놓고 불은 붙이지 말게 하십시오. 나도 다른 황소를 잡아 장작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신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나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겠습니다. 그때에 불로 대답하는 신이 있으면,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러자 백성이 모두 "그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엘리야가 바알의 예언자들에게 제안하였다. "당신들이 수가 많으니 황소 한 마리를 골라 먼저 준비하시오.당신들 신의 이름을 부르시오 그러나 불은 붙이지 마시오."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황소를 데려다가 준비해 놓고는, 아침부터 한낮이 될 때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렀다. "바알이시여, 저희에게 응답해 주십시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대답도 없었다. 그들은 절뚝거리며 자기들이 만든 제단을 돌았다. 한낮이 되자 엘리야가 그들을 놀리며 말하였다. "큰 소리로 불러보시오 바알은 신이지 않소. 다른 볼일을 보고 있는지, 자리를 비우거나 여행을 떠났는지, 아니면 잠이 들어 깨워야 할지 모르지않소" 그러자 그들은 더 큰 소리로 부르며, 자기들의 관습에 따라 피가 흐를 때까지 칼과 창으로 자기들 몸을 찔러 댔다. 한낮이 지나 곡식 제물을 바칠 때가 되기까지 그들은 예언 황홀경에 빠졌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대답도 응답도 없었다. 그러자 엘리야가 온 백성에게 "이리 다가오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백성이 모두 다가오자 그는 무너진 주님의 제단을 고쳐 쌓았다. 엘리야는 일찍이 "너의 이름은 이스라엘이다." 라는 주님의 말씀이 내린 야곱의 자선들 지파 수대로 돌을 열두 개 가져왔다. 엘리야는 그 돌들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으로 제단을 쌓았다. 제단 둘레에는 곡식 두 스아가 들어갈 만한 도랑을 팠다. 그는 장작을 쌓은 다음, 황소를 토막 내어 장작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나서 "물을 네 항아리에 가득 채워다가 번제물과 장작 위에 쏟으시오." 하고 일렀다. 그런 다음에 그는 "두 번째도 그렇게 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두 번째도 그렇게 하자, 엘리야는 다시 "세 번째도 그렇게 하시오." 히고 일렀다. 그들이 세 번째도 그렇게 하였을 때, 물이 제단 둘레로 넘쳐흐르고 도랑에도 가득 찼다. 곡식 제물을 바칠 때가 되자 엘리야 예언자가 앞으로 나서서 말하였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고 제가 당신의 종이며, 당신의 말씀에 따라 제가 이 모든 일을 하였음을 오늘 저들이 알게 해 주십시오.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주님!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 이 백성이야말로 하느님이시며, 바로 당신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를 삼켜 버리고 도랑에 있던 물도 핥아 버럈다. 온 백성이 이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부르짖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때에 엘리야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바알의 예언자들을 하나도 놓치지 말고 사로잡으시오." 백성이 그들을 사로잡아오자, 엘리야는 그들을 키손천으로 끌고 가 거기에서 죽였다."(1열왕18,20-40, 엘리야가 키르멜 산에서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한 예언)) 이렇게 첫째 짐승이 보는 앞에서 일으키도록 허락된 표징들을 가지고 땅의 주민들을 속였습니다. 그러면서 땅의 주민들에게, 칼을 맞고도 살라난 그 짐승의 상을 세우라고 말하였습니다. 둘째 짐승에게는 첫째 징승의 상에 숨을 불어넣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짐승의 상이 말을 하기도 하고, 자기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죽임을 당하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뿔 나팔 , 피리, 비파, 삼각금, 수금, 풍적 등 모든 악기 소리가 나거든 엎드려, 네부카드네지르 임금님께서 세우신 금 상에 절하시오.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않으면, 곧바로 타오르는 불가마 속으로 던져질 것이오." 그리하여 뿔 나팔, 피리, 비파, 삼각금, 수금 등 모든 악기 소리가 나자마자,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네부키드네자르 임금이 세운 금 상에 절하였다."(다니3,5-7)), ("이제라도 뿔 나팔, 피리, 비파, 삼각금, 수금, 풍적 등 모든 악기 소리가 날 때에 너희가 엎드려, 내가 만든 상에 절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곧바로 타오르는 불가마 속으로 던쟈질 것이다. 그러면 어느 신이 너희를 내 손에서 구해 낼 수 있겠느냐?"(다니3,15)) 또 낮은 사람이나 높은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틀 받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을 뜻하는 숫자로 표가 찍힌 사람 말고는 아무것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였습니다.(로마 제국의 주화에는 황제의 이름과 숫자가 새겨져 있었으며, 당시 사고 파는 상업제도가 상인조합이라고 하는 로마법으로 법제화 되어 있았다. 이 조합에 가입하여면 로마 황제에게 고백해야하는 절차가 있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거부했다. 이 문제로 박해와 배교가 되풀이 되는 모순된 불행이 계속되었다.)) 여기에 지혜가 필요한 까닭이 있습니다. 지각이 있는 사람은 그 짐승을 숫자로 풀이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숫자입니다. 그 숫자는 육백육십육입니다."(묵시13,1-18)라고 기록하고 있다.
ㄹ. 짐승의 수 육백육십육(666)의 성경적 유래와 '666',과 '600', '60', '6' 이 성경에서 상징하는 의미들
'육', '6', '육십', '60', '육백', '600', '육백육십육', '666',은 성경에서는 파멸의 수, 심판의 수, 거역의 수, 배신의 수, 배교의 수, 우상 숭배의 수, 탐욕의 수, 타락의 수, 멸망의 수, 하느님의 선한 뜻을 거역하는 수로 각인되어 있는 수다. 그러나 교회는 이를 교회 밖에서 찾고 있다. 그 결과 현존하는 이방인의 교회 시대는 거짓의 시대가 되었다. 뱀의 해석, 고모라의 해석, 소돔의 해석, 독이 든 쓴흰쑥의 해석이 되었다. 그리고 성경은 독이 든 쓴흰쑥의 열매를 맺는 뿌리가 성경에 뿌려져 영원한 생명의 책은 독이 든 쓴 물, 쑥밭으로 무성하게 되었다.
성경은 육(6), 육십(60), 육백(600) 육백육십육(666)에 대한 의미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주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가족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거라. 내가 보니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운 사람은 너밖에 없구나. 정결한 짐승은 모두 수놈과 암놈으로 일곱 쌍씩, 부정한 짐승은 수논과 암논 한 쌍씩 데려가거라. 하늘의 새들도 스컷과 암컷으로 일곱 쌍씩 데리고 가서, 그 씨가 온 땅에 위에 살아남게 하여라. 이제 이레가 지나 면, 내가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땅에 비를 내려, 내가 만든 생물을 땅에서 무도 쓸어버리겠다." 노아는 주님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 하였다. 땅에 홍수가 난 것은 노아가 육백 살 되던 때였다."(창세7,1-6;7-24)라고 노아가 육백 살(600)이 되던 때에 홍수 심판을 내렸다. 또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네브카드네자르 임금은 높이가 예순 암마 너비가 여섯 암마 되는 금 상을 만들어, 바빌론 지방의 두라 평야에 세웠다. 그리고 나서 네브카드네자르 임금은 사람들을 보내어, 총독들, 태수들, 지방관들, 고문관들, 재무관들, 재판관들, 그리고 지방의 모든 관리를 모아서, 자기가 세운 상의 봉헌식에 참석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총독들, 태수들, 지방관들, 고문관들, 재무관들, 재판관들, 행정관들, 그리고 지방의 모든 관리가 네브카드네자르 임금이 세운 상의 봉헌식에 모여들었다. 네브카드네자르가 세운 상 앞에 서자, 전령이 큰 소리로 외쳤다.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여, 그대들에게 내리는 명령이오. 뿔 나팔, 피리, 비파, 삼각금, 수금, 풍적 등 모든 악기 소리가 나거든 엎드려, 네부카드네자르 임금님께서 세우신 금 상에 절하시오.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않으면, 곧바로 타오르는 불가마 속으로 던져질 것이오." 그리하여 뿔 나팔, 피리, 비파, 삼각금, 수금 등 모든 악기 소리가 나자마자,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세운 금 상에 절하였다. 그때에 어떤 칼테아인들이 나서서 악의로 유다인들을 고발하였다. 그들이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에게 말하였다. "임금께서 만수무강하시기를 빕니다. 임금님, 임금님께서는 칙령을 내리시어, 뿔 나팔, 피리, 비파, 삼각금, 수금, 풍적 등 모든 악기 소리가 나면, 누구나 엎드려 금 상에 절하라고 하셨고, 또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않으면, 타오르는 불가마 속으로 던져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임금님께서 바빌론 지방의 일을 맡도록 임명하신 유다 사람들이 있습니다. 곧 사드락, 메삭, 아벳, 느고입니다. 임금님, 이 사람들은 임금님께 경의를 표하지도 않고 임금님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으며, 임금님께서 세우신 금 상에 절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자 네부카드네자르는 몹시 화가 나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를 끌어 오라고 분부하였다. 이 사람들이 임금 앞으로 끌려오자, "사드락, 메삭, 아벳 느고! 너희가 내가 세운 금 상에 절하지도 않는다니, 그것이 사실이냐? 이제라도 뿔 나팔, 피리, 비파, 삼각금, 수금, 풍각 등 모든 악기 소리가 날 때에 너희가 엎드려, 내가 만든 상에 절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곧바로 타오르는 불가마 속으로 던져질 것이다. 그러면 어느 신이 너희를 내 손에서 구해 낼 수 있겠느냐? 사드락과 메삭과 이벳 느고가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에게 대답하였다. "이 일을 두고 저희는 임금님께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임금님 저희가 섬기는 하느님께서 저희를 구해 내실 수 있다면, 그분께서는 타오르는 불가마와 임금님의 손에서 저희를 구해 내실 것입니다. 임금님,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저희는 임금님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고, 임금님이 세우신 금 상에 절하지도 않을 터이니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네부카드네자르는 노기로 가득 찼다. 그리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를 보며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가마를 어느 때에 달구는 것보다 일곱 배나 더 달구라고 분부하였다. 또 군사들 가운데에서 힘센 장정 몇 사람에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를 묶어 타오르는 불가마 속으로 던지라고 분부하였다. 그리하여 그 세 사람은 겉옷과 바지와 쓰게와 그 밖의 옷을 입은 채로 묶어서, 타오르는 불가마 속으로 던져졌다. 그런데 임금의 명령이 급박한 데다가 가마가 매우 뜨거웠으므로, 사람들이 불꽃에 타 죽고 말았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 세 사람은 묶인 채로 타오르는 불가마 속으로 떨어졌다."(다니3,1-23)라고 기록했다. 성경은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세운 금 상의 높이가 육십(60) 암마, 너비가 여섯(6) 암마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우상 숭배와 영원한 생명과 믿음과 깊이 관련된 숫자로 육(6)을 상징하고 있다. 모두 재앙과 멸망과 심판을 가져왔다. 그리고 거기에서 굳은 믿음을 지킨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에로 구원을 받고 있다는 것을 명료하게 기록하고 있다.
ㅁ. 솔로몬의 부귀영화와 타락, 멸망, 솔로몬이 한 해 동안의 무역수지 세수는 금 육백육십육(666) 탈렌트
성경은 소로몬의 타락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한 해 동안 솔로몬에게 들어온 금의 무게는 육백육십육 탈렌트였다. 무역상들과 상인들의 거래에서 받은 것, 그리고 아라비아의 모든 임금과 국내의 지방관들에게서 받은 것을 빼고도 그러하였다.(1열왕10,14-15)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솔로몬이 타락하여 하느님에게서 돌아서게 되며 주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진노하게 된다.(1열왕11,1-13) 또한 솔로몬은 타락하여 죽는다.(1열왕11,41-43) 또한 성경은 "그는 그곳에 육백 탈렌트나 되는 질 좋은 금을 입혔다."(2역대3,8) 성경은 솔로몬의 세속적 타락과 관련한 물질적 타락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한 해 동안 솔로몬에게 들어온 금의 무게는 육백육십육 탈렌트였다. 상인들과 무역상들이 들려온 것과 아라비아의 모든 임금과 국내의 지방관들이 솔로몬에게 가져온 금과 은을 빼고도 그러하였다."(2역대9,13-14)라고 성경은 육백육십육(666)에 대한 타락과 멸망과 우상 숭배의 상징이였다는 사실이 성경 안에서 인용하게 됨으로서 새로운 재앙과 환난의 재해석으로 통찰했다. 지금까지 요한묵시록에 대한 모슨된 주석과 해석들은 모두 교회 밖의 사유들 인용하여 해석하거나 주석함으로서 계시와 예언이 전하고자 하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았다고 통찰했다. 여기에는 짐승으로 대명사 되는 거짓 예언자들, 거짓 성직자들, 거짓 교회지도자들, 거짓 교회학자들의 불의가 내재되어 있다고도 보았다. 왜냐하면 이 짐승들(666)이 결코 요한묵시록 1장 19절부터 20절의 계시와 예언을 모르고 있다고 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로 인하여 전 세계에는 이단들만 전염병처럼 창궐하고 있다. 대부분의 이단집단의 출현은 요한묵시록으로부터 출현되고 있다는 명료한 사실이다. 그 유명한 이단 중의 하나인 '천년 왕국회관(여호와의 증인)'이 그러하고 또한 '신천지'가 그러하다. 물론 프로테스탄트, 유사종교집단, 사이비집단, 이단집단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이단집단들은 인간의 선량한 정신과 영혼을 황패하게 만들어 인간들로부터 그들의 소유라고 하는 의미의 존재들을 모조리 송두리째 약탈하고 강탈하고 빼앗고 있다. 이러한 교회라고 하는 모습과 얼굴은 어쩌면 가장 파렴치한일 수 있다. 그들 짐승(666)은 비열하고 저열하고 가증하고 역겨우며 구역질나는 유치하고 천박하며 사악하고 악랄하고 교활한 악마의 유령이 아닐 수 없다. 그들에게 신이 있을 리 없다. 신이 이미 사라졌는데 신령한 여러 언어와 예언에 응답이 있을 리 없다.
3. 성경이 밝히고 있는 솔로몬의 업적은 무너지고 타락에로 빠져 육체의 욕정으로 육체의 노예가 된 솔로몬
1). 솔로몬은 하느님의 선한 뜻을 모두 저버림으로서 타락에로 떨어지고 말았음
성경은 솔로몬의 타락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다윗의 후계자로 슬기로운 아들이 일어셨는데 다윗 덕분에 이 아들은 편안히 살게 되었다. 솔로몬은 하느님께서 사방을 평온하게 해 주셨기 때문에 평화로운 시대에 나라를 다스렸다. 그리하여 솔로몬은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짓고 그 안에 영원한 성소를 마련해 드렸다. 당신은 젊은 시절에 얼마나 현명하였습니까? 당신은 강물처럼 지식이 흘러넘쳤습니다. 당신의 정신은 온 땅을 덮고 당신은 그 땅을 심오한 격언으로 가득채웠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머나먼 섬까지 이르렀고 당신이 이룬 평화로 당신은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찬가와 잠언과 격언들과 당신의 풀이는 뭇 나라가 당신을 경탄하게 하였습니다. 당신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으로 불리시는 주 하느미의 이름으로 황금을 주석처럼 모으고 은을 납처럼 쌓아 두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뭇 여인 곁에 누워 육체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영예를 더럽히고 당신의 혈통을 오염시켜 자식들에게 징벌을 불러들였고 어리석은 행동으로 그들을 통탄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통치권이 둘로 갈라서면서 반역의 왕국이 에프라임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 자애를 포기 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어떤 말씀도 결코 사라지게 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몸소 선택하신 이의 후손들을 없애 버리시거나 당신을 사랑한 이의 자손들을 멸하지 않으셨다. 과연 그분께서는 야곱 집안에 남은 자를 허락하셨고 다윗에게도 그의 뿌리를 남겨 주셨다. 솔로몬은 조상들과 함께 잠들고 자손들 가운데 그를 이를 후계자를 남겼다. 르하브암은 백성 가운데 우둔하고 지각없는 자로서 그의 정책 때문에 백성이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도 이스라엘을 범죄로 이끌었고 에프라임에게 죄악의 길을 걷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의 죄악이 무척 불어나서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에서 떠나게 되었다. 그들은 온갖 악을 따르다가 마침내 자신들에게 징벌을 불러들였다."(집회47,12-25)라고 솔로몬의 재앙과 환난과 타락과 죄와 악행과 멸망과 종말과 심판을 기록하고 있다. 솔로몬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선한 뜻을 모두 저버리고 하느님이 없어도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는 자만과 교만과 타락을 가져온 것은 금은보화에 의한 부귀영화이고 육체의 정욕의 노례가 된 것도 금은보화와 그에 의한 부귀영화에 따른 천 명의 아내들아었다. 성경에 기록으로 나타난 것만도 일반의 상식을 초월하고 있다. 솔로몬의 금은보화는 황금만도 1열왕기 9장 14절에 120탈렌트, 1열왕기 9장 28절에 420탈렌트, 1열왕기 10장 10절에 120탈렌트, 1열왕기 10장 14절과 15절에 666탈렌트, 2역대기 3장 8절에 6000탈렌트, 2약대기 9장 13절과 14절에 666탈렌트이다. 이것은 황금만을 말하고 있다. 이 밖의 금은보화는 필설로 말 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결과로 지혜롭고 슬기롭던 솔로몬은 육체의 욕정으로 육체의 노예가 되어 멸망으로 심판되고 말았다.
2). 솔로몬의 육적 영적 타락의 근원은 육체의 욕정으로 육체의 노예가 되었고 우상들을 숭배하고 하느님의 선한 뜻을 모두 저벼림, 이것이 '짐승육백육십육(666)'에 대한 타락과 심판의 상징이고 그 당사자들을 말하고 있어
(1). 요한묵시록 제1장 19절과 20절은 교회와 인간들이 함부로 거역할 수 없는 계시와 예언
ㄱ. 성경이 기록으로 나타 낸 계시와 예언을 거역한 주석과 해석을 교회가 저지르고 있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두고 '몸'으로 이루고 있는 교회가 아니고 죽은 시체로 가득한 황폐하게 파멸된 전쟁터에 불과해
성경은, '짐승 육백육십육(666)'이 하느님의 선한 뜻을 거역하는 수, 타락을 상징하고 있는 수, 금은보화와 부귀영화와 육적 영적 타락과 우상 숭배의 수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성경이 '짐승 육백육십육(666)'과 관련하여 그 상징과 의미를 낱낱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복음주의적이고 복음정신에 부합한 성경 안에서의 진리로 접근했을 때, 요한묵시록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옳(올)바른 주석과 해석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요한묵시록은 성경 자체가 해석을 임의로 할 수 없도록 묵시록 1장 19절과 20절로 계시하고 있다. 그것은 이미 2000여 년 전부터 타락하는 인간의 불의를, 만물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 요한을 통하여 이를 미리 내다 본 계시와 예언이라고 보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이를 거부하거나 부인하거나 부정하거나 모른 채 외면하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로서 만물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이고 부정하는 것이고 부인하는 것이고 모르는 채 외면하는 것이 된다.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교회들과 교회지도자들과 교회학자들과 성직자들과 사제들과 부제들과 수도자들과 선교사들과 교회의 모든 봉사자들이 이것을 무를 리 없다. 그리시도인들은 공통적으로 만물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고 천사이고 사자이고 문지기이고 청지기이고 양 떼를 지키는 목자이고 집사들이다. 그분의 완전한 소유 안의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기록으로 나타 낸 계시와 예언을 목전에서 거역한 주석과 해석을 교회가 저지르고 있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두고 '몸'으로 이루고 있는교회가 아니고 죽은 시체로 가득한 황폐하게 파멸된 전쟁터에 불과하다.
성경은 솔로몬이 타락하는 모습들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짐승 육백육십육(666)'의 징벌과 심판의 상징이다.
ㄴ. 스바 여왕과 솔로몬
성경은, "스바 여왕이 주님의 이름 덕분에 유명해진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까다로운 문제로 그를 시험해 보려고 찾아왔다. 여왕을 많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향료와 엄청나게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싣고 예루살렘에 왔다.여왕은 솔로몬에게 와서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것을 모두 물어보았다. 솔로몬은 여왕의 물음에 다 대답하였다. 그가 몰라서 여왕에게 답하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모든 지혜를 지켜보고 그가 지은 집을 보았다. 또 식탁에 오르는 음식과 신하들이 앉은 모습, 시종들이 시종드는 모습과 그들의 복장, 헌작 시종들, 그리고 주님의 집에서 드리는 번제물을 보고 넋을 잃었다. 여왕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내가 임금님의 업적과 지혜에 관하여 내 나라에서 들은 소문은 과연 사실이군요. 내가 여기 오기 전까지는 그 소문을 믿지 않았는데, 이제 집접 보니, 내가 들은 이야기는 사실의 절반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임금님의 지혜와 영화는 내가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납니다. 임금님의 부하들이야말로 행복합니다. 언제나 임금님 앞에 서서 임금님의 지혜를 듣는 이 신하들이야말로 행복합니다. 주 임금님의 하느님께서 임금님이 마음에 드시어 임금님을 이스라엘의 왕좌에 올려 놓은셨으니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영원히 사랑하셔서, 임금님을 왕으로 세워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영왕은 금 백이십 탈렌트와 아주 많은 향료와 보석을 임금에게 주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 임금에게 준 것만큼 많은 향료는 다시 들어온 적이 없다. 오피르에서 금을 실어 오던 히람의 상선대도, 거기에서 굉장히 많은 자단나무와 보석을 실어 왔다. 임금은 이 자단나무로 주님의 집과 왕궁의 안나간을 만들고, 노래하는 이들이 쓸 비파와 수금도 만들었다. 이와 같은 자단나무는 오을날까지 들어온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다. 한편 솔로몬 임금은 그의 손에 걸맞게 스바 여왕에게 선물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여왕이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청하는 대로 다 주었다. 여왕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1열왕10,1-13)라고 스바 영왕의 방문기를 기록하고 있다.
ㄷ. 솔로몬의 타락과 부귀영화
성경은 솔로몬이 타락으로 가는 금은보화와 부귀영화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한 해 동안 솔로몬에게 들어온 금의 무게는 육백육십육 탈렌트였다. 무역상들과 상인들의 거래에서 받은 것, 그리고 아라비아의 임금과 국내의 지방관들에게서 받은 것을 빼고도 그러하였다. 솔로몬 임금은 금을 두드려 큰 방패를 이백 개 만들었는데, 그 방패 하나에 금 육백 세겔이 들었다. 또 금을 두드려 작은 방패를 삼백 개 만들었는데, 그 방패 하나에 금 세 미나가 들었다. 임금은 이 방패들을 '레바논 수풀 궁'에 두었다. 임금은 상아로 큰 왕좌를 만들고 그것을 순금으로 입혔다. 그 왕좌에는 층계가 여섯 개 있었고, 왕좌 등받이 윗부분은 등글었다. 왕좌 양쪽에는 팔걸이가 있고 그 팔걸이 옆에는 사자가 두 마리 세워져 잇었다. 일찍이 어느 나라에서도 이렇게는 만들지 못하였다. 솔로몬 임금이 마시는 데에 쓰는 그릇은 모두 금으로 만들고, '레바논 수풀 궁'에 있는 그릇도 모두 순금으로 만들었다. 은으로 만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솔로몬 시대에 은은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임금에게는 히람의 상선대와 함께 바다에서 활동하는 타르시스 상선대가 있었다. 이 타르시스 상선대가 세 해에 한 번씩 금과 은과 상아, 원숭이와 공작새들을 실러 왔다. 솔로몬 임금은 부와 지혜에서 세상의 어느 임금보다 뛰어났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넣어 주신 지혜를 들으려고 그를 찾아왔다. 그들은 저마다 은 기물과 금 기물, 옷과 무기, 향료와 말과 노새들을 예물로 가져왔는데, 그런 일이 해마다 그치지 않았다."(1열왕10,14-25)라고 기록했다.
ㄹ. 솔로몬의 타락 병거대
성경은 솔로몬의 타락을 가져오는 병거대((2역대1,14-17;9,25-28)참조)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솔로몬이 병거와 군마를 모으니 병거가 천사백 대, 군마는 만 이천 마리에 이르렀다. 그는 그것들을 병거대 주둔성과 임금이 있는 예루살렘에 나누어 배치하였다. 솔로몬 임금 덕분에 예루살렘에서는 은이 돌처럼 흔해졌고, 향백나무는 평원 지대의 돌무화과나무만큼이나 많아 졌다. 솔로몬은 이집트와 크웨에서 말들을 들여왔는데, 왕실 무역상들을 통하여 크웨에서 일정한 가격으로 사들였다. 병거는 한 대에 은 육백 세켈, 말은 한 마리에 은 백오십 세켈을 주고 이집트에서 들여왔다가, 왕실 무역상들을 통하여 히타이트의 모든 임금과 아람 임금들에게 되팔았다."(1열왕10,26-29)라고 솔로몬은 은이 길거리의 돌처럼 흔하게 했고, 말들은 이집트로부터 일정하게 사들여서 이익을 보기 위해 모든 임금들에게 되팔아 넘겼다. 그는 하느님의 선한 뜻은 모두 망각하고 세상의 금은보화와 부귀영화에 빠져 타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ㅁ. 타락한 솔로몬이 하느님에게서 돌아서는데, 그에게는 왕족 출신 아내가 칠백 명에 후궁이 삼백 명과 우상 숭배의 신들과 악한 짓을 저지름
성경은, 솔로몬의 황폐하게 무너지는 타락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솔로몬 임금은 파라오의 딸뿐 아니라 모압 여자와 암몬 여자, 에돔 여자와 시돈 여자, 그리고 히타이트 여자 등 많은 외국 여자를 사랑하였다. 이들은 주님께서 일찍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렇게 경고하신 민족의 여자들이었다. "너희는 그들과 관계를 맺지 말고 그들도 너희와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하여라. 그들이 반드시 너ㅢ 마음을 그들의 신들에게 돌려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솔로몬은 그들과 사랑에 몰두하였다. 솔로몬에게는 왕족 출신 아내가 칠백 명, 후궁이 삼백 명이나 있었다. 그 아내들은 그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솔로몬이 늙자 그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다른 신들에게 돌려놓았다. 그의 마음은 아버지 다윗의 마음만큼 주 그의 하느님께 한결같지는 못하였다. 솔로몬은 시돈인들의 신 아스타롯과 암몬인들의 혐오스러운 우상 밀콤을 따랐다. 이처럼 솔로몬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고, 자기 아버지 다윗만큼 주님을 온전히 추종하지는 않았다. 그때에 솔로몬은 예루살렘 동쪽 산 위에 모압의 혐오스러운 우상 크모스를 위하여 산당을 짓고, 암몬인들의 혐오스러운 우상 몰록을 위해서도 산당을 지었다. 이렇게 하여 솔로몬은 자신의 모든 외국인 아내를 위하여 그들의 신들에게 향을 피우고 제물을 바쳤다.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진노하셨다. 그의 마음이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에게서 돌아섰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그에게 두 번이나 나타나시어, 이런 일, 곧 다른 신들을 따르는 일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는데도, 임금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뜻을 품고, 내 계약과 내가 너에게 명령한 규정들을 지키지 않았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너에게서 떼어 내어 너의 신하에게 주겠다. 다만 네 아버지 다윗을 보아서 네 생전에는 그렇게 하지 않고, 네 아들의 손에서 이 나라를 떼어 내겠다. 그러나 이 나라 전체를 떼어 내지는 않고,나의 종 다윗과 내가 뽑은 예루살렘을 생각하여 한 지파만을 네 아들에게 주겠다."(1열왕11,1-13)라고 성경은 솔로몬의 타락과 황폐하게 파멸된 저주의 심판을 내리고 있다. 이것이 요한묵시록이 교회와 천사들에게 전하는 경고이고 재앙이고 환난이고 멸망이고 종말이고 두 번째 죽음의 심판이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까지 이러한 명료한 계시와 예언의 해석을 모순된 해석으로 만든 교회와 교회의 거짓 예언자와 거짓 성직자들은 왜,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와 그리고 생각과 말과 행위로 그것을 짓밟아 버렸는지를 회답해야 한다고 보았다. 우리의 로마가톨릭교회의 입장에서의 시선은 교회 밖은 모두 이단자들이다. 그리고 교회 밖은 우리 로마가톨릭교회가 저들의 이단이 된다. 그렇다면 과연 그렇다고 한다면, 이단이 이단을 말하는 것이 되고, 눈먼 소경이 눈먼 소경을 말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의 말씀과 진리는 하나라고 통찰했으며 그렇게 해석했다.
ㅂ. 예루살렘, 이스라엘이 받을 징벌의 상징의 수 육(6), 육(6), 육(6),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하는님의 심판
교회는 교회의 죄와 악행으로 인하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으로 받아야 할 화살을, 세상의 일반 선량한 시민에게로 그 화살을 돌리고 있어, 이것이 요한묵시록에 대한 지금까지의 해석
성경은 심판의 상징인 육(6)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도 이제는 화나는 대로 하겠다. 동정하지도 않고 불쌍히 여기지도 않겠다.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짖어도, 나는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겠다."(에제8,1-18), "그리고 나서 그분께서는 내가 듣는 앞에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이 도성의 징벌이 다가왔다. 저머다 파멸의 무기를 손에 들고 나와라." 그러자 북쪽으로 난 윗대문 쪽에서 여섯 사람이 오는데, 저마다 파괴의 무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아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는 서기관 필갑을 차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와서 구리 제단 곁에 섰다. 그러자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이 그때까지 자리 잡고 있던 커룹들 위에서 떠올라 주님의 집 문 지방으로 옮겼 갔다. 주님께서는 아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 필갑을 찬 사람을 부르셨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저 도성 가운데로, 예루살렘 가운데로 돌아다니면서, 그 안에서 저질러지는 그 모든 역겨운 짓 때문에 탄식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해 놓아라." 그분께서는 또 내가 듣는 앞에서 다른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저 사람의 뒤를 따라 도성을 돌아다니며 쳐 죽여라. 동정하지도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마라. 늙은이도 젊은이도, 처녀도 어린아이도 아낙네도 다 죽여 없애라. 그러나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건드리지 마라. 내 성전에서부터 시작하여라." 그러자 그들은 주님의 집 앞에 있는 원로들로부터 죽이기 시작하였다.그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집을 부정하게 만들어라. 그 뜰들을 살해된 자들로 채워라. 가거라." 그러자 그들은 도성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쳐 죽였다. 그들이 사람들을 쳐 죽이는 동안, 홀로 남은 나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부르짖었다. "아, 주 하느님! 예루살렘에다 이렇듯 화를 쏟으시어,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모두 파멸시키실 작정이십니까? 그러자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과 유다 집안의 죄가 너무나 크다. 이 땅은 피로 가득하고 이 도성은 불법으로 가득하다. 그러면서 저들은 '주님께서는 이 땅을 버리셨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보고 계시지 않은다.' 하고 말한다. 그래서 나도 동정하지도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그들이 걸어온 길을 그들 머리 위로 되갚는 것이다." 그러는데 아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 필갑을 찬 사람이 와서, "명령하신 대로 하였습니다." 하고 보고 하였다."(에제9,1-11)라고 하느님의 명령을 받들어 심판하는 '여섯 사람'을 세워, 늙은이도 젊을이도, 처녀도 어린아이도 아낙네도 다 쳐 죽여 없애라고 하느님께서는 무서은 멸망의 심판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하느님의 성전에서 부터 시작하여 원로들부터 쳐 죽이기 시작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원로들은 지파의 우두머리들, 종교지도자들, 율법 학자들, 관원들, 제사장들, 사제들, 거짓 성직자들, 거짓 교회지도자들을 말한다. 이와 같이 죄와 악행을 저지른 교회를 향해서 활 시위를 떠난 화살들을, 교회가 이를 고의적으로 회피하고 일반 세상과 선량한 일반 시민의 가슴에게로 향하게 하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만물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고 거부하는 것이며 외면하는 것으로 통찰했다. 이것이 심판을 상징하고 있는 육(6)이다. 이러한 성겨의 명료한 사실들을 감추고 성경 밖의 사유들을 요한묵시록의 해석과 주석으로 설명하려는 교회의 불의는 그것으로 재앙과 환난과 멸망과 종말과 심판의 대상일 뿐이라고 해석했다.
(2). "여기에 지혜가 필요한 까닭이 입니다. 지각이 있는 사람은 그 짐승을 숫자로 풀이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숫자입니다. 그 숫자는 육백육십육입니다."(묵시13,1-18)
ㄱ. 로마가톨릭교회는 이 땅 위에 세워진 '하느님의 나라' 그리스도의 몸
로마가톨릭교회는, 이 땅 위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몸(에페1,1-23), 생명을 의미하는 등잔대(묵시2,5), 불순종하면 잘라낼(로마11,21), 하나이신 성령과 여러 은사(1코린12,1-11;12,12-31), 살아 계신 하느님의 교회로서, 진리의 기둥이고 기초(1티모15), 교회의 머리,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에페1,22-23),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치는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에페4,1-16;시편68,19), 그리스도를 위하는 특권, 그분을 위한 믿음의 고난까지 겪는 특권(필리1,29), 교회의 기둥으로 여겨지는 야고보와 케파와 요한은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갈라2,9), 교회의 반석으로서(마태16,18-19),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시며(콜로1,18-20), '하느님의 나라'임을 이미 선포하였다. 그렇다면 성경의 모든 말씀과 진리와 영원한 생명에 대한 정의의 근원이되며, 교회에 지성을 나누어 주시고 그분의 능력을 해석할 수 있는 이성과 분별력과 혀와 눈을 주시고 귀와 마음을 주시어 깨단게 하셨다. 지식과 이해력으로 교회를 충만하게 하셨다.(집회17,1-10) 이러한 교회가 이단으로부터 이단이라 불리운다면 교회는 굵은 베로 짠 자루옷(묵시11,119)을 입고 죄와 악행을 늬우치고 회개하여 옳(올)은 길로 들어서야 할 것으로 통찰했다. 우리의 눈이 이토록 '까막눈이'가 될 때까지 어두워졌는데, 하물며 프로테스탄트, 유사종교, 사이지집단, 이단자들리랴!
ㄴ. 에덴동산에 뱀이 들어 있드시, 그 뱀은 용이 되고 '짐승(666)'이 되어 교회 안에 서 있어
만물의 하느님. 삼위일체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와 예언을 한낱 탐심(우상 숭배)과 욕망에 불타고 있는 육이 다스리고 있는 국가,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그리고 한낱 철학, 학문, 인문, 문학, 윤리, 도덕, 법률, 고고학, 그 시대의 배경 등으로 '성경'을 해석하거나 주석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 앞에서의 이것들은, '이따위들이며, 그따위들이며, 저따위들이며, 이따위 떨거지들이며, 그따위 떨거지들이며, 저따위 떨거지들이며, 이따위 나부랭이들이며, 그따위 나부랭이들이며, 저따위 나부랭이들'이기 때문이다. 한낱 인간사의 지식으로 성경을 왜곡하여 해석하지 마라! 모르겠으면 모른겠다고 하느님께 매달려라! 모든 계시와 예언의 회답은 '성경이, 진리의 말씀'으로 기록해 놓았다는 것을 성경이 말하고 있다. 또 신령한 언어와 예언자도 필요없다. 만약, 만약에 신령한 예언자가 필요하다고 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한다. 가장 신령한 예언자는 말 못하는 나귀를 세운다. 이렇게 말이다. "그들의 눈은 간음할 여자만 찾고 죄에 물리지도 않습니다. 믿음이 확고하지 못한 사람들을 유혹하고 마음이 탐욕에 젖어 있는 그들, 저주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바른 길을 버리고 그릇된 길로 빠졌습니다. 보소르의 아들 발라암의 길을 따라간 것입니다. 그는 불의한 돈벌이를 좋아하다가,그 범법 때문에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목소리로 말을 하여 그 예언의 미친 행동을 막은 것입니다."(2베드2,14-16)라고 성경은 말 못하는 나귀를 사람의 목소리로 말을 하게 하는 예언자로 세워, 죄와 악행을 심판하는 무서운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은 '짐승(666)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 성숙한 이들 가운데에는 우리도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 지혜는 이 세상의 것도 아니고 파멸하게 되어 있는 이 세상의 우두머리들의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그 지혜를 깨댇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1코린2,6-9) 이 세상의 우두머리와 교회 안의 우리머리들은 모두 이 짐승들을 말한다. 교회 안은 세상의 규칙으로 교리하고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마태15,8-9)라고 기록했다. 또 성경은 기록하기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에게다가오고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고 나에 대한 그들의 경외심은 사람들에게서 배운 계명일 뿐이니 나는 이 백성에게 놀라운 일을, 놀랍고 기이한 일을 계속 보이리라. 그리하여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는 사라지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는 자취를 감추리라."(이사29,13-14)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교회 안은 사람에게서 배운 계명과 규칙일 뿐이라고 탄식하고 있다. 교회는 이들에 의해 세속화가 되어 타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가 외치고 있는 사랑도 신명기의 계명사랑도 아니고 그리스도의 새 계명의 사랑도 아니다. 교회는 이들에 의해 세상의 계명과 규정으로 가르치고 있는 사상일 뿐이다. 설령 교리와 교육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랑의 실천을 그렇게 하지도 않고 어리둥절하여 알지도 못하고 있다. 모두 먹으면 죽는 짐승들의 열매가 성경으로 쏟아져서 쑥밭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들 짐승들이 다 차지했다. 그들 짐승들이 차지한 교회의 강론과 설교는 고모라의 강론이고 고모라의 설교이며, 소돔의 강론이고 소돔의 설교이다. 뱀의 강론이고 뱀의 설교이다. 독이 든 쓴흰쑥의 강론이고 독이 든 쓴흰쑥의 설교이다. 성경은 이들 짐승들의 '쓴흰쑥'의 '쑥벌레'가 좀먹고 있다. 성경은 이들 짐승들과 사탄들의 재앙과 환난으로 독이 든 쓴흰쑥의 쑥벌레가 갏아 먹어 영원한 생명의 말씀. 진리가 왜곡되었다. 성경은 '뒤틀린 공정과 정의'를 말 못하는 나귀를 통하여 그들의 죄와 악행을 "그들은 바른 길을 버리고 그릇된 길로 빠졌습니다. 보고르의 아들 발라암의 길을 따라간 것입니다. 그는 불의한 돈벌이를 좋아하다가, 그 범법 때문에 책망을 받았습니다.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목소리로 말을 하여 그 예언자의 미친 행동을 막은 것입니다."(2베드15-16)라고 인간의 악행을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목소리로 말을하여 고발하고 있다. 성경은 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말이 바위 위를 달릴 수 있느냐? 소를 부려 바다를 갈 수 있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공정을 독으로, 정의의 열매를 쓴흰쑥으로 만들어 버렸다."(아모6,12) 또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분께서 나를 쓴나물로 배불리시고 쓴흰쑥 물을 마시게 하셨네"(애가3,15) 이 모든 재앙이 짐승들의 죄와 악행으로 얻은 대재앙의 환난이며 재앙의 고통들이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또 성경은, "너희는 그들이 모시는 혐오스러운 것들과 우상들, 나무와 돌과 은과 금으로 만든 것들을 보았다. 너희 가운데에는 남자든 여자든, 씨족이든 지파이든, 오늘 주 우리 하느님에게서 마음이 돌아서서, 저 민족들의 신들을 섬기러 가는 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는 이렇게 독이 든 쓴흰쑥 열매를 맺는 뿌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이 이 맹세의 말씀들을 듣고서도, 제 마음속으로 자신을 부추기며, '내가 마음대로 고집하며 살아, 젖은 것이든 마른 것이든 모조리 휩쓸어 간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아무 일이 없을 것이다.' 한다면, 주님께서 그를 용서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에 대한 주님의 진노와 질투가 타올라 이 책에 쓰인 모든 저주가 그 위에 내리고, 주님께서 그의 이름을 하늘 아래에서 지워 버리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를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서 떼어 내시어, 이 율법서에 쓰인 계약의 저주대로 그에게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신명29,16-20) 라고 너희들 거운데에서 쓴흰쑥의 짐승들이 나올 것을 기록했다. 또 성경은 계시와 예언을 통하여서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횃불처럼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물의 삼분의 일과 샘들을 덮쳤습니다. 그 별의 이름은 '쓴흰쑥'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물의 삼분의 일이 쓴흰쑥의 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 물을 마시고 죽었습니다. 쓴 물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묵시8,10-11)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하늘에서 떨어진 별은 이들 죄와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짐승들인 거짓 선지자들, 거짓 성직자들, 거짓 교회지도자들, 거짓 교회학자들, 종교지도자들, 율법 학자들, 지파의 우두머리들, 재사장들, 원로들, 사제들, 판관들, 서기관들,관원들, 목자들, 청지기들, 집사들, 문지기들, 바리사이들, 거짓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사실을 요한묵시록은 명료하게 계시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교회는, "이 13장의 두 짐승은 구약성경에서 나우는 바다 괴물 '레비아단'(이사27,1;시편74,14 등)과 땅의 괴물 '베헤못'(욥기40,15-32)을 연상케 한다. '용'은 하느님께 맞서고,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은 그리스도게 맞서고, ;땅에세 올라온 짐승'(거짓 예언자)은 그리스도의 증인(신자)들에게 맞선다."(한국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 신약성서 p.785)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죄와 악행의 당사자를 모두 제3자적 입장으로 만들어 해석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으로 통찰했다. 요한묵시록에 등장하는 모든 부정적인 의미들의 서술과 짐승들은 모두 교회를 말하고 있고 또 그 교회의 천사들인 거짓 예언자들과 거짓 성직자들과 거짓 교회학자들과 거짓 교회지도자들과. 거짓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도의 적들'이라는 사실을 명료하게 말하고 있다. 요한묵시록에서 만물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계시를 요한을 통하여 하고 있는데, 로마 황제가 무슨 의미가 있단말인가? 최종적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제, 통치, 심판, 영광의 주체가 바로 만물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가 한낱 로마 황제따위가 다스리는 세상의 이야기, 사건, 사유들은 한낱 잡담에 불과한 것들이다. 성경은 재난의 시작을 이렇게 기록하고 잇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누구에게도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애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하면서 많은 이를 속일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여기저기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불안해하지 않도록 주의하여라."(마태24,1-51)라고 구체적으로 거짓 예언자들과 '그리스도의 적들'에 대해 당신께서 직접 해석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아다가 배를 가르고, 불에 던져 화형을 시키고, 원형경기장에서 굶주린 맹수에게 그리스도인들을 먹이로 주고, 기사와 결투하게 하여 살해하고 살육하고, 도륙하여 동물들의 사료로 주거나, 그 시체로 가로등의 등불을 밝히는데 사용했어도, 그러한 잔인무도한 박해의 칙령을 내린 로마 제국의 폭군 황제들을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다. 교회는 여전히 착가과 망각의 늪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다고 보았다. 그와 같이 모순되고 왜곡된 해석과 주석은 모두 광견성狂犬聲이고 광견설狂犬舌이고 광견각狂犬角이고 광견근狂犬根이다.
교회는, 여기에 대해 이렇게 주석하고 해석하고 있다. 관련하여서는 "'로마 제국 주화에는 황제의 이름과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스 문자와 히브리 문자는 수치로 환산된다. 그러므로 사람의 이름도 그 글자의 수치를 합하여 숫자로 나타낼 수 있다. '666'이란 수는 '네로 황제'(13.3)나 '네르바 황제'(96-98)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요컨데 '둘째 짐승'은 '황제 숭배'를 상징한다."(한국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성서, p.786)라고 서술하고 있다. 요한묵시록은 이렇게 임의로 주석하거나 해석하지 못하도록 계시와 예언으로 묵시록 제1장 19-20에 명시하고 있다. 또한 교회는 성경에 나타나는 수에 관한 상징의 해석들을 곧잘 내놓고 있으면서도 유독 요한묵시록에 등장하는 수 '6','60','600','666' 등에 대해서는 모르는 채 외면하고 있다. 예, '12',는 열두 지파이니, '7',은 충만한 수이니, 하고 있다. 심지어는 수학의 방정식까지 동원하여 인류의 종말론을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유치하고 천박한 짓들이 바로 교회의 타락이다. 교회의 이러한 지적知的 접근과 이성의 접근은 비상식이다. 즉, 젖도 떨어지지 않은 벌거숭이 아이 수준 정도의 이성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주석하거나 해석하게 되면 요한묵시록이 전하고자 하는 계시와 예언의 본질이 왜곡되기 때문이다. 즉, 요한묵시록의 주석과 해석에 있어서 근원과 본질은 만물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 영원한 말씀, 영원한 진리, 영원한 자유, 영원한 평화, 영원한 공의, 정의, 공동선, 사랑의 책, 신구약성경이고 그것을 벗어난 그 어떤 것도 한낱 왜곡된 그 어떤 유혹이고 죽음과 멸망을가져오게 하는 구실에 불과하다고 결론한다.
계명은 생명과 지식과 율법(집회45,1-5)
상본은 : 모세의 십계명판, "주님께서는 야곱에게서 자비로운 사람이 나오게 하셨는데 그는 모든 사람의 눈에 꼭 들었다. 그는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모세로서 그에 대한 기억은 축복 속에서 이어진다. 주님께서는 모세를 성인들의 영광에 걸맞게 하셨고 그를 위대한 이로 만드셔서 원수들이 그를 두려워하게 하셨다. 주님께서는 모세의 말이 떨어지자 표징을 일으키셨고 임금들 앞에서 그를 영광스럽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모세에게 당신 백성을 위한 계명을 주셨고 당신 영광의 일부를 그에게 나타내 보이셨다. 주님께서는 모세의 충실함과 온유함을 보시고 그를 거룩하게 하시어 만인 가운데에서 그를 선택하셨다. 그에게 당신 목소리를 듣게 하시고 어두운 구름 속으로 그를 인도하셨다.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여 계명을 주시고 생명과 지식의 율법을 주셨다. 그리하여 야곱에게 계약을, 이스라엘에게 당신의 법령을 가르치게 하셨다."(집회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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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글을 대하시는 자매님! 형제님!
단 한 분이시라도 만물의 하느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으로부터 뜨거운 성령을 가득히 받으시길 빕니다.
이 글을 올리는 저는 감히 하느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조차도 없는 죄와 악으로 가득한 죄인입니다.
다만, 불쌍히 여겨주시기르 바랄 뿐입니다.
거지 나자로처럼.....겸손되이 성경을 묵상할 따름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생명과 지식의 율법이라고 했습니다.(집회45,5)
2019.09.08.(일요일/연중 제23주일). 장 호 빈첸시오 주임신부님의 강론
주제는 "제가 하는 이러한 강론은 교회에 신자가 나오지 않는 강론입니다."는 내용의 강론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있어서는 바로 그와 같은 강론이 생명의 말씀 영원한 구원의 말씀이라고 받았습니다. 교회 형식적으로 왔다갔다 해서는 않된다는 요지의 강론이었습니다. 현존하는 이방인의 교회 시대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강론의 요지로 기억되었습니다.
끝으로, 주임신부님께서는 공지사항을 안내하시면서 미사 시간이 다소 길어지는데에 대하여 신자분들께 미안해 하시면서 가급적이면 시간을 지켜보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 된다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