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수첩-2010년 영화 베스트10(2) |
1. <엘 시크레토:비밀의 눈동자>(El Secreto De Sus Ojos/The Secret In Their Eyes), 후안 호세 캄파넬라, 개봉 11. 11
모두에 밝혔듯, 봐야지 봐야지…하면서도 못 보다 큰 맘 먹고 애써 찾아 보고 발견하게 된, 2010년의 으뜸 수확! 영화를 애써 찾은 까닭은 무엇보다, 2009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미하엘 하네케의 <하얀 리본>이나, 심사위원 대상을 안은, 자크 오디아르의 <예언자> 등 그야말로 쟁쟁한 경쟁작들을 물리치고 2010년 아카데미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차지해서였다. 대체 어떤 영화기에 그런 대단한 성취를 일궈낸 건지 궁금했던 것. (주지하다시피 한국영화는 여태껏 그 부문 후보조차 내질 못했다.) 당연한 결과, 라는 게 내 결론이다. 단적으로 “베스트 오브 베스트”, 다. 작심하고 흠을 잡겠다면 없진 않겠지만, 내러티브 층위부터 시· 청각 층위, 주제·이데올로기 층위 등 영화의 전 층위에서 최상의 수준을 뽐낸다. 여로 모로 2000년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최선의 선택이라 할 <타인의 삶>에 필적, 아니 능가한다. 국적 불문하고, 2010년의 최고작, 이라 한들 과장이 아니다. 비극과 코미디, 스릴러와 로맨스, 개인과 사회…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플롯부터가 가히 압권이다. 이런 게 바로 플롯!, 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섬세함·정교함을 자랑한다. 당장 플롯 면에서 최상의 수준을 자랑하는 여타 다른 영화들을 동원해 비교해보라. 그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 바로 드러날 터. 현재 시점과 25년 전의 과거 시점을 오가고, 영화 속 소설이란 형태로 액자 구자를 구사하며, 게다가 말미에 예측 불허의 기막힌 반전까지 가세하건만 영화는 한 치의 흔들림 없다. 그 아귀가 완벽히 들어맞는다. 플래시백에서 반전까지, 내러티브를 이렇듯 복합적으로 빚어냈건만 단 한 순간도 극 전개가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는 건지, 그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를 플롯의 교본으로, 특히 남발되곤 하는 반전의 모범적 텍스트로 삼을 만하다, 고 단언하는 건 그래서다. 인물 해석 및 연기는 또 어떤가. 25년의 시차를 두고 벌어지는 사건 와중에서 동일 배우들이 연기하는 탓에 분장에서 약간의 어색함이 없는 건 아니나 극적 흐름·몰입에 방해가 될 만큼은 아니다. 주·조연은 말할 것 없고 단역에 이르기까지 적재적소에서 제몫을 100% 이상 수행한다. 개별 연기는 말할 것 없고 연기 앙상블을 즐기는 재미가 여간 삼삼한 게 아니다. 스페인어 권 영화 특유의 정서적 효과 물씬 풍기는 음악 등 사운드 연출 또한 흠잡을 데 없다. 2009년 아르헨티나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최우수작품상 등 무려 13개 부문 상을 안겨준 덴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마무리 짓기 전, 국내 등급과 관련해 한마디. 미국에서는 R(estrictied)등급-17세 미만은 부모가 동반해야 관람 가능하다. 우리로 치면 15세와 18세 사이 등급이라 할 수 있을 듯. 왜냐면 우리의 경우 18세 등급은 부모가 동반해도 원칙적으로 입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인데, 우리나라에선 15세 등급을 받았다. 성인적 소재일 뿐 아니라, 잠깐이긴 해도 남녀 성기가 고스란히 노출되는 데도. 때문에 내심 적잖이 놀랐다. <악마를 보았다>에는 두 차례나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린 심의위원들이 노출에는 이렇게 '관대'하다니 말이다. 2000년 초반, 사진의 체모 노출조차도 잘라 내게 하거나 흐리게 처리하게 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감개무량하기조차 하다. 물론 나는 이 영화의 15세 등급을 지지한다. 영화의 노출은 철저하게 극적 맥락에 위치하는 터라, 선정성과는 무관해서다. 강조컨대 영화에서의 몇 차례 노출들은 극적으로 필수적인 것이다.
2. <인셉션>(Inception), 크리스토퍼 놀란, 07.21
<엘 시크레토:비밀의 눈동자>을 향한 내 나름의 각별한 열광이 아니라면 의당 외국 영화 1위 자리에 등극 마땅한 '2010년의 영화', 다. <배트맨 비긴즈>와 그에 이은 걸작 <다크 나이트>로, <메멘토>의 컬트 성 작가 감독에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스타 감독으로 급부상한 크리스토퍼 놀란이 빚어낸 또 하나의 문제적 대작이다. 영화는 각본까지 손수 집필한 감독의 작가적 무한 상상력과 수준급 연출 역량을 완벽하게 결합시켜, 최대한의 시너지 효과를 뽑아냈다. 일찍이 인간의 두뇌 속으로 들어가 15분 동안 머물며 인간 감각을 모두 느낄 수 있었던 <존 말코비치 되기>(스파이크 존스)의 기상천외한 상상력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여유만만하게 말이다. “<다크 나이트>의 스케일과 <매트릭스>의 미래가 만났다”는 광고 문구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실은 그 정도가 아니다. 판단컨대 1999년 출현 이래 줄곧, 혁신적 대중영화의 대변자 역할을 해온 <매트릭스>는 이제 그 영예의 바통을 <인셉션>에 내줘야 할 것이다. '드림머신'이라는 기계로 타인의 꿈과 접속해 머릿속에 정보를 입력(Inception)시키는, 이 1억 6천만 달러짜리 SF 미스터리 드라마에. 철학자들마저 열광시켰던 <매트릭스>의 가정은 사실상 간단한 그 무엇이었다. 우리가 현실이라 믿고 사는 세계가 실은 가상 세계며 우리가 가상 세계라고 여기는 세계가 현실 세계일 지도 모른다는, 시쳇말로 아니면 말고 식의 가정. <인셉션>에서는 꿈/무의식 속 정도가 아니라 그 속의 속, 더 나아가 그 속의 속의 속까지 들어가 내러티브를 펼친다. 그런데도 비단 전문가들만이 아니라 세계의 적잖은 영화 팬들이 화답·호응·열광했다. 물론 부반응하거나 실망한 이들도 없진 않으나. <인셉션>은 이른바'지적 영화'의 대중적 성공 사례로서도 기념비적이다. <매트릭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 역시 영화 전문가와 일반 관객들 사이에 위치해 있었던 지적 간극을 와해·무력화시켰다. 그 결정적 증거가 세계 최대 영화 정보 데이터베이스 www.imdb.com의 영화'톱 250' 순위다. 네티즌들이 자유롭게 참여해 역대 최고 영화에 투표하고 가중치 등을 적용해 250위까지 순위를 정해 놓은 것인데,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에 이어 6위에 올랐다. 재미삼아 상위 순위를 들여다보면 1위 <쇼생크 탈출>, 2위 <대부1>, 3위 <대부2>, 4위 <석양의 건맨 2 - 석양의 무법자>다. <매트릭스>는? 24위다. 당연히 <인셉션>이 2000년대 영화 중 최고 순위다. 영화는 개봉 1년도 채 되지 않은 몇 개월 만에 고전에 반열에 오른 것이다. 세상의 거의 모든 대중 영화를 둘러싼 담론은 이제 더 이상 '블릿 이펙트'가 아니라 '인셉션 이펙트'를, '매트릭스 이후'가 아니라 '인셉션 이후'를 말할 것이다. 개인적 선호 여부를 떠나. 놀랍지 않은가.
3. <쓰리 데이즈>(The Next Three Days), 폴 해기스, 개봉 12 .22
감독 폴 해기스는 <크래쉬>로 오스카를 석권한 바 있는 명장이다. 노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등의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이 영화, 별 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그저 러셀 크로우를 팔아먹으려는 액션 스릴러쯤으로 홀대 받고 있으나, 한 마디로 작가이자 감독 폴 해기스의 원숙한 집필 및 연출 기량을 증거 하는 수작이다. 2시간 10분이 넘는 영화는, 시종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달린다. 그 극적 리듬이 가히 대가의 경지다. 단적으로 '웰-메이드 영화'의 전형답다. 주인공 존 역의 러셀 크로우는 그 동안 실망을 안겨준 적이 없었는바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맛만으로도 영화는 볼 만하다. 스토리만 보면, 영화는 식상하다 못해 진부하기조차 하다. 보도 자료를 빌어 간단한 줄거릴 소개해보자.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던 '존'의 가정에 위기가 들이닥친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 '라라'(엘리자베스 뱅크스)가 살해혐의로 경찰에 잡혀가게 된 것. 아내는 종신형에 처하게 되고, 그녀의 아내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존은 갖은 애를 다 써보지만, 모든 증거와 법적 정황은 그녀에게 불리하기만 하다. 절망감에 빠진 라라는 자살을 시도하고, 존은 결국 아내를 살리기 위해, 그녀를 탈옥시키기로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긴다. 주어진 시간은 단 3일. 불가능한 5가지 미션…아내를 탈옥시키기 위한 처절한 사투가 시작된다! 우리 말 제목이 영어를 직역한 '쓰리 데이즈'인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원제에는 'three' 앞에 'next'가 있다. 그 이유는, 영화의 플롯과 연관된다. 영화는 특정 시점을 기점으로 그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비극'의 시작을 보여준 다음, 3개월 전 이야기를 거쳐, 다시 3일 전으로 넘어간다. 그리고는 그 다음부터 3일 간 벌어지는 현재의 사건을 펼쳐 보인다. 이 얼마나 효과적 내러티브 구조인가. 이 영화의 미덕이 러셀의 연기나 플롯 정도로 그치는 건 아니다. 그 못잖게 인상적인 미덕은 영화를 관류하는 아날로그적 정서와, 그 정서를 구현하는 디테일들이다. 그 디테일들을 지켜보다 보면 폴 해기스가 왜 거장인지 그 이유들을 알게 될 터. 아날로그 정서는 이런 유의 영화들이 빠져들기 쉬운, 그저 그렇고 그런 액션 영화로의 변질을 철저하게 막아준다. 도의적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 등에서, 영화는 '본 시리즈'와 비견될 법도 하다. 이렇게 단순한 소재를 이렇게 복합적 영화를 만들어 낸 폴 해기스와 러셀 크로우에 갈채를 보낸다.
4. <소셜 네트워크>(The Social Network), 데이비드 핀처, 개봉 11 .18
미국 평단으로부터 2010년 최고의 자국 영화로 선정된 화제작. <세븐>, <파이트 클럽>,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등의 명장 데이비드 핀처가 빚어냈다. 타임지에 의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페이스북 공동 창설자인 스물 여섯 살 청년 마크 주커버그 스토리를 극화했다. 흥미로운 점은 고인이 아닌 엄연히 살아 있는 현존 인물을 영화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시민 케인>의 데이비드 핀처 버전'인 셈인데, 미국이란 나라의 '관용성' 내지 '자유로움'을 웅변하는 사례로서 거론될 만하다. 마크 역의 제시 아이젠버그 등 출연진의 인물 해석 및 연기 등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영화는 철저하게 내러티브 중심으로 진행된다. 속사포마냥 마구 터져 나오는 대사의 홍수 속에서, 플롯의 속도감이 현기증이 날 정도다. 따라서 자막 읽기가 만만치 않다. 외국인으로서 이 영화를 충분히 즐기기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외국인 관객 중 한명으로, 이 영화를 <인셉션>보다 더 높이 평가하기 불가능케 하는 결정적 이유기도. 적어도 내겐 그렇다. 흔히 얘기되듯이 영화는 치명적으로 매혹적이진 않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최고의 영화! 바이러스가 퍼지듯 빠르게 입소문이 날 영화”, 라는 ROLLING STONE의 평가는 분명 과장이다. 입소문이야 크게 났어도, 10년 운운은 심했다. 그럼에도 2010년의 주목할 만한 문제작임은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 신화 해체로써 대중적 영화 만들기의 모범적 시도, 로 읽혀서다. 주커버그 그는 영락없이 빌 게이츠의 '어나더 버전'이자 '영 버전'이다. 전 세계 5억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인적 교류 사이트(Facebook)의 CEO로서,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의 창시자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가 주창한 '링크' 이론의 현현이다. 더욱이 20대 중반에, 억만장자다. 가히 에디슨의 현대 버전으로, 말 그대로 신화적 존재다. 감독 핀처는 그러나 그 신화에 전혀 기죽지 않는다. 기죽기는커녕 모든 신화엔 크고 작은 균열이 내포돼 있음을 놓치지 않고, 그 균열을 폭로한다. 현명하게도 그는 폭로로만 내닫진 않는다. 폭로 과정에서도 균형감을 잃지 않는다. 주커버그를 성공에 목마른 야비한 인물로 묘사하면서도, 동감 내지 공감적 시선으로 인간적 터치를 덧붙일 줄도 안다. 그로써 결국 신화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해체, 즉 재구성시키는 것이다. 영화는 한 신화적 인간을 단지 신이 내린 천재가 아니라 수많은 범인들이 동경하고 지향하는 집단적 캐릭터이자 시대적 아이콘으로 형상화시키는데 성공한다. 주커버그에게서 엿보이는 편집증은 그 개인의 것만이 아니라 이 시대의 것이기도 한 것이다. 영화는 상찬을 넘어 열광을 받을 자격 충분하다.
5. <엉클 분미>(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개봉 09.16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독립․작가 영화의 최전선'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에게 2010 칸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화제의 문제작. 이 지면의 칸 결산 때도 피력했듯, 2002년 주목할 만한 시선 상을 거머쥔 대표작 <친애하는 당신>이건, 박찬욱의 <올드 보이>가 심사위원 대상을 안은 2004년, 태국영화 사상 최초로 칸 경쟁 부문에 초청돼 심사위원상을 받은 출세작 <열대병> 이건 그 어떤 거라도 그의 영화 세계를 접해본 이라면, '세계 독립․작가 영화의 최전선' 이란 위 평가가 과장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을 터. “그의 영화는 늘 지독한 '개인 영화'(Personal Cinema)의 길을 걸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 탓이다. 그 개(인)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아니, 전 세계 그 어느 나라의 영화역사를 통틀어서도 독보적이라 하리만치 독특(unique)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감독들은 으레 닮은꼴이 있기 마련이나, 그에게는 내가 아는 한, 없다. 오로지 '아핏차퐁적'이라가나 '신비하다'라고 할 도리밖에 없다.”<분미 아저씨>도 예외는 아니다. “영화는 급성 신장염으로 고통 받는 분미 아저씨를 축으로, 조카 통의 시각에서 펼쳐진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그 스토리 내지 내용을 축약해 설명하는 건 무의미하다. 독특하다 못해 기이하기 짝이 없다. 영화적 형식이나 스타일은 물론 음악 효과 등 사운드 연출도 매한가지다. 마치 현실적 논리 따위는 정지된 신화의 세계를 '체험'하는 듯한 느낌이다.” 칸 황금종려상은 따라서 <분미 아저씨> 한 영화가 아니라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라는 전위적 아티스트에게 수여한 영예인 셈이다.
5. <어둠의 아이들>(闇の子供たち/ Children Of The Dark), 사카모토 준지, 개봉 03.25
<피와 뼈> 등으로 유명한 재일동포 작가 양석일의 동명 원작을, 김대중 암살 시도 사건을 극화한 <케이티>(KT) 등 사회성 짙은 영화를 연출해온 사카모토 준지 감독이 극화했다. 영화는 “누구라도 '눈을 돌리고 싶은 현실'을 정면에서 응시한”다. “우리가 외면한 아동인권유린의 참혹한 실상을 그”리는 것. 그 실상은 원빈 주연의 <아저씨>처럼 말랑하거나 감상적인 게 아니다. 처참하다 못해 처연해진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욕망 때문에 감금당한 체 외국인관광객들의 성적 노리개가 되어 몸과 마음에 참아내기 힘든 상처를 받고, 병이 들면 쓰레기와 함께 버려진다. 아무런 잘못 없이 심장병으로 단 한 번도 마음껏 뛰어 놀지 못하고 죽어가는 소년, 그 소년을 어떻게든 살리고 싶은 부모의 간절한 마음. 가슴 아프게 안타까운 소년의 질병과 자신의 아이를 잃고 싶지 않은 너무도 당연한 부모의 마음은 살아있는 한 어린 소녀의 심장을 꺼내어 이식하는 참혹한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영화는 “아이들이 처한 비극을 감상적이고 동정어린 눈으로 그려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거나 외면해왔던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임팩트나 충격 면에서 소설에 비해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약한 이 영화의 으뜸 미덕이다. 소위 영화적 완성도는 그다지 뛰어나다고 할 순 없어도 이 영화는 영화 일반의 사회적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한다. 여로 모로 그 성격, 지향 등에서 <분미 아저씨>와는 대조적이다. 이런 게 영화의 다양한 매혹일 터.
* 나가며 : 여느 지면 여느 때의 영화 베스트 선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작업을 했다. 일종의 리뷰를 곁들이고 싶어서였다. 그 동안 원고 쓰기를 소홀히 한 데에 대한 사죄의 의미도 있고. 굳이 이 자리에서 내 선정 기준을 밝히진 않으련다. 그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으련다. 마지막으로 이 원고를 작성하면서, 일찌감치 내 개인미니홈피에 두서없이 끼적거려 놓았던 관련 잡문들을 적극 활용했음을 밝힌다.
전찬일(영화 평론가/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전주대 객원교수) | |
전찬일의 영화수첩-2010 영화 베스트 10(1) |
* 한국 영화 베스트5 - <시>에서 <방자전>까지
한해를 보내며 베스트 영화들을 선정하는 건 다분히 선정적·의례적인 작업일 공산이 크다. 지나치게 주관적·자의적인데다, 맹목의 가능성마저 내포되기 십상인 탓이다. 그럼에도 굳이, 다소 때늦게나마 2011년을 며칠 지난 시점에서 그 작업을 시도하는 것은 평론가의 역할 중 하나가 준-역사가로서'기록'이라는 나름의 신념 때문이다. 그 기록은 물론 나만을 위한 것만은 아닐 터. 헌데 미처 보지 못하거나 않은 영화들이 얼마나 많은지, 주저케 한다. 2010년엔 특히나 그런 영화들이 많았다. 시간이 없었다는 핑계를 대진 않으련다. 보지 못한 영화들보다는, 그저 내키지 않아 애써 보지 않은 영화들이 유난히 많았으니까.
그 중에는 평론가라면 의당 찾아 봤어야 할 법한 화제작들도 수두룩하다. 당장 떠오르는 한국영화만 해도, 감독들이 뽑는 제13회 디렉터스 컷 어워즈에서 '올해의 감독상'을 거머쥔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나, <하하하> 이후 몇 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조용히 선보였던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 등이 있다. 별 다른 구분 없이 10편을 선정했던 지난해와는 달리, 한국영화 5편 외국영화 5편을 선택한, 나만의 '2010년 영화 베스트 10'을 위해서라도 이 두 편만은 꼭 보고 싶었다. 일찌감치 마칠 수도 있었을 이 리스트 작성이 해를 넘기면서까지 늦어진 결정적 이유다.
유감스럽게도 끝내 그들을 보질 못했다. 불법 DVD를 구하거나 컴퓨터 다운로드로 봐야 한다는 수고가 최대 걸림돌이었다. 여간 해서는 평소 그런 방식으로는 영화를 보지 않는 내 특유의 고집이 작용했다고 할까. 그에 반해 외국영화의 경우는 특별한 수고를 들였다. 그 덕에 의외의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2010년을 보내기 며칠 전, 벼르고 별러 이화여대 내 아트하우스 모모를 찾아가 본, 아르헨티나 출신 스페인 감독 후안 호세 캄파넬라의 <엘 시크레토:비밀의 눈동자>는 2010년의 으뜸 수확이자 발견이었다. 영화사에서 보내준 스크리너를 통해 본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어둠의 아이들>도 그랬다. 정식 스크린인 아닌 스크리너로 보면서도, 봉준호 감독이 왜 그토록 영화를 '강추'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12월 하순 선보인, 폴 해기스 감독 러셀 크로우 주연의 <쓰리 데이즈>도 내겐 각별한 감흥으로 다가섰다. 그 점에서 한국영화보다는 외국영화를 고르는 작업이 한층 더 흥미진진했다.
1. <시>, 이창동 감독, 개봉 05.13 2010년 우리를 찾아온 우리 영화계의 크디 큰 축복.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막연한 제목도 그렇고 뻔한 스토리도 그렇고…별 다른 기대를 품지 않았었다. 2010년 칸영화제 경쟁 진출도, 일찍이 <밀양>으로 칸 여우주연상(전도연)을 안은 바 있고 경쟁 부문 심사위원으로 초청 받기도 한 감독의 이름값이려니 치부했다. 하지만 시사회에서 처음 만나고, 그 이후 칸 현지에서 또 다시 조우한 영화는 한마디로 '걸작'이었다. 이창동 필모그래피에서만이 아니라 한국 영화사를 통틀어서도 단연 돋보이는, 숨 가쁜 걸작!
모 일간지에 보내는 평에서도 밝혔듯, 무엇보다 “기표와 기의 사이의 그 팽팽한 긴장감”이 압권이었다. 영화는 기의 없이 기표만 넘실대곤 하는 오늘날의 숱한 영화들에 경종을 울리기라도 하듯, 매 순간 기표들에 적절한 기의를 구현한다. 미자/윤정희의 삶과 선택을 통해 제기하는 영화의 문제의식은 그저 영화를 넘어 인간 사회는 말할 것 없고 우리 네 삶 자체를 향해 던지는, 작가이자 감독 이창동의 윤리적·비판적 메시지다. 그렇다고 기표, 즉 표현에 소홀한 건 아니다. 기의, 즉 의미 이전에 그 주목할 만한 기표들로 영화를 보는 이들을 매혹시킨다.
음악, 아니 아예 사운드를 배제시킨 채 고도의 집중력으로 보는 이들을 끌어당기는 오프닝 및 엔딩 크레디트를 떠올려 보라. 그처럼 압도적인 영화의 시작과 마무리를 떠올리기 힘들 듯. 윤정희 여사의 연기는 또 어떤가. 본인은 <만무방>(1994) 이후로도 결코 영화계를 떠난 적이 없다곤 하지만, 객관적으론 영화판에서'잊혀진'60대 중반의 옛 여배우를 전격 기용해 생애의 연기를 구현하게끔 한 감독의 연기 연출력엔 아무리 큰 찬사를 바쳐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연기의 재발견'이란 다름 아닌 윤정희를, '캐릭터의 탄생'이란 미자를 가리키는 수사 아닐까. 시인 김용택 등 비 전문 배우들과 전문 배우들의 연기를 완벽하게 통합시키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적 솜씨는 또 어떤가. 이래저래 거장의 손길이요 숨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금 강조컨대 <시>는 그 간의 우리 영화역사에 결여되어 온 어떤 경지를 구현한 기념비적 걸작, 이다. 그 경지는 이제 세계 어느 거장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 확신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앞으로도 그럴 테고.
2. <울지마, 톤즈>, 구수환 감독, 개봉 09.09 2010년을 넘어 2011년까지 지속되고 있는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역사의'작은 혁명'! 대중 상업 영화로 치면 200만 선이라 할 20만 선을 넘어 30만 선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우리에겐 이미 <워낭소리>라는 '기적'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 울림, 그 여파…면에서 이 기념비적 다큐는 그 기적을 능가할 기세다. 개봉 4개월이 다 돼 가는 지금도 여전히 그 바람은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거세게 타오르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일찍이 밝혔듯, “<울지마 톤즈>는 소위 영화적 완성도가 빼어난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레니 리펜슈탈의 <올림피아>나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 <볼링 포 콜럼바인> 등처럼, “영화역사에 빛나는 동서고금의 걸작 다큐멘터리들과 비교하면, 영화는 지나치게 평범하며 무난하다. 여느 기념비적 다큐멘터리들에서 발견되는바 같은, 주목할 만한 영화적 형식(미학)이나 스타일 따위가 부재한다. 단적으로 TV 다큐멘터리의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시킨다.” 아마추어들이 찍어 놓은 것들을 한데 모았을 자료화면들은 말할 것 없고, 이 땅의 거대 공영 방송국 저명 PD가 연출한 화면들도 예의 세련됨이나 노련함 등과는 거리가 멀다.
거칠다 못해 때론 서툴기조차 하다. 내레이션도 그렇거니와 음악 효과는 감성적이다 못해 감상적인 감이 없지 않다. 때론 과잉으로 새기도 한다. 헌데 말이다. “그 평범함과 무난함, 그 부재, 그 한계…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울지마 톤즈>의 으뜸 덕목이라면 어떨까.”영화 고유의 형식구조나 스타일 등을 넘어 이태석이란 다큐 대상을, 그 어떤 미화나 숭배 등을 일체 배재한 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일상적으로 담아내고 편집한 만든 이들의 선택에서 연유하는 진심 내지 진정성이 예상치 못한 자극·감동·감흥을 선사한다. 이 지점에서 <울지마 톤즈>는 이른바'다이렉트 시네마'의 한국적 전형으로서 손색없다.
거듭 강조컨대, “<울지만 톤즈>는 완성도를 떠나, 진정 많은 것을 생각게 하고, 더 나아가 우리 네 삶을 반성케 하는, 진정 뜻 깊은 기념비적 다큐멘터리 영화”다. “세상에 수많은 감동적 삶들이 있지만, 이태석 신부 같은 그런 삶이 존재했고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당키 벅찬 깨우침을 새삼 안겨준다.”영화 구력 40년, 영화 스터디 30년, 영화 평론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처럼 반성적 영화는, 장르 불문하고 기억하질 못하겠다.
3. <악마를 보았다>, 김지운 감독, 개봉 08 .12 소위 '저주받은 문제작'이란 다름 아닌 이 영화를 가리키는 용어일 듯. 두 차례 제한 상영가 판정 이후 세 번째 심의를 통과하면서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불우한 문제작이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뒤 개인미니홈피에 그 감상을 피력했듯, 단적으로 잔혹 스릴러의 어떤 진수를 보여준다. 영화의 잔혹은 하지만, 동류의 여타 영화들과는 달리, 맹목적이거나 선정적이지 않다. 철저하게 극적 맥락 안에 위치하는 것.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잘려 나간 대목들이 적잖이 아쉬웠다.
판단컨대, 영화는 한층 더 잔혹해야 한다. 그것이 '캐릭터 영화'로서 영화의 정체성에 더 잘 어울린다. 최민식이 분한 장경철 캐릭터는 그야말로 악마-물론 그 악마성도 사회적 결과물일 터-라는 표현이 부족한 '극단적' 캐릭터다. 그에 맞서 그 악마 캐릭터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된 애인의 복수를 감행하는 이병헌 캐릭터 김수현도 잔혹하기론 그에 못잖다. 그 동기 면에서는 대조적이긴 해도 말이다. 따라서 영화는 이른바 '극단 영화'(Extreme Movie)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그 극단성은 잔혹 설정 및 묘사에서 드러나야 한다.
영화는 크고 작은 잔혹 시비에 휘말릴 게 뻔했다. 현실에서도 그랬다. 아니 타당성 이상으로, 과도한 잔혹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그로써 영화의 숱한 덕목들이 가져지거나 빛을 바랬다. 최상의 호흡을 구현한 극적 연출을 비롯해 '최'-'이' 투톱의 실감 만점의 기막힌 연기, 기대 이상의 감흥을 안겨준 음악 효과 등등. 그로써 흥행에서는 말할 것 없고, 영화는 비평적으로도 홀대받았다. 하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평론가 조직인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들이 선정한 2010년의 한국 영화 베스트10에도 포함되지 않았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2010 디렉터스 컷 어워즈에서 최민식이 올해의 연기자상 남우 부문을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영화를 싫어할 수도 좋아 할 수도 있다.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적 만듦새 면에서 <악마를 보았다>는 김지운 필모그래피에서 최고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독한 잔혹과 짙은 페이소스의 공존은 김지운 영화 세계의 어떤 특징이다. 이래저래 흥미진진한 문제적 텍스트다.
4. <의형제>, 장훈 감독, 개봉 02.04 “대한민국 특유의 분단 이데올로기를 바라보는 원숙하며 균형 잡힌 시선에 감탄하다. 30대 중반 감독의 그것이라곤 도저히 믿기 힘들었기에. <영화는 영화다>가 그저 탄생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웅변하다.”
모 중앙일간지에 보낸 <의형제>에 대한 내 단평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했듯, 난 영화를 '매혹'(Attraction/s) 외에도 태도 및 시선으로 평하는 부류다. 그 점에서 난 지금도 여전히 이 영화의 시선과, 감독의 태도가 믿어지지 않는다. 30대 중반에, 50대 후반의 이창동 감독이나, 50대 초반의 구수환 PD의 그것에 근접한 성숙함을 구현한 장훈 감독의 시선과 태도가. 과장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젊은 거장'이라 평하는 건 그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게 다라는 의민 아니다. 내러티브를 추동하는 힘과 호흡, 두 의형제 간의 관계를 펼쳐 보이는 방식에서 최상의 수준을 자랑한다. 그 관계는 기존의 영화에서 봐왔던 것과 같은 상투성에서 확연히 벗어나 있다. 이성적이면서도 감성적인 관계성이랄까. 리얼 액션의 극한까지 치달았던 데뷔작과는 달리, 영화는 관계의 극한까지 내달린다. 결코 '의형제'가 될 수 없을, 적대적 두 남자의 관계 맺음과 변화 등을 통해. 그 과정이 기대 이상의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송강호-강동원 투톱의 농익은 연기 또한 영화의 맛을 최대한 확보해줌은 물론이다. 최민식에 버금가진 못해도, 특히 강동원의 연기는 물 익을 대로 물 익었다는 느낌이다. 강동원 그는, 꽃미남 배우를 넘어 '진정한 배우'로 거듭난 것이다. 일찍이 조인성이 <비열한 거리>를 통해 그랬던 것처럼.
영화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을 통해 극적 재미를 전할 줄도 안다. 그것도 그럴 듯하게. 문제의식을 잊지도 않는다. 영화에서 감독이 강동원 캐릭터를 통해 역설하는 바는, '배신'하지 않는 삶이다. 또 국정원 팀장이었다 흥신소 사장으로 맹활약하는 송강호 캐릭터를 통해서는, 소설가 김훈이 그렇게 역설하는 바, 삶은 아무리 비루해도 계속되어야 한다, 주제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누군가도 말했듯, 영화에서 한재림 감독의 <우아한 세계>를 떠올린다면 그래서일 터. 송강호 캐릭터나 연기 해석이 비슷해서이기도 하겠지만, 30대 중반의 두 감독, 2010년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는 두 젊은 감독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닮았기 때문.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삶, 한 가닥 가능성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오기…등에서 두 감독은, 두 영화는 닮은꼴이다.
5. <방자전>, 김대우 감독, 개봉 06. 02 역시 “김대우”, 다.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라고 여겨온 발군의 작가이자 감독. 영화는 각본을 썼던 <정사>(이재용 감독)의 사극 버전, 이자 감독의 장편 데뷔작 <음란서생>을 능가하는 문제적 수작이다. 사랑을 소유로 해석하려는 낡은 시각이나, 그 시각과 무관하지 않은 일련의 마초이즘 등 크고 작은 문제점들이 없지 않으나, 이 땅의 대중 영화가, 그것도 여느 순응적 상업 영화와는 판이하게 다른 도발적 문제의식을 지닌, '뭔가 새롭고 다른'(Something New and Different) 대중 영화가 걸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을 걸은 문제작이라 할 만하다. 그 문제의식은 '춘향전'이나 '몽룡전' 아닌 '방자전'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여실히 드러난다. 그 얼마나 발칙한 뒤틀기란 말인가. 언뜻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을 영화의 덕목은 그러나, 완급 조절에서 최상의 수준을 구현한 극적 리듬 및, 인물 해석, 대사 처리 등에서 섬세함의 절정을 보이는 연출력에서 엿보인다. 가히 '감성적 박찬욱'이랄까.
연기의 향연들은 또 어떤가. 2010년의 거의 모든 영화상 시상식에서 남자 신인상을 싹쓸이한 송새벽에 대해선 더 이상 말하지 말자. <시>의 윤정희,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서영희 등에 가려 그렇지, 춘향 역 조여정은 '발견'이라 한들 과언이 아닐 열연을, 그것도 제법 센 노출 연기를 능청스럽고 맛 갈 나게 펼친다. 그로써 영화적 완성도를 제고시키는 데 제 몫을 해낸다. <박쥐>에서 김옥빈이 그랬던 것처럼. 송새벽, 조여정에 가렸지만, 조연 향단 역의 류현경 또한 상찬 받아야 한다. 그간 이렇다 할 존재감을 굳히지 못했던 그는 이번에 비로소 연기자로서 신고식을 치렀다.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두 남자 주연 김주혁(방자 역)과 류승범(몽룡)이 강렬하진 않아도, 그것은 감독의 의도된 선택으로 읽혀 치명적 흠은 아니다.
전찬일(영화 평론가/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전주대 객원교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