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뚝섬 사돈집 땅에 글로벌 비즈니스센터 추진
■ 정 회장 당초 독일에 세우려다 마음 돌린 것
■ 예상치 못한 서울시의 땅 수용으로 어려움
■ 정 회장 大怒하며 관계자 등 과도하게 문책
■ “퇴직자 3명+직원 1명”제보한 것으로 파악
김재록 로비사건으로 시작된 ‘현대차 사태’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르고 있다. 검찰에서는 ‘총수 부자 검찰 소환’을 예고하고 있고, 현대차그룹에서는 ‘대규모 사재 출연’을 준비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4월 2일 슬그머니 미국으로 나갔다가 검찰의 ‘강한 압력’에 못 이겨 결국 8일 황급히 귀국하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 사태는 일단락되겠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검찰은 왜 현대차를 수사했고, 현대차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내부의 깊숙한 정보가 검찰로 흘러가게 됐을까 하는 점이다.
‘외과수술 방식’이라고 표현했지만 검찰은 현대차그룹 압수수색 때 숨겨진 비밀금고의 위치는 물론 금고 번호까지 알고 간 것으로 보인다. 마치 국소 부분을 수술하듯이 정밀하고 정확하게 압수수색을 했다. 압수수색한 서류나 파일에서 비자금 장부의 대부분이 나왔다. 치밀한 내부정보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현대차그룹에서는 자체조사를 통해 현재 검찰 제보자를 4명으로 압축시켜 놓은 상태다. 퇴직 임원 3명과 현 직원 1명이 조직적으로 가담한 것으로 내부 결론을 냈다는 얘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사태의 전모를 알기 위해서는 달력을 2004년으로 돌려야 한다. 2004년 4월 8일. 현대차그룹에서는 갑작스러운 인사가 났다. 정몽구 회장과 20년 사업 동지인 INI스틸(現 현대제철) A회장이 물러난 것. 뜻밖의 인사였다. A회장은 정 회장을 도와 현대차그룹의 성장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1세대 경영자다.
A회장은 77년 현대모비스(옛 현대정공)에 입사해 정 회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계열사들을 경영하면서 동고동락한 인물이다. 그가 물러나기 직전 해인 2003년 INI스틸은 매출이 전년 대비 3000억원 가까이 늘었고 당기순이익도 전년 1537억원에서 2415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정 회장과의 관계로 보나, 실적으로 보나 물러날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상을 줘도 시원치 않을 판에 왜 그런 인사가 났을까? 당시 신문 보도에도 그런 의문점이 있었다. 그룹 측은 ‘세대교체’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언론은 “세대교체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했다. 하지만 워낙 ‘럭비공’같은 정 회장의 인사스타일 때문에 이 일은 평범하게 묻혔다.
A회장의 인사는 땅 문제와 관련이 있었다는 게 현대그룹에 정통한 인사들의 설명이다. 2002년 INI스틸은 수색역 옆에 있는 8000여 평의 땅을 매각했다. 이 땅은 INI스틸이 2000년 강원산업을 합병하면서 딸려 온 것이다. 강원산업은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장인집안이다. 당시 이 땅을 매각한 이유는 재무구조 개선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회장은 그 사건을 두고 대로(大怒)했다. 중소업체에 매각한 땅이 얼마 뒤 재매각되면서 300억원의 차익이 났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이 일을 경영진의 독직(지위나 직무를 이용해 비행을 저지르는 일) 사건으로 판단했다는 게 현대차 측의 설명이다. A회장이 물러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설명이다. 이후 정 회장은 친정처럼 믿었던 INI스틸에 대해 다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2005년 INI스틸은 다시 땅 문제로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 성수동에 있는 INI스틸의 또 다른 부지가 서울 숲 조성으로 서울시에 수용됐기 때문이다. 성수교에서 성수대교로 가는 도중에 있는 삼표레미콘 공장과 그 주변 부지 2만2000평 중 무려 1만5000여 평이 서울 숲 개발 과정에서 시에 수용됐다. 이 일을 두고 정몽구 회장은 격노했다. 수색 땅 사건 때보다 더 화를 냈다. INI스틸 측에서는 부랴부랴 대형 로펌인 김&장을 통해 행정소송도 걸었다.
하지만 승소할 가능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지난해 11월 소송을 취하했다(현재 INI스틸과 서울시는 4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라고 서울시 관계자는 밝혔다). 업무를 담당한 임원은 지난해 12월 사표를 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서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20여 명도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INI스틸은 당초 한보철강 인수로 승진잔치가 있어야 할 상황에서 두 번에 걸친 땅 문제로 정몽구 회장을 화나게 해 완전히 초상집이 됐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몽구 회장은 왜 성수동 땅에 대해 그토록 화를 냈을까?
정몽구 회장이 성수동 땅에 집착했던 것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있다. 2000년에 정 회장은 동생인 고 정몽헌 회장과 이른바 ‘왕자의 난’까지 벌이면서 끝내 현대자동차를 가지게 됐다. 그리고 이후 기아자동차도 인수했다. 현대건설에 입사해 자동차 주변부인 현대정공과 현대차써비스를 전전하면서 키운 꿈이다. 그는 평생 자동차를 꿈꿔왔다.
자동차를 가지기 위해 동생과 싸움도 불사한 것이다.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는 승승장구했다.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들이 현대차를 견제하기 시작했고, 각종 언론과 소비자 리포트에서 현대차 순위가 껑충 뛰었다. ‘글로벌 빅5’의 꿈도 멀지 않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정 회장에게는 또 다른 꿈이 있었다.
지금 같은 자동차로는 미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정 회장도 알고 있었다. 이미 미국·중국·터키·인도 등에 공장이 있지만 전 세계 공장을 컨트롤하고 연구개발을 총지휘할 핵심 본부가 필요했다. 바로 ‘글로벌 비즈니스센터’였다. 정 회장은 이미 마음속에 프랑크푸르트를 두고 있었다. 그는 평소 “자동차 하면 역시 독일이야”라는 말을 자주 했다. 독일의 자동차 심장부는 바로 프랑크푸르트다. 정 회장은 프랑크푸르트에 글로벌 비즈니스센터를 만들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 비밀 태스크포스팀까지 가동했다.
글로벌 비즈니스센터란 미래형 자동차 연구시설과 세계 각국에 널려 있는 생산공장을 컨트롤하는 통합본부가 있는 건물이다. 이를 위해 정 회장은 건물까지 직접 구상했다. 연구 결과 최소 연건평 8만 평 정도의 인텔리전트 빌딩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1층에는 컨벤션센터로 전시장을 배치하고, 저층부에는 연구개발(R&D)시설, 고층부에는 비즈니스센터를 배치한다는 구상이다. 연구개발과 실험, 전시, 세계 공장의 생산 조절, 불량률 통제 등을 한군데서 할 수 있는 센터인 셈이다.
한마디로 현대자동차의 심장부를 만들어 글로벌 경영을 하겠다는 것이 정몽구 회장의 꿈이었다. 정 회장은 심지어 “하늘을 나는 자동차까지 연구하라”고 지시했을 정도다. 그런 원대한 꿈을 처음에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이루기로 마음먹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이 글로벌 비즈니스센터 건립을 프랑크푸르트로 고집한 것은 한국에서는 정치적 상황이 너무 급변해 세계적인 기업을 운영하기 힘든 곳이라는 생각이 강했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비즈니스센터에 집착
禍 부른 ‘뚝섬 땅’
서울 숲 공원 조성으로 현대차그룹의 뚝섬 프로젝트가 좌절됐다. 사진 왼쪽의 공장은 여전히 INI스틸 소유의 땅인 삼표 레미콘 공장이다. 빨간 선으로 표시된 도로 너머 서울 숲 공원 땅이 서울시에 수용된 INI스틸의 1만5000여 평 부지다.
정 회장이 글로벌 비즈니스센터 구상을 한 건 미래를 봤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자동차산업에는 패러다임 변화(paradigm shift)가 온다고 봤다. 가솔린, 디젤차가 아니라 연료전지 자동차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도 현대차가 가격 경쟁력을 가지고 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글로벌 비즈니스센터를 만들어 세계적인 연구원들을 한데 모아 연구 시너지를 높이려는 구상이 있었다. 거기에 적당한 곳으로 프랑크푸르트를 지목했다.
이때쯤(정확하게 말하면 2003년 8월) 산업자원부를 비롯한 30여 개의 정부부처 및 산하기관이 10대 성장 동력산업을 선정했다. 자연스럽게 정몽구 회장과 노무현 대통령이 만났다. 이 자리에서 정 회장은 현대차의 연구 역량을 소개했고, ‘프랑크푸르트 구상’도 얘기했다.
다시 현대차 고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대통령이 깜짝 놀랐을 것 아닙니까? 그런 연구단지를 왜 해외에 짓느냐고요. 파격적으로 지원해 주겠다며 한국으로 하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래서 회장님이 ‘남양연구소나 울산연구소처럼 지방에 연구소를 두면 인재들이 안 모인다. 국내 인재도 인재지만 외국의 두뇌들이 그런 촌으로 가려고 하겠느냐’며 서울에 글로벌 비즈니스센터를 지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정부도 공감을 표시했죠.”(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이던 윤진식 서울산업대 총장은 이와 관련해 인터뷰를 거부했고, 직후 산자부 장관인 이희범 무역협회장은 “전임자의 일이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뚝섬으로
이때가 바로 터닝 포인트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설득하는데 당할 수가 있겠는가?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받고 정 회장은 서울에 그 정도의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부지를 알아보라고 했다. 마침 INI스틸이 소유하고 있던 성수동 땅이 떠올랐다. 원래 사돈인 강원산업이 소유하고 있던 땅이었다. 대지면적만 2만2000평으로 연구시설과 각종 편의시설을 짓기에 충분했다.
정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꿈’은 이때부터 ‘뚝섬의 꿈’으로 바뀌었다. 정 회장은 서울지역에 새로운 형태의 ‘산업형 도심연구단지’를 만들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공해도 전혀 없고, 지식산업인 연구센터를 위주로 한 새로운 모델을 꿈꿨다. 특히 성동구는 재정자립도가 비교적 낮고, 한양대가 가까워 더 좋다고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재정자립도가 낮을수록 기업이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기 때문이다. 또 자신이 나온 한양대와 가까워 산학협동에도 적당하다.
하지만 도와주겠다던 정부는 그 후 감감무소식이었고, 서울시는 공원 조성을 계속 밀어붙였다. 결국 이 땅은 서울 숲 계획과 함께 서울시에 수용됐다. 서울시는 2003년 1월 서울 숲 공원 추진계획 발표에 이어 2003년 12월에 국공유지 구간을, 2004년 4월에 사유지 구간에서 공사를 시작했다. 2만2000평 중 1만5000여 평이 수용되면서 뚝섬 꿈은 산산조각났다(현재 수용 부분은 현금보상이 진행되고 있고 총액은 630억원이다). INI스틸 담당임원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서울시에 땅을 수용당하면서 정 회장이 대로하게 됐다는 것이다.
어찌 됐건 현대건설 회장 출신인 이명박 서울시장이 자신의 꿈을 무산시켰다는 데 대해서도 분해했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이 이 사업에 대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는 보통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며 “이를 극비리에 다시 추진하기 위해 제3의 비밀조직까지 가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서울지역에 지어진 빌딩을 사서 꾸미는 게 어떠냐며 여러 차례 제안했지만 정몽구 회장은 내가 꿈꾼 건물을 직접 짓고 싶다며 모두 거절했다”고 밝혔다.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과정에서 책임을 물어 옷을 벗은 사람 등 많은 사람이 불만을 품은 것으로 현대그룹 측은 보고 있다.
현대차 내부조사에 따르면 복수의 제보자가 같이 모여 회의를 할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씨는 수색 땅에서도
수색역 옆에 있는 8000여 평의 땅이 문제의 발단이 됐다. INI스틸 소유였던 이 땅을 너무 싸게 판 것이 문제가 됐다.
뚝섬 땅 수용과 정 회장의 大怒
김재록씨의 양재동 사옥 허가 로비 의혹은 이런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로 볼 수 있다. 하늘을 나는 차 같은 미래형 자동차 구상과는 별도로 정 회장은 하이브리드 차 같은 차세대 자동차를 고민했다. 지금도 현대차그룹 내에 하이브리드 차 연구원만 약 2000명을 확보해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 업체와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앞선 기술이 있다는 얘기다. 뚝섬 프로젝트가 무산되면서 급한 대로 양재동 쌍둥이 빌딩을 연구시설로 사용키로 한 것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김재록 로비사건은 현대차 입장에서 보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면서 “15억원이라는 돈도 복덕방비 수준의 금액”이라고 했다. 이처럼 현대차 수사는 어떻게 보면 프랑크푸르트로 향했던 핸들을 뚝섬으로 꺾으면서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뚝섬으로 방향을 돌리지 않았다면 이런 저런 이유의 내부고발자도 안 나왔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일은 터졌다.
검찰 수사가 전격적으로 시작되자 현대차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특히 정 회장조차 일요일인 3월 26일 검찰의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압수수색 직후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이후 금요일까지 닷새 동안 연락두절 상태였다고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전했다. 현대차 안에서는 사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이후 핵심 임원들은 연일 대책 마련 회의를 열고, 정 회장도 별도로 회사의 자문 변호사들로부터 조언을 들었다. 이 과정에서 현대차 핵심 임원들은 청와대, 정치권 등과 다각적인 접촉을 했다. 삼성그룹처럼 사회공헌기금을 내고 사태를 다소 무마하는 방안도 검토됐다. 금액은 삼성그룹의 8000억원보다 적은 5000억원 규모로 논의됐다.
하지만 정 회장 측과 핵심 임원들이 내린 결론은 ‘지금 상황에서 이 방법으로는 안 된다’였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노조의 반발 때문이다. 정 회장이 사회공헌 기금을 내고 면죄부를 받을 경우 앞으로 노조를 달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직전에 현대차는 비상경영을 선포해 부품업체 단가를 내리고, 과장급 이상 직원의 임금을 동결하는 등 긴축경영을 시도했다. 그런 와중에 5000억원을 내놓는다면 비상경영에 대해 노조가 공격할 게 뻔하다는 결론이었다. 참고로 한 측근은 “정 회장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노조, 정치인, 여자”라고 했다.
노조, 정치인, 여자를 무서워해
논의가 계속됐지만 누구 하나 “회사를 위해 몸을 던지겠다” 고 나서지 않았다. 대안 없이 헤매던 현대차 고위급이 어렵사리 내린 결론은 ‘김동진 부회장이 총괄 수습한다’였다. 사태 엿새째인 3월 31일(금요일) 늦은 오후였다. 현대차의 한 핵심인사는 “김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이학수 부회장처럼 방패막이 역할을 하기로 했다”며 “사태가 최악의 상황이 되면 그가 십자가를 지고 감옥에 갈 각오까지 했었다”고 말했다. 이런 결론이 난 금요일 밤 정몽구 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토요일에 출근하겠다는 얘기였다.
현대그룹 직원들은 이제 사태가 수습되는 줄 알았다. 실제로 정몽구 회장은 토요일인 4월 1일 오전 양재동 사무실에 출근했다. 일주일 만에 출근인 셈이다. 두 시간 동안 머물면서 간단한 보고를 받았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그런 뒤 정몽구 회장은 곧바로 퇴근했다. 다음날인 2일(일요일) 오후 정몽구 회장은 극비로 출국했다. 현대차 핵심 관계자는 “김동진 부회장, 김창희 엠코 사장 등 회사 핵심인사는 물론 비서실장조차 언론보도를 보고 알았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현대차 임직원들도 황당해 할 정도였다는 게 당시의 내부 분위기다.
검찰의 태도가 강경으로 선회하는 등 상황이 급반전하면서 김동진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수습도 힘들어지는 분위기였다. 검찰에서 이미 정 회장 부자 소환을 공언해 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정도로 판이 벌어졌으면 최소한 정의선 사장의 사법처리 정도까지 가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현대차그룹에서는 5000억원 사회공헌 카드를 다시 만지고 있다. 정 회장도 서둘러 8일 귀국하기에 이른 것이다.
기사 퍼오신 분의 불만대로라면, 전적으로 지방 자치 단체의 수장인 이명박 시장에게 책임을 물어야할 사안 아닌가요? 중앙 정부의 요청으로 연구 개발단지의 국내 유치가 결정됐으나 사적으로 껄끄러운 관계인 전직 현대맨인 야당 시장 이명박씨가 시 행정을 위해 강제 수용, 무산시킨건데,왜 정부 운운?
이게 왜 이명박 책임입니까? 고하를 따진다면 오히려 정부측이 더 큰거죠. 위글대로라면 서울시는 이미 2003년 1월에 서울숲 계획을 세웠고.. 2003년 8월에 노통의 지원약속으로 계획이 바뀌었으나 정부는 이후 깜깜 무소식... 서울시야 당연히 계획대로 하는게 정상이고요.. 이명박의 잘못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첫댓글 맹박이 -_-
서울시 -_-
기사 퍼오신 분의 불만대로라면, 전적으로 지방 자치 단체의 수장인 이명박 시장에게 책임을 물어야할 사안 아닌가요? 중앙 정부의 요청으로 연구 개발단지의 국내 유치가 결정됐으나 사적으로 껄끄러운 관계인 전직 현대맨인 야당 시장 이명박씨가 시 행정을 위해 강제 수용, 무산시킨건데,왜 정부 운운?
이 글은 출처도 없나... 출처는 퍼온 사람 마음속인가.
이게 왜 이명박 책임입니까? 고하를 따진다면 오히려 정부측이 더 큰거죠. 위글대로라면 서울시는 이미 2003년 1월에 서울숲 계획을 세웠고.. 2003년 8월에 노통의 지원약속으로 계획이 바뀌었으나 정부는 이후 깜깜 무소식... 서울시야 당연히 계획대로 하는게 정상이고요.. 이명박의 잘못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확실히 중앙정부의 잘못은 아닌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