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이 센 성씨’
파주에있는 앞에 최영장군묘와 뒤의 최영장군 부친 최원직의 묘.
최원직은 사헌부 판관을 지냈다. : 2023년 봄에 찍은 사진▲
대부분 안, 강, 최. (安, 姜, 崔)를 언급하곤 한다.
거기에 황소고집 황(黃)씨도 있다죠. 그들은 정말 고집이 셌을까?
혹은 그들 중에 누가 더 고집이 셀까? 들려오는 얘기로는
살아있는 金 씨 3명이 죽은 崔 씨 1명을 못 이기고,
최 씨 셋이 모여도 강 씨 1명을 못 당하며,
강 씨 셋이 모여도 안 씨 앉은 자리를 못 넘본다는 얘기도 있다고 하는데
고집의 유래를 알아보자.
첫째,? 安씨
안 씨가 고집이 세다는 이야기는 조선 태종 때 단종을 끝까지 추종하다 학살되고
최고의 명문가에서 천민으로 전락되었던 순흥 安씨 집안의 멸문지화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조선시대에는 정치적으로 낙인이 찍혀버려 크게 활약한 인물이 별로 없지만,
안중근 의사를 포함해 독립운동을 하신 분 중에 안 씨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고 한다.?
잘못된 것을 잡으려는 안 씨의 고집에 독립운동에서도 발현된 것이리라.
둘째,?姜씨
강씨가 고집이 세다는 유래는 고려 말 충신 강회중에게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는 고려의 유신으로 조선을 개국한 태조가 여러 차례 벼슬을 권하였으나,
끝내 물리치고 고려에 대한 의리를 지킨 것에서 그의 마음과 기개가 사람들에게
강 씨 고집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셋째,?崔씨
최씨 고집은 고려 말의 충신 최영장군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최영 장군은 조선 건국에 반대하다 죽어가면서
"내가 역적이었다면 내 무덤에 풀이 무성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내가 옳다면 나의 무덤에는 풀이 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의 무덤에는 풀이 자라지 않아 후일 지독한 사람을 빗대 놓고 하는 말로
“최 씨가 앉은 자리에는 풀도 나지 않는다.”는 말이 회자되었던 것 같다.
黃씨
이들?‘安 姜 崔’와 고집에서 밀리지 않는 성이 또 있다.
바로 황소고집이라고 알려진 黃 황 씨 고집이다.
얼마나 대단 하길래 그리 불리는지 황씨 고집의 내력을 살펴보자.
조선 영조 때 집암 황순승(執庵 黃順承1652-1718)선생으로 인해
황고집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황씨 첫 번 째 이야기 하나만 예를 들어봅니다.
어느 날 마을 앞 개울에 다리를 세웠는데
다리 위를 덮은 흙에 하얀 석회가루가 섞어져 있어 인부를 불러
어디 흙이냐고 물었더니 인부가 말하기를 “오래된 무덤 부근에서 흙을 가져왔다”고 하자
남의 무덤의 흙을 밟고 다니는 것은 예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평생 다리 위로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가? 이 정도면 황 씨 고집이라고 불릴만 한가?
고집이란 억지를 부리는 ‘무대뽀’가 아니다.
남들이 다 가더라도 바르지 않은 길을 가지 않으며
예에 어긋나지 않게 산 그를?진정한 고집의 대가로 인정한다.
무대뽀의 고집으로 일관하는 머저리들이 성행하고 있는 지금
우리들은 정도의 고집으로 살아가야 하지 싶습니다.
2023.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