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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김씨/허씨/인천이씨는 동본동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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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김씨(金海金氏)와 허씨(許氏)와 인천이씨(仁川李氏)는 가락국 시조대왕을 시조로 하는 동일혈족이다. 즉 허씨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모계 (母系)의 성(姓)을 쫒고 있다는데서 타씨족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특색을 지니고 있다.시조 허왕후(許王后 ) 께서는 왕자(王子) 열분을 낳으셨는데 시조대왕께서 태자는 왕통을 잇게하고 두 왕자는 이국에 출가하시어 늘 외로워하시는 시조왕비를 위로하는 뜻으로 모후(母后)의 성을 계승케 하였다. 가락국이 신라와 합친후 김해에 남아있던 허씨는 김해허씨가 되었으니 그 시조는 허염(許琰)이시다.또 하양으로 이주한 분은 하양허씨(河陽許氏)가 되고 그 시조는 호장 (戶長) 허강안(許康安)이시다. 또한 공암양천(孔岩陽川)으로 이주한 분들은 양천허씨가 되었으니 시조는 허선문(許宣文)이시다. 그러니까 모든 허씨들은 김해김씨로부터 갈라졌으며 가락의 왕손들이다. 선조들께서 가락국의 사적(社적)이 끊긴뒤 각기 사방으로 분거(分居) 하였다가 그곳에 정착하면서 그 고장을 관적(貫籍)으로 삼았던 것이다. 학계에서는 허씨의 모성 계승을 우리나라 고대의 부계사회(父系社會)와 모계사회(母系社會)와의 접합현상(接合現象)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인천이씨는 바로 허씨에서 갈라진 분적종 (分籍宗)이며 시조는 고려 현종(현宗)때 상서좌복야(尙書左복야)를 역임하신 이허겸(李許謙)이시다. 공(公)의 선세(先世)에 허기(許奇) 란 분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셨다가 천자(天子)로부터 이씨로 사성(賜姓)받으셨으며 훗날 이허겸공께서 소송현 개국후(소城현開國候)에 봉해지면서 인천이씨로 관향을 갖게된 것이다. 소성이란 인천의 옛지명. |
성씨와 본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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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란 본시 혈통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한 일종의 부호로서 혈연의 관계를 나타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을 무렵, 즉 씨족 중심을 벗어나 부족사회(部族社會), 또는 부족국가(部族國家)로 형성 발전하면서 서로의 가통을 호칭하기 위한 방법으로 등장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본은 본관(本貫), 본향(本鄕), 관향(貫鄕), 관적(貫籍), 선향(先鄕)등으로도 부르며, 시조의 출생지나 정착지 등으로 본을 삼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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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본관의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관계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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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동조 동본 동성(同祖同本同姓) 같은 시조에 같은 본, 같은 성을 사용하는 경우로 이것이 가장 전형적인 형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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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동조 동본 이성(同祖同本異姓) 같은 시조에 같은 본이나 성을 하사 받거나 그 밖의 이유로 성이 달라진 경우이다. 가락국의 수로왕 후손으로 김해의 본을 쓰면서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金海許氏)등으로 갈려 사용하는 경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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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동조 이본 동성(同祖異本同姓) 같은 시조의 후손이면서 본을 다르게 쓰고 있지만 성은 같은 경우다. 파평 윤씨의 시조 신달(莘達)의 후손이면서 남원(南原), 함안(咸安), 덕산(德山), 신령(新寧)등으로 각각 다른 본을 사용하고 있으나 성은 같은 윤씨를 사용한다. 또 신라 알지왕의 후손으로 강릉, 광산 등 본은 달라도 성은 같은 김씨를 사용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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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동조 이본 이성(同祖異本異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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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이조 동본 동성(異祖同本同姓) 시조가 다르면서 본과 성이 같은 경우이다. 수로왕계의 김해 김씨와 일본계로 임진왜란때 귀화한 김충선(金忠善)계 김해 김씨가 그러하며, 남양 홍씨(南陽洪氏)에는 시조가 다르다 하여 당홍(唐洪)이라 부르는 남양 홍씨와 토홍(土洪)이라 부르는 남양 홍씨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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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이조 동본 이성(異祖同本異姓) 시조가 각각 다르므로 성도 다르지만 시조의 발상지가 같아서 본이 서로 같은 경우이다. 경주 이씨(慶州李氏)와 경주 손씨(孫氏), 청주 이씨와 청주 한씨 등의 경우가 그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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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이조 이본 동성(異祖異本同姓) 시조가 다르므로 본도 다르나 성이 같은 경우다. 파평 윤씨와 해평 윤씨(海平尹氏), 안동 장씨와 덕수 장씨, 광주 이씨(光州李氏)와 연안 이씨등이 그러하다. 이족이라면 성과 본관을 다르게 쓰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한 지방에 여러 성씨가 연고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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