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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구약성서 사사기 제13장에서 제16장까지
대본 페르디낭 르메르
초연 1877년 바이마르 대공 오페라하우스
배경 기원전 1150년경 팔레스타인의 가자
<2022년 로열 오페라 / 133분 / 한글자막>
로열 오페라 오케스트라 & 합창단 연주 / 안토니오 파파노 지휘 / 리처드 존스 연출 / 신혜미 무대 연출
데릴라...........펠리시테의 젊은 여인.....엘리나 가랑차(메조소프라노)
삼손..............히브리의 젊은 청년........백석종(테너)
대제사장........다곤의 대제사장............루카스 골린스키(바리톤)
아비멜레크.....가자의 영주..................블레이스 말라바(베이스)
늙은 히브리인의 목소리......................고데르치 야넬리츠(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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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생상스,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 2022년 로열 오페라 실황
엘리나 가랑차와 함께 무대에 선 한국 신진 테너 백석종의 로열 오페라 데뷔 공연
생상스의 프랑스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1877)가 2022년 새 프로덕션으로 로열 오페라 무대에 올랐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의 실험적인 디자이너 신혜미가 무대를 맡았다는 것이 화제일 뻔 했지만 '대타'주역으로 무대에 오른 테너 백석종이 절찬을 받았다는 소식에 묻혔다. 게다가 백석종의 상대역은 세계적인 메조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였다. 이 공연으로 실력을 입증한 백석종은 로열 오페라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연이어 대타 주역으로 투입되며 이름을 알렸다. 2019년까지만 해도 바리톤이었고 전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백석종은 앞으로 더욱 성숙해질 것으로 기대되는 테너다. 신혜미의 무대디자인은 완전히 현대적이며 영화적인 모티브와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유럽의 중심에 선 한국의 여성 디자이너에게도 박수를!
성경에 바탕을 둔 오페라는 생각보다 훨씬 드물다. 무대와 의상을 갖추지 않는 오라토리오로 작곡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손과 델릴라>는 베르디의 <나부코>, 쇤베르크의 <모세와 아론> 등과 더불어 보기 드문 성서 오페라의 걸작으로 남아있다. 대본이 취약하다는 평가가 있지만 생상스의 매력적인 음악이 약점을 만회하고 있다. 기악곡으로 더 유명한 생상스는 그럼에도 13편에 이르는 오페라를 남겼다는데 <삼손과 델릴라>가 그 대표작이다. 그밖에 영국 역사를 다룬 <헨리 8세>가 가끔 공연된다.
바리톤이 테너로 전향해 성공한 경우는 종종 있다. 오페라 역사에 빛나는 테너 중 이탈리아의 카를로 베르곤치, 스페인의 플라시도 도밍고가 그런 예다. 바리톤 음성이 어울릴 것 같은데 테너를 택하는 가수도 적지 않다. 스핀토 혹은 드라마티코라고 불리는 무거운 음성의 테너들이 그렇다. 다만 백석종은 전향이 늦었다. 미국에 유학해 직업성악가로 활동하면서도 바리톤이었는데, 어느 날 고음 발성법을 스스로 터득했지만 전향을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로 무대에 설 기회가 줄어들자 공백이 생긴 기회를 활용하기로 하고 집중적인 테너 훈련에 돌입했다. 금방 성과가 나타나 여러 콩쿠르에서 우승한 덕분에 로열 오페라 캐스팅 팀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백석종은 이미 테너 특유의 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지만 중저음에서도 매력적인 점은 바리톤으로 오래 훈련한 결과일 것이다.
라처드 존스는 영국의 세계적인 연극/오페라 연출가인데, 로열 오페라의 <삼손과 델릴라>는 그의 연출작 중 가장 현대적 감각이 강한 편이다. 이는 무대디자이너 신혜미 덕분이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영국에서 공부한 그녀는 의상디자인으로 극장계에 진출헤 상도 받았지만 지금은 무대디자이너로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 작품 해설 === <다음 클래식 백과 / 이진경 글>
삼손과 델릴라 Op.47
카미유 생상스
생상스가 작곡한 3막 그랜드오페라 〈삼손과 델릴라〉는 생상스가 작곡한 오페라 중 가장 극적인 작품으로 대표작이다. 구약성서 ‘삼손’은 오라토리오로 작곡하고자 하였지만, 대본가 르메르의 설득으로 오페라로 탄생되었다.
불운한 작곡가 생상스
생상스는 프랑스 최고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그의 〈동물의 사육제〉와 〈교향곡 3번 ‘오르간’〉, 〈첼로 협주곡〉, 〈피아노 협주곡〉은 아직까지도 사랑을 받는 곡이다. 어린 시절 모차르트와 비교될 정도의 천재성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생상스는 오르간 연주자로도 명성을 날렸다. 또한 장르나 스타일에 구애받지 않은 작곡가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위 4개의 작품을 제외하고 생상스의 작품을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오페라 역시 불운한 정도의 인기를 얻은 생상스는 사실 〈동양의 공주〉, 〈은방울〉, 〈헨리 8세〉 등의 적지 않은 수의 오페라를 작곡하였지만, 현재 무대에 오르고 우리가 기억하는 오페라는 〈삼손과 델릴라〉가 전부이다. 다행히 〈삼손과 델릴라〉는 전 세계 오페라 하우스에서 명작으로 각광받으며 현재까지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델릴라의 아리아는 메조소프라노와 콘트랄토(contralto, 여성 알토)의 레퍼토리로 사랑받고 있다.
오라토리오에서 오페라까지
〈삼손과 델릴라〉는 오늘날에 와서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는 생상스의 대표작이지만, 이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생상스는 라모를 위해 쓴 볼테르의 대본 《삼손》을 참고하여 오라토리오를 작곡할 계획을 세우고 페르디낭 르메르(Ferdinand Lemaire, 1832-1879)에게 오라토리오 대본을 부탁하였으나, 르메르가 삼손과 델릴라의 이야기가 오페라에 더 적합하다며 생상스를 설득하였다. 대본이 완성된 후, 생상스는 상당히 집중하여 오페라의 2막을 작곡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는 델릴라의 아리아, 삼손과 델릴라의 듀엣 등이 포함되어 있다. 관현악이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1870년 2막을 비공개로 시연하였으며 이날 오케스트라 부분은 생상스에 의해 피아노로 거의 즉흥으로 연주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구약성서를 주제로 한 이 오페라에 대한 반응은 냉담하였다.
낙담한 생상스는 더 이상 미완성된 이 작품을 작곡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1872년 여름 바이마르에서 만나게 된 리스트와의 인연으로 다시 작곡에 착수하게 되었는데, 리스트는 생상스의 〈삼손과 델릴라〉에 상당한 흥미를 보였으며, 이 재능 있는 젊은 작곡가가 작품을 중단하지 않기를 원했다고 한다. 용기를 얻은 생상스는 1막부터 다시 작곡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875년 생상스는 샤틀레 극장에서 1막을 올렸다. 그러나 작품은 비평가들의 가혹한 비평을 받았다. 같은 해, 메조소프라노 폴랭 비아르도(Pauline Viardot, 1821~1910)가 노래해 오페라의 2막이 사적으로 공연되었다. 그녀는 작품을 상당히 좋아하였으며, 이 사적인 공연이 파리 오페라 감독의 마음을 움직이길 기대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희망에도 1876년 완성된 생상스의 오페라를 무대에 올려줄 오페라 하우스는 나오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리스트의 계속된 도움으로 〈삼손과 델릴라〉는 마침내 바이마르에서 1877년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당연히 이 날 비평가들로부터 좋은 평을 얻었으나 이 오페라가 다시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여인의 유혹에 넘어간 비운의 영웅
펠리시테인들에게 식민 지배를 받고 있는 히브리인들은 하느님이 자신들을 버린 것을 슬퍼한다. 이때 삼손이 나타나 ‘자신은 하느님께 영감 받은 자이니, 하느님께서 곧 우리에게 응답하실 것’이라며 희망을 전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영주 아비멜레크가 병사들과 함께 등장하여 히브리신을 모독한다. 아비멜레크가 칼을 들어 삼손을 치려하자 삼손은 오히려 괴력을 발휘하며 그를 쓰러뜨린다. 영주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받은 대제사장이 병사들을 나무라고 있는데 전령이 와서 히브리인들이 삼손을 지휘관으로 앞세워 봉기를 일으켰음을 전한다. 이에 대제사장은 병사들과 영주의 시체를 들고 도망친다. 승리를 기뻐하는 히브리인들 앞에 다곤 신전에서 펠리시테 여인들을 거느리고 델릴라가 나온다. 펠리시테 여인들은 승리자 삼손을 축하하고, 델릴라는 삼손에게 사랑을 요구하며 유혹한다. 히브리의 노인은 삼손에게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고 충고하지만, 이미 삼손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 상태이다.
계곡에서 삼손을 기다리는 델릴라에게 대제사장이 찾아와 삼손의 마음을 잡아서 그의 괴력의 비밀을 알아내라고 부탁한다. 델릴라는 대제사장의 요청에 그를 굴복하기 위해 유혹을 할 뿐이라며 대제사장의 청을 수락한다. 대제사장이 떠나고 삼손이 나타난다. 삼손은 델릴라의 유혹에 갈등하지만, 결국에는 그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델릴라는 그녀의 유혹에 넘어간 삼손에게 진정 저를 사랑한다면 힘의 비밀을 알려달라고 한다.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는 삼손에게 델릴라가 화를 내며 그를 떠나려 하자 삼손은 이내 굴복하고는 그녀를 따라간다. 잠시 후 매복하고 있던 펠리시테 병사들이 델릴라의 신호에 그녀의 집을 포위한 후 집 안으로 뛰어든다.
머리카락을 잘려 힘을 잃은 삼손은 눈마저 뽑혀 시력을 잃고 옥에 갇혀있다.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후회하고 감옥 밖에서는 히브리인들이 여자에게 넘어가 민족을 팔아버린 삼손을 비난하는 소리가 들린다. 삼손은 자신을 희생양으로 바치니 진노를 거두어 달라며 신께 청한다. 대제사장과 델릴라의 주도하에 펠리시테 사람들은 승리의 연회를 열며 잔치를 벌인다. 눈먼 삼손이 이끌려 나오고 대제사장은 여자에게 현혹되어 힘을 잃은 그를 모욕한다. 이에 삼손은 자신의 죄를 사죄하면서 복수를 할 수 있기를 간절하게 기도한다. 펠리시테 사람들은 다곤의 신에게 기도를 드리며, 대제사장은 삼손에게 다곤의 신에게 잔을 바치라고 명한다. 그러자 삼손은 자신을 이끄는 이에게 신전 한가운데의 두 기둥 사이로 인도해 달라고 청한 후, 그곳에 도착하자 두 기둥을 밀면서 과거 능력을 청하는 기도를 올린다. 이어 두 기둥이 쓰러지면서 거대한 신전은 펠리시테인들과 삼손 위로 무너진다.
1막 델릴라의 아리아, ‘봄이 오면’(Printemps qui commence)
삼손을 앞세워 히브리인들의 봉기가 성공에 이르자 모두들 승리를 기뻐한다. 이때 델릴라가 펠리시테 여인들과 함께 등장하여 삼손을 유혹한다. 늙은 히브리인들이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고 하지만, 이미 삼손은 마음을 빼앗겼다. 델릴라는 무녀들의 관능적인 춤에 맞추어 함께 춤을 추면서 삼손을 유혹하는데 ‘봄이 오면’은 이때 삼손을 유혹하며 부르는 아리아이다.
2막 델릴라의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Mon cœur s'ouvre à ta voix)
델릴라의 유혹에 계곡으로 삼손이 찾아온다. 그녀의 유혹에 갈등하던 삼손이 결국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자, 델릴라는 기뻐하며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를 부른다. 삼손이 “델릴라”를 부르며 사랑을 고백하자 이에 답하며 부르는 이 아리아는 사실 델릴라가 삼손의 힘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삼손을 유혹하는 노래이다. 가사 음절 하나하나는 멜리스마적으로 쓰였으며 넓은 음역을 레가토로 노래 불러야 하기에 연주자들에게는 하나의 도전과제와 같은 곡이기도 하다. 이 아리아는 〈삼손과 델릴라〉에서 ‘봄이 오면’과 함께 유명한 델릴라의 아리아이며, 오늘날에는 메조소프라노와 콘트랄토의 중요한 레퍼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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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4년 7월 18일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클래식 명곡 명연주
생상스, 삼손과 데릴라
만 세 살에 작곡을 시작했다는 프랑스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Saëns, 1835-1921)는 천재 중에서도 뛰어난 천재였지만, 칭찬이나 비판에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길을 가는 작곡가였다고 합니다. 여든여섯 해를 살아가는 동안 그의 차분하고 여유 있는 태도는 언제나 그대로였다고 전해집니다.
생상스에게 붙는 직업의 이름은 무척 많습니다. 작곡가, 시인, 화가, 천문학자, 식물학자였던 그는 일종의 '파우스트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모르는 게 없는 박학다식한 존재로도 유명합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바그너를 욕하고 있을 때 그는 바이로이트로 성지순례를 떠날 만큼 바그너 음악을 숭배했습니다. 그러나 바그너의 음악이 온 유럽을 지배하게 되었을 때는 오히려 그 숭배를 거둬들였죠.
생상스는 [동양 공주], [은방울], [헨리 8세] 등 오페라도 20여 편이나 작곡했지만, 현재까지 꾸준히 공연되는 작품은 [삼손과 데릴라]뿐입니다. 프랑스어 원제대로 읽으면 '상송과 달릴라'가 되겠지만, 여기서는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일반적 표기대로 '삼손과 데릴라'로 쓰겠습니다. 그의 작품으로는 [동물의 사육제], [교향곡 3번 c단조(오르간 교향곡)], [첼로 협주곡] 등이 유명합니다. 생상스는 “감수성이 증가할수록 음악과 다른 예술들은 그 순수한 지위를 잃게 된다. 감정만을 추구하면 예술은 사라진다.”라고 말하며 이성적으로 음악을 창작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삼손은 구약성경 판관기(사사기) 16장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재판관입니다. 기원전 1천 년경, 팔레스타인 가자(Gaza) 지역에 살았던 인물입니다. 이 성경 이야기를 토대로 페르디낭 르메르(Ferdinand Lemaire)가 대본을 썼고, 오페라는 1877년 12월 2일 바이마르 대공(大公) 극장에서 초연했습니다.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1막은 가자의 광장입니다. 불레셋(필리스틴)의 지배하에 고통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에게 구원을 청하는 기도를 올립니다. 그러나 곧 불만에 가득 차, ‘우리들의 신은 귀머거리’라고 외칩니다. 민족의 지도자이자 용맹한 전사인 삼손(테너)이 나타나 ‘하느님이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며 백성을 설득합니다.
불레셋의 장군 아비멜렉(베이스)이 군대를 이끌고 와 ‘노예들이 감히 떠든다’며 이스라엘의 신과 백성을 모욕하자, 삼손은 백성들을 격려하며 아비멜렉과 싸워 그를 쓰러뜨립니다. 불레셋 병사들은 혼비백산해 달아납니다. 이스라엘 현자(베이스)가 삼손을 축복하며 이스라엘인들에게 출정을 명합니다.
한편, 한때 삼손과 연인이었던 데릴라는 불레셋 처녀들과 함께 들판을 거닐며 봄을 노래합니다. 데릴라는 삼손에게 승전을 축하하러 왔다면서 그를 유혹합니다. 현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삼손은 데릴라의 매혹적인 모습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2막은 소렉 골짜기에 있는 데릴라의 집에서 시작됩니다. 삼손의 냉정한 태도에 마음이 상한 데릴라는 복수를 다짐하고 있습니다. 불레셋 대제사장(베이스)이 데릴라를 찾아와 삼손에 대한 증오를 더욱 타오르게 하면서, 삼손을 유혹하는 데 성공하면 금은보화를 상으로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데릴라는 보상을 거절하고, 오로지 자신의 복수를 위해 삼손을 불레셋 대제사장에게 넘기겠다고 약속합니다.
천둥번개가 치는 밤, 감미로운 유혹을 마음속에서 지울 수 없었던 삼손은 데릴라를 찾아옵니다. 데릴라는 격정적인 사랑을 고백하며 삼손을 유혹하고, 삼손은 마침내 자기 힘의 원천이 바로 긴 머리카락이라는 중대한 비밀을 알려줍니다.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라는 메조소프라노의 매혹적인 아리아가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데릴라는 잠든 삼손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힘을 잃은 그를 대제사장과 병사들에게 넘깁니다.
3막은 가자의 감옥을 배경으로 합니다. 삼손과 함께 다시 불레셋의 노예가 된 이스라엘 백성은 감옥 앞에서 삼손을 맹렬하게 비난합니다. 불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눈을 멀게 한 뒤 그를 사슬에 묶어 연자방아를 돌리게 하죠. 삼손은 민족 지도자의 사명을 지닌 자신이 하느님 앞에 저지른 죄를 깊이 뉘우치며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죽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달라고 하느님에게 기도합니다.
불레셋 사람들은 승전을 축하하며 다곤 신전 앞에서 바카날 축제(술의 신 바쿠스를 찬미하는 광란의 축제)를 벌입니다. 이들은 삼손을 끌어내놓고 다곤 신을 숭배할 것을 강요하고, 데릴라는 백성들 앞에서 삼손을 모욕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삼손은 소년에게 자신을 신전 기둥이 있는 쪽으로 이끌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신전을 받치고 있는 두 기둥 사이에 선 삼손은 하느님에게 마지막으로 힘을 달라고 기도하고는 맨손으로 신전 기둥을 밀어 다곤 신전을 무너뜨립니다. 불레셋 사람들은 모두 거대한 기둥들에 깔려 죽게 됩니다.
성경 속 안하무인이 아닌 사색적 주인공 삼손
생상스의 오페라에 등장하는 삼손은 성경의 삼손과 어떻게 다를까요? 구약성경 판관기(사사기) 13-16장에는 삼손의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작은 태양', '한 줄기 빛'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삼손은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불레셋 여인들에게 매혹당합니다. 처음에 결혼하려던 불레셋 처녀에게 배신을 당하고 1천 명 이상의 불레셋 사람들을 당나귀 턱 뼈로 처 죽인 삼손은 그 뒤로도 가자의 매춘 여성을 찾아 드나들다가, 결국은 소렉 골짜기의 처녀 들릴라(델릴라, 달릴라라고도 한다)를 보고 사랑에 빠집니다. 성경의 삼손은 20년간 이스라엘의 지도자이자 재판관이었던 인물이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거칠고 폭력적이며 조급한 사람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오페라 속의 삼손은 완전히 다른 성격입니다. 세실 B. 데 밀 감독의 영화 [삼손과 데릴라]에서는 삼손이 혈기 방자한 젊은 청년으로 등장하지만, 오페라에서는 이스라엘을 20년간 이끈 판관답게 노련하고 사색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대본가 르메르는 성경의 삼손을 토대로 하긴 했지만, 이 이야기를 희곡 작품으로 만든 볼테르의 [삼손]에 크게 기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볼테르는 많은 희곡을 쓴 작가로도 유명한데요,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삼손을 섬세하고 신중하며 끝없이 고뇌하는 민족의 지도자로 그렸습니다. 무대 예술에서는 관객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주인공이 필요한데, 성경에 나오는 '안하무인' 삼손을 연극이나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삼는다면 관객의 공감을 충분히 얻지 못할 것 같아서일 것입니다.
루벤스, 렘브란트를 비롯해 많은 화가들은 데릴라가 삼손의 머리를 자르는 장면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루벤스의 그림에서는 데릴라의 붉은 치마폭이 눈을 사로잡고, 렘브란트의 작품에서는 명암의 극명한 대비가 인상적이죠. 오페라에서는 삼손보다는 데릴라에게 주어지는 서정적인 멜로디의 아리아들이 관객의 인기를 끌며 오페라의 집중도를 높여줍니다. 특히 메조소프라노 여주인공의 풍성하고 깊이 있는 음색은 금지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관능적 분위기를 창조했습니다.
생상스는 원래 이 소재로 오라토리오를 작곡하려고 했으나 대본가 르메르가 오페라로 작곡하는 편이 낫다고 설득했고, 두 사람은 주인공 삼손의 첫 아리아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이미 1859년에 구상했습니다. 그러나 생상스가 두 번째 곡으로 2막에 나오는‘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를 작곡하기까지 8년의 세월이 흘러가버렸죠. 생상스는 사적인 형식의 살롱 음악회에서 이 곡과 그 밖의 몇 곡을 친구들에게 들려주었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저 예의상 쳐주는 박수조차 나오지 않았다.”고 훗날 회고했습니다. 얼마 후 2막 전체를 완성해 들려주었을 때도 반응은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1870년, 생상스의 오랜 친구 프란츠 리스트가 이 작품에 관심을 표하며 바이마르 극장에서 초연을 하도록 주선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프로이센과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이 약속은 지켜질 수가 없었습니다. 1875년에는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콘체르탄테(무대 장치와 의상 없이 이루어지는 공연) 형식으로 1막이 공연되었지만, 평론가들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아름다운 멜로디도 없고, 화성은 지나치게 대담하다는 것이 비평의 요점이었습니다.
하지만 리스트는 결국 자신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마침내 1877년에 바이마르에서 [삼손과 데릴라]를 초연하도록 도운 것입니다. 공연은 엄청난 성공이었습니다. 애초에 오라토리오로 기획한 이 작품은 오페라보다는 음악극(Musikdrama)의 성격이 강했고, 바그너의 음악극이 유럽을 지배하게 된 당시의 시대 상황에 잘 맞아떨어졌던 것입니다. 프랑스의 『음악저널(Journal de Musique)』은 “생상스는 독일 한복판에서 프랑스 악파의 깃발을 휘날렸다”라고 적었습니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잊지 못할 인상을 남기는 음악인 '바카날'은 생상스가 북아프리카에서 민속음악을 연구하며 보낸 시간의 결과입니다. 원시적인 생명력으로 충만한 이 곡의 강렬한 타악기 리듬이 없었다면 복잡한 화성을 지닌 [삼손과 데릴라]는 대중적으로 그만큼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추천 음반
[CD] 갈리나 오브라초바, 플라시도 도밍고, 레나토 브루손 등,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 파리 오페라 오케스트라, 2005년 녹음
[CD] 발트라우트 마이어, 플라시도 도밍고, 알랭 퐁다리 등, 정명훈 지휘, 바스티유 오페라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1993년 녹음
[DVD] 올가 보로디나, 플라시도 도밍고, 세르게이 라이페르쿠스 등, 제임스 레바인 지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일라이자 모신스키 연출, 1998년 실황(한글자막)
[DVD] 율리아 게르체바, 호세 쿠라, 슈테판 슈톨 등, 요헴 혹슈텐바흐 지휘, 바덴 국립극장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호세 쿠라 연출, 2010년 실황
[네이버 지식백과] 생상스, 삼손과 데릴라 - 생상스 (클래식 명곡 명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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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해설 === <2010년 6월 23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생상스 <삼손과 델릴라>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 열린다
성서의 영웅, 괴력의 삼손을 제거하고자 유혹하는 요염한 미녀 델릴라의 아리아
구약 성서에 있는 고대 이스라엘의 영웅 삼손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스펙타클한 전 3막의 오페라이다. 이국젹(異國的)인 색채미가 넘치는 음악과 요염하고 관능적인 선율이 온몸을 감싼다. 본래는 멘델스존의 [엘리아]를 본뜬 종교곡(오라토라오)으로 만들려고 시작했으나 이 작품의 대본 작가 르메르(Ferdinand Lemaire)의 권유를 따라 그랜드 오페라로 바꾸어 불란서를 대표하는 작품의 하나가 되었다. 생-생스(까미유 생상스, Camille Saint-Saens, 1835-1921)의 천재적인 재능이 꽃 피운 오페라이다.
성서의 영웅 삼손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오페라
기원 전 1150년 무렵, 이스라엘의 가자이다. 이스라엘에서 휠리스티아(불레셋, 필리스테, Philistines)인 지배 아래 사는 히브리인은 괴로운 생활을 강요당하며 살아간다. 가자의 광장에서 휠리스티아인 병사를 거느린 아비멜레크 태수(太守)가 여호와 신을 비웃었으므로 괴력(怪力)을 지닌 히브리 청년 삼손이 나와 태수를 쓰러뜨린다. 기세등등한 히브리인들 앞에 주눅이 들어 휠리스티아인들은 꽁무니를 뺀다. 다공 신전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대사제는 앞날이 위태로움을 깨닫는다. 저녁이 되어 다공 신전에서 나타난 휠리스티아인 처녀들 속의 요염한 미녀 델릴라의 춤이 삼손을 괴롭힌다. 대사제의 부탁을 받고 기다리는 델릴라의 집에 유혹을 이기지 못한 삼손이 모습을 나타낸다. 그리고 유태인 해방을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괴력의 비밀을 털어 놓는다. 드디어 삼손은 델릴라의 계획대로 집을 둘러싼 휠리스티아인들에게 사로잡힌다. 괴력의 원동력이었던 머리칼이 잘리고 돌절구를 끄는 삼손. 색욕(色慾) 때문에 하느님을 배반한 사실을 후회하는 삼손. 신전에서는 괴력의 원흉을 잡은 일을 축하하는 축하연을 베풀고 있다. 그때 어린이 손에 이끌리어 나오는 삼손에게 오만 불손한 태도를 보이는 델릴라, 거기 모인 자들의 가진 욕설과 악담을 받는 속에 필사적으로 하느님에게 기도하며 신전의 두 기둥에 손을 댄 삼손은 있는 힘을 다해 흔들기 시작한다. 그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는지 괴력이 되살아나 대신전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리고 거기 모인 모든 사람을 깔아 버린다.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 열린다’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 열린다,
마치 꽃들이
동 트는 새벽의 입맞춤에 피어나듯이!
허나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여,
더 잘 내 눈물을 말리기 위해,
그대 목소리를 더 들려주세요!
영원히 델릴라의 곁으로 돌아온다고 말해 주세요!
되풀이 해 주세요, 내 사랑에
옛날의 맹세를,
내가 좋아한 맹세를!
아 나에게 대답해 주세요,
도취(陶醉)를, 도취를 내게 부어 주세요,
아 내 사랑에 응답하여,
도취를 부어 주세요!
밀 이삭이 가벼운 미풍에
물결 치고 서성대듯이,
체념하고 있던 내 마음은 그리도 그리운,
그대 목소리에 떨리고 있다!
화살이 죽음을 나르는 것 보다 더 빠르게!
사랑하는 사람이 그대의 팔로 날아갑니다!
아 내 사랑에 응답하여!
도취(陶醉)를 부어 주세요!
내 사랑에 응답하여!
제2막에서 선정적(煽情的)으로 차려 입은 델릴라가 유혹에 넘어가 자기 집에 찾아온 삼손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삼손의 사랑의 맹세에 반색을 하며 화답하는 곡이다. 우아하고 관능적인, 몸에 착 달라붙는 듯한 노래이다. 후반 끝에 삼손의 노래가 끼어들어 2중창이 된다. 생-생스는 일생 동안에 13개의 오페라를 썼으나 성공하여 지금도 인기가 떨어지지 않는 이 [삼손과 델릴라](불란서어로는 [상송과 달릴라]) 뿐이다. 헨델, 글루크, 베를리오즈, 베르디의 [아이다], 그리고 바그너 등으로부터의 영향까지 소화하여 자기 자신의 양식을 만들어 냈다. 또 한 가지 간과(看過)할 수 없는 것은 그의 [피아노 협주곡 제5번 이집트 풍](1896)이나 [알제리아 조곡](1880) 등과 공통된 이국취미의 도입, 그리고 이 오페라 제3막 제2장 다공 신전(神殿)에서 휠리스티아 인의 술잔치 자리에서 나오는 발레 음악 [바까날레 Bacchanale]는 그 가장 효과적인 예이다.
들을 만한 음반과 DVD
[CD] 쁘레트르(프레트르, Prêtre) 지휘, 파리 국립 가국장 관현악단/르네 뒤끌로 합창단(1962) 리타 고르(Ms), EMI
쁘레트르는 이 오페라 특유의 화려한 음색을 충분히 살리면서 선명한 템포와 리듬으로 극적인 생명감을 활기 있게 뿜어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고혹적인 관능성과 스케일 큰 힘찬 표현 속에 불란서 오페라다운 단정함을 잃지 않는다. 델릴라 역의 고르(Rita Gorr)는 청초한 음성으로 관능미를 한껏 발산하여 듣는 이를 사로잡는다. 삼손 역의 비커즈(Jon Vickers)도 목소리에 눈부신 빛이 서려 있던 전성기의 다부진 노래가 감동적이다. 그리고 매혹적인 광채와 힘찬 박력을 교묘하게 잘 조화시키면서 불란서풍의 화려함을 아낌없이 발휘하는 파리 국립 가극장 관현악단 역시 약동적이다. 아울러 파리 가극장의 가수들 및 르네 뒤끌로 합창단도 골고루 나무랄 데가 없다.
[CD] 정명훈 지휘, 파리 바스띠유 가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91) 마이어(Ms), EMI
불란서 악단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명훈의 지휘는 잘 정돈된 후레이징(프레이징, phrasing=악구[樂句]를 나누는 법)과 유연하고 자연스런 음악을 만들고 있다. 오케스트라도 불란서 악단답게 투명하다. 성역(聲域)이 넓은 델릴라 역의 마이어(Waltraud Meier)의 쭉쭉 뻗어나가는 목소리도 매력적이다. 도밍고의 삼손 역은 중량감 있는 침착한 노래가 역할에 그대로 잘 들어맞는다. 애써 힘주지 않고 작곡가가 이 작품에서 의도했던 요소를 아름답게 결집한 지휘자의 능력 또한 출중하다.
[DVD] 레바인 지휘, 메트로폴리탄 가극장 관현악단/합창단/발레단(1998) 보로디나(Ms), 모쉰스키 연출 DG
도밍고의 메트로폴리탄 가극장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1998년 9월 8일)의 실황 녹화이다. 이미 정평이 나 있는 도밍도의 삼손 역은 현재 비길 가수가 없다. 그리고 상대역인 델릴라 역의 보로디나(Olga Borodina,1960-)도 상트뻬제르부르크 출생의 메쪼 소프라노이며 처음 외국에서 데뷔한 역이 영국 코벤트 가든 왕립 가극장에서의 델릴라 역이었다. 상대 역이 도밍고였다. 1992년 당시 유럽이 떠들썩할 정도의 호응이었다. 풍격(風格)있는 스케일 감이 넘치며 깊은 목소리와 경쾌한 역할까지 잘 소화하여 서구의 오페라 계를 석권했다. 미모와 재능, 아름다운 목소리 등 3박자를 갖춘 가수이다. 이 오페라에서는 관능적(官能的) 박력이 격렬하다. 러시아의 상트뻬쩨르부르크(상트페테르부르크) 극장 대극장의 넓은 홀에서 [부활]을 연습할 때 그녀가 노래를 시작하자 객석에서 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일제히 무대를 쳐다보았다는 일화가 있다. 또 다공 신전의 대사제 역인 라이훼르쿠스(Sergei Reiferkus, 1946-) 역시 러시아의 구 레닌그라드 출신이며 끼로후 오페라(마린스끼 극장)에서 데뷔한 바리톤 가수이다. 러시아 특유의 발성을 살린 저력(底力)있는 노래를 들려주며 전 세계 가극장에서 [아이다]의 아모나스로, [토스카]의 스카르피아, [오텔로]의 이아고 등 서구의 오페라 작품에서 각기 작품에 알맞은 발성 양식을 바꾸어 다채로운 역할을 소화해내고 있다. 강렬한 개성을 가진 가수라고 할 수는 없으나 안정된 확고한 실력을 지닌 성격파 가수의 명성을 지니고 있다. 레바인의 지휘는 무난하며 구석구석 잘 다듬어진 발랄한 음악을 펼치고 있다. 제3막 2장의 발레(바까날레)는 그로테스크하며 생동감 넘치는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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