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3, 10, 25, 수요일, 구름조금, 남한산성,
"남한산성"<南漢山城>을 지키는 수호신인듯.. 무장<武將>의 기개가 느껴집니다 !!
남한산성 남동쪽에 위치한 "동문"<東門>은 남문과 함께 가장 많이 사용했던 성문으로 ~
행궁을 중심으로 국왕이 남쪽을 바라볼때 좌측이 되므로 "좌익문"<左翼門>이라 했다는군요 ~
동문 주차장에서 약 20 m 에 있는 제 11 암문을 빠져나가 희미한 길을 따라 약 200 m 를 내려가면 ~
정조가 여주의 "영능전배" <寧陵展拜>길에 신하들과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이곳에 잠시 쉬었다 가면서 ~
수어사 김종수에게 글을 남길것을 명하자.. 교지를 받들어.. 여암석에 "주필암"<駐蹕岩>을 새겨 놓았답니다 ~
"기해"<己亥>는 서기 1779 기해년을 뜻하고 "주필"<駐蹕>은 임금이 탄 수레가 멈추었다는 뜻이라네요..?
"己亥" 와 <駐蹕>이 어긋나 있는것은 "주필" 은 임금을 뜻해 위에있고 "기해" 는 받드는 의미로 아래 있다는거죠..?
"기해주필"<己亥駐蹕> "수어사 신"<守禦使 臣> "김종수 봉 교서"<金鍾秀 奉 敎書>라 새겨져 있습니다 ~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은 대정 13 년.. 즉 1924 년 불교계에서 새긴것으로 주필암과는 관계가 없다네요 ~
"연무관"<演武館>은 군사훈련을 위한 지휘소겸 훈련장이라 하구요 ~
남한산성 천흥사 동종은 고려시대 주조된 우수한 작품으로 아침, 저녂 일정한 시각에 종을 쳤으며 천안 천흥사에 있었는데 언제 옮겼는지는 깜깜이..?
"남한산성 행궁"<南漢山城 行宮>의 정문격인 "한남루"<漢南樓>입니다 ~
행궁의 규모는 "상궐"<上闕> 73 칸 "하궐"<下闕> 154 칸으로 모두 227 칸의 규모라 하구요 ~
건립시기는 1624, 9 월 이며 총 면적은 1 만평으로 행궁지 발굴로 재탄생 한거죠 ~
"일장각"<日長閣>은 "광주부 유수" 가 사용했던 건물이구요 ~
"의청문"<毅淸문>입니다 ~
"좌승당"<坐勝堂>은 앉아서 이긴다는 뜻이라죠..?
"명성문"<明成門>이구요 ~
"이위정"<以威亭>은 1817 년 광주부 유수"심상규"<沈象奎>가 활을 쏘기위해 만든 정자로 ~
"이위" 란 "활로써 천하를 위협할만 하지만 활과 화살이 아닌 "인의<仁義>와 "충용"<忠勇>으로도 능히 천하를 위압 할수있다" 란 뜻을 가지고 있답니다 ~
임금의 침소구요 ~
일월도 병풍은 어전인을 뜻하구요 ~
"남한산성" 은 조선의 "도성"<都城>인 한양의 방어를 위해 쌓은 산성으로 알려져 왔는데,, 최근의 발굴조사 결과 ~
8 세기 중반에 조성된 성벽과 건물터 등이 확인되어, 신라 "주장성"<晝長城>의 옛터였을 것으로 추정 한다네요 ~
통일 신라시대 주장성은 군수 물자를 저장하는 특수창고를 설치한 중요한 거점성 이었으며 ~
조선시대에는 "외성"<外城> 과 "옹성"<甕城>을 갖춘 전형적인 산성이면서 ~
산성<山城>의 변화 과정과 기능을 이해하는 중요한 유적<遺跡>이라고 합니다 ~
"서문"<西門>은 행궁의 우측에 있다하여 "우익문"<右翼門>으로 불리며 ~
산성의 북동쪽 모서리 부분 해발 450 m 지점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은 경사가 급해 물자수송은 어렵지만 ~
"광나루" 나 "송파나루" 방면에서 산성으로 진입하기에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