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가슴을 쥐어뜯으며 분을 삼키는 그대, 여자. “**씨, 엉덩이가 너무 빵빵한 거 아냐?”, “가슴이 너무 작은데 확대수술 어때?”, “여자가 말이야, 살림 잘 하고 애 잘 키우면 되지 뭣하러 설쳐”. 남자의 ‘주. 둥. 아. 리’를 확 꿰맬 수도 없고 답답할 노릇이다. 일상생활에서 공공연히 행해지는 남자들의 언어폭력, ‘삐익~’ X등급에 처하겠노라. 땅! 땅! 땅!
굳이 국민타자로 떠오른 손모씨나 계단에서 임산부를 밀쳐 넘어뜨린 조모씨. 그들의 폭력만이 다는 아니다. 남자들이 행하는 폭력, 그 종류도 수십 가지. 특히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멘트들이 즐비한데 변명은 간단하다. "농담 가지고 유난스럽게 왜 그래?" 언어폭력 또한 명백히 범죄에 속한다. 그러나 남자들은 몰라도
너무 모른다. 괜한 농담? 다 친근감의 표시라구? 애써 변명하지 말라. 그들이 날린 언어들이 자음과 모음으로 분해되어 여자들의 가슴에 콕콕 박혀 버린다.
평범한 회사원 김씨(34세)는 항상 당당하게 말한다. "난 결혼생활 5년 동안 단 한번도 마누라를 때린 적이 없다구." 그의 은근한 자랑이다. 그렇다면 그가 비폭력주의자이며 다정다감한 남편일까?
여기서 잠깐, 그가 애용하는 일상 멘트를 살펴보자.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 번씩 패줘야 해! 그나마 당신은 나같이 점잖은 남자 만난 거 다행인 줄 알라구", "아니, 여자가 밥이나 할 것이지, 왜 차를 끌고 다녀?", "어디 여자가 감히 말대답이야? 무식하면 가만 있어!" 등이 있다. 김씨의 언어폭력은 그것이 폭력인 줄도 모른 채 일상생활이 되어 있다. 그가 매번 '여자가'라는 토를 달 때마다 김씨의 아내는 분을 삭히고 가슴이 아파 온다.
직장에서는 어떨까? 21세기,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이 시대에도 여태껏 '미스 리'로 불려온 여자가 있다. 사회생활 4년차인 '미스 리'(27세)가 회사에서 처음 듣는 말은 "미스 리, 모닝 커피 한 잔!"이다. '미스 리'의 사무실 분위기는 아주 화기애애하다. 아니, 너무 화기애애해서 탈이다. "미스 리, 피부가 까칠한 거 보니 오늘 그날인가 봐", "너무 파진 옷 입은 거 아냐? 가슴 골 다 보이는 걸".
그나마 평일은 낫다. 회식날은 '정'이 흘러 넘친다. 술에 흠뻑 취한 팀장의 옆 자리는 '미스 리'의 지정석이다. 평소 말이 없던 그 남자, 최 대리는 매번 같은 멘트를 날린다. "미스 리, 나 등 좀 긁어줘." 지하철 시간 때문에 먼저 일어서려면 정겹게 붙잡는 정과장은 항상 "여기 여관도 많은데 놀다가 자고 가."라고 말한다. 어찌나 정겨운 직장 분위기인지 '미스 리'는 눈물겹기만 하다.
인터넷을 즐기는 전형적인 e세대 최모양(21세). 그녀는 요즘 인터넷에 접속하기가 무섭다. 그녀의 취미인 온라인 게임, 어쩌다 '필'을 받아 게임이 척척 풀리는 날이 있다. 이런 날이면 어김없이 귓속말이 날라온다. "야, 이 X아! 밥 안 먹고 오락만 했냐? 집에 가서 밥이나 해!", "미친 X, 오락 잘해서 좋겠다", "18, X같은 X! 너 이제 오락하지마!". 살벌한 귓속말 때문에 게임을 끝맺고 채팅사이트에 접속했다. 우울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다. 매너 좋은 멘트로 한 남자가 일대일 채팅을 신청했다. 게임 일로 우울해진 그녀를 부드럽게 달래주는 그 남자. 점차 대화는 무르익어갈 때쯤 그는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거 해 봤어요?", "**씨는 어떤 체위가 좋아요?", "나 키스 무지 잘하는데, 우리 만날까요?". 황당해진 최양, 컴퓨터의 전원을 꺼버렸다.
가정, 직장, 온라인 등 언어폭력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남자'라는 이유로, 돌출된 무기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는 면죄부라도 주어진 것일까? 오늘도 여기저기서 혀로 내뱉어진 폭력에 '그녀'들의 몸과 마음은 상처를 입고 있다.
당하고만 있지 말자. 창을 들고 공격하라, 방패를 들고 수비하라. 언어폭력에 대항하는 여전사가 되자. 단순히 '말'뿐이라고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 즉시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언어폭력을 줄이는 길.
우리나라 현행법상 '성희롱'은 "업무, 고용, 기타 관계에서 성적 수치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성적 언동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언어폭력이 해당되는 성적 언동에는 음란한 농담이나 음담패설, 외모에 대한 성적인 비유나 평가, 성적 사실관계를 묻거나 성적인 내용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행위, 성적관계를 강요하거나 회유하는 행위, 음란한 내용의 전화통화, 회식자리 등에서 술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행위 등이 속하는데 그 기준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당사자의 증언만으로는 증거가 부족해 법적처벌이 까다롭다.
성희롱에 관한 각종 제반사항은 여성부의 남녀차별신고센터나 각종 여성 관련 단체에 신고를 하게 되어 있으나 단순 언어폭력으로는 처벌이 미미할 뿐 아니라 그 과정 또한 복잡하다. 특히 직장에서 공공연히 행해지는 업무상의 폭언은 근로기준법 제 7조에서 '폭행'만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어 폭언을 규제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마냥 당하고만 있으란 말인가? 그건 절대 아니다. 여성 단체에서는 개인적인 차원이나 직장 내(혹은 가정)에서의 능동적인 대처를 권유하고 있다. 언어폭력을 당했을 시 상대방에게 잘못을 확실히 지적하고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자칫 '별난 여자'로 인식되기 쉬워 언어폭력을 당하고도 끙끙대는 여자들이 많지만 오히려 만성적인 언어폭력의 대상이 쉽다. 만약 직장 내에서 직원 간의 폭언이 있었다면 이에 관련된 취업규칙과 징계규정이 있는 지 알아보고 직장에 징계를 요청할 수 있다. 또 규모가 큰 직장 내에서는 고충처리위원회나 전담부서를 적극 활용할 것을 권유한다.
사이버 상의 언어폭력은 어떠할까? 우선 해당 사이트 내의 사이버119나 사이버범죄수사대에 신고하는 방법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증거의 수집이다. 상대방의 메시지를 캡처한 장면을 증거자료로 활용할 수 있으며 아이디나 대화명을 알아내 신고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각 시민단체나 여성관련 단체에서는 성희롱예방교육, 관련 성명서 등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또한 상담이나 제보를 통해 언어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행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의 능동적인 대처이다.
제아무리 농담 삼아 행해진 언어폭력이라 해도 당사자인 남자에게 잘못을 바로 지적하는 것이 좋다. 또한 남자 입장에서도 함부로 여자를 비하하는 언어나 남녀 차별적 언행, 폭언 등은 스스로 자제하는 것이 옳다. 단순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인지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 같이 바람이나 피워 보자구~"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교환교수로 오신 분이 있었다. 기간이 끝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시게 되어 조촐한 송별의 자리를 마련했다. 난 과대표의 자격으로 몇몇 과친구들과 함께 교수님과의 자리에 참석했다. 술이 얼큰하게 취하신 교수님은 유학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미국유학에 대한 조언을 몇 마디 하시더니 "타지에서 생활하다 보면 외로움이 가장 큰 문제지. 그럴 때는 나랑 가끔씩 만나 술도 마시고 뭐 마음 맞으면 같이 밤을 보낼 수도 있고 그렇지 않나? 바람도 피워보고 좋잖아."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참고로 그 교수님은 초등학생 둘을 둔 40대 초반의 가장이었다. 농담으로 치부하기엔 불쾌한 멘트였다. (대학원생, 25세)
"몸매를 보니 흥분되는 걸?" 업무상 거래처 간부를 만나는 자리였다. 중요한 프로젝트가 걸린 문제라 우리 측에서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간단한 업무보고와 식사가 끝난 후 술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은 은근히 나를 그 분의 옆 자리로 앉히더니 술을 따르라는 것이었다. 난 그 정도는 예상했기에 최대한 예의를 지키는 내에서 그분의 술시중(?)을 들었다.
그런데 그때 그 분이 좀 취하셨는지 내게 실언을 여러번 했다. "김**씨, 몸매가 상당히 글래머인데? 간만에 흥분감이 돌아. 허허허", "오늘 밤에 일찍 집에 들어가야 하나?", "손 한 번만 잡아주면 술은 이제 그만 권하지." 등 마치 술집 호스티스를 대하듯이 내게 말을 했다. 너무 기분이 나빴지만 애써 웃으며 은근히 화제를 돌렸다. 다음 날, 남자 직원들은 능글맞은 웃음을 던지며 "어제 인기 좋던걸?"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 자리를 박차고 오지 못한 내가 한심할 뿐이다. (회사원, 28세)
"몸매를 보니 흥분되는 걸?""여자가 말이야, 어디 말대답이야?" 우리 남편이 원래 마초기질이 가득한 남자인 건 알았다. 그러나 몇 년을 살아오면서 그의 폭언에 이혼을 생각한 적이 수도 없이 많다. 그는 조금만 화가 나면 내게 말로 화풀이 했다. "여자가 말이야 잠자코 들을 것이지, 어디 말대답이야?", "당신 내가 조금이라도 나쁜 남편이었다면 벌써 얻어터졌어." 등은 약과다. 심하게 싸움을 할 때는 아이가 보고 있음에도 '이 X, 저 X'은 예사이다. 사실 나도 여자이기에 먼저 관계를 요구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면 남편은 거절과 동시에 "여자가 너무 밝히는 거 아냐? 당신이 술집 여자야?"라고 투박하기 일쑤다. (주부, 32세)
"여자는 시집만 잘 가면 장땡!" 동아리 선배들과 허물없이 지낸 것이 화근인 것 같다. 날 아예 동성으로 보는 것인지 내 앞에서 낯뜨거운 성적 농담은 예사이다. 이번 이경실 사건 때도 선배들이 하는 말, "여자가 하도 별나고 맞을 짓을 했으니까 그랬겠지."라고 하는 것이었다.
지난 기말고사 때도 그랬다. 이번 장학금은 정말 놓치기 싫어서 선배들에게 '족보'를 부탁했다. 그런데 족보를 건네주면서 하는 말이 "여자는 시집만 잘 가면 되지, 뭣하러 공부냐", "너같이 별나고 고집 센 애보다는 순종적인 **가 시집은 잘 갈 거야"라는 것이었다. 한 번은 너무 화가 나서 정색하고 싫은 소리를 했더니 자신들의 농담은 악의가 없으며 그저 삶의 활력소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학생, 2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