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선 사기' 피해자 왜 안 나오나…"투자사기 전형적 특징"
신고 피해자 4명뿐…"투자실패 부정하는 자기합리화"
싱가포르 신일그룹, "믿어달라"며 투자자 계속 설득
(서울=뉴스1) 유경선 기자 | 2018-08-26 14:28 송고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순양함 돈스코이호를 '150조원 보물선'으로 내세운 투자사기 의혹의 피해자가 쉽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따르면 경찰이 26일 현재까지 확보한 피해자는 4명에 그쳤다. 경찰은 지난 2일 피해 규모가 전국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사건을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지수대로 이관했지만 그후 20일이 넘도록 추가 피해 신고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경찰과 전문가 등에 따르면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상황에서도 피해자가 좀체 나타나지 않는 건 투자사기 사건의 전형적 특징이다. 싱가포르 신일그룹이 아직까지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점도 피해자 확보를 어렵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배 발견도 전에 코인 홍보·개인계좌로 투자금 모집…의심 정황은 충분
경찰은 신일그룹(현 신일해양기술)과 싱가포르 신일그룹,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 3곳이 공모해 '보물선 인양' 명목으로 '신일골드코인'(SGC)을 발행하고 투자금을 모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은 이 의심을 합리적으로 뒷받침한다.
신일골드코인이 처음 판매된 시점은 5월이다. 하지만 신일그룹이 돈스코이호를 발견했다고 발표한 것은 7월15일이다. 싱가포르 신일그룹은 코인을 발행·판매하면서 '150조원 보물선 돈스코이호'를 내세웠는데, 아직 발견도 되지 않은 보물선을 들먹이며 코인을 판 셈이다.
신일그룹과 싱가포르 신일그룹,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 3곳 간 관계에 대한 신일그룹 측의 설명도 의심스럽다.
최용석(52) 전 신일그룹 대표는 7월26일 기자회견을 열고 신일그룹과 싱가포르 신일그룹 간에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9일 경찰에서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을 때도 비슷한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일그룹은 다큐멘터리 제작 등 공익적 목적으로 돈스코이호를 인양하려는 것이었을 뿐, 싱가포르 신일그룹이나 코인에 관해서는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일그룹은 설립 당시 국제거래소와 홈페이지를 함께 사용했다. 최씨는 이와 관해 "설립 당시 홈페이지를 만들지 못해 싱가포르 웹페이지를 사용하다 보니 오해를 샀다"고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설명을 내놨다.
또 최씨 이전에 신일그룹 대표였던 류상미씨(48·여)와 싱가포르 신일그룹 전 대표인 류승진씨(43·가명 유지범)는 친남매다. 신일그룹과 싱가포르 신일그룹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다는 최씨의 말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다.
이밖에 법인 계좌가 아닌 국제거래소 전 대표 유모씨(64)의 개인 계좌로 코인 대금을 지급했다고 밝힌 피해자가 있는 점, 유씨의 개인 계좌로 모인 투자금을 류승준씨 측근이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제보가 있었던 점도 투자사기를 의심하게 한다.
유씨는 다른 사기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돼 인천구치소에 수감중이다. 류씨 역시 다른 사기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류씨에는 우리 경찰의 요청으로 현재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적색수배가 내려진 상태다.
◇의심스럽지만 '자기합리화' 심리…싱가포르 신일그룹은 "포기 없다"
이처럼 의심스러운 점들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투자사기 사건의 전형적 특징이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피해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어리석은 투자를 한 것이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시기 때문에 음모를 벌이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인지부조화·자기합리화가 이뤄진다"며 "이런 심리가 작용해서 피해 신고를 주춤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돈스코이호는 '사기 요건'을 충실히 갖추고 있다"며 "배 역사가 오래됐고, 배 안에 금은보화가 있을 것이라는 신비로우면서도 비과학적인 내용이 조화돼 투자사기가 일어날 수 있는 제반 조건이 잘 마련돼있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 신일그룹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계정을 두고 투자자들에게 '믿어달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는 점도 피해자 확보를 더디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유지범'(류승진의 가명)에 이어 싱가포르 신일그룹 회장을 맡은 '송명호'라고 밝힌 작성자는 SNS를 통해 "러시아 정부에 (돈스코이호) 공동 인양을 공식 요청한 상태"라고 주장하면서 "절대 포기는 없으며 반드시 돈스코이호를 인양한다"고 적었다. 신일그룹이 추진하려던 돈스코이호 인양에 직접 나서겠다는 것이다.
코인 상장에 관해서는 "한국 상황이 조용해지면 다시 상장을 추진할 것"이라며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고, 하루하루 일희일비하지 마시고 때를 기다려달라"고 밝혔다.
또 싱가포르 신일그룹에 관해 제기된 의혹들이 외부의 질시 때문이라는 듯 "우리 조직은 외부의 모함과 시기, 이간질에 흔들리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의심과 의혹이 '유지범'에게로 집중되는 걸 의식한 듯 "전임 회장이 일을 서두르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했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서두르지 않겠다"고도 했다.
경찰은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압수품, 참고인·피고발인 조사 내용, 유씨의 계좌분석 내용 등으로부터 이번 일이 투자사기라는 것을 증명할 증거와 진술을 확보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투자사기의 경우 대체로 피해자가 잘 나타나지 않기는 하지만 더 이상 피해자가 나오지 않을 수 있게 더 나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http://news1.kr/articles/?3408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