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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소풍 효자 왕일민 저자 유현민
어머니와 함께한 900일간 이야기
중국의 북쪽인 탑하(塔河)에서 티베트 서장(西藏)까지 이흔 아홉 살의 어머니와 일흔네살 아들과 함께 자전거수레로 어머니를 모시고 페달을 밟으며 여행가는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창문을 여러개 사방으로 만들어 세상 구경할 수 있게 했다
세계 최대 최고의 고원인 티베트에서도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서장 에베레스트 같은 높은 산맥과 빙하로 이루어진 고원의 남쪽 하늘과 가장 가까운 땅 그런 서장을 산골에 붙박여 살아온 어머니가 대체 어떻게 아셨을까 왜 그곳에 가고 싶다고 하셨을까 도무지 그 연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 어머니가 가보고 싶어 하시는데 일단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 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를 실망 시킬 수는 없었다
3만km를 자동차도 아니고 세발자전거수레로 900일간 노숙을 하며 3년 가까이 어머니를 모신 금세기 마지막 남은 효자라고 칭찬을 한다
세상 떠나는 날을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기에는 지나온 시간이 안타깝고 남은 시간은 너무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여행을 소풍으로 생각 가고자 하였다고 합니다 세월은 어머니의 남은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으니 날이 갈수록 나는 더 초조했습니다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얼마나 잘 견딜실 수 있을까 쾐한 고생을 시켜드리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자전거 수레에 익숙하지 않아서 탑하에서 하일빈까지는 오래 시간이 걸렸다
포장이 안 된 길도 많고 험한 산도 많아 무려 이십일이나 소요되었다
세상에 바쁠 것 없는데 쉬엄 쉬엄 가자는 어머니 말씀이 평생 흙속에서 살아 오신분이라서 자연의 섭리를 알고 계셨다
1929년 중국 심양에서 태어나 국민당원였던 아버지로 인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강제노역에 시달리는 등 평탄치 못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농사와 목공일을 하며 가난하고 평범하게 살다가 부인과 사별한 후 홀로 계신 어머니의 소원 풀어 드리기 위해 소풍을 떠났으나 어려움이 많았다
고향이나 다름없는 공주령은 문화 대혁명으로 가족이 쫓겨 가 농사 짖으며 살던 곳이다
역시 시골사람들은 순박하고 친절했으며 가장 좋은 먹거리를 내오고 가장 좋은 잠자리도 마련해주었다 시골에 접어들면 길가에서 마주치는 꽃과 벌레들과 새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으며 넓은 논밭이 마음을 탁 트이게 했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뜨끈한 손이 우리의 찬 손을 마주잡아 녹여주었다 저마다 고향사람들이 오래사시라고 건강하게 사시라고 한마디씩 했다
백열 살까지 살게 너무 오래 살면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추해지거든 생각했다 정말 어머니가 백열 살까지만 사셨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곳에 다시 들러 이 뜨끈 뜨끈한 국물을 같이 먹고 마시며 기쁘게 잔치를 즐겼으면 좋겠다고 어머니는 당신이 쉬고 싶기보다 내가 조금이라도 힘든 기색이 보이면 넌저시 쉬어 가자고 말씀하셨다
마치 탯줄이 아직도 끊이지지 않는 태아처럼 나는 아직 어머니의 품안에 있다는 사실을 느끼며 한없이 행복했다
우리는 누구나 지구위에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며 살아간다
탑하에서 하얼빈 장춘 심양까지 왔다 수레바퀴는 낮은 언덕만 나타나도 미동도 하지 않으려 했다 수레의 무게가 있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럴 때마다 내려서 자전거수레를 밧줄로 끌고 가야만 했다 오랜 시간 동안 페달을 밟으면 다리가 마비되는데 그러면 그때도 밧줄을 어깨에 걸치고 수레를 끌었다 머리 끝에서 흐른 땀이 발끝까지 흘렀고 어깨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가끔 어머니의 투정을 감당해야 햇다
어느 여름날 찌는 듯한 더위에 지쳐 천천히 수레를 끌고 있는데 어디선가 지린내가 풍겨왔다 방광이 약해진 어머니가 실례를 하신 것 같았다
나 오즘 안 샀는데 왜 목욕을 해 하면서 짜증 부려도 수레에서 번쩍 안아 올려 개울물에 앉혀드렸다
소문과 여론을 타고 방송의 힘은 대단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봤고 하룻밤 사이 우리는 세상의 화잿걸이가 되어 있었다
북경에 다다랐다 웅대한 만리장성과 웅장하고 화려한 천안문 문화유산의 보고 자금성 경치가 뛰어나 세계적 관광명소로 황실의 정원으로 이름난 이화원 정교하게 축조된 천단등 본인도 다녀 왔지만 청나라를 멸망하게 한 마지막 요부 서태후가 동태후를 독살시키고 권력를 잡아 별궁으로 사용하였던 곳 대단하였다 자전거수레가 통과 될수 있는 교통수단 제한되었다 방송의 힘으로 친절히 안내되엇다 북경에서 유명하다는 오리구이 집에서 대접을 받으면서 어머니는 이제껏 살면서 그토록 좋은 음식은 처음이라며 즐거워하셨다
방송국에서 어머니와 내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로 결정되었으며 우리의 자전거수레에 석양호(夕陽號)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나는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구름 삼아 잠을 자야했다 길바닥에 자리를 펴고 누운 나 또한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어느날 벌써 일어나서야 할 어머니의 기척이 없었다 수레에서 가벼운 신음소리가 드렸다 어머니 손을 잡고 이마를 짚어보자 불덩어리처럼 뜨거웠다 쾐찮다 쾐찮다 하셨지만 긴박한 상황되어 주위의 도움으로 다행이 병원을 찾아 치료를 할 수 있었다
노상에서 반죽한 밀가루를 신문지에 깔고 수병를 꺼내 밀어 궁하면 통하는 것 같았다 체소도 없이 칼국수도 해드리고 최선을 다햇다 그래도 죽기전에 세상을 이렇게 한 번이라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한 일이 아닌가 늘 생각했다
항주로 가는 도중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 수레안을 기웃거리고 했다 이안에 백년된 아주 귀한 묵은 인삼이 있습니다 농담도 했다 마침 춘절이라 흑룡강성 고향사람들에게 물만두를 얻어 먹고 다시 해남도(海南島)로 향했다 비록 한댓잠을 자더라도 내게 가장 따듯한 이불은 어머니의 행복이였다
남경을 지나 상해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자전거수레로 탑하에서 상해까지 내려 왔다는 것을 믿기지 않는 태도였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금세기의 마지막 효자라고 칭송했다 어머니의 백세 생신때 방송출연 유명배우가 초청한 만찬에도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자전거수레에다 동력 장치를 달아주겠다는 사람도 만나 거절하였다
철강성을 지나 북건성 깊숙이 들어셨다 길을 잘못들어서 민가가 없어 노숙 차거운 땅바닥에서 더 차가워진 납덩어리 같은 몸을 일르켰다 다행히 쥐가 났던 다리는 조금 풀렸다
무엇 어떻게 하는 것이 효(孝)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는 젓 불효인지는 잘 압니다 그저 불효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어머니를 대하고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다시 봄이 왔다 광시성에서 맞이하는 봄은 새로운 힘을 주었다 해저공원을 어머니께서 감탄하셨다 옥수수와 해바라기 밭이 사천성(四川省)엔 유채밭이 며칠을 달려도 끝없이 펼쳐저 있었다
나는 척박한 삶을 살아온 촌부에 지나지 않지만 살면서 점점 크게 깨닫는 것은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였다 왜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을까
여행을 하면서 나는 순간 순간 내께 주어지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늙고 병든 사람뿐만 아니라 흙 한줌 구부러진 나무 가느다란 했빛 모난 돌맹이 하나까지도 말이다 그 무엇도 기대하지 않고 계산하거나 짐작하지 않고 내눈 앞에 있는 존재를 그대로 사랑하는 일 그것이 내 남은 생의 힘이 되어줄 것이였다 결국 수레를 끌던 밧줄이 끊어졌다 밧줄이 끊어질 정도로 수레를 끌었다니 나도 내 힘에 놀라고 말았다
계림(桂林)으로 가는 동안 산수화 속을 걷는 기분이였다 유명한 화가들은 모두 들러 화폭에 담았다는 계림 어머니는 풍광에 도취해 감격 눈물까지 흘리셨다
계림에서도 이강을 유람할 땐 어머니가 내 손을 꼭 붙잡고 흥분을 감추시질 못 했다 산속 깊숙이 돌아 흐르는 물길을 따라 진귀한 형상의 봉우리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어강의 명물인 새 가마우지가 물속으로 곤두박질쳐 물고기를 물고 나오는 광경을 볼 때는 어머니가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오늘 내일 기다리지 않는 세월 생존때에 나는 왜 어머니와 함께 여행 못 했을까 겨우 제주도가 고작였을까
끝없는 백사장과 야자수로 뒤덮인 섬 해남도 이 곳에 유배온 소동파 시 유배지에서 벼슬을 하사받고 상경하던 중 끝내 생을 마감했다
나는 참으로 오래토록 살았어
평생을 착하게 살아오셔서 하늘에서 어머니에게 복을 주셨어요
백세의 어머니을 중국의 가장 북쪽인 탑하에서 최남단 해남도까지 내려왔다 지도를 펴니 서장의 라사는 아득했다 끝내 판단은 내가 해야하는데 서장까지 가시 겠다는 어머니의 고집을 꺾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서장으로 가고 있는 줄 알고 께시지만 방향을 광동성의 심천을 들른 뒤 광주를 들러 북쪽 향해 페달을 밟았다 해남도까지 내려오는 길이 연해주를 중심으로 내륙으로 들어 갔다
초기에 주방기구가 없어 칼국수 제대로 챙기지 못했는데 그후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칼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호남성 장사를 지나 동정호가 있는 악양에 거의 다다를 무렵 어머니는 이가 없는데다가 노인이다 보니 음식물 넘기는 힘이 약해 먹는 속도가 매우 느렸다 식사를 끝내고 빈 그릇과 밀린 빨래를 한 아름 안고 주섬주섬 개울로 내려갔다 어제와 다르게 개울물이 차갑게 느끼었다 겨울이 머지않았다는 자연의 신호였다 어머니가 지팡이를 집고 축축한 내의 빨래감을 가지고 오셨다는 것을 보면 오줌을 싸셨다는 걸 알았다
더 행궈 더 행구라니까 그래서 당신의 실수가 무안해서가 아니라 내 젖은 마음을 더 행구라고 그렇게 소리쳤던 건 아니였을까
어머니 몸무게까지 합치면 200여 킬로그램 무게를 끌고 가려니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떤 것이다 잘못하다가 효가 불효로 바뀔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백살의 어머니는 99세에 여행 떠나던 시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어머니께 서장(디베트)까지 갈수 없음을 용서를 빌었다
집에 언제 도착하냐
글세요 한 일년은 가야 할 것 같은데요
어서 가자 죽어도 집에 가서 죽어야지 구름 같은 어머니를 싣고 힘을 다해 페달을 밟았다 어머니는 어머니는 날이 갈수록 쇠잔해져셨다 말수가 점점 적어지시고 이년여의 여행으로 지칠대로 지쳐셨던 것이다 백한살이 된 어머니는 처음 여행을 떠나던 아흔아홉 살의 어머니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살만큼 살아 미련은 없지만 애비의 효도를 더 받고 싶은데 조금만 더 살았으면 좋겠는데 가슴 저 끝에서 눈물이 울켝 치밀어 올랐다
남해주 바닷가를 구경시켜드리고 항구도시 청도에 닿았다 해산물로 된 음식을 잘 드셨다 청도방송국과 하얼빈방송국에서 취재하였다병원 응급실 링거를 맞으며 방송국에서 어머니 건강을 위해 이년여 여행을 마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방송국에서 비행기로 모시게 되었다
출발지 탑하까지 일년여를 더 가야 했다 여행은 청도에서 끝을 맺었다 백한살의 어머니와 이른여섯 아들이 함께한 이년 반 동안의 긴 동행이였다
하얼빈 동생댁에서 보름간 여독을 풀고 해가 바뀌어 어머니는 백두 살이 되셨다
주무시다가 깨어나시고를 반복하셨다 이젠 정말 가야겠다 부탁 하나 있는데 내 가 죽으면 나를 화장해서 뼛가루를 서장(디베트)에다 뿌려다오 서장이요? 약속해 서장에 나를 뿌려주겠다고 예 어머니 그렇게 할게요 그유언을 가슴에 품고 영영 어머니와 해여졌다
2003년 12월 30일 오후3시 어머니는 백세 살 생신을 이틀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셨다
여러 사람의 손에 드려서 불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불길이 오르자 내 두눈에 속은 불붙은 듯 뜨거웠다 그 시뻘건 불길이 어머니를 휘갑고 있건만 어머니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그 불속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머니를 수레에 태웠던 무게보다도 훨씬 가벼운 무게로 어머니를 곡 끌어 안고 화장장을 나왓다
다시 길을 떠나다
어머니를 모시고 서장에 가야 한다고 매일 생각했지만 망가진 몸을 집밖에 한 발자욱도 못나갔다 벌목현장에 뛰어들어 몸도 보충하며 서장까지 갈 경비도 벌자는 생각이였다 봄이 왔다 어머니의 유골을 뿌리러 떠날 준비를 하자 세상 사람들이 내께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무사히 서장까지 갈 수 있기만을 기도했다 어머니의 마지맏 부탁을 어찌 거역할수 있겠는가 동생은 수레에 실린 유골에 큰 절을 올렸다
일년 걸릴지 이년 걸릴지 꼭 어머니 유골을 뿌리고 오마 동새은 기차를 타고 다녀왔으면 했지만 내뜻은 굽이지 못했다 같이 동행한 일행은 장춘까지만 못박앗다
북경을 비껴 석가정을 지나 산서성에 들어서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죽더라도 서장까지 가고 말겠다는 내 의지는 변하지 않았다 가파른 고갯길에서 수레를 끄느라 헉헉대고 있었다 정신 좀 드십니까 의사말에 의하면 혼수상태에서 병원에 온 것이라고 하였다 트럭운전기사가 발견 병원으로 오게 된 것 이라한다
의사 권유로 서안까지만 수레로 가고 나머지는 트럭으로 서립까지 교통국에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 주었다 엔진이 달려 있으니 자동차라고 할수 없지만 뒤에는 컨테이너 박스같은 것이 얹혀 잇었다 특별만차 석양호라고 적혀있었다 단숨에 감숙성의 난주(蘭州) 청해성의 서녕(西寧)을 지나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드디어 고대하던 서장자치구 라사를 향했다ㅏ까지 육십킬로 남았다
그토록 먼길을 그 토록 험한 길을 그 토록 험한 길을 어머니 어디에 뿌려드릴까요
나는 바람처럼 가벼워진 어머니 유해를 가슴에 안고 그토록 오고자 원했던 라싸에서 철철 울었다 라싸의 중심 언덕에 높이 솟은 포팔라 궁(布達拉 宮)도착하자 취재진 기다리고 있었다
우해를 안고 궁 안으로 들어갔다 4년 동안 함께한 마지막 행선지이다 목욕하고 깨끗한 옷을 갈아입고 어머니를 위한 제를 올렸다
어머니를 한줌씩 뿌릴 때마다 기도했다 편하고 행복한 시간을 누리십시오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머니 유해를 뿌리고 나는 크게 어머니를 불렀다 그 소리는 어머니의 영혼을 따라 멀리멀리 퍼져나깠다
어머니를 부르고 또 부르면서 가슴이 갈기 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뿌연 바람이 되어 내 볼을 쓰다듬는 것이 느껴졌다 라싸의 저 너른 하늘과 땅으로 조용히 달아나는 바람을 향해 나는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어머니 가세요 어머니
내 이야기
2017. 9. 1 교보문고 옆 미도빌딩 지하 알라딘 중고서점 대구점에서 책을 구경하려 갔다가 어머니와 함게 한 900일간의 소풍 소설을 구입하였습니다
13억 중국대륙을 울린 효자 이야기 감동이 되어 요약하기 위해 2번 읽었습니다 자녀를 가진 형제 자매님 자녀들이 추석에 오면 한번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말씀을 감히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무엇하고 살았느냐고 자문 자답합니다 두서없는 글 읽어주시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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