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月先生文集(해월선생문집) 卷之七(권지칠) 17~18장 2편
後朴谷記(후박곡기)
余旣於仙槎(여기어선사) 得朴谷(득박곡) 爲之說(위지설)
나는 이미 선사(仙槎:울진)에서 박곡(朴谷)을 가지게 된 바를 설명(說)하였다.
翌年壬寅夏(익년임인하) 喪配於襄陽(상배어양양) 其秋卜兆(기추복조)
이듬해인 임인(壬寅:1602)년 여름에 양양(襄陽:지금의 예천)에서 상처(喪妻)를 하여,
於花山臨河縣之水谷(어화산임하현지수곡)
그 해 가을 화산(花山)의 임하현(臨河縣) 수곡(水谷:지금의 안동군 임동면 수곡리)에 묘지를 썼다.
水谷之東偏(수곡지동편) 又得一谷名曰朴(우득일곡명왈박)
그 수곡(水谷)의 동쪽 한편에 한 골짜기(一谷)을 얻었는데(得), 이름 하기를 박(朴)이라 한다.
與水谷相連(여수곡상련) 地平而幽(지평이유)
수곡(水谷)과 서로 이어져 있으며(相連), 땅이 평평하면서도(地平), 그윽하고(幽),
山遠而秀(산원이수) 略與仙槎者(략여선사자) 相甲乙(상갑을)
산(山)이 멀리 있는데 또한 빼어난 것, 대략 울진의 박곡(朴谷)과 더불어 서로 우위를 다툴만한데(相甲乙),
余謂豚允曰(여위돈윤왈)
내가 맏아들인 중윤(中允:豚允)에게 일러 말하기를
此殆天所以(차태천소이) 錫我者(석아자)
이곳은 두려웁게도 하늘이 이른바 나에게 내려준 곳이다.
不然(불연) 何前後所卜(하전후소복) 一其名耶(일기명야)
그렇지 않다면 지난해와 올 해에 점지해 준 것이, 하나같이 그 이름이 박(朴)이겠는가?
彼海此嶺(피해차령) 相望數百里(상망수백리) 而沕然(이물연)
저 바다(울진 쪽)와 이 봉우리(안동 쪽)가 서로 바라보는 것이 수백 리나 떨어져 아득한데(沕然),
若一谷而來於余(약일곡이래어여)
마치 하나의 골짜기(一谷)처럼 나에게 왔으니,
此非天耶(차비천야)
어찌 하늘이 나에게 준 것이 아니겠는가(此非天耶)?’ 라고 말했다.
余於是思之(여어시사지) 夫朴者(부박자)
내가 여기에서 그 박(朴)을 헤아려 보건데 대저 박(朴)이란 것은,
我國之蔬名(아국지소명) 一曰瓠之(일왈호지)
우리나라의 채소 이름(蔬名) 중의 하나인 바가지(瓠)로,
卽瓠也(즉호야) 潔不及蘋蘩(결불급빈번)
그 박(瓠)이란 깔끔하기는 개구리밥(蘋)과 다북쑥(蘩)에도 미치지 못하고,
快不及茄苽(쾌불급가고)
매끈(快)하기는 가지(茄)와 참외(苽)에도 미치지 못하고,
美非芹(미비근)
아름답기는 미나리(芹:근)에 비할 수도 없고,
甘非蔗(감비자) 盖蔬之賤者也(개소지천자야)
달기(甘)는 사탕수수(蔗 : 사탕수수 자)에도 비길 수 없는 대체로 채소 중에 천(賤:천할 천)한 것이다.
然其爲(연기위) 用宜於羹(용의어갱) 宜於菜(의어채)
그러나 그 박(瓠:호)이 쓰이는 곳은 국(羹)을 끓이는데 마땅하고, 반찬(菜) 으로도 마땅하고,
乾之則利涉大川(건지즉이섭대천)
말린(乾 ) 즉 큰 내를 건너는데 이롭게 쓰이고(利涉大川:이섭대천),
熟之則羣飽(숙지즉군포)
삶아서는 많은 사람을 배부르게 할 수 있으니,
其德在人用之如何(기덕재인용지여하)
그 덕(德)은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詩咏燔炮(시영번포)
시경(詩經)에서 번포(燔炮:말리고 삶음)을 읊고(咏),
傳稱千金(전칭천금) 良以此也(양이차야)
전(傳)에서 천금(千金)이라 칭한 것은 진실(眞實)로 이 때문이다.
天之生物(천지생물) 未嘗(미상)
하늘이 만물(萬物)을 만드는데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을 때,
少殊谷之初也(소수곡지초야)
소(少:어린 아기)가 유달리 골짜기(谷)의 처음이다(初) * * *
叢草樹穴虎豹(총초수혈호표)
많은 풀(叢草)과 나무(樹)가 우거진 굴(穴)에는 호랑이와 표범(虎豹)이 있으며,
更千百載(갱천백재) 鴻荒寂寞(홍황적막)
또한 오랜 세월(千百載:천백재)이 지나면서 크게 황폐해지고(鴻荒:홍황) 적막(寂寞)해져
而無一人顧之者(이무일인고지자) 豈非賤且棄乎(기비천차기호)
아무도 돌아보는(顧) 사람이 없으니, 어찌(豈) 쓸모없게 되고 버려지지(棄) 않겠는가?
其平可田(기평가전)
그 들판은 밭을 갈 수 있고,
其幽可屋(기유가옥)
그윽한 곳은 집을 지을 수 있고,
其遠可賞(기원가상)
그 원대함은 감상할 수 있고,
其秀可吟(기수가음)
그 빼어남은(秀) 가히 읊조릴 수 있고,
可以樵(가이초)
땔나무(樵)도 할 수가 있고,
可以泉(가이천)
샘(泉)도 팔수가 있으며,
可以盤旋(가이반선)
이리저리 거닐 수도 있으니(盤旋:반선),
而終老(이종노)
만년을 보낼만한(終老:종노) 곳이다.
忽焉一朝(홀언일조) 合衆美(합중미)
홀연히(忽:홀)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아름다웁게 하며,
而爲我之樂土(이위아지낙토)
또한 우리를 위하여 즐거운 낙토(樂土)가 되게 하는데,
此則(차즉) 川乎(천호) 我德乎(아덕호)
이는 천(川:인천)에 있는 내 임금의 덕이요(我德:아덕)요,
我者也(아자야)
나의 후손이다(我者:아자)!
谷之隱顯(곡지은현)
골짜기(안동의 박곡)가 세상에 숨겨졌다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다는 것은(隱顯:은현),
誠有數於朴之用舍(성유수어박지용사)
진실로 박(朴)이 버려지고 쓰여지는 것(用舍:용사)이 이미 정해진 운명(有數:유수)이 있다는 것인데,
得名以朴(득명이박) 不亦宜乎(불역의호)
박(朴)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는 것(得名)이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噫瓠於蔬爲朴(희호어소위박)
아! 채소로서 박(瓠)도 박(朴)이 되고,
谷於山爲朴(곡어산위박)
산(山)의 골짜기(谷)도 박(朴)이 되고,
余於人亦朴而陋者(여어인역박이루자)
또한 사람에 대한 나머지도 박(朴)이지만(이러한 박(朴)이란 의미는) 품격이 낮은 것이다.
自余再得乎朴(자여재득호박)
나는 스스로 박(朴)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새롭게 깨달았는데,
然後朴(연후박) 而又(이우) 朴猶古人(박유고인) 玄玄(현현)
그러한 후에 박(朴)이란, 오히려 고인(古人)의 심원한 도(玄玄:현현)이며,
又玄朴之道(우현박지도) 其盡矣乎(기진의호)
또한 심원한 하늘의 순박(朴)한 도(道)로, 아! 그 심원한 도(道)인 박(朴)이 뜻대로 이루어지는데,
遂爲之朴(수위지박)
마침내 이 박곡(朴:안동 박곡)에서 정치를 하게 되는 구나(遂爲之朴:수위지박)
朴曲以自娛(박곡이자오) 曰朴朴濁濁(왈박박탁탁)
박(朴)의 노래(曲)를 만들어 스스로 즐거이 노래 부르니, 박박탁탁(朴朴濁濁).
朴其心(박기심) 濁其迹(탁기적) 朴朴濁濁(박박탁탁)
그 마음(其心)은 순박(朴)하고, 그 행적(其迹:기적)은 탁(濁:흐맇 탁)하구나, 박박탁탁(朴朴濁濁).
朴可肴(박가효) 濁可酌(탁가작)
박(朴)은 가히 술안주로 할 수 있고(可肴:가효), 탁(濁)은 가히 잔질할 수 있다(可酌:가작).
歌朴朴(가박박) 手拍拍(수박박) 人耶谷耶(인야곡야) 同其朴(동기박)
노래도 박박(朴朴), 손뼉도 박박(拍拍), 사람(人)이나 골짜기(谷)나, 다 같은 박이로다(同其朴)
해월선생이 박(朴)이라고 하는 골짜기, 즉 박곡(朴谷) 또는 박골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여 이 골짜기를 손에 넣게 되었는지 설명한 글이다.
이 글속에는 하늘이 숨겨 놓은 비밀(秘密)을 기록(記錄)하여 전(傳)하기는 전(傳)해서 밝혀야 하겠지만,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게 하고,
후세에 나타날 그의 후손(後孫)만이 그 비밀(秘密)을 어찌하면 알 게 할 수 있을까
고심(苦心)하면서 쓴 글인 것이다.
지금까지도 비밀(秘密)이 유지되어 온 것을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은 깊은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당시(當時) 사람들은 한문(漢文)공부는 많이 하였지만,
글의 형식(形式)에만 너무 치우치고 또한 틀에 박힌 사고방식(思考方式)으로 해석(解釋)을 하다 보니,
해월(海月) 선생의 마음속 깊이 담아둔 그 뜻을 거의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다만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의 서문(序文)을 쓴 성리학(性理學)자인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선생은,
해월(海月)선생의 글속에는 알기 어려운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더 이상의 심오(深奧)한 뜻은 알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해월(海月)선생은 그의 후손(後孫)중에서 정확한 의미를 밝혀 낼 것을 확신하고 쓴 글인데,
해월선생의 글을 이해하려면 먼저 유불선(儒佛仙)의 모든 경서(經書)와 성경(聖經) 및 동서(東西)를 망라한
예언서(豫言書)의 깊이 숨겨진 내용(內容)까지도 파악(把握)해야만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유교경전(遺敎經典)인 사서삼경(四書三經)만을 공부하고서는 이해(理解)되어 질수 있는 내용(內容)은
아닌 것이다.
글의 내용을 보면 해월(海月)선생은,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박곡(朴谷)과 안동(安東)에 있는 박곡(朴谷)을 얻게 되었다.
먼저 선사(仙槎:지금의 울진)에 있는 박곡(朴谷)을 말한다면,
1601(辛丑:선조34년)년 선생의 나이 46세 때의 10월에 예천(醴泉)군수를 제수 받았는데,
이 때 부임하기 전 봄에 울진에서 박곡기(朴谷記)를 썼으며,
후박곡기(後朴谷記)는 예천군수로 부임한 후 1602(壬寅:선조35년)년 선생의 나이 47세 여름에 쓴 글이다.
박곡(朴谷)이란
단순히 박(朴)이란 이름의 골짜기 유래(由來)를 쓴 것이 아니라,
박(朴)이란 골짜기가 숨겨진 땅으로,
박(朴)의 성질을 가지는 어떠한 인물이,
후세(後世)에 나타나서 무엇을 하게 되는 지를 밝혀놓은 글이다.
먼저 울진의 박곡(朴谷)을 보도록 하자.
해월(海月)선생은 나는 물질(物質)에 관하여 아무런 욕심이 없다고 하였다.
욕심이 없는 것은 무능(無能)해서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1601(辛丑)년 봄에 신농행자(神農行者)가 나타나서,
선사(仙槎:울진)에는 박(朴)이라고 불리워지는 좀 한가하고 널찍한 골짜기가 있는데,
가히 경작할 만한 곳이니 한 번 둘러보지 않겠느냐고 한 것이다
그래서 흔쾌히 따라 나섰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곳에는 아주 오래된 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는 주씨(朱氏) 성(姓)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고 하였다.
골짜기의 이름은 박(朴)인데, 살기는 주씨(朱氏)성 가진 사람이 사니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니,
객(客: 神農行者)이 이르기를,
주(朱)씨 역시도 주인(主)이 아니고,
주(朱)씨 할아버지가 강릉(江陵) 부윤(府尹)으로 있을 때,
최씨(崔氏) 성(姓)을 가진 이주민(移住民)에게서 얻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최(崔)씨가 살기전에, 박씨(朴氏) 성(姓)을 가진 사람이 처음 살았기에,
박(朴)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하였다.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철이 화로가 되고, 화로가 철로 번갈아 되듯이,
또한 최(崔)씨와 박(朴)씨처럼 지금의 주(朱)씨 또한,
이 곳을 능히 소유(所有)할 수가 없는데 어찌 그 주인(主)을 만나서 마주대할 수가 있겠는가?
생각해보니 기이하게도 하늘(天)이 그대가 이 곳을 차지하도록 점지해 놓은 것이군요.
라고 신농행자(神農行者)가 말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해월(海月)선생은 박(朴)이라는 말의 유래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박(朴)이란 속칭 바가지(瓠)라고 하는데,
신라(新羅)인 중에 시조(始祖)가 박(瓠:바가지)에서 태어나서 성(姓)이 박(朴)이 되었고,
그 후 바가지(瓠)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사람을 포공(匏公)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박(朴)이라고 하는 진정한 의미는 다음과 같다고 하였다.
천지(天地)가 열리지 않고, 음양(陰陽)이 나누어지기 이전의 상태(渾渾沌沌)를 일컫는 말인데,
즉 만물(萬物)의 근원(根源) 근본(根本)이며 시(始)인 도(道)를 뜻하는 말로,
태박(太朴), 고박(古朴), 순박(醇朴), 검박(儉朴), 박루(朴陋), 박야(朴野)라 하여,
박(朴)이란 의미는 참으로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비로소 상상(想像)을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안개와 노을(烟霞)이 진 나라가 되고(爲國),
녹시(鹿豕:북두칠성, 사슴 가문의 아들)가 굴 속에 숨겨져 있는데, 드러나지 않은 기상(氣像)이 있다는 것이다,
해월(海月)선생은 자신의 가문(家門)을 은연(隱然)중 그의 시(詩)속에다 녹문(鹿門)이라고 하였다.
녹시(鹿豕) 즉 사슴(鹿:북두칠성, 술그릇)인 아들, 바로 사슴가문의 아들이라고 은연중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
1590(庚寅:선조 23)년 10월에는 자식(子息)들을 경계(警戒)하기 위하여 스스로 백록동규범(白麓洞規范)을
지어, 큰 아들인 중윤(中允)으로 하여금 항상 암송(暗誦)하게 하였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사슴은 하나님의 아들을 뜻하는 말 중의 하나이며,
또한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굴(窟)속에 숨어 있는데,
은연중에 태박(太朴) 즉 하나님이 아직 벗기지 않은 기상(氣像)이 있다고 하였다.
이는 미래(未來)에는 그 기상(氣像)을 벗길 것이라는 말인 것이다.
글 속에 객(客)이
그대는 장차 무엇으로 즐기겠는가? 라고 하였다.
해월(海月)선생이 이르기를,
나는 골짜기의 박(朴)으로써 내 임금의 미진한 박(我之未盡朴)을 박(朴)하게 하는 것으로
낙(樂)을 삼겠다고 하였다.
즉 박(朴)의 의미를 정확(正確)히 알려주는 것으로도 즐겁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박곡(朴谷)에 사는 사람들의 순박한 생활과 이 골짜기(谷)의 도(道)는 참으로 그 의미가 잘 맞지만,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이와 같은 박(朴)의 도(道)를 어느 하나라도 세상에 전할 수가 없을 정도로
박야(朴野)하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지금 이후,
내가 나의 몸을 검박(儉朴)하게,
그 마음을 순박(醇朴)하게 하고,
그 모습을 고박(古朴)하게 하고,
그 도(道)를 태박(太朴)하게 하여서,
단(一)번에 성세(聖世)를 이루게 하고,
포박(抱朴) 즉 박(朴)을 손에 넣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라고 하자,
객(客)이 웃으면서 갔다고 하였다.
한 마디로 박(朴)과 하나가 되면,
세상은 성세(聖世)가 되게 하고,
그 박(朴)을 가지게 된다(抱朴)고 하였다.
이미 이 말은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과 격암유록(格菴遺錄)에서 설명한 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