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문화컨텐츠의 보고 <영남전래민요집>
박사학위 논문의 마무리 단계였던 지난 3월 18일, 필자로서는 큰 숨을 내쉰 날이었다. 연구 성과의 하나를 확인한 셈이기 때문인데, 그것은 고전문학 분야에서나 민요분야에서나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어 온 <산유화가>의 배경설화인 <향량설화>의 현장을 확인 한 것이기 때문이다. 구미시 형곡동 형남초등학교 뒤에 있는 <열녀향랑지묘>를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 향랑은 선산의 한 박씨 집안의 딸로 14세에 동내 총각에게 시집갔으나 시집살이를 견디지 못하고 투강 자살을 하게 되는데,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들으며 나를 기억해 달라’며 노래를 불렀는데, 그것이 <산유화>라는 노래였다고 한다.
이재욱은 <영남전래민요집> 의성군 편에 수록한 <산유해>의 배경설화 주인공이라며 그가 투강 자살 한 곳이 구체적으로 선산읍 낙동강변의 야은 길재선생 묘 부근에 있다고 했고, 1931년 발표한 자신의 기념비적인 논문 <소위 산유화가와 산유해, 미나리의 교섭>에서 역시 같은 내용으로 언급한 인물이다. 그런데 필자는 학위 논문에서 이재욱의 기록을 그대로 인용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마무리 단계에서 1995년 한 연구자가 ‘이재욱의 기록을 보고 그 유적지를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했다’는 의외의 기사를 접하고 당황하여 직접 현장을 찾았던 것이다.
이 <향랑설화>를 담고 있는 산유화는 영남 지역 남성들의 신세타령인 <어사영>으로도 불리는 노래인데, 밀양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는 ‘초성 좋은 이가 부르면 절로 눈물이 나는 슬픈 노래’라고 했다.
‘어데후후야 심산심곡 가리갈가마구야/ 산천초목을 젊어가도 우리부모는 늙어간다’로 시작되는 노래인데, 곡조에서의 애절함이 <향랑설화>와 통하기도 한다. 바로 이런 곡절을 <영남전래민요집>은 충실하게 담고 있다. 이는 오늘의 시각에서는 문화컨텐츠로서의 활용으로 주목되는 소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이 민요집은 1930년 7월에서 9월까지 한밤중 바닷가이든 주점이든 어디에서라도 어려움을 무릅쓰고(極難事) 수집, 경북 22개군, 경남 8개군에서 359편을 수록한 것이니 주목되는 부분이 물론 이 뿐만은 아니다. 그 중 하나가 아리랑을 주목하여 수록한 사실이다.
아리랑은 30개 군 중 13개 군에서 17편을 언급했다. 특히 군위·안동·영주·선산·청송에서 <경북아리랑>을 표기했다. 이 <경북아리랑>을 필자는 일단 <문경아리랑>으로 파악했는데, 문경지역에서 조사한 것은 사설이 다음과 같다.
‘문경아새재는 왠고갠가 구부야 구부야 눈물이라‘로 시작되는데, 이는 오늘날 전남 <진도아리랑>의 첫 절이기도 하다. 이는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이 민요집은 아리랑의 수수께기를 담고 있기도 하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