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을 살리는 위대한 정신
성경본문 : 에스더 4: 12-17
12. 그가 에스더의 말로 모르드개에게 고하매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15.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대로 다 행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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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기념주일>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세상에는 오직 두 종류의 힘만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정신이라는 힘과 칼이라는 힘이다. 언제나 정신은 칼의 힘을 정복해왔다”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정신의 힘이 칼의 힘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역설스럽게도 그는 칼의 힘을 앞세우다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칼의 힘을 앞세우다가 망한 자는 나폴레옹 뿐만 아니라 독일 히틀러도 망했고, 일본 천황도 망했습니다. 애급과 바벨론도 망했으며, 페르샤와 로마도 망했습니다.
그런데 유다인은 역사상 수 없이 많은 정복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멸망하지 않고 생존하였습니다. 그리고 히브리 문명의 꽃을 피우며 번성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민족을 살리는 위대한 정신이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중에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에스더와 모르드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3·1절 95주년 기념주일을 맞이하여 민족을 살리는 위대한 정신을 상고해보고자 합니다. 민족을 살리는 위대한 정신을 계승받고 전수시켜 주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 민족을 살리는 위대한 정신은 공동운명의 민족정신입니다.
모르드개가 내시 하닥을 시켜 왕후 에스더에게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에4:13) 라며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대학살을 당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에3:13). 에스더는 왕후로서 왕궁에 있지만 그녀도 유다인임이 드러나게 될텐데 죽임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모르드개의 판단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공동운명의 민족정신을 깨우쳐 주는 것이었습니다. 민족이 망하면 개인도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와 국민, 민족과 개인은 공동운명체입니다. 국가가 건재해야 국민이 행복하고, 민족이 흥왕해야 개인도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이필주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목사님은 정동제일교회 제5대 담임목사 재임시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으로 참여 2년여 옥고를 치르셨습니다. 채포 후 경찰총감부의 심문과 경성지방법원 예심에서 목사님은 당신의 애국심과 독립심을 아주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심문 : 그대는 무슨 목적으로 이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일반에게 반포하였는가?
답변 : 그것은 동양의 평화를 주창하며 조선 자주독립을 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국권을 회복한다는 뜻이다.
심문 : 금후에도 또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답변 : 그렇다. 어디까지든지 독립운동을 할 것이다
감옥의 컴컴한 방안에 환한 전깃불이 켜지는 것 같은 신앙적 체험을 한 후 목사님은 이렇게 고백하셨습니다.
“내 영혼을 사로잡았던 두려움이 사라졌다. 나는 우리 민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무엇인지 알고자 했다. 그들을 위한 것이라면 열 번 아니 백 번이라도 그들을 위해 기꺼이 죽고 싶었다.”
(전택부, 독립운동에 앞장선 이필주 목사, 오영교, 정동제일교회 125년사 제1권 p.282).
사도행전 9:3에 사도 바울은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라며 그 민족과 민족의 구원을 위한 공동운명의 민족정신을 실토했습니다. 민족을 살리는 위대한 정신은 공동운명의 민족정신입니다. 공동운명의 민족정신을 가진 사람은 결코 개인주의나 이기주의에 치우치지 않고 공동체의 발전과 평화를 위하여 기꺼이 일치와 단결을 힘껏 도모할 줄 믿습니다.
2. 민족을 살리는 위대한 정신은 민족구원의 독립정신입니다.
모르드개가 내시 하닥을 통해 왕후 에스더에게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4:14) 라며 설득조의 반문을 보냈습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대학살의 위기를 모면할 길이 없었습니다. 왕의 부름을 받지 않고 왕 앞에 나가면 죽임을 당하게 되기 때문에 에스더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만일 에스더가 이토록 위급한 때에 자신의 안전만을 염려하여 침묵한다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from heaven) 놓임과 구원을 얻은 것이라는 민족구원의 독립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멸망당하도록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사랑하시는 자녀들로 하여금 놓임과 구원을 얻게 하십니다.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한성감옥에서 7년째를 보내시는 중 1904년 “독립정신”을 쓰셨습니다. 그는 책에서 당시 “삼천리강산 우리 대한은 삼천만 백성을 싣고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 위에 표류하고 있는 배와 같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독립을 보전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장차 무슨 면목으로 세계를 대할 것이며, 무슨 말로 후손들에게 변명하겠는가… 모두가 내 나라 독립을 보전하기 위해 나서야 하며, 그것을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히 여겨 언제 어디서든 독립을 위해 죽는 것을 영광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라며 마음속의 독립정신을 굳게 하여야 함을 역설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건국대통령 이승만 장로님께서는 말년에 “잃었던 나라의 독립을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는지 우리 국민은 알아야 하며 불행했던 과거사를 거울 삼아 다시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노예의 멍에를 메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우리 민족에게 주는 유언이다” 하시며 갈라디아서 5장 1절 말씀을 일러 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5:1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라며 우리를 자유케 하신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와 신자의 자유 수호를 강조했습니다.
민족을 살리는 위대한 정신은 민족구원의 독립정신입니다. 민족구원의 독립정신을 가진 사람은 결코 종의 멍에를 메지 않고 우리를 자유케 하신 주님의 구원을 감사하며 찬양할 줄 믿습니다.
3. 민족을 살리는 정신은 일사각오의 희생정신입니다.
모르드개의 설득을 통해 에스더는 자기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바로 이때를 위함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자기의 결단을 담은 회신을 보냈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4:16).
에스더는 이미 삼십일이나 왕의 부름을 받지 못했습니다. 왕의 관심과 애정이 식은 상태였습니다. 왕의 부름을 받지 않은 자가 왕 앞에 나가면 죽이는 것이 법이었습니다. 다만 왕이 금 규(gold scepter)를 내밀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에스더는 죽을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먼저 삼일 간 금식기도를 드린 후 ‘죽으면 죽으리이다’(If I must die for doing it, I will die.)하고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일사각오의 희생정신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었습니다. 왕은 왕후 에스더를 보고 매우 사랑스러워 금 규를 내밀었습니다. 에스더는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졌습니다. 왕은 에스더의 소원을 물으면서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에5:3). 에스더의 소원은 민족을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결국 일사각오의 희생정신으로 그 민족을 살려냈습니다.
남강 이승훈(1864-1930.5.9)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생후 8개월 만에 어머니를 잃었으며, 할머니와 아버지마저 그가 10세 때에 별세했습니다. 그가 이 세상에서 받은 유산이라고는 조실부모한 고독한 상놈이라는 천한 신분과 극심한 가난이 전부였습니다. 유기공장에 사환으로 들어간 그는 30대에 돈을 벌어 1907년에 오산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오산학교는 입학생 7명으로 시작했지만 고당 조만식 선생님이 교장으로 부임한 이래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 등 수 많은 영적, 애국적 인물을 배출한 민족의 명문 사학이 되었습니다.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계의 대표 격인 그는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릴 때 이왕이면 자기 이름을 앞에 넣고 싶어하는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한마디 던졌습니다. “이건 죽는 순서 아닌가. 죽는 순서.” 세 번째 투옥으로 모두 7년간의 감옥살이를 마치고 오산학교에 돌아왔을 때 남강의 연세는 60세였습니다. 그때 불타버린 교사를 바라보며 그는 비장한 각오로 “내가 감옥에 갇힌 것은 조금도 원통하지 않다. 다만 일본 헌병들이 오산학교를 불지른 것은 용서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불씨가 남아있으므로 학교를 다시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된다”라며 ‘꺼지지 않는 불씨를’을 강조했습니다.
요한복음 12:24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며 살신성인의 희생과 십자가의 구원을 공표하셨습니다.
민족을 살리는 위대한 정신은 일사각오의 희생정신입니다. 일사각오의 희생정신을 가진 사람은 고난을 결코 원통해 하지 않고 오히려 ‘꺼지지 않는 불씨’로 큰 위안을 삼으며 많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줄 믿습니다.
자기의 작품에 만족하지 못한 한 젊은 화가가 너무 화가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어느 위대한 화가의 붓을 빌려 왔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화가의 붓으로 그림을 그려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 때 이를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던 친구가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지금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위대한 화가의 붓이 아니라 그 거장의 정신이라네.”
민족을 살리는 위대한 정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우대한 정신은 공동운명의 민족정신이며, 민족구원의 독립정신이고, 일사각오의 희생정신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민족을 살리는 위대한 정신으로 살았습니다. 이 위대한 정신을 물려받고, 물려주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사명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위대한 정신으로 가정과 교회와 국가 사회에 일어나 빛을 발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