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이니까요
"마뇌공(魔腦公)은 저의 사대조(四代祖)이십니다. 그분은 혈화삼의 명에 따라 삼천 장인(匠人)과 칠천 무사를 이끌고 여기 오시어 마화성을 건립하시었습니다!"
수목이 없는 정원이다.
이 곳은 마화성의 뒤뜰, 이제껏 비천검대장(飛天劍隊長) 노릇을 하며 천도봉 마화성을 지켰던 백수란은 계피학발의 노인을 보고 허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길은 다른 데 쏠리고 있었다.
노인과 함께 뜨락을 거니는 회삼청년, 그의 옆얼굴은 새벽의 양광에 빛나고 있었다.
전신에서 흐르는 이상한 기운, 그 기운은 벌써 한 시진째 백수란의 볼을 뜨겁게 달구어 버렸다.
일만 고수를 거느리고 지하에 은거하며 살던 백수란, 그녀는 뭇남자를 초개로 여기고 있었다.
내심은 일생을 마가에 바치리라 맹세하면서…….
'저 사람은 달라.'
백수란은 노인과 함께 마화성을 구경하고 다니는 회의미남자에게 흠뻑 빠져든 상태였다.
'대총수와 함께 걷는 것으로 보아 대총수의 제자에 불과한데… 어이해 대총수는 전신에서 마기(魔氣)가 흐르는데, 저 청년은 전신에서 신기(神氣)를 흘릴까?'
백수란은 가끔 호흡을 끊었다.
청년의 얼굴은 이미 그녀를 홀리게 했다. 하나, 얼굴의 아름다움만으로 녹아 버릴 백수란은 아니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특수한 훈련을 거쳤다. 그 중에는 여인이기에 거쳐야 하는 극기훈련도 끼어 있었다.
사내를 사내로 보지 말라!
마가의 여인들은 여인이라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누추한 옷을 걸친 청년 앞에 서게 되면 이상하게도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백수란은 괜히 가슴을 졸이며 말을 이었다.
"그분은 제게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그분 말씀이… 대총수는 필경 세 분 어르신네와 함께 나타나실 것이고, 그 중에는 마병야(魔兵爺)란 분이 끼어 있다고 하시었습니다. 아마도 그분은 타계하시었나 보지요?"
그녀는 꽤나 조심스럽게 말했다.
거의 찰나적으로 팔괘변환진(八卦變幻陣)을 격파하고 입성(入城)한 두 사람은 이제껏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화성 구석구석을 말없이 거닐 뿐이었다.
"그분은 비통선향취(飛筒仙香醉)라는 저희 백가비전주(白家秘傳酒)를 즐겨 드신다기에 비통선향취를 많이 담아 두었는데, 타계하시다니……."
그녀가 안타까운 투로 말할 때, 누군가 아주 크게 말을 했다.
"아해야, 말을 함부로 하지 마라. 아직은 술을 마실 수 있으리라, 노부는!"
그 소리는 육성으로 한 말이 아니라, 백수란에게만 들리도록 의어전성으로 한 말이었다.
"대, 대총수?"
백수란의 얼굴이 붉어지는데…….
"어리석은 아해, 볼기를 맞고 싶은 게로구나? 더 이상 찧고 까불어 대총수의 사색을 방해하다가는 노부 마병야에게 정녕 물볼기를 맞으리라! 네 비록 장로(長老)라 하나, 노부에 비하면 털도 나지 않은 햇병아리이니라. 그래도 노부를 만난 것을 천행인지 알라. 성미 표독한 마박사에게 걸렸더라면 아마도 벌써 주리가 돌려졌으리라!"
말하는 사람은 바로 마병야였다.
마병야는 이 성을 세운 마뇌공의 벗이었다.
백수란은 마병야가 자신을 밝히자, 넋을 잃고 말았다.
'이제껏… 나는 하늘과 땅을 잘못 보았단 말인가?'
그녀의 얼굴은 희게 물들고 말았다.
대체 이런 일이 있을 수가?
나약해 보이는 회삼청년이 바로 마가대총수란 말인가?
그녀가 대총수로 알고 있던 노인은 바로 죽었다고 여긴 마병야란 말인가?
'저… 저 청년이… 나의 주인이신 대총수시란 말인가? 저리 젊은 분이 대총수라니……?'
백수란의 볼은 다시 훅훅 달아올랐다.
그 때 마무정은 혜광심어(慧光心語)로 마병야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마박사 말에 의하자면 십 장로(十長老) 중 넷은 내가 어떻든 나를 따를 것이나, 다른 여섯은 나를 꺼릴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었소? 훗훗……!"
"그러합니다!"
마병야는 잠시 전 백수란에게 호통을 쳤던 것을 숨기며 능청스레 대답을 한다.
둘은 늘 이런 식이었다. 진짜 늙은이와 애늙은이!
"육 장로는 몹시 지독합니다. 과거의 나찰공(羅刹公), 사해공(四海公), 마왕공(魔王公), 혈왕공(血王公), 일비공(一秘公), 이비공(二秘公)! 이들은 절대마를 숭상합니다. 대총수가 마인이 아니고 오히려 절대신골(絶代神骨)임을 안다면 아마 까무러칠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박사와 함께 그들을 찾으시어 잘 설득하신다면 아마도 파란은 없을 것입니다!"
"마박사의 도움을 받으란 말인가?"
"그럼 다른 길이 있겠습니까?"
"꼭 하나 있소!"
"무, 무엇인지요? 그 길은?"
마병야가 흠칫하자, 마무정은 그윽한 웃음을 흘린다.
"훗훗… 바로 도움을 받지 않는 길!"
마병야는 그의 천진스럽고 환한 웃음만 보면 그만 할 말을 잃고 만다.
"하, 하긴 대총수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시는 분이니까요."
그는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저분에게는 마가의 무공 이상의 신비가 있다. 그것은 저분을 수 배 더 강한 존재로 키웠다. 그분은 시간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생각하려 하시나,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떠오르지 않기에 저분은 가끔 우울해하시는 것이다.'
마병야가 최근 들어 아는 것은 마무정은 우울할 때 오히려 웃는다는 지극히 간단한 사실이었다.
하여간 두 사람은 진세에 휘감긴 마화성의 구석구석을 거닐었다.
십대연무장(十大練武場),
십천마부(十天魔府),
절대마존전(絶代魔尊殿),
지하무관(地下武關)…….
마화성에는 십오만 명이 머물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마화성의 규모는 거의 시진에 달했다. 마무정의 야망을 시작할 장소로는 부끄러움이 없는 그런 대업의 터전이었다.
장차 전 마가의 십 장로가 모두 여기 모이리라.
그 날, 마무정은 천하지존(天下至尊)에 오르리라!
"뜨락에……!"
마무정은 처음으로 백수란을 빤히 봤다.
"무, 무슨 명이신지요?"
백수란은 껌벅 죽어 오체투지에 든다.
'벌을 받지 않을까? 사람을 잘못 본 죄로?'
그녀는 은근히 겁을 먹고 있었다.
한데, 마무정의 말은 이상하게도 부드러웠다.
"나무를 심으시오, 비천장로!"
"나… 나무라니요?"
"이 곳은 다 좋소. 그런데 생기가 없소. 수하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나무는 꼭 필요하오."
"어, 어떤 나무를 심어야 하는지요? 미혼향을 뿌리는 천축혈목(天竺血木)이나, 동영의 독마철목(毒魔鐵木), 아니면 풍취가 좋기로 천하제일이라는 천산(天山)의 특산인 응향천년취매실(凝香千年醉梅實)……!"
"나는 무화과(無花果)면 족하겠소, 비천장로!"
"무, 무화과요?"
백수란은 흠칫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그 때 그녀는 상상도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아, 절대자의 웃음!
신으로 여기던 절대적인 존재, 대총수가 환하게 웃고 있다니…
어린아이들이 죽마(竹馬)를 타며 웃듯.
'저 웃음은 대총수의 웃음이 아니다. 저 웃음은… 하늘의 웃음이다.'
그녀는 허벅지가 축축해짐을 느꼈다. 자꾸만 몸이 움츠러들고, 이상하게도 양 손바닥이 땀으로 미끄러워진다.
왜……?
마무정은 태사의에 앉아 비천검대를 열병해야 했다. 이것은 하나의 의례적인 행사였다. 비천검대 고수들은 대대로 전수받은 절기들을 마무정이 보는 앞에서 신명나게 시험을 보였다.
대표적인 무공은 스물여덟 가지. 그 중 반은 호법진세를 펼치는 수비무공이고, 다른 반은 비천검대의 특징이랄 수 있는 비조술(飛鳥術)을 이용한 절기였다.
허무벽력쇄(虛無霹靂쇄),
심극무형파(心極無形破),
마화윤회추(魔花輪廻鎚).
마무정은 그 절기가 시전될 때 박수를 쳤다.
천조학익진(千鳥鶴翼陣),
만시균황대진(萬翅鈞皇大陣),
대범천응방진도(大梵天鷹坊陣圖).
그리고 이 세 가지 대진세가 시전되어 하늘이 온통 매 떼로 뒤덮일 때에는 의자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웃었다.
그의 너무도 소박하고 소탈한 모습은 마화삼의 위사들에게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것이었다.
차라리 석상이 웃었다면 그리도 놀라지는 않았으리라.
-절대자도 웃는가?
-저분이 진짜 대총수이실까?
-모를 일이다. 모든 것이 꿈만 같다. 우리는 대총수를 연상할 때 삼두육비(三頭六臂)의 거인(巨人)을 생각했는데…….
마화성의 위사들, 이들은 마무정이 마병야를 통해 내린 첫 번째 명령을 받고는 그만 기가 질리고 말았다.
<대총수 제일령!
전 제자는 신년이 될 때까지 휴가를 즐겨야만 한다.
자유롭게 활동하고, 연무하며, 하지 못하던 것을 하라!
장차 큰 싸움을 위해 힘을 비축하기보다는 즐겁게 지내는 것도 좋으리라!
각자에게 은자 오백 냥씩을 하사하겠다!
그것을 들고 어디든 가서 자유롭게 주유하다가 돌아오라!
모두 매를 탈 줄 아니, 멀리 갔다 와도 무방하다.
단, 만사에 있어 마화성의 수하임을 강조하고 대범하게 행세해서 천하 사람들이 모두 마화성을 존경케 하라!
강호에 나가 민폐를 끼치는 자, 척살되리라!>
실로 믿기지 않을 명령이었다.
새해가 될 때까지 나가서 놀라니……?
대총수가 오자마자 지옥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백수란 이하 모든 사람은 입이 딱 벌어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백수란은 타는 듯한 붉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 옷은 그녀가 가장 예쁘게 여기는 옷으로, 옷가슴에는 봉황이 수놓아져 있었다.
몸매가 날렵한 백수란, 그녀는 비천연(飛天燕)이라는 호를 수하들로부터 얻을 정도로 경공의 달인이다.
그녀는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았고, 마무정은 얼마 전 백수란이 바친 마화성 축성록과 비천검대비록을 두루 살피고 있었다.
백수란은 이상한 답답함을 느꼈다.
태산에 깔린 듯이, 쓰러진 거목(巨木) 밑에 깔린 듯이, 숨이 콱콱 막혀 왔다.
마치 열사의 사막을 벌거숭이로 걷는 듯, 세상의 모든 것이 그녀를 보는 듯한 순간이 이어졌다.
한순간, 마무정은 책장 하나를 쳐들고 눈길을 거기 멈췄다.
그 곳.
<제오나찰검대(第五羅刹劍隊)는 낙양(洛陽)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 그들은 제육해검대(第六海劍隊)와 통하고, 동정호의 해검대는 개봉(開封)의 마왕검대(魔王劍隊)와 통함. 그 이상은 알지 못함.
낙양의 화야(花爺)가 바로 제오나찰대장일 것임!
제일대 화야가 죽는다면 그의 제자가 화야 지위를 이어 받고, 수하를 이끌며 대총수를 기다릴 것임!>
그런 글 이외에 마화성의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었다.
마화성은 백만 고수가 십 년 내내 시산혈해를 쌓으며 쳐들어 와도 벽돌 한 장 무너지지 않을 무적의 성이었다. 마화성 안에만 있는 것만으로도 대총수의 신변은 보장될 수가 있다.
<천기(天機)에 의한다면, 그리고 지세(地勢)에 따른다면… 구가(九家)의 반역은 필연(必然)이고, 그들은 단독으로 반역하는 것이 아니라 배후의 조종을 받는 듯함.
그 세력의 정체는 확실치 않으나 몽고(蒙古)의 이단자들인 듯!
이미 그들은 마가에 침투했으나, 아직은 난을 조종하지 못했음.
훗날, 난이 일어난다면 먼저 그 연관을 조사하기 바람.
제칠마왕검대는 순찰장로(巡察長老) 휘하에 있으니, 거기 가면 가장 자세한 정보를 얻을 것임!>
그 글은 꽤나 의미심장했다.
'설마, 제삼세력(第三勢力)이 존재한단 말인가?'
마무정은 숨을 가볍게 참았다.
'아아, 마가의 반역 뒤에는 마유정의 역심(逆心)이나 구마존(九魔尊)의 발호가 아닌… 보다 뿌리 깊고 광대한 역모의 내력이 있단 말인가? 반역은 이미 백여 년 전부터 그늘이 되어 마가에 드리워졌단 말인가?'
마무정은 눈살을 가늘게 찌푸렸다.
그리고 백수란은 괜히 가슴을 졸이며 숨을 가쁘게 쉬었다.
밀실의 남녀, 한 사람은 죽음에서부터 시작해 모든 것을 명령할 수가 있다.
또 한 여인은 자결에서부터 모든 것을 복종해야만 한다.
지배하는 쪽은 남자, 그리고 지배를 당하는 쪽은 여자.
한데 이 방 안에는 그러한 압박감은 없었다.
백수란이 느끼는 것은 지배감이 아니라 이유를 알지 못할 끌림이었다.
'저 눈만 봐도… 좋다.'
그녀는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고, 아주 천천히 마무정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 쪽으로 돌려졌다.
"비천장로, 나와 가지 않겠는가?"
"가, 가다니요?"
"듣자니, 태어난 후 내내 여기서 살았다던데?"
"그, 그렇습니다. 황산을 떠나보지 못했습니다!"
"후후… 그럼 나와 낙양 나들이를 가세!"
마무정은 빙긋 웃었다. 그는 백수란의 콧등이 빨개지는 것을 보며 더 환히 웃었다.
"객방 두 개 빌릴 은자는 내게 있으니, 무례한 짓은 요구하지 않을 것이네. 그러니, 겁먹지 말고 나를 따르게. 사실, 나는 새 타는 데에는 미숙하다네!"
"겁… 겁먹지는 않습니다!"
"그럼 왜 두려워하지?"
"저는… 여자(女子)이니까요."
백수란은 고개를 푹 떨구고 말았다.
'참 아름답군.'
마무정은 문득 백수란을 안고 싶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 위로 누군지 모를 한 여인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도…….
"너희들은 제십좌(第十座)를 만나리라. 크크, 그리고 그 순간 목을 잘릴 것이다!"
여인의 목은 쉴 대로 쉬었다. 이 년에 걸쳐 하루도 빠짐없이, 거의 매일같이 철옥 밖에 대고 소리를 친 탓에 목이 쉬고 만 것이다.
얼굴에는 흉악한 자상(刺傷)이 가득, 걸치고 있는 옷은 걸레보다도 못한 피누더기.
여인은 벌레처럼 그렇게 머물러 있었다.
"빠드득- 두고 봐라. 저주를, 저주의 그 날을! 그 날은 가까워졌다!"
치를 떠는 여인, 그녀는 시력마저 거의 상실한 듯했다.
누군가 바라보고 있는데도 그녀는 느끼지 못한다. 단지, 목이 터져라 그렇게 외치고 있을 뿐이다.
그녀의 정면 쪽, 오래 전부터 와서 그녀를 보고 있는 미청년이 하나 있었다.
화려한 꽃무늬가 가득한 옷을 걸친 청년, 그의 얼굴은 청사(靑紗)로 가려져 있었다.
당당한 칠 척 거구, 어딘지 모르게 야성적으로 보이는 자.
마화삼(魔花衫)!
그는 여인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너야말로 나의 이대병기 중 하나이다. 백치로 세뇌된 동영의 화접(火蝶)과 너! 훗훗, 나는 너희 둘을 믿는다. 나의 충실한 노예들. 언제고… 나를 위해 일을 잘 하리라 믿는다! 너희들은 자유를 찾기 위해 한번쯤은 나의 살인병기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는 아주 나직이 웃었다.
마화삼은 왜 여기 온 것일까?
그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여기 왔다.
그가 여기 온 데에는 하나의 가공할 비밀이 있다.
'그렇다. 일단 주는 떡을 먹고 보자. 북황자란 놈은 멍청히도 내게 십만대군의 지원을 약속했다. 물론 속셈은 있겠지. 장차 나를 시해한다거나…….'
그의 사악한 웃음은 여전했다.
'그러나 당하는 쪽은 너일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마화삼이니까! 훗훗, 일단 북황… 그 쪽을 먹고, 그 다음 정법회를 삼키고, 뒤이어 사천황궁(死天皇宮)과 자금성(紫禁城)을 내 호주머니 안에 넣으리라.'
마화삼은 천천히 신형을 틀었다.
"개자식들! 다 죽고 말 것이다, 너희들은!"
여인은 치를 떠는데, 그녀 뒤쪽에는 언제부터인가 멍한 눈길을 하늘에 던지는 또 한 여인이 있었다.
나무(木) 같은 여인, 그녀의 시선은 지극히 공허했다.
아주 특이한 단련을 받은 티가 역력한 여인의 가슴에는 문신 하나가 또렷이 박혀 있다.
불나비(火蝶), 불붙는 듯한 화접 한 마리가 선명히 새겨져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의미 없는 시선을 빈 공간에 고정시킨 채, 여인은 그렇게 또 이 날을 보내고 있었다.
"……!"
표정이 딱딱히 굳은 채 가는 호흡 소리조차 참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 바로 화접이었다.
마화삼은 잔혹한 눈빛을 띠며 두 여인을 훑어봤다. 상소리를 해대고 있는 여인은 앙상히 말랐고, 얼굴에 흉터가 그득했다. 그리고 화접은 지극히 아름다웠으나 피부빛이 징그러울 정도로 푸르렀다.
"훗훗… 두 계집 중 하나는 추녀가 되었고, 또 하나는 세뇌가 되며 석녀(石女)가 되고 말았다. 그것은 몹시 아쉬운 일이다. 한때나마 천하제일의 미인이라고 불렸던 너희 두 계집이 계집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가 음침히 말할 때, 얼굴이 추악한 여인이 돌연 악을 써 댔다.
"네… 네놈은 악마(惡魔)다!"
그녀의 눈에서는 한망(寒芒)이 흘러 나왔다. 그녀의 얼굴에 가득한 흉터는 바로 그녀의 손톱에 의한 상처였다. 고운 살에는 구더기가 끼어 있고, 봉두난발된 머리에는 오물이 덕지덕지 말라붙어 있었다. 지옥에서 막 튀어나온 야차(夜叉)같이 추악한 여인, 그녀는 마화삼을 향해 사나운 눈길을 흘렸다.
"그래, 너는 말 한 번 잘했다. 나는 악마다! 훗훗, 대우주를 지배할 악마가 바로… 나, 마화삼이란 사람이다!"
마화삼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화접은 하나의 석상인 양 멍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이…….
아아, 백치미(白痴美).
그녀의 공허한 아름다움은 가히 뇌쇄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살빛을 보는 사람은 성욕을 일으키다 말고 식은땀을 흘리며 꽁무니를 치고 말 것이다. 백 일 간 땅 속에서 썩은 시체의 피부빛, 푸르스름한 피부에서는 인광(燐光)이 섬뜩하게 흘렀다.
마화삼은 천천히 그녀를 본다.
"화접, 너는 나를 아느냐?"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화접의 대답 소리가 들렸다.
"주… 주인(主人)이십니다, 나의!"
보라! 그녀의 눈에서 흘러 나오는 요기(妖氣)를!
내공이 약한 자라면 그 타는 듯한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심령이 마비되는 충격을 받을 것이다.
화접, 그녀는 신지를 상실한 상태였다.
마가비전의 제혼술(制魂術)로 인해 그녀의 고결한 영혼은 금제되고, 나이 세 살배기의 지능만 남은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무공만은 여전했다. 그녀의 섬섬옥수에 검이 쥐어지고 검이 현란한 검홍(劍虹)을 그리며 검무(劍舞)가 추어지면, 십 장 내에 그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사막(死幕)의 제일고수 화접!
그녀는 바로 마화삼의 밀비위(密臂衛)라 할 수 있었다.
"화접, 그럼 너는 나의 무엇이지?"
마화삼이 또 물었다.
"나는… 주… 주인의 충견(忠犬)입니다!"
Hꠑ화접은 눈도 껌벅이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프핫핫… 그래, 너는 나의 충견이다. 너처럼 말하는 사람의 수는 조만간 수백만에 달하리라. 프핫핫! 나는 천하에 마풍을 일으켜서 천하의 통치자(統治者)가 되리라!"
마화삼은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주인은… 신(神)이십니다!"
화접은 나무토막처럼 뻣뻣이 서서 말했다.
"개… 개자식! 퉤에!"
추악한 여인은 침을 타악 뱉어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