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존재의 행간, 그 사랑 시학
--박영무 시집 『내일이면 다시 만나리』
김 송 배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전 한국문협 부이사장 )
1. 존재의 행간에서 탐색하는 ‘나’의 확인
현대시에서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은 대체로 우리들 인간 의식을 체험의 원형으로 환원하거나 실생활(real life)에서 절감(切感)하는 다양한 삶의 요인들이 시인의 심저(心底)에서 용암과 같은 열정으로 분사(噴射)하는 형태의 시법(詩法)을 많이 대하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 인간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의 수용에서 긍정과 부정이라는 측면의 심리적인 작용이 어떤 지향점으로 발현하느냐에 따라서 시적 주제가 정립되고 그 시인의 진실이 명징(明澄)하게 적시되는 경우가 현대시의 요체로 현현하고 있음을 간과(看過)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 박영무 시인이 상재하는 시집 『내일이면 다시 만나리』의 원고를 일별하면서 그의 의식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되는데 그는 존재와 시간의 문제 그 행간에서 탐색하는 자아의 확인을 위한 정서나 사유(思惟)의 정적(靜的)인 형상화를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가 이미 ‘머리말’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적 혈맥이라는 자아의식을 일깨우려는 심정으로 내 심원의 저변에서 우러나는 그대로의 노래를 고집하고 싶었다’는 진솔한 고백처럼 자아에의 몰입과 탐구는 삶의 궤적(軌跡)에서 재생한 체험이 곧 시적 진실로 승화하는 현상을 목도(目睹)하게 된다.
박영무 시인은 ‘거울 속에 또 다른 자아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 거울 앞에 서면 / 나를 기다렸다는 듯 / 늘 마주치는 존재(「잊혀진 자아」중에서)’라는 어조(語調-tone)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고 ‘잊혀진’ 자신(자아)을 다시 인식하게 된다.
그는 ‘나를 따라 울다가 / 나를 따라 웃다가 / 그대, 어디서 온 누구냐고 /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 똑 닮은 나, // 얼굴은 낯설지 않는데 / 먼데서 온 나그네 같구나’라는 자조(自嘲)와 자애(自愛)가 동시에 그를 설레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 설정과 전개는 우선 그가 궁극적으로 탐색하려는 존재의 인식을 확고하게 정립하면서 자아의 개념을 재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잃어버린 계절이라 하여
절망 앞에 무너지는 건
너무 가혹한 차가움이다
따스한 봄날은 반드시 오리니
자아의 어긋난 삶이
인생의 본질은 아니며
인생의 전부는 더욱 아니리니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기다림에 살자
극한의 계절 앞에서
벌거벗은 현재를 어루만지며
뒤돌아보고 다시 뒤돌아보는
한 뼘의 여유,
상처받은 순간은
잠시 머물다 가는 것
자아의 빈자리에 심어 둔
희망의 씨앗이 움터 오를 수 있게
입술 앙다물고 인내하며 살자
인고의 눈물은 약이 되는 것
--「인고의 눈물은 약이 되는 것」전문
이 작품에서는 그가 더욱 자아에 대한 심층적(深層的)인 몰입으로 그에게 내재된 진실(본질)을 적시(摘示)하고 있다. ‘자아의 어긋난 삶이 / 인생의 본질은 아니며 / 인생의 전부는 더욱 아니’라는 결론은 박영무 시인이 가치관으로 승화한 인생의 실천 덕목(德目)으로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기다림에 살자’라거나 ‘입술 앙다물고 인내하며 살자’라는 ‘인고’에 대한 인간들의 관념적인 잠언(箴言)과 같은 주제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박영무 시인의 이러한 심경(心境)은 ‘벌거벗은 현재를 어루만지며 / 뒤돌아보고 다시 뒤돌아보는 / 한 뼘의 여유, / 상처받은 순간은 /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라고 과거를 상상력으로 재생하면서 현재의 상처를 위무(慰撫)하고 있다. 이것이 그에게서는 ‘자아의 빈자리에 심어 둔 / 희망의 씨앗이 움터 오를 수 있’게 하는 인생(시)의 원동력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서정시를 읽고 난 후의
젖은 눈망울처럼
고뇌하며 사랑하라
거울 속에 초췌해진 자아를 보며
눈물 떨구는 간곡함이 때 묻지 않을 때
진실한 고뇌의 간절함은 참 사랑을 일깨운다
--「고뇌하며 사랑하라」중에서
자아를 내려놓고
낮은 데로 흐르는 강물은
무량의 바다에서 출렁이고
척박한 바윗등의 틈새 비집고
옹색한 고난을 견디며 꽃을 피워내는
풀 한 포기의 굳세임은
연약함 속에서도 고결한 향기를 일군다
--「내려놓으면 하늘이 보인다」중에서
이 두 편의 작품에서 자아의 정점(頂點)은 ‘진실한 고뇌의 간절함은 참 사랑’이며 ‘연약함 속에서도 고결한 향기’라는 그의 진실이 승화하고 있어서 그의 존재 의식이나 자아의 인식은 바로 이러한 사랑과 향기가 잠재(潛在)한 시적 원류에서 구명(究明)하게 된다.
그는 이러한 시적 행간에서 ‘무거운 짐 모르는 듯 / 내려놓는 공간이 자아의 것일 때 / 사랑은 영혼의 맑음에서 향기롭고 / 그리움은 그윽한 넓이에서 열매를 맺는다’는 대미(大尾)의 결론으로 사랑과 영혼 그리고 향기의 영원한 의식이 박영무 시인의 존재론적 시학(詩學)을 정립시키고 있다.
2. 삶의 시간을 통한 성찰의 근원 탐색
박영무 시인은 다시 존재의 근원을 삶의 진행형에서 탐색하고 있다. 그에게서 삶에 관한 이유도 다양하게 적시되고 있는데 그가 먼저 그 이유를 의문형으로 자문(自問)하고 있다. 그는 ‘무엇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가 / 무엇이 우리를 당혹케 하는가’라거나 ‘무엇이 우리를 야유케 하는가 / 무엇이 우리를 주름살지게 하는가(이상「산소 한 모금이 그립다는 것」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슬픔과 당혹함 그리고 야유와 주름살이 우리에게 무엇이 이런 상황을 만들고 있는지의 문제가 바로 삶의 해법을 찾는 일이다.
삶에 있어 충분조건을 지닐 수 있는 건
허수의 팽창일 뿐
존재에게 끊임없는 욕망이
솟구쳐 오르는 까닭은
내일의 부피에게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산소 한 모금이 그립다는 것」중에서
그는 위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존재에게 끊임없는 욕망’과 ‘생명의 근원’이 존재를 인식케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한 삶에 대한 융합과 화해를 위한 해답의 메시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삶에 있어 충분조건’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서 현실적인 갈등도 그는 감로수(甘露水)와 같은 신념으로 용해시키고 있다.
박영무 시인은 다시 ‘진실의 진실은 무엇인가 / 거짓의 거짓은 또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직면하는 연유(緣由)도 그가 여망하거나 성취해야 할 삶(인생=존재)에 대한 가치관의 정립을 위한 하나의 여과(濾過) 장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이러한 갈등 의식을 인식하는데는 ‘어리석음 때문에 흘러내리는 맑은 눈물은 / 삶이 가난하고 고통스러워도 / 그 진실은 더욱 고귀하고 / 가버린 사랑을 못 잊어 하며 / 허공에 토해내는 한숨 소리는 / 허탈한 어리석음이어도 / 그 진실은 더욱 그윽하다(이상「어리석음도 사랑이 되는 진실」중에서)’는 진실의 토로(吐露)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삶의 넝쿨이 휘감는
엉겅퀴 같은 심술쟁이
보상 받을 수 없는 과거의 상처가
공간 한 켠에 멈추어 있는 현재는
머뭇거림도 없이 흐른다
삶은 과거 속에서 현재를 후회하며 흐르지만
다독여주는 삶이 아닐지라도
저어기 만큼의 꽃님이 있고
저어기 만큼의 별님이 반짝인다
망각은 행복을 의미하는 것일까
생이란 외길을 돌아 원점에 이르는 것
한숨으로 얼룩진 자국 닦아낸
유리창 너머
멈추어 있어도 멈추지 않는 발자국소리
그대, 회전목마를 타고 맴을 돈다
--「멈추어 있어도 멈추지 않는 것」전문
박영무 시인의 삶은 시간성에서 탐구하고 있다. 이미 그는 이 시집 ‘머리말’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잃어버린 것들은 무엇이며 아직도 찾아내기 위한 몸부림은 무엇인가? 나의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에게 주어지는 가치기준은 무엇인가?’라는 그의 시간은 바로 삶(인생)의 가치기준과 동일성을 갖는다.
그가 시간 개념에서 ‘공간 한 켠에 멈추어 있는 현재는’이라는 어휘와 ‘삶은 과거 속에서 현재를 후회하며 흐르지만’이라는 시적인 시공(時空)은 그가 추구하려는 생(혹은 생명)에 대한 ‘원점’을 지향하는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에 기인(基因)하는 느낌을 받게 하고 있다.
일찍이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본질은 그 실존에 있다’는 언지로써 현재의 삶(존재)는 시간성과 내밀(內密)한 상관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그의 상념은 ‘생이란 외길을 돌아’ 오지만 ‘한숨으로 얼룩진 자국’이라는 평행선에서 맴돌고 있다.
이러한 그의 고백은 작품 「풀꽃 한 송이」에서 ‘삶의 숨결이 너무 가늘어서 / 풀잎은 작은 바람결에도 흔들리며 산다’거나 ‘살다보면 눈물인들 없겠는가 / 어엉엉 울어버려도 시원찮은 일 없겠는가’라는 회의적(懷疑的)인 그의 심저(心底)를 이해하게 되는데 작품 「도시의 하루」에서는 ‘주어진 삶이 / 누구인들 애닯고 힘겹지 않으랴 / 허리 꺾인 아픔 잊고 잠이 든 / 주름살 위로 별님이 내려와 / ‘내일은 행복하노라’ / 초롱한 속삭임 다독여 준다’는 어조로 위무와 위안으로 긍정적인 사유를 더해주고 있다.
박영무 시인은 다시 삶의 시간에서 자아 성찰과 기원의 의식이 현현되는데 ‘삶에 대하여, / 굳이 묻지 않아도 / 우리는 오늘이 어제일 수 없음을 알았고 / 어제가 오늘일 수 없음을 알았다’거나 ‘살아 있는 이 순간이 / 가장 큰 행복이라는 깨달음과 / 지나가버린 날들은 /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 애틋함도 스스로 터득하며 입술 깨물었다(이상 「내일이면 다시 만나리」중에서)’는 인식은 오늘과 어제 그리고 순간 등에서 생의 진실을 강렬하게 적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결론적으로 추구하는 성찰의 염원은 ‘한평생을 머물고 있어도 / 아침나절 눈부심인 / 하얀 목련처럼 지고 마는가 // 찬란했던 날들은 / 한순간의 바람결에 흩날리는데 / 아, 그 옛날을 말하는가 / 그, 한순간을 말하는가(「그 옛날을 말하는가」중에서)’라거나 ‘내 영과 육이 들여다보이는 / 보랏빛 잔물결 위에 / 생의 허무는 멈추어 있고 / 현란한 속삭임은 끝이 없다(「내 영과 육의 잔물결 위에」중에서)’와 같이 명민(明敏)한 형상화로 성찰과 접근하고 있다.
3. ‘그리움’과 ‘기다림’의 사랑 시학
박영무 시인에게 내재된 관념의 일단은 사랑 시학의 명제(命題)를 함축하는 해법을 탐색하는 일이 시적으로 크게 부각(浮刻)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시법도 그가 현실적으로 생성된 갈등요인이나 고뇌의 행간에서 적절하게 제시해야 하는 존재의 문제에서 표출된 자아의 인식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은 사랑이라는 고답적(高踏的)인 행위를 시적 정황(情況-situation)으로 설정하고 인간애 혹은 자애(自愛-self love)의 구현으로 전개하는 사유의 중심축에는 그가 간구(懇求)하거나 여망하는 사랑의 메시지가 절절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사랑의 정의를 애정이나 우정, 모정 등의 편편적(片片的)인 부분도 있겠으나 자비(慈悲)와 박애(博愛)와 같은 대승적(大乘的)인 견지에서 온 인류가 성취해야 할 사랑이 상존(常存)하고 있어서 시적인 소재와 주제로 자주 취택하는 경향을 많이 접할 수 있게 한다.
소녀는 꿈꾼다 은물결소리 여울지는
그런 사랑을 꿈꾼다
사랑은 아침이슬이듯
영롱하게 눈을 뜨고
그리움은 샘물처럼 가슴 깊이 고인다
황금빛 열매들이 물결치는 세상
땀방울이 끈끈하게 배어드는 십자가 앞에서
소녀의 꿈은 간곡하고
우리의 만남은 더욱 더 간곡하다
--「소녀의 꿈」중에서
박영무 시인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동심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소녀’라는 화자(話者)가 실재(實在)의 누구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시적 대상이 어떤 외연(外延-denotation)과의 호소적인 감응(感應)을 전해주고 있어서 거기에 내포(內包-connotation)된 갈구(渴求)의 어조는 ‘그리움은 샘물처럼 가슴 깊이 고’이고 있어서 ‘소녀의 꿈’은 바로 ‘그리움’의 진원지로 정착해 있다.
그는 ‘오늘에 주어진 삶이 절망스런 아픔이어도 / 사랑은 그윽하고, 그리움은 연연한 것 / 보람은 오직 그대의 것이리니 // 사랑아, / 내 청순한 그리움을 알알이 엮어 / 너의 것으로 띄워 보낸다’는 결론에서 우리는 ‘삶⤏아픔⤏사랑⤏그리움’이라는 형식이 성립되고 화자 ‘그대(혹은 너)’와 ‘내(혹은 우리)’가 복합적으로 상관을 이루면서 사랑학을 구성하고 있다.
우리는 어둠 속에 묻히지 않아야 한다
저무는 태양이 한순간을 뜨겁게 달아오르며
아직 기다림이 남아 있는
바다의 심장을
가로질러 갈지라도
가로질러 가는 저 뜨거운 눈부심을
우리들의 곁에서 한사코
떠나보내지 않아야 한다
오늘의 충만한 기쁨을 위해,
내일의 굳건한 행복을 위해,
우리는 어둠 속에 묻히지 않아야 한다
능금 같은 태양이 빠알갛게 불타오른다
사랑아, 내게로 다시 오라
너를 기다리는 애틋함은
여기 이대로 멈추어 있으리니,
우리들의 지순한 날들은
강물처럼 흘러가리니,
사랑아,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못 잊어 하는
캄캄한 밤중에도
한 된 바다 앞에서 하얀 거품에 지는 파도처럼
울부짖지 않아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 다 잊고
내게로 다시 오라
--「내게로 다시 오라」전문
이 작품에서 박영무 시인이 착목(着目)한 중심에는 ‘저무는 태양이 한순간을 뜨겁게 달아오르며 / 아직 기다림이 남아 있는 / 바다의 심장’이다. 이처럼 사랑은 그리움과 기다림의 이중주의 연속으로 현재 진행형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는 사랑의 최종 단정은 ‘오늘의 충만한 기쁨을 위해, / 내일의 굳건한 행복을 위해,’서 발현하는 순정적인 행복의 충만을 희구(希求)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말하기를 ‘사랑이란 궁극적으로 영혼의 진리입니다’라고 담론했다. 본래 사랑이라는 것은 생산적인 고귀한 능동성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들의 사랑(humanism)뿐만 아니라, 만유(萬有)의 자연에 까지도 반응과 긍정을 뜻하기도 한다.
사랑은 생명력을 증대시키고 소생시키고 자신을 재생시키고 자신을 증대시키는 과정이 바로 사랑학의 진수(眞髓)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랑은 그 대상이 누구이든 간에 상관할 바가 아니다. ‘우리들의 지순한 날들은 / 강물처럼 흘러가리니,’ 수긍할 수 있는 온 인류애가 광의(廣義)로 해석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러한 박영무의 사랑학의 언어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나만을 사랑하는 별 하나 내려와 / 은혜로운 속삭임이기를 / 고대한다(「푸른 별로 눕느 다」중에서)
- 한 평생 지울 수 없는 그리움을 안겨주었어도 / 나 이렇게 먼 후일에도 고운 사랑을 보 낸다(「사랑아, 서러워 말자」중에서)
- 하얗게 부서져도 / 유구히 일어서는 푸른 깃발이여, / 언제나 파랗게 출렁이는 / 너의 설 레임을 사랑한다(「파도여, 파도여」중에서)
- 내일이면 행복해야지 /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랑해야지(「내일은 행복」중에서)
- 사랑은 흰 눈보다 더 희고 / 사랑은 초겨울의 빗방울보다 더 차갑다(「사랑하기에 그리운 것들」중에서)
그렇다. 박영무 시인은 위와 같이 ‘속삭임’과 ‘고운 사랑’, ‘설레임’, ‘아름다운 모습’ 등으로 사랑학을 설정하고 있지만 작품 「사랑하며 용서하며」에서와 같이 ‘사랑이 아름다운 꽃이라면 / 용서보다 더 고운 꽃이 있으랴 // 삶이란 한 방울의 이슬인 것을 / 허구헌 날 눈부심이어라 / 허구헌 날 덧없음이어라’거나 ‘언 가슴 서로를 부둥켜안고 / 역겨움도 꽃이 되는 / 자비의 눈매를 보아라 // 우리에겐 아직도 / 만나야 할 내일이 있다 / 우리에겐 아직도 / 아름답게 살아가야 할 / 희망의 씨앗이 있다 // 사랑은 용서를 낳고 / 용서는 사랑을 낳는다’는 결론처럼 고차원의 사랑학 처방을 적시하고 있다.
4. 시의 사회성 혹은 시사성의 매혹
박영무 시인은 사회적인 시사성에도 시각(視覺)을 멀리하지 못한다. 가시적(可視的)인 현실론 속의 비합리성과 부조리성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그의 시야(視野)에 펼쳐지는 사회성은 현대의 물질문명의 발달과 이기주의의 팽배로 더욱 불신의 시대, 상실의 시대를 초래하고 있어서 이를 시 정신으로 또는 시인 정신으로 치유(治癒)하거나 극복하려는 시인의 진정성에서 발현하는 순수 서정의 일환이다.
시의 사회성은 고립되지 않는 인간 생활에서 서로 교류하는 집단에서 야기(惹起)하는 모든 양상들이 의식적인든 무의식적이든 거기에 직면한 주제로 촉발되는 현실 비평의 정신이다. 복합적인 사회에서 노출되는 모순들이 갈등으로 전이(轉移)하여 복잡한 사고(思考)와 표현으로 나타내는 시법을 많이 활용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을 유로(流路)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인 시류(時流)에 따라서 창작하는 문학의 특성은 시인도 일반적인 사회인으로서의 공통성 위에 서고 그 작품의 주제가 사회에 대해서 다루는 능동성(能動性)을 표출하는 것이 이제는 예리한 시인의 감각에서 투사(投射-project)하는 현실성의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아주 소박한 생활의 일면에서부터 정치적이거나 사회의 변혁을 위한 시 또는 평화를 위한 소재 등 광범위하게 포괄하지만 어쩌면 현대의 반사회적인 노골화의 경향도 작품에서 수용하는 사유의 확대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못한다.
아담과 이브의 에덴은
어디론가 표류하고 있다
테러와 전쟁과 폭풍과 해일과 홍수와 지진과 열사와 가뭄과 질병과 화산분출과
오염된 찌꺼기들이 우주의 밀도에서
신음하며, 지구의 종말을 견인하고 있다
예고 없는 절망 속에서 겸애와 순응은 인멸하고
생명의 강줄기엔
수선화 한 떨기 피어나지 않는다
울음의 통곡소리가
은하의 강나루에서 하얀 뼈를 묻는다
그날은 오후 몇 시,
몇 분, 몇 초인가
족속들은 종말의 실마리조차
유념치 않는 줄기세포가 되어
말세의 가속페달pedal을 힘주어 밟고 있다
--「말세의 표류기」전문
보라. 이 작품에서 박영무 시인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바로 ‘말세’라는 최후의 언어가 태초의 창세기로부터 습성(習性)으로 몸에 배인 순수의 인성(人性)의 변화에 대하여 갈등하고 있다. 결국 ‘테러와 전쟁과 폭풍과 해일과 홍수와 지진과 열사와 가뭄과 질병과 화산분출과 / 오염된 찌꺼기들이 우주의 밀도에서 / 신음하며, 지구의 종말을 견인하고 있다’는 경고성의 어조는 현실적인 비애(悲哀)가 생명의 위협으로 까지 확산되어 ‘말세의 가속페달pedal을 힘주어 밟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인본주의(humanism)의 진선미(眞善美)를 주제로 한 시법에 몰두했지만, 이제는 친자연의 테마에도 심혈을 기울려 환경 보호와 오염 방지에도 우리 문학이 감당해야 하는 숙명적인 과제가 남아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삶의 목록을 개의치 않고
가파른 변혁은 시작되고 있었다
책 속의 본질은 훼손되고
바보들의 몰입은 착각을 양산하며
스마트폰에게 영과 육을
흡입당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의 반란」중에서
여기에서도 박영무 시인은 문명의 이기(利器)가 ‘책 속의 본질은 훼손되고 / 바보들의 몰입은 착각을 양산하며’ 우리 모두는 ‘영과 육을 / 흡입당하고’ 마는 위기감의 경악(驚愕)으로 그의 시사성을 분사하고 있다. 그는 다시 ‘편리한 도구들에게 차압당하며 / 그들은, / 그것들의 반란을 번성케 하리라 // 경이로운 극치가 시시각각 / 인간의 영역에서 거꾸로 걷게 하리라’는 경고장을 띄우고 있어서 인성의 상실과 이기주의의 팽배가 위협하는 세상을 질타하고 그것을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밖에도 우리의 역사적인 비극의 민족 분단의 현실을 노래하면서 ‘피가 끓어, 피가 끓어 / 정처 없는 우리들의 새벽은 / 속절없이 불타오르고 / 애증의 세월만 덧없구나 / 굽이굽이 강바람을 마신다’거나 ‘움켜쥔 손 바르르 떨리는 / 하늘과 땅 사이 / 애틋함만 격렬하게 넘나드는 / 저 너머, / 통일이여, 오라 / 통일이여, 어서 오라(이상「임진강변에서」중에서)’는 절규도 시의 사회성을 절감하면서 공감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일찍이 우리는 시의 기능이 순수하게 생활과 사회로부터 약간 동떨어진 미(美)의 추구를 본령(本領)으로 하는 것이라는 순정적인 사유에서 오늘의 이 거대한 현실적인 구도에서 파생(派生)하는 불안감과 위기감 등에서 탈피하거나 해소하려는 여망을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게 되어 어떤 경우에는 이 소재나 주제가 사회적인 비평정신을 공감할 수 있는 기능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박영무 시인은 서정적인 시심(詩心)을 잃지 않는 영원한 서정 시인이다. 그는 이 시집에서 대체로 천착(穿鑿)한 주제들을 살펴보면 존재의 확인에서 삶의 성찰로 이어지고 여기에서 추출한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사랑의 염원을 실현하려는 순수 서정을 시의 위의(威儀)로 설정하면서 순박한 이미지의 투영이 돋보였으나 그는 현실적인 분노의 정감을 도출하여 시사성 짙은 시법도 동시에 발현하였다는 점이 현대시의 흐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리도 눈이 부신 하―얀 순수
내 님으로 오시었네
깨우친 자비 방긋 웃는 사랑
한 떨기 뭉클한 옛 기억들…
대낮에도 보름달로 떠 오시는
황홀한 나비의 꿈
연잎 가리우고- 연잎 가리우고 부끄러움 타는
저, 우윳빛 속살 좀 보게나!!
무심히 지나치는 바람결도
그대 고운 향기 어루만지고 싶었는지
가슴 두근거리며
서성이네
내 님으로 오시는 꽃
이 작품「내 님으로 오시는 꽃-백련」전문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자연 서정의 극치(極致)를 음미(吟味)할 수 있다. 그는 백련(白蓮)의 이미지를 동화(同化-assimilation)의 원리가 인격화하는 특성으로 자연에 심취하고 있다. 시인이 자연을 자신 속으로 끌어와서 그것을 내적인 인격화하는 서정성은 우리 모두를 안온하게 하는 정감을 흡인(吸引)시키고 있다.
그는 ‘풀잎에 잠시 메달린 / 한 방울의 이슬방울일지라도 / 해맑은 반짝임일 수 있게 / 그 모습 그대로 놓아두어야 한다 // 한 떨기 꽃을 피워내기 위한 간절함에 / 잠못 이루거든 / 꽃보다 더 향기로운 일깨움을 / 스스로 움 틔울 순 없을까 / 징검다리 건너가는 꽃구름에게 / 손을 흔든다(「바람의 열차」중에서)’는 가냘픈 순정의 이미지가 바로 박영무 시학의 원류를 형성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다만, 매슈 아놀드가 말한 바와 같이 시는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고 다양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사물을 진술하는 방법이라는 논지(論旨)를 마음 깊이 새겨둘 필요가 있으리라. 시집 발간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