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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차 송광오찬포럼
일시: 2012/04/19(목)(12~13:30)
장소: 참배나무골 (2호선, 5호선 충정로역 9번 출구: 393-5292)
연사: 이 임성(2반)
주제: 걷기의 참맛[원고는 하단 참조]
참석자(18명): 이 용현 선생님, 권 봉주, 김 철, 김 규선, 김 기홍, 김 석우, 김 종철, 박 종성, 서 상권, 안병택, 이 일재, 이 임성, 이 희한, 정 종하, 조 운제, 채 희묵, 최 기언, 최 일송
왼쪽부터 박 종성, 김 석우, 김 종철, 서 상권, 권 봉주, 김 철, 최 기언, 안병택, 이 용현 선생님
오른쪽부터 정 종하, 김 규선, 최 일송, 이 희한, 김 종철, 김 기홍, 이 일재
늦게 오니까 큰 밥상 차지하고 사진도 크네... 운제(왼쪽)과 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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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건 전 국정원장 도·감청사건 변호하면서 무기력에 빠져
검찰의 꽃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법무차관을 역임한 신 건(전고 36회)씨는 김대중 정권 시절(1998-2003) 국가정보원 원장(2001-03)을 지냈다. 현재 MB 정권에서도 그렇지만 한 정권의 말기부터 비리가 터져나오고 차기 정권은 전 정권의 실세들을 한 사람씩 손을 보게 된다.
신 전 원장이 걸려들어간 게 정치인·공직자·언론인 등 각계 인사 1800여명의 전화 통화 도·감청을 지휘했다는 사건이다. 당시 검찰 기소장에 따르면 이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R2’ ‘카스’ 감청 장비에 입력해 은밀한 대화를 듣게했다는 것, 소위 국정원 X파일 사건이었다.
조직적ㆍ계획적으로 도청을 지시하고 보고받았다는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신 전 원장은 2005년 11월 15일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검찰 수사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혐의 사실을 부인했지만 먹혀들어갈리 없다.
결국 신 전 원장은 이 사건으로 이듬해 7월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 판결에 이어 2007년 12월20일 서울고법 형사10부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는다. 신 전 원장은 대법원에 상고했다가 바로 취하하며 형 확정 나흘만에 사면 복권된다.
이 임성변호사는 영장실질심사가 열리는 날 변호인으로 선임돼 상고 취하할 때까지 2년 넘게 신 전 원장 변호를 맡았다.
여유있게 얘기를 풀어가는 이 임성 강사
이 변호사는 4월 19일 송광 오찬포럼에서 가진 “걷기의 참맛”이라는 강연에서 “길게 목표를 세우고 걷기에 나선 것은 2007년 12월”이었다며 “그 때 난 여러 가지 이유로 머리가 아프고 모든 게 자신이 없고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며 걷기를 계획적으로 시작한 동기를 밝혔다.
국가 비밀이 많은 국정원의 특성상 이 변호사는 “우리 사무실에서는 혼자서 변론할 수 밖에 없었다”며 그 과정에서 정치적 또는 여론에 휘몰리면 얼마나 한 사람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지를 보았던 것 같았다.
이 변호사는 “상고를 취하하면 사면 복권을 해 주겠다”는 말에 즉각 취하를 했는데 “확정 판결 나흘만인 2007년 12월 24일 없던 일처럼 사면 복권 처리됐다”고 밝혔다.
신 전 원장이 한 모임에서 검찰의 부당함과 당시 주요 보수신문들조차도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몰아가는 것을 보고 이들 신문 등 언론에 환멸을 느꼈다고 토로했듯이 변호를 맡았던 이 변호사도 엄청난 충격에 빠졌었던 것 같다.
이 사건이 이 변호사가 밝힌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로 그는 신 전 원장과 유사한 무기력증에 빠지면서 돌파구가 필요했던 것으로 서두를 꺼냈다.
그래서 이 변호사는 무기력증이나 우울증세가 있는 사람에게는 걷기 이상 좋은 게 없으며 부인과 같이 하면 더더욱 좋다고 걷기를 예찬했다.
91년 변호사업을 개업한 이 변호사는 “한 책상 앞에서 수십 년을 보내다 보니 그것은 인생을 소비하는 것 같았다”며 “걸어보니까 언제 어디가 또렷하고 살아있음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물을 조금 밖에 준비해 가지 않아 땡볕에 그렇게 갈증을 느끼고 나서 식당에 들어가 주전자체로 마시며 호의호식이 뭐가 그렇게 필요한가를 느꼈으며 해안에 갑자기 물이 불어 생각지 못한 “가파른 벼랑을 오르면서” 느꼈던 두려움과 무사히 오르고 난 희열이 교차하는 걸 보고 세상사 별거 아닌 것 가지고 아웅다웅할 것 없음도 알았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책상에서가 아닌 값진“몸체험”만이 인생을 깊이 있게 해 준다고 말했다.
어부인과 같이 걸으면서 생각이 달라 다투기도 했지만 결국 서로 의지할 수 밖에 없다는 부부애를 더 키우는 계기도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본인은 지나가다 보이는 것 즉, 역사적 사건이나 암석 등 자연에 대한 탐구쪽에 생각이 미치는데 어부인은 감성이 풍부해 하찮은 풀 한포기, 붉게 물드는 저녁 노을, 날씨 변화 등을 보고 즐기는 등 관심 분야가 다른 것도 극명하게 나타나더라는 것이다.
해남까지 종단을 마치고 서해안, 남해안, 동해안을 각각 1년씩으로 해안을 따라 걸어볼 목표를 세웠는데 지금 걷고 있는 서해안은 너무도 들쑥날쑥해 물이 차고 나가면서 엄청나게 걷는 시간이 늘어지고 있다며 처음부터 너무 말도 안되는 계획을 세운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르네 데카르트(1596-1650) 명언의 “생각한다” 대신 “걷는다“는 말로 바꿔 “나는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며 걷기에 푹 빠져, 몇 년이 걸리든 기간에 상관 없이 한반도 해안선을 두발로 다 걸을 때가 올것으로 생각된다.
이 날 모임에는 이용현 선생님을 비롯해 총 18명이 참석해 다들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으며, 특히 47회 재경 동창회 김기홍 총무와 김 석우재무가 참석해 자리를 빛내 주었다.
심부름꾼: 김 규선/채 희묵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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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남은 일정
5월: 박 복진(3반): 울트라마라톤 그랜드슬래머 춘포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
6월: 안 병택(2반): 북구 생활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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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전문
걷는다는 것, 함께 걷는다는 것(2012년 4월)----(1)
1. 부부함께 걸어요
이게 다음에 만든 블로그의 이름이다. 우리는 그 이름처럼 부부가 함께 걷는다. 한 달에 몇 번 안 되지만 쌓아 놓으니 벌써 160일이 넘었다.
전에도 가끔 집사람과 근교의 산에도 다니고 먼 곳으로 나들이하기도 하였으나 길게 목표를 세우고 걷기에 나선 것은 2007. 12월이다. 그 때 난 여러 가지 이유로 머리가 아프고 모든 게 자신이 없고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때 집사람이 걷자고 제의하였다. 겨울이라 집에만 있는데 그렇게 햇볕을 받지 않으면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고 주장하며 걷자고 하며 나를 끌어내다시피 하였다. 난 이 때 그러면 전주까지 가자고 제의하여 서로 합의를 보는가 하는데 집사람이 해남까지 가자고 한다. 난 우선 전주까지 가보고 갈 수 있다면 해남까지 가기로 하였다. 그러다가 오산부근을 지나며 국도로 가는 것이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는 차량들 때문에) 매우 힘들 것 같아 강따라 가기로 계획을 세우고 될 수 있는 대로 강따라 걸어서 전주까지 갔다. 이미 그 때는 해남까지도 갈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겨서 전주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40일에 걸쳐서 해남 땅끝까지 걸었다.
새로이 우퉁수를 찾아서 한강을 따라 걸을까, 집에서 한강을 거슬러가다가 조령을 넘어 낙동강을 찾아 걸을까 생각하다가 편한대로 한강을 따라 내려가자고 생각하고 땅끝에 도착하기 직전에 집사람을 끌고 한강을 따라 걸었다. 그게 해안따라 걷는 시발이었다. 가면서 호기심 나는 것을 찾고 발에 걸치고 눈에 보이는 것에서 새삼 느끼고 배우며 집사람이 여행에 대하여 한 말 “알느함”을 모토삼아 걷고 있다.
2. 알고 싶어요, 느끼고 싶어요, 함께하고 싶어요
부부가 함께하며 다투기도 하고 서로 협동하기도 하고 각자 생각하기도 하며 제 길을 걷는다. 집사람은 “느끼고 싶어요.”에 방점이 있다면 난 “알고 싶어요.”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다. 그래도 함께하다보면 상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게 되고, 서로 공감하기도 하고 오해를 풀기도 하고 위험을 함께 벗어나 동지애를 느끼기도 하고 갑자기 낯선 사람처럼 다가올 때도 있다. 그렇게 서로를 알고, 서로를 느끼고 함께한다.
또 자연과 함께하면서 인문지리적인 지식을 얻게 되면서 새롭게 알게 되고, 그래서 우리나라도 크다는 소리도 하게 되고, 소박한 역사인식을 조금씩 키워가기도 한다. 법성포에 가면 숲쟁이 숲이 있는데 이를 통하여 선조들의 숲에 대한 생각을 이해하기도 한다. 보령서는 고려의 신유학을 만나기도 하고 함평에서는 모든 게 간척일 때, 생태를 보전하는 운동을 성공시켜 함평만의 갯벌을 그대로 보전하였다는 자랑스런 기념탑을 만나기도 한다. 군산에서는 채만식을 새롭게 알게 되고 최유찬 동기와 그의 연구를 새삼 알게 되기도 한다. 종교로 순교한 역사의 현장을 지나며 좌도 잘못했고 우도 잘못하였다는 논리가 아니라 폭력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아주 기초적인 것을 깨닫기도 한다. 그래서 그 순교나 희생이 기억되어야 하는 이유를 새삼 달리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모두 함께하는 속에 행복이 있음을 배운다. 함께 일하고 놀 때, 그 속에 행복이 있음을 배운다. 홀로서는 삶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태안반도의 지질을 보다가 무안, 신안의 지질을 보며 그 유사성에 놀라고 또 다른 점에 우리나라의 지질이 다양하고 그 지질사가 매우 복잡할 것이라는 느낌을 갖는다. 태안에서 만난 노지의 소철과 무안에서 만난 소철, 당진에서 만난 동백과 무안에서 만난 동백, 무안, 신안에서 보는 넓은 잎 상록수의 야생 등 생태계에 대한 이해를 키우고 싶다는 욕망이 일기도 하는 여행이 되기도 한다. 무질서한 개발의 현장인 경기, 충남의 해안을 보기도 하고, 무안의 해안에서 간척으로 상처입었지만 그게 그 주민의 사투와 같은 것임을 느끼며 황토흙 속에 배인 농심을 읽기도 한다.
3. 여행은 준비하는 것으로 즐거움이 시작되기도 한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아서 낭패를 보기도 한다. 지금도 준비가 안 된 채 나서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국내 여행이고 장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비교적 짧은 거리를 비교적 짧은 시간에 걷는 것이라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그 지역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물때를 못 맞추거나 벼랑 밑을 돌다가 올라갈 길을 찾지 못하는 어려움이 가장 큰 난관이었다. 그보다 더 큰 난관은 더운 여름날 가지고 간 물은 다 마셔버리고, 가야할 길은 아직 먼데 태양은 머리위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어 갈증을 풀 수 없는 것이었다. 그 갈증이 깊어 타는 목마름을 온몸으로 느끼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갈 곳의 지도를 복사하여 훑어보고, 국립해양조사원의 홈피에 들어가 물때를 파악하고, 기상청 홈피에 들어가 갈 곳의 날씨를 파악하고 옷차림을 결정하는 것으로 기본적인 준비를 마친다. 물론 잘 곳을 찾고, 먹을 것을 준비하고 나침반을 챙기고 하는 등의 일도 있다. 또 목적지에서 부를 택시 번호도 알고 가는 것이 좋다. 이때에 마음이 한껏 들뜬다. 새로 맞이할 걷는 길이 우리를 부른다.
현장은 늘 새롭다. 갈 길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해안을 따라 걷되 필요에 따라 변주가 필요할 뿐더러, 닥치는 환경을 미리 알지 못하기에 늘 새롭다. 그렇게 걸을 거리를 재어보고 가더라도 맞는 날이 없다. 돌아올 지점은 대개 몇 군데를 후보로 올려놓고 있으나, 꼭 한군데일 수밖에 없는 때가 있다. 그 때는 조바심으로 서로 다투기가 쉽다. 집사람은 지쳐서 가지 못한다고 눈치를 주고 난 지쳤더라도 꼭 가야한다고 눈치를 주고 하는 일이 벌어진다.
날씨가 예상과 달라 애를 먹기도 한다. 때론 그게 더 즐겁게 하기도 하다. 변화하는 날씨가 우리에게 새로운 그림을 그려 보여준다. 바람불다가 그친 날 다음 아침에 보는 해는 눈부시게 자연을 채색하고, 습기를 잔득 머금고 쏟아지는 눈은 모든 걸 덮어 깊고 순결한 하양을 선보인다. 밀려오는 검은 구름은 세상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4. 나는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
여러 분이 날 볼 때 고교시절 공부 좀 하더니 변호사가 되어 평생 우려먹고 잘 산다고 할 것이다. 그냥 그렇게 사는 삶에 걷기는 매듭을 맺었다. 특히 변호사가 되어서는 한 책상 앞에서 수십 년을 보내다 보니 그것은 인생을 소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변화가 없으니 지난 뒤에는 그날이 그날 같고 그 때가 언제였더라 하는 세월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걷기에 들어가자 그날들이 새롭게 살아났다. ‘1998년은 강따라 걸었던 해. 그 때 섬진강가에서 산을 넘으니 도로 좀 전에 지나온 곳으로 돌아 나왔지.’ 하는 추억이 날 붙잡는다. 머리로 세월이 지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여 겪은 것이 생각과 함께 하나로 남아 있다. 요즈음에는 몸철학이라는 단어가 그냥 무게가 있어 보인다. 머리로만 추리하여 쌓은 철학이 아니라 몸을 움직여 몸에 담긴 철학, 몸의 한계를 가지는 철학, 그런 것이 진정 함께하는 철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극단의 자유를 추구하면 천문학적인 돈을 쌓아 놓는 자유, 죽음의 자유, 남을 불편하게 하는 자유를 용인하여야 하는데 몸을 한계로 하면 그런 자유는 스스로 제약되기 마련이다. 천문학적인 돈이 있어도 몸은 그것을 다 감당할 수가 없고 몸은 그것을 다 필요로 하지 아니하고, 죽음을 스스로 초래하는 것은 몸에 극도의 고통을 주고, 다른 사람의 몸에 고통을 주는 것은 분리되어 살지 않는다면 자신에게도 고통을 주어 감내할 수가 없다.
걷다보니 하루를 걸으면 이틀을 잘 자고, 이틀을 걸으면 사흘을 잘 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편안한 숙면이 소원인 사람은 걸어보라. 죽고 싶은 사람은 걸어보라! 그래도 숙면이 오지 않고 죽고 싶다면 더 걸어보라. 마침내 죽기보다 잠을 더 원할 것이다. 그렇게 몸은 단순하다. 힘들게 움직이면 잠을 부르게 되어 있다. 그처럼 작은 일에 자신을 바치더라도 누구도 나무라지 않는다.
5. 걸으세요.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사십시오
걸어보면 새로워진 자신을 발견하고, 존재가 단순하고 자연은 서로 얽혀서 하나 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겁니다. 모든 것을 버려도 걷는다는 것만 챙긴다면 다시 삶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아니 그 확신이 생길 때까지 걸어보세요. 몸이 얼마나 단순한지, 얼마나 작은 것만을 요구하는지 알게 될 때까지 걸어보세요. 단지 물 한 모금이 원하는 모든 것이 될 때까지 걸어보세요.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사십시오.
나는 왜 걷는가? (2011년 3월)---(2)
이제 나이가 60인데 서서히 다가올 죽음에 대하여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생각을 정리할 필요도 있는 것 같다. 유행처럼 노인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세상에서 수명이 연장되어 90세 너머까지 살게 되리라는 예상 속에서 구구팔팔 하며 계속 팔팔하게 살다가 갑자기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한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 사후세계에 대하여 알지 못하기에 여기에 대한 불안도 있을 것이다.
젊어서 20대 초반에는 그 때의 정서로 죽음이 무엇인지 한번쯤 골똘히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난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하여본 적이 없지만 죽음에 대하여는 조금 생각을 하여 보았었다. 그래도 역시 알지 못하는 것이고 더 그런 생각에 매달릴 수 없다고 생각하여 스스로를 방황할 수 없는 철새라고 규정하였다. 물론 죽음에 대한 생각 뿐 아니라 젊음의 발산이라는 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연애를 하고 결혼도 하였으니 나 역시 청춘을 지나기는 한 모양이다.
그렇게 세월을 지내다가 홀연히 60에 이르렀다. 해마다 한 살씩 나이든 것이 아니라 이제 눈을 떠 보니 60이더라 하는 셈이다. 어이할꼬? 덧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아직 나에게 주어진 책임도 다하지 못하고 이 나이에 이르다니 할 때도 있고, 이제는 세상이 밀어내는 데에 순응하여 조금씩 있는 상태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 애써 밝게 웃어야 한다고 다짐할 때도 있다.
그러다가 죽음이 다가오면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병원에도 가지 말고, 자연이 부르는대로 흘러가게 해야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러나 실제로 당하면 아마 먼저 병원가자고 할 것이고 병원에 안 보내주면 고래고래 소리지르기나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 그 소리지르기를 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며, 미리 마음에 아픈 것도 자연이고 죽음도 자연이고 그리하여 내 몸이 분해되어 흙 속에서 다시 새로운 것들과 만나 다른 생명 속에 혹은 자연 속에 순환할 것이며 원래 그리로 온 것이 그리로 돌아간다고 새기고 또 새겨서 아픔에 따르는 고통을 이겨낼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죽는다고 따로 영혼이 남아 떠돈다고 믿기보다는, 세계는 온 생명이어서 나라는 생명도 자연과 일체가 되어 온 생명의 일부로서 그 온 생명에 따를 것이라고 미리미리 새겨서 그 두려움을 지울 수 있다면 좋겠다.
죽음이 임무를 마치고 떨어지는 낙엽처럼 자연의 순환의 과정이고, 그 낙엽이 산자락에 뒹글지라도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음을 느끼며 그 산이 그렇게 살아 숨쉬는 동안 낙엽이 제 일을 다하였다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는 낙엽을 볼 때에는 그런대로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동물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면 그렇지 못하다. 그러니 동물들도 자연사할 것이고 그것은 생명 순환의 과정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미리미리 깊게 세뇌하여 이 자연에 모두 순응하는 것이고 나만 예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저절로 우러나면 좋겠다.
바람은 바람일 뿐 현실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열심히 걸으며 햇볕을 많이 받고 내 몸을 움직여 살아있음을 느끼고 그 걷는 사이에 다른 것을 잊고 그냥 걷는 것과 보이는 것에만 열중하여 살피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다른 걱정은 웃음 속에 매달아 날려버리고 싶다. 그러나 그런다고 걱정 근심이 다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뒤에 더 큰 공허감이 올 수도 있고 우울한 심사가 더 깊게 파고들 수도 있다. 신앙하는 사람들은 이 때 그 신앙이 구원하여 줄 것이다. 구원을 위하여 미친 듯이 매달리게 될 것이다. 신앙인이 아닌 사람들은 체념으로 달래려 할 것이다. 마음을 우울하게 하는 것을 떨치려면 욕심부터 버려야 한다는 것을 체험하며 자연스레 체념하게 된다. 그러나 그 것은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버린다는 욕심을 내어서 욕심껏 버려야 하는 것이라 그것도 쉽지 않다. 그러니 돌고돌아 제자리에 오고만다.
그러다가 몸이 지치고 갈증이 온몸에 퍼지면 정말 물 한 컵이 소원일 뿐 다른 아무 것도 나를 달랠 수 없음을 느꼈다. 물 한 컵이 없어 우울한 것이 아니라 미칠 것 같은, 온 몸이 돌아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기분을 잊을 수 없다. 그런 상황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걸으면 이제 아직 내 육신이 성성함을 알게 되고, 자연이 나를 부르고 호기심을 자극하여 나를 깨운다. 그것이 좋다. 그러나 몸이 지칠 정도로 걸으면 몸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몸이 안다. 비속하게 말하여 돈도 명예도 아니다. 한 끼의 거친 식사와 물이다. 그것이면 족하다. 마음도 다른 것을 좇지 않는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무사히 마치고 나서 간단한 식사는 그렇게 달다. 배불리 먹고 포만감을 만끽한다. 남들이 무어라고 할지 몰라도 난 그저 비싸지 않은 식사가 좋다.
그렇게 내 발로 걸어서 살피는 것이 좋고, 그 바람이 좋고, 풍광이 좋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며 인생이 한바탕의 마당극처럼 왔다 가는데,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느끼는 것이 좋다. 그러면서 내 몸이 지치고 힘이 빠져갈 때, 조금 쉬면서 그저 살아 움직인다는 것만으로 감사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좋다. 아마 그러다 보면 그렇게 사는 인생을 마감하는 날이 오더라도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종처럼 깊은 신앙은 아니지만 자연 속에서 내가 하나되었던 적을 그리며 감사해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 걷기는 오늘의 건강을 위한 것이고 호기심을 채우는 것이고 즐기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장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그 노년의 과정과 죽음을 대비하는 것이기도 하다.
왜 부부가 함께 걷는가?
현실적으로 어부인의 협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런데 집사람이 함께 걷겠다고 나서니 나로서는 더 없이 다행이다. 부수적으로 서로 상대방의 생각을 알 수 있다. 걷다가 보면 속도의 차이로 둘이 서로 떨어져 걷게 된다. 이상하게 다른 건 다 집사람이 잘하는데 해안가를 걷는 것은 내가 빠르다. 산을 올라도 나보다 잘 오르는데 웬일인지 평지를 걷는 데는 좀 느리다. 그래서 앞서가다가 핀잔을 듣기도 하고 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함께 걸으며 힘들어 하고, 좋은 풍광을 보며 고맙게 생각하고, 남편에 의지하여 이런 곳을 걸을 수 있다고 좋아하면서, 또 함께 집안일을 걱정하며 붙어 지내니 서로를 조금은 더 받아들이게 되는 모양이다. 그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왜 친구들과 함께 하는가?
내가 일정을 맞추어 행하지는 못하지만 나에게 미리 연락하여 함께 하자고 하면 환영할 것이다. 이름도 없는 해안을 마구잡이로 다 걸어서 간다는 개념의 이런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적기는 하지만 호기심으로 한번쯤 가보고 싶은 사람도 있고, 늘 함께 하고 싶어도 형편상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어쩌다가 좋은 곳을 지날 때 함께 가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나를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다. 또 나도 자랑하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각기 전문 분야가 있고 감성이 다르고 취미가 달라 모두 다 그 특색을 드러내며 여행을 더 풍성하게 한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한다. 집사람은 자신의 친구를 불러 모으기를 좋아한다. 집사람이 부인을 끌어내어 남편이 따라오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는 해도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서 어쩌다가 함께하게 된다. 그날은 축복이 깃들어 더 웃음이 풍성하고 즐거움이 넘친다. 농담이 쉽게 나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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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송광포럼이 멋있다. 친구들의 이야기가 맛이 있다. 그리고 친구들이 자랑스럽다.
임성이의 생각과 말과 글을 대하면 항상 가슴이 두근거린다.
진솔함이 주는 감동으로 진한 여운이 길게 느껴진다.
남은 길을 끝까지 잘 걸으면서 기록으로 남겨주면 너무 좋을 것이다. 감사하다^^
감사.
영구가 확실한 팬이구만^^
격려에 힘입어 느리더라고 끝가지 걸어
마칠께.
임성 친구 부부의 걷기가 우리 친구들에게 삶의 행복을 선사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희묵 친구의 소개 글도 무척 따뜻하게 느껴집니다.다만 일시의 1월을 4월로 바꾸시기를...
감사합니다.
주제넘은 이야기가 많은데도 이해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꼭 그렇게 흘리고 다녀요.... 더운데 그것까지 봐주시고 김교수님 고맙습니다... 매일 좋은 글 고맙습니다
변호인이 나 혼자 였다는 것은 아니고요.
우리 사무실에서 나 혼자였다는 의미입니다.
도로를 걷는다는 것, 즉 도로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 마라톤과 많이 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저야 임성이의 생각 끝자락에 매달려도 그 처럼 큰 생각이 안 나겠지만, 임성이가 도로를 걸으며 토해내는 사유의 깊이가 무척 깊은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제가 하는 취미인 마라톤 의미와 많이 비교되어 더욱 살갑습니다. 춘포 박복진
극한의 경주인 울트라마라톤은 더 할 겁니다.
작은 갈증으로 체력을 모두 소진하는 마라톤 후의 감정을 느낄 수는 없겠지만 상상은 돼요.
좋은 이야기 기다립니다.
걷는다는 것,
그 와중에 자꾸만 단순해져
때론 파도가 되고 바람이 되고 꽃이 되고 나무가 되고
돌이 될 수 있는....그런 시간인 것 같았습니다.
경이로운 자연 속에서 경이롭게 말입니다.
자꾸만 단순해진다는 말이 딱 맞는말이네요.
상원이 말이 쉽고도 꽂히는게 있네요.
다음에 함께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