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황
“이제 여러분도 중요한 직책을 맡고 남자만큼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열심히 하지 못할 것 같으면 휴직하십시오.” 읽는 저도 속이 뒤집히는데, 직접 들은 필자는 어땠을까요. “가슴뼈와 갈비뼈에 통증”, “이를 너무 앙다물어 어금니가 아플 지경”같이 혐오의 말을 들은 후, 몸의 통증을 묘사한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이후 산책도 외출 결재를 받아야 했다는 대목에서 숨이 턱 막힙니다. 학교 안에서 여성 교사를 어떻게 통제하는지 잘 보여주는 글이에요. 2019년에 있었던 일이라니, 믿고 싶지 않네요. 결론에서 필자는 ”나와 관계된 사람들을 눈치 보며 사는 편을 택하겠다.”라고 말하는데요. 여기서 여성혐오의 문제가 사람 사이의 예의/눈치에 대한 문제로 바뀝니다. 저는 학교에서의 여성혐오 문제라는 주제에 집중해 이 글을 마무리하면 좋겠어요. 그 점심시간, 주황이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글에서 마음껏 풀어놓아도 좋겠어요. 지금도 곳곳에 주황의 반박이 담겨 있기는 하지만, 본격적으로 교감/교장의 말이 왜 여성혐오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경험한 사람으로서 풀어써 주면, 학교 안의 여성혐오에 대한 더 훌륭한 문제 제기가 되리라 봅니다.
(글을 읽으면서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권김현영)의 한 대목이 떠올랐어요. “여성이면서 동시에 시민이자 개인이 되기 위해서 여성은 여성으로서의 규범과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모두 수행하고, 궁극적으로 남성과 유사한 개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가부장제다.(8장)”)
은유 - 학교에서 여자 교사라는 이유로 듣는 망언들. 이란 글을 연재해도 좋겠어요. 이 글에서 상황–심리가 몇 가지의 사례가 겹치니까 공감이 되면서도 다소 복잡하게 느껴져요. 한편에 하나씩 담아내면 더 전달이 잘 될 것 같습니다.
여정
배움의 공간이 되어야 할 학교에서 행해진 선생님들의 신체 폭력과 성폭력, 언어폭력. 무언가 해야 한다고 느꼈던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운동장에 모이는데요. 저는 이 장면에서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폭압적인 환경에서 저항하는 행동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궁금해요. 사소하더라도 여정이 기억 나는 계기가 있었다면 적어주세요. 이 글은 그런 폭력적인 환경 속에서도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준 교사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그들 때문에 나는 옳지 않은 일에 항의하고 아랫세대에게 미안해 하고 부끄러워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주제이기 때문에, 사례를 들어 이 문장을 논증해주면 좋겠어요. 좋은 선생님들의 영향이 나에게 어떻게 남아있는지 구체적으로요. 첫 문장이 쌍둥이 이야기로 시작해서 언니 이야기를 할 줄 알았어요. 고등학교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더 집중될 거 같아요. 이 글을 읽으니 여정은 역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례가 너무 생생해서 숨도 못 쉬고 읽었어요. 다음에 야학교사를 했던 이야기도 풀어주세요. 기대됩니다.
은유 - 폭력 교사의 글과 좋은 스승의 글을 두 개로 나누어서 듣고싶네요. “좋은 시를 많이 읽는 사람이 되라”고 말해주는 선생님 같은 사례 너모 소중합니다.
애솔
축구를 하기 위해 설문 조사를 하고, 선생님을 설득하다니. 애솔의 딸에게 반했습니다. 저도 축구, 농구를 좋아했는데 못했거든요. 이 글을 읽으며 대리 만족했어요. 지금 딸은 몇 살일까요?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계속 축구를 하는지 궁금했어요. 이 글은 “여성스럽지 않은”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이야기인데요. 애솔이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주어서 저도 저희 엄마가 바라던 “여성스러움”이 무엇이었는지, 그 마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특히 딸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겪은 차별 경험을 떠올리는 부분이 좋았어요. “축구를 좋아하는 한 명의 여자, 여자를 사랑하는 한 명의 여자, 대학원을 다니다가 공부를 접고 결혼한 한 명의 여자, 생활력이 강한 한 명의 여자.” 각자 전혀 다른 삶의 결을 가졌다고 생각됐던 여성들을 연결하는 이 문장이 저에게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딸아이의 삶을 응원한다.”는 결론이 추상적이어서 아쉬워요. 위에 말했듯이 지금 딸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걸 편안하게 바라보는(응원하는) 애솔의 이야기가 나오면 좋겠어요.( 저는 “딸아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는데요. 성인이 된 딸을 “딸아이”라고 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 들어서요.)
은유 - 도서관, 책, 떡볶이, 원피스, 미팅, 쇼핑 등 ‘보통의 여자’의 삶을 그리는 항목이 구체적이라서 실감이 났어요. 이런 상은 어떻게 애솔이 갖게되었을까도 돌이켜보면 좋겠습니다.
물결
처음부터 끝까지 한숨에 몰입해서 읽었어요. “유괴의 상황만 경고했지 누가 나를 만지거나 아는 척을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지 않았다.”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어요. 생각해보니 정말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대처만 알려주지, 일상적인 성폭력에 대한 대응은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알려주지 않네요. 당사자의 언어로 자기 경험을 서술하고, 그에 대한 문제 제기까지 명료하게 전달되어 좋았어요. 13살 때 놀이터 사건 이후 “그 뒤의 조치는 없었다.”라고 했는데, 필자가 생각하기에 어떤 조치가 있어야 했는지 적어주면 독자들에게 공부가 될 거 같아요. 학생이 학교 안에서 성폭력으로 사망했는데 “가로등 추가 설치”가 대책이라니 화가 납니다. 물결이 이 사건만 가지고 글을 더 써 봐도 좋겠어요. 사건 이후 학교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으니까요. “줄넘기에서 2호관까지”. 여성의 생에서 끊이지 않는 성폭력을 표현한 제목이라서 좋았는데요. 장소를 중심으로 한다면 “놀이터에서 2호관까지“가 더 적절한 제목이 아닐까 싶어요.
은유 - 글에 나오는 연령대별 차별과 폭력 경험을 물결이 어떻게 문제의식을 갖고 꿰어내게 되었는지, 그 각성의 계기가 나오면, 마지막 단락 ‘지금 여기까지 오도록 애쓴 여성들의 노고’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것 같아요. 2호관 이야기는 저도 후속 취재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생각됩니다. 써보면 좋겠어요.
유주
“선생님, 근데요. 이거 엄마한테 보여 줄 거예요?” 이 한 문장 안에 아이들이 느끼는 불안과 압박이 담겨 있네요. 이 대사로 글을 시작해도 좋겠어요. 엄마, 아빠한테 드러날 일 없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필요했나 싶어요. “토요일에 학원만 3개라는 하윤이”라는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요. “시험 결과에 따라 … 친구들과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긴다고 했다.” 저는 성적에 따라 친구들 간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궁금했어요. 어른들이 만든 서열을 아이들이 내면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당연한 건데도, 마음 아프네요. “좀 머리가 큰 6학년”이라는 표현이 관용어이긴 한데, 마음에 걸려요. 아이들이 들어도 편안한 표현으로 대체하면 좋겠어요. 논술 선생님으로 유주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서 좋았는데요. 사례 하나하나 소중하지만, 갈수록 비슷한 이야기들이 반복돼요. 중간중간 유주의 생각과 시선이 나오긴 하지만,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도 할 수 있는 문제 제기가 아닐까 싶어요. 저는 이 문제 제기를 좀 더 세심히 다듬어 보면 좋겠어요. 논술 선생님으로서 유주가 상처받는 아이들을 보며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요? 그 이야기를 더 자세하게 들려주세요.
은유 - 흥미롭게, 조마조마하게 읽었어요. 논술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저 많은 학원과 학습을 해내는 것의 동력이 무얼까. 그 부분 물어봐서 써주면 재밌겠어요. 아이들이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이익과 누리는 것들에 대해.
눈썹달
짧은 글인데 소설책 한 권을 읽은 기분이에요. 판촉물이 번창했던 80년대에는 인쇄소 보조원으로, 자영업이 확장하던 90년대에는 치킨집 사장님으로, IMF 이후에는 우체국의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아빠의 이야기. 아버지의 직업 변천사에 시대가 녹아있네요. “상대적으로 배달이 편한 구역이 아파트는 임시직 집배원에게 허용되지 않았다.” 이런 차별 너무 속상합니다. 눈썹달이 얼마나 아빠의 노동에 귀 기울이고 관찰하며 살았는지 느껴져요. 더운 여름임에도 긴팔 정장을 입은 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에 육체노동자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뿌리 깊은가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 아빠가 건물 청소 노동자라고.” 눈썹달은 누구에게 이 말을 하기 어려운 걸까요? 저는 그 대상을 구체적으로 써보면 좋겠어요. 직장 동료, 친구, 남편 등등. 메타포라에서는 할 수 있지만, 그 사람들, 어떤 공간에서는 그 이야기를 왜 할 수 없는지 적어 보면 좋겠어요.
은유 - “친구들과 걷다가 아빠의 배달 오토바이를 마주치면 모른척 했다.” 40년 아버지 노동의 역사와 새하얀 와이셔츠 입은 아버지를 부러워했던 딸의 시선이 짧은 동화처럼 그려집니다. 몸 써서 일하는 그을린 피부를 가진 모든 아버지(와 딸들)의 이야기로 읽혀서 너무 좋습니다.
무제
무제가 매일 출퇴근하는 잠실역의 풍경이 제가 다니는 서울역의 풍경과 너무 비슷해서 놀랐어요.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자고 있는 모습은 (..) 하나의 큰 물체처럼 보인다.” 사람이 거기 자고 있는데, 나는 사물처럼 보고 지나다녔구나 깨닫게 하는 문장이에요. “처음엔 무서웠”던 그들이 “얼굴이 익숙한” 존재로 다가오기까지 무제가 끊임없이 관찰했다는 게 느껴져요. 동정하지 않고 어떻게 다른 존재를 만날 것인가,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글입니다. 저는 <나는 숨지 않는다>(박희정 외)라는 인터뷰집에 나온 70대 홈리스인 박복자 씨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그 책을 읽으면서도, 이 글을 읽으면서도 누군가를 고유한 존재로 이해하고 만나려면, 우리가 더 섞여 살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읽으면서 무제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 궁금했어요. 누군가에게는 그저 사물과 풍경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은유 - “의식해야 하지만 동시에 의식하지 않아야 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의 어려움을 잘 보여주었네요. 노숙인들은 범죄 발생율이 높지 않은 데도 저를 포함해서 사람들이 ‘해코지’의 두려움을 갖는 게 왜 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망고
이사장이 직원들을 최종 학력으로 소개하는 장면이 놀랍네요. 학력만으로도 “그 사람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는 태도가 고스란히 보입니다. 이 일 외에도 다른 사례가 많을 거 같아요. 있다면 몇 가지 더 적어주세요. 전 이런 일상적인 문화가 탈북청소년의 “교육 지원” 방식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의심합니다. “검정고시 통과하자.” “특별전형 준비하자.” 이런 업무 방식은 망고가 일을 시작하며 누군가에게 인수인계를 받았던 걸까요? 단체는 왜 이런 방식으로 아이들을 지원했을까 궁금했어요. 필자의 가치관이나 생각도 중요하지만, 저는 업무 방식이 개인의 가치관만으로 정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좀 더 단체가 가진 문제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서술하면 좋겠어요. 비영리단체는 좋은 일을 하고, 좋은 문화를 가졌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편견을 깨주는 글이라서 좋았어요. 망고가 이 단체에서는 얼마나 일했는지도, 나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도 정보를 주세요.
은유 - ‘학교’와 ‘학벌’이 사람을 파악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어버린 사회. 현재를 판단하고 미래를 재단하는 데는 예외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 단락에 필자의 이야기와 현실에서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을지 더 구체적으로 듣고싶네요.
바다
“학교에 고모가 왔으면 좋겠어.” 이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지 글을 읽으며 알았어요. 나이 든 사람에 대한 배제와 돌봄은 당연히 여성이 한다는 젠더규범이 담겨 있네요. “학교에 갓 입학한 조카”가 이런 태도를 배우기까지 한두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씁쓸합니다. “업무에 따라 정확하게 성별이 구별”된 학교의 문화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어 좋았어요. 중간에 성추행 예방을 위해 돌봄이로 여성을 선호하는 것이 영리한 선택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필자가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건 알겠지만, 이런 주장에 대한 반박까지 나오면 좋겠어요. 저는 “주말마다 아이들을 위해 캠핑을 다니는” 젊은 아빠들의 행동이 다분히 젠더 규범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집안 일은 여자가, 집 밖은 남자가‘ 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보이거든요. 아이 돌봄에 아빠 역할이 많아지고 있다는 필자의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이벤트적인 캠핑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돌봄 역할을 맡고 있다는) 구체적인 근거가 필요해요. 지금 결말은 자칫 ‘남성들은 노력하는데, 사회문화나 시스템이 그 노력을 받쳐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읽힐 수 있어서요. 필자가 생각하기에 바뀌어야 하는 지점을 더 정확하게 짚어주면 좋겠어요.
은유 - 학기초 학교 앞 풍경이 그려지는 글입니다. “젊은 엄마들이 바글바글”한 동네라는 건 전업 맘들이 많다는 거겠죠. 이러니 출생율이 낮겠구나 싶기도 하고요. 바다의 일상 경험과 고민이 잘 정리된 글이라서 그런지 문장이나 흐름이 잘 읽힙니다.
달리
인권 교육을 하면 꼭 ”아예 말을 안 하는 게 낫겠네요.“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간 차별과 혐오의 말만 해왔다는 자기 고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이 대사가 왜 문제인지 달리의 생각을 적으면 좋겠어요. 보통 뭐가 문제인 줄은 아는데, 그게 왜 문제인지 말하기는 어렵거든요. 달리의 생각을 적어 주면 비슷한 상황을 겪는 독자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달리의 글은 소수자의 입장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가치관이 잘 담겨 있어 읽는 사람에게도 많은 배움이 됩니다. “시혜적인 시선으로 이주민을 바라보며 자신의 기준에 벗어날 때 혐오하고 배제하려는 민낯”이라는 표현이 정확해서 좋았어요. (‘민낯’, 읽고 쓸 때마다 ‘맨 얼굴이 왜 부정적으로 묘사되는가?’ 생각이 들어 고민되는 표현이에요.) 이주민을 지원하는 센터에서 일하며 겪은 사례 몇 가지를 더 들어주면 좋겠어요. 세 번째 문단부터 결론까지 핵심적인 메시지는 “차별받는 사람은 차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로 보여요. 저는 이 대목에서 직장 이야기가 사회 전체로 커져서 아쉬웠어요. 이 글에서는 직장 이야기로 한정해 이야기를 마무리하면 좋겠어요. 제목이 “예의 없는 사랑”인데, 이 말이 달리한테 와닿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목인데 글에는 그 내용이 나오지 않아서 궁금합니다.
은유 - 마지막 단락은 하나하나가 다 글감이네요. “차별과 배제가 맥락에 따라 일어난다는 것” 이걸 달리의 주제로 안고 글 한 편마다 풀어내면 좋겠어요. 사례를 잘 수집해서 일반론으로 흐르지 않게요.
선선
“A4용지 2장짜리 편지”만으로도 눈물이 나네요. 새벽에 신문을 배달하던 엄마가, 아침에 딸을 깨워 오토바이에 태워 데려다주던 엄마가 얼마나 고단했을까요. 그런데도 시간을 내어 그 긴 편지를 썼다는 게 절절하게 다가왔어요. 어린 선선에게 그 편지가 “찔찔 울고 엉텅이 털고 친구들과” 놀게 하는 힘이었다는 대목도 마음을 울립니다.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을 길게 빼곡히 했다”라고 했는데, 엄마가 어린 선선에게 미안해했던 일들이 무엇인지 기억이 난다면 적어주세요. 이 글에는 아빠, 엄마 이야기 모두 담겨 있는데 분리해서 한 편씩 쓰면 좋겠어요. “얼음 조각에도 머리카락 한 올에도 발이 베는 것 같았다.” 저도 베이는 것처럼 아픈 문장이었어요. 이제 성인이 된 필자가 “큰소리로 나를 망치는 말들을 늘어놓았다.”라고 했는데, 어떤 말들일까요? 그 말들은 왜 아빠가 아니라 나를 망치는 걸까요? 아빠에 관한 글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아빠에게 상처 주고 싶은 선선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가 더 나와야 할 거 같아요.
은유 - 엄마의 편지가 정말 궁금합니다. 그부분을 꼭 넣어주세요. “미워하지 않았다가 미워하기를 반복하는 것보다 그냥 미워하는 게 속이 편했다.” 가정폭력을 평생 일삼는 아버지와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문장 같아서 마음이 아팠고요. 글로 써낸 용기가 멋집니다.
은조
“‘등짝 스매싱’이라고 부르며 폭력을 애정으로 포장해 왔기 때문에.” 이 문장에 밑줄 그었어요. 무심코 쓰는 표현이 폭력을 감추는 데에 일조했다는 걸 배웁니다. 읽고 나서도 계속 제훈이가 지금 어떤 상황일까 걱정돼요. 모두가 A의 폭력을 두둔하고 정당화할 때 은조가 나서서 막아주어 다행이에요. 그런데 다들 모른 척하고 있는데 언제 어떻게 은조가 나서게 된 거지? 시간순으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 궁금했어요. 그 이후 “며칠이 순식간에 지나갔다.”라고 해서 아무것도 못 한 줄 알았는데, “가장 먼저, 충격받은 듯한 B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라고 해서 갑작스러웠어요. 행간을 연결하는 문장이 필요해 보여요. 중간중간 “분노 조절이 어려운”, “감정 조정을 잘 하지 못한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마음에 걸려요. 분노 조절이 어려운 건지, 안 하는 건지 우리가 판단할 수 없으니까요. “제훈이는 어떻게 지킬 수 있는가?” 묵직한 질문입니다. 저는 여기서 끝나면 좋겠어요. 나는 아이가 부모에게 맞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그 후에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합니다.
은유 - 은조가 동네에서 육아하며 겪고 경험하는 일들은 (서로 친해서겠지만) 스토리가 생생하고 등장인물 캐릭터가 선명해서 잘 읽혀요. 은조의 폭력을 인지하는 능력과 감수성으로 다른 양육자 독자를 위한 글을 써봐도 좋겠어요.
우주진주
새벽 칼질은 왜 엄마가 해야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될까요? 칼질 소리가 정서적 안정에 그렇게 도움이 된다면 그걸 잘 아는 아빠가 나서야 하는 거 아닙니까? 첫 문장부터 화가 머리끝까지 나네요. “사람을 바꾼다는 것은 어렵다” 여기에 얹어서 바뀔 마음이 없는 사람을 바꾼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어요. 필자는 가사, 육아를 분담하지 않는 남편에게 스트레스받는 동시에, 그런 남편을 바꾸지 못한다는 비판까지 듣네요. 이 상황에서 필자가 선택한 전략은 “화내고 요구하는 대신 혼자 그냥 해버리기”인데요. <페미니즘의 도전>,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같은 책을 읽으며 그간의 이런 전략을 후회하는 대목이 나와요. 이 책들을 읽으며 왜 “남편을 붙잡고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라고 생각했을까요? 남편에게 말하고, 설득하기를 해야겠다고 필자가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나오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남편에게 말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글에서 마음껏 써보세요. 차분하고 우아하게 말고, 우주진주만의 고유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요. 말하기의 목표가 (남편) 설득이 아니어도 되니까요. 저는 우주진주가 마음껏 말하고, 속이 후련해지는 말하기가 되면 좋겠어요.
은유 - 싸우기보다 그냥 내가 해버리기. 이게 여성들이 많이 쓰는 전략 같아요. 타인을 설득시키는 것, 작은 변화라도 만들기 위해 싸우는 게 얼마나 큰 에너지가 드는 일인지, 범위를 좁혀서 글감으로 삼아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친정엄마가 손자 백일잔치에 떡을 준비했다고 화를 내는 시아버지라니. 읽고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가족인데 왜 그러냐”라는 말을 시아버지에게 돌려드리고 싶네요. 하지만 이 모든 게 “가족”이어서 그러는 거겠죠. 폭력, 폭언을 비롯한 각종 부당한 요구들까지, 너무나 “가부장적인” 시아버지의 이야기. “며느리를 길들인다”라는 말이 정확하게 느껴집니다. 시아버지의 행동 대부분 자기 마음대로 상대를 통제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시아버지의 사과 이후 필자는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기로 하는데요. 그 “최소한의 도리”가 무엇일까요? 명절에만 가는 것인지 등등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주면 좋겠어요. “적당한 거리를 지킨”다고 했는데 어떻게 거리를 지키는지 이야기해주면 독자에게도 공부가 될 거 같아요. “나는 그저 내 목소리를 작게라도 내려고 노력”한다고 했는데, 그 사례도 궁금해요. 사과 이후 변한 관계, 그리고 나의 전략을 지금보다 구체적으로 써주면 좋겠어요.
은유 - ‘2년 동안 시댁을 가지 않았다.’ 이게 첫문장이어도 좋겠어요. 부글부글 하다가 후련합니다. 시댁에서 낙인 찍혔다고 했는데 오늘 입장에서 뭐가 안 좋았는지도 궁금하고요. 안 낳고 안 가야 가부장제에 미세한 금이라도 가는 것 같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제가 글을 쓰면서 얼마나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필요했었는지 몰라요. 생각하니 갑자기 또 울컥.
쓸 때 고민했던 부분 딱 꼬집어 지적해주셔서 감사해요, 도리반장님.
그리고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끄집어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은유 쌤.
지금까지의 리뷰 참고해서 꼭 다시 써보겠습니다. 전에 썼던 글도 고쳐보려고 하는데 쉽지 않네요.
학인들의 글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과제 하나 제출하기도 어려운데. 매주 이렇게 리뷰를 작성하는 도리님. 그 정성과 시간. 노고에 감사 드립니다./ 도리님의 리뷰를 읽으며 감탄합니다.메타포라를 더 빛나게 하는 존재구나.평론가로 등단해도 되겠다.저 같이 미숙한 사람은 깨닫지 못하는 다양한 시선으로 글을 꼼꼼히 읽어주고, 더 나은 글이 될 수 있도록 콕콕 찝어 알려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마워요.아름다운 주말되세요 / 메타포라에서 글쓰기 과제 제출 / 학인들의 글 읽기 / 수업 / 도리님의 리뷰 → 이 종합선물세트가 조화롭게 이뤄진다면 더 퍼펙트로 다다를 수 있겠네요 + 게다가 '방과후 학습'까지 ^^
저번주 리뷰는 제게 웃음(?)을 주었다면 이번주는 눈물을 주시네요! 쓸 때는 남일 쓰듯이 써내려갔는데 리뷰 보고 노트북 앞에서 왕 울어버렸어요. 요즘 환절기라 자주 울어요(?) 그리고 저는 지금까지 시간 순으로 글을 쓰고 있어요. 비슷한 글의 구조를 쓰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주저했던 주제로 글쓰기를 하면서 후련하고 공감 받는 것도 좋지만 제 글이 나아지기 위한 매서운(?) 리뷰도 기다리고 있답니다. ;-) 늘 고맙습니다. 도리도리, 은유쌤!
늘 섬세한 눈으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더 이어서 또 써보도록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