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19-29]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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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데스다 연못가 38년 된 병자의 병이 낫고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병이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간다. 이 날은 안식일 이다.
이 일후 유대인들은 안식일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이 옳지 안고 병을 안식일 날 고친 것도 옳치 아니하니라 말한다.
그러나 그는 병을 고치신이가 누군지 모른다. 예수님은 그를 만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말라" 말씀하신다.
안식일 날 일을 함을 박해하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유대인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알지 못하므로 더욱 죽이고자 한다.
[요16:2-3]
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아들의 권한>
아버지의 아들에게 주어진 권한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어떤지를 다시 밝혀주게 된다.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들은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본다. 아들은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하지 않는다.
이것을 이해 하는데는 깊은 삼위의 존재를 알아야 하는 신비를 담고있다.
스스로 존재 하신 아버지에게서 스스로 나오신 아들도 존재로 계신다.
아버지의 행하시기 원하심만으로 행하리라 스스로 아들은 결정하셨다.
아버지의 일을 말씀으로 존재하여 나타내시는 그분은 아버지의 말씀이다.
결국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은 말씀으로 같이 행하는 것이다.
참 존재의 안에 거하시는 실재의 신비한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바로 생명의 관계를 나타내는 진리이다.
그 진리의 관계를 안다는 것은 그 관계의 연속의 관계 형성이 이루어 진 것이다.
다시말해 아들의 안에 거하는 놀라운 은혜의 또다른 관계로 나를 이끄는 것이 생명의 신비한 영속의 형성이다.
이 신비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만세전의 존재이며 그 놀라운 신비한 관계를 드러내시어 인간을 그속에 이끄시려는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로 완성될 것이다.
"아버지께서 그 아들을 사랑하시어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신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일을 아들이 나타내도록 하신다.
그것으로 우리가 놀랍게 여기게 하시려고..."(20절)
여기서 우리의 정립되지 않은 삼위일체의 혼돈을 살펴보려 한다.
기독교 안에 성부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해가 너무나 난립되어 있다.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곧 성부 하나님으로 오해하며 성부 하나님의 존재를 찾아가지 못하는 것이 실상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너무나 사랑하시어 아들에게 다 보이시며 정권을 모두 허락하셨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위'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면 절대 잘못 알고있는 것이다.
예수는 스스로를 아버지의 말씀으로 존재하시는 아들 하나님이시라 나타내시며 아버지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요14:28)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정확한 '위'를 드러내시는데 기독교가 이것을 바로 알려하지 않고 뭉크리고 있는 것은 철저히 수정되어야하는 진리의 문제이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21절)
아들이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아버지의 원하심이다. 그리고 그 아들은 '자기가 원하는 자들'이란 아들의 권한을 말한다.
여기서 '살린다'는 죽은 육체가 살아나는 종말적 의미와 사망의 비존재 세력(사단)에 삼킨바 된 영적 생명의 살아남 모두를 의미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다.
그것의 이유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다.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는 것이니라.(22,23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24절)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나를 믿는 다는 것은 '내 말'을 듣고 '내 말'을 믿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를 믿는 것이다.
4장의 왕의 신하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다 함과 같이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으로 오신 그 말씀을 믿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생명이 있다.
육신을 이루는 숨쉬는 생명이야 이 땅 사는 동안의 영혼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되다 목숨을 다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에 담고 온 생명은 하늘의 말씀이 생명을 풍성케 하는 것이다.
(요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6:63) "아들의 말은 생명을 주는 말이며, 영이요 생명이다"
그렇게 나의 말과 나를 보내신 아버지를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고 그 생명은 영원할 것이다. 이 생명을 받은 자는 심판은 이르지 않는다 말씀하신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25절)
이 땅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은 죽은 자들이다. 죽은 자는 생명을 갖고 오신 아들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날 자이기도 하다. 다시말해 이 땅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기회이란 것이다. 생명을 가진 아들을 믿으므로 말이다. 지금 하나님의 그 아들이 왔다. 지금 나의 음성(말씀)을 들을 때다. 그리하면 아들의 말씀은 생명이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살아나리라.
그 생명의 근원을 계시하신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요1:1]태초(헬,아르케. 시작, 알파)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은 생명이시다. 당신 속에 있는 생명을 아들에게도 주어 아들 속에 있게 하셨다. 언제부터? 존재 하신 태초부터.
왜? 이 영생은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의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내신 것이다. (디도서 1:2)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오시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모든 심판의 권한을 아버지께서 주셨으니 이제 이 아들에 의한 마지막 심판의 날이 이르를 것이다.
그 때에 생명에서 죽은 자는 그의 음성을 듣고 육의 부활이 있을 것인데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이 최후 심판의 날이 가까움을 마음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지혜로운 자이며 깨어 있는 자이다.
오늘의 숙제입니다.
이 말씀을 여러번 읽고 삶 속에 하나님을 느끼는 하루를 사셔야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모든 주변을 움직이시며 생명이 생명임을 선하게 당신을 스스로 계시하시고 계십니다.
"나 여기 있다."
"그거 내가 한거다."
"내 뜻은 이것이다."
그 하나님을 만나고 오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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