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여름방학
서울에서 조카들이 왔다
배낭을 지고
우리 고향 갈만한곳은 두곳이다
부석사 30리 약수터 25리다
어린시절 부석사는 볼것이 없다
약수터로 걸어서 갔다
새벽에 출발 점심전에 도착 개울가에
텐트를 치고 라면을 먹었다
약수터에서 약수 한그릇 쇠냄새만
진하고 맛은 없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구멍가게 기둥에
한 소녀가 나를 보고있다
눈이 마주치고 난 이끌리듯 가게로가서
사이다 한병을 만지작거리며 힐끗 보니
기둥에 비스듬히 기대여서 보고있다
그리고 고개도 돌리지않고 눈을
마추고 있었다
찡 전기가 왔다
긴생머리 하얀 피부 이곳 아이가
아니다
나도 모르게 용기를 내여서 말을 걸었다
사이다 얼마야
모르는데
너는 이동네 살아
응
그런데 여기 사는거 같지 않은데 ᆢ
그럼
너는 어디서 왔는데
나는 서울
아 그래
그럼 그렇지 도시에서 온거 같더라
이따가 저녁때 만날래
어디서
저기 버스 종점서 7시에
응 알았어
가슴이 쿵쿵 얼굴은 붉어졌다
아제 어디 아파요
얼굴이 왜 그래요
아니 너무 더워서 그런가보다
두살 세살 차이 조카들이다
그때부터 재미나는일도 없고
시간은 왜 그렇게 안가는지
일찌감치 종점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드디어 소녀가 나타나고 서울에서
여고 2학년 친척집에 방학이라
왔다고 했다
좀 한가한 지역으로 자리를 옮기고
분위기는 익어 가는데
갑자기 호르라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어어서 스피커에서
야외에 계신분들은 지금 즉시
귀가 하십시요
계곡쪽 텐트도 모두 철수 하시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국가에 위기가 생겼으니 모두모두
실내에서 자중 하시기 바람니다
라디오 조차 없든시절
우린 아무 정보도 없이 짐을 싸서
밤새 걸어서 집으로 왔다
무학여고 다닌다는 긴머리 소녀와는
작별도 제대로 못한채로 ᆢ
뒤돌아보고 또 돌아 보면서 경찰들
에게 쫒겨났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사색이 되여서
우릴 반겼고 그냥 잠에 떨어졌다
다음날 날이새고
육영수 여사가 빨갱이 총에 맞아서
돌아 가시고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전쟁이고 머고 나는 한동안
눈앞에 아른거리는 그 소녀 생각에
잠도 못자고 밥맛도 없었다
빌어먹을 문세광이 ᆢ
8월 15일이 되면 지금도 아련하게
그 소녀가 떠오른다
그냥 긴머리 하얀 세라복만 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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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랑방♣
긴머리 소녀와 육영수여사 ᆢ
해봉2
추천 2
조회 236
23.08.15 07:07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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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에효
아쉽지만
인연이 딱 거기까지 이네요. ㅎ ㅎ
덕분에 한평생 그리움 하나는
얻으셨네요. ㅎ
어린시절 이런저런
사연이야 많겠지만
광복절이면 생각나네요
육여사 서거와 맞물려서 ᆢ
첫댓글 감사합니다
띠롱소리와 함께 순간에 읽어내렸어요.
해봉 님의 글은 문학관의 단편을 읽고 있는 듯
읽는 내내 해맑음을 선사해 주시곤 하십니다.
ㅎ 제목에 육영수 님이 왜 뜬금없이 떠올랐을까
내심 살짝 궁금해가며 읽어내려 오다
"아 서거.....@"
역사의 소용돌이.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군요.
휴강이라 편히 쉴 생각만 했지
깜박 잊고 있었네요.
무학여고!
무학여고 여학생.
제가 공립 무학 여중, 고를 졸업하였거든요.
ㅎㅎㅎ 해봉 님 글 덕분에 아침부터 살짝 웃었습니다.
아이구
방장님 풋풋함이
아침을 덮습니다
시골 촌놈 눈에 비친
하얀 피부는 꽃같았습니다
요즘도 조카들과
만나면 그날 일들을
이야기 하며 웃습니다
ㅋ
당시 무학여고믄
뺑뺑이가 아니믄
공부 쫌 했단 야근디~
무학 여고 농구부에
강현숙인가(?)
여고 최고 인기
선수 있었음
인물도 출중하고
장충체육관가서
경기도 몇번 봤음
클라크님
감사합니다
그때 저는 서울
구경도 못해본 촌놈이라 ᆢ
서울에 대한
동경심도 한몫 했을듯요
@해봉2
넵
그땐 유
행가 제목에
소녀가 많이 들어갔었죠
긴머리 소녀
이름모를 소녀
나비 소녀
소녀와 가로등
@클라크(댄스방장) 역시
해박 하십니다
댄스는 물론이고
세상 이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