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전 한국인을 위한 '뽕' 팝 (하)
지난번에는 1980년대의 '뽕' 팝에 대해 말씀을 드렸죠. 뽕 팝은 지난번에 설명 드린 것처럼 빌보드에서는 푸대접받았으면서 유독 국내에서 무지 사랑받은 우리만의 팝송을 말합니다. 1990년대 이후에도 만만찮게 뽕 팝이 나왔지요. 따지고 보면 상당히 많습니다.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곧바로 들어갑니다. Attention please!!
1995년에 라디오에서 전파를 타고 전염병처럼 급속히 번지며 90년대 중반을 완벽하게 책임진 팝 발라드인 포트레이트(Portrait)의 'How deep is your love'. 이 노래는 1970년대 후반 디스코 열풍에 기름을 부었던 영화죠. 주연을 맡은 존 트라볼타(John Travolta)가 히프를 쭉 빼고 오른 손을 치켜 올린 채 정면을 응시하는 거북스런 모습의 표지가 어떻게 팔렸을까 의구심을 품게 하는 <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 > 사운드트랙에 삽입된 비지스(Bee Gees)의 원곡을 리메이크 한 거죠.
많은 사람들은 포트레이트가 우리나라에서만 사랑받은 그룹으로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이들은 1992년에 발표한 흥겨운 데뷔 곡 'Here we go agai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11위(아깝다!)까지 오른 흑인 4인조 보컬 그룹입니다. 그러니까 보이즈 투 멘(Boyz ll Men), 올 포 원(All 4 One), 컬러 미 배드(Color Me Badd), 조데시(Jodeci) 등과 함께 1990년대 보컬 그룹의 붐을 이루는데 나름대로는 한 가닥을 한 팀이죠.
포트레이트가 부른 'How deep is your love'는 빌보드 싱글 차트 93위에 랭크됐죠. (차라리 오르지나 말지).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곡목대로 '깊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떠했는지 아세요? 이 곡이 실린 앨범이 전 세계에 50만장 팔렸는데, 국내에서 거의 40만장이 나갔다는 겁니다. 한국이 다해준 거죠. 포트레이트 입장에선 한국이 눈물나게 고맙지 않겠어요? 그래서 보은(報恩)의 일환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라디오와 TV에 모습을 드러냈고 마침내는 한국 팬들만을 위한 앨범 < Picturesque >라는 음반을 발표했습니다. 딴 나라 사람들은 감히 구할 수 없는 희귀음반(?)이었죠. 이것은 1990년대 당시에 국내 음반시장이 세계 10위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포트레이트와 국적은 다르지만 피부색이 같은 스웨덴 출신의 여가수 제시카(Jessica)도 빼놓을 수 없는 뽕 팝 가수죠. 세네갈인 아버지와 스웨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제시카는 에어 서플라이(Air Supply)의 오리지널 곡을 재해석한 'Goodbye'가 우리 영화 < 약속 >에 삽입되면서 활화산이 폭발하듯 가공할 인기를 누렸죠.
그가 이렇게 가수로 데뷔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백스트리트 보이스(Backstreet Boys), 로빈(Robyn), 에이스 오브 베이스(Ace of Base) 등의 음반 작업을 한 프로듀서 데니즈 팝(Denniz Pop)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왜냐면 데니즈 팝이 바로 제시카의 연인이었거든요.
아무튼 제시카는 1998년에 이 노래 'Goodbye'로 우리나라 라디오와 음반 시장을 석권했고 이 인기를 바탕으로 무려 3번이나 내한해 자신의 몸값을 스스로 낮추는 겸손의 미덕(-.-)을 발휘했죠. 또한 김현철이 작곡한 'Love you for all time'을 김민종과 듀엣으로 취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국내외적으로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제시카의 'Goodbye'의 경우처럼 1990년대엔 영화나 드라마에 삽입돼서 인기를 얻는 노래들이 참 많았죠. 지금부터는 그런 대표적인 곡들을 소개해 드릴 게요.
유동근, 황신혜가 주연한 불륜 드라마(?) < 애인 >...
여기선 모두 두 곡의 팝송이 전 국민적인 애청곡이 되었죠. 1960년대 미국 히피들의 송가였던 스코트 맥캔지(Scott McKenzie)의 'San Francisco'와 캐리 & 론(Carry & Ron)의 'I.O.U.'입니다. 아~
노래 제목 'I.O.U.'는 'I owe you'를 들리는 대로 표기한 타이틀입니다. 라인스톤(카우보이가 입는 술이 달린 윗도리)과 무릎 밑까지 오는 부츠, 그리고 청바지를 입은 촌스러운 몽타주를 모면 미국 출신의 컨트리 그룹 같지만 대서양 건너편인 독일에서 결성된 혼성 듀엣입니다. 자신들의 노래가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캐리와 론은 당연히 우리나라를 방문해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난생 처음으로' 스타덤을 경험했죠.
그보다 몇 년 전에 방송된 드라마 < 아들과 딸 >을 기억하시는지. 최수종과 김희애가 주인공을 맡았던 이 드라마에서 또 하나의 코리안 뽕 팝이 탄생합니다. 바로 수잔 잭스(Susan Jacks)가 1980년에 발표한 'Evergreen'이죠. 참 인기 대단했죠. 아마도 오리지널은 로이 오비슨(Roy Orbison)일 겁니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Barbra Streisand)가 부른 영화 < 스타 탄생 >의 주제곡과는 무늬만 같은, 전혀 다른 곡입니다. 수잔 잭스는 바로 웨스트라이프(Westlife)가 리메이크 한 'Seasons in the sun'의 원래 주인공인 캐나다 싱어 테리 잭스(Terry Jacks)의 부인이었지만 오래전인 1973년에 갈라섰죠.
바로 여기서 결정적인 곡 하나 들이대겠습니다. 바로 스트라토바리우스(Stratovarius)의 'Forever'! < 첫사랑 >에 삽입돼 '영원히' 사랑받을 기세로 인기를 누린 'Forever'는 핀란드 출신의 스피드 메탈 그룹 스트라토바리우스가 1996년에 공개한 다섯 번째 앨범 < Episode >의 후반부에 박혀있는 곡인데요, 바로 이것을 우리의 감성으로 발굴한 곡이지요. 스트라토바리우스라는 그룹 이름은 기타 모델인 팬더 스트라토캐스터와 유명한 바이올린 제작자 이름인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유전자 변이처럼 결합한 것이죠.
제 에피소드 하나. 1990년대 후반, 제가 음반 매장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 중년의 아주머님이 와서 드라마 < 첫사랑 >에 나오는 노래를 부른 가수 앨범을 달라고 하기에 스트라토바리우스의 음반을 드렸죠. 속으론 '이거 큰일 나겠군' 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정말로 '큰일'이 터졌습니다. 며칠 후에 그 아주머니가 스트라토바리우스의 음반을 가지고 와서 “도대체 이따위 음반을 어떻게 팔 수 있느냐?”며 환불을 요구했던 겁니다.
제가 힘이 있나요? 환불해 드리고 속으로 다짐했죠. '이제부터 이 음반을 사는 사람한텐 Forever 빼고 다른 노래들은 시끄러운 메탈 음악인데요'라고 솔직히 말하기로. 물론 사장님이 들으면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말이지만 더 이상의 환불소동을 막아보자는 평화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취한 조치였습니다. -.-
이런 비슷한 경우의 운명을 가진 그룹이 있었습니다. 고깔모자로 유명한 덴마크 출신의 록 밴드 블링크(Blink)죠. 1996년과 97년, 국내에서 화제가 된 'Betty'는 라디오에서 서서히 인기를 얻어 나중에는 < 내안의 천사 >라는 드라마에 삽입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죠. 그러니까 수잔 잭스의 'Evergreen'이나 스트라토바리우스의 'Forever'와는 반대의 인기 루트를 가진 셈이죠.
블링크도 'Betty'라는 낭만적이고 복고적인 곡으로 대한민국을 정복했지만 그것만이 그들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Betty' 하나로 대중들은 블링크가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그룹인줄 알았죠. 그래서 1997년 5월, 63빌딩에서 첫 내한공연을 가졌을 때 적지 않은 관객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온 부모들이나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와 함께 온 연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라디오에서 'Betty'만을 듣고 온 그들은 큰 낭패를 봐야했습니다.
사실 블링크의 앨범 < Viva >에선 'Betty' 한 곡만 빼면 헤비메탈에 가까운 강력한 록이었거든요. 블링크가 공연 처음부터 'Betty'를 불렀겠습니까? 당연히 후반부에 부르죠. 'Betty'만을 알고 온 일부 관객들은 'Betty'를 포기하고 공연 시작 30여분 만에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채 퇴각하더군요. 제가 공연을 주최한 것도 아니지만 어찌나 무안하던지. 그래도 블링크는 그 늦봄에 양복과 털로 만든 고깔모자를 쓴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연주했습니다.
'Betty'가 들어있는 앨범 < Viva >의 프로듀서가 바로 메탈리카(Metallica)의 초기 음반들을 제작한 플레밍 라스무센(Flemming Rassmussen)이란 사실을 알고 간 사람은 많지 않았던 거죠. 참! 그리고 'All the small thing'으로 인기를 얻은 미국의 펑크 밴드 블링크 182(Blink 182)의 원래 이름이 그냥 블링크였는데, 바로 이들 때문에 뒤에 182라는 숫자를 붙였다고 하네요.
유럽에서 건너 온 또 하나의 뽕 팝 가수 길(Gil). 기억들 하십니까? 전분을 처바른 것처럼 뽀얀 얼굴과 긴 머리, 그리고 왼손으로 기타를 치는 10대 소년 길은 1998년에 'If you only knew'로 등장해서 10대 소녀들의 심장에 펌프질 한 녀석이죠. 1998년 10월에 첫 내한 프로모션을 했을 때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정말 '길길이' 날뛰던 모습이 눈에 선하군요. 1998년과 2000년에 단 두 장의 앨범을 통해 단 하나의 히트곡도 배출하지 못한 애송이(?)가 2001년에 베스트 음반을 공개해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죠.
여기서 두 번째 에피소드. 1990년대 후반 당시에 저와 친하게 지내던 형이 있었습니다. 그 형이 좋아하는 장르는 극악무도, 사지절단, 능지처참을 미학으로 하는 블랙, 데스, 그라인드코어 계열의 음악이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일하는 음반가게에서 왔다가 매장에서 틀어놓은 '길'의 음악을 듣고 제게 묻습니다. “얜 또 누구냐?”.
제가 대답합니다. “10대 로커래”.
다시 형이 말합니다. “기타 들면 다 록이냐? 그럼 (우리나라 듀엣) 해바라기도 록이냐?”
-.-
그럼 여기서 진짜 록 그룹을 소개할까요?
전차 사운드를 들려 준 독일 출신의 스피드 메탈 그룹 헬로윈(Helloween)의 'A tale that wasn't right'. 우리나라에선 '임마핫'으로 들리는 멜로디 훅 부분의 가사가 치열하게 다가오는 이 노래로 노래방에서 목이 간 사람들 많죠? 그래서 저는 이 노래 절대 안 부릅니다. 하지만 헬로윈은 우리나라에서 스트라토바리우스나 블링크처럼 오해가 없던 밴드였습니다. 왜냐하면 'A tale that wasn't right' 전에 'Halloween'이나 'Future world'처럼 강한 노래들로 이미 청각적 담금질이 되었기 때문이죠.
1988년에는 < Keeper Of The Seven Keys Part 2. >를 발표해 'Dr. Stein', 'Eagle fly free', 'I want out' 등이 고루 인정받으며 1980년대 중반과 1990년대 중반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한 멜로딕 메탈의 선봉장으로 추앙받았습니다. 하지만 기타리스트 카이 한센(Kai Hansen)과 보컬리스트 마이클 키스케(Michael Kiske)의 불화로 카이 한센이 헬로윈을 떠나 감마 레이(Gamma Ray)를 결성했지만 예전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하자 2000년대 초반에 다시 헬로윈에 슬금슬금 들어갔죠.
1997년에는 풍성한 월 오브 사운드에 담긴 드럼 연주가 우리의 가슴을 두드렸던 'Monday morning 5:19'으로 대한민국을 접수한 영국 밴드 리알토(Rialto)가 등장합니다. 영국의 유명 음악 전문지 <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 >에서 1997년 최고의 싱글로 꼽은 이 노래는 삽시간에 음반 매장은 물론 카페, 광고, 드라마, 라디오 등 거의 모든 매체를 휩쓸었고 당연히 싼 값(?)에 프로모션 투어에 이은 내한공연을 가졌죠. 'Monday morning 5:19' 외에도 'Summer's over'와 'Untouchable'이 동반 인기를 누린 이들의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은 우리나라가 IMF 체제로 신음하던 1998년에 10만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해서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1993년 국내의 레게 붐을 타고 사랑을 받은 레게 싱어 파파 위니(Papa Winnie)는 'You are my sunshine'과 미국 출신의 싱어 송라이터 조 사우스(Joe South)의 오리지널을 리메이크 한 'Games people play'로 기억되는 인물이죠. 하지만 그의 고향은 레게의 발상지인 자메이카가 아니라 올림픽 개막식에서만 접할 수 있는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그라나딘스였습니다. 스무 살 때 이탈리아로 건너가 그곳에서 음악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한동안 파파 위니 노래가 바닷가가 펼쳐지는 여름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휩쓴 것 같네요. 대한민국에서의 인기를 감지한 그는 한국 팬들을 위해 'Korean love affair'란 곡을 발표했지만 우리나라에서조차 반응이 아주 썰렁했죠.
1995년에는 'I saw you dancing'이라는 댄스곡으로 홀연히 등장해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스웨덴 출신의 쭉쭉빵빵 미녀 듀엣 야키-다(Yaki-Da). 당시 음악에 관심 있던 남자 분들이라면 기억하시겠죠? 린다 숀베르그(Linda Schonberg)와 마리 너트센(Marie Knutsen)으로 구성된 야키-다는 같은 나라 출신 그룹 에이스 오브 베이스(Ace of Base)의 멤버인 요나스 베르그렌(Jonas Berggren)이 작곡하고 제작까지 맡은 'I saw you dancing'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54위까지 올랐지만 우리나라에선 그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었죠. 이 곡이 수록된 데뷔앨범 < Pride >의 전 세계 판매량 중에서 80%가 우리나라에서 팔릴 정도였으니까 말 다 한거죠. 상기한 포트레이트의 사례와 같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뽕 팝의 최고 인기 가수는 마이클 런스 투 록(Michael Learns To Rock)입니다. 덴마크에서 결성된 이들은 듣기 편해서 노래 제목처럼 졸음을 부르는 'Sleeping child'로 서서히 기지개를 펴더니 '25 minutes', 'That's why', 'Paint my love', 그리고 'Breaking my heart' 같은 곡들로 우리 대한민국을 초토화시켰습니다. 당시 신해철씨는 라디오에서 이런 멘트를 날렸죠. “이분들, 확실히 록을 더 배워야겠는데요...”
이들은 2005년에 우리 그룹 신화의 멤버인 신혜성과 함께 'Take me to your heart'를 불러 자신들에게 가장 큰 애정을 준 한국 팬들에게 보답을 하기도 했죠.
역시 이번에도 글이 길어졌군요. 죄송합니다. 다음은 리스트만 올립니다.
* 호주 출신의 보이 밴드 CDB의 'Let's groove'. 유명한 펑크(funk) 밴드 어스 윈드 & 파이어(Earth Wind & Fire) 형님들의 원곡을 리메이크 한 이 노래로 1990년대 후반 반딧불처럼 잠깐, 아주 잠깐 반응을 얻었죠.
* 스캣맨 존(Scatman John)의 'Scatman (Ski-ba-bop-ba-dop-bop)'. 중절모에 콧수염을 기른 아저씨 기억하시죠? 랩인지 스캣인지 분간하기 힘든 이 곡은 1995년에 발표돼서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도 60위라는 발군의 기록을 세운 넘버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쇼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다목적 음악입니다.
* 캬~ 꼬마 래퍼라고 소개된 조르디(Jordy)의 'Dur dur d etre bebe'. 1992년에 발표된 이 곡은 1년 전인 1991년에 개봉돼서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은 영화 < 나홀로 집에 >의 주인공인 매컬리 컬킨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러니까 프랑스는 '음악계의 매컬리 컬킨'을 내세우고 싶었던 거죠.
* 1990년대 초반에 투 언리미티드(2 Unlimited)의 'Twilight zone', 'Get ready for this'와 함께 나이트클럽과 록카페를 양분한 Black Machine의 'How gee'. 이 노래만 나오면 춤추던 사람들은 일제히 오른 손을 머리 위로 들고 흔들었죠. 유치하죠?
* 헬로윈의 'A tale that wasn't right'과 함께 노래방에서 많은 사람들의 성대를 보내버린스틸하트(Steelheart)의 'She's gone'.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이 노래는 1991년에 싱글 차트 59위를 차지한 넘버이기도 합니다.
확실히 1990년대는 그 이전보다 코리안 '뽕' 팝이 상대적으로 약세였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외국의 이름 있는 음반사(소니/BMG, 워너, 유니버설, EMI 같은 메이저 음반사)가 우리나라에서 외국의 음반들을 직접 유통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예전에 우리나라의 음반사가 라이선스를 받아서 음반을 발매하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죠.
그랬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있는 메이저 회사는 우선 외국 본사가 정한 노래에 중점을 둬야했던 겁니다. 다시 말하면 본사의 입김과 지시에 따라서 홍보해야 할 노래가 정해져서 하달된다는 점이 가장 컸던 거죠. 그래서 우리 정서에 맞는 노래를 예전처럼 자체적으로 발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 때부터 라디오를 통해 알려지는 정공법보다 광고나 드라마에 삽입된 노래들이 많은 사랑을 받는 편법이 널리 통용화 되기 시작한 거죠.
'이건 진짜 싸구려야'라고 생각하시는 노래 있나요? 물론 저도 그런 노래가 있었고 현재도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근래에 느낀 것은 예전에 그렇게 생각했던 노래들을 다시 들어보니 우리의 소박한 추억과 기억을 되돌릴 수 있다 촉매제라는 거죠. 이 음악들은 언제 들어도 저를 그 시대, 그 장소로 옮겨주는 타임머신이거든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음악의 힘이 아닐까요?
2005/10 소승근 (gicsucks@hanmail.net)
첫댓글 A tale that wasn't right 세상에서 젤 싫어하는 노랩니다. 주말에 음악카페에서 술먹다가 이노래 나오자마자 계산하고 나와버렸어요.
들어보고 싶군요 그노래..아깝다 .남은 술하고안주..저도 그런 노래가 있긴하죠 성질나지요...
비지스의 Don't Forget To Remember는 하도 많이 방송에서 나오고 해서..정말 질리고 질려버렸어요. 그래서 저는 노랜 듣기도 싫을 정도가 되었답니다.
베티 그노래 괜찮은데요.